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로 나아오라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32-43)
녹취자: 이경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두 사람의 강도와 함께 못 박히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 홀로 처형하지 강도 두 사람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았을까요? 아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을 은연중 추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범죄자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야사에는 이 두 사람의 이름까지 내려오지만 그게 정말 정확한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 두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나무에 매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서 사람을 가로 막대에 눕히고 손에다 못을 박고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손을 나중에 밧줄로 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르래를 이용해서 높이 올려서 이미 서있는 막대에 끼우는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종종 장식용으로 되어 있는 십자가를 보면 거기에 하얀 천이 얹어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천이 뭔가 싶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으신 후 그분의 시체를 아래로 달아 내리던 도구였다고 합니다. 천을 가슴과 겨드랑이 뒤로 내려서 끼워 위에서 아래로 달아 내리던 그런 도구였습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재판을 받으셨고 거기서 사형언도를 당하신후 두 가지 규례를 거치셔야 되었습니다. 그것은 브라이도리온이라는 왕궁수비대에 끌려가셔서 죽도록 맞으시는 것이었고, 당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양쪽에 강도들도 한 사람씩 매달렸습니다. 성경 기록을 전체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었던 같습니다. 자신들도 죽어가는 처지에서 마음이 악에 받쳤으니 자기와 함께 매달린 자칭 구원자라고 하던 예수님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모두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양쪽 중 어느 한 쪽에 있던 강도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중 한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네 가지 중대한 변화를 이 사람 마음에 겪게 되었는데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두 강도 중 한 사람의 마음이 깊은 변화를 받고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한쪽에 있는 강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욕했을 때 그는 그를 꾸짖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교회야사에 의하면 함께 강도짓을 했던, 말하자면 아주 오랜 동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놓고 서로의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일 먼저 바뀐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이 사람이 본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면 강도가 되어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매달릴 정도의 커다란 죄는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 없이 자기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남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살인범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평범하게 남의 돈을 훔친 정도를 가지고는 이 극악한 형벌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고통스러운 형벌이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죄수들만 십자가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러한 형벌에 처해졌다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누구의 돈을 취했습니까? 그분 때문에 누가 불행해진사람이 있습니까? 그분 때문에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병든 자를 고치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고 주린 자들을 먹이시면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돈이나 물질 세상의 권력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사형하도록 언도가 내려 졌습니다. 모두 유대인들의 계략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기득권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렸고 두 강도는 모두 예수를 욕했습니다. 그러나 그중 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 시점에서 그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동일하다’는 말은 ‘죄 지은 대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들의 모습과는 달랐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과 죽게 된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엄습하면서 그들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조용히 불평 한마디 없이, 털 깎는 자 앞에서 온순한 양과 같이 그 모든 십자가의 형벌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평안이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강도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믿게 되었습니다. 강도인 자기들은 동일한 정죄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죄 값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것 같지 않았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왜 십자가에 박히셔야했는지 그는 속죄의 비밀들을 알지 못했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저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아마 억울한 죽음쯤으로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죽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분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한 교제 속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눈물 흘리지만 이상하게 그 눈물은 자기를 위한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것은 제일 먼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유신론에 대한 긍정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존재할 뿐 아니라 살아계셔서 나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시는 분이라는 것, 그리고 나의 생사와 행복과 불행 모두를 장악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죄인은 하나님이 결국에는 찾아내서 당신의 정의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은 비록 사람들이 모함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도 자신들과 같이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평화롭게 교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바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내려다보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들이어야 합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마땅히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 이 죄수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시며 자기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나 죄짓고 거역할 때나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내 인생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무엇인가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어제 몰랐는데 어제 예배를 끝내고 나가다가 물어보니까 2시간 25분을 설교했다고 합니다. 1시간 25분쯤 설교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설교했는데 중요한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어라.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복을 받아라. 그리고 하나님과 만나는 은혜의 경험 속에서 살아라.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될 분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은 아주 달콤한 사랑으로 나를 데려가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 그리고 나의 인생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 눈을 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눈빛을 떠나 어디로 갈수 있겠는가 반문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는, 인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41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 강도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 심문을 받고, 사형이 언도되고, 그리고 끌려가서 죽도록 맞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서 그 손에 못 박히고, 그것이 도르래에 끌어 올려져서 나무에 끼워지고, 거기서 박힌 못 세 개에 온 몸아 지탱되면서 서서히 피가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그때에 인간의 신체는 견딜 수 없는 지옥을 넘나드는 고통이 시작됩니다. 사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대부분 희열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죽기 직전에 온몸에 남아있는 엔도르핀을 다 쏟아내서 인간으로 하여금 아주 지극히 평화를 누리며 죽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죽음의 예외 중에 하나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대략 60키로, 70키로, 80키로 정도 되는 성인 남자의 몸이 못 세 개에 모두 지탱되고 있습니다. 출혈은 계속 이루어집니다. 머리는 터지는 것 같이 아파 혼절하기도 합니다. 그런 속에서 죽어가면서 이 강도는 처음엔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예수를 욕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십자가에서 평화롭게 고통을 모두 참고 말없이 죽음을 감당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으로 자기가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재수가 없어서 혹은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보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행한 모든 것은 당연한 응보를 가져왔으며,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대부분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너무 모릅니다. 그냥 왜 이런 현실이 나에게 닥치게 되었는지 대해서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들이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원망하고 욕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고발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못 박힌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기들이 좋아서 강도짓하고 자기들이 좋아서 나쁜 짓하다가 발각되어서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상관이 없는 예수를 향해서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도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불행은 대부분 자신의 죄 때문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불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것이 자신이 죄 때문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그 고통을 통해서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내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자행된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 손해와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이 참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인간, 특히 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비록 이분은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와 꼭 같은 죄수 중 한사람으로 형벌을 받고 죽어가고 있지만 이분이 하신 일에 비추어본다면 이분은 이런 식의 대우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십자가에서 그분이 평화롭게 죽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들었던 예수에 관한 소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는 착하신 분이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고 길을 잃은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어 그를 다시 살게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들었던 소식에 대한 파편적인 인상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요동함이 없이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분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은 하나님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모든 여러분들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창조하실 때도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 하셨고, 구원하실 때도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하셨고, 구원 받은 후에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고난도 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생에 대한 많은 고민이 그 자체만을 가지고 씨름함으로써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받는 것도 그리스도께 돌아감으로써 받을 수가 있습니다.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던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누리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은혜의 경험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이시며 그분 안에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계속 살 수 있는 길이 있으며 더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는 길이 그분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나쁜 일이 있다고 해도 이 고백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나쁜 일을 하신 적이 없으며 주님이 행하신 일은 육신을 입고 지상에 계실 때나 보좌위에서 우리를 다스릴 때나 그분에게는 잘못한 것이 없으시다는 고백 말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잘못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죄 없는 분으로 믿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넷째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죽은 후에 사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당신을 믿어 천국에 이르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형벌에 두신다는 것을 믿었다면 그는 결코 죄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렇게 십자가에 매 달릴 정도의 큰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몰랐습니다. 천국과 지옥도 몰랐고 하나님의 거룩하심도 몰랐고 그냥 자기 욕심이 이끄는 대로 자기 욕망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아마도 최소한 세 시간에서 여섯 시간에 이르는 그 시간동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시간이 여섯 시간이니까- 처음에는 예수님을 비방했어도 어느 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째든 세 시간 약간 이전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 그 어느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죄만 지으며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이고,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갑시다. 나도 들어가겠소.”가 아니라 “당신의 나라에 이르실 때에 나를 기억해주소서” 하며 가장 미천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께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공로 없으나 당신의 은혜로 나를 천국에 이끄소서.”라는 탄원을 하였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잠깐입니다. 젊은 사람은 늙고 늙은 사람은 죽습니다. 아름다웠던 사람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힘이 넘쳤던 사람은 그 힘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몸 하나를 지탱하기에도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죽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삶의 경계선을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그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오늘 이 아침의 시간이 바로 그럴 시간입니다. “내가 교회는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몰랐고 죄짓고 불순종하고 이렇게 살면서 내가 죄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천국은커녕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고 그래서 결국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만큼 불행해졌나이다. 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겸손하게 구해야 합니다.
오늘 십자가에 매달린 이 강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예수께서 죽으신 후 낙원에 오르신 그 첫 번째 동반자가 바로 이 흉악한 강도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되 그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달라고 비십시오. 그래서 “나의 모든 꼬인 것 같은 삶은 여기에서 그 매듭이 풀어져야 되겠나이다. 나를 용서해주시고 나를 긍휼이 여기셔서 내가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이 아침이 성경의 이 강도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