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녹취자 : 오희열
그런데 저는 자유를 그 이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세네카가 네로의 왕사였습니다. 네로는 그렇게 포악하게 살다가 죽었지만 세네카가 왕에게 어떻게 왕이 되어야 할지를 가르칠 때 군주에게 있어서 관용만큼 군주를 존경받게 하는 것은 없고, 관용만큼 영향력 있게 통치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법이라는 것도 어떤 잘못을 복수하기 위해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법은 나쁜 상태를 개선하고 참 국민으로서 어떤 삶의 모본을 보이며 살아야 하고 마지막 세 번째로 질병과 같은 악이 있을 때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법이 필요한 것인데 마지막으로 그 법이 꿈꾸는 나라는 그 법이 그냥 시행되기만 하는 사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해석입니다. 법은 군주가 자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에 부여하는 하나의 틀이고 마지막에는 그 사회가 군주의 이상을 드러내는 그러한 덕이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덕을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덕을 헤치면서 살기가 쉽기 때문에 그 덕을 제시함으로써 군주의 의지를 표명하고 어기면 큰 벌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도 함께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대로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멈추고, 파란 불이 들어오면 가는 것, 이런 것을 모르던 사람에게는 지식이 주어지고 “빨간 불일 때 가게 되면 위험한 결과가 오는구나, 내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그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과정이고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이 빨간 불에는 가고 싶지가 않은 사람이 되고 파란 불에는 갈 수 없게 하는 요인이 있는데도 가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보는 것이고(완성된 상태) 동북아 철학에서도 이런 사상들을 다양하게 이야기했지만 마지막에 핵심은, 인간과 우주를 규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것인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해야 하는가? 덕이 다스리는가? 아니면 사랑이 다스리는가? 아니면 무력으로 통치해야 하는가? 이런 것이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 어느 것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하셨을 때 그 자유는 그런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진리가 제시되고 하나님의 의지가 개시될 때 고통과 속박을 느끼는 것만큼, 우리는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부자유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자유한 상태임을 그것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자유에 관하여,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