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반 강의
녹취자: 백지영
천지창조에 대한 교리에 대한 이설은 대부분 세 가지인데, 하나는 이원론입니다. 이원론은 무엇이냐 하면, “물질은 영원 전부터 원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물질이 영원 전부터 함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은 말이 안 됩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라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질이 영원 전부터 있었다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금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썼는데 지금도 만약에 나 혼자 금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돈을 굉장히 많이 벌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앞으로도 불가능합니다. 과학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금을 만들기 위해선 50억 도의 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세계에서는 아직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열에 의해서 수많은 물질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질이 하나님과 영원히 있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성립이 안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유출설인데, 유출설은 플라톤 철학에서 플라톤이 티마이오스라고 하는 책에서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설을 풀고 있습니다. 그 설이 무엇이냐 하면, 신이 있는데 신성이 꽉 차서 바깥으로 흘러넘쳐서 이루어진 것이 세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무슨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성경에 이야기하는 창조하고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도 모르게 넘쳐서 이것이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비의지적이고 무의식적인 자기 자신의 흘러넘침 이것을 통해서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플라톤 철학에서는 이야기하지만 성경이 이야기하는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또 하나가 있는데 진화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쉽게 이야기해서, 물질이 아무 것도 없었는데 오늘날의 생물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아메바 같은 것에서 생겨나고, 그러면 그러한 아메바 같은 어쨌든지 간에 생명이 있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은 물질끼리 모여서 방전이 일어나고 해 가지고 아주 단순한 세포의 생물이 생기고 거기에서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서 진화하면서 생명체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과학자들조차도 이 진화론에 대해서 많은 허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라스팔라고스섬에 대한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다윈이 방문을 해서 거기 머물면서 유명한 진화론의 모티프를 발견한 곳입니다. 거기에 많은 새들과 거북이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새의 부리 모양 같은 것을 보면서 원래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화한다는 것을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만약에 예를 들어서 여기에 A라는 것이 있고 B라는 것이 있고 C라는 것이 있으면, 지금 현재 이것들은 각각 이종(異種)이에요, 이종인데 그러면 결국은 언젠가는 하나의 어떤 것이 이렇게 분화(分化)되어 왔다는 말인데, 그러면 이 진화는 장구한 세월이 걸리기 때문에 그렇다면 여기가 알파라고 하고 베타의 계열이 있다고 하면 그러면 지금 현재 있는 A종, B종, C종 이러는 것들은 현재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것이 만약에 원래에 A다시 B다시 이런 종에서 왔다면 그러면 이것도 지금 어디론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중이고 그러면 사실은 이 종으로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사실은 A다시 종에서 A종으로 변천되어 오는 이 기간이 훨씬 더 길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은 이종, 이종에 대한 것들은 화석이나 이런 것들이 희소하게 발견되고 오히려 이 형체와 이 형체의 중간에 있는 것들이 이상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이런 것들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 진화론 문제는 기독교 신앙을 청소년기에 와해시키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여러분도 아마 그런 도표 보셨을 것입니다. 진화를 증명하는 도표라고 해서 토끼, 사람, 개구리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것들이 배의 발생 초기서부터 올챙이처럼 생긴 것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계속 변하면서 토끼가 되고 거북이가 되고 개가 되고 그런 그림 본 적 있으실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순간에 사실은 진화론을 완전히 믿어버린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자체가 사기입니다. 거짓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진화론이 여전히 살아서 뭘 가져오느냐 하면 과학주의, 과학주의는 모든 만물이 원인과 결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이에 또 다른 것이 끼어들 수가 없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인과 결과라고 이런 속에서 완전히 닫쳐진 체제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인이 되고 또 다른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면서 계속해서 끼어들어갈 수 없게끔 완벽하게 고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리에 맞지 않는 모든 팩트는 다 부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요? 결국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물질에다가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도 적용을 시키고 학문뿐만 아니라 도덕에도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학문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종교나 도덕에까지 적용을 시키는데 결국은 이 원인과 결과라는 과학주의 자체가 하나의 미신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가설들이 자꾸 깨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거시세계, 거시세계는 오늘날 우리의 물질세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초거시세계는 우주를 생각하면 되고, 미시세계로 들어오면 원자 이하의 단위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면, 자기부상 열차 그런 것들은 580KM까지 속도가 납니다. 자기부상열차 같은 것들은 무엇이냐 하면 소위 이야기하는 양자역학이 발달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금속으로 되어 있는 이 물질을, 몇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러한 것들을 바륨을 비롯해서 몇 가지로 되어 있는 것들을 액화질소를 뿌려서 -200도C로 낮추어 버립니다. 그러면 완전히 다른 성질의 물질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물질을 놓고 여기에다가 자석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붙어야지 맞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자면 이상한 여기에서 새로운 작용이 나와서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초전도물질이라고 합니다. 초전도물질로 만들어서 그러면 여기다가 올려놓으면 자석이 달라붙는 것이 아니라 이 자석이 위에 딱 뜨는 것입니다. 그래서 툭 치면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한번 탁 굴리면 계속해서 굴러가는 것입니다. 신기하게 떠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력이 작용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은 이러한 과학주의로 보면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초미시세계로 내려가게 되면, 원자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양자들 사이의 역학을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 거시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하고는 완전히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초거시세계에서는 또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뉴톤주의라고 하는 소위 이야기하는 18세기의 뉴토니즘(Newtonism)이라고 하는 것은 이 거시세계에서만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뉴토니즘을 초미시세계와 초거시세계까지 확대시킬 수 있느냐하면 그렇게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무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그 다음에 초끈이론, 슈퍼스트링이론(super string theory)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아직 풀리지 않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과학주의 자체가 사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양자역학이 발전하게 되면 그러면 이런 초전도물질에 의해서 초전도물질을 벨트에다 두르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공상과학영화에 보면 택시가 길도 없이 공중에 막 떠서 건물사이로 날아다니는 택시 같은 것 있잖아요? 백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 같은 데에서 나오는 그러한 것들이 황당한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을 토대로 가상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료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양자역학에 의해서 비행기가 뜨고 그 다음에 막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는 연료가 거의 안 드는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지금 현재 있는 거시세계에서의 과학주의하고는 안 맞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모르면 이 자체를 기적이라고 부르겠지만 사실은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진화론은 사실은 많은 문제를 우리에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진화론에 대한 환상을 어려서부터 깨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물들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이원론, 유출설, 진화론 모두 다 성경의 진리와는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물질세계로의 너머에는 영적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 두 개의 세계,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에 창조하신 목적은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증명,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 세계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사들의 존재와 그들의 참 인격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천사들은 우수한 영적 존재이며 살과 뼈도 없으므로 볼 수도 없다. 어떤 천사는 선하고 거룩하며, 선택받은 존재인데 반하여, 나머지 천사는 그들 본래의 위치에서 타락함으로 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가끔 천사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천사를 본 것이 아니라 천사가 사용한 매개수단을 본 것입니다. 달걀귀신을 보았다고 하는데 달걀귀신을 본 것이 아니라 귀신이 달걀 같이 생긴 무엇을 사용을 했겠지요. 그러니까 달걀귀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부류에서 그룹은 하나님의 능력과 존엄 영광을 선포하며, 에덴동산에서나 성막과 성전에서나 지상에 임재하실 때에 하나님의 거룩성을 호위한다. 스랍이라 불리는 천사가 있는데, 하늘의 보좌를 옹위하여 시종 들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그들은 화해의 목적을 수행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올바로 접근하도록 준비시킨다.”
그룹이라는 하는 말은 사실은 group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떼로 몰려다니는 천사인가보다 누가 그러는데 그것이 아니고 ‘캐룹’이라는 단어입니다. ‘카룹’인데 복수가 되면 ‘캐루빔’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카라부’라고 하는 동사가 ‘가까이 가다’ 그런 뜻입니다. 그 다음에 스랍, 가브리엘, 생각하기에 가브리엘, 미가엘과 그룹, 스랍은 좀 다르다 이렇게 봅니다. 가브리엘, 미카엘, 루시퍼 이런 천사들의 이름은 아마도 천사들 중에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가브리엘의 특별한 업무는 신적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며, 그 계시를 해석해 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미카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 이런 뜻이에요. 히브리어로 ‘미’ 누가, ‘카’ 같이, ‘엘’ 하나님과 같으냐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미카엘은 천사장이라고 불리는데 하나님 백성의 대적을 대항하여 여호와의 전투를 대행하는 용감한 전사이다. 성경에는 이 천사들 외에도 정사와 권세와 보좌와 주관자라는 라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천사들 사이에도 등급과 위엄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천사들의 하는 일, 천사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한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천사들은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며, 신자들을 돌보며, 소자를 보호하며, 교회 안에 계시며, 신자들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한다. 또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전달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며,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도 한다.”
천사 그럴 때 궁금한 것이 수호천사일 것입니다. 수호천사가 있다고 성경에서도 근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람마다 한 사람마다 자기를 지키는 천사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데, 그러면 내 천사는 품질이 어느 정도 될까? 내 친구 천사하고 비교하면 떨어질까 아니면 좀 나을까? 그런데 성경이 수호천사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고 있는데 그것을 명백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수호천사를 만약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기 천사가 있다고 그러면 복잡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 그러면 그 천사들은 언제 창조된 것일까? 세계가 창조되었을 때 첫날 창조되었을까? 창조되었으면 하나님이 천사를 미래에 태어날, 여태까지 천 억 정도의 인간이 태어났다고 하고 종말 때까지 2000억 정도가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2000억 명의 천사를 먼저 만든 다음에 하나씩 하나씩 붙여주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영혼이 한 사람 한 사람 창조되는 것처럼 또한 하나님이 천사도 그렇게 한 인간 한 인간 태어날 때에 위하여 창조하셨을까? 그 다음에 내가 살다가 죽으면 천사는 실직상태가 되는데 그 천사는 어디로 갈까? 이직을 할까 아니면 내가 죽을 때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복잡한 문제가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 선생이, 성경이 거기까지 이야기 안 하고 있으니 그만 하자, 그냥 천사가 있다는 것, 그 천사가 우리를 돌본다는 것 이 정도로 만족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도 넘어가겠습니다. 그 다음 악한 천사들,
“선한 천사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를 즐겨하는 악한 천사도 있다. 악한 천사들도 본래는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그들 본래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악한 찬사들의 특별한 죄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들은 아마도 하나님을 대항했으며, 신적 권위를 열망했을 것이다.”
사탄이라는 그 말 자체가 바로 ‘고소하다’, ‘대항하다’ 그런 뜻입니다. 사탄, 이것은 복수가 아닙니다. 사탄을 희랍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마귀’로 번역이 됩니다. 그것도 복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항상 ‘마귀들’ 이렇게 복수로 표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 ‘귀신들’은 맞습니다. 그러니까 찬송가에 보면 마귀들과 싸울지라 그러는데, 교리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오히려 저 마귀와 싸울지라 이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천사들 중 가장 높은 위치를 가진 자로서 타락한 천사들 중에 공인된 우두머리가 되었다.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초인간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고자 하며, 심지어는 선택받은 자까지라도 죄인들에게 범죄 하도록 미혹한다.”
물질세계의 창조, 창조의 기간, 이 창조의 기간이 무엇이냐 하면, 창세기에 보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 그러면서 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더라, 셋째 날이더라 그러면서 여섯째 날까지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째 날은 하나님이 쉬셨다 그러고 나오는데, 그런데 과학과 성경의 조화문제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성경의 조화 문제를 이야기할 때 옛날의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성경에 나오는 연대기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낳고를 전부 다 숫자로 계산을 해서 연결을 시킨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담의 창조연대가 나왔는데 B. C.4004년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요? 기가 막히지요. 왜냐하면 19966년이면 딱 6천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서에 천 날이 하루와 같다고 해서 천 년을 일 년으로 봐 가지고 일천 년, 이천 년, 삼천 년, 사천 년, 오천 년, 육천 년이, 이 한 날이 일일, 이일, 삼일, 사일, 마지막 천년은 천년왕국시대에 휴식기가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 가지고 지구역사가 1996년에 끝난다 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데살로니가서에도 보면 주의 날이 곧 온다 그러면서 놀고먹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 이론은 지금은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연대하고 성경의 이야기하고 비슷해야지만 조종을 해보겠는데 지구의 나이를 45억 살 정도로 보지 않습니까? 우주의 나이는 150억년 정도 보고, 그때에 너무 연도가 계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중간에 낳고, 낳고 하는 것이 대가 많이 끊어졌다고 하더라도 빠진 것을 이어 보아야 인간수명이 살아봐야 몇 백 년인데, 아무리 많이 채워 넣어도 이것이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필요없다. 해결은 무슨 해결이냐. 우리는 성경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남들이야 뭐라고 말하든지 다 상관없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간다.” 그러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4000년쯤 지구가 창조된 것이 맞다.” 그러면서 증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세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뭔가 과학과의 조화점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날’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욤’이라는 단어입니다. 복수가 되면 그런데 ‘얌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욤’이라는 단어가 ‘때’ 혹은 ‘날’이라는 말로 사용이 되는데, 일차적인 의미는 24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히브리에서 ‘욤’은 일정한 텀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이 되기도 하여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 이틀, 삼일, 사일하는 것이 지질학적 연대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 가지 많은 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발광체가 창조되기 전까지는 지질학적인 연대이고 그 후에는 우리의 24시간 날짜일 것이다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있습니다. 어쨌든 크게 나누면 ‘24시설’과 ‘연대설’로 나뉘는 것입니다. 연대설로 나뉘게 되면, 연대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1일이 굉장히 긴 기간의 시대를 의미하게 되므로 4004년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앞에 나오는 많은 시대에 대한 이것들을 인간의 기원을 이렇게 본다고 하더라도 생물의 기원은 훨씬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과학하고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또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안식의 문제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쉬신 날을 기리는 것이지 사실은 시대를 기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지지가 너무 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둘 다, 24시간 날짜설 혹은 시대설 이런 것들이 복음주의 안에서도 공존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시대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 그 다음에 과학과 성경 간의 조화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시대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개혁파 안에서도 예를 들자면 웨스트민스터의 구약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J. 영, 그분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 번역이 되어 있는데 굉장히 경건하고 유능한 구약학자이고 36개 국어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24시 날짜설입니다. 그분의 선생님은 오티 엘리스라는 구약학자였는데 시대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 에드워드 J. 영은 날짜설. 그분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그리슨 아처라고 하는 아주 유능한 구약학자인데, 이분이 쓰신 구약총론이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잘 된 책입니다, 그분은 다시 시대설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것을 시대로 보느냐, 24시로 보느냐를 놓고는 그것이 복음주의냐 아니냐를 가를 정도로 본질적인 조항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두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6일간의 사역, 처음 3일과 다음 3일의 창조에는 병행되는 유사성이 있다. 첫째는 빛을 창조하셨다.”
‘오르’라고 하는데, 그런데 넷째 날에는 빛을 가진 물체, 발광체입니다. 광명체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궁창이라고 했는데, 이 궁창이 사실은 창공이라고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우주관을 염두에 두면서 이것을 보아야 하는데, 유대인들의 우주관은 땅이 있고 사람이 있고, 그리고 창공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라키아’라고 합니다. 본래 ‘라카’라고 하는 것은 ‘펴다’, 뭔가 두드려서 익스팬드(expand) 하는 것을 가리키고, 이것은 그렇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렇게 별이 매달려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영어로 말하면 스카이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를 어떻게 보았느냐 하면 공중을 세 개로 보았는데,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마귀가 있는 권세 잡은 자들이 있는 하늘,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라고 이렇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하면 기도를 시시하게 하면 올라가다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세게 하면 올라갔다가 마귀가 툭 치면 떨어지고, 진짜 세게 하면 뻥 뚫고 하나님이 계신 하늘까지 올라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쏘자, 쏘자, 기도의 화살을 쏘자!’ 그랬습니다. 그래서 화살을 보면 미션(The Mission)같은 데서 보면 누워서 쏘는 발화살이 있는데, 훨씬 더 크고 그래서 누워서 발을 들고 잡아 당겨서 쏘면 더 굵고 큰 화살이 솩 하고 올라갑니다. 우리나라가 대륙에서 내려오는 이민족들의 침입을 이길 수 있었던 커다란 비결 중의 하나가 활입니다. 유명한 안시성의 전투를 다큐멘터리로 찍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쏘는 화살들은 370m정도밖에 못 날아가는 반면 당시의 고구려 사람들이 쏘던 화살은 430m까지 날아갔습니다. 아주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계산을 해서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저항이 약한 그리고 가벼운 그리고 강력한 소재의 활 재료를 가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활을 만들 때 이렇게 해서 묶어서 풀칠을 하는데 이 풀을 다른 아무 것으로 안 되고 오직 하나만 이 풀로 사용되는데 민어라는 생선의 부레를 말려서 그 말린 것을 물에서 불려서 녹여서 그 풀을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활화살을 쏘는데 그러한 활 같이 기도를 하면 그러니까 진짜 세게 해야지만 뻥 뚫고 하나님의 나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리공부만 열심히 하지 말고 기도를 열심히 해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층천까지 쑥 올라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궁창을 창조하고 물이 분리가 됩니다. 그래서 공중에는 새가 날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다니게끔 창조하셨습니다. 물과 마른 땅이 분리가 됩니다. 인간과 짐승이 거처할 땅이 준비되고 육일 째는 땅의 짐승과 육축의 기는 것이 인간이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 표는 에드워드 J. 영 박사가 분류해 놓은 것을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첫째 날 빛 그리고 네 번째 날은 빛을 지닌 발광체, 창공의 창조와 물의 분리 그 다음에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물과 마른 땅의 분리 그 다음에 인간과 짐승과 육축의 기는 것 인간의 창조, 이렇게 장소가 마련되고 거할 것들이 창조되는 질서를 보이고 있습니다. 진화론,
“진화론자들은 만물의 기원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반대하여 만물 기원의 진화론적 입장을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식물과 동물은(인간도 포함) 물론 지성, 도덕, 종교와 같은 생활의 여러 형태마저도, 자연력의 산물이 완전한 자연적 과정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가정이므로 잘못된 이론이며, 성경적 창조론과 완전히 불일치한 논리이다.”
여러분들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읽을 때 자료를 잘 확인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검색을 해서 진화론이 나오면,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분들은 위키피디아나 브리태니커가 믿을만합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evolutionism 으로 검색을 해서 나오면 그것을 프린트 아웃 하십시오. 다섯 페이지에서 열 페이지 정도 된 것으로 프린트 아웃해서 그것만 잘 읽어보시고 그것을 파일로 만들어서 이것은 제9과 창조 중에서 진화론에 관한 것 그래서 줄치면서 읽고 그러다가 더 의문나면 책을 사서 보든지 그렇게 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큼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또 하나 그렇게 나가고, 예를 들면 유대인의 우주관에 관한 자료를 뽑아서 히브리인은 우주를 어떻게 보았나 그렇게 하면서 마지막까지 따라오면 엄청 난 양의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얼마나 교리적으로 든든해지겠습니까? 그 다음 10과 섭리,
하나님이 먼저 어떤 분이신가 나오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나? 목차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본질. 그 다음에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성함 속성. 그 다음에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시는가? 삼위일체. 그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나? 작정, 창조. 섭리. 작정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창조와 섭리는 하나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정은 창조되기 전이므로 하나님이 내적으로 결심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10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창조하신 세상을 유지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보존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크리에이터(creator) 창조주, 업 홀더(upholder) 붙들고 계신 분, 유지자. 그래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주 보존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보존하시며,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 속에 활동하시며, 만물을 정해진 목적에 맞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여러분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공식 항상 외우듯이 공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외워놓으면 굉장히 편리합니다. 그래서 섭리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섭리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데, 그 첫째는 존재에 관계된 것이며, 둘째는 활동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만물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만들어진 것이 계속 존재하려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셔야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 어떻게, 어떻게 행동한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셋째는 그 활동이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에 이바지하도록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그런 점에서 다 엮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요소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세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보존, 보존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하시는 하나님 계속적인 사역이다. 세상은 별개의 존재로서 하나님의 한 부분이 아니지만, 계속적인 존재의 근거를 갖는다.”
그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만물을 존재케 하시고 활동케 하시는 하나님의 계속적 권능을 통해서 유지된다.”
보존, 하나님 홀로 보존하십니다. 그러니까 섭리의 세 요소가 있는데, 보존은 존재에 관한 것이고 협력은 활동에 관한 것이고 통치는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협력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과 협력하시며 피조물로 하여금 그들의 해야 할 일을 행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속에 자연력과 인간의 의지와 같은 실제적 제2의 원인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원인들이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 속에서까지라도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행동하도록 자극시키며, 순간순간마다 그들의 행동에 함께 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한 원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원인이요, 인간은 제2원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팀을 이룬다는 말들이 각기 그 일에 한 부분을 담당한 것처럼, 우리 인간도 일의 한 부분을 각기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행한 동일한 행위라도, 전체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행동인 동시에 인간의 행동인 것이다. 또한 우리 인간 신인(神人)협력교리가 인간의 죄악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협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셔서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물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연기는 위로 올라가고 무거운 물건은 물에 가라앉고 가벼운 물건은 뜨고 이런 것들이 사물의 법칙입니다. 그러면 그 법칙이 작용하는데 법칙이 작용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매번 물건을 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법칙이 그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럼 법칙은 있고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법칙은 없고 하나님만 있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그 법칙 안에 하나님이, 그러니까 법칙만 남기고 하나님이 이 지구상에서 철수하셨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그 법칙을 따라서 하나님이 만물들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존재하고 활동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명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거시세계와 초거시세계, 미시세계 사이에 같은 점도 있겠지만 다른 점도 많이 있다는 점을 인정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시간의 상대성 같은 것들은 거시세계에 있는 법칙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답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사물의 변화에 의해서 측정이 되니까 빛이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런데 빛이 만약에 똑바로 가지 않고 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이 시간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궁금하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상대성원리로 검색해서 일반상대성 원리, 특수상대성원리를 찾아서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 다음에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이런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를 사용하는 것, 예정에 대해서도 이미 나왔지만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하신 사람들은 구원될 것입니다. 그런데 드러누워서 자다가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다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려고 했던 그것은 먼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셨기 때문이지만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 의지를 행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과 인간의 의지 사이에는 매우 신비한 조화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관련시켜 볼 때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인간과 관련시켜서 볼 때는 우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해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흔히 다의적(多義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의적(一義的)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성화시키신다 하면 평면상에서 인간과 하나님이 협력한다고 하면 몇 대 몇으로 협력하느냐고 평면으로 나누는 것이 일의적인 개념인데 논리학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다의적이라고 하면, 이것은 마치 예를 들면 물과 잉크가 섞인다고 하면 물 1리터 잉크 1리터 이런 식으로 섞어 놓으면 두 물질이 합쳐져서 잉크물이 되는 것 그런 것을 일의적이라고 말한다면 빛과 공기가 섞이는 것 이런 것들은 빛이 공기를 몰아내는 것도 아니고 공기가 빛을 축출하는 것도 아닌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다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빛이 꽉 차있고 동시에 공기가 꽉 차 있는, 그런 점에서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이렇게 다의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협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는 기계처럼 움직여서 그렇게 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다의적인 개념에서 협력하여 목적을 이루도록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것을 하나님의 협력사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중생 같은 것은 하나님 혼자 하시는 것입니다.
“통치란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들의 존재하는 목적에 맞도록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신구약에서 우주의 왕(다스리는 자)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다스리시는 피조물의 성질에 맞도록 자신의 법칙을 적용시키셨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피조물이 종류가 다 다릅니다. 초거시세계와 거시시계, 미시세계. 동물, 사람, 인간. 그러니까 같은 물질이라고 할지라도 존재의 양태가 어느 정도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거시세계 같은 데서는 동일한 사물이 여기에는 있고 저기에는 없어야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하는 것들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만약에 현실태라고 한다면 논리학에서 이것은 가능태적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것들이 현실적으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저기에 존재하지 않을 수밖에 없지만 미시세계에서는 여기도 존재할 수 있고 저기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여기서 보면 법칙이 안 맞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작용하는 세계가 어떤 세계냐에 따라서 각각 다른 법칙들이 작용을 한다고 보면 아까 이야기한 과학절대주의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과학 자체를 너무 깊이 신봉해서 더 이상의 과학을 제외한 모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하나의 미신 속으로, 독단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적 세계의 통치와 영계의 통치와는 다르다.
자, 우리들이 흔히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조교, 나와 보세요. 내가 조교를 이렇게 밉니다. 그러면 이렇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 정도가 아니라 강하게 미는 것입니다. 그러면 확 밀면 저쪽으로 갑니다. 이것은 힘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힘! 자기는 여기에 서 있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내가 확하고 미니까 밀려나가는 것입니다.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이 형제가 어느 자매를 사귀었습니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숨이 멎을 것 같은 것입니다. 너무 보고 싶어서 마음이 한쪽으로 막 쏠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엇이지요? 힘입니다. 힘! 그것도 힘이란 말입니다. 파워 오브 러브라는 노래도 있듯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강력한 정신과 마음의 힘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정의, “사랑이란 어느 한 대상에 고착하여 그것을 누리려고 하는 인간 마음의 성향이다.” 그럼 거기서 또 어려운 말이 있는데 누리는 것, 누리는 것이 무엇이냐? ‘누리다’, 중국어로 정확한 표현이 향(享)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향유(享有)한다고 합니다. 누린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형제하고 자매하고 둘이 좋아합니다. 자매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공부도, 미모도 뛰어나지 않고 그런데 형제가 자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봐요. 이 여자를 향(享) 하는 것이 이것이 사랑인데 그것이 아니라 자매의 아버지가 부자입니다. 그러니까 돈(錢)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졸지에 돈은 목적이 되고 자매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린다’고 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수단으로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 자체로서 즐거워하는 것을 ‘누리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사람이 사물들을 나누기를, 라틴어로 ‘레스’라고 하고 복수로 하면 ‘레룸’입니다, 레스 프루엔디, 레스 우텐디(1:02)로 나눕니다. 즉 향유하여야 할 사물과 사용하여야 할 사물, 사용하여야 할 사물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십시다. 친구가 새로 나온 삼성 센스를 샀습니다. 이 사람이 그것을 애지중지하면서 아끼는 것은 그것을 사용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땅에 떨어뜨려서 완전히 망가져가지고 화면도 안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애지중지하겠습니까? 아니지요. 그것은 레스 프루엔디, 향유하여야 할 사물이 아니라 레스 우텐디, 사용하여야 할 사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텐디는 프루엔디를 위해서 기여해야 하는데 이것을 뒤집어버리는 것, 소위 이야기하는 전도(顚倒), 이것을 가리켜서 악(惡)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이라고 하는 것은 오도(誤導)된 사랑입니다. 질서가 잘못된 사랑, 이것이 바로 악, 악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매일 기도하고 은혜 받고 하는 것은 그 사랑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이 다른 종류인 것입니다. 그런 것도 힘입니다. 보고 싶은 것도 힘입니다. 너무 보고 싶으면 이 갈비뼈 사이가 쪼개지는 것 같이 아플 정도로 힘이 확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고 했습니다. 헤엄 못 치는 아버지가 물에 빠진 자식을 보고 뛰어드는 것은 죽음의 공포를 이긴 사랑의 감정이다. 그 자체가 힘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의 개념이 아까 형제를 어깨로 밀어버리던 그 힘과 그런 종류의 힘은 다른 종류의 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방식이 육체적인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과 영적인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주적이시며, 가장 무의미한 것까지도 포함하며, 얼른 보기에 우연적인 것까지도 포함하며, 인간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까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섭리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자연신론적 개념,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시계태엽처럼 세상을 잘 돌아가게 해 놓고 손을 떼셨다가 무엇인지 잘못될 때면 그때에만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있고 이것은 좀 완화된 견해인데 더 심한 견해는 그냥 내버려두신다, 법칙만 창조하고 내 버려두신다 이런 것들이 자연신론적 관념입니다. 이신론(理神論)이라고 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개념을 극도로 철학화한 것입니다. 범신론적 관념,
“범신론자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하지 않고, 이 둘을 동일시하므로 섭리교리를 인정치 않는다. 또 세상에 제2원인이 없다고 보며, 하나님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직접적인 조정자라고 본다. 심지어는 인간의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행위라고 주장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세계 자체를 신과 자연이 하나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으로 태어났다 쥐로 태어났다 파리로 태어났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본성이 끊임없이 변화한 하나의 양태라 이렇게 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이 있는데 물이 얼음으로도 얼고 기체로도 날아가고 물로도 존재하고 그러는데 본질은 물인 것처럼 물이 각각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설악산에 갔을 때 신흥사에 카페가 있는데 설악산에 공기가 좋아서인지 파리가 무척 많습니다. 카페 주인이 파리채로 계속 파리를 때려서 내가 절 영역에 있는데 그렇게 죽여도 스님들이 뭐라고 안 그러느냐고 했더니 카페 주인 대답이 걸작인 것이, 그렇지 않아도 찜찜해서 스님께 물어보았더니 스님은 잘하는 일이라고 사람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물로 태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면 업이 크지만 파리는 어차피 바닥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때려죽이면 등급 상승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비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통교리인지 사이비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개나 돼지나 소 같은 것은 중간쯤 될 텐데 확률적으로, 위로 갈수도 있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 세계관들은 전부 다 범신론적인 세계관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성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과학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뼈를 형성하고 있는 탄소 물질은 어쩌면 수만 년 전에 죽은 당신 조상의 몸에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말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이 다 분해되면 마지막에 원소로 다 날아다니고 그 원소들이 다시 뭉쳐서 나오는 것이니, 엄마 몸이 원래는 없던 것인데 엄마 아빠의 성적인 결합으로 말미암아 엄마가 태어나고 엄마밖에 없었는데 그 엄마가 점점 자라서 그 다음에 우리를 낳지 않았습니까? 엄마 몸에 원래 우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그러면 엄마 몸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서 되었고 그 살, 뼈는 불태우고 없애버리고 다 쪼개지고 나면 마지막에 다시 원소로 돌아갑니다. 장작 때우면 다 다시 원소로 되어서 흩어져서 버리듯이. 그런 것 중의 어느 하나가 다시 세월이 흘러서 우리 신체 중의 일부분이 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입니다. 사유를 그런 쪽으로 돌리고 보면 말은 안 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사유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에 의해서 모든 것들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상섭리,
“우리는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로 구별하는데, 이 특별섭리 속에서 이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제2원인의 중재 없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2원인을 사용하시는 경우, 하나님은 제2원인을 비상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므로, 결국 제2원인을 사용하되 비상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므로 초자연적인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적이란 자연법칙을 어기는 것이므로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소위 자연법칙이란 다만 자연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통상적인 방법을 표현해 주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정한 질서를 따라 일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런 질서를 떠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이런 질서를 어기거나 혼란시키지 않고 특별한 결과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도 어떤 경우에는 자여법칙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법칙을 깨뜨릴 수 있다. 인력의 법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칙을 혼란시키지 않고도, 인간은 손을 들어 공중에 공을 던질 수 있다. 인간에게도 가능한 것이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적은 계시의 방도임에 틀림이 없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나왔을 때 신기한 것이 리모콘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된 일도 아닌데, 키가 있는데 누르면 차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키를 주머니에든지 손에 들든지 가까이 가야지만 누르면 열리는 것입니다. 그때 차를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비서실의 간사하고 셋이서 같이 일을 보러 은행으로 가다가 차 앞에 서서 간사가 문을 열려고 꽉 눌렀는데 안 열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내가 가서 여니까 열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간사가 제가 가서 열면 안 열리는데 목사님이 가서 열면 열리느냐고 그래서 일부러 놀렸습니다. 네가 한번 눌러보라고 그리고 내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 열리지요. 내가 가서 여니까 또 열립니다. 간사가 왜 목사님한테만 열리느냐고 그래서 거기에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을 구별하는 센서가 있다고 놀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무엇이냐 하면 이 한계 안에서의 법칙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부다 신비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기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의 시야에서 보면 기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또 다른 법칙을 사용하셔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상위의 법칙을 사용하셔서 하시는 일이라고 우리들은 믿어지는 것입니다.
굉장히 신기한 것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피라미드입니다. 이렇게 유리가 되어 있는 A와 B가 있고 테두리는 물론 없습니다. 둘 다. 그런데 똑같은 신선도의 사과를 A에도 집어넣고 B에도 집어넣습니다. 외부적인 조건은 용적도, 부피도 똑같도, 햇빛 빛취는 것도 똑같고 사과의 상태도 똑같습니다. 결국은 썩겠지만 신선도가 어느 것이 더 오래갈까요? 그러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킨 것,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돌을 250만개를 가지고 하나를 쌓았는데 그렇게 절묘하게 쌓는다는 것은 엄격한 수학의 공식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집트시대 때 주전 2500년경에 원의 넓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원을 아홉 개인가로 쪼개가지고 박스로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원의 넓이를 계산을 합니다. 이런 것들도 왜 그렇게 되는지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적을 사용하신다 하더라도 그 기적은 우리에게 있어서나 매직, 마술처럼 보이는 것이지 또 다른 세계에서는 정확하게 법칙들이 적용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적 자체도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과학인 것입니다.
11과 원시상태의 인간입니다. 이제부터는 인간에 관한 교리를 말하게 되는데 인간에 관한 교리는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슨 일을 하는가? 그러면 여러분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데,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그래서 인간은 그렇게 나누지 않고 시기별로 나누는데, 죄가 들어오기 전 상태 이것을 원시상태라고 합니다. 원시상태라고 할 때 원시인 생각하면 안 되고, 원시상태라는 말은 죄가 들어오기 이전, 그 다음에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 그 다음에 구원과 관련해서 은혜 언약 아래 있는 인간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통상적인 견해이다. 이 견해는 인간이 그렇게 느끼는 바이며,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었거나, 육체와 영(靈)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하는 성경의 연구에 의해 나온 것이다. 어떤 학자는 영혼과 영이 서로 다른 요소이므로, 인간은 육체와 혼과 영,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혼과 영이 서로 교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죽음은 때때로 혼(魂)의 떠남으로 표현도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영(靈)의 떠남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혼이 죽었다고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영이 죽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용어는 다른 관점일 뿐이므로, 인간이 소유한 동일한 영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영은 생명과 행동의 원리로서 육체를 지배하며, 혼은 인격의 주체로서 생각하며 느끼며 의지하며 정서의 좌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매력을 끌었던 것들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영과 혼과 그리고 육체로 되어있다고 보고, 육체는 가장 저급한 물질과 관련되고 그 다음에 혼은 동물에게도 있는 그런 종류의 저급한 생존기능을 뜻하고 그리고 영은 그야말로 신령한 영혼을 가리키고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많이 호소력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은 성경을 탐구한 결과라기보다는 희랍철학에서 나오는 개념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영(靈), 혼(魂), 육(肉) 삼분설로 보는 견해들이 많이 있습니다. 순복음 같은데서도 이렇게 보는데 성경적인 견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푸쉬케’ ‘푸뉴마’라고 그러는데, 그렇다면 영과 혼과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영과 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까지 나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네 부분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또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라고 했다고 해서 인간이 사분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전인(全人)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인간의 구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물건이 구성요소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일어날 때에는 공장으로 가보면 됩니다. 공장에 가서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보면 구성요소가 몇 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장에 들어가 보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후’하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니 그것이 영혼입니다. 그러면 짐승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짐승들은 좀 다릅니다. 짐승들은 육체로 만들어지고 그 육체의 생존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그런 기능들을 육체의 생명에 하나님이 보태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이 죽으면 짐승은 죽고 혼은 또 어디로 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육체의 생명의 기능에 덧붙여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가 소멸되면 그 기능도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영혼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영혼을 둘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혼의 약간 낮은 기능이 있고 그 다음에 높은 기능이 있습니다. 높은 기능은 사유하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하는 기능이고, 낮은 기능은 먹고 배설하고 밝음과 흐림, 어둠과 빛 이런 것들을 분간하고 그 다음에 육체의 목이 마르면 갈증을 느끼고 하는 기능들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와 관련되고 이런 것들은 하나님과 관련되는 기능들로서 그래서 인간은 육체와 영혼 이렇게 나뉘어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에 세 부분으로 된다고 하면 천국은 누가 가는 것일까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체는 땅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이렇게 해서 인간이 맨 처음에 만들어진 두 개의 구성요소가 죽음으로써 해체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개인 영혼의 기원,
“선재설(先在設), 어떤 학자들은 사람의 영혼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기 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학설은 인간이 죄인으로 출생한다는 사실에 대한 다소의 근거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오늘날 이 견해는 거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선재설이란 인간의 영혼에 공통된 저장고 같은 곳이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더럽혀서 그 저수지를 모두 오염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저수지에서 나오는 모든 개별적인 영혼들은 다 더럽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죄인으로서 출생한다는 것에 대한 아주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적합한 견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유전설을 따르면 약간 플라톤적인 견해입니다. 플라톤의 견해에서는 이런 견해를 따르지요. 그래서 소위 이야기하는 ‘레떼의 강’, 영혼이 저 세상에서 이쪽으로 건너와서 육체와 합하여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레떼의 강을 건너요. 그 강물은 망각의 강물이에요. 그 물을 많이 마셔요, 성경이 아니고 전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너요. 그리고 육체와 만나요. 이 사람은 영원에 대한 개념,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종교를 가져 보라고 해도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서 생각도 안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굉장히 신령한 것, 영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이 종교 저 종교 믿어보고 방황을 하면서 신비한 세계에 대한 동경도 갖고 이런 사람들은 물을 조금 마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이데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 먹다가 토해버려서 실제로 조금밖에 안 들어갔기 때문에 자기의 본 고향인 영원 내지는 신성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선재설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유전설(遺傳設)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그들의 부모에게서 유전 받는다고 한다. 이는 루터 교회의 견해다. 하와의 영혼 창조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없고, 후손들이 그들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한 학설이다.”
그렇습니다. 아담은 흙으로 빚어서 ‘후’ 하고 불어넣으셨는데 하와는 ‘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 때 그 영혼도 아담에게서 유전되어서 나온 것이다. 물론 아담의 영혼과 그 사람의 영혼은 다른 영혼입니다. 엄마 아빠 형질을 받아서 태어났지만 개별적으로 다른 인간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남성우위론자들은 해석하기를 여자는 남자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므로 너는 내 신세를 지고 태어났다 이렇게 주장하는데, 그런데 원재료에 있어서 여자는 남자에 비교가 안 됩니다. 남자는 허접한 흙이었지만 여자는 고급의 갈비뼈입니다. 완성도 높은 품질이고 신형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훨씬 더 완성도가 높겠지요. 그래서 훨씬 더 여성들이 완성도가 높아서 어느 교회든지 여자가 많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남성우위론자들은 여자들이 예수를 열심히 믿는 이유는 그만큼 여자들이 죄가 많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는 페미니스트(feminist)는 아닙니다만 양성평등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가부장적인 해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은 열심히 신앙 생활할 때 여자들이 죄가 많으니까 종교심을 주셨나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동물의 경우, 육체와 혼이 가족적 특성의 유전과 죄의 타락성의 유전에 의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해진다는 사실에 근거를 갖는데, 그것은 육체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혼에 관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전설이 좋은 점도 있는데 왜냐하면 엄마가 머리가 좋으면 그 아들도 머리가 좋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머리가 다 나쁘면 탁월하게 머리 좋은 자식이 태어날 가능성이 드물지요.
“그러나 몇 가지 난제가 있다. 이 학설은 부모를 영혼의 창조자로 만들며, 인간의 영혼이 여러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가정하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무죄성을 위태롭게 만든다.”
결정적인 결함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도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시는데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래서 가톨릭에서 만들어 낸 것이 무염시태설(無染始胎設)이라는 것입니다. “성모무염시태설, 성모는 죄에 어떠한 오염도 없이 예수를 잉태했다.” 그래서 성모를 무죄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답이 또 안 풀리는 것은, 그러면 그 성모를 낳은 엄마가 죄가 있다면 어떻게 그 성모는 무죄일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보호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렇게 보호하셨으면 죄 있는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도 보호하실 수 있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타당성이 없고 제일 좋은 것이 창조설입니다.
“창조설, 이 학설은 개인 영혼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인데, 그 시기는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영혼은 순수하게 창조되었지만, 인류 전체가 짊어지게 된 죄의 복잡성으로 말미암아 출생 이전이라 해도, 영혼은 죄된 것이라고 본다. 이 견해는 개혁주의 노선의 보편적인 견해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다는 성경적 증거를 가지며, 영혼의 영적인 본질과 잘 조화되며, 예수님의 무죄성을 옹호하는 성경적인 학설이다. 그러나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은 엄마가 머리가 나쁘면 그 아이 영혼도 창조할 때 머리를 나쁘게 창조하셨을까? 왜 아빠가 예쁘면 그 아들도 예쁘게 창조하실까? 이런 것들에 대한 해답은 잘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창조설이 훨씬 낫겠다.
그러면 여기에 낙태문제와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낙태문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그래서 정확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언젠가는 아기에 영혼이 들어가는데 엄마 몸 밖으로 튀어 나오는 그 순간에 영혼이 들어가느냐, 아니면 몇 개월이 되었을 때 영혼이 들어가는 것이냐, 아니면 착상되어서 수정되자마자 영혼이 들어가는 것이냐? 이것을 사실은 개혁주의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조건 알 수 없다고 하면 무슨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낙태를 동의하는 많은 견해가 무엇이냐 하면, 기독교인들 중에도 낙태를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견해는 태아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으면 사실은 하나의 미생물이나 우리의 몸속에 투입해서 들어온 이질적인 물질이나 바이러스나 이런 것하고 비슷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분별한 낙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고 그래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을 극복하는 신학적인 견해는, 착상되는 그 순간 영혼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손 못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후피임약의 복용 같은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전한 견해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몇 개월 만에 영혼이 들어간다고 누가 계산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개혁주의 윤리에 의하면 생명은 지울 수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극단적으로 상황윤리로 몰고 가면, 그러면 요즘도 친 아버지가 자기 딸을 성폭행 하고 하는데 그럴 때 잉태되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그래도 아이를 낳아야 된다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 자체의 존귀함은 어떤 도덕적 조건을 충족하고 태어나느냐에 의해서 생명의 존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결정된다고 하면 여러분들 모두가 존엄성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도 안 믿는 집안에서 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엄마는 일찍 돌아가시고 그러면 너는 별로 존엄하지 않다고 보고, 목사님 집안이나 장로님, 권사님 집안에서 태아서부터 태교를 하고 성령 충만하고 해서 존엄성이 높다 이렇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도덕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라는 데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수정란도 그렇게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서부터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윤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창세기 1장 26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형상과 모양이란 용어는 분명히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이 두 용어가 상호 교체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모양이란 말은 아마도 형상이 거의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같다.”
형상과 모양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면 안 되고, 같은 말의 반복인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견해,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의 형상을 영혼의 영성(靈性)”
영성이라기보다 이것이 스피리취얼리티(spirituality)인데 그러므로 이것을 ‘영적임’, ‘영적인 성격’ 이렇게 번역을 하면 좋습니다.
“의지의 자유, 불멸성과 같은 인간이 부여받은 몇 가지 자연적 은사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적 은사에다 인간으로 하여금 저속한 본성을 제어하기 위해 본래적 의(義)라 칭하는 초자연적인 은사를 주셨다고 한다. 이것은 이간의 모양이 하나님과 닮게 구성되었다는 것 같이 생각된다.”
로마의 가톨릭의 견해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영적인 피조물이다, 의지의 자유가 있다, 불멸성이 있다 이렇게 인간에게만 주신 자연적인 은사가 있는데 여기에다가 하나님이 이것만 내버려두면 저속하게 될 테니까 이것을 통제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의를 주시는데 그것을 덧붙여진 은사라고 합니다. ‘도눔 스프라디뚬’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덧붙여진 선물을 주시는데 그것 때문에 모양이 하나님을 닮게 구성되었다는 견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루터파의 견해는,
“하나님의 형상이 창조 시에 인간에게 부여해준 영적 성질 곧 참 지식과 의와 거룩함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본래적 의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르므로, 이 견해는 너무 한정적이다.”
개혁파의 견해만 정확하게 기억하면 됩니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자연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을 구별한다. 자연적 형상은 둘 중 보다 광범한 것으로 인간의 영적, 합리적, 도덕적 불멸의 본질 속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형상은 죄로 말미암아 아주 상실되지는 않았지만 모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덕적 형상은 보다 제한된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이며, 참 지식과 의와 거룩 속에 존재하는 형상인데,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었으나 그리스도에 의해 회복된 것이다. 넓은 의미로 보면 인간은(그리스도인이든지, 비그리스도인이든지) 아직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라고 부를 수 있다.”
“행위계약 속에 있는 인간,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계약관계를 맺으셨다. 이 본래의 계약을 행위계약이라고 부른다.”
“행위계약의 성경적 증명,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였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는 죽었으나,”
왜냐하면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에게 속한 자는 살아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의 대표자가 된 것 같이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계약의 요소, 계약의 당사자, 계약은 항상 두 당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때 계약의 당사자들은 우주의 주권자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류의 대표자 되는 아담이다. 이 양편은 매우 불균형하므로, 자연히 계약은 타협의 성격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무슨 뜻인가 하면, 계약은 계약인데 부대등(不對等)한 관계에서 계약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법전이 양팔을 벌려도 다 안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바뀝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태어나자마자 그 모든 법을 다 지켜야 할 의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국가하고 사인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자연법적’, 혹은 ‘자연계약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그 계약을 가지는 것이니, 여러분들이 그 법을 전혀 모르고 18년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법전 중의 어떤 것들을 여러분들은 끌려가고 벌금을 물어야 하고 혹은 사형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계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도 그러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계약의 약속, 생명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명은 죽음의 가능성을 초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신자들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게 된다.”
즉, 아담이 만약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다면 불멸의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불멸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겼기 때문에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계약의 조건은 절대적 순종이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라는 엄한 명령은 순수한 순종에 대한 시험이었던 것이다.”
“계약의 형벌, ‘반드시 죽으리라’ 할 때 그것은 육체적, 영적, 영원적인 죽음인 것이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영혼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다.”
전자는 육체의 죽음이고 후자는 영적인 죽음입니다. 즉시 이렇게 되게 되어 있었는데, 즉시 그렇게 죽여 버리시면 창조가 무의미해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없어지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죽음을 연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식을 낳고 자신은 죽습니다. 그러니까 형벌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후손에 의해서 계속해서 대를 이으면서 인류는 존재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처음 아담과 맺으신 언약을 후손들 속에서 지속하시는 것입니다.
“계약의 상징, 생명나무가 하나의 상징이었다면, 이 계약의 유일한 상징이었을 것이다. 생명나무는 생명의 상징과 보증으로 지명된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사과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 목에 톡 튀어나온 그것을 아담스 애플이라고 하는데 아담의 사과라고 해서 먹다가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과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과일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에다가 어떤 견해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상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행위계약의 유효성, 굉장히 중요합니다.
“알미니우스파 사람들은 행위계약이 완전히 폐기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견해다. 완전한 순종의 요구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존속한다. 이런 인간들은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못했지만, 그 조건은 유효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옥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에 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적 요구에 응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약이 타락 후 무력하게 되었으므로”
왜냐하면 행위계약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은 율법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서 나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