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묻고 담임목사님이 답하다
녹취자: 조경훈
주제 1: 변함없이 예배하는 교사
Q1. 예배에 집중하지 못해서 산만한 아이들, 어떻게 집중시킬 수 있을까요?
아마 제일 큰 문제는 회심하지 않은 아이들일 것입니다. 회심한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말씀을 들을 귀가 있기 때문에 듣는데 회심이 없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요즘 같아서 주의력 결핍이나 이런 질병적증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교사는 역정을 내게 되고 심지어 전도사님도 야단을 치게 되면 아이는 상처를 입으면서 어려움이 반복이 됩니다.
첫 번째로 제가 교역자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회중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설교의 길이, 예배의 길이가 어느 정도가 되는가 하는 것을 지혜롭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가능하면 그 범위 안에 들어오도록 예배와 설교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처방은 예배 시간에 산만한 아이들이 머리가 나쁘고 태도가 나쁜 게 아니라 선생님의 주목을 끌려는 심리적 의도가 그 안에 반영돼있습니다. 애정결핍증이 있고 자기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방법은 그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지도를 하는 것입니다. 심방을 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여러분들도 교사들이 열 명의 학생이 있으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관심이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그런 아이의 경우에 심방을 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대화가 서로 통할 때가 되면 예배 시간에 네가 산만한 이유가 뭐냐? 어떤 것이 너로 하여금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냐? 물어보면 아마 자기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거기까지 가면 60프로는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훈장질만 하려고 하지 말고 왜 그것이 좋지 않은지 스스로 생각을 해보게 만들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고쳐져 가야 됩니다.
심방을 하실 때 지난주 예배의 설교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물어봐주면 아이들이 훨씬 주일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이런 몇 가지 방법들을 사용하다 보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마음에 어떤 은혜를 주셔야 되는데 그것은 별도로 기도해야 할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Q2. 예배태도가 좋지 않은 사춘기 학생들,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여러분도 어렸을 때 잔소리를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굵은 소리는 좋아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잔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것을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은 별로 안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떠드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배시간에 그런 것을 장악하지 못하는 교역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설교하러 올라가서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 문제이고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설교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입니다. 설교자에게도 반성해야 될 점이 있습니다. 원고를 계속 보면서 설교를 한다든지 하면 아이들의 집중도를 끌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온 몸으로 설교를 해야 합니다. 옷차림도 문제가 되고 여러 가지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먼저 제거하고 교역자 자신이 예배를 인도할 때 자기가 잘 하고 있는지를 봐야 됩니다.
찬송 시간에 거의 안 부른다든지 설교하는 데 태반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그것은 교역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있는 힘이 자신에게 15분밖에 없으면 설교 길이가 15분이어야 됩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으면 어떠한 말씀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나 주일 학교 아이들이나 똑같습니다.
예배의 태도가 바뀌려면 선생님이 “야. 너 예배시간에 왜 이래?” 그러면 아무 도움이 안 되고 감정만 상합니다. 아이들은 자아가 정립이 안돼서 자기 속이 혼란스럽고 교회에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자꾸 지적하면 자아가 정립이 안돼서 혼란스럽고 힘든데 자기 속에 누군지도 모르는데 교회 가는데 선생님이 염장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들거나 다투는 것입니다. 그게 아이들한테는 훨씬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방을 하고 문자도 할 수 있겠지만 편지를 쓰고 아이에게 뭔가 진심으로 다가가야 됩니다. 그러면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뭔가 뾰족한 묘수는 없습니다. 집중하게끔 만들어가다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깊이 만나면 아이 스스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다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떡볶이 세 번 사 주는 것보다 야유회 한 번 가는 게 좋고, 세 번 야유회 가는 것보다 자기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는 게 좋습니다. 세 번 재워주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2박 3일 여행을 다니는 게 더 좋습니다.
Q3. 회심하지 못한 아이들이 패배감과 죄책감을 가진 채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요?
조심해야 될 게 회심을 아이들이 못했다고 하는데 회심을 못한 아이들의 심정은 오죽 괴로울까? 하는 것을 우리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초창기에 회심을 무지하게 강조했습니다. 교역자들이 너무 아이들을 회심시키고 싶으니까 어떤 면에서 극단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네가 이번에 회심을 못하면 지옥 간다. 이번이 네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 문학적으로는 그렇게 표현할 수 있지만 너무 세게 하고 몰아치니까 회심하지 못 한 아이들은 엄청난 정죄 의식을 느끼고 괴로워하고 반발심을 같은 것들을 갖는 것입니다. 회심 집회를 거치고 나서 더 이상한 아이가 되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우화에 등장하는 데 바람하고 해하고 누가 저 사람의 외투를 벗기는 지를 내기합니다. 바람이 문제 없지. 하고 확 하고 바람을 부는 데 이 사람이 더 외투를 움켜지고 쓰러질 정도가 되고 외투를 안 놓습니다. 바람이 부는 겨울에 외투를 놓치면 얼어 죽는 것이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님이 햇빛을 쫙 비춰서 스스로 옷을 벗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회심이 그런 식으로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언어나 표현을 이야기할 때 인격적으로 감동을 받아서 자기가 회심하고 싶게 해야 합니다. 지옥이 무서워서 회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서 회심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지만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2002년도에 여기로 와서 몇 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회심 집회를 하고 나서 전도사님이 아무리 소리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공과 시간에 예수님이 너를 위해 죽으셨단다. 하고 눈물을 흘리실 때 나는 모든 것이 믿어졌습니다. 이것이 인격적인 가르침입니다.
회심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죄인을 무시하고 깔보고 마치 청소해버리는 것 같은 태도로 하면 안 됩니다. 자기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마음을 타일러서 회심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제 2: 변함없이 소통하는 교사
Q1. 부모님께 아이들에 대해서 어디까지 말씀드리고 협력해야 할까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아이들은 믿고 선생님한테 틀어놨는데 선생님이 부모한테 곧바로 고자질하듯이 누설해 버려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와의 관계는 영원히 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감한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는 이것을 알리는 게 이 아이를 바로잡는데 너무 너무 필수적인가?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는 해결이 안 될 문제인가? 이런 것을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 어머니나 아버지의 인격을 봐야 합니다. 이야기의 진실을 들었을 때 자기를 절제하고 자재하고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해줄 수 있는 부모인지 아니면 폭발하듯이 쏟아놓을 사람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후자인 경우에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아이가 가출이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럽니까? 대책이 안 섭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부모가 아는 것이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거의 도움이 안 되겠다 싶으면 그것은 그 아이가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그런 경우는 얘기를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부모가 참고하는 게 좋다고 생각될 경우는 넌지시 얘기하십시오. 그 아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 중에는 이러이러한 케이스도 있고 이러이러한 케이스도 있는데 유념해서 아이를 다루십시오. 하고 소통을 해야 합니다.
청소년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 중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말하면 말귀를 잘 알아듣는 부모들도 있는데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소통이 안 되는 수준의 부모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진짜 조심하셔야 됩니다. 오히려 그 아이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선생님한테 그것을 털어놓을 때는 선생님을 굉장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어른들의 경우에 학교 선생님한테도 얘기를 안 하고 교회 선생님한테 얘기를 했는데 어떻게 보면 유일한 통로입니다. 누군가는 그 아이와 소통해 줘야지만 아이가 바로 잡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도 소통이 안 되고 아빠는 물론 소통이 안 되고 학원 선생님하고도 소통이 안 되고 기껏해야 친구들이 소통이 되는데 친구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소통의 끈을 잃어버리는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소통을 해야지만 아이에게 계속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굉장히 조심해야 될 부분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뭔가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심리학적인 라포가 잘 형성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격적인 관계를 깨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역자와는 의논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지도를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의논을 해야 되겠습니다. 부지불식간에라도 그렇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됩니다. 이 가슴이 비밀창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얘기하고 이메일로도 수없이 오는데 여러분들이 그 사연을 들으면 거의 기절할 정도의 것들이 많아서 아내에게도 말 안 합니다. 그 사람하고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묻고 가는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나는 동종업계의 사람들을 형제로 알고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환자를 치료하는 도중에 취득하게 된 비밀을 평생 지키겠습니다. 라는 선서가 나옵니다. 그리스 시대에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Q2.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해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충돌을 일으키는 게 몇 가지 있지 않겠습니까? 진화론이나 창조론 같은 거, 요즘에 포스트모더니즘이니까 동성애에 관한 것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충돌을 느끼는 지점이 있는 것은 너무 분명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교회에서 잘 설명해 주어서 아이들이 성경적 관점을 따르도록 할 것이냐? 그것이 교육의 중요한 점입니다.
그래서 등불학교, 등대학교, 세빛교실 등을 할 때 창조론이나 동성애나 혹은 진화론 문제 같은 것들을 다루고 설득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들은 일차적으로 교역자에게 책임이 있고 선생님들도 대학교육 받으신 분들이니까 같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경이 창조에 대한 진화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지만 이 세상이 그냥 있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생겨난 세상이고 진화는 가능하고 인정하지만 어디까지나 종 안에서의 진화이고 그것들은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종대로 그 안에서 진화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들을 하시고 인터넷 보면 과학에 대한 바람직한 강의들이 많아서 교역자들에게 신학적인 검토를 받아서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책도 읽게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 공과공부도 하면서 아이들이 성경적인 관점이 세상적인 가설적인 관점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교역자와 교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진리를 부인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이야기하고 진리 같은 것을 거부하는 것들이 교회의 관점과 충돌합니다. 그런 것들을 세밀하게 공부를 해나가야 됩니다. 한 번에 다 안 되더라도 세상의 논리보다 훨씬 탁월하게 설명해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방어적으로만 하지 말고 훨씬 공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고등부에서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은 책을 가지고 공과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역자들이 열심히 배워서 선생님들을 가르치고 그것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 책이 쉬운 책은 아니지만 수고하고 얻어지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교역자에게 패스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현대정신들을 이해해 가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힘이 닿는 데로 이해해 가면서 아이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3. 교사로서 어떻게 소통해야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신앙에 관심을 더 가질 수 있을까요?
자기 영혼에 관심을 가진 것만큼 남의 영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런 부모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영혼에 관심이 없는데 아이들의 영혼에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틀림이 없으니까 부모들이 자기 수준에서 아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민감한 촉들이 있습니다. 그런 소재로 접근을 해야 됩니다.
심방을 가거나 전화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 부모가 자기 자식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 하는 촉에 닿는 것들을 소재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부정적인 이야기부터 하지 말고 긍정적인 이야기부터 접근을 하십시오. 부모님이 애가 너무 산만해서 걱정이라고 하면 애가 산만하지 않고 집중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아이가 예술에 대해서 재능이 있다면 그런 것을 칭찬해 주든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이 아이가 보여준 긍정적인 면, 좋은 점들을 이야기해서 부모를 격려하고 이 아이가 나의 자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줘야 됩니다.
그게 없는 아이들은 어떡합니까? 그러는데 사랑의 눈으로 보면 있습니다. 일단 이 아이가 별로 안 좋다고 내 인상에서 제거해 버리면 아이의 행동에 대한 모든 해석을 나의 사고가 지배해서 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와 접촉점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들이 일반적인 부모의 관점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공부, 장래의 문제, 마음과 정신의 문제, 영혼의 문제, 신앙의 문제 이렇게 단계적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당신이 부모로서 아이에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 이런 식으로 들이대면 신앙이 있는 부모는 회개를 하겠지만 신앙이 없으면 반발심이 생기게 됩니다. 네가 뭔데 남의 집안일에 깊이 끼어 들어서 감 내놔라 팥 내놔라 하느냐?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격적으로 대해야 됩니다.
여러 해 전인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역자가 굉장히 슬기로웠는데 유년부에서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아빠한테 매일 출근할 때 한 번씩 안아달라고 하고 아빠가 안은 채 기도를 받고 오기를 숙제를 내줬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있는 아이였는데 아빠는 명목상의 신자여서 자꾸 피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빠져나가니까 어느 날 아이가 초등학교 1-2학년이었는데 정식으로 아빠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분명히 우리 선생님이 교회학교에서 분명히 하루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아빠가 퇴근할 때 인사하고 아빠가 안아준 채로 기도를 받아오라고 하는데 혼자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닌데 왜 아빠가 안 해주냐고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아빠가 미안해! 하고 그 다음날 현관에서 신발 신고 아이를 끌어안고 기도를 해주는데 본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다가 아빠가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얼마든지 이런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에 관해서 부모가 관심이 있어 하는 질문과 꼭 관심을 가져야 될 질문을 적절하게 섞어서 물어보고 소통하면서 부모가 아이를 통해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합니다. 부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어린양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고 교역자들에게 도움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주제 3: 변함없이 고민하는 교사
Q1. 가정, 사업, 교구 사역과 교사 섬김을 어떻게 균형 있게 할 수 있을까요?
교사이면서 동시에 교구에 속해 있는데 둘을 잘하기가 쉽지 않은데 둘 다 잘하면 너무 좋겠지요. 교사 생활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섬겨야 되고 교구는 거기에 가서 목양을 받으면서 영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을 교회학교에서 모두 채워주면 좋은데 교구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없고 교회학교에서 목양을 모두 책임져 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두 개를 잘 조화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어디 사역에 중심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은 교사면 당연히 교사에 중점을 둬야 되겠습니다. 특별한 분은 구역장도 하고 교사도 하는데 직장을 다니면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한쪽에 집중하는 것이 좋고 다만 교구에서 완전히 목양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면 영적으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소외현상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니까 지혜롭게 잘 조정하십시오.
모임 같은 것은 중복되지 않도록 교역자들이 잘 조정해야 합니다. 제가 전도사로 중고등부를 할 때는 청년부에서 협의가 오면 이날 이날은 특별한 모임이 있는데 교회학교에서 신경을 써 달라고 그러면 그날은 파격적으로 교사 모임을 아예 없애버립니다. 청년들을 잘 타일러서 그 모임에 가게끔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청년부에 속하지 않은 교사들인 경우 심심하면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든지 산책을 한다든지 뭔가 리프레쉬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도록 합니다.
두 개를 다 잘해야 하는데 하나를 집어치운다고 해서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도 다녀야 되고 교회학교도 섬겨야 되는데 직장을 그만 둔다고 해서 교회학교에 엄청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학교 그만 둔다고 해서 직장생활에 집중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다 해야 되는데 하다가 힘이 들고 인간적으로 지치게 되면 뭔가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그러면 이런 이야기도 나오기도 합니다.
그것이 시간의 문제도 있지만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도 진심으로 하고 교회에서도 진심으로 하고 직장에서도 진심으로 하고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특히 남성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집에 들어오면 여기는 쉬는 공간이라는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기를 돌보기 위해서 식구 중에 누군가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집에 들어서는 그 순간 내가 이 집안을 정돈하고 가정이 잘 굴러가기 위해 이바지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청소도 하고 아내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쉼을 찾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다고 전혀 자기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밤에 잘 때라든지 기도 시간이든지 산책하는 시간이든지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덜 자고 덜 놀고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기본적으로 시간 자체가 한정 되어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소모하고 있는 시간들을 줄이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힘듭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만 자꾸 하지 말고 하루를 살펴보면서 내가 쓸데없이 보낸 시간이 뭔지를 생각해서 그것들을 깎아내면서 뭔가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쉴 때와 일할 때를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살아서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확실하게 덜 자려고 애를 썼습니다. 지금은 잠 좀 푹 자봤으면 좋겠는데 잠이 안 와서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있지만 젊어서는 잠이 나에게 큰 적이었습니다. 너무 잠이 와서 잠과 더불어 싸웠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확보하고 낭비하는 시간이 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런 폰 하나 켜놓고 한 시간 가는 거를 일도 아닌 거 너무 잘 아시지요? 몇 개 넘기다가 시간을 보면 한 시간 지나갑니다. 그렇게 하면서 시간 타령만 하고 마치 자기 시간을 주님 섬기는 데 쓰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고 있는 시간 중에 낭비하고 있는 것을 먼저 따져보기 바랍니다. 그것을 최대한 깎아내면서 양쪽 다 잘 해야 합니다. 다 잘 하려다 보면 감사한 것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가정, 교회 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공부가 있어서 미치겠는 것입니다. 학교 가면 내가 이렇게 공부해서 뭐가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괴롭고, 교회에 오면 애들이 변화되지 않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집에 가면 내가 집에 아무것도 보태주는 일이 없구나. 돈도 못 벌어오고, 봉사도 못하고, 애들하고도 있어주지 못하고 괴로워서 항상 마음속에서 눈물이 가득하였습니다. 마음에 고통이 됐는데 알고 보니까 그 고통이 오늘 설교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투덜거려서 해결될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투덜거리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해서 시간을 줄이고 하나님 앞에 열렬하게 기도하고 건강을 지키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사십시오. 화이팅!
Q2. 아이들에게 신앙적으로 훈계나 충고를 할 때가 있지만, 저도 막상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양심이 찔릴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애들이 공부 못하면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어떤 엄마가 애한테 ‘너는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안 하냐? 그렇게 해가지고 대학을 가겠냐?’ 그러면서 매일 엄마한테 애가 스트레스처럼 당하다가 나중에는 엄마한테 대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외할머니한테 얘기했는데 엄마도 지겹게 공부 안 했다고 그러는데 자기도 안한 것을 나한테 그렇게 강요해? 그리고 엄마보다는 내가 낫잖아? 엄마 거기 학교도 아니잖아? 나는 지금 그래도 성적이 엄마보다 훨씬 좋은데 왜 날 괴롭게 해? 그래서 엄마가 할 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 애가 설마 외할머니한테 가서 자기가 개 나이 때에 어떻게 살았는지 캐볼 줄은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잔소리는 도움이 안 됩니다. 잔소리를 하면 제일 큰 문제는 굵은 소리를 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잔소리를 늘 하면 진짜 굵은 소리를 잔소리 취급합니다. 잔소리를 안 했을 때의 유익은 아빠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할 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필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빠 말이 어필이 됩니다. 라고 순순히 고백이 안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 교양론이라는 책에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모두스 비벤드 포르마 디켄디’ 라틴어인데 ‘비벤디’ 는 ‘삶의 방식’, ‘포르마 디켄디’ 는 ‘가르침의 형태’ 입니다. 너의 삶의 방식이 가르침의 형식을 결정한다. 좀 어려운 말인데 네 사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서 네가 말을 안 해도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살아낸 삶은 말을 많이 안 해도 상대방에게 학습이 되고 자기가 살지 못 한 삶은 입에 거품을 물고 열심히 말하면 말을 할수록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게 평소에게 자기에게 가르치는 도덕적인 가르침과 부모의 도덕 생활이 모순될 때 아이들은 이 속에서 영혼이 찢어지는 것 같은 가치관의 균열을 느낍니다. 애들에겐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부모로서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살아온 결과입니다. 한 사람이 한 마디의 말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그가 듣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 동안 지금 말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온 흔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인격과 말 안에 베어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이지만 진실하려고 애쓰면 됩니다. 자식도 완전하지 않지만 부모의 신앙이 완전한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가 끊임없이 변화되어가는 과정,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만날 때마다 나는 그렇게 못 살지만 실패는 내 대에서 끝내고 너는 잘해라.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할 때에도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를 점검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가 삶의 방식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택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삶으로 교재를 삼아야 되겠습니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엄마, 아빠 앞에서 배웁니다. 엄마, 아빠가 얼굴을 보면서 정답이 뭔지 알아맞히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부모의 등 뒤에서 뒷모습을 보면서 ‘아 저는 아니구나!’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진실한 신자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