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와 나의 목회(2)
녹취자 : 오희열
학문이라는 것은 직조물처럼 서로 짜여있기 때문에 에드워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의 미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은 당시 대륙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대륙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렇게 하다보면 에드워즈만을 공부한다는 것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공부가 그렇습니다. 그의 시대와 시대의 정신, 지성사, 사회사, 교회역사, 이런 것을 함께 연장하면서 이해해야만 해석이 됩니다. 이런 대가들, 조나단 에드워즈는 확실해 대가입니다. 이런 대가들을 연구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이 사람에게 심취하면서 모든 것들을 이분이 최초로 발명해낸 것처럼 심취하기 쉽습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의 시대를 연구해야 하고 다른 신학자들과의 관계, 그의 사상의 원천이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다각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금 이렇게 생애 연대기를 이야기하면서 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관지어서 설명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불온서적사건은 당시의 공산주의 이런 것이 아닙니다. 당시는 공산주의가 생겨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이제 과학이 발달하면서 의학이 진보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금기시 되어 있었는데 의학책이 나오면서 인체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청년들이 그 의학책에 관심이 있던 게 아니라 거기에 나오는 인체 사진, 여자의 나체 사진 같은 것을 놓고 인체의 장기 등을 설명하는데 그것이 그 당시에는 우리로 말하면 포르노물처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으니 말입니다. 그것을 돌려보면서 사람들이 히히덕거리며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른들의 눈에 띄면서 교회에서 이래도 되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때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사실 그렇게까지 문제 삼을 필요가 없고 얼마든지 차분하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사람들을 치리하도록 결정하고 명단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단이 틀린 명단이었습니다. 아무 상관이 없는데 자기 이름이 잘못 들어간 사람들의 입장에서 펄쩍 뛸 노릇이었습니다. “이러이러한 책을 보고 문란하게 한 사람, 성도 김남준” 이랬는데 본인은 그 책 근처도 안 간 것입니다. 거기서 신뢰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모두 목회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이니 설교를 잘 해야 합니다. 설교를 잘 못한다고 쫓아내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행정이 정확해야 합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조나단 에드워즈가 실수를 하게 되고 평론가들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너무 덤벙대며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고 그때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지도자는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그 일로 교회가 내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평소에 에드워즈는 따뜻하게 성도들을 심방하며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종이 달려있어서 그 줄을 당기면 댕그렁 소리가 나는데, 아무도 거기 손을 댄 사람이 없었는데 줄이 끊어져서 종이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교인들이 왜 그 줄이 떨어졌을까 이야기하는데 어떤 교인이, “난 알아! 에드워즈 목사님이 그 종 줄을 째려 본거야.”합니다. 설교의 길이를 보면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는 대지 1,2,3 정도로 끝나는데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는 16,17까지 나갑니다. 그것이 음성으로 남아있지 않으니까 에드워즈의 설교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짐작으로 미루어 세 시간은 족히 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설교들을 쏟아내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외쳤으니 그런 설교를 하려면 평소에 심방도 많이 하고 한 사람 한 사람 품으면서 해야 하는데, 한 때는 심방을 해 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나 이런 분들은 잘 했습니다. 결국 자기에게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열세 시간 이상을 공부와 기도에 매달려 올인하게 됩니다. 교인들과는 인간적으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이 중재에 나서는데 에드워즈의 목사와 교회는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려줍니다.
그 배경에는, 에드워즈는 철저한 전적타락을 신봉하는 원죄론자였습니다. 원죄론의 논쟁에 잘 나옵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 소위 5 solar 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칼빈이나 개혁자들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따라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불결하고 더러운 지, 그리스도의 의와 믿음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에드워즈가 뼈저리게 동감하고 있었는데 이미 이런 칼빈주의 사상이 새롭게 밀려드는 사조들에 의해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건군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워싱턴부터 시작해서 토마서 제퍼슨 등등, 거의 예외 없이 이신론자였습니다. 당시 이신론, deism, 하나님은 태엽을 감아 놓듯이 세계를 창조하셨지만 그 후 하나님은 세계가 그 법칙대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던 합리주의, Enlightenment, 계몽주의인데, 계몽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미몽입니다. 데카르트 이후로부터 인간의 존재 중심에서 사유, 인식론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고 데카르트에 의해서 세로운 세계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18세기 이성주의 시대가 준비됩니다. 그런데 사실 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닙니다. 데카르트는 이미 조나단 에드워즈보다 1세기 앞선 사람입니다. 그 전에 이미 그런 운동이 있게 되고 낭만주의 운동이 있게 됩니다.
대륙에서 이쪽으로 사상이 이동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지성적으로는 사실 당시 미국은 촌이었습니다. 촌사람들에게는 항상 도시를 동경하는 것이 있고 저쪽에서 나오는 새로운 학설들은 권위있게 받아들여집니다. 더 놀라운 일들은 뉴턴이 소위 프링키피아(Principia)를 씁니다. 그것이 가져다 준 충격은 지금 우리에게 컴퓨터가 준 충격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한 수학적 설명을 그 책에서 합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천둥치고 번개치고 비가 내리는 모든 것들을 수학적 수식으로 환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뉴턴입니다. 뉴턴주의가 일어나고 나니까 과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면서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이성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후에 병원체도 발견되고 질병에 걸리거나 기상이변이 오면 이것이 신의 조화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예외 없는 엄밀한 과학법칙에 의해서 이것들이 움직여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관에 어마어마한 지각변동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에드워즈 때 뉴턴주의가 유럽을 지배하고 데카르트주의가 이미 지배하고 있던 것이 막 수입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식자층을 중심으로 이런 새로운 이론들이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설득력을 입힌 것입니다.
언젠가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중세가 가지고 있던 형이상학적이고 실제론적인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면서 인식론 중심으로 변하고 존재에서 존재자로 관심이 옮겨오게 되었는지, 이 맥락을 여러분이 한 학기 정도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거기서 다뤄야 할 학자들이, 데카르트부터 시작해서 영국의 경험주의, 특별히 하이데거가 신기원을 이룹니다. 그리고 현상학을 했던 에드문드 후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저쪽부터 강조점이 이동하면서 나옵니다. 20세기에 이런 하나님 없는 사상을 비처럼 쏟아지게 한 사람이 니체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철학사적인 이해를 한 번 갖게 되면 현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갈까 하는 것에 대한 근현대적인 자양분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고구조가 결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거의 중세시대의 미몽에 갇혀있는 사람들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지만 에드워즈를 가야 하니까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 사상들이 밀려들어오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다보니까 기독교 신앙이 거의 이신론 차원으로 떨어져버립니다. 미국의 국부들이 지금도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지만 거의 다 이신론자들이었습니다. 신실한 칼빈주의자들은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목회자인데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고,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생명관찰형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미를 관찰하면서 움직이는 각도가 얼마인가, 몇 번 만에 어떤 일을 하는가, 이런 운동은 하나하나 기록해서 관찰하면서 논문을 썼습니다. 당시 뉴잉들랜드에는 뉴터니즘을 이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아주 지성인 식자계층이 이해했는데 그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다보니까 기독교 신앙이 설 자리를 상대적으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그 뉴턴주의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앙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새로 나온 뉴터니즘을 뉴잉드랜드에서 거의 완벽하게 이해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조나단 에드워즈였습니다. 에드워즈는 그것에 대해서 새롭게 신학적 해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신학적 오해들이 생기게 됩니다. 페넨데이즘 같은 오류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힘이라고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경우는 힘의 의지, 권력의 의지라고 설명하는데, 모든 만물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모든 풀부터 시작해서 곤충이나 인간까지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생명 생성의 이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 속에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거대한 질서가 위에 있고 그것이 실제이고 이것은 그것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위에서 움직이는 법칙과 규율, 조종하는 원천, 이것이 Gott, 신이라고 본 것입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할 때 “신이 타살되었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신이라고 생각하던 지위에 있던 초월적인 법칙, 그런 것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조로아스터교의 시조, 철저한 이원론자인 짜라투스트라는 기원전 7세기의 인물을 동원해서 이원론을 부인하면서 초월체계를 부인하는 것을 토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것은 철저히 혼자 있는 존재이고 그렇게 될 때 인간은 허무와 자기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해 낸 사람이 Übermensch, 극복인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우화가 나옵니다. 커다란 뱀이 한 목동의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가 숨막혀 죽어가는 것을 보고 뱀을 뜯어주려고 하는데 너무 힘이 세서 도저히 뜯을 수가 없었습니다. 짜라투스트라가 이렇게 외칩니다. “절대지지 말고 그것을 죽여라! 입을 벌려서 뱀의 머리를 콱 깨물어버려라!” 놀랍게 뱀의 머리가 박살납니다. 거기서 해방됩니다. 니체는 철학사에서 읽지 않고 문학사에서 읽습니다. 비유와 상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를 철학가가 아니라 문학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상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 뱀이 상징하는 것은 영원입니다. 인간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그런 법칙은 없다고 생각하고 조로아스터가 짜라투스트라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대지와 하늘을 대조하여 설명하면서 “이 대지의 변화무쌍하고 생성하는 삶을 봐라. 여태까지는 천상에 있는 것들이 진짜이고 이런 것들은 그림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그림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으로서 신은 죽었다. 그런 것들은 없고 여기는 모두 우연과 생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허무이 문제를 극복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연적인 생성, 변화무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영혼을 향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럴 때 인간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힘이 싹 빠지면서, 뭔가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해야 하는데 “너는 오늘 죽는 존재다” 하면 의욕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것이 있겠구나 하지 말고 그런 영혼에 대한 관념이 뱀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콱 깨물어서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그 영혼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현실을 딛고 살아갈 수 있게 된 사람,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허무를 극복한 그 사람이 Übermensch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런 사조들을 가능하게 하는 거대한 자양분들이 17세기 중분이후로부터 뿌려지기 시작하고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4세기의 인문주의로 올라가고 더 올라가면 피렌체의 르네상스 이전에 있었던 12세기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프리드리히 2세나 아시시의 프란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거기서 자양분들이 뿌려지기 시작하고, 더 올라가면 쿠자의 니콜라스나 윌리엄 오캄 같은 사람들이 이미 세계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뿌린 것입니다. 신학대전이라는 체계자체를 부정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내놓은 것입니다. 거기까지 올라가면 봇물처럼 터지는 시기가 17세기였고 이 쓰나미가 미국을 때렸을 때는 미국을 이런 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토양이 되지 못했습니다. 열렬한 신앙도 없고 지성에 있어서도 이런 것에 응답할 수 있는 비판적인 정신과 사유도 없고, 이런 가운데 그 이전에 에드몬트 후설 같은 사람들이 있기 전,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심리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브렌타노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브렌타노의 강의를 들으면서 에드몬트 후설은 큰 충격을 받고 심리과학실증주의 쪽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모든 학문이 전체적으로 이성으로서만 제단되는 것, 무엇인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에 대한 관심사와 발전의 토대들은 마련되는데 예전에 하던 학문의 방식이 아닌 것입니다. 예전에 하던 학문은 신이 세계를 창조했고 인간은 그 신을 공경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하고 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무슨 공부를 하든지 그것은 그 지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심리학에 눈을 뜨게 되는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그것이 데카르트, 데카르트 이후에 낭만주의 시대가 열리는데 데카르트와 파스칼이 같은 시대에 살았는데 이때 이미 데카르트가 반박을 받았습니다. 논리적이지 않다,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참이라고 데카르트가 명제를 설정했는데 파스칼은 그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인간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데카르트는 파스칼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증거가 나옵니다. 아프다고 할 때 암스테르담에서 내려와서 서로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나 파스칼은 데카르트적인 사고가 아주 해로운 사람이라고 봤습니다. 데카르트는 당대와 이후의 모든 계몽주의자들에게 이성 이외에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런 유전자가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 속에 변형되어 나타나면서 엄청난 자양분들을 만들어주고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 사상들을 이야기할 때 파스칼은 논리가 이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있다, 그 마음의 논리는 이성의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질서정연하다. “하나님은 이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할 수 없다.” 고 하는데 유신론자들이 그 논쟁을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무신론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논문을 쓴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것만 논리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의 논리와 함께 심장의 논리가 있는데 심장의 논리는 이성의 논리보다 더 중요한 결정을 우리가 내리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질서정연하게 말할 수 있지만 네가 널 사랑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네가 널 사랑하는 이유를 댈 수 있는가? 아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도 날 왜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어떤 점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진짜로 좋아서 끌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뭐가 좋은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의 좋은 점이라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똑같이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 확실히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했을 때는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나는 그것을 뒷구멍에서 하는데도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를 절대 배신하지 않고 언제나 내편입니다. 이것 자체는 논리가 아니라 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사유를 생각해보면, 에드워즈 당시에 시대적으로 그런 사상의 씨앗이 되는 것들이 물밀 듯 밀려온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과거에 중국에서 최신 학설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듯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기독교 신앙을 허물게 되었습니다. 이신론은 그 두 가지의 아주 훌륭한 타협이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이것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이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에드워즈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가? 실제로 김영길 박사님이 살아계실 때 대화를 했습니다. 그분도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분을 좋아했습니다. “교수님은 전공자시니 물어보겠습니다. 힘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이 대학자가 대답을 못합니다. “에너지가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한 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하셨습니다. 두 마디로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베일에 싸여 있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사물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 힘이라고 했는데 힘 그 자체는 만물이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그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 우주를 움직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에너지가 다른 것을 변환시키고, 그 영향을 받고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원천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찾고 있는 것이 흑암에너지라고 하는 것인데 그럼 그 흑암은 어떻게 에너지를 갖게 되었을까 하면 또 다시 원천의 문제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붙들고 계시다는 것, 우리는 그 고전적인 신앙을 오히려 더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제가 Philosophy of science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수학은 400년이 흘러서 우리처럼 수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에드워즈의 해석이 너무나 웃기고 동의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수준에서 보면 안 됩니다. 그 당시의 수준에서 봐야 합니다. 그 당시 수준으로 본다면 아이작 뉴턴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해석은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을 막아냈다는 것입니다. 거의 동지도 없이 혼자의 지성으로서 그것을 맞서서 대항해냈다는 것 자체는 엄청난 지성의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얘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1746년에 신앙감동론, Religious Affections, 기억나실 것입니다. 이 설명을 듣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이 출간됩니다. 그 다음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인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큰 딸과 약혼했다는 말이 있고, 결혼했다는 말이 있는데 스위니 교수에게 들은 바로는 약혼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결혼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정도로 가까웠던 남자친구였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스물한 살에 회심하고 스물네 살에 선교사로 헌신하고 스물여덟 살에 죽습니다. 그는 인디언 선교사였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라는 책에 상세히 나오는데 그 맥락을 이해하면서 읽어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 정도로 희생적인 선교사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마오카족에 의해 살해당했던 짐 엘리엇이나 헨리 마틴 같은 쟁쟁한 근데 선교의 장을 열었던 위대한 젊은이들이 사실은 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선교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일깨웁니다. 한 번 읽어보십시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스물여덟 살에 폐결핵으로 소천합니다. 이 사람은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에드워즈는 이 사람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이 사람의 일기책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서 설득하고 설득하여 출판하게 됩니다. 에드워즈가 출판한 그 책이 바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 항상 읽었던 책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기도를 좀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겸손하게 된다.”고 한 책이 이 책입니다.
노샘프턴 교회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해임됩니다. 마지막에 공동의회에서 투표할 때 에드워즈를 지지해준 사람이 수백 명 가운데 열여섯 표 정도만 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는 옳음 하나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가슴에 품으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서 문제를 다루고 있던 처리위원들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칼빈주의적 원죄론에 대해서 강력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이가 열한 명이었는데 막막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정합니다. 케네스 민케마(Kenneth P. Minkema)라는 예일대학의 조나단 에드워즈 센터 소장으로 계신 분이 박사논문으로 에드워즈의 가문에 대해 썼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고, 그 당시에 이미 조나단 에드워즈는 수십만 평의 땅을 가지고 있는 지주였습니다. 엄청난 땅을 가지고 있었고 4~5명의 노예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좀 안타까운 점은 노예제도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예들을 가족처럼 사랑으로 대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 스톡브리지의 인디언 선교사로 파송가게 됩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에드워즈의 학문성과 경건을 탁월하게 생각해서 목회자로 초청하지만 자신은 영국에서 목회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거부하고 선교사로 갑니다. 선교사로 간 후 저술 작업에 몰두하고 괄목할만한 책들이 그 때 나오게 됩니다. “의지의 자유”, 마크 트웨인이 읽다가 집어던지면서 미치광이가 쓴 책이라고 했던 유명한 책입니다. 저와 한 10년 전에 같이 공부했던 학생이 이번에 조지 마스던 교수 밑에서 의지론으로 박사논문을 써 왔는데 이 책이 어려운 책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두 번을 통독했는데 많이 이해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논문들을 보면서 보충을 했습니다. 내용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1755년에, 상당히 나이가 많아서 죽기 전입니다. 이때 아주 중요한 책 두 권을 씁니다. 긴 논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천지창조의 목적과 참된 미덕의 본질” 조나단 에드워즈의 다른 책은 안 읽어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번역한 것을 보면 번역자가 이것을 이해했을까? 하면서 보는 책이 이 책입니다. 제 설명을 들으면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이 두 논문은 에드워즈의 신학이 건물이라면 이 두 개가 기초공사입니다. 지하실 기초공사라고 보면 됩니다. 나는 에드워즈를 읽은 사람은 두 종류로 분류합니다. 이 두 논문을 읽은 에드워즈의 독자와 이 두 논문을 읽지 않은 독자, 이렇게 분류합니다. 이 두 가지는 꼭 읽어야 합니다. 엄청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앞에 나오는 내용들이 이 “천지창조의 목적”을 취급하고 있고 “참된 미덕의 본질”은 “도덕적 통치”에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등등에 기초적으로 놓여있습니다. 사실 이 하나만 가지고도 한 학기를 들어야 할 정도로 분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철학사도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원죄론”을 저술했는데, “원죄론”은 논쟁하다가 나온 것이고, 아론버가 죽고 그 후임으로 뉴저지 대학, 지금의 프린스턴 대학의 학장으로 청빙을 받습니다. 가서 봉사하다가 1758년에 천연두 예방접종을 받은 후에 부작용으로 죽고 사라 에드워즈는 필라델피아에서 돌아가십니다. 이질로 같은 해에 소천하게 됩니다. 아주 비상한 연합을 이루었던 두 부부가 같은 해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30분만 더 하고 밥을 먹겠습니다. 서론적인 배경을 설명했으니까 본격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신학이 아니라 일반 학문분야로 알려졌습니다. 재밌는 것은, 영문학사에서도 이 사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 에드워즈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특히 미국 문학사에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괄목있는 사람이고, 교육학을 하는 사람들도 에드워즈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국 철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에드워즈는 넘어야 할 하나의 산입니다. 심지어 과학하는 사람들에게도 에드워즈는 넘어야 할 산입니다. 에드워즈 한 사람이 탁월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설교가요, 교육사상가요, 과학해설가요, 심지어 심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각자 자기 전공분야에서는 미국의 지성사를 연구하면서 에드워즈는 어떤 학문에서 출발하든지 간에 한번쯤은 생각하고 넘어야가 할 정도의 거대한 히말라야 산 같은 각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제주도는 아시는 것처럼 하나의 봉우리입니다. 그 봉우리가 없으면 제주도는 없는 것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한라산 자락에 있는 것입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한라산 자락에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밟고 가든지 위로 계속 가면 한라산 백록담에서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다양한 학문이 수렴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탁월한 독서가였고 사색가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미셀러니가 네 권입니다. 13, 18, 20, 23권으로 되어있고, 자유의지론, 신앙감동론, 원죄론, 과학, 철학, 윤리학, 구속사, 설교집이 여섯 권이나 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론, 은혜, 이런 책들로 이루어집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관심이 20세기에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제까지 내려온 삼위일체론은 “일다”의 문제입니다. “1이냐, 다냐” 이것은 철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신학공부할 때, “하나, 여럿”, “있음, 없음”, “본질, 현상”, “선, 악”, “우연, 필연” 이런 것들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어야만 일관성있고 깊이있는 설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훈련입니다. “일다”는,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데 삼위일체로 계십니다. 서방교회 신학자들의 전통은 “1”에서 시작합니다. 한 하나님이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 한 하나님이 경륜 속에서 삼위로 역사하신다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로부터 출발해서 여럿으로 옮아가면서 사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는 법학적인 사고이고 철학적인 사고이고 플라톤적인 설명을 많이 따르고 있어서 그쪽으로 많은 발전을 보게 됩니다. 동방교회에서는 달랐습니다. 터키 같은 곳을 여행하다가 창문들을 보면 여러 개의 원을 맞닿게 해서 국화빵처럼 만든 모양을 보게 됩니다. 소피아 성당을 보면 아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꽃잎처럼 물리면서 오천 명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기둥없는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굉장한 건축술입니다. 거기에 신학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럿”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지체들이 함께 뭉치면서 하나의 연합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럿에서 시작해서 하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상 세 분이시다. 여기서 “분”이라는 것은 한 개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위격을 뜻합니다. 세 위격,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경험되는 것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설명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속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거대한 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못 박혀 죽으신 성자를 만나고, 그것을 통해서 성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여럿부터 출발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출발해서 어떻게 서로 다른 위격이 한 하나님이실 수 있는지를 페리코레시스라는 이론으로 설명하면서 삼위가 신성히 교통하면서 한 하나님이 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에드워즈는 놀랍게도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을 따라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대신, 다소 낯설어 보이는 동방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다양성의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글로벌시대가 아니고 로컬시대여서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이나 이질적인 상호교통이 없었습니다. 평촌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끼리 얼굴보며 사는 것입니다. 미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었습니다. 내가 그리 잘 생기지도 않았지만 평촌 사람들을 보니까 내가 그렇게 빠지는 외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방송으로 전파를 타면서 십만 명 중에 이삼십 명 정도 나올까 말까 한 사람들이 브라운관을 지배하니까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됩니다. 화장품 광고를 보면 이 제품을 사용하면 저 모델처럼 된다고 유혹하지만 아무리 발라도 그 모델처럼은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열등감도 생깁니다. 지금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는 이유는 다양성의 문제입니다. 백인과 흑인의 문제, 이민자와 원주민의 문제, 상위소득자와 하위소득자의 문제,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병든 자와 건강한 자, 법적인 지식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합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가 막힌 접근방법과 전망, 원리, 이런 것들을 에드워즈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성의 개념과 적실성이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통일체로 보지 말고 다양성을 먼저 보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난제를 푸는 데 훨씬 뛰어난 접근 방법이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칼빈보다는 오히려 에드워즈를 연구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칼빈 시대만해도, 존 오웬 때도 마찬가집니다. 유럽 전체가 다 교회입니다. 호적등록을 교회에서 담당하던 때였습니다. 태어나면 모두 교인입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교회의 교인이냐 가짜 교회의 교인이냐, 그것만 문제였는데, 에드워즈 시대만 해도 수많은 불신자들이 나옵니다. 이방사상에 기우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에드워즈 때만해도 미국에는 가톨릭이 없었습니다. 가톨릭이 없었기 때문에 에드워즈 신학에는 가톨릭에 대한 비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후에 들어옵니다. 그런 다양한 사회에 대한 해결 방법에 대한 적실성을 에드워즈의 신학에서 오히려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가 각광을 받는 이유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가 로마서 강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현재 에드워즈의 번역된 책이 40~50권정도 나옵니다. 조사해보니 200여 편이 넘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한국 신학계에 크게 소개된 것은 전적으로 두 사람 덕분입니다. 한 사람은 마틴 로이드 존스이고 두 번째는 김남준입니다. 왜냐하면 마틴 로이드존스가 로마서 강해를 펴낸 후 현재까지 마틴 로이드존스의 책이 80권 정도 됩니다. 거기에서 로이드존스가 에드워즈를 만난 이야기를 하면서 에드워즈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칭송합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Banner of Truth에서 나온 전집은 아니고 그 중에 일부가 빠진 것을, 돋보기로 봐야 보일만큼 작은 글씨로 된 두 권을 찍어냅니다. 지금도 아마존에 가면 two volume 으로 된 것을 값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고서방에서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하나님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만난 하나님과 너무나 다른 하나님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로이드 존스에게 한 때 심취했던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미국에 갔을 때 런던 Theological Seminary에 윌리엄슨 이라는 젊은 학자가 있었습니다. 에드워즈에 대해서도 스페셜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인데, 같이 토론하다가 제가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마틴 로이드존스가 그렇게 에드워즈를 극찬했는데, 마틴 로이드존스 때문에 한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읽히기 시작했는데, 나는 참 이상한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리 봐도 마틴 로이드존스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다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들 중에서 자기 맘에 드는 책 몇 권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다 읽었더라면 에드워즈에 대해서 동의했을 것에 대해서 나는 한다.”고 했더니 자신도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내가 뭐라고 떠벌일 입장은 안 되지만 개인적으로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에드워즈를 극찬했지만 에드워즈의 사상을 전부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 일부를 자기에게 맞는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쨌든 로이드존스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마틴 로이드존스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저입니다. 왜냐하면 제 책이 백만 권 이상 나갔는데 어떤 책에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소개되었습니다. 사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학식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저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한국 사람이 읽은 양으로 비교하면 내가 쓴 책이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쓴 책보다 더 많이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그 책을 사서 그냥 두었을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렇게 많은 몇 권씩을 다 읽었겠습니까? 그런데 내 책은 한 권씩 샀기 때문에 읽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에드워즈를 널리 전파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즈와 존 오웬에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존 오웬은 사람들이 이름도 몰랐습니다. 우리도 신대원 다닐 때 잘 몰랐습니다. 우연히 교회사에 한 줄 나왔습니다. 설교부터 책에 이르기까지 에드워즈에 대해서 권위있는 이야기를 인용할 때 항상 존 오웬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저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리차드 벡스터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리차드 벡스터는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알미니우스 주의자였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 있는 칭의논쟁에서 칭의를 둘로 설명했습니다. 제1칭의 제2칭의.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가 칭의를 받지만 마지막 날에 심판을 통해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첫 번째 칭의를 받고 두 번째 칭의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뭐가 깨어집니까? 소위 perseverance, 성도의 견인의 교리가 위협받는 것입니다. 요즘 이것과 똑같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울신학의 새 관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견해를 그대로 우리에게 이야기해서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는 분이 김세윤 박사님 같은 분입니다. 그분들과 싸우면서 자신들의 의견도 조금 조정되면서 이야기합니다. 칭의를 너무 믿다보니 사람들의 도덕 생활이 해이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이 우리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는데 대학자입니다. 철학의 능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최신에 나왔던 토마스 컴퍼넬레 같은 사람들의 신철학들을 받아들일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철학적 지식들이 보편신학, 기독교 신학 방법론, 이런 책들 속에 많이 녹아져 나옵니다.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에서도 꼭 읽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책들은 하나도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많이 소개된 것이 참 목자 삶, Reformed pastor, 그리고 성도의 영원한 안식, 이런 실천적인 책들만 소개되었습니다. 실천적인 책만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목회나 하면서 열심히 기도생활만 한 분으로 묘사되었지만 대학자였습니다. 리차드 벡스터의 전 면모가 소개되지 않고 필요한 일부분만 소개된 것처럼 조나단 에드워즈도 우리에게 일부분만 소개된 것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들이 이제는 조금 나왔는데 그나마도 신학생들 조차 잘 읽지 않는 책이고 전공자들이나 읽는 책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이해 자체는 매우 일천하다, 어느 한 구석만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인데, Banner of truth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예일판에서 나온 전집이 24권 정도 나왔고 실제는 볼륨 1, 2까지 나와서 27권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일센터에 조나단 에드워즈 works 로 들어가보면 50권 이상까지 나옵니다. 그 나머지 것들은 책으로 출판할 정도의 자료가 아닌 것까지 나옵니다. 이렇게 두 판짜기, 두 권으로 나오는데 지금 현재 나오고 있는 예일판입니다. 비쌉니다. 한 권당 최소 12만 원에서 15만 원정도 됩니다. 유럽에서 나오는 책에 비하면 비싼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으로는 59권이었는데 벌써 73권입니다. 이런 책이 에드워즈의 결정판입니다. 이 책들은 사본비평까지 해서 앞에 비평본까지 달아 놓은 책입니다.
문제는 에드워즈 전체를 이해하면서 이야기해야하는데 에드워즈를 써먹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방식으로 에드워즈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는 직접 가서 봤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에 있었던 소위 토론토 블레싱이라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빈야드 운동이 폭풍처럼 쓸고 지나간 본산지가 토론토 에어포트 커뮤니티 처치였습니다. 저는 캐나다에 아는 사람도 없고 볼 일도 없는데 그 당시에 부흥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나는 그때 내가 부흥학자라고 생각해서 “내가 가서 보지 않으면 누가 가서 보겠습니까? 꼭 가야겠습니다.”하고 거기 아무 연고도 없고 영어도 지금보다 훨씬 못 할 때였는데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에 갔습니다. 마침 기대치 않게 후배 한 사람을 거기서 만날 수 있어서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그렇게 거기에 갔더니 아노트 같은 사람들이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매일 집회하는데 두 번을 연속해서 참석했습니다. 매일 이천 명, 삼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때나마 어떤 나라에서 오신 분 손 들라고 하는데 수십 개국에서 매일 왔습니다. 소위 Holy laughter라고 하는 기도회를 하는데 사람들이 막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그것을 성령체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속 웃으면 힘든 것을 아실 것입니다. 배가 아프고 근육이 당겨서 그만하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웃다가 너무 지쳐서 실신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기어 다니면서 짐승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걸 성령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면서 아노트가 인터뷰 속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운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던 놀라운 증거다. 그리고 우리의 놀라운 효시가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 부흥운동이다.” 라고 했는데 이틀을 보고 나서 이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다음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돌아와서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할 때, 그것은 그냥 아닌 게 아니라 마귀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막 쓰러지는 것은 있는데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질문을 했습니다. “겉으로 일어나는 모양은 에드워즈 때와 비슷한데, 에드워즈 때는 죄에 대한 심오한 회개가 있었지만 너희는 그런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게 우리도 좀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했답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가짜 부흥이라서 그런 것이지 진짜 부흥이라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데 회개가 없습니다. 정말 웃깁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자신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쓰러져서 한참을 이러고 있는데 보니까 사람을 밀어서 넘어뜨립니다. 그게 한국에 들어와서는 쓰러뜨리는 게 일이 되었습니다. 금이빨 운동이 일어난 것을 아실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금이빨로 바뀐다고 하는 것입니다. 온 교인이 금이빨로 변하면 뽑아서 건축헌금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우스꽝스런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 조나단 에드워즈를 잘못 써먹은 한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은 그의 책들 중에서 어느 한 권을 읽고 에드워즈를 이해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어차피 가 아니고, 사실 들도 다 읽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읽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설령 영어가 능숙하다고 해도 에드워즈의 사상 자체가 낯설고, 에드워즈를 공부하려면 18세기 문법을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단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당시 에드워즈는 라틴어를 아주 잘했습니다. 헬라어는 신약성경을 잘 읽을 정도, 히브리어는 성경을 보고 뭔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 잘 모르지만 내가 판단할 때는 그렇습니다. 에드워즈 자신이 헬라어 학장을 하라고 권유받았을 때 클래식 (?? 1:07:57)를 못하는데 학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염려를 표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는 아주 뛰어났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당시 대륙에서는 17세기의 사람들이 라틴어로도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영어도 아니고 미국식 영어인데 에드워즈는 철두철미하게 라틴어로 훈련되어 있어서 에드워즈 전집을 읽어보면 무슨 이런 영어가 있나 하면서 짜증이 납니다. 열 줄이 끊어지지 않은 한 문장입니다. 그게 라틴어 방식의 글쓰기입니다. 머릿속에는 그 당시 학문하던 라틴어가 있고 그것을 영어로 쓰니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보다 한 세기 전의 사람이 존 오웬인데 존 오웬의 영어를 읽다가 에드워즈를 읽으니까 살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읽힙니다. 존 오웬의 영어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걸 알게 된 것이, 우리 교회에 영국 사람이 출석했습니다. 존 오웬을 읽고 영적 생활을 하라고 책을 줬는데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책을 받았을 때 우리로 말하면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월인천강지곡, 해동 륙룡이 나르샤, 이런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만 봤으니까 영어가 그러려니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한두 권을 읽고서는 에드워즈의 한 단면을 봤다고 이야기해야하지, 에드워즈가 전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개론적인 설명을 하는데 다 못했기 때문에 밥 먹고 와서 조금 더 할 것입니다. 이것을 다 하게 되면 굉장히 중요한 가이드가 됩니다. 전체적인 것을 듣고 그 다음에 에드워즈를 읽으셔야 합니다. “더 많이 읽고 이야기하라!”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에드워즈를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에드워즈는 그렇게 독특한 시대에 태어나서 아무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제 표현에 의하면 계몽주의와 뉴턴주의의 쓰나미 앞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쓰나미 앞에 선다는 것 자체도 보통 용기가 아닌데 요즘 최근의 에드워즈 학계의 관심은 70년대에는 대부분 에드워즈를 철학자로 보면서 생각했고, 90년대에는 신학자 쪽으로 보면서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는 심리학자 쪽으로 생각하며 해석했는데 2020년도 후반부터는 커다란 에드워즈학의 트렌드가 “에드워즈는 그렇게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에드워즈가 매 주일 설교를 하던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었구나 하면서 지금 현재 에드워즈학의 대세는 에드워즈와 성경에 관한 것이 핫이슈입니다. 철학적인 이런 것들은 조금 한물갔고 오히려 성경신학, 에드워즈와 성경신학, 에드워즈는 결국 이 모든 학문들을 사용해서 마지막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 성경을 매주 성도들에게 설교하던 사람이었다, 그 중심점이 에드워즈를 보는 가장 중요한 입각점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에드워즈를 생각할 때, 에드워즈 전공자들이 가장 읽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설교입니다. 설교를 읽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 설교 모든 에드워즈의 신학과 철학, 미학, 심리학, 이런 것들이 다 녹아들어 있습니다. 에드워즈는 철저한 원고 설교주의자였습니다. 자신이 그 원고를 직접 다 썼고 그것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꽤 깁니다. 그리고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그런데 에드워즈가 그렇게 설교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내가 에드워즈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설교부터 읽고 스페셜한 파트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들에게도 하는 이야기가, “시간 될 때마다 에드워즈의 설교를 많이 읽어라.”였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급하니까 설교 읽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신학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놀랍게 그 안에서 신학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많은 인사이트를 줍니다. 또 하나는 에드워즈는 철학계에 충격을 줘서 철학자로 인정을 받고 싶은 야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나 죽으나 그가 증거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의 위대성, 그 하나님의 위대성이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통해서 나타났다는 것, 그래서 온 인류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이 에드워즈의 핵심이었고 그의 철학과 그의 모든 사상은 하나의 말뚝이 되고 그 말뚝을 중심으로 그는 그 주위를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목회적인 실천가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후에 선교사로서의 삶도 당연히 그러했고, 학문적인 논쟁과 유명한 플레어 콘서트라는 것을 만듭니다. 지금 그런 아류들이 나와서 다니엘 기도회도 생기고 하는데 이것이 원조입니다. 이 사람은 스케일이 미국 전체를 묶고 그것을 유럽까지 묶습니다. 전 세계를 하나의 기도의 공동체 만들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연합해서 추구하는 기도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의 관심사 자체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것으로 귀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일생을 사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드워즈는 아주 치열한 의지논쟁 같은 것도 왜 그게 나왔는지 배경을 살펴보면 목회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성주의가 들어오면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결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작정, 이런 것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저 반대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이 그것을 움직이며 그게 어떻게 자유로운 것이 되느냐, 아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이 없듯이 인간의 의지도 그런 것이다. 하나님이 결정하셨으면서도 인간은 자유롭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다. 거기서 소위 determinism이란 의지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유명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해석에 있어서 다양한 해석들을 낳고 있습니다. 별도로 다뤄야 할 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 오전 시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