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탈진과 회복
녹취자: 김기쁨
I. 들어가는 말
저는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도 생각이 나고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던 삼손이 특별히 생각이 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자 삼손이 홀몸으로 나갑니다. 무기라고는 나귀의 턱뼈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춤추듯 휘둘러서 1000명의 블레셋 군사를 때려 죽였습니다. 그러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막상 블레셋 군대를 다 죽이고 나서는 하는 말이 “여호와여 내가 이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죽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의 모든 힘이 기진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터트린 샘이 ‘엔학고레’의 샘입니다. 그 샘에서 물을 먹고 삼손이 기운을 차리게 됩니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에 눈물이 꽉 찬 것이라 생각합니다. 씩씩해 보이고 전투적이고 능력 있는 목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 보기에 그런 것이고 실제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목회자는 모든 연약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다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주님을 위해 사명을 주셨지만 권력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II. 나의 교회 개척 초기
A. 영혼의 침체와 극복
저는 39살에 열린교회를 개척했고 34살에 신학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유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른 시절에 신학 대학의 교수로 들어갔고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우쳐주셨습니다. 39살 12월에 개척할 즈음에는 제법 설교에 자신이 있었고, 제가 설교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은혜를 받고 심지어 졸도를 하는 경험도 여러 번 했습니다. 교회를 시작할 때 ‘나는 목회를 위해 하나님이 잘 준비하신 사람이다. 일 년 하면 300명이야 안 모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강의를 나가면서 동네에 있는 지하실을 하나 얻었습니다. 교인이 없으니까 제가 학교에서 주택자금 빌린 것을 갚으려고 붇고 있던 적금을 깨트려서 1500만원에 60만원짜리 지하실 월세를 얻었습니다. 공교롭게 그 교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연거푸 두 번 교회가 하다가 문을 닫고 나간 자리입니다. 그래서 밤이면 학교에서 돌아가서 페인트칠을 하고 아내와 함께 벽지를 바르고 하면서 개척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함께 하겠다고 뜻을 같이 한 사람이 저 빼놓고 7명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300명이야 안 모이랴.’
1년 뒤에 학교는 학교대로 고생을 하고 교회는 토할 것 같으면서도 새벽기도도 나오고 죽도록 설교를 했는데 1년 뒤에 60명 모였습니다. 그리고 초라한 성적표를 놓고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정말 이해 안되는 것입니다. 12월 12일 날 교회를 개척했는데 7명이 주일예배를 7명은 아니었지만 7명이 교인이 되어서 예배를 드렸는데 1월 중순에 35명이 평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면 일 년 뒤에 300명이 모여야 되지 않습니까? 안 모이는 것입니다. ‘예배에 은혜가 없었냐?’ 주일 예배시간마다 사람들이 눈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등록과 십일조 두 개는 두 가지는 안 합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그때 저는 목회를 하고 처음으로 영적인 침체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저는 성품이 게으른 것을 너무 싫어해서 6시간 이상 자면 죄라고 생각하고 새벽기도 한 번 안 빠지고 사력을 다해서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안 될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없고 교수의 지위도 내일이라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은 얼마 안 되지만 이 집도 주님께 드렸고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데 안 되는 것일까?’ 그리고 낙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몸에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큰 병은 아닌데 지독하게 독감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침대에 이불을 하나 등에 대고 편안하게 기대서 숨을 가다듬으며 쉬고 있었습니다.
B. 말씀으로 소생시키심
그런데 불현듯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심란해서 침대에 기댔습니다. 방배동에 작은 빌라였는데 옆에는 숲이 있었습니다. 그 집도 결국 건축헌금에 썼습니다. 마음에 한없이 비가 돼서 마음에 눈물이 흐르는데 불현 듯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얘야 너는 왜 그렇게 낙심해 있니? 나의 종 존 오웬의 책을 읽어보아라.”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존 오웬이라고 하는 17세기의 청교도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음성이 들렸다고는 생각 안하고 내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존 오웬이라는 청교도는 17세기 올리버 클롬웰의 혁명치하에 그 군목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의 총장 없는 부총장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분에 관해서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느꼈습니다. KCBS라고 그 당시에는 사랑의 교회에 있는 자리에서 원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거래를 하는데 존 오웬의 전집 16권짜리를 산 적이 있습니다. 책이 들어오니까 좋아서 한 번 휙 넘겨보고 넣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읽어 보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건넛방으로 가서 몇 달 전에 사다놓은 책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6권을 딱 꺼냈습니다.
6권과 7권이 그리스도인의 분투하는 성화의 생활, 죄, 이런 것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정수의 책입니다.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하냐면 여러분이 잘 아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성화에 대한 소위 이야기하는 캐직 사경회의 견해들을 한국 교회에서도 상당히 넓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화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거룩해지려고 하면 안 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 버리면 저절로 성화가 되는 것이다.”라는 관조주의적인 성화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국의 캐직 사경회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성결교, 선교단체를 비롯해서 순복음교회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교회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그러한 성화론을 맹비난 하면서 추천하였던 책이 바로 존 오웬의 책이었습니다. 더 유명한 일화는 여러분이 잘 아는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을 비롯해서 한국 교회의 망독으로서 100여권 이상의 책을 내놓으셨는데 이분이 한 때 옥스퍼드에 다니면서 그런 운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한 다음에 침체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뿌리가 어디인지를 모르겠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두 권의 책을 만나게 됩니다. 청교도의 책이었는데 하나는 존 라일의 『거룩함』(Holiness)이라는 책이고, 또 하나의 책이 존 오웬의 전집 6권, 7권이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깊은 영혼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개혁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성화론, 구원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그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책들이 번역이 되어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번역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400년 전 영어니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영어를 워낙 좋아했으니까 꼬박 앉아서 읽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 5시쯤 까지 깨알같이 메모하면서 15페이지 내지 16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일부러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었구나.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지혜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자들의 영혼을 이런 식으로 다루어 가시는구나.’
성경적으로 볼 때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장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만들 때부터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코로 생기를 불어넣어 영혼을 창조하셔서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인간에게는 보이는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보이는 이것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것은 그 안에 그럴 수밖에 없는 기능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사람을 다룰 때 내면과 외면을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다루지 않고 “십일조를 해라. 교회에 충성해라.” 심지어 “태극기 부대를 따라가라.”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성공하면 바리새주의자들입니다. 실패하면 그나마도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 생애를 시작하면서 하신 가장 긴 설교가 무엇이었습니까? 산상수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십계명으로 시작을 안 하시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바깥에서 보면서 ‘충성하나, 효도하나, 교회를 섬기나, 도둑질하나’ 이것을 보신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속에서 밖으로 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광경입니다. 배로 말하자면 배를 만들어서 바다에 띄워놓고 저 산에서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배 속에서 사진을 찍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토대로 나무를 이해시키시고 그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를 이해시키셔서 신행합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목회의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일격을 맞았습니다. ‘내가 인간에 대해서 무지하게 살았구나. 왜 죄인이 죄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가.’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수시로 잃어버리고 사는 성도들을 매일 매일 봅니다. 3년 전에 예수를 위해서라면 목까지 내어줄 것 같은 사람들이 목회자의 뒤에 칼을 꽂고 떠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옛날의 은혜는 거짓이었을까?’ 이런 많은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20여 년동안 거의 한 주도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만 거의 매주 존 오웬을 손에 놓은 적이 없었고 한 5년 동안은 거의 모든 책을 치우고 존 오웬에 매달렸습니다. 위대한 영적인 거인에게서 신앙의 유산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번 들어가서 보시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또 반대의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아 이거 정말 재미없구나. 정말 지루하구나.’ 하고 발로 차버릴 수도 있습니다.
II. 그 후의 목회 사역
A. 영혼의 침체와 극복
최근에도 은퇴하신 목사님이 저에게 와서 이야기 했습니다. 목회를 그만두고서야 존 오웬에 빠져서 영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을 6번을 읽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목회를 할 때 그런 은혜를 받으면 설교가 얼마나 변하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탈진까지는 아니었지만 목회하면서 맛본 최초의 침체였습니다.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하면서 저는 목회자가 침체에 빠지지 않는 비결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침체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씩만 이야기해 보세요. 뭘 해야 되겠습니까? (죽어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죽어서 해야 되는데 매일 죽어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집에서도 그렇게 안 살지 않습니까? 뭘 해야 되겠습니까?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죽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성경 읽어야 된다. 먼저 전도해야 한다. 이게 다 그냥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침체에 깊이 빠지면 이것 자체가 하기가 싫습니다.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시험에 든 교인들을 다루기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줄 세워놓고 처방전 하나 써주면 되지 않습니까? “성경 읽으십시오. 주기도문 외우십시오. 전도하러 나오십시오. 성가대하고 밥을 하십시오.” 그렇게 고쳐지면 목회가 공장이지요. 그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하나님, 내가 영적인 침체에 빠졌나이다. 탈진하게 되었나이다. 주여” 하고 눈물을 흘리면 그것은 탈진이 아닙니다. 탈진은 그것조차 할 기분이 없을 때를 탈진이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탈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왜 이러지? 병원에 가봐야 되겠네.’ 그러고 빨리 외투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병원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것은 탈진 아닙니다. 탈진하면 삶의 의욕까지 꺾이게 됩니다.
제가 건강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픈 것은 모두 정신의 문제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나쁜 담임목사였는지 아십니까? 새벽기도 한 번 안 빠지고 늘 주일에 설교하고 월요일에 일하러 나옵니다. 부목사들 몇 명이 안 보이면 설교 끝나고 방송실에 전화해서 아무개 목사에게 한 번 전화해보라 했습니다. 아파서 못 나온다고 하면 “전화 받어?” “네.” “살았네. 나오라 그래.” 그러면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나오네. 아파서 못 나온다면서. 늦게 일어나니까 아팠던 거야? 아파서 늦게 일어난 거야?” “저 노인네들 봐라 아파도 걸어오다 건널목에서 쓰러져야지. 하나님 얼마나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제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는데 2014년에 제가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40대에서 50대 초반까지 소원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얀 시트위에 힘없이 누워서 성도들의 꽃다발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링거 한 번 맞아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 이후 10년 동안 11번을 입원하고 9번을 수술했습니다. 이제는 매일 오래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또 한 편으로는 내가 그렇게 살았더라면 과로사로 금방 죽었을 텐데 골골거리면서 오래 살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합니다. 한 번에 체중을 18kg을 잃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숟가락이라는 물건이 그렇게 무거운 줄 처음 알았습니다. 숟가락이 무거워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먹다가 내려놓고 다시 팔의 힘을 축적해서 다시 들고 먹었습니다. 그래서 숟가락 들 힘이 굉장히 큰 힘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24년을 목회했는데 한 번도 안식년을 갖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최초로 6개월을 갔습니다. 물론 그 전에 2주씩 3주씩 간 적은 있었지만 6개월을 쉬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데 제가 그렇게 쉬는 것을 미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쉬셔야 합니다. 쉬는 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안 쉴 때 하나님과 교인들 보기에 자기를 다 쏟아 부으면서 노동을 해야 합니다. 맨날 이렇게 하다가 쉬러 간다 그러면 교인들이 평소에도 쉬시는데 뭘 또 쉬시냐고 그냥 푹 쉬시라고 합니다. 연세도 어느 정도 드셨는데 꼭 쉬시고 싶으시면 일 년 전부터 계획을 짜서 심방도 더 하고 기도도 더 하고 열렬히 하신 후에 난 3개월 혹은 6개월 그것도 허락이 안 되면 2개월이라도 쉬십시오. 돌아보지 마십시오. 장로님에게 설교를 맡기거나 전도사들에게 맡기더라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서 쉬십시오. 그리고 젊은 후배 목사들 보면 그 틈을 이용해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보짓입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하라고 할 때는 열심히 안하다가 목회를 하려니까 왜 가방을 들고 나간다고 합니까? 저는 못 쉴 줄 알았습니다. “여보, 나 장로님들이 일년 쉬라는데 10개월 만 쉬어야 될까봐.”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 하는 이야기가 “교회는 어떻게 견디겠지. 부목사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데 당신이 교회에 안 오고 배기겠어?” 저는 진짜 그랬습니다. 못 떠날 것 같았습니다. 한 달은 교회가 가고 싶더니 두 달부터는 일 년 쉰다고 할 걸 괜히 6개월이라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장로님들께 일 년에 한 달은 쉬어야 되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받아줬습니다. 꼭 쉬십시오. 그래야 삽니다.
미국에서 통계가 나왔습니다. 65세에 사역에서 물러나는 목사님들 중에 65-70%가 안식년을 안 간 사람들입니다. 롱런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얻은 후유증 중 하나는 잠을 잘 못자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동료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힘든 일을 이야기 할 때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 ‘어떻게 교회에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저 목사는 약간 거짓말을 보탠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엊그제는 선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자기가 주일날 설교를 하는데 집사가 일어나서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후에 그 집사는 기차에 치여서 죽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그런 일은 안 당했습니다. 단 한명도 와서 “김 목사님 똑바로 하시오.” 한 적은 없습니다. 제 목회 24년 중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뒤에서는 조용했을까요? 그런 세상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목회하실 때도 안 그랬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목회자를 부르실 때 그 목회자의 깜냥을 알아보시고 거기에 합당하게 고난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볼 때 어느 목회자가 참 부럽고 ‘어떻게 저럴까?’ 그래도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찬양)
뉘게나 있는 고난 내게도 있도다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지금으로부터 한 12년 전이었습니다. 교회에 꽤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깊은 시련이 왔고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교회를 흔들어 놓을 정도의 풍랑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한 50-60명 정도가 흔들릴 정도의 일이었을까? 그랬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도 있고 저의 잘못도 있었습니다. 교회의 시험이란 것이 겹쳐지지 않습니까?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때 한 후배가 찾아왔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교회의 마당 나무 그늘 아래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아침에 일찍 찾아왔습니다. “들렀습니다. 선배님” “앉아서 차 한잔 하자.” 그런데 한숨을 계속 쉬면서 말합니다. “선배님은 참 좋으시겠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니까?” “저는 아무래도 목회를 해도 안 되려나 봐요.” “왜 나보고 좋겠다고 그러냐?”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에 후임으로 들어가서 장로들에게 시달리고 얼굴 마담이나 하면서 고통을 받는데 목사님은 개척해서 성도 수천 명을 모았고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장로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목회를 한다니 부럽습니다.” 물론 내가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한 손에 쥐고 흔들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책도 많이 쓰시고, 뭐도 어떻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이 보게. 자네는 청교도를 공부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밖에 생각을 못 하나? 내가 하나만 이야기 해줄까? 자네가 내 자리에 오면 한 달 안에 사표를 낼 것이다. 십자가를 안 주신 사랑, 꽃길만 걷는 목회는 없다. 만약에 누가 그런 길을 계속 간다면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한 번 회상해봐라. 꽃길만 걸어가면서 목회를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칼빈도 그 아내 이델레트가 죽었을 때 사랑하는 부인의 손을 잡고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요약하면 당신은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길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이렇게 목회를 하면 보람도 있고 나같이 지푸라기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사람들을 회심시키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이루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 사랑에 매여살게 만드는 것이 다 하나님 주신 은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호위호식하고 평안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교인 50명일 때는 고생을 했는데 수천명 모일 때 평안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당시가 목회하고 한 14년 정도 된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저녁에 눈을 감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때가 많았고 “내일 아침은 이 땅에서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뜨게 해주옵소서.” 기도할 때가 있었습니다. 꼭 목회 때문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죽음의 기운이 들어오게 됩니다. 본래의 생명이 사라지고 인간은 흙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기운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렇게 15년 흘렀습니다. 젊어서는 잠자는 것을 아주 경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굉장히 불효한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초처럼 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원래 잠이 많아서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잠이 그렇게 많아서 이 다음에 뭘 해먹고 살겠니?” 그럴 정도였습니다.
회심한 이후는 분투하면서 자신과 더불어 싸우며 살았습니다. 최근까지 낮에 침대에 눕는다는 일은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거의 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약을 복용한지가 벌써 3-4년이 넘었습니다. 너무 수면의 질이 나빠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면 샤워를 하고 몸에 수십 개의 전극을 붙입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폐, 심지어 발목까지 꽂아놓으면 저쪽에서 컴퓨터에 그래프가 나옵니다. 그리고는 누워서 잠을 청해보는 것입니다. 잠이 올 리가 없습니다. 잠이 안 오니까 약을 줍니다. 약을 먹고 깨다 자다 깨다 자다 하면서 잤는데 그날 총 수면시간이 3시간 20분밖에 안 됐습니다. 의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정말 나를 붙드셨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통사람이 스트레스에 대해 민감한 정도가 1에서 4정도라고 합니다. 평균 2정도가 정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뭔가 거슬리는 게 10.8이라고 합니니다. 다른 사람의 5배 내지 5배반이 민감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수치가 나왔습니다. 스트레스가 오면 사람들이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을 저항력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오면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정도가 평균 400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100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술도 안 먹고 정신과 치료도 안 받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달걀껍질 같은 정신으로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느 날 어느 잡지사에서 설교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 그랬습니다. “제 설교가 한국 교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겠지만 설교는 나에게 영원한 이국의 언어고 목회는 죽을 때까지 내가 원하지 않는 가슴앓이입니다.”
(찬양)
우리를 사랑하신 자비의 주 아버지
주께로 나아갈 때에 기도 들으사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저는 취미도 없습니다. 특기도 없습니다. 등산이나 여행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여행, 낚시, 골프, 탁구,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나는 이미 틀렸지만 그런 여가를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유리그릇처럼 약하고 달걀껍질 같은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내가 감내할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어보지 않았지만 제가 쓴 책이 한 80권정도 될 텐데 그중에서 삼분의 일 이상 되는 주제들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깨지는가 하는 내용들입니다.
B. 내가 만난 스승들
처음의 침체에 빠졌을 때로부터 11년 정도 지난 때의 일이었습니다. 온 교회가 내 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한 번도 누가 공식석상에서나 안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그런 일이 구석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던 차에 제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였습니다. 같은 자세로 앉아서 책을 보다가 허리가 망가졌습니다. 치료를 안 받고 10여년의 세월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 서재에서 책을 찾다가 쓰러져서 못 일어났습니다. 들것에 실려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우연히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병원에 가져왔습니다. 고백록을 20대에 한 번 읽었고 신대원 다닐 때 한 번 본 기억이 납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6만권입니다. 6만권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책을 가까이 하고 좋아합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천재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니까 해당되지 않고, 조나단 에드워즈의 25권 이상 되는 책을 20년 동안 다 읽었고 칼빈도 그랬지만 아주 훌륭하고 탁월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허리도 못 움직이는 상태로 누워서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줄을 치면서 책을 읽다가 한 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이 내가 책을 통해 발견한 첫 번째 천재입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못 움직이는 상태에서 곧바로 어거스틴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중적으로 공부한 게 아마 3-5년 정도 될 것입니다. 교회 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저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찬양)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그의 신학과 철학은 이 세상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그의 학생이 되어서 제가 설교하고 말하는 대부분의 것은 그 위대한 사람들을 통해 풀어낸 것들입니다. 그 때 저는 깊이 심취하면서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120회독을 했습니다. 한참 읽을 때는 눈 감고 거의 한 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것이 가져다 준 위로와 기쁨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IV. 적용과 결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쉬고 잘 먹고 건강을 관리하고 취미 생활을 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힘들더라도 늘 기도하고 은혜로운 목사들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다 영적 탈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위대한 출구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는 지식의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금강산이나 알프스에서 온 기가 막힌 생수를 먹고 ‘아, 정말 다르구나.’ 하고 느낀 사람들이 수돗물이나 구정물을 먹겠냐는 것입니다. 그런 나는 그런 비유를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을 때 나를 찾아와서 밥 사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교인들과 잘 만나지 않습니다. 명분이 있으면 만나지만 명분이 없으면 안 만납니다. 우리는 선지자의 후예입니다. 사랑하고 겸손하지만 어울려 다니면서 동아리처럼 밥 먹고 탁구 치러 다니고 등산하러 다니면 못 가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세계와 영광을 경험하면 한쪽에서는 시험이 들지만 나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말씀드렸지만 잘한 것은 이야기 했고 부끄러운 것은 감췄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이셨으니까 말입니다. 제가 강의를 끝내면서 여러분의 가슴에 한 줄 남겨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사람이지 주님이 놓으시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찬양)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