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수련회 3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1-5)
녹취자: 강민서
목회자로서 한 사람이 목회하는 교회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의 표현입니다. 한 목회자의 사람됨은 목회의 현장을 넘어설 수도 없고 또 사람됨을 넘어서는 목회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장기적으로 보면 목회자의 모든 수준과 그다음에 목회의 현장은 일치를 이룬다고 합니다. 사람이 게으르고 나태하면 목회의 현장도 부패하고 사람이 열렬하고 치열하면 자기가 말씀사역을 통해 생겨나게 된 많은 성도들도 그렇게 치열하게 살려고 하고 믿으려고 합니다. 목회자가 기도가 인격의 특징이 되면 성도들도 기도가 많고 구령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성도들은 주님께 받은 은혜를 구령사업에 많이 쓰려고 합니다. 결국은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목회를 형성해 가는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지도자로 일하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의 복음을 믿어도 그 모양새나 신앙의 칼라들이 아주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에베소교회를 보면 사실 주님께로부터 책망을 아주 크게 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좋은 점들이 묻힙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누군가가 이런 교회를 목회하고 있다면 아마 존경을 한 몸에 받을 겁니다. 이 교회는 행위와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말만 많고 사람들은 별로 행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행위가 있고 더욱이 주님을 위해서 많은 교인들이 수고하는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련과 고난을 잘 참는 인내가 있는 교회였고 도덕적으로 순결해서 악한 자들을 도무지 용납하지 않고 영적인 분별력과 말씀에 지혜가 있어서 사도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사도가 아닌 것을 밝혀낼 수 있을 정도의 그런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부다 과거에 빛나는 이력이었고 한 가지를 잃어 버렸는데 그게 바로 사랑을 잃어버린 겁니다.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도행전 19장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고 영적인 세계의 실제에 대해서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마술하는 책들을 불태우면서 복음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을 위한 유일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복음의 큰 부흥이 일어났던 교회였습니다. 그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스럽던 모든 것들은 과거의 흔적이 되었고 빛바랜 기억이 되었던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모든 성도들에게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베드로를 부르셨을 때에도 세 번 반복해서 물어보신 것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목회자들을 만나도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인격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인격이 느껴지는 사람 그리고 그것이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지도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 사랑에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목회사역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마음이 목회사역에 있어서 너무 너무 중요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종 우리는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목회사역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은 식고 일만 남은 사람들을 봅니다. 개혁신앙을 좋아하고 청교도를 좋아해도 마음에 당회를 향한 깊은 원망이나 교회를 향한 섭섭함 들이 마음 깊이 배어서 어떤 식으로든지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 목회자들을 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만 교회를 하면서 실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실망한다는 것은 기대를 너무 거는데 사람한테 무슨 기대를 그렇게 거십니까? 나는 열린 교회 목회하면서 교인들에게 별로 실망한 적 없습니다. 기대한 적도 없기 때문에 별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로를 하나님의 기쁨에 위로를 두어야지 사람들 속에서 인정받고 칭찬받고 하는 것에 마음을 많이 빼앗겨서 어디가든지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하는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하면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위로를 얻고 거기서 기쁨을 얻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인은 사랑받아야할 대상이지 사랑해야할 대상일 뿐이지 우리가 기대하고 그 다음에 어떤 대상으로 우리가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는 여러분들이 교회를 해 나가면서 목회자들은 양떼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표현을 쓰면 안됩니다. 그건 처음부터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인내하고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오늘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들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을 하는데 결국 상처라는 것도 뒤집어 보면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알고 자기사랑에 집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처의 원인 아닙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한번 그렇게 마음이 찌그러지고 나면 목회사역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상처를 받은 적이 많은데 사랑을 하는 사람을 상처받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외로운 사람이 있지만 사랑하고 있는 사람만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나으니라” 하신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또 사랑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하면서 지도자가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소인들은 소인배 같은 지도자는 각각 편을 가르고, 그리고 대인과 같은 지도자는 사람들을 모아서 생각이 좀 달라도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정신의 크기 마음의 크기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사랑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더 큰 크기가 되고 그리고 작게 되는 것입니다. 종종 나와는 생각이 달라도 그것들을 깊이 용납하면서 그러면서 그들도 하나님께서 쓰임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하고 협력하고 자기 보다는 남을 낫게 여기고 그를 높이는 이런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말씀 중심의 교회를 하고 개혁주의 중심의 목회를 한다고 하면 할 수 록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른지에 대해서만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서는 목회에 충분한 영향을 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에드워즈의 신학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아마 이십년쯤 여러분들이 후에 목회를 하게 되는 때에는 에드워즈는 전 세계적으로 훨씬 더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그 이유 중 하나가 에드워즈의 신학은 뚜렷한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면서도 모든 사상과 신학들을 자기의 품에 끌어들여서 녹여내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화란 개혁주의자들에게 에드워즈 신학이 가치 평가 절하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랬기 때문에 화란신학은 오늘 잊혀 졌어도 오히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적응성을 가지고 특히 제 3세계에서 널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그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포괄 하면서도 쉽게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신학함, 그런 목회가 절실하게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사랑을 유지해야 됩니다. 한편으로는 성화를 통해서 자신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성향으로 살아가고 또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서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각각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지도자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라고 느낄 때에는 그 느낌이 논리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고 그를 돕고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에 참여할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정신의 크기이고 그 크기는 곧 서로 다른 것을 용납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녹여서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그런 정신의 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갈 때 사실은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의 성향과는 다르게 사랑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도 우리들이 종종 범하게 되는 오류는 자기의 성향에 맞고 그 다음에 꼭 자신에게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성향에 맞고 말을 잘 듣고 그다음에 잘 따르는 사람들 하고는 아주 깊은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그렇게 잘 따라주지 않는 사람하고는 거의 관계를 맺지 못하는 그런 목회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본인의 기질과 성향도 있겠지마는 정말 하나님을 섬기려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목회지가 건강해 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자기를 존경하고 잘 따르는 사람과 세 시간 있는 것이 그렇지 않는 사람하고 삼십분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사실 우리 좋은 대로 사랑을 받으려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도구가 되어서 주님의 그런 사랑과 진리를 전달해 주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 잘 통하고 이러는 사람하고 만나고 모이는 것을 절제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 시간을 가져주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해서 그렇게 자기 성향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모여 다니고 하게 되면 반드시 목회지가 병들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목회자의 사랑은 종종 아버지의 사랑과 같아서 많이 사랑해도 표현하지 말고 감추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깊이 조심하면서 우리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좋고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시간을 보내면서는 자신이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말 자기를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혹은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비로소 자기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매일매일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사람 때문에 만족을 얻는 신앙이어서는 그런 힘이 나올 수가 없고 매일 매일 나 같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은혜의 감격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살아있을 때 그때 그것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고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람 그 자체가 내가 다른 사람을 누림으로써가 아니가 다른 사람이 나를 누리게 함으로서 오히려 그 안에서 만족을 얻고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내려와서 한 말은 강단에서 들은 설교보다 오래가고 인격에서 나오는 향기는 설교의 은혜보다 훨씬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우리가 새로워져 가지 않으면 우리의 사역이 새로워 질수가 없습니다.
한번 여러분들의 사역의 발자취들을 쭉 돌아보십시오. 나는 여러분들이 걸어온 길은 다 모르겠습니다마는 나 자신에 관해 말하자면 항상 말씀이 풍부해지는 때는 내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풍부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때 교인들을 깨닫게 하는 충격적인 메시지들이 나오는 것이지 나는 그냥 있고 사람들만 움직이려고 할 때 그럴 수 있는 무엇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변화 받고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어제보다는 오늘 주님을 더 사랑하는 그런 신앙의 진전이 있을 때에만 우리의 사역이 날마다 새로움을 더할 수 있다 생각됩니다. 새롭게 깨달은 진리는 새롭게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새롭게 사랑하는 것은 옛날에 들었던 말씀인데도 오늘 전해주는 말씀으로 새롭게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주님을 사랑한 추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과 연애하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연애하는 지성 하나님과 연애하는 소명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목회자 그 사람에게서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삶의 방식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 하는 규칙의 방식들이 신앙의 방식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단 하나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목회자들은 날마다 참회의 생활이 있는 목회자들만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는 참회의 생활 안에서 우리들이 주님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될 때 그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심직한 향기로운 제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