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문화콘서트
녹취자: 김경애
질문)
답변) 첫 번째 사진 좀 보여주세요. 이것은 일반 문학의 밤이니까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한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초반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교회에서 했습니다. 레트로 감성으로 ‘문학의 밤’을 해보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에는 어떻게 했느냐 이것은 뒤에 칠판이 있는 것을 보니까 학교에서 한 것 같은데 학교에서 하는 것은 전도 목표가 없으니까 시를 낭송하고,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그렇게 하다가 지루하니까 노래를 집어넣어서 ‘문학과 음악의 밤’으로 해서 노래도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촌스러울 것입니다. 그때는 저렇게 하면서 남녀 학생들이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는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여학교에서 하면 얼마나 많고 좋은 남학교 학생들을 초청하느냐 하는 것이고 남학교에서 하면 학교에서 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회관을 빌려서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때 얼마나 많은 학생을 초청하느냐 거기에 성패가 달려있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모양은 비슷했지만 문학도 기독교 문학으로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만 할 때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무신론을 택하고 14살 때 무신론자가 되어서 21살까지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저런 추억이 없습니다. 중학교 2학년 되던 겨울방학 때 떠났으니까 그전에 문학의 밤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냥 나는 막냇동생이니까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였지 출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21살 때 회심하고 청년들이 이런 것들을 했었는데 그곳에 초청받아서 시를 낭송하고 그랬습니다.
질문)
답변) 우리 자매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미 답이 나왔습니다.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도 자주는 아니고 종종 듣습니다. 제 취향이 트로트는 아니고 몸이 오글거려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노래는 이소라의 노래는 수천 번을 들었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그런 노래 듣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팝송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팝송을 굉장히 많이 들었고 요즘 꿈은 프로그래머 등등인데 그때 젊은이들의 꿈이 DJ였습니다. 판을 돌리면서 신청 음악을 틀어주고 팬덤도 생기고 그랬습니다. 제 방이 다락에 있었는데 벽에 새카맣게 팝송 가사를 적어놓고 그때 들었던 가수들의 이름은 다 생각이 나지 않지만 클리프 리처드부터 톰 존스, 비틀즈는 물론이고 카펜터즈 등 여러분들이 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가수들입니다. 가사들이 건전하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들으면서 자라서 그 세대들은 그리고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21살에 회심하고 나서 계속해서 좋아했는데 그 시대는 통기타 세대였는데 25살쯤 되어서 주님을 좀 더 깊이 만나고 이상하게 그것이 죄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싫어졌습니다. 그것보다는 그냥 찬송이 좋았고 찬송을 부르다 보니까 성악이나 클래식이 훨씬 더 좋아졌고 진정으로 클래식을 접하게 된 것은 예수 믿고, 변화되면서부터였습니다. 가곡은 예전에도 좋아했지만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듣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은 끌리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정신이 들어간 것이 있는데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는 가사도 아름답고 곡도 기가 막히게 잘 쓴 것 같습니다. 외국의 팝송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끌리지는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면서 들으면 좋고 어렸을 때 동요를 좋아하면 조금 나이가 들었을 때 가곡을 좋아하게 됩니다. 가곡을 좋아하면 클래식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렇게 클래식에 맛을 들이고 나면 유행가가 음식으로 말하자면 패스트푸드 같고 클래식은 유서 깊은 장인의 맛집의 요리 같은 느낌이 듭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음악의 세계의 폭을 좀 더 넓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유행가보다 클래식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유행가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클래식을 들을 때 더 많이 웁니다. 그런데 그 눈물의 깊이가 다릅니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깊이가 다릅니다. 클래식은 훨씬 더 깊습니다. 브루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든지 말러의 교향곡이라든지 베토벤의 교향곡이라든지 아니면 쇼팽의 녹턴이라든지 이런 곡들을 들으면 뭔가 인간을 쉽게 이야기하면 피부를 막 마사지하다가 시아추라고 해서 일본 마사지처럼 마음 깊은 곳을 마사지해주는 것을 느낌입니다. 그래서 같이 울고 나도 유행가를 들으면서 울었을 때는 무슨 답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데 감정이 함께 용해되는 느낌인데 클래식은 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게 되는 힘이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클래식은 어렵지 않고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것을 들으면 됩니다. 죽림원이라고 대나무숲이 있는데 그곳은 제가 음악을 틀어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학생 예닐곱 명이 내가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나보고 사진을 찍어달란다고 생각하며 찍어주려는데 ‘아저씨 지금 그 폰에서 나오는 음악의 제목이 무엇이에요?’ 지금 들려드릴까요? 리스트의 ‘헌정’입니다. 이것부터 듣기 시작하면 됩니다.
질문)
답변) 상관이 있겠습니까?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는 성경이 금하지 않는 한 무엇이든지 괜찮은 것인데 문제는 너무 균형을 잃어버리고 절제가 없으면 아까 이야기한 것과 똑같이 세상 사랑이 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자면 클래식을 들어도 하나님 생각이 나고 유행가를 들어도 하나님 생각이 나고 옛날 린다 에더라는 사람이 부른 ‘Once upon a time’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나는 그 유행가를 들으면서 시간이 많으면 다 들려주면 좋은데 그것을 들으면서 하나님 사랑을 굉장히 많이 묵상했습니다. 가사가 ‘당신의 품이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장소였습니다.’ 이런 것인데 심지어는 이번에 제임스 캐머런이 아바타2를 800만 명을 찍었는데 천만 명을 가뿐히 넘을 것 같습니다. 봤는데 진짜 잘 만들었습니다. 1탄보다 충격은 적었지만 제임스 캐머런이 지금부터 25년 전에 타이타닉을 만들었습니다. 디카프리오하고 여자배우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둘이 나왔는데 그때 그 영화의 주제가는 셀렌디옹이 부르는 노래인데 아파서 노래를 못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셀렌디옹이 ‘My heart will go on’ 노래를 부르면서 신앙을 굉장히 많이 묵상했습니다. 그렇듯이 결국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BTS의 ‘Fake love’를 들으면서 이런 가짜 사랑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든지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 자체에 너무 빠지다 보면 교회에 와서 찬송을 부르다가도 BTS가 생각납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BTS의 구성원 중에 김남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는데 너무 끊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몰입해서 용돈까지 심지어 헌금까지 아껴서 덕질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성을 가지려면 즐기되 항상 내가 주체가 되어서 즐기는 것이지 중독이 되어서 즐기는 스타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좋아하고 내가 할 수 있는데 내가 여기까지만 한다고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자제할 수 있게끔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BTS뿐만 아니라 모든 연예 기획이 산업하고 같이 맞물려서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돌아가고 있어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순수하게 예술을 전하고자 하는 목적은 노래하는 가수에게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밑에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여러분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 주체성을 가져야 하고 가끔 한두 개씩은 사줘야 하지 않을까요? 담임목사님 책도 사주는데 여기도 김남준이고 거기도 김남준인데 CD 하나쯤 팔아주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한 번에 CD를 200장, 300장씩 남편 몰래 카드를 긁어서 가세가 휘청일 정도의 정신중독 걸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질문)
답변) 유튜브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세상이 좋아졌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설교 시간에 어떤 이야기냐 하면 교인들이 바로 예배 시간에 우리 교회에서는 드문 일이었는데 다른 교회에서는 ‘미국의 대통령이 1923년도에 누구인데 무슨 일이….’ 그러면 바로 네이버 같은 데서 검색해서 ‘저것이 아닌데….’ 이런 정도로 디테일 하니까 숨길 수 없고 설교 준비가 점점 어려워지고 정확한 지식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유튜브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옛날 같으면 도서관에 가서 반나절을 뒤져야지 겨우 찾을까 말까 하는 지식을 그것도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바로바로 볼 수 있으니까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면에서 좋은데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의 오관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시각, 촉각, 청각, 미각, 후각 중에서 어떤 것입니까? 바로 시각입니다. 시각을 영어로 Optical Centrism이라고 하는데 보는 것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독성이 있어서 빨려 들어가는데 지금 화질도 너무 좋아지고 음향도 너무 좋아지고 VR도 나오고 하니까 사람들이 여기에 굉장히 몰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들고 있으면 유튜브 보다가 구글로 넘어가고 구글에 Shorts가 많이 나옵니다. Shorts를 넘기다 보면 한두 시간 지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고 4시간 지나가는 것도 금방입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가 여기에 나오는 자매 같은 경우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아까 이야기하기를 보면서 잠이 든다고 하고, 끊을 수 없고, 핸드폰을 안 보면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하는데 그것은 거의 중독 수준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인가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똑같습니다. 유익합니다. 위키피디아나 구글이나 구글링이라는 단어도 나왔는데 구글링하면 많은 시간 서가에서 헤매야 하는 시간을 너무 줄여놓습니다. 예전보다 더 정확한 정보가 많이 나오고 수백 년이 된 책들도 바로바로 사진 찍은 PDF 파일들이 올라오니까 굉장히 좋습니다. 그것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용해야지 유튜브에 자기가 함몰되어버리게 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다른 삶이 모두 망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하루에 한 시간씩만 유튜브를 보면 되는데 제가 유튜브를 보는 것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것을 보면서 한 시간을 보내면 일 년이면 몇 시간입니까? 10년이면 몇 시간입니까? 3,650시간이면 대학을 2개를 졸업하고 복수전공 하나씩 4개의 전공을 딸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유튜브를 보는 것이 어떤 것은 ‘이렇구나!’ ‘굉장히 중요한 지식이다.’ 이런 것도 있지만 내용은 없는데 그냥 보는 것이 즐거워서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것이 10년만 되면 대학 두 번을 졸업할 수 있는 시간이 거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20년이면 4개입니다. 그것 때문에 무엇인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자기가 사회적으로 경쟁력을 잃게 되고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성숙시키는데 지장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문제냐 하면 동창회에 가지도 않지만 동창회나 친구라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면 밥 먹은 다음에 모임이 없습니다. 식당에서 핸드폰 들여다보며 각자 노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우리 가자.’ 그리고 가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인간이 성숙해가는 것은 마치 개울에서 물이 흐르면서 돌멩이에 서로 부딪히면서 아주 반들반들한 돌멩이가 되는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이런 사람들과도 만나고 저런 사람들과도 만나보면서 이러면서 사람들이 사회성이 생기면서 세련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퀴즈 한번 내겠습니다. 누가 시집가서 잘살 것 같습니까? 첫째 엄마 친구 딸이라고 하죠? 엄친딸로 살았습니다. 제가 아는 자매는 고등학교 때까지 분식집을 가면 큰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분식집에 가보았답니다. 그럴 정도로 살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살다가 대학 가서도 미팅 한 번 하지 않고 똑바른 길로 가다가 결혼했습니다. 그런 자매가 시집을 가서 잘살 것 같습니까? 아니면 껌도 좀 씹고 남자친구하고 사귀어보고 헤어져 보고 대판거리 싸움도 해보고 술도 먹어보고 까불다가 학교도 옮겨보고 이렇게 살다가 정신을 차렸는데 아까 그 자매는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이 자매는 이류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시집을 가면 누가 더 잘살 것 같습니까?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놈, 저런 놈 다 겪어봤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약간 이상한 남자를 만나도 이 사람을 어떻게 다룰지를 압니다. 전자의 사람은 모릅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그 자매는 다행히 공부하느라 사람을 못 사귀었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된다면 공부는 잘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공부도 못하고 사회성도 떨어집니다. 그러면 누가 좋아합니까? 교회에서 보면 여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똑똑한 남자들은 연예할 때의 대상과 결혼할 대상이 다릅니다. 연예할 때는 멋있는 남자 예쁜 여자하고 연예하고, 결혼할 때는 같이 살만한 남자 같이 살아도 괜찮은 여자를 찾습니다. 아직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보면 정확하게 맞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사람들은 지혜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연예하는 것과 일평생 살아가는 것은 그것으로 안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감정이 솟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살기에 적합한 사람을 찾습니다. 살기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회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세상을 알지는 모르지만 사회성은 안 생깁니다. 내려놓고 친구들과 공도 치고, 같이 가서 탁구도 치고, 게임도 하고, 농구도 하고, 아니면 당구도 치고, 등산도 가고, 수영도 가고, 떡볶이도 먹고 씨름도 하고, 같이 아바타도 보러 가고 그래야 사회성이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유튜브는 여러분들에게만 문제가 아니라 교회에서도 보면 40대 50대에도 중독이 되어있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간관계가 엉망입니다. 사회성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도 자기가 사람들이 보면…. 공부 잘하는 친구가 반에서 인기가 좋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예쁜 애가 인기가 좋습니까? 잠깐은 그럴 수 있습니다. 계속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인기가 좋습니까? 껌을 씹는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껌을 씹어도 좋은데 인간성이 좋은 애들을 좋아합니다. 인간성이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잘 웃기고 뭔가 이기적이지 않고 자기를 개방하고 호방하고 ‘걱정하지 마! 오늘은 내가 저녁 살게!’ 매일 그러면 집에 가서 거짓말을 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고 어려울 때 친구를 도울 줄 알고 의리가 있고 적당히 어울릴 줄도 알고 놀 줄도 알고 그런 사람이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회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합니다. 어디를 가도 자기가 소외되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습니다. 그리고 가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나중에 잘못하면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심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솔직하게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도저히 통제가 안 되니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정신과에서 약물치료까지 해야 하는지 아니면 상담만 해도 되는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정도까지가 아니라면 자기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이것도 통제하지 못해서 이 긴 내 인생을 자율적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4시간씩 하는 사람은 우선 3시간으로 줄이고, 3시간 하는 사람은 두 시간으로 줄여보고, 두 시간 하는 사람은 90분으로 줄여보고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과 약속하면서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한 주, 두 주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딱 끊고 아니면 자명종을 켜놓고 ‘내가 오늘 하루 종일 공부하고 수고했으니까 내게 보상해줘야지!’ 하면서 한 시간만 하자 하고 한 시간 후에 벨이 울리면 나는 여기서 깨끗이 접는다고 그럴 정도로 자기 통제가 되어야지 아니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주체성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굉장히 멋있습니다. 언제든지 그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옛날에 제가 12년 전에 교수로 다시 들어갔을 때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밟아버려라. 깨버려라.’ 그랬는데 지금은 안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출석도 못 하고 리포트도 못 내고 안 됩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용하는데 어차피 앞으로 핸드폰의 미래를 보면 지금은 이렇게 생겼는데 내 예언이 맞는지 안 맞는지 10년 뒤에 보십시오. 핸드폰이 볼펜만 해서 꽂고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해서 키면 홀로그램이 뜹니다. 인치는 자기가 조정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선명한 화면으로 모든 것을 보고 손으로 터치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경제성이 없어서 그렇지 기술이 다 개발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이 핸드폰이 처음에는 요만해지다가 지금은 커졌습니다. 이것은 작은 것이고 더 큰 것을 삽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영상 때문에 그러는데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점점 이런 그것들은 발전해서 여러분들을 사로잡다시피 한 기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실리콘밸리의 CEO의 어린 자녀들에게 핸드폰을 쥐여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네들이 그 부품을 만들면서 아이패드 이런 것을 아이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왜?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만들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파는 것입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서 전 세계 6천만 명의 아이폰 추종자가 생기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계속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빨려 들어갈 듯한 기계들이 나오니까 지금 통제하지 않으면 그때는 더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이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놓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대중가요도 부를 수 있고 내가 BTS를 응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나 내 주체성이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성이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안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얼마나 멋있습니까?
질문)
답변) 대 상추라고 상추를 심으면 대가 올라오면서 상추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먹느냐 하면 상추가 올라오면 이파리만 따면 됩니다. 따면 이파리가 또 납니다. 또 따먹고 또 따먹고 그러면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뿌리와 줄기가 있어서 거기에서 계속해서 상추이파리가 나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경건 생활은 상추의 대와 같습니다. 이것을 잘라버리면 이파리가 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이야기입니다. 하루에 하나씩 황금알을 낳습니다. 주인이 처음에는 뛸 뜻이 기뻤습니다. 황금알이 하루에 하나씩 나오니까 감질이 났습니다. 생각할 때 저 큰 거위의 배를 가르면 그 속에 수천 개의 알이 들어있어서 하나씩 꺼낼 것으로 생각하고 배를 가르니 평범한 거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건 생활을 제일 우선에 놓고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그것도 자기 삶의 균형입니다.
고등부 할 때의 일인데 학부모가 상담을 와서 자기 아들 때문에 상담했습니다. 이 아이가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자기는 괴로워죽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은혜를 받는데 왜 괴롭습니까? 하루에 4시간씩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기술적으로 3시간이 남는다고 했는데 그 아이는 4시간 남았나 봅니다. 하루에 남은 모든 시간을 그냥 기도합니다. 그것도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삶의 균형이 깨집니다.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삶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같이 기도하고 먹을까요?’ 했는데 더운 여름에 기도하라고 했는데 20분을 한 것입니다.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균형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하는데 3시간 정도 남는데 몇 가지 해결 방법을 이야기해보면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기도하면서 이 아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될 때 그것들을 버틸 힘이 내 안에서 생겨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 좋을 수 있었는데 집안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간절히 기도하면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기도하느라 시간을 많이 쓴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낭비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아침에 큐티를 하고 공부를 시작하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단순히 시간으로만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 나머지 여가에 어떻게 즐길 것인가 하는 것인데 여가가 어떤 것이냐 하면 긴장을 풀어주는 여가가 있고 조여주는 여가가 있습니다. 풀어주는 여가는 나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을 가까이서 보았는데 45억짜리랍니다. 그것을 연주하기 직전에 줄을 조이고 연주가 끝나면 바로 줄을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틀 자체가 틀어집니다. 풀어서 보관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으면 여가생활을 가지고 긴장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풀어주지 않으면 정신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뛰어넘어서 안 좋은 영상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긴장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의외로 성적인 일탈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지 않고 오히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정신을 풀어줄 수 있는 방식으로 여가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을 안 하고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여가를 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내가 정신의 텐션을 풀리나 그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이 탁구일 수도 있고, 달리기일 수도 있고, 돈이 좀 있으면 승마일 수도 있고, 사이클링일 수도 있고, 격투기일 수도 있고 등등 다 있지만 어쨌든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조여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안이하게 풀어주었던 것을 집중함으로 나의 정신이 다시 강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철학책을 읽는 것, 논리학책을 읽는 것이 정신을 조여주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내 책 중에서 굉장히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정신을 조여주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가를 지키고 경건과 여가를 병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성경을 이어폰에 끼고 밤에 산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재작년에 산책하는 것만으로 성경을 한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뭔가 자기가 밤중에 걸을 때 기도하면서 걷는다든지 방법들은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여가를 모두 보내고 난 다음에 몸과 마음이 잘 조화를 이루어서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힘차게 할 수 있게끔 활용할 때 그것이 좋은 여가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답변) 설교 준비를 할 때 걸리는 시간은 설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평균적으로 이야기하면 5시간에서 10시간이 걸린다고 봅니다. 아주 오래 걸리는 것은 30시간이나 걸리기도 합니다. 그때는 일주일 내내 오직 설교만 생각합니다. 최근에 설교했던 것 가운데 여러분들은 장년 예배에 못 들어왔겠지만, ‘삶의 명랑함에 관하여’ 설교할 때 평균 한 편당 20시간이 들었고 6번의 설교를 했는데 두 번째 설교 시간의 길이가 2시간 16분 23초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들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명랑함에 관하여 - 하늘과 대지 사이에서’ 짧은 설교와 긴 설교가 있는데 장년들을 위한 짧은 설교와 청년들을 위한 긴 설교가 있는데 청년들을 위한 설교를 들어가십시오. 2시간 16분 23초인데 1.5배속으로 들으면 제가 설교하기 전에 니체와 8개월간을 같이 지내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것인데 제가 거의 두 주에 한 번씩 링거를 맞아야 했습니다. 6개를 설교하고 체력이 완전히 다운될 정도였습니다. 지금 그 책을 쓰려고 원고를 제 앞에 갖다 놓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요런 식으로 만듭니다. 요렇게 만든 것이 긴 것으로 두 개 정도 나오고 짧으면 보통 하나 반으로 나오고 세 개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요약해서 프롬프터를 설치하는 것인데 그때 ‘삶의 명랑함에 관하여’ 할 때는 원고를 모두 작성해서 고치는 것만 17번을 고쳤습니다. 평균 한 번에 12번이고 가장 많이 고친 것이 17번입니다. 비서가 타이프를 쳐서 주면 제가 그것을 빨간 글씨로 고쳐주면 계속해서 17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마지막에 확정되어서 이렇게 만들어서 주일날 올라갑니다. 그때 물어보았습니다. 그 종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왜 색깔이 다르냐고 물었는데 시리즈별로 색깔이 다릅니다. 마칠 때 가면 저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중국집의 스토리를 이야기 하는데 중국집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하고 그 위에 소스를 뿌리는데 그 소스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36시간이 걸린답니다. 소스가 요만큼 한 바가지밖에 안 되는데 맨 처음 시작할 때는 거의 한 다라이 정도 되는 재료로 시작한답니다. 그것을 36시간 동안을 계속 사람이 서서 저으면서 이 소스로 마지막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음식점을 하던 친구가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한 20년 전 이야기인데 프랑스 요리에서 소스를 진짜로 고급스럽게 만들면 소스 한 숟가락에 3,000원의 원가가 들어간답니다. 그런 중국집에서는 3,000원 가지고는 되지도 않습니다. 만 원 이상 들것 같습니다. 그렇듯이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자기가 무엇인가를 설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스펄전 목사님께 누가 설교의 은혜를 받아서 물어보았답니다. ‘목사님 그 설교가 너무 은혜가 되었는데 설교를 준비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습니까?’ 스펄전 목사님이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갔답니다. 답이 되었습니까?
질문)
답변) 이 형제가 첫 번째 질문한 내용을 다 이해하셨습니까? 대단합니다.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짧게 설명하자면 도덕적 결정을 하는 것이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차가 이렇게 오는데 내버려 두면 이 길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이 기차는 선로를 누가 잘못 움직여서 이쪽으로 가게 했는데 이것을 안 움직였기 때문에 기 때문에 기차가 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6, 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버려 두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돌려서 이쪽으로 가면 두 사람밖에 안 죽는다든지 하는 극단적 경우에 기차가 이 길로 가는데 6, 7명의 사람이 죽게 되어있는데 뚱뚱한 남자가 햄버거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밀어서 철로에 떨어뜨리면 그 기차가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만 죽습니다.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마이크 샌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무엇을 설명하려고 하느냐 하면 오늘날 우리는 도덕이라는 것이 공리주의라는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성향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정의일 수 있다고 했는데 의외로 하버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와서 밀어서 떨어뜨려서 기차를 멈추게 하는 도구가 되어 자기 하나 죽고 그것도 자기가 원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자기를 밀어서 한 사람을 떨어뜨림으로써 7~8명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증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도덕 원칙은 공리주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안에 어떤 도덕 원칙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 이 아래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기차선로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육교 위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은 이것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떨어뜨려서 죽인다면 도덕 원칙이 해소되는 느낌이 드니까 완전히 공리주의 원칙에서 보면 6명 죽는 것보다는 2명이 죽는 것이 낫고, 2명이 죽는 것보다는 1명이 죽는 것이 나으니까 이것이 정답이 되어야 하는데 정답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미 칸트가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공리주의는 아닙니다. 도덕 원칙이 있고 이 도덕이라는 것이 사회의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 조금씩 도덕적인 기준이 변해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원칙 자체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우리가 믿고 어떤 도덕 행동들을 할 때 그때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에 이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그르다고 말하느냐, 옳다고 말하느냐, 아니면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느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우리의 도덕 원칙으로 삼고 우리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답변) 어떻게든 부담이 생기는데 햄버거 먹는 사람을 떨어뜨려서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제일 좋은 것은 자기가 뛰어내려서 열차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질문)
답변) 공부를 안 하는 것을 저는 이해를 잘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뭐냐 하면 이 세상에 공부 못 하는 사람은 없다. 공부를 만약에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를 해석하는 그것으로 공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분명히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수학은 진짜 쳐다보기도 싫었고 영어는 전교에서 1등이었습니다. 잊히지도 않는데 제가 중동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는 대학 본고사가 있었습니다. 3학년 첫 번째 모의고사를 봤는데 영어점수가 36점이 나왔습니다.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번에 우리 고3 중에서 영어 1등이 우리 반에서 나왔다. 김남준이다. 그랬는데 내 점수가 36점이었는데 1등이었습니다. 그때 서울대학교 법대, 문리대 영어점수가 50점이면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마다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는 것으로 서로 경쟁했습니다. 그런데 영어는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영어뿐 아니라 언어를 다 좋아합니다. 수학은 너무 싫었습니다. 나중에 목회자가 된 다음에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을 공부했는데 1년을 했고 선생님이 제게 그만 배우셔야겠다고 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수학을 배워야 하는데 수학을 하면 자기가 계속할 수 있는데 수학을 안 하시면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수학을 얼마나 해야 하느냐고 하니까 미적분에서 시작해서 1년 정도 공부하면 천문학의 다음 단계로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해서 거기까지 해야 하나 했는데 총신에 이상한 소문이 나서 김남준 목사님이 주무시기 전에 수학 정석Ⅱ를 풀고 주무신다는 소문이 났는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공부가 무엇에 관한 공부인가 하는 것입니다. 김영철이라는 개그맨이 있는데 영어해설을 합니다.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니까 미드에 빠져들면서 영어를 했습니다. 빨리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대학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하지 말고 내가 평생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좋아하고 싶은 쪽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됩니다. 부산에 가면 지금은 다 인터넷이 다 되었지만, 옛날에는 위성방송을 하던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애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만화영화가 한국에 별로 없었고 일본방송이 있는데 부산에서 잡혔답니다. 너무 보고 싶으니까 미친 듯이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어 만화영화를 원본으로 보면서 낄낄거리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면 반드시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대가 반드시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좋아하니까 목사가 되라는 부르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학교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원 없이 성경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심하면 됩니다.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면 그 공부는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준이 교수를 기억합니까? 필즈상을 받았는데 필즈상은 수학계에서 거의 노벨상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수학을 못 했답니다. 그런데 마음껏 자기가 좋아서 하니까 그렇게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대가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그것을 빨리 찾으라는 것입니다. 유튜브만 보고 있으면 그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두루두루 경험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요리일 수도 있고, 아이돌 가수로서 노래할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고, 역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천문학일 수도 있고, 과학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헤어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고, 의상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서 열심히 공부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고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공부는 별로 못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공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십시오. 파이팅.
질문)
답변) 이런 질문은 처음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연예는 못 했습니다. 나 대신 굉장히 슬퍼해 주는데 연예를 못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때 연예보다 급한 것은 내 인생을 사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매일매일 자살을 생각하면서 사니까 그것도 자기가 살 결심이 있어야지만 연예도 생각이 나지 여학생을 싫어한 것은 아닌데 내 인생의 문제에 골몰해있어서 가끔가다가 누가 여학생들을 만나게 해주어서 30쯤 대화하다 보면 짜증이 났습니다. 애를 데리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인생의 무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직장에 가서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몇 사람 만났습니다. 그러면 또 그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들 했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자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줄 오해하는데 그것은 아니었고 그냥 동지로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한 동지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연애 경험이 없어서 재미있는 답을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