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속에서 언약을 생각함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시 89:48-49)
녹취자 : 김세나
하나님의 진노 중에 시인은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져 버린 것과 또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어제 말씀 드렸습니다. 48절에서는 그 허무에 대한 깨달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라며 탄식어린 그 허무에 대한 자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말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죽음을 본다는 것’과 ‘스올의 권세에 들어간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스올’이라고 하는 말은 아직 지옥에 대한 개념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구약의 사람들이 사람이 죽고 나면 모든 생기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죽음으로 내려가는데 그 죽음의 상태는 멸절된 상태도 아니고 원래 이 세상에 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생생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채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스올이라고 할 때 아무 생명과 희망이 없이 그렇게 거의 죽은 자처럼 되어 있는 절망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제 시인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죽음을 보고 또 그 영혼은 스올의 권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고 자신의 자각을 말합니다. 결국 큰 고난을 통해서 인간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니고 하찮은 것이고, 인간이 정말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시인이 자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커다란 멸망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존재나 나라의 존재나 결국 알고 보면 하나님이 ‘후’하고 보실 때 쓸려가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시인이 이러한 커다란 시련을 통해서 자신 개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도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시련을 통해서 이 시인은 정말 이 나라도 그 종말의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89편이 정확하게 어떠한 배경에서 저술되었는가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나라가 남북왕국으로 갈라지고 나서 애굽의 침공이 있었습니다. 히삭이라는 왕이 침공을 하는데 그 왕이 침공해서 유다 나라가 커다란 전란에 휩싸여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놓였을 때 쓰인 시가 89편 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이러한 것을 암시하게 해주는 그 구절이 49절에 나옵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라고 노래합니다.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윗 언약입니다. 다윗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이 다윗의 위를 영원히 지속되게 하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을 통하여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 땅에 있는 다윗의 왕국의 영원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이 땅에 영원하세 성립하고, 또 영원히 번영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본 예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를 쓸 때 그것을 모두 바라보지는 못하였을 것이고 아마 그 하나님의 약속을 문자 그대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윗 왕국을 영원히 그 위가 지속되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렇게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한없는 인자하심 때문에 이루어진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언약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감히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전에 다윗에게 주신 이스라엘의 영원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그 속에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이 시련 속에서 자신과 나라를 지켜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 언약대로 왕국을 번성하게 하셨고, 또 그 모든 전쟁과 커다란 국가적인 재난에서 나라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성실하심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오늘 시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렇게 우리의 눈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난의 현실 속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개되는 인생의 많은 일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전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순간 그러한 현실들을 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합니다. 이때 이 시인이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였다면, 오늘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맺으신 구원의 새 언약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고 독생자를 주셨고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신 그 약속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요동치는 현실이 나타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들이 당신을 붙들고 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는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붙들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을 굳게 믿으면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렇게 주님을 붙들며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