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장 수련회 새벽예배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니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요21:15-25)
녹취자 : 허혜숙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미끄러진 베드로를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삼으셨는지를 21장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용서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지명하여서 세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사역을 성취해 가실 때에 완벽하고 결함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흠 있고 잘못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를 통해서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용서받은 사람들만이 자기를 의지하는 대신 우리 예수님을 의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두 완벽한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모두 완전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사랑하는 양떼들을 목양하고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나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과연 목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 자신 하나를 추스르는 것 자체가 힘겹게 느껴지는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서 결국은 매일매일 하나님께 용서를 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면서 아버지 앞에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렇게 약한 사람들을 불러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목양을 하는 이것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힘주어 강조합니다. 영혼을 섬기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할 리가 없고, 영혼을 섬기지 않았더라면 매주 만나는 영혼들의 모습 속에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그렇게 통절히 깨닫지 못 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병든 자기의 목양 지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는 거룩한 긴장 속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가장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변화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우리들에게는 많은 재능, 많은 헌신,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일들이 있고 그 일들 중 어떤 것들에는 매우 능숙해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섬김들을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다 한다고 치더라도 한 가지가 없으면 그것은 목양이 아닙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전에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표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베드로에게 물으신 이 질문은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이기 때문에 이것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 물은 질문이 아니라 베드로와 함께 한 모든 제자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목자들, 영혼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모든 이들에게 물으시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 질문이 바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이 질문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하는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버리라고 하신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다시 나타나신 후에 나타나셔서 이 베드로를 베드로라고 부르신 대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베드로로 하여금 맨 처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때의 시몬의 아들 베드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전 고기를 낚고 그 고기를 팔아서 연명을 하던 뱃사람이던 시절의 그 어부 베드로를 생각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요한의 아들은 자연인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호칭 속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얘야, 너는 한 때에 내가 보낸 사도였고, 제자였고, 모든 약한 것과 병든 것과 귀신 들린 것들을 쫓아낼 수 있는 영적인 권세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생각해 보거라, 너는 반석과 같은 믿음을 가진 위대한 사도가 아니라 그저 요한이라는 사람의 아들 시몬 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목양을 하는 사람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이렇게 지극히 연약한 자들로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을 때에만 주님의 사람답게 목양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양을 하는 사람, 목회를 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유능함도 아니고 탁월함도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그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지 아니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많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해서 우리 목양의 길이 십자가가 없거나 갑자기 환상적인 형통함만이 깃드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고난도 있고, 시련도 있고, 어려움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시련과 어려움, 아픔과 고난 이런 것들이 모두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이야 말로 목양을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니 우리가 일 년 동안 우리의 목양의 열매를 돌아볼 때 우리는 일을 잘못 한 적도 많이 있지만 사실은 잘못할 수밖에 없었던 태만할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이유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의지하고 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은 모든 목양의 샘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을 용납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화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화해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들이 주님의 교회를 주님의 교회답게 이끌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깨닫고 찾아내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가르쳐 줌으로 그들도 우리처럼 주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이 부르심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