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수련회 2
녹취자 : 이시내
지난시간에는 우리들이 지도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이 그리스도께 매인 것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도자에게 뭐가 필요한가 하는 것은 지도자가 무엇 때문에 실패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 인내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이요 요건입니다. 우리들이 솟구치는 열정이라도 그것이 오래가지 않는다면 소기의 목적을 잘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어학이 발달하고 좋은 기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예전에 대장간이나 혹은 산소 용접하는 곳이 동네마다 많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지금은 여러분이 기억도 못하겠지만 커다란 둥그런 원통형의 기구에다가 카바이트를 잔뜩 넣고 물을 잔뜩 부은 다음 위의 뚜껑을 덮고 관으로 그 기체를 빼내어 노즐에 연결을 해서 그래서 토치처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불을 붙이면 상당히 강한 불꽃이 나오고 그것을 가지고 이제 산소용접을 했습니다. 커다란 쇠를 자를 때 그 용접기를 갖다 대고 한참을 기다리면 이제 쇠가 벌겋게 달아오기 시작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그 물이 뚝뚝 흐르면서 그 커다란 쇠가 시간은 걸리지만 잘라집니다.
지도자가 끝까지 자기의 소임을 이루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약점은 오래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중에 그만 두거나 자기 하던 일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오래 참는 것이야 말로 지도자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지도자의 크기는 정신의 크기이지 육체의 크기가 아닙니다. 정신의 크기는 처음부터 큰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그 정신의 크기가 넓어지고 커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오늘 인내라고 말합니다. 늘 쓰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 쓰던 근육을 한번 써보려고 용을 써 보십시오 그러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픕니다. 평소에 사용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통을 인내하는 고통을 통해서 지도자의 정신의 크기가 커져가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절대 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맨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에는 기쁨으로 영접하고 그리고 좋아했지만 이제 사도바울이 복음을 가르쳐서 그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할 때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 교훈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내가 사도인데 사도인 증거가 있다. 그러면서 언급한 것이 바로 오래 참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 참을 수 있었겠느냐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래 견뎌야 됩니다. 참는다고 하는 것은 그냥 상황을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기도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 라고 해서 정신을 비우고 아무 생각안하는 것이 기도일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졸지 말아야 된다고 라고 얘기해서 잠들지 않는 것이 예배의 목표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것이고 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신체의 조건과 상태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겠다 라고 하는 흡입력의 의지가 있어야 됩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똑같이 참는다 라고 할 때에는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견디고 흔들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수단일 뿐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말하자면 어려움과 시련이 와도 자기의 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인내한다 라고 하는 것은 속수무책으로 그냥 쏟아지는 폭풍을 당하면서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것은 당하는 것이지 인내가 아닙니다. 인내라고 하는 것은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해나갈 일을 해가면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시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몇 번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 기회를 하나님이 주실 때 오래참고 견디지 않으면 아주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우리가 불쌍하게 여겨야 할 사람들 중에 하나가 사역을 하면서 마음에 원망과 그리고 불평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참는 것 아닙니다. 참는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참게 하는 뿌리가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사랑은 오래참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사실은 언제나 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속성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속성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물은 높은데서 낮은곳으로 영원히 흐른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물은 흐른다 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정신의 크기가 큰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들은 뒤짚어 질 정도로 괴로운 일이라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콩 튀듯 팥 튀듯 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주절거리고 불평을 털어놓고 수다를 떨었었겠지만 지도자는 눈을 감고 고요히 묵상하면서 그것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자갈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을 확 쏟으면 흙 밭에는 흙탕물이 일어나지만 자갈밭은 몇 바케스의 물을 쏟아 부어도 흔적도 남지 않고 자갈 속으로 스며듭니다. 그렇게 참아야 합니다. 종종 혈기방자한 지도자들을 봅니다. 정신의 크기가 그만큼 안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인내할 때에는 그래도 하나님의 일 하려면 참아야지 하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사용하셔서 우리는 일을 잘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일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새사람 되게 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지도자들로서 항상 착각하기 쉬운 것이 무엇이냐면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도자 자신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통해서 일을 행하실 뿐만 아니라 일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하기 전에 그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만들어가십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듯이 일하는 태도는 그 사람을 결정합니다. 여러분들이 어제도 잠깐 저의 지적을 받았습니다만 일을 하면서 심사숙고해서 일을 하고 일을 한 후에는 꼼꼼하게 분석을 하고 평가를 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 그런 일의 방식이 그 사람을 신중하고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을 할 때에 생각 없이 일을 하고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되는대로 일을 해 나가면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일은 오래해도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결국은 일의 측면에서 보면 일을 오래한 사람은 경험이 많고 그래서 숙련되어 있어서 그 일을 잘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 하고 있는 일은 이렇게 단순하게 인형눈깔 붙이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고도의 일이기 때문에 오래한 사람이 목회를 모두 잘 하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을 그저 되는대로 생각 없이 그저 쭉 해나가면 그러면 그 사람이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언젠가 우리 직원하나를 불러서 일을 아주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따끔하게 혼을 내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니가 평소에 가장 잘쓰는 표현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생각 없이 라는 단어가 네가 제일 많이 쓰는 단어이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전화를 받았거든요 넌 아무 생각 없다는 이야기를 왜 그렇게 하루에도 수 십번씩 쓰느냐 말이 씨가 된다고 그 말이 너를 만든다. 생각이 늘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하는 방식이 사람을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사람이 열정적이면 일하는 것이 열렬합니다.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해도 왜 안 되느냐고 해보지도 않고 왜 안 되느냐고 말합니다. 일하는 태도는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를 보여주고 일하는 태도는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래 참아야 합니다. 견뎌야 합니다. 칼빈의 설교와 기독교강요를 읽으면서 또 논문을 몇편 읽으면서 아주 깊이 은혜 받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칼빈의 주권사상은 견딤의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의 인생 중에 일어났어도 설령 그것이 자기가 지은 잘못 때문에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할지라고 인간은 묵묵히 그것을 견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그리고 묵묵히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도 목회가 결혼과 똑같습니다. 결혼을 위해서는 세 가지 반지를 껴야 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엔게이지먼트 링입니다. 약혼반지입니다. 그 다음에 결혼식장에서 끼는 웨딩 링. 두 번째 반지입니다. 마지막의 반지는 서퍼링입니다. 고난입니다. 목회도 똑같습니다. 부임할 때 꽃다발 받습니다. 위임목사 될 때 꽃다발 받습니다. 마지막에 고난의 꽃다발입니다. 오래참고 견뎌야합니다. 어저께도 내년에 집회를 해달라고 어느 후배가 그렇게 애원을 합니다. 그래서 간다고 했더니 문자가 왔습니다. 남준형님 아무래도 내년집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사임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나이 50인데 사임해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았다 그랬는데 그렇게 목회가 어렵습니다. 무조건 참아야 합니다.
(예화) 화종부 목사가 제자들교회 갔는데 죽을 뻔 했습니다. 한 6년 동안. 화목사가 낭만적입니다. 낭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새 목사가 부임하니까 부교역자들이 다 사표를 냈습니다. 기본이지 않습니까 저는 낭만이 별로 없습니다. 싹 정리하고 다시 가서 교역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면담해서 세울 사람은 세우고 보낼 사람은 내보내고 그렇게 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이 뭘 그렇게 그만 두냐고 그냥 주님 섬기시자고 끌어 앉았는데 그거 한번 결정하고 6년 동안 불같은 고생을 한 것입니다. 결국은 부목사가 교회를 찢어서 나갈려고 그래가지고 저한테 고민하길래 야 그러지말고 그냥 왕창 해줘서 교인들을 떼어내줘서 교회개척을 하게해라 그래서 교인100명을 떼주었습니다. 돈도 몇억해주고. 그러면 이제 그때까지 그냥 그렇게 괴로움을 당한것입니다. 견디다 견디다 힘드니까 정근도 목사님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 교회 왔는데 정말 죽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랬더니 정목사님이 버티십시오 당신은 단포리교회하다가 그 교회 내려가셨는데 만나서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외로울수가 없더랍니다. 장로가 24명이었는데 한명도 자기설교에 은혜를 받는사람이 없더랍니다. 24명중에. 그런데 중대한 실수를 하셨습니다. 장로님들과 화기애애한 이런 수련회 비슷한 시간이 되었는데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장로님 제 설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고 목사님 설교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도 말씀해보십시오. 이게 실수였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자기 설교를 완전히 초토화 시켰습니다. 앞으로도 그런것은 하지마십시오. 그리고 다른 교회가서도 솔직히 말해보라 그런거 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거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결국은 그 교회에서 끝까지 견디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번에 총회장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견디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심정을 다 아니까 버티십시오 그랬습니다. 저는 충고도 해주고 그랬지만 버텨야합니다. 이게 나의 운명이려니 이렇게 하면서 견뎌야 합니다.
언젠가 한번 교회에 여러 가지 시험이 있고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돌고 저의 목회사역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진짜로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그리고 뭐 아시다시피 교회에서 특별히 대우 받는 것도 없었고 그냥 내가 왜 이러고 있나 그만 두고 싶다. 진지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큰 교회가 아니었다. 진짜로 작은 교회 목회하면서 내가 살려고했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러다가 기도하면서 주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그때 내가 본격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 이제 공부하고 이러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할 수 없이 선을 이루어주셨는데 그때 생각을 가만히 하면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 다루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 안에 참지 못하는 모든 마음은 내가 중심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익과 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못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인내해야합니다. 그 인내는 이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인내여야 하냐면은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인내여야 합니다. 나의 시대와 나의 모든 인생이 주님의 손에 매달려 있다 라고 하는 그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그때 아주 깊이 깨달았습니다.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그래서 진짜 주님의 손에 달려있을 뿐이구나 그리고 시편을 탁 열어보니까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도망을 가면서 시를 쓰지 않습니까 시편2편입니다. 주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내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주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내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임금이 죄인은 머리를 들라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냐면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입니다. 사형시킬 사람에게 죄인은 머리를 들라 김금성 머리를 들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목을 벨 사람은 결코 임금이 죄인은 고개를 들라 그러지 않습니다. 주는 내 방패 내 영광 내 머리를 드시는 자시니이다. 열린공간 앞에서 그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날 아침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참 가장 시련이 넘치던 그 몇 달 동안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시편 31편에서 원수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저를 구설의 다툼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아주 생생하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매일매일 천국을 걸어다니는 것 같은 그런 환희 속에서 지냈습니다. 매주 기도원에 올라가고 밤이면은 대공원을 산책하면서 밤하늘을 보면서 정말 평화롭고 목회가 잘 나갈 때에도 누리지 못했던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면 아 하나님은 우리가 참되 이를 악물고 원한의 쓴 물을 삼키면서 참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참으라고 그러시는구나 그러면서 깊이 느끼면서 그때 나온 작품들이 자기 깨어짐,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그런 것들이 그때 쏟아져 나온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에 복종하고 그래서 나를 하나님이 여기 세우셨다 그래서 온전히 복종하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주권에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기술이 무엇이냐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자기가 아무리 잘 참아도 그냥 고난을 참고 있으면 마음에 병이 됩니다. 대게 우울증 걸리는 사람들이 아주 응집력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잘 개방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립니다. 푼수 딴지 같은 사람들은 절대 우울증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다스러운 사람들 절대 우울증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당할 때 제일 훌륭한 기술이 무엇이냐면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그렇게 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 놀라우신 것이 무엇이냐면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서는 돈 때문에 그렇게 연단하시다가 뭐 먹고 살게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이제 합격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물질적인 어려움은 없어졌습니다. 그다음에 인간관계의 어려움 불같은 시련을 당하면서 좀 견뎠냐 했더니 그 다음에는 또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 계속 당하게 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시련을 당하다가 죽는 것이 사역자들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매일 묵상하면서 인내해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 저는 헌신보다도 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신은 헌신이고 참는 것은 참는 것인데 일순간의 헌신보다는 변함없이 오래 참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훨씬 더 큰 증거입니다. 그래서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당해도 마음에 억울하다는 생각을 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노예는 그런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들이 종이라고 불러주면 좋아하지만 종이라고 취급해주면 발끈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그것은 형식상으로 불러주는 것이지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노예이다. 노예는 마음에 억울한 것 그런 것 있으면 노예가 아닙니다. 그런 것 없어야 합니다. 그냥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깨끗한 그릇이라도 유리그릇처럼 잘 깨어질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큰 일에 쓰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것만 담아도 깨지고 무거운 것만 담아도 깨지고 그러면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참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말도 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도 이기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정신의 크기가 점점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숨을 들여마셔 보십시오 많이 들여마시면 폐가 튿어지는 소리가 나고 이게 가슴이 뻑뻑해질 정도로 크기가 늘어납니다. 늘어나는 그 순간 고통스럽습니다. 똑같습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힘들면 우십시오. 그리고 힘들면 기도하시고 힘들면 하나님 앞에 도와달라고 하고 그렇게 사셔야 합니다. 원한을 품거나 아니면 이런 길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피할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냥 묵묵히 참고 인내하고 그 인내의 동기가 사랑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스펄젼이 그런 말을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죽도록 일하십시오 그러다가 진짜 죽을 때가 되면 살려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지 않는 이유는 죽을 때까지 우리가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일하십시오 막상 죽을 것 같으면 살려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살려주시면 또 죽을 것처럼 일하십시오 그게 바로 노예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래 참으십시오 그리고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사람에게 앙심을 품거나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역에 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마음에 품고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해 나가도록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래 참고 또 이기고 잘 견디고 그렇게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형상을 빚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도자가 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고통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더 큰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그래서 그 큰 정신의 크기로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고 우리의 길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