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녹취자: 양현정
회심하고 그 이듬해서부터 제가 교사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목회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 한 번도 교사의 직분을 내려놓은 때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교사로 섬기지만 아시다시피 그 교사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여러분들이 잘 압니다. 아마 지난 한 해 동안도 몇 번이나 이것을 언제쯤 그만둔다고 말할까 그랬던 분들이 여러분 가운데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정말 태만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안하는 것 없이 열심히 교사 생활을 하는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고 실망스러운 일들만 계속 일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해서 말씀을 잘 준비해서 가르쳐도 이상하게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해서 그래도 꽤나 기도를 했는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해서 부지런히 행사에 참여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했는데도 뭔가 잘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심방을 하라고 해서 연초부터 열심히 심방을 한다고는 했는데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고, 심방을 가도 처음에는 조금 놀라는 기색이더니 세 번 네 번 반복되니 이제 아이들이 교사를 회피하고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할 때에 우리들이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다 해도 자기의 목양사역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은 교사 자신의 마음입니다.
오늘 감옥 속에 갇힌 노사도는 사랑하는 빌립보교인들을 향해서 제일 먼저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희생을,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을 자랑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마음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벅찬 사랑을 표현하는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했는데도 이상하게 목양이 안 될 때에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일은 ‘내가 모든 것을 행하지만 이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솟아날 때 메마르던 말씀 사역은 윤기를 얻게 되고, 심방은 아주 놀랍게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교제는 닫혔던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게 만듭니다. 우리의 목양 사역을 향하여 마음을 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깊이 사랑할 때에 모든 섬김이 윤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준비된 행사를 잘 하는 것은 말하자면 곡괭이로 파고 삽으로 흙을 떠내어서 물이 잘 흘러가도록 물길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혼을 변화시킬 때 하나님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변화시키시고, 또 영혼들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도 어떤 계기가 마련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름 성경학교나 겨울 수련회 혹은 여름 수련회, 회심집회 등을 통해서 아이들이 계기를 갖게 됩니다. 그런 계기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되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는 행사도 마음을 기울여서 잘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물이 지나갈 수 있도록 파 놓은 도랑입니다. 지식을 전하고, 행사나 기획을 하며, 이러 저런 계획들은 하는 것은 물길일 뿐이지, 실제로 물을 흘러가게끔 만드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평범한 사역들은 평범하지 않은 사역들로 변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말씀을) 듣지도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지루한 공과 시간을 견디는 것과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공과 공부시간은 얼마나 비교가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25살에 다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주일 학교에 다시한번 열심히 헌신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경험했던 정말 기이한 체험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25살 먹은 청년이었고 직장에 다녔는데 토요일 날 열심히 공과를 준비해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제가 맡고 있는 아이들이 5, 6학년 아이들이었는데 그중에는 아주 착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거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아는 것도 없는 25살 청년이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데, 그렇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 아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줄 정도로 긴 의자에 앉으면 12명이 앉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앉아서 공과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조금 앞으로 빠져 나와 앉아 의자를 하나 놓고 가르치는데 좁은 공간에서 (여러 반이) 공과를 하면서 서로 큰 소리를 내니까 옆에 반은 더 큰 소리를 내며 가르칩니다. 그렇게 주위 산만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눌한 말로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 때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살아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인들 왜 매번 공과공부를 그렇게 인도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매 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가끔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내가 이 아이들을 아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전할 때 그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의 사랑을 통해서 그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면 말할 수 없이 거칠고 강퍅하던 아이들의 마음이 어느 한 순간 주님의 말씀에 녹아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말씀에 은혜를 받은 아이들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항상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놀랍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을 압니다.
그래서 교사인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해 봤는데도 목양이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무엇을 해도 무기력하게 효과가 없는 것이 느껴질 때,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일반적인 영혼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말은 그저 영혼만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이니 그로 인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영혼을 사랑하면 공과를 준비하는 마음도 바뀌고,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면 그 아이들과 교제하는 마음도 바뀝니다. 그리고 사랑은 필요에 민감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필요를 압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면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눈물 흘리는지, 가슴 아파 하는지를 알 수 있고, 그 영혼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매우 구체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사가 왜 공과공부를 철저히 준비해가지고 나오지 않을까요? 엄마가 식구들에 대한 애정이 식으면 식탁부터 달라집니다. 주부는 가족을 향한 애정이 넘칠 때 가족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밥을 해 먹이는 것이 엄마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모든 의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부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데 이것은 주부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 자녀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똑같이 영혼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으면 그 공과를 아무렇게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영적인 자녀들을 위한 영혼의 식탁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아무 음식이나 먹일 수 있겠습니까?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목자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잘 준비할 수 있을 때나, 하기가 싫을 때나, 할 수 있을 때나, 할 수 없을 때나 상관없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위해 최선의 식탁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날 공과를 가르칠 때에는 공과책에서 그저 떠 온 말씀이 아니라 피와 살 속에 용해되어서 교사의 인격을 통해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맡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많으면 20명쯤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10명 남짓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또 이리저리 떨어져나가 겨우 서너 명 돌보는 교사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오지 않는 학생들까지 여러분들이 매일 한 번씩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교사로서 아주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아이들에게서 기도제목을 받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도제목까지 추가하여 사진까지 붙인 기도카드를 만들어 폰에 넣어 가지고 다니든지 아니면 저처럼 종이카드를 만들어 다니든지 일정한 시간에 펴놓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열 댓 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교사들 마음속에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 기도는 점점 간절해질 것이고, 20장의 카드를 놓고 기도하는데 처음에는 5분도 안 걸렸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10장의 가지고 한 시간을 기도해도 모자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민감해야 합니다. 특히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사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것이 모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10여 명 밖에 안 된다면 그 아이들을 최소한 한 달에 한번 씩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장소가 집이든지 음식점이든지 혹은 도서관이든지 교회든지 상관없습니다.
결국 교사의 마음속에 그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로다” 여기서 말하는 심장은 창자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의 깊은 자리가 창자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우리말로 등가 번역을 한다면 심장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진심으로 영혼 깊은 곳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교사를 하면서 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익숙해집니다. 공과를 여러 번 가르치면 익숙해지고, 여러 번 심방하면 요령도 생기며, 행사도 여러 번 하면 아주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저절로 되지 않는 것은 영혼에 대한 진실한 사랑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자기가 가르치는 영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욱이 다른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있을 경우에는 영혼을 위한 섬김이 사랑이 없는 껍질이 되기가 정말 쉽습니다. 그런 일은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혼들에 대해서 냉랭하였던 나의 마음이 그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찰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이 어떻게 하면 뜨겁고 간절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오늘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답을 해 주듯이 자기가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데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교사의 가장 큰 숙제는 맨 처음에 자기를 교사로 부르셨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 사랑을 간직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왜 교사가 되었습니까? 누가 교사를 하라고 강요한 사람이 있나요? 누가 권했다 하더라도 내가 안하면 그만인데 왜 오늘도 아침 8시부터 혹은 10시부터 나와서 그 긴 시간 동안을 애쓰고-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하면서 도시락도 하나 주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강의를 듣고 이 밤중 시간까지 계속 있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지금은 의무감일 수도 있겠지만 맨 처음 나를 여기로 불렀던 것은 그런 의무감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사랑해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주일학교를 하면서였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처음으로 평신도인 저 혼자 성경학교를 인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고, 게다가 교회가 가난하여서 도와줄 교역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휴가를 내고 일주일 동안을 금식을 했습니다. 매일 직장 끝나고 교회에 와서 밤새도록 기도를 하고, 아침에 다시 세수하고 출근하고, 또 밤이면 다시 와서 기도를 하면서 결국은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당신의 그 사랑을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혼자 간절히 철야 기도를 하는데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살고 죽는데 (영혼들을 섬기는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곤고한 영혼들이 떠올랐고 구원받지 못한 어린 영혼들이 떠올라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부르심을 내가 저버리면 내 인생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크기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여러분들이 교사가 된 것도 아이들이 좋아서, 혹은 교사로 대접받고 싶어서, 아니면 어떤 의무감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들처럼 방황하던 때에 자신을 구원해주신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들을 자원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교사를 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인 예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언제나 한 결 같이 살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그 사랑이 언제나 살아있어서 그 사랑이 맥박 칠 때에 우리의 교사 생활은 영혼을 살리는 생활이 됩니다.
그런 사랑이 살아 있을 때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10여 년 혹은 15년, 혹은 17년 동안 엄마, 아빠, 권사님, 장로님이 그렇게 기도해도 못 살려 놓은 아이들을 한 사람의 교사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완고하고 그렇게 나쁜 짓을 일삼던 아이들이 돌이켜서 단정하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목회자가 됩니다.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통해 이루가십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교사 리바이벌>이라는 책을 썼고, 아마 요즘 여러분들이 공부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교사가 하루에 두 번씩 펑펑 울 수 있다면 아무리 연약해도 하나님이 그런 교사들을 사용하셔서 영혼을 살려내실 것입니다. 한번은 자기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또 한 번은 자기가 돌보고 있는 영혼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사가 아무리 연약해도 그 교사를 통해서 영혼들을 살려내실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약한데서 오히려 하나님이 당신의 강함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하루에 한 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때문에 울 수 있어야 하고, 한 번은 이렇게 소중한 영혼들, 가엾은 영혼들을 나에게 맡겨 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그 영혼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줄 수 없는 안타까운 자신의 처지를 보며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매우 연약해 보이는 교사라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아주 놀랍고 위대한 일을 반드시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경험이고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에 의해서 전파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그 복음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본성에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영혼을 살리는 이 일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아이들이 살아나 단정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장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도 인간의 마음속에 그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은 그런 놀라운 일을 이루어 놓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가정이 상처로 얼룩져 있고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학교 교육은 더더욱 기대할 것이 없는 매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주일날 가지런히 앉아서 선생님인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입니다. 무엇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앉아 있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마음을 기울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더없이 고마운 것이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그냥 거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기적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의 마음을 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을 빼앗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여러분 자신을 울렸던 십자가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어느 주일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전도사님이, 그리고 목사님이 아무리 십자가의 사랑에 대해 설명해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말하면서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반짝였을 때 난 모든 것이 믿어졌습니다.’ 보십시오. 마음 진심에서 우러나온 예수 사랑의 증언,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놀라운 믿음을 줍니다. 무엇이 그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했을까요? 자기는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이었고, 그 안타까움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며 아이들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오전에 설교한 것처럼 여러분들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이 불쌍해서라도 그 아이의 마음에 울려 퍼져 여러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만들어 주십니다. 짠하고 주일날 공과책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몇 되지 않은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만 매일 울면서 기도하고 주일날 만나면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돌보게 하셨으니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주는 놀라운 특권입니다. 이 기회를 잘 간직하십시오.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동안에 전심으로 영혼을 사랑해서 하나님 앞에 큰 열매를 맺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