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섬기는 하나님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단 6:20)
녹취자:이경순
한 20년 전에 이 본문을 보면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사실 다리오왕은 불신자였습니다. 불신자라기보다는 그들이 종교를 안 가졌을 리가 없으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이교도였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총리로 봉사했던 다니엘이 하나님의 종으로 보였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 하나님의 존재를 다니엘을 통해서 보지 않았더라면 사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신의 종’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다니엘이 그렇게 모든 국사를 잘 처리했고, 그는 진짜 전문 정치인이자 전문 관료였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세 번 바뀌면서도 계속 이 사람을 중용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왕의 명령을 어기는 적이 있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나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오는데 자신의 종이 아니라 그를 지배하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다리오 왕이 자존심 상하는 것이었을 수 있겠지만 다니엘이 모함을 받고 사자굴 속에 들어가는 사건을 통해서 아주 명료하게 이 사실은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리고 다니엘을 움직이고 있는 분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열린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고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비전을 나에게 주셨고, 또 성도들에게 주셨어도 내가 성도들의 비전을 깨닫고 공유함으로써 그게 우리 교회의 비전이 되었으니,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은 담임목사의 종이 아닙니다. 심지어 교회의 종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회의 직원들이 성도들의 헌금으로 월급을 받는다고 그러는데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성도가 헌금을 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봉사를 받는 게 떨리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받는 게 떨리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더 떨리겠습니까? 사람에게 주는 게 더 떨리겠습니까? 신앙이 있으면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받는 게 더 떨리고, 신앙이 없으면 반대가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항상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들이 한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겠습니까? 담임 목사인 나도 이쯤해서 내가 사역을 접어야 되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 않다면,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더 그런 일이 많겠습니까? 여러분 중 누구도 여기에서 밥벌이하려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항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잊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종이라는 말은 높임말이 아닙니다. 노예입니다. 하나님의 노예다, 하나님의 머슴이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종은 세상에서는 돈이 없고 힘이 없고 그담에 부모가 못났기 때문에 종이 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비인격적으로 우리를 노예처럼 그렇게 다루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종이 되는 인생 속에서 우리가 가장 우리다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자유인이지만 우리의 신분은 자유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살게 하시지만 우리가 그 사랑에 매여서 우리가 스스로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이것만 안 놓치면 반은 승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서 내가 있고, 하나님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하면 일을 하는 보람 때문에 여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일할 때 항상 보람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나는 안 그런 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항상 기쁨에 넘쳐서 살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까지 못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보람이 아니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여기에 있는 순간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한 가지만 안 잊어버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를 여기에 교회를 세우게 하신분도 하나님이고, 나를 여기 목자 삼으신 분도 하나님이고, 내가 하나님 때문에 여기 있다.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아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교회 간사로 들어온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은혜 못 받은 사람들은 못 있었습니다. 진짜 은혜를 많이 받고 극히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것을 놓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지극히 겸손해야합니다. 그렇게 또렷하게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여기세우셨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두 번째는 내가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종은 노는 자가 아닙니다. 물론 종이라고 해서 모두 일하지는 않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종중에는 착하고 충성된 종도 있고, 악하고 게으른 종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를 섬기되 성도 때문에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 일은 우리의 본성상 항상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게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부부사이에도 서로 사랑하면 그를 위해서 봉사하는 게 기쁘지만 사랑의 관계가 깨지면 이게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나 하는 반발심이 생겨납니다. 자신이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남자도 들고 여자도 들 수 있습니다. 왜 남자라고 나만 계속 참아야 되나, 여자라고 왜 나만 계속 져야 되나 하는 마음이 불뚝 솟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 모두 해결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야 섬김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감동을 주는 글이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쉼이 없이, 그리고 그의 일상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웅장한 섬김의 올림이었습니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이고, 심지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다리오왕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교도의 가슴속에 다니엘을 볼 때마다 꽉 박힌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를 섬기는 척 했던 사람들은 자기에게 헤를 끼치는 사람이었고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그 사람은 자신의 왕국을 위해서 진정으로 헌신했던 사람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나와 교회는 여러분들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고 여러분들은 섬기기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반대로 뒤바뀌게 되면 아주 누추하고 추루한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복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냐면 불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상황에 굴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대함에 있어서 자신 속에서 솟아나는 어떤 욕망의 좌절을 통한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선하게 될 것인가 생각하십시오. 교인들도 가만히 사역해보면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어떨 때는 귀찮아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의견을 제시하는 그 사람의 마음중심이 어떻게 하든지 이일을 잘 되게 하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게 아니라 이 속에서 쌓인 개인적인 불만을 말하자면 의견의 형태를 통해서 제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는 궁극적으로는 그 일이 잘되게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분노와 상한 마음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이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화종부 목사님이 제자들교회에 있을 때 김서택 목사님 뒤를 이어 그 교회에 간지 내 생각에는 2년 내지 3년 되었을 때 일인데, 목회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자기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제게 전화가 옵니다. “형님, 하나 물어봅시다. 협동장로 한 사람이 왔는데 너무 너무 나이스합니다. 신앙도 너무 좋고, 자기하고 너무 이야기도 잘 통하고, 그래서 그 사람을 장로로 세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반 밖에 안 되었으니 5년은 두고 봐라 그랬더니 그만한 사람이 없을 거 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잠깐보고 결정하는 것은 후회할 수 있지만 아무리 사람을 오래도록 지켜봐도 그것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장로가 섬기는 교회를 떠났으면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이민을 왔다든지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 경우야 어쩔 수 없지만 같은 서울에서 교회를 옮겼으면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도 있겠지만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 두고 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일 년 후에 만났는데 “형, 정말 그 사람 썼으면 큰일 날 뻔 했어.”합니다. 그 말이 오고가고 나서 일 년이 되기 전에 그 인간성이 다 드러난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교회에서 깽판을 친 것입니다. 완전히 상식 밖에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아부하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부와 충성의 차이는 ‘항상’이냐 아니냐 입니다. 내 얘기가 아니라 남부교회 박영선 목사님 설교 집에 나오는데, 왜냐하면 결국은 항상이라는 요소가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 사역해보면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성이 무디고 한번 결정하면 엉덩이가 무거워서 안 움직이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항상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인내이고 결국은 자기의 믿음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채석강을 오면서 아까 어둠속에서도 봤지만 그게 몇 억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파도에 쓸리고 해서 만들어진 전체가 리아시스식 해안이라고 침식해안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거기 서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환경의 변화를 겪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인간도 짧은 기간을 섬기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의별 사연을 다 만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정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한 순간 한 순간 하나님을 잘 섬깁니다.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이 그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의 인생을 위로하고 그를 붙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섬김의 비밀입니다.
사람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임성우 국장 같은 경우 24살에 와서 지금 40이 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서 유년시절을 빼고 활동 못하는 노년을 빼고 나면 그 가운데 토막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교회를 섬겼던 것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분량입니다. 나 같은 경우 지금 26년을 지나갑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실지적으로 앞에 토막 자르고 뒤에 토막 잘라서 한 30세까지는 내가 준비되었고 그리고 70세부터 내가 아무것도 안한다면 40년의 인생가운데 35년의 인생가운데 대부분의 9년 정도를 제외한 인생을 열린교회 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하나님을 섬긴 사람으로 나 자신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지나온 날들이 너무 허무합니다. 뭘 하고 산 것인가. 그래서 결국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은 마지막에 (주님께 이런 칭찬을 듣는 것일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내 종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나는 그렇게 섬기며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남은 일생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나는 굳게 믿습니다.
어려움이 왜 없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힘들 때가 많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의 인생은 잔잔한 바다 위를 지나는 배 같지 않습니다. 꼭 내가 하고 있는 일 때문이 아니라도 나의 건강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심리적인 것, 가족의 문제, 모든 많은 것들이 파도를 타고 우리의 인생은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항상 섬길 수 있을 만한 때나 그렇지 못한 때나, 어려움이 있을 때나 평안할 때나, 왕에게 인정을 받던 때나 인정을 못 받을 때나 상관없이 변함없이 그 길을 걸어가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청년회 자매 하나가 있었는데 지하실 교회에서부터 나왔었는데 이민을 간다고 해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을 한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목사님은 그렇게 끊임없이 도전을 외치시면서 왜 제길은 막습니까, 합니다. 그래서 “네 나이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적용할 때는 30대입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을 넘어섰는데 그렇게 지체들을 떠나고 왜 그렇게 힘든 삶을 살려고 하느냐, 얘기했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하나님을 섬기는데다 두면서 살아야 됩니다.
나는 가장 위험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와 신학교, 그리고 선교현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몸 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데, 그 은혜 속에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데, 그래서 결국은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신과의 확고한 동료로 붙잡으면서 가야 합니다. 결국은 사역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이 중심에 서지 않으면 사역은 여러분 자신이 일하는 것 일뿐이고 직업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꼭 여러분들이 승리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