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하나이까?
“내가 이르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행 22:10)
녹취자 : 조원정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커다란 충격이었는지 9장 22장 26장 사도행전에서 세 번이나 고백을 했고 고백한 내용을 누가가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이 실제로 세 번 했는지 한 번 한 것을 누가가 세 번을 했는지 우리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 고백이 사도바울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행적을 전하는 역사가인 누가에 있어서도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모두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줄 한 가지 사실은 사도 바울의 질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까?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직전까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에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확신에 찬 사람이었는데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와르르 무너집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사렛의 한 젊은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신성 모독자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로 인정해 주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나는 박해하는 예수다.
두 번째 질문이 내가 무엇을 행하리까? 내가 무엇을 행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 두 가지 질문을 똑같이 하게 됩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예전에는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의 하나라고 알고 나 같은 경우에는 4대 성인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세 사람을 대단하게 생각한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이분이 누구신가 하는 대답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두 번째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정말 제대로 된 만남이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애매합니다. 그것은 몇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는 그가 정말 거듭났는가 하는가를 의심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너무 분명하긴 하지만 복음 이상의 참된 지식의 빛이 워낙 없기 때문에 무지한 상태를 보여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복음을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만났다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젊을 때 자기에게 나타나서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두 번째 질문 내가 무엇을 행하여야 하겠나이까? 하는 것에 답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삶이 뚜렷한 방향 없이 살아가는데 그나마 은혜가 살아 있을 때에는 예수님 믿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전도 하는 게 좋아서 합니다. 그 은혜의 약발이 항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압니다. 그렇지 않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이 왜 이런 삶을 살아가는지 내가 진짜 살아가야 할 삶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하리까? 에 대한 답을 두 가지로 찾게 됩니다. 첫째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살아가는 인생도 아니고 순간순간 내 즐거움을 위해서 사는 인생일 수도 없고 상식을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것 따로 내 사는 것 따로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방향이 똑바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21세 때 회심하고 저는 그 당시에 구원 받은 것을 지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고 불과 1년 밖에 안 갔던 것 같습니다. 1년 동안은 기쁨 속에서 살았는데 그 다음에는 어두움이 드리워지고 내가 구원 받은 것을 어떻게 삶과 연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님이 날 위해 못 박히셨고 나는 예수님 사랑 안에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은 나에게 만족스러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분명했습니다. 어떻게 연결 시켜야 될지를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만나는 순간 삶의 방향이 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야기한 아 이제는 내가 나를 주인 삼으며 사는 삶, 나의 욕심껏 인생을 사는 것, 나의 야망을 찾아서 인생을 사는 것, 이것으로 행복할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이 선이 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자라서 이것을 보다 분명하게 보게 될 때 그때 우리들이 이러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방향성의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똑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길을 쭉 걸었습니다. 드론을 띄워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걸어간 길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개울도 보이고 우리는 계곡 사이를 걸었지만 계곡이 무엇인지 보일 것입니다. 더 높이 비행기를 띄우면 아마 계곡에 펼쳐진 것은 무엇인지 보일 것이고 설악산 전체에서 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보일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자신이 이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일이 한 번에 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사상을 넓혀가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고 거기에서 답을 찾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입니다. 그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고 내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답을 찾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진리의 참 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방향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한 번에 그 방향을 내팽개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을 못 받은 사람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반대로 그렇게 구원 받아서 갈 길이 분명한데도 그 길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이상한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확장되는 것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자라는 것입니다. 이전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위험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책을 만들면서도 나는 하수관처럼 물을 흘려보낼 뿐이지 수도꼭지가 끊어지고 나면 아무 물도 수도관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상을 만들고 사람들한테 전도한다고 하지만 나 자신은 복음의 감격 없이 삽니다. 이 곳에서 사람들이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를 관리하지만 나 자신은 예배자로서 기쁨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매우 비극이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기 자신이 맨 처음에 구원 받을 때 하나님 앞에 가졌던 삶의 방향성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삶이 행복한 삶이겠는가? 이제는 세상에서 우리들이 옛날에 취하고 그렇게 살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진정으로 물어보면 그렇게 살고 싶은 때도 있지만 진짜 그렇게 계속 살래? 하고 물으면 살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내 고향과 집에서 사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 때문에 잠깐 여행가고 싶은 것이지 집을 가출해서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믿은 순간에 우리에게 운명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 마음에 기쁨이 되도록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그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일일 뿐입니다. 일이 우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하다가 새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일 속에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첫째가 내가 무엇을 하리까? 방향성을 굳게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예수를 위해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다. 두 번째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모든 사람이 사도 바울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나 목회자로 부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가하십니까? 목회자로 나는 부름을 받았고 변함이 없지만 목회자이기 이전에 나는 교수였고 언젠가는 목회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 목회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립니다. 중국 주방장이 되리야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종이니까 말씀을 따라 사람을 유익하는 일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리까? 이것은 한편으로는 방향성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태어날 때부터 여기 직원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만들었고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은퇴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 보다시피 다른 직업을 따라서, 우리의 부르심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내가 무엇을 행하리까? 삶의 방향성을 묻는 동시에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실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한 대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 나를 세워두신 동안에는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내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이고 내가 그리스도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내가 여기에 있노라. 하는 부르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무나 잘 드는 비유이긴 하지만 전쟁할 때 한명의 군인이 전투하기 위해서 미국 사람들은 여섯 명이 전선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6대 1이 됩니다. 일곱 명의 사람이면 한 사람이 여섯 명의 서포터를 받으면서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중에는 담배 포장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레이션 박스를 만드는 사람, 낙하산을 꿰매는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이 그 전쟁에 참여하면서 10만 명이 전투를 하면 60만 명이 뒤에서 백업을 하면서 전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과연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양할 능력이 있나 없나를 가지고 한참 논란이 일어났던 이유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60만 명이 싸우면 120만 명이 움직이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정말 가능하나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여러분들을 여기에 세우셨다가 여기로 옮기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나를 여기에 세우셨고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된 것이다. 나는 이 직업을 하다가 저 직업으로 옮겨가도 첫 번째 얘기한 방향성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방향성은 변할 수 있지만 무엇을 하든지 확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고 후일에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여기에서는 지금 하나님이 이 일을 하게 하시는구나. 이 일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명감을 느끼면서 전투에 참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면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거기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 성도들이 그런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오늘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삶은 내가 무엇을 행하리까? 하는 데에 대한 답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깨지고 나사렛에서 이단자 젊은이가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밝혀졌을 때 그분에게 주님 내가 무엇을 행하여야 하리까? 하고 물었을 때 주님이 네가 행하여야 할 일은 이 길이다. 하고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어떤 무게감을 받아들였을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하늘의 황제에게서 미션을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겠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중요한 것은 방향성? 첫 번째 나는 무엇을 하든지 이 방향으로 가야 할 사람이다. 두 번째는 예전에는 내가 거기에 있어서 그 일을 했지만 지금은 내가 여기에 있어서 이 일을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자기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 앞에 예배가 되도록 경배가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종종 묻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머리를 꽉 채우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출판 실에 산다면 책을 출판한다. 연구실에 있다면 지금 목사님이 해외에서 논문을 발표하시는데 우리가 자료를 찾고 이것을 마무리해야 한다. 열린 공간이면 기계가 새로 들어오고 서비스가 다 바뀐다. 홍보실이면 전도국 동영상을 만드는 뭐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순이 뭔가 하면 우리의 신경의 70% 이상을 빼앗아 갑니다. 거기에 온 마음이 다 쏠려 있습니다. 많이 마음에 쏠린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우선순위가 기도 제목의 우선순위가 안 맞는 것입니다. 신경을 엄청 쓰고 고민하면서 그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기도에 의해서 1순위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계속 반복되면서 이속에서 분리가 일어납니다. 일하는 것과 마음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마음을 안 싣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일들을 하는데 난관이 계속 부딪힙니다. 이것은 내 경험과 여태껏 해 온 실력으로 해내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잘 이루어집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운이 좋았거나 내가 해냈구나. 입니다. 일이 이루어졌을 때 기껏해야 내가 대견한 것입니다. 내가 해냈다. 나는 그래도 유능한 사람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사모님들이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사모님들은 여기 오는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을 하고 늘 섬기면서 살고 기도 많이 하는 사모님들이니까 미션을 가지고 자기네들이 회의를 해서 식단을 짜고 열심히 밥을 합니다. 밥을 먹는데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요리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6개월 동안 남편도 잘 못 만나고 새벽기도 나오고 고생했는데 여기 와서라도 남이 해 준 밥 먹고 좀 쉬고 하면 안 되나? 그것도 제가 터치할 영역이 아닙니다. 사모님들이 알아서 할 영역들이니까 그것까지 내가 막 이러고 하면 좀 떨어집니다. 내 마음에 그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했습니다. 어제 저녁보다 훨씬 맛있다. 어쩜 이렇게 맛있나? 김치도 정말 맛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우는 것입니다. 내가 속으로 저것도 오버지. 그랬습니다. 나중에 가만히 그게 뭔가 생각해 보니까 이분들은 기도하면서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교역자들을 잘 섬겨서 이것이 은혜로운 수련회가 될까 고민하면서 여러분들과 비교하자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미 밥 해 먹는 것 다 접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연세들이 있으니까 요구하면 안 됩니다. 설거지만 하려고 해도 손목이 아픕니다. 주방기구를 사 가지고 왔는데 캐비넷 하나를 다 사가지고 온 것입니다. 가위, 집게부터 시작해서 다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분들은 우리들이 자기 하고 있는 일이 예배가 될 때에는 우연한 일이 없고 아주 작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됩니다. 기도의 응답을 그 안에서 발견합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설교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못 느끼는 사람이 설교자를 위해서 방을 청소하면서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일의 자체가 거룩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가?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감격과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서 감격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가에 의해서 그 감격이 넘치고 수많은 간증들을 만들어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간증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사소한 일을 행하면서도 거기서 하나님의 간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공경의 표현이 되게끔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기쁨이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 그런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다시한번 들어 보십시오. 주여 내가 무엇을 행하여야 하리까? 우리는 이미 이 질문을 주님 앞에 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이 정해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을 주인으로 삼으며 살아야 될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두셨고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최상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이런 삶을 여러분들이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