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영적침체와 회복
녹취자 : 오희열
솔직히 말해서 의사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목회자가 영적 침체를 겪지 않는다면 거짓말 아니겠습니까?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삼손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그는 단신으로 블레셋을 맞서 싸웠습니다. 변변한 무기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나귀의 턱뼈가 하나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1천명을 죽였다고 하니까 아마도 신들린 듯 춤을 추듯 해서 1천 명을 죽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한 번을 맞고 죽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쓰러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덤벼들고, 덤벼들고 했으니 사실은 그가 정말 춤추듯이 싸우면서 1천 명의 군대를 이겼습니다. 그 다음 고백이 우리 목회자들의 영적 침체를 생각나게 합니다.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삿 15:18) 1천 명을 때려 죽였지만 이제는 어린 군사 한 사람이 와서 창으로 찔러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샘을 터뜨리십니다. 그것이 “엔학고레”, 히브리말로 “그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그 샘물을 먹고 소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위대한 사람도 침체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 침체의 해결은 하나님이 생수를 터뜨리시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주실 때 우리는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39세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고 34세에 예기치 않게 신학대학에 교수가 되었고 신학교에서 살았습니다. 첫 학교에서 4년을 있었는데 그 4년 동안에 흘린 눈물이 열린교회에서 20년 목회할 동안에 흘린 눈물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기르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처음 두 해는 학교에 교수로 있으면서 개척교회를 했습니다. 그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1년 열심히 설교하고 전도하면 300명은 모이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정말 주님을 깊이 만나고 마음이 불타던 때였는지, 매 예배 시간마다 교인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12월 12일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1월 둘째 주에 35명이 모였습니다. 처음에 개척할 때는 저를 빼고 일곱 명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35명이 모였으니 1년을 열심히 하면 12월에는 300명이 되지 않겠는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때는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하도 울어서 설교를 할 수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쾅쾅쾅!) “울지 마십시오. 우는 것은 삶으로 설교하고 저는 제 설교를 다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그렇게 와서 은혜를 받는데 두 가지는 하지 않습니다. 헌금과 등록, 이 두 가지는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의 교인들이 와서 그렇게 은혜를 받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신도 때나 목회자 때나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그냥 갔습니다. 그런데 교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목회를 했는데 교인이 60명이 모였습니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제가 학교에 매여 있기도 했지만 제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봄이었던 때로 기억을 하는데, 너무 지쳐서 소위 말하는 burn out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일도 너무 많았고 그러다가 몸살이 났습니다. 3일 동안을 지독하게 앓았습니다. 그때 저의 집은 산 아래에 있는 빌라였는데 거기 앉아있는 너무 비감해서 마음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저에게 목회를 하라고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신 것이 맞습니까?” 하면서 너무 낙심해서 있을 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넌 왜 그렇게 침체 가운데 있니? 존 오웬이 있지 않니? 가서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 보거라.”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가 1995년 3월경이었는데 그 전 가을에 KCBS 라는 원서를 취급하는 서점에 가서 존 오웬의 열여섯 권짜리 전집을 구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빠서 책꽂이에 넣어두고 열어보지를 못했다가 불현듯 그 생각이 든 것입니다. 당시에는 서재라고까지 할 정도는 못 되었지만 한 3천 권 정도 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서 책을 보았습니다. 존 오웬의 전집 중에서 제 6권입니다. “True and False Religion” 이 책이 제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것은 제임스 패커의 책을 읽으면서였습니다. 그의 책을 읽다가 존 라일에 대해 추천서를 쓴 것이 있는데 제임스 패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도 옥스포드 출신이었는데 대학에 다니다가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어느 한계에 가니까 도저히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자꾸 침체 속으로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구원받은 자신의 삶이 왜 그런지 진지하게 물었더니 선배들의 이야기가, “그것은 네가 스스로 가책을 받는 것이고 네가 진정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너 자신을 주님께 다 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케직파의 성화관”, 쉽게 말하자면 구원받은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surrender하면 저절로 성화된다는 “관료주의적인 성화관”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개혁주의와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권의 책을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책이 존 라일의 “Holiness”, 『거룩함』, 원래 ‘거룩’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것이 형용사라서 ‘거룩함’이 맞습니다. 어쨌든 이 책과, 두 번째로 이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은 책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6권과 7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6권을 언제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고 하고 있었는데 아주 극도의 침체 속에서 몸도 마음도 기운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 눈물만 계속 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잠옷 바람으로 서가로 걸어가서 그 6권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preface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16권이 어떤 내용인지 개관을 보여주는 첫 번째 커버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손에 쥔 것이 이 책이었습니다.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 라는 존 오웬의 아주 탁월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400년도 더 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존 오웬을 전공한다고 하면 2개 국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어가 17세기의 영어입니다. 어쨌든 제가 이 책을 사모하는 마음이 매우 컸었나봅니다. 그리고 제가 영어를 아주 못하지는 않으니까 침대에 기대어 앉아서 꼬박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냥 휙휙 읽은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읽고 음미하면서 읽고 가장자리에 노트까지 하면서 읽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읽었는데 열다섯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쾅! 하는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유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고 주님도 깊이 만났고 기도도 여느 목회자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동네 산을 늘 올라 다니다가 에베레스트 산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도대체 아는 것이 무엇이었나?” 이 사람도 영혼을 다루는 의사이고 나도 영혼을 다루는 의사인데 비교를 하자면 나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끊는 사람 같았고 이 사람은 아주 엄청난 의학지식을 가지고 세밀한 수술을 하는 외과 집도의 같았습니다.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 라는 60~70페이지 되는 책을 단숨에 읽고 저는 거기서 엄청난 신학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철저한 개혁주의자였습니다. 최근에 여러분이 보신 존 오웬의 책 두 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웨스트민스터의 칼 트루먼 박사가 쓴 것입니다. 칼 트루먼 박사가 존 오웬에 대해서 쓰면서 존 오웬을 정의하기를, “He is a man of Renaissance.”, “르네상스의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여러분이 칼 트루먼의 책을 읽으면서 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읽었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사어가 되어서 사전을 찾아도 단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때가 아니어서 그런 사전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옥스포드 영영사전을 구해서 책꽂이를 꽉 채울 정도로 10권으로 된 것인데 그런 사전을 놓고 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단어 하나가 나오면 10세기, 11, 13, 14, 15, 16, 17, 18, 19, 20세기까지 그 의미가 어떻게 변천하는지를 봐야했습니다. 우리는 17세기 영어를 영문학적으로 공부했지만 본격적인 전문가처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책입니다. 어쨌든 읽고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아! 나는 정말 짐승처럼 살았구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구나! 나는 영혼을 다루기를 의사처럼 다룬 것이 아니라 푸줏간의 고기처럼 다루었구나!’ 하면서 엄청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그 다음부터 결심을 하고 존 오웬의 전권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것은 조금만 읽고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히브리서 주석인데 일곱 권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까지 히브리서 주석을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주석입니다. 모두 해서 4500페이지 정도 됩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Biblical Theology” 라는 책은 한 8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여기서부터 6권, 7권을 먼저 읽고 하나씩 하나씩 씹으면서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아마 한 두 권 정도는 제가 다 못 읽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머지는 거의 다 읽고 메모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얼추 1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학의 틀을 세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존 오웬처럼 생각하고 사색하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열린교회의 부목사이고 우리 담임목사는 존 오웬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분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신학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이분은 거장입니다. 청교도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을 능가하는 사람입니다.
17세기에 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끼리 토론해서 결론이 나지 않자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을 찾아가보자고 했는데 그 사람이 존 오웬 박사였습니다. 그 사람은 당시 복음주의의 신탁이라고 불렸습니다. 한 번을 빼 놓고는 대부분의 논적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엄청난 사람입니다. “Biblical Theology”를 읽으면서 존 오웬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그리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성경역사를 꿰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은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했고 교부들의 전집, 라틴 교부들의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글이 굉장히 조직적이고 약간 건조하기는 하지만 탁월한 논변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6권, 7권을 읽을 때 저는 새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다 읽은 후에도 누구에게 가르치거나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교회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조금 가르치긴 했지만 그것을 자신 속에서 녹여내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그것이 설교로 나온 것입니다. 교회의 목회사역이 정말 풍요로웠고 이분을 통해서 받은 은혜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보물창고를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존 오웬의 책이 번역되었습니다. 그 책을 저희 연구실에서 감수한 적이 있었습니다. 번역을 했는데 원전을 읽는 그 유장한 맛이 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이 2004년도에 출판문화상을 받은 것인데 제가 이 책을 썼습니다. 450페이지정도 되는데 로마서 6장 14절 한 절입니다.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니” 이것이 결국 존 오웬을 읽고 은혜를 받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신학으로 소화해내면서 풀어낸 것입니다. 존 오웬의 6권, 7권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 확실하게 존 오웬에 대한 입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존 오웬의 신학입니다. 25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제가 3일 만에 썼습니다. 지금은 많이 잊혀 졌지만 그 당시에는 존 오웬처럼 생각하고 존 오웬처럼 말하고 존 오웬처럼 학문을 하던 때였기 때문에 제 마음이 존 오웬의 분신처럼 사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개의 주제에 대해서 썼는데 딱 3일 만에 썼습니다. 이 책은 존 오웬의 6권 7권에 대한 개요를 보여줍니다.
소결론을 내리자면, 제가 목회를 하면서 겪은 침체가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침체 속에서 그렇게 침체가 심하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시편에 보면 “내가 눌리나이다”라고 고백을 하듯이 그렇게 눌립니다. 무슨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기도를 해서 뭐가 회복이 되고 그럴 정도라면 엄격한 의미에서 침체는 아닙니다. 손도 까딱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찬양)
주 하나님 능력의 주 내 영혼의 치료자
말씀으로 고치시네 주는 나의 치료자
6권과 7권이 제 영혼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대해서 존 오웬 박사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걸출한 작품들, “유혹에 관하여” 라든지, 6, 7 권 중에서 최고의 걸작 중에 하나가 “On Indwelling Sin in Believers” 이라는 250페이지 정도 되는 그 책 한 권 속에 여러 작품이 있고 그 중 최고의 작품 중에 하나가 “On Indwelling Sin in Believers” 입니다.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 라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X-레이를 보다가 MRI를 보는 것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에 대해서 많은 충격을 받았고 그때 저는 금요일이면 세상없어도 오전에 교회 일을 다 마치고 강원도를 갔습니다. 강원도에 가서 숙소에 들어가서 깨끗이 씻고 앉아서 한 일이 존 오웬을 읽은 것을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설교준비를 하지 않고 말입니다. 노트북을 놓고 정리하고 줄치고 하면서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다시 정리하고, 그렇게 하면서 성령에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는데 아침 해가 뜨는 것이었습니다. 꼬박 밤을 샌 것입니다. 그러면 샤워하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생활을 한동안 하며 오웬에 깊이 심취하여 1권 2권 3권 시작했고 6, 7권은 쉬운 편에 속합니다. 11권 같은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쨌든 다 읽었습니다. 두 권 정도를 조금씩 본 것을 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비참한 나를 거의 땅 바닥에 떨어져서 짓밟히게 된 나를, 삼손의 표현에 의하자면, “내가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죽게 되었나이다.”까지 이르게 된 저를 하나님이 말씀으로 다시 살리시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학에 심취했다기보다는 존 오웬을 통해서 성경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저의 신앙과 사고, 성경에 대한 해석,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저도 교회를 하고 25년째에 접어드는데 어느새 나의 목회 사역을 천천히 정리해야하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후회도 많이 되고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흘러갔습니다. 이제껏 살아오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탈진하면 쉬는 것도 방법이고 노는 것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쉬고 놀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자체는 사람을 살려내는 힘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죽은 영혼을 살려낼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이것은 우리가 늘 성도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목사의 영혼과 성도의 영혼이 다릅니까? 똑같습니다. 목사님들이 자기의 소명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소명과 평신도의 소명은 똑같습니다. 다만, 마르틴 루터의 표현에 의하면 수준과 정도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은 성도들도 해야 하는 삶이고 목사가 해야 하는 대부분은 일은 성도에게 요구되는 삶의 똑같은 표준을 높은 정도로 끌어올리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가 선지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사장이기도 하고 선지자이기도 하고 왕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톨릭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목사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야하고 성도는 흐릿하게 사랑해야 합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똑같은 영혼이고 똑같은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침체되었을 때 쉬고 잘 먹고 놀면 회복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펄전은 설교 속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의 영성이 진짜 요구될 때는 설교할 때가 아니라 휴식을 취할 때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설교할 때가 아니라 휴식을 취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려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십시오. 공부를 계속 하는 것이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책이 우리를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용들을 말씀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으면서 그것에 성령이 역사하실 때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공부했지만 존 오웬을 깊이 만나고 나서 어떤 식으로 신학을 해야 할지 아주 명료해졌고 목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이렇게 엄청나게 탁월한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설교가 놀라울 정도로 실제적인 설교가 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 내용을 모두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만, 아무튼 저는 이것을 통해서 영적인 놀라운 회복과 하나님의 붙드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95년도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교회는 계속 성장을 해서 10년 후에는 교회를 평촌으로 이전해야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10년이 되었는데 장로를 아직 못 세웠습니다. 제가 휘두르고 싶어서 장로를 안 세운 것이 아니라 목사의 양심으로 장로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모든 짐이 저에게 다 떠넘겨 진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집회를 하는데 심지어 교회를 경영하는 재정적인 것까지도 제가 다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참 감사한 것은 그렇게 목회를 하면서 교회에 별다른 시험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주일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면 교인이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야시를 한답니다. 저는 그런 험한 꼴은 당한 적이 없었고 누가 와서 “목사님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하며 삿대질 하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평온하게 10년 넘게 흘러왔습니다. 언제나 힘든 것은 제 자신 때문이었지 교회가 큰 시험에 들어서 요동을 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척을 하고 10년쯤 되었을 때의 일인데 생전 처음으로 목회자의 리더십에 대해서 도전하는 일부 무리들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악에 받혀서 목회자에게 덤벼든 것은 아니었고 좀 심하게 불만을 하던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내가 교회를 위해서 내가 가진 소유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사심 없이 섬겼는데 리더십에 저항하는 집단이 있구나.’ 지금 생각하면 생전처음 하는 경험이라서 가슴이 떨리고 힘들었지, 그때 교인이 1300명 쯤 모였을 때인데 50명 정도가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리더십에 도전을 했습니다. 엄청난 이슈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너무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시간들을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존 오웬 목사님에게서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10년이면 약발이 떨어질 만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책들도 많이 읽었지만 주로 읽은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어려움이 있고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였는데 서재에서 책을 꺼내다가 디스크가 심해서 쓰러졌습니다. 발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날 차에 실려서 병원에 갔는데 병실에서 그 긴 시간동안 무엇을 할까하다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책 한 권을 가져 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었습니다.
『고백록』은 20대 때에도 읽었고 신대원 때에도 읽은 것 같은데 저에게는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6인실 병실에 누워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커튼을 치고 허리가 아파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존 오웬을 읽을 때와 똑같았습니다. 이 책이 나를 사로잡는 것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사색을 하고 정리하고 메모를 하면서 이 책 전체를 일주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지는 마시고 제 고백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책을 쓴 어떤 사람도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뛰어나다,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존 오웬 목사님도 매우 뛰어나신 분이라고 생각했지 천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천재의 기준이 그렇게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고백록과 “DE VERA RELIGIONE”, 『참된 종교』라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이 “Confessiones” 을 읽으면서 제가 하나님 앞에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천재입니다.” 하고는 마음에 서러움이 복받쳤습니다. 이것은 잠깐 후의 일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시작으로 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약 250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 한글로 번역된 것이 한 20권 남짓합니다. 우선 그 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 다음에 영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것인데 트기 분도출판사, 가톨릭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많은 책들이 서요한 박사, 물론 그것은 라틴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에서 번역한 중역이기는 하지만 여러 권의 책들이 번역되었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번역되어서 이 분량만큼의 또 다른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그것을 읽었습니다. 잠깐 동안에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질서론』나 『행복론』은 영어 원서로 읽었습니다. 존 오웬의 세계가 미시 분석의 세계였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저를 우주로 데려갔습니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Confessiones”을 저는 120회독을 했습니다. 120번. 그렇게 읽고 쓴 책이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라는 책입니다. 제 인생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는 계기가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있었습니다.
『삼위일체론』 매우 어려운 책이고, 그리스도 자유의지론도 매우 어려운 책입니다. 『신국론』 『참된 종교』 등을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관통했습니다. 2차 자료는 여기에 쓰지 않았는데 2차 자료도 많이 읽었습니다. 영어로 된 논문이나 책등을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2005년도에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서 빠지기 시작하면서 그것도 한 10년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최근에 나온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 중에 가장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것은 아직 완역되지는 않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입니다. 몇 권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거의 다 입니다. 라틴어 작품입니다. 제가 50세가 되기 전에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47세 쯤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가 제가 50세가 되기 전에 주님을 다시 한 번 깊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일 저녁마다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응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제가 49세 되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를 새롭게 만났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만약 존 오웬에 한 10년 동안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었을 때 이렇게 놀라운 내용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아우구스티누스 속으로 들어가도록 열어주었습니다. 집중적으로 5년 동안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사유하고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때도 제가 기도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매 금요일이면 광림수도원을 찾았습니다. 2시쯤에 기도원에 들어가서 깨끗이 목욕하고 앉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아우구스티누스를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이 하나님이 신학 속에 갇혀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말 위대하신 하나님,
(찬양)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철학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은 아마 신학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의 배후가 플라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50세가 넘어서 라틴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봐야 까막눈을 면하는 수준이었지만 유창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시작이 너무 늦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 사람의 사상의 백그라운드(background)가 무엇인가? 하면서 플라톤 철학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플라톤에 대해서 눈을 뜨고 서양철학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철학책을 보면 두 페이지만 읽으면 머리가 아프고 세 페이지가 넘어가면 무슨 소린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하면서 눈이 뜨이게 되니까 어느 한 순간에 모든 철학책이 거의 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러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을 읽어왔습니다. 252편인가를 썼는데 모두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거의 읽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10년 동안을, 아니 지금까지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생각하고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말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이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존재의 뿌리,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하는 인문학적인 논의들을 모두 아우르면서 이 저작들을 써 내려갔습니다. 한 순간에 어마어마한 양들의 지혜들을 토해내면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내 신학과 인생의 최고의 스승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고 인정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50세 이전에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때도 그렇게 고갈될 정도의 침체는 아니었지만 너무너무 힘든 시기를 지났습니다.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 아침에는 이 세상에서 눈을 뜨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할 정도로 이 세상에 대한 미련도 버리고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예배당을 자주 찾아서 주님께 기도하며 교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설움과 괴로움들을 주님께 쏟아놓았습니다.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그때 마음에 깊이 괴로웠던 것이, 하나님께 불평스러운 생각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구이고 김남준 저는 누구입니까? 왜 한 사람에게는 저런 놀라운 지혜를 주시고 나는 기껏해야 저 사람이 쓴 책을 간신히 이해하는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까?” 6개월 동안을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에 돌아온 응답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였습니다. 그리고 접었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이 그렇게 그림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으며 그 한 페이지 건너서 명언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러면서 저는 교회의 문제로 잠시 침체되어서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힘들어하고 싸우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저를 딱 붙드시고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 우주 바깥에서 요만한 지구를 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아닌 나, 그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는 갈등과 모순, 때로는 목회자가 말할 수 없는 괴로운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결국 이 모든 것을 사용해서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신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어떤 의미에서는 목회에 커다란 시련 중에 첫 번째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일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새발에 피였는데 제가 그렇게 심약해져서 매일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을 때 아침이면 세상에서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이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집중적으로 한 3년 동안은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오후에 기도원에 올라가서 저녁 내내 기도하고 밤이면 나와서 밤길을 걸으며 하늘의 별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인간으로 창조하신 것에 감사하고 언젠가는 잠시잠간후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나서 그분을 뵈옵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묵상 속에서 저의 이런 모든 공부가 저의 설교를 훨씬 더 깊게 만든 것 같습니다. 책을 써도 단 한 번도 교인들에게 옛날 것을 재탕해먹는다는 소리를 안 들으면서 쓸 수 있도록 이런 만남들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다고 생각하고 제가 이렇게 공부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것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한 선조들을 통해서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 책은 인간과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쓴 것인데, 제가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심장과 폐 사이에 4.5cm 크기의 종양이 있다고 해서 수술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취에서 깨어 눈을 딱 뜨고 나니까 줄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모르핀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딱 떠오른 것이 어디서나 켤 수 있는 핸드폰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 결론은 예수를 믿는 것도 인간으로서 잘 살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고 하면서 써 내려갔습니다.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고백록』을 100번 읽었을 때였는데 고백록의 명문을 추려서 해설한 책입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매우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성경을 우리가 읽으면서 은혜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항상 내 수준에서 밖에 읽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학 책들을 접하면서 은혜를 받고나면 그 사람의 수준까지 뛰어 올라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성경들이 보이고 그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 깨어짐』, 이 책은 제가 한참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정말 많이 고통을 받고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쓴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가 깨져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기존에 어떠한 책도 제가 참고는 했지만 그 책의 골격을 취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저의 사유 속에서 자기 깨어짐이라는 것이 신학적으로 무엇인지, 자기가 무엇이고 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국적인 시각으로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워서 사람들이 잘 읽지 않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주님을 깊이 만난 여러 명의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10년이 흘러서 2016년쯤 이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고 정확하게 말해서 2005년도쯤에 아우구스티누스를 깊이 만나고 그 후에 아우구스티누스를 막 읽어나가면서 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워낙 유명하니까 우리가 알고 있었고 그 중에 일부는 우리가 신학교를 다닐 때 읽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쉬운 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가 기도하다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어보라고 응답을 받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드워즈의 책 중에서 이 8권이 “Ethical Writings”이라고 해서 윤리학적 저술들을 모았습니다. 이것은 “The nature of true virtue” 『참된 미덕의 본질』이라는 철학적인 책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은 잘 모르시겠지만 “천지창조의 목적”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책은 존 파이퍼 목사가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부흥과 개혁사”에서 출판을 했습니다. 거기에 천지창조의 목적이 두 편이 실려 있는데 한 편은 신학적인 입장에서 천지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논변한 책이고 두 번째는 일체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이성으로 논변하면서 천지창조의 목적을 논변한 것입니다. 그 책과 이 책이 쌍둥이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지 않고 선을 행하는 사람의 덕과 하나님 앞에 깊이 깨어져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고 한 마디로 우리가 신학을 하는 모든 것의 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The nature of true virtue”와 “천지창조의 목적”과 고린도전서 13장강의 세 편이 묶여져서 한 권이 되었고 셋 모두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려워서 사람들이 잘 읽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 앞부분에 나와 있는데 그 책은 제가 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에드워즈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고린도전서 13장을 해설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설교를 서른세 번에 걸쳐서 끝냈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제 마음에 있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신학을 할 때 기본적으로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토대 위에 있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논의를 보여주면서 항상 성경적으로 단절된 도덕주의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덕은 그런 식의 도덕이 아니고 정말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치의 질서들이 하나님에 의해 재편된 가운데 나오는 덕이라는 것을 웅변하는데 굉장한 책입니다. 이러면서 깊은 감화를 받게 되었고 이 책들을 제 생각에는 세 권 정도는 읽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설교집입니다. 나머지 중요한 신학적 저술들은 거의 모두 읽었습니다. 한 1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이후에도 칼빈에 대해서는 졸업을 하고 읽었는데 오늘 여기에는 포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저는 ‘우리가 얼마나 우물 안의 신학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그런 위대한 선배들에게 배우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내가 오늘 성경을 대하고 기독교 신학을 해석하기 에 앞서서 이미 기독교의 역사는 2천년 이라는 세월이 있었고 초창기에 기독교의 신학의 토대를 놓고 수많은 이교와 이단과 싸웠던 변증가의 시대를 지나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위대한 교부들을 통해 중세의 종교개혁,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한 것은 저의 30년의 지적인 여정 가운데 커다란 줄거리를 소개해 드렸을 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우리는 지식의 자랑을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모자란 인간이지를 알고 하나님의 성경 앞에서 내가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 것이 적은지에 대해서 깊이 탄식하는 마음을 갖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괴테가 마지막에 죽을 때 “창문을 열어 더 많은 빛을 내게.” 하고 말했듯이 목회자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진리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주랴?” 하실 때, “오, 하나님 저에게는 진리의 빛이 필요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명해져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교회에서, 교계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도 하나님이 내려다보실 때는 지푸라기와 같은 자기의 종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보지 말고 때로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내려다보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나님이 매순간 붙들어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신념과 확신에 가득차서 무엇인가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마음에 깔려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푸라기와 같은 인간일 뿐이고 내가 알고 있는 진리의 빛은 빛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지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매일매일 종이 상전을 바람같이, 여종이 주인의 손을 바람같이 그렇게 주님만을 바라보면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제가 40대쯤 되었을 때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쓰고 강연을 다녔을 때, 사람들이 굉장히 신선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했지만 벌써 서서히 은퇴를 준비해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말 잠시 머무는 세상입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이고 목회자도 역시 그런 사람입니다. 여기에 후배 목사님들이 많으신데 저는 좀 쉬면서 목회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쉬는 것을 경멸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픈 것은 정신력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굉장히 인정머리가 없는 나쁜 사람, 그런 목회자였습니다. 저는 주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설교를 해야 하니까 체력안배를 위해서 주일은 새벽기도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교회에 있는 한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부목사들이 월요일에 새벽기도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는 항상 제가 인도했습니다. 끝나고 직원에게 “아무개 목사가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았으니 전화해 봐라.”고 하니까 “목사님, 부목사가 아프다고 합니다.”, “전화는 받던가?”, “네.”, “나오라고 해.” 나오면, “이렇게 나올 수 있는데 왜 나오지 않았느냐?” 했습니다. 나중에 진짜 제가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정말 나쁘게도 이런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기도를 나오다가 건널목에서 쓰러지면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으시겠느냐?” 얼마나 못됐습니까? 저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을 이유로 주일에 강단에 올라가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쓴 대부분의 책은 12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쓴 책입니다. 탁월한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몇 년 전에 1년 사이에 18kg을 잃었습니다. 전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숟가락이 얼마나 무거운 물건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약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아플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제가 주님을 그렇게 만나고 신학 책을 그렇게 읽었는데도 인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래? 너 한번 약해봐라.” 하시고 바닥으로 굴리셨습니다. 숟가락이 그렇게 무거운 물건인지 몰랐고 밥을 먹는데 그렇게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세월을 지금까지도 겪고 있습니다. 저는 후배 목사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쉬어라.” 저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작년에 6개월 안식년을 가졌습니다. 좀 짧았습니다. 쉬는 게 그렇게 좋은지 몰랐습니다. 쉬십시오. 교회에 정식으로 이야기해서 쉬십시오. 그 대신 한 가지를 명심하십시오. 대부분의 교인들이 쉼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을 쏟아 부으면서 목회를 해야 합니다. 늘 한가하게 있다가 “오늘 쉬어야겠습니다.” 하면 교인들이 생각하기를, “한 게 뭐가 있나?”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은 정말 자신을 다 쏟아 붓는구나! 저러다 쓰러지시지...” 하고 느낄 정도로 자신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쉬십시오. 저는 교회에 탁구대도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교역자들이 정신을 빼앗길까봐 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취미를 좀 가지십시오. 옥한흠 목사님은 마지막에 사진 찍는 것에 취미를 가지시면서 건강을 챙기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후배 목사님들께 말하고 싶습니다. 불건전한 취미를 갖지는 마시고 건전한 취미를 가지십시오. 그래서 운동이면 더 좋고 뭔가 하고 싶은 것을 가지셔서 마음을 전환하며 쉬십시오. 쉬면서 하십시오. 그래야만 롱런할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쉼이 필요할 것만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한 때 조지 휫필드의 이야기에 깊이 감화를 받아서 좀 더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봤을 것입니다. “썩어서 죽느니 닳아서 죽으리라.” 했습니다. 아주 탁월한 건강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썩어서 죽느냐 닳아서 죽느냐 라는 이분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닳느냐 썩느냐가 아니라, 썩으면서도 닳고 닳으면서도 안 썩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나이든 사람이 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수면의 질이 아주 나빠진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수면제를 먹지 않다가 요새는 먹고 있습니다. 수면검사를 해봤습니다. 여기에 센서를 40개쯤 붙이고 잠을 자려고 애를 쓰면 저쪽 방에 컴퓨터에 기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제가 말하고 싶지 않은데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가 평범한 사람의 평균보다 조금 높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다섯 배반이나 나왔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다른 사람은 아주 가볍게 견딜 수 있는 일에 저는 거의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교회에 1년에 한 번씩 풍파가 일어났다면 저는 오래전에 목회지에서 도망을 가든지 우울증에 걸리든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깜냥을 아시고 조절해주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나왔습니다. 두 번째 수치는, 사람에게 모두 저항력이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견디는 지수가 있습니다. 보통사람의 평균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아예 과학적인 수치로 나온 것입니다. 울컥했던 것은, ‘그렇다고 내가 약한 사람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성화를 통해 연단되면서 강해졌는데 기질과 마음은 타파 유리그릇이나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쓰는 아주 얇은 플라스크, 더 쉽게 얘기하면 와인 잔의 유리처럼 얇은 것으로 싸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매 순간 붙들어주셨구나! 너무 불쌍하니까 하나님이 말도 안 되게 목회를 해도 좋은 교인을 보내주시고 그리고 좋지 않은 사람은 설교를 듣다가 짜증나서 가버리게 하시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끌어오셨구나.’
(찬양)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우리 같이 한 번 불러보겠습니다.
(찬양)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드네 손 높이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주님이 손에 잡고 계실 때만 하나님의 사람이지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 경건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이 붙잡고 계실 때 쓰레기 같았던 죄인이 거룩한 목회자가 되고 거룩한 목회자를 하나님이 놓으시면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지식? 학문? 남보다 뛰어난 재능? 그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이 사람과 함께 하면서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전체가 1만7천 페이지쯤 되는데 제 생각에 1만 5천 페이지 정도는 정독을 했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여섯 번 씩 읽었습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이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학생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생각하고 사유한 사람인데 차이점이 18세기에 노도처럼 밀려오는 유럽에 시작된 이성주의, 계몽주의 운동에 사람들이 휩쓸리면서 하나님의 존재, 초자연적인 것, 성경, 모든 것을 부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거기에 맞서면서, 특히 그때에는 엄청난 파도처럼 밀려온 것이 뉴턴주의였습니다. 뉴턴의 업적은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 책이 『프린키피아』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당시 미국 사회에서 정확하게 뉴턴의 새로운 사상을 이해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하나가 “Scientific Writings”이 있는데 이 책은 뉴턴주의에서 나온 물리학을 신학적으로 해설하고 비평하면서 하나님이 아무데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고 논평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유리 항아리 안에서 신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컷 개혁신학을 가르쳐 놓으니까 그 칼을 가져다가 복음주의의 목에 댄다고 말입니다. 물론 복음주의도 교정을 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그래도 우리 편입니다. 이단, 이교, 거기에 세속주의, 이런 사상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것을 왜 공격하지 못하느냐?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가 흘러가는데 무슨 정신과 철학이 주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자라면서 배운 신학밖에는 없습니다. 개혁신학을 가르쳐주니까 날카롭게 칼을 갈아서 복음주의의 목에 갖다 대는 것입니다. 복음주의는 형제 아닙니까? 세속주의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목에 대고 죽일 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신학자는 공격하지 않고 죽은 사람만 부관참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 에드워즈는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피 속에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피가 흐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음 속에서 융합된 것입니다. 거기서 저의 설교와 저술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결국 내가 공부한 덕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내버려두면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될까봐 적절한 때에 오웬을 만나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한참 교회가 어렵고 힘들 때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하시고 에드워즈를 만나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자의 침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극복할 수 없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쉬는 것이나 노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우리에게 ‘엔학고레’의 샘이 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고 호흡하면서 하나님 앞에 때로는 침체된 과정에서 일어서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도전이 되어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조나단 에드워즈를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이책 저책 공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조나단 에드워즈나 존 오웬이나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를 가르치면서 그 학생들이 대부분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는 제가 한참 조나단 에드워즈에 심취되어 있을 때 쓴 책입니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안 읽는 책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그 후에 “조나단 에드워즈와 나의 목회”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논문을 쓴 것이고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이것은 현존하는 최고의 에드워즈 연구가 중에 한 사람인 조지 마스던(George M. Marsden) 박사입니다. 그분을 만나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제가 집요하게 질문을 하고 두 시간 동안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만약 제가 에드워즈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대가를 만나서 사진이나 찍었을 텐데, 그래도 두 시간씩 신학적인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저의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PRTS)에서 강의를 한 것입니다. 이런 네 사람이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신학자들입니다.
이것을 종합해서 나온 것이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라는 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 책을 한 권씩 드리고 싶었는데 책이 너무 비싸서 못 가져왔습니다. 한번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1권, 2권 3권, 2천 페이지를 썼습니다. 그 중에서 650페이지가 나왔고 2권은 초고가 완성이 되었는데 꼼꼼하게 작성해서 2권을 선보이고 3권까지 선보이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깊이 심취했을 때 그의 중년의 중요한 주제가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것을 가지고 신년에 사경회를 했습니다. 사경회를 할 때 박사논문을 여덟 권을 읽고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깊이 아우구스티누스에 감화를 받으면서 이 책을 썼는데 이것을 가져왔습니다. 한 권씩 여러분에게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내리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붙잡혀서 삽시다. 그리고 침체에 빠졌다고 해서 내가 정말 형편없는 목회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윗도 침체에 빠졌고 바울도 때로는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 하며 “Oh miserable man that I am!”,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침체가 없다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하지 자기가 시험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누가 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앞에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우리 자신을 너무 잘 압니다. 목회자로 산 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누가 탁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확 쏟아질 것 같은 것이 목회자의 삶입니다. 때로는 대접받지 못하고 때로는 이해받지 못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고 때로는 오해를 받고 때로는 아주 악한 자를 만나서 모함에 빠져 괴롭힘을 당하지만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가끔 우리는 “아, 너무 힘들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보.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 무슨 길이 있어?”, “있어. 좀 있으면 죽잖아. 죽으면 영원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잖아요.”
(찬양)
잠시 머물 이세상은 헛된 것들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 더 귀하다
조금 더 힘을 냅시다. 그리고 우리 동역자들을 항상 사랑으로 대합시다.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10년, 20년, 우리 중에 30년까지 해야 할 분들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10년, 20년 만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날이 속히 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