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교역자 수련회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25)
녹취자: 전병선
주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이 가까워온 것을 아셨기 때문에 자기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보면 유명한 한 알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말이 사실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이든지 무엇이든지 낱알을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눈이 있습니다. 콩 같은 것들은 배아가 있어서 두 조각으로 벌어지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밀이나 쌀 같은 것들은 눈이 있어서 그 눈이 달려있어야 작물이 되는 것입니다. 한 알 전부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땅에 떨어졌을 때 많은 낱알은 눈을 틔우기 위해 소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낱알이 땅을 묻게 되면 서서히 썩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양분이 됩니다. 그 양분을 빨아 먹으면서 씨눈이 발아를 하게 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낱알하나가 다 죽어버리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다 죽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낱알이 죽어서 썩어서 양분이 되서 그 낱알에 매달린 작은 눈 하나를 싹틔우고 싹틔운 그것이 점점 자라서 잎이 되고 뿌리를 내리고 하게 되면 성장의 과정에 이바지 하게 되는 그것이 바로 한 알의 씨앗이 떨어져 눅는다고 예수님이 표현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당신 하나가 죽음으로써 밀알의 눈을 싹틔우면서 많은 결실들을 맺을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사도바울의 신학에 나오는 교회론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육체의 목숨과 구원받아야할 모든 사람의 영혼을 하나로 보시고 우리의 영혼을 싹틔워야 할 씨눈으로 보시고 당신의 육체는 낱알로 보셔서 당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그것이 영양분이 되어서 씨눈인 우리들을 틔워서 자라게 하고 그 위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쌀 한 알이 싹틔우게 되면 일천삼백 개의 낱알을 맺는다고 합니다. 밀도 그렇게 수백 개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예수님이 당신자신의 몸을 썩어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오히려 살아야할 씨눈이라고 해서 당신 자신이 죽으셨더니 우리들이 그 나무에 매달려서 결실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결실을 하게 된 우리는 또 하나의 밀알이 되어서 우리 안에 죽어야할 것과 죽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을 동시에 간직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론적으로 예수님이 생각하신 것처럼 우리의 죽어야할 것과 죽음으로서 살려야 할 것을 엮어서 교회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의미는 아주 명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알의 씨앗처럼 죽으실 때에 우리를 씨눈처럼 생각하고 당신을 씨알이라고 생각하고 죽으셨으니 그다음에 우리들이 열매를 맺혔는데 죽어야할 것은 우리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할 것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는 이치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씨앗을 뿌려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충만히 사실 때 그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돌보는 영혼들도 살아나게 되고 살아난 영혼들이 다시 열매가 될 때에는 그들도 생각하기를 자기는 죽어야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와 교회에 속한 영혼들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한 번에 죽으셨으니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시는 삶을 끊임없이 반복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져가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봅시다. 어제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목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회심이라는 말씀을 드렸고 회심과 회심의 은혜가 보존되는 것이야말로 목회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고 이것이 없으면 모든 좋은 것들도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올바르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신학과 지식과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목회를 하더라고 거기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회심과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 이외에는 우리에게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을 회심하게 하시고 회심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은혜가 살아있게 하시는 신령한 역사가 우리에게 충만하게 반복되는 것 없이는 우리의 목회의 사역이 하나님 앞에 축복된 사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목회자는 자신이 경험해본 예배 이상에 대해 기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한사람의 목회자는 자기가 변화되어본 만큼만 영혼들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선험 할 수 있지 자기가 도달해보지 않은 변화와 은혜의 세계를 자기 사역의 목표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목회를 하는 과정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지 못하면 올바르게 하도록 배운 것, 신학지식 나부랭이들 모든 것들이 졸지에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것만 여러분의 것이지 남에게 듣고 여러분의 마음 안에 아직 가지지 않은 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어떤 훌륭한 신앙의 선배를 보면서 가슴 뛰고 벅차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여러분이 이미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여러분들에게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삶을 그리워하고 그 삶을 동경한다는 면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경한다는 것은 가고 싶다는 것이지 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역이 정말 사역하는 과정을 통해서 복음의 진수를 깊이 경험하고 만나는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기가 회심하지 않은 교역자가 회심의 축복을 받지 못한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할 수 있을까요? 빛을 본 자만이 어두움에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고 진리를 개달은 사람만이 오류 안에 있는 영혼들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가 신앙생활 한 것만큼만 목회사역을 할 수 있고 목회사역을 한 만큼만 여러분이 복음사역을 수종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알의 밀처럼 썩고 죽어서 그 영혼들이 살고 그리스도가 충만하게 사시는 비결을 터득하고 체득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목회의 끝은 회심이라면 이 회심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우리의 씨눈 같은 그리스도가 사신 결과가 우리의 목회사역에 있어서 회심의 열매라면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곡식을 방부처리를 해서 썩지 않게 하면 물을 아무리 주고 땅에 심어봐야 싹이 나겠습니까? 썩질 않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살고 싶어 하지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여러분들이 목회사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비결들을 터득하려면 영혼들을 위해서 죽고 자기가 선한 목자로서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해 한 알의 밀알처럼 버리시고 우리를 열매로 거두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의 원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육체는 힘들면 쉬고 싶고 마음을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을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물처럼 편안한 환경을 원합니다. 그렇게 죽을 것처럼 고통을 받고 하는 영혼들에게 있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회를 하면서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짓이겨지는 것 같은 고통가운데 두기도 하고 정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극심한 고통가운데 들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이긴다는 것은 넘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이긴다는 것은 변함없이 목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인내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견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 김경해 전도사님이 간증한 것처럼 ‘정말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구나. 양떼들을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셨는데 정말 내가 잘 감당 못하고 능력이 없구나.’ 이것 때문에 같이 아프고 한순간도 ‘여기 내가 서있는 게 딱이다.’ 이런 생각 한 번도 든 적이 없습니다. ‘여기 서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정말 나는 적합하지 않구나.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은 크고 고귀하지만 안팎의 많은 것이 나를 에워싸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 못하구나.’ 이런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죽음이 우리 안에 끊임없이 반복될 때에 ‘정말 예수님밖에 소망이 없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내가 이야기한 나는 슬픈 목회자입니다. 그 마음입니다. 그때 거기에서 진정한 목자의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형선고 받은 사람의 마음처럼 되어서 온전히 깨어지고 나면 ‘정말 나는 아무 소망이 없구나.’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깨트려질 때, 그렇게 아무소망이 없다고 할 때 진정한 목자의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가슴이 다 찢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여기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나는 여기에서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참을 수도 없고 내게 있는 어떤 좋은 것도 없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거룩한 사역을 망칠 것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매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부흥을 구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이 자신을 목회지의 거룩한 부흥이 임하도록 회심하지 못한 자신의 양떼들이 정말 회심하도록 도와달라고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서라도 그들에게 회심의 은혜를 부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무제한으로 순종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고 무제한을 죽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목자의 목회입니다.
한 목회자가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이 세 개가 있습니다. 가장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사형선고 받은 것 같은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세 가지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어있습니다. 설교할 때에 그 양떼들이 나의 설교에 재능을 감상하는 청취자나 관객이 아니라 영혼들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 속에서 녹는 것같은 마음이 설교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복음을 듣고 회심한 아이가 “전도사님 설교하고 목사님 설교할 때는 십자가가 안 믿어졌는데 선생님이 예수님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할 때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믿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회자의 눈물이 있는 설교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은혜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여러분에게 주신 예수님의 마음도 함께 전해지지 않으면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일 그럴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구역장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치다가 선한목자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수동교회나 그 이전부터 전도사생활하면서 느끼는 건데 저는 그게 지론입니다. 부서가 마치면 교사들 모임시간에 교구를 맡으면 구역장 성경공부시간에 매일 그럴 수는 없겠지만 몇 주에 한번정도는 펑펑 울면서 끝나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매주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펼쳐놓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면 끄덕끄덕 거리고 잘 전달됐다고 하고 무언가 선심 쓰듯이 여러분들이 성경공부 교재 속에 나와 있는 지식들을 나누어주는 사람인 것처럼 끝나면 거기에는 권세가 없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어느 날 목사님이 전도사가 없으니까 나보고 설교하라고 맡겼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일주일 금식기도를 하고 부흥을 달라고 시작했는데 주일아침부터 비가 장대처럼 퍼붓는 것입니다. 마음이 너무 상했습니다. 비가 오면 아이들이 못나오는데. 비가 쏟아지니깐 한 40명 골목청소 한다고 빗자루랑 부삽 들고 교회당에 와서 비 맞은 아이들이 쭈그리고 서있는데 새벽기도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셔서라기보다 내가 너무 비참해서 울었습니다. ‘일주일을 금식기도 했는데 하나님 은혜를 주시지, 비가 펑펑 내려서 주일날 새벽에 아이들이 가득모여야 되는데 40명 모여서 예배를 드리나.’ 그런 생각 때문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선생님이 설교하다가 눈물을 흘리니까 얘들이 모두 따라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끝나고 기도를 했더니 조그만 애들이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서에 올라가서 주일학교 애들한테 설교할 때 매일 그럴 수는 없겠지만 며칠에 한번씩 이 복음에 감격해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말씀을 잘 깨닫고 은혜 받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감사해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앞을 가려야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교사들이 목양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대적인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도 속에서 묻어납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들의 경우, 사도들이 7집사를 뽑은 후에 자신들의 사명으로 돌아가길 원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그것이 뒤집혀서 나옵니다.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기도가 사역을 위해서 불을 떼는 것이거나 요리를 위해 재료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역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신앙이 없습니다. 누구도 그 사람을 기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기도하게 합니다. 자신의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심지어는 기도자체도 하나의 사역의 일종이 되어서 기도인도 해야 할 때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새벽기도 나오면 교역자 중 한사람이 새벽에 잠깐 기도하고 어디를 자꾸 가는 것입니다. 새벽에 학원을 다닌다고 합니다. 무슨 공부를 얼마나 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자세로 사역이 되겠습니까? 그런가하면 심히 태만해서 자기 사역을 위해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역사가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목회는 목회자의 눈물방울 위에 성도들을 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충분히 기도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을 가지고 말은 많이 하지만 우리가 돌보는 영혼들 중에 회심하지 않는 영혼들이 있는데 그 영혼들 중에서 한 번도 우리 눈물의 기도를 못 받아보는 성도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게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그래서 리처드 백스터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온 마음을 다시 기도했고 눈물로 전했건만 저희들은 돌이키지 않았다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만약에 돌보는 영혼들이 수천 명이 된다면 불가능하겠지요. 그렇지만 돌보는 영혼들을 위해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내년도에 아마 포기하지 않는 사역이 될 것입니다. 본질로 돌아간다. 그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본질로 돌아가자.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말 자기에게 맡겨주신 양떼들 위에서 기도로 사역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의 표증이 되어야 합니다. 내년 계획을 세울 때 여러분이 제일먼저 내년도에는 금년까지 해온 사역과 전혀 다른 사역을 합니다. 그것이 기도사역입니다. 담임목사에게 보이기 위한 새벽기도가 아니라 진짜 자신을 쏟아 부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는 나쁜 목회자입니다. 삯꾼의 특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을 향한 절대의존에서 배어나는 것은 영혼을 돌보는 일입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심방을 한 번 하는 그것은 때로는 훌륭한 설교자의 한편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더 커다란 변화를 영혼들에게 가져옵니다. 그래서 눈물로 심방하고 영혼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그래서 여러분에게 신신당부하는 것은 마음을 추스르세요. 자기의 목양에 집중하세요. 그 목양에 있어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목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들이 업무조정을 하고 여러분에게 이릉ㄹ 맡길 때 아주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맡겨진 일들이 너무 많아서 목양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배려를 하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거기에 쏟아 부으라고. 그리고 목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양떼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일깨워서 그들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 앞에서 목양을 섬기는 사람으로 온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거의 모든 게 달려있습니다. 목회자가 가슴을 찢으면서 자신의 목양을 위해 죽으면 나쁜 일이 많이 생겨도 그게 결국 좋은 일로 바뀝니다. 그래서 영혼들이 변화합니다. 그렇게 한번 깊이 목회 속에서 거의 죽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목양의 진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느 부서를 맡고 얼마나 큰 사역을 맡겨주었느냐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무리들을 맡겨주었는데도 거기서 부흥을 경험하고 목회의 진수를 체험하는 사람이 있고 큰일을 맡겨주었는데도 전혀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교사와 구역장을 잘하던 사람을 전도사를 써서 실패를 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전도사생활 잘하던 사람을 부목사로 써서 교구를 맡겨서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교구를 잘 목회하며 뜨겁게 사랑하며 목회하던 사람들이 담임목사가 됐을 때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내년한해동안 섬길 때 이제껏 사역의 생애 중에서 가장 주님을 깊이 만나는 생애가 되기 바랍니다. 결국 목회의 모든 선물은 원천적으로 목회자의 헌신된 영적생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헌신된 영적 생활에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과 끊임없는 은혜의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모든 갈등을 이기고 넘어가면서 관용으로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 샘을 절대적으로 잃게 해서는 안 된다. 온 마음을 다해 목회하기 바랍니다.
훈련받을 수 있는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일평생 아무 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에 주십니다. 그러니까 온 마음을 다해 목회를 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우기 바랍니다. 한사람이 공부 잘하고 성격 반듯하고 윤리적이고 예의바르고 리더십도 있다고 할 때, 이 모든 것들은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들입니다. 붓, 펜슬도구들, 그림물감 등등 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예술 혼입니다. 아무리 좋은 도구들이 준비되어있어도 작품의 진가를 결정하는 것은 예술가마음속에 불타오르고 있는 창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예술 혼입니다. 그것은 바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만나고 자신 안에서 불같이 일어나야 될 그의 신비한 무엇입니다. 그래서 정말 분깃에 충실하고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이 본질적인 것을 열심히 스스로에게 촉구하고 거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가 될 때는 하루 세 시간 기도하겠노라고 서약할 때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저도 나이가 많이 먹고 그때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일들에 에워싸이고 교회가 성장하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신이 현저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그 본질로 교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이 끊임없이 헌신하고 살아야합니다. 내년 한 해 동안 정말 하나님의 강물 같은 은혜가 여러분의 목회사역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