주께서 누르실 때에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시 88:6-7)
녹취자: 원수연
시인은 이런 시련 속에서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악인들임에 틀림없고 자신이 그들에게 에워싸여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기를 건져달라고 기도하고 저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오니 하나님께서 저들을 징책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제 이런 큰 시련과 환란 속에서 자신에게로 돌아와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시련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살핍니다. 그랬더니 자신 안에 있는 많은 죄들이 보였습니다. 우선 자신의 영혼을 보니까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깊은 웅덩이 어둡고 음침한 곳”이었습니다. 이 당시의 구덩이는 절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와 같은 곳에 많은 구덩이들, 혹은 짐승들을 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사람이 빠지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만약 한 5m정도 되는 웅덩이에 빠져있고 올라갈 수 있는 아무 도구가 없다면, 비록 머리 위에 바로 하늘이 손이 닿을 듯 보인다 하더라도 그 웅덩이는 절망인 것입니다. 그 정도 깊이밖에 안 되어도 도구 없이는 도저히 거기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침침하고 음습합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침침한 데에 있는데 그 속에서 또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환경적으로만 어려움이 온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깊은 어려움이 와서, 나를 해치는 저 악인들이 나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런 커다란 시련을 통해서 사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 악인은 악하고 나쁜 사람들이지만 커다란 하나님의 섭리에서 보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들이, 말할 수 없는 괴로운 상황들이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누르시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을 해치는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지만, 그렇게 악인으로부터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그 악인을 징벌하시겠지만, 경건한 시인은 그들의 정체를 아는 것과 함께 또한 그런 시련과 환란을 당하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될 때에는 단지 환경의 고통이나 아픔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바다 위에 배를 띄어놓았는데 도저히 그 배가 감당할 수 없는 파도가 칠 때, 그 배는 속수무책으로 바다 위에서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며 자신의 운명을 파도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것은 모두 내면적인 괴로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양심이 죄에 대한 자각으로 말미암아 받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시인이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그러니까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의 목을 상체 위에 올라타고 누르는 것 같은 숨을 쉴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자각, 거기서 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은 영혼의 큰 번민을 가져오고 마음에 고통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들이고 그 관계는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은혜를 받을 때에만 주님의 안에 있고, 주님 앞에 올바르게 살지 못할 때에는 주님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게 신자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고 성령 충만할 때도 주님 안에 있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누울 때에도 주님 안에 있고, 심지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미워해도 주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설정하고 보면 시인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끔찍한 일, 영혼이 눌리는 것 같은 큰 고통, 심판받을지도 모른다는 떨리는 두려움, 무서움, 이런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 시인을 낙심시키고 절망시켜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때리시고 어루만져 그를 주님 앞에 바로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책망합니다. 자녀의 잘못을 꾸짖고 그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책망할 때 한손에 과자를 들고 다른 한손에 꽃다발을 들고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 책망할 수 있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책망은 언제나 우리에게 두려움과 아픔, 그리고 관계에서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하는 무서움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주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시인이 당하는 이 모든 고통과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떨어져나가게 하기 위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두려움이었고, 뉘우쳐서 하나님 앞에 다시 살게 하시기 위한 두려움이었으니, 여러분이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어떠한 영혼의 때이든지 좋으신 우리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