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목회자 세미나 저녁집회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5:1-4)
녹취자 : 김세나
오늘 계시록의 말씀에 보면 우리의 목회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주 소중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서 밧모라는 섬에 유배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 밧모라는 섬에서 이제 이 요한은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 가족들로부터 떨어져서 절해고도의 외로운 섬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람에게 그 유배지에서도 커다란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날에 될 일들을 계실 하실 터인데, 이 계시를 기록하여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일곱 사자들에게 보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 일곱 교회는 아시아에 있는 실제의 교회이기도 하였지만,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대표로서의 일곱 교회를 가르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대 교회부터 이 교회들이 각 시대를 가르킨다고 말하기도 하였지만, 통상적인 주석은 이 시대에 존재해 온, 이 시대까지 존재해 온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의 대표로서의 일곱 교회를 지칭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 일곱 교회에 보낼 하나님의 말씀은 주의 천사가 계시를 해 주어야지만 요한이 알 수 있었고 알아야지만 그것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에 책이 있는데 안팎으로 썼고 일곱 개의 인으로 봉했습니다. 그것이 펼쳐져야지만 마지막 날에 될 위대한 계시를 알 수 있을텐데, 일곱 개의 인으로 완전히 봉해져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외에는 뜯어 볼 수 없게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더 절망적인 음성이 하늘에부터 들려왔는데 힘있는 천사가 큰 이름으로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이 책을 펴며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라고 물었을 때에 하늘에서건 땅에서건 그 인봉을 떼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인봉을 개봉할 수 없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이 요한의 태도는 이 책을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그랬습니다. 요한이 여기에 갇혔을 때의 나이가 90이 넘어 100살을 바라보는 나이였다고 합니다. 그 백발의 노 사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가 없게끔 봉해져 있고 누구도 그것을 풀어서 너에게 보여줄 수 없다라는 천사의 음성이 들렸을 때, 그는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희랍어 성경에 보면 흐느껴 운 것이 아니라 큰 소리를 내서 통곡하는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의 본질입니다. 목사는 물론 교회도 운영해야 되고, 또 재정도 잘 관리를 해야 되고, 교인들도 잘 관리를 해야 되고, 심방도 해야 되고, 행정도 해야 되고, 또 교회에 관련된 정치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목회의 본질적인 일들이 아닙니다. 목사의 본질적인 사명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힘있게 탐구하고 주님의 도움으로 계시의 빛을 발견하여 자기의 양떼들과 이 세상의 알려주는 그것이 바로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목회자들이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나온 목사님들 가운데 목회와는 상관이 없이 혼자 독자적인 계획을 가지고 성경을 계속 연구하고 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되는지 나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 목사들의 성경 지식은 한심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신학교 가방 끈을 놓고는 그 다음에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영혼도 영혼이고 성도의 영혼도 영혼입니다. 목사님과 만나서 좋은 대화를 나누고 칭찬을 많이 받으면 집에 가는 동안까지야 기분이 좋지만 그것은 영혼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러면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대접을 잘 해 주고 교회에서 대우를 잘 해 주고 또 교계에서 좋은 직분이라는 것을 맡아서 사람들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도 기쁨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기쁨만 못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목사도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이런 분이셨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놀랍구나 하는 것을 매일 매일 깨달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텐데 여러분들에게는 누가 그렇게 은혜를 끼쳐주나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좋은 책을 읽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지 않으면 목사의 영혼도 똑같이 파리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탐구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다가 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을 때, 이 사도요한처럼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매달려 본 적이 있을까요? 다른 일로는 금식도 하고 통성기도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매우 더디고 어리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 본 적이 우리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반성을 해 봅시다. 그러면 어떤 목사님들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도시에서 목회하니까 뭘 몰라서 그렇지 시골 내려가 보십시오. 밭일 하다 온 노인네들 설교 준비 하나 안 하나, 예배 시간에 고개 끄덕거리고 졸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뭘 듣는 사람이 있어야지 준비를 하죠. 여러분, 설교를 사람 앞에서 준비합니까. 우리 목회 사역이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목회 사역입니까. 우리를 목사 만들고 목회 하라고 사명준 사람들이 시골 노인네들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윌리엄 포사이스라고 하는 설교학자는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설교자는 설교의 결과로 하나님께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상을 받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내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은혜를 받았으면, 내 설교가 잘나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내 설교를 도구 삼아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죠. 그러니까 칭찬은 하나님이 받으셔야죠. 하나님은 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삶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무렇게나 건들건들 하고 살면서 되는대로 설교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성도들에게 한편을 설교하기 위해서 진액을 짜내고 고혈을 짜듯이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젖 한방울이라도 새끼들에게 제대로 먹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애미의 마음인지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고, 사람이 못 나서 인지 오라는대도 없고 가고 싶은 대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 교회가 내 운명이려니 하고 17년 동안 지내왔습니다. 그러니 남의 교회에서 설교 들을 시간이 없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을 수술하고 입원을 하게 되니까, 도저히 이것을 하고 강대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병원에서 이제 옷을 갈아입고 주일 예배 시간에 다른 교회를 갔습니다. 주일 예배, 그리고 주일 오후 예배인가, 수요예배 어쨌든 두 교회를 방문을 해서 조용히 뒤에 성도처럼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교회는 장로교회였고, 한 교회는 침례교회였습니다. 느낌을 말씀 드려볼까요? 예배가 끝났는데 감사한 게 아니라 화가 났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무책임 할 수 있을까. 저것은 목사로서 설교하기 이전에 약장수로서 약을 팔아도 저렇게 하면 안 팔릴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다못해 무좀 약을 팔아도 저렇게 설교하면 안 살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설교를 합니까.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셔서 자기가 부자 되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나 실컷 늘어놓고 말이지, 그 소중한 주일에 모든 성도들 고개 숙이면서 졸고 있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그것도 설교라고 하고 내려와서 성도들에게 만면의 미소를 띄면서 악수를 하고 안녕히 가시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게 음식점도 아니고, 뭐 그런 교회가 있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한 시간도 설교 준비 안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많은 시간을 설교를 준비 했는데 그것 밖에 설교를 안 했다면 그 사람은 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렇게 설교를 해서 성도들을 신앙에 붙들어 매려고 합니까.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설교를 하면, 몇 번이나 설교를 하다가 죽겠습니까. 그것도 주일날만 따진다면 정말 10년이 남았다고 해봐야 500번 설교 할 수 있는 것이고, 5년 남았다면 안 빠지고 설교 해 봐야 250번 남은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섬겨야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화) 일본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바둑을 둔 기보가 전해 내려 옵니다. 흑백을 잡고 몇 십년 전에 바둑을 두었고, 100년 전에 바둑을 두었는데도 언제, 어느 날 어느 시에 누가 여기에 두니까 여기 둬서, 여기 둬서 백이 이겼다더라. 흑이 이겼다더라 내려오는 역사적인 기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전해 내려오는 기보 속에 토혈보이 있습니다. 도를 잡고 바둑을 두다가 한 사람이 졌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진게 원통해서 바둑판에서 피를 토하고 즉사를 해 버렸습니다. 그게 유명한 토혈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락 하나를 하다가 질 때에는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서 피가 거꾸로 솟아서 바둑판 위에다가 피를 토하고 즉사를 해 버리는데 우리의 사역은 오락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고 영혼을 살리고 죽는 진리의 사역입니다.
목회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도 가난해 볼 만큼 가난해 본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 목사님 못지않게 가난하게 살아봤다고 자부합니다. 자부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해 보니까 가난도 목회의 위기가 아닙니다. 핍박을 받는 것도 목회의 위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목회의 위기일까요? 목회가 안 되는데도 스스로 만족하며 생각하는 것, 그것이 위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잘못 전하는 것 같고 아무도 그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데 피를 토하는 심정이 안 되는 것, 그게 목회의 최고의 적입니다. 그게 적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목회가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다라고 깨닫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몸부림 치면 어디로 변할지는 모르지만 그 목회가 잘못된채로 계속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도니란 저드슨이란 사람은 버마에 가서 6년동안 전도했는데 한명의 결신자를 얻었답니다. 한명 전도할 때까지 6년이 걸렸는데, 우리 생각에는 얼마나 바보 같이 무능하게 목회를 했으면 그 꼴이랴. 보스턴 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날은 그에게는 기도하는 날이었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매 토요일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명을 전도하는데 6년이, 한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주는데 6년이 걸렸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성공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같지 않습니다.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큰 것, 많이 모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순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이단의 부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우리가 거의 13년간 농어촌 선교사역을 하면서, 그러면서 많은 사례들을 보았는데 정말 목사님이 은혜를 받으시고 깨어나셔서 교회가 변화되는 사건들을 여러 교회에서 경험했습니다. 문제는 물질이 없거나 아니면 농촌이라서 사람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그렇게 탐내시면 농어촌 목회를 접고 강남에 오셔서 개척을 하셔야 합니다. 시골은 원래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면 없는 데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이 왜 너네 교인 30명 밖에 안 모이냐, 50명 밖에 안 모이냐, 그것을 가지고 우리를 책망하십니까. 주님은 우리 거기 보내실 때에 사랑의 교회나 온누리 교회 같은 대형교회 만들려고 거기에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거기도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해 전에 어느 시골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얼마나 노인네들이 강팍한지 빗자루를 들고 막 휘두르면서 예수 믿는 것들, 사라지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세수대아에다가 발 닦은 물까지 뿌렸습니다. 그래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서 어깨 주물러주고, 뜸 떠주고 그렇게 하면서 말동무 해주고 그랬더니 시골 노인네들 외롭습니다. 이제 마음이 녹아졌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는지를 이 청년들이 열심히 전했더니 마지막에 할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런데 왜 너희들은 그 좋은 예수님의 사랑을 이제야 나에게 전해누느냐. 좀 더 진작 전해주지 말이야. 그런 것 하라고 하나님이 우리 부르신 것입니다. 시골이라서 사람이 없다고 투덜 거리는 어느 목사님에게 내가 이야기 했습니다. 노인 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목사님, 청년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청년이 탐이 나시면 거기 다른 사람한테 넘겨 주시고 신촌에 가서 개척을 하십시오.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모두 다 청년들입니다. 목사님을 거기에 세워 주셨으니 전도해 봐야 교회 일꾼도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가지고 다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목사님 사명은 그 마을의 노인네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돌보다가 하나씩 하나씩 관 뚜껑 덮어서 천국 보내는 것입니다. 다 끝내고 빈 마을이 되면 하나님이 목사님,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그러시지. 너는 왜 교인들 하나도 없냐 안 그러실 것입니다. 도시 교회 목회자들이 갖는 야망과 같은 그런 것들을 가지고 목회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못 만난 죄인들의 완고함은 시골 사람이나 서울 사람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교육을 받은 인간이나 못 받은 인간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은혜 아니고는 무엇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 들으면 그러니까 성경을 더 잘 탐구해야합니다. 여러분, 학교 다니는 큰 애들 밥 줄 때에는 전기 밥솥에다가 밥 집어 놓고 뚜껑 눌러놓고 야, 밥통에 소리 나면 열고 퍼 먹어라. 그리고 엄마 외출합니다. 이유식 먹이는 갓난아기는 죽을 쒀야 합니다. 엄마가 꼬박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그것을 숟가락으로 휘저으면서 이유식을 만듭니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교육 받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들 설교는 쉽습니다. 말귀 못 알아듣는 어른 아이들이나 노인네들을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이 한 시간 준비하면, 세 시간, 네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귀 어두운 노인네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까짓것 전도해봐야 교회 봉사도 못할 인간, 헌금도 못할 사람,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영혼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지. 아마 예수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병든 자를 고치고 주린 자는 먹이고 아픈 자는 치료하면서 이들을 팔을 딱 끼고 섬기시면서 예수님이 목회를 하셨겠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러면서 목회하다가 죽는 것이 목회자의 일생이지. 무슨 별다른 큰 영광이 목회자에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열심히 성경을 탐구하셔야 됩니다. 목회자가 은혜를 받으면 교인들이 가랑목을 적실 수 있는 샘물의 물이 고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교인들에게 장로님들에게 내가 이야기 합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거나 힘들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들이 그 샘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먹고 산다. 지옥과 같은 마음으로 목회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인들이 속석이지 않아도 괴로운 일들이 정말 많은데, 누군들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합니다.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 한 구절이라도 올바르게 연구해서 전해야 되겠다라고 하는 각오를 아주 단단히 가져야 합니다.
저희들이 이 목회자 세미나, 여기에서 하기 시작한 것이 제 기억으로는 아마 한 6년 정도 더 흘렀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교회에 가서 한 명의 신자라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제대로 가르쳐야 되겠다라고 하는 열망을 가진 목회자들이 모여서 그 교인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성경을 잘 공부하고, 그리고 교회에 가서 잘 가르칠 수 있도록 그렇게 훈련 시켜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이 불러서 주님이 거기에 있는 것을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은 목양지를 주시고,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사명은 그 양떼들을 꼴을 잘 먹이고 포도나무를 잘 기르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 포도나무가 자라고 무엇으로 꼴을 먹고 양떼들이 기름져 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말씀 한절을 전할 때에도 성심을 다해서 잘 준비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든지 못 받든지 나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어줘서 더 이상 잘 준비할 수 없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해서 눈물로 그 설교 원고를 적셔서 그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반드시 거기에서 성도들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하라고 주님이 여러분들을 목회지에 세워 주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