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시고 높이심
“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곤고하게 못하리로다 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시89:22-24)
녹취자 : 허혜숙
이어서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다윗을 견고하고 힘이 있게 하실 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에서 크게 소극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다윗과 이스라엘을 지켜주실 것이며, 또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높이고 그의 왕국을 번성하게 하실 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선 하나님은 원수로부터 이렇게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이 다윗을 강탈하지 못하며 또 악한 자 때문에 (여기에서 ‘곤고하다’고 하는 것은 ‘괴롭힘을 당하다’라는 뜻인데) ‘다윗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택하고 보호하셔서 당신의 통치를 다윗을 통해서 펼치고자 하셨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로 뜻을 세우면 이 세상에는 그런 뜻을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장애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떤 적수도 갖기 싫고 누구와도 서로 부딪히는 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부덕, 그리고 우리의 사랑 없음과 우리의 모자람 이런 것들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 문제이지 하나님을 향해 살고자 할 때, 그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자 뜻을 세울 때 반대가 없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다윗에게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서 그 위를 영원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들을 이루어 가실 때 필연적으로 많은 대적들이 따르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원수들이 다윗을 강탈하거나 혹은 다윗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앞에서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를 치리니” 23절의 이 분위기는 명백하게 전쟁의 뭇매입니다. 단어들도 전쟁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다윗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당신의 오른팔로 세워 당신의 일을 다 이루게 하실 때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까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셔서 세우시고 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서 임금이 되게 하신 사람에게,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에게 왜 이런 대적들 그리고 이런 저런 시험과 어려움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결국 악인들은 빛이 비췸으로 어두움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듯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강력한 당신의 주권을 행사해 가시니까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약속을 받습니다. “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미래에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모든 영적인 교회에 행사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름을 부어 모든 악하고 더러운 자들에게 에워싸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지켜주셔서 그 대적들을 진멸하며 또 그들을 칠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계실 때도 그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는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향해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교회가 혹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현실적인 통치가 어려운 일을 만나고 대적자들에게 직면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속에서 대적자들과 싸우셔서 그들을 박멸하시고 또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셔서 하나님이 당신의 왕권을 보호하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만약 22절과 23절이 소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다윗의 왕권을 지켜주시는 것이라면 24절은 훨씬 적극적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제일 먼저 약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함’은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 다윗과 수립한 언약에 충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언약의 당사자로서 하나님은 그 언약을 위반하거나 언약이 체결된 약정에 따라 당신이 하여야 할 의무를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해서 수행할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말할 수 없는 애정으로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실함이 하나님께서 이미 맺은 언약에 충실히 헌신하는 것이라면 인자함은 이미 그 안에 당신처럼 이 언약에 온전히 충성할 수 없는 연약함과 죄를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겠다고 하는 보증이 인자함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이 항상 그와 함께 하리니 떠나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었을 때 다윗이 항상 그 언약에 충실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소극적으로 보면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모든 방면에서 온전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은 언약관계에 대한 결함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구조사를 비롯해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한 사건들은 명백한 죄였고 그것은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맺어진 언약에 대한 전형적인 위반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의 언약이 폐기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한쪽에서 한쪽 당사자가 이미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언약관계를 위반하는 심각한 죄를 범했는데 어떻게 해서 이 다윗의 언약이 계속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하는 자를 끊임없이 용서하셔서 당신과의 언약관계 안에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 특히 언약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볼 때 하나님이 차마 불의를 보시지 못하는 엄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똑같이 놓치지 말아야 될 사실은 하나님이 끊임없는 죄의 용서, 은혜의 공급을 통해서 언약관계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또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절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 기도가 있는데 그것은 순종할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진심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음 깊은 밑바닥에서 충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지 그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되 무한히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았을 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순종의 의무를 기도와 함께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죄에 대한 무한한 용서입니다. 단, 조건은 죄에 대한 진실한 회개일 때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지키며 따라서 일생을 마친 후에 마지막에 그 언약에 충실했던 자신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관계를 끝까지 붙드셨던 우리 주님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내 이름”이라는 단어가 시편이나 혹은 다른 구약에 나오면 그것은 그냥 “나로 말미암아”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표현하셨느냐 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이름을 이 세상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높아질 수도 없고 낮아 질 수도 없지만 이름은 인간의 태도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고 모욕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시 공간을 초월해 계시지만 당신의 이름은 시 공간 안에 인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이 세상에 두셨다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위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전히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분의 이름을 사랑하고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분의 이름이 높이 들려질 때 하나님 앞에 행복하고 짓밟히고 모욕을 받을 때 함께 수치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시인의 생애를 생각나게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군인들과 싸울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처럼 그의 이름을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의지하고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살고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시인이 힘을 얻게 될 것을 보여주고 동시에 뿔이 높아진다고 얘기했는데 이것은 명예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때 그 때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매여 살던 모든 사람들은 함께 존귀와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며 다윗은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 나라를 존귀하게 했던 언약은 사실은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었고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윗의 위가 이 세상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이 세상 위에 있는 나라의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도는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매일매일 내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약합니다. 그러나 매일 하나님을 봅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고 그렇게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위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A부터 Z까지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 분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며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당신의 영광을 위해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의존의 신앙을 모두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