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마음을 토하라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 62:8)
녹취자: 조경훈
다윗은 자기가 고난 받았던 때를 회상하면서 이 시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는 본문 바로 앞에서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시련과 역경을 당했을 때에는 우리 마음 안에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한 편으로는 마음이 믿음으로 살고자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끊임없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 때 이루어지는 것이 이 둘 사이의 대화입니다. 이런 기법을 시편에서는 많이 사용합니다. 자기가 마치 자기가 아닌 것처럼 시인이 ‘내 영혼아’ 하고 타이르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아는 어떻게 하던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신앙의 자아입니다. 오늘 이 말을 듣고 있는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떠나서 두려워하고 방황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말씀인 8절이 등장하는데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하라
제일 먼저 그를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시시로’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든 시간에’라고 나옵니다. “백성들아 모든 시간에 그를 의지하라” 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분께 기대는 것입니다. 일부를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상황을 오직 하나님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만이 이것을 다루실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진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시급히 회복되어야 할 것이 하나님께 대한 의지의 마음입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은혜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싶고 그렇게 의지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마음의 갈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도 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가지만 매 순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입고 먹고 마시고 쉬고 일하고 심지어 잠자는 것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거기다가 주님의 일이라고 뭐라도 조금 섬긴다고 하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붙들어 주시고, 이렇게 기도하는 나 자신을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일단 기도를 시작하면 기도가 깊어지고, 깊어지게 되면 그 기도는 길어지게 됩니다. 긴 기도가 깊은 기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기도를 하려고 하면 언제나 그 기도는 긴 기도를 가져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매우 크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기도하고 물러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의지의 영으로 가득 차 있을 경우에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탱되고, 하나님에 의해서 종결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는 결국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부모를 찾는 것처럼 신실한 성도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예배로 나타나면 간절한 예배가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기도로 나타나면 열렬한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자신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면 매우 진실하고 꾸밈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 만큼 자기를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대개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섬겨야 할 하나님 대신 자신을 섬기며 자신을 자기인생의 최고의 판단자로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그것이 주님 보기에는 목을 곧게 하고 살아가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새벽 첫 번째 주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매순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종종 가르쳐 드리지만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장 좋은 비결은 무슨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고 짧은 기도를 지속적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탄식도 괜찮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이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아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을 직접 실천해보면 이것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사뭇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간절히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오. 주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를 홀로 두지 마옵소서. 예수여. 동행해 주시옵소서.” 이런 짧은 기도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드릴 때 우리의 마음에 쇄신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정말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매순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라
두 번째는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토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파크’ 라는 단어인데 물 같은 것을 쏟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속이 불편해서 물질을 토하는 것이 아니라 물 같은 것을 확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씩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양동이 같은 것들을 쓰러뜨려서 물이 확 쏟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액체에만 쓰지 않고 낱알 같은 고체에도 쓰는 용어입니다만 어쨌든지 분량 이상으로 한 번에 기울여서 확 쏟아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의 앞에 마음을 쏟으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 속에서 우리의 죄 같은 것들을 음식물을 토하듯이 토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을 토하라고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언어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방식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토한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그 마음을 기도 속에서 언어로서 하나님 앞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언어를 통해서 길어 올려 지고 그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림으로써 우리 속에 있는 생각들이 건져 올려 져서 하나님을 향해 부어지는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언어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가 좀 안 좋으신 분들을 보면 대게 기도시간에 조용히 침묵하다가 갑니다. 물론 그 침묵 속에서도 많은 언어를 길어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기도하지 않고 은혜에서 멀어지면 마음속에서 풍부한 언어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보고 싶고 너무나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경우에는 언어가 막 쏟아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대화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껄끄럽고 만나지 않고 그냥 살았으면 좋았을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이 사람과의 자리를 빨리 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요즘 새로운 직업이 뜨고 있습니다. 사표를 대신 내주는 회사가 있다고 합니다. 가격은 알바의 경우에는 20만원을 받고 정식 직원인 경우에는 50만원을 받는데, 사표를 제출해 줄 뿐 만 아니라 거기에 남아있는 물건을 다 챙기고 퇴직금 수속까지 밟아주고 물건까지 다 챙겨서 집으로 배송을 해 줍니다. 그 사람은 퇴사 문제 때문에 다시 그 직장을 갈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맡기겠습니까?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안 좋고,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어느 날 불쑥 직장을 그만 뒀는데 사표를 들고 또 직장을 찾아가서 뒷수습을 하는 것이 싫은 사람입니다. 상사한테 ‘너는 왜 직장을 그만 두냐’고 하면서 또 잔소리를 듣고 거기서 언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말로 폭력을 행사하는 직장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보기도 싫은 것입니다. 거기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용역회사에 맡기면서 카드 결제를 하면 완벽하게 서비스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별로 만나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둘을 묶어 놓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습니다.
기도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은 말이 많아집니다. 이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은혜에서 멀어져 있으면 하나님과의 만남이 생소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개선되는 법은 없습니다. 신앙의 지식은 퇴보하지 않는데 많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얼마든지 퇴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라고 하면 감히 소리를 내서 기도할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그것도 이 속에 언어가 간절해 질 때에 그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안 됩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쏟는다고 하는 첫 번째 의미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는 방식입니다. 쏟는다고 하는 것은 찔끔찔끔 흘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물을 바깥에다가 붓는데 한 번에 찻숟가락 하나씩 찔끔찔끔 흘리는 것, 마치 커피에 점 드립 할 때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을 우리는 쏟는다고 말을 안 합니다. 쏟는다고 하는 것은 다량의 물을 뜻밖에 부어버리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은 쏟는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을 쏟으라”라고 할 때의 기도는 엄청난 양의 언어가 아주 특이한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확 쏟아 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에 그것이 바로 ‘마음을 토한다’ 혹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마음을 쏟는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깊이 회개하였을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이 관계를 해결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쏟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언어의 양은 많았고 기도는 멈출 수 없이 강력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도하고 나면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이 흘러가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쏟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 시인의 경우에는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쏟는 이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담장이 주변에 쌓여 있는데 무슨 이유로 그 담장이 무너집니다. 그 담장이 안쪽으로 무너지면 담장 안에 집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다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담장 사이를 걸어가는데 어느 날 담장이 안쪽으로 무너집니다. 죽임을 당하는 위협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 뜁니다. 그러면 간신히 살아납니다. 시인은 이런 경험을 악인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담벼락이 쓰러지리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조심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담벼락은 위험하니 멀리 떨어져서 걷는 사람도 없습니다. 담벼락은 안전하게 만들어진 건축물이라 여기기 때문에 입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어느 순간에 이것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방식과 힘에 있어서 평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악인들에게 당한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고 뜻밖의 공격이었는지 시인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기대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너무 위중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위해서 홍해 앞 바다에 서 있고 뒤에서는 애굽의 600승의 병거들이 그들을 잡아가기 위해 추적해 오고 있을 때와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내 작은 힘으로 뭘 보텔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 속에서 시인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께 자신의 소망이 달렸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마음을 쏟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기도입니다. 마음을 쏟는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너졌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라졌던 영적인 길을 다시 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생명이 쏟아 부어지는 그 관이 다시 청소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생명이 물 붙듯 부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온전히 교통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고 났을 때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많은 성도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의 영혼이 주님을 만나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의 죄와 불순종에 대한 진지한 회개가 있다는 뜻이며, 간절한 눈물의 기도는 옛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이런 기도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꿈꾸게 됩니다. 자신의 무너진 신앙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됩니다. 거기서 다시 용기를 얻고 자신의 위기를 바라보는 생각들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시시때때로 주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시시때때로 그분께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를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마지막 세 번째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지금은 전쟁이 나면 피난처라고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폭탄이 떨어져서 지하 100미터까지 파고들어간다고 하니 이제 숨을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당시의 전쟁은 지금과 같은 첨단 무기의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위에 숨어버린다면 화살의 공격도 이길 수 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도 있는 다양한 피난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망 다니던 시절과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망명을 하던 시절에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자기의 몸을 피하고 죽음의 위협을 이기던 때의 경험이 이 안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 들어가서 숨어 있으면서 저 아래서는 전쟁의 소리가 요란하지만 자신은 여기에서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며 아마 적군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피난처 신앙’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수시로 마음을 쏟아놓는 사람들에게는 유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제껏 나를 돌보셨으니 이번에도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쉬리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큰 날개로 나를 덮으시고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나를 숨기시고 그 은밀한 장막 안에서 크고 비밀스러운 은혜를 내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높아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야 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음을 쏟아야 할 하나님을 마음을 쏟아서 찾지 않고,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피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꼭 성공할 것 같아도 실패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것 같아 보여도 반드시 승리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의 행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우리의 삶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해를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매일매일 우리 앞에 전개되는 일 때문에 우리들이 손해를 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때로는 뜻하지 않게 삶이 요동치며 전개될 때에 그 많은 시련 속에서 우리는 종종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피난처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우리는 요새와 같은 피난처에 피할 수 있고 거기서는 주님이 그 모든 요새를 지키시고 피난처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용사이십니다.
신앙은 이렇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마음을 쏟으며 그분을 피난처로 삼고 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께 피난하는 약도를 얻게 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은 요란하지만 내가 이미 하나님의 피난처에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시간에 기억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며 삽시다. 기도로 마음을 쏟으며 삽시다. 피난처이신 주님께 피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