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예배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잠 25:13)
녹취자: 윤은정
시골에서 목회하시니까 가을겆이를 해보셨을 것입니다. 아마 어쩌면 중, 소도시에 계셔서 가을겆이를 못해보신 목사님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잠깐 자랐고, 제가 직장생활 할 때에는 항상, 봄에 모내기, 가을에 벼베기를 갔습니다. 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는데 제가 그거를 착출하는 담당자였는데, 가는 사람이 없으면 담당자라도 가서 몸으로라도 떼워야 됐기 때문에 매년 갔습니다. 참 힘들더라구요. 모내기는 허리를 필 새 없이 요령도 부릴 수 없는 것이, 못줄 잡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서 구령을 마치면, 이쪽서부터 시작해서 한 여섯 개쯤 될까요? 꼽아야지만 줄이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요령을 피울 수가 없어서 언젠가는 ‘야, 저, 못줄 잡는 것은 쉽겠다.’ 그러고, 그다음에는 못줄을 잡겠다고 그랬습니다. ‘야, 이거는 차라리 엎드려서 모를 꼽는 게 낫지.’ 못줄은 팽팽하게 온 힘을 다해가지고 휘지를 말아야 되고, 정확한 간격을 옮겨야 되는데 상대방이 어설퍼가지고 못줄이라도 놓치는 날에는 탁하고 튀면서 하여튼, 그것도 하고 나니까 반나절 하고 나니까, 어깨가 빠질 것 같더라구요.
‘추수는 좀 낫겠지.’ 추수를 갔더니 이 추수는 줄 서서 낫으로 베는데, 그때 만해도 트랙터가 없으니까 낫으로 베는데, 평생 농촌에서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한테 낫을 나눠주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다 농촌에서 그래도 살아온 사람들이라 눈썰미가 있으니까 무슨 낫이 좋은지 한 번에 알아 보더라구요. 마지막 남은 낫을 손에 들었는데, 이것은 두부를 썰어도 안 썰어질 낫이 내 차례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제는 꾀를 피울 수 없는 게, 똑같이 줄 서서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깨를, 허리를 피면은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가고 나는 이렇게 남는 것입니다. 지는 것은 싫어하잖아요? 사력을 다해서 했는데, 마지막에 뒤를 돌아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땅에서 삭, 삭, 삭, 삭, 짜르는데, 나는 중간을 뚝, 뚝, 뚝, 뚝, 짜르면서 지나갔는데, 하여튼 내가 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집에 와 보니까 이게 물집이 퉁퉁 부었습니다. 그 때에 대부분 가을겆이는 꾸물꾸물하고 시원한 날에 하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사정없이 비치는 맑은 날에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지만 걷어둔 가을겆이가 뒤에서부터 마르잖아요. 그러니까 구름 한 점 없이 그냥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쬐는데, 거기서 그것을, 벼를 짜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령도 필 수 없고, 덥다 할 수 없는 것이 교대도 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투입됐기 때문에... 그러고 그냥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한 위로는 뭐냐하면은, 저쪽에서 호루라기를 ‘후르르’ 붑니다. ‘자, 10분가 쉬었다 합시다.’ 그때가 제일 좋은 때입니다. 잘하든, 못하든, 온 몸에 땀은 흐르고, 허리가 아파 죽겠는데, 그때에 냉수가 옵니다. 그때는 또, 얼음도 흔하지 않았습니다. 냉장고가 없으니까... 얼음집에서 얼음을 사다가 아마, 물을 담근 시원한 얼음물이 오고, 그리고, 이제 거기에 막걸리도 오고, 또, 뭐, 빈대떡도 오고 그럽니다. 그때에 빈대떡 그런 것은 생각이 안 나고, 하여튼 그 얼음냉수를 쭉 마실 때 시원했던 기억이 나는데, 성경에 정확하게 뭐라 그러냐면,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다.’ 그러니, 그렇게 땀을 흘리고 고생했을 때에 얼음 냉수를 마실 때에, 그 술 좋아하는 사람들도 술보다 냉수입니다. 보약 좋아하는 사람도 보약 대신에 냉수이고, 무엇도 필요 없고, 그 시간에는 바로 냉수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얼마나 생생한 묘사입니까?
제가 전도사일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어떻게 교역을 하다가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셔서 오늘 우리 위원장님 기도하신 것처럼, 영혼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하나님이 정말 물 붙듯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교수생활 하면서 전도사를 했는데, 하여튼 토요일부터 만사 제쳐놓고, 심방을 하기 시작했고, 주일이면 항상 교역자 회의가 4시쯤 넘어서 있는데, 예배 마치고 밥을 먹고 나면은 1시반정도 끝납니다. 그러면 담임목사님 찾아가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1달만 교역자 회의에 좀 빠지게 해주십시오.’ 교역자 회의에 빠지는 것을 목사님이 아주 싫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사님도 알다시피 제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가 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해야 되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고, 토요일은 찾아가봐야 애들이 도망가고 없고, 주일 밖에는 없는데, 제가 이 길로 나아가서 밤늦게까지 심방을 해야 되는데, 보고는 제가 전화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걱정 말고 얼른 다녀오라’고, 그러면 1시 반부터 차를 몰고 나가서 선생님들 한 두어 사람 태우고, 그리고, 그 교회에 안 나오는 놈들 하나씩, 하나씩 심방을 하는데, 많이 하는 날은 밤 11시까지 하면은 한 10명합니다. 그렇게 하면은 다음 주에 한 열 댓명 더 나옵니다. 그러니까는 참 놀랍죠. 그렇게 11시, 11시 반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그 다음 주일에 이제 목사님 만나면은 ‘이렇게 해서 이만큼, 이만큼 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라고 심방 보고를 합니다. 아이들이 잘 나와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니까, 목사님이 내 손을 붙들고 뭐라고 합니다. ‘전도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이상했습니다. ‘아니, 이게 내 양떼들이고, 내 목회인데, 뭘, 담임목사가 뭘 아쉽다고, 전도사 손을 잡고 고맙다고 그러나?’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전도사님, 1시부터 밤 늦게까지 심방하는데 들어가는 기름 값은 교회에서 대겠습니다.’ 그래서, ‘아이, 목사님, 괜찮습니다.’ 뭐, 그때는 1리터에 150원밖에 안할 때니까... ‘목사님, 제가 교수라서 월급도 많이 받고 해서, 그 정도 기 름값은 댈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교회에서 댈 테니까 꼭 쓰고, 영수증은 교회에 내십시오.’, ‘아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17년 전에 열린 교회를 개척하고 이제까지 수 많은 부교역자들을 만났잖아요? 그 만나면은 그도 다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은, 비교적 모두 다 충성스럽게 주님을 봉사 했지만, 그러나, 정말 충성스러운 사람도 있고, 좀 안 그런 사람도 섞였을 것 아니에요? 요즘은 뭐 다들 충성스러워요. 또,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지. 또, ‘나보고 하는 얘길까?’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충성스러운데, 그렇게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은 그때에 내 손을 붙들고 ‘기름 값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목사님의 심정이 생각이 납니다.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해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실수를 하면 ‘더 잘 하려다가 그랬겠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 그런 사람이 실수를 하면은 ‘그냥, 가만히나 있지. 일은 왜 만드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명백하게 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은 편하라고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누가 실수를 하면 ‘잘 하려다가 그랬겠지.’ 누가 실수를 하면, ‘아, 그냥 가만히만 있지. 왜 자꾸 움직여서 일을 만드나?’ 그게 바로, 충성스런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세겨 놓는 인상입니다. 여러분, 작년에도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만은 우리 모두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릇들이 있는데, 우리 모두 꼭 같은 그릇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를 크게 하도록 부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안 그런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해도 쭉쭉 뻗어 나가서 아주 탁월하게 학문적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김연아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 옷 입혀서 그 스케이트 신겨놓으면, 얼음판에 나아가서 김연아처럼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하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릇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본 사람들이 그릇을 이야기 해야 됩니다.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그릇을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 태만해지기 위해서 구실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깊이 인정하면서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가는 목회자들에게 숨길 수 없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은,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건 없건 그것과는 상관 없이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정 능력이 안되면은 목회자가 자기 교회라도 깨끗이 소재할 수 있어야 되지 안겠습니까? 신학교 다닐 때, 잠시 사역을 쉬는 동안에 정해진 교회가 없어서 한 몇 달,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예배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예배드리러 올라가는데, 계단이 정말 개판이고, 그것도 참고 올라가는데, 그것도 참고 올라가니까 계단 한 복판에 어떤 애가 똥을 눠났어요. 도로 발걸음을 옮기고 내려왔습니다. 여러해 전에 교구에서 심방을 하는데 교구에서 누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자기네 교구의 어느 성도가 열린교회 소문을 듣고 왔다가 마당에 내리자마자 등록하기로 결심을 했답니다. ‘아니, 설교도 안 들어보고 그런 결정을 했드냐?’ 그랬더니, 마당에 딱 내렸는데, 너무 교회가 깨끗하고 단정해서, ‘이렇게 교회를 관리하는 교회라면 내 영혼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등록을 하기로 결심을 했답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우리가 작년에도, 제가 설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은, 우리가 성령운동을 한다고 조용기목사님 같은 교회가 되겠습니까? 제자훈련을 흉내 낸다고 옥목사님 교회가 되겠습니까? 찬양집회를 한번 흉내를 낸다고 하용조 목사님 교회 같은 교회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릇은 달라도, 우리 모두 그릇이 다른 것 때문에 주님께 책망을 받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릇을 그렇게 만드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한 번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의 칭찬이 꼭 같았습니다. ‘잘하였도다. 나의 충성된 종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늘 조심해야 될 것은, 교회의 규모가 작거나, 아니면은, 교인들이 너무 연로해서 우리 설교를 이해하는 것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들이 적당히 하려고 하게 되면, 교회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영혼이 망가집니다. 여러분, 설교준비 안하고 설교단에 10번만 서보십시오. 교회가 망가지기 전에 목회자의 마음 자체가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단 한명의 성도가 있어도 마음속으로, 어느 목사님이 그럽니다. 두 명을 놓고 설교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사람은 사모니까, 사실 한명을 놓고 설교를 한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를 해도 단에 올라서면, 두 사람,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사모님이니까 사실은 설교를 들으려고 거기에 나온 것이 아니라, ‘남편이 무슨 말 하나?’ 하고 보러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집에 들어가서 오늘 설교를 잘했니, 못 했니, 라고 시비를 걸때에는 목회자의 마음이 오그라들어서 사실상 한 사람을 놓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자꾸 위축이 되더랍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냈답니다. 그게 뭐냐고 그랬더니, 온 예배당에 거울을 달았더랍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이,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기둥에도 사람, 다 보이더래요. 그리고, 마치, ‘예배당에 사람이 가득한 것처럼 설교를 하면서 위축되는 감정을 이겼다.’ 그런 간증하는 이야기를 누가 해주었습니다. 나는 참 충성된 사람이 아니면은 그런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보면은 ‘그를 보낸 자에게 얼음냉수와 같다.’ 그랬습니다. 우리들이 늘 기도할 때에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공하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목회를 하지 말고 세상에서 사업을 했어야죠. 온 마음을 다해서 충성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 당신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 가까이 계십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은 충성스런 사람들은 추수철에 시원한 얼음냉수와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 목회사역에서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런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목회사역에서 지혜가 부족한 것은 충성심이 모자라서입니다. 충성스런 사람들은 날마다 창의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창의력의 원천은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정말, 해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무궁무진한 방법들이 나옵니다.
대동아전쟁 때 있었던 일입니다. 사실 미군이 진주만이 기습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랍니다. 더욱이 갑자기 일본함대들이 사라졌을 때, 혹시 진주만을 기습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회의를 했는데 ‘진주만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판단을 내렸답니다. 왜냐하면 어뢰로 공격을 해야되는데, 다시 말해서 함제기를 공중에 띄어서 어뢰를 투하하면, 그 투하한 어뢰가 물살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조준된 함정을 맞춤으로써 그 배를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곧바로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은, 배를 파괴시키는 것은 어뢰만한 게 없습니다. 어뢰는 밑창을, 아랫부분을 밑창을 냅니다. 그래야지만 이게 침몰을 합니다. 그런데 이 진주만의 수심이 어뢰를 투하하기에는 너무 낮아서 많은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이 어뢰를 떨어뜨려봐야 바다 밑에서 폭파를 하기 때문에 함정의 손해를 입힐 수가 없기에 진주만은 공격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고 보았고, 비행기가 떠서 만약에 어뢰를 투하하지 못한다면 미국에 있는 비행기들은 장난감입니까? 출격을 해서 공중전을 하면은 진주만은 공격을 할 수 없다 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전쟁이 나고 보니까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방법으로 어뢰공격을 시도했는데, 어뢰마다 커다란 나무를 매달아가지고 그냥 폭탄을 떨어트리면 바닥 밑바닥에 꽂힐게, 커다란 나무를 달았기 때문에 못 내려가고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와서 수평을 유지하면서 물 위에 떠서 함정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배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이끌면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못합니다.’ 그것보다 더 지겨워 하는 말이 ‘힘듭니다.’ 입니다. 힘들다는 것은 질적으로 더 나쁜 것입니다. ‘못합니다.’ 그것은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고, ‘안됩니다.’ 그것은 도저히 되지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만 ‘힘들다’는 힘들어서 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소용없습니다. 뭐, 영화를 잘 찍었니, 못 찍었니, 그러고, 말이 많지만은 심형래씨가 영화를 돌려가지고 왜, 무슨 뭐, 이무기가 나와서 싸우는 거, 그거 뭐에요? 하여튼 그런 거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막 찍는데, 하여튼 도시 한 복판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난리를 치는데, 그것도 출근시간인데, 다 이해를 해주더랍니다. 미국이 영화 찍는데 좋은 나라라고, 그런데 이게 뭐냐하면은 하루가 지나가는데 5억인가 6억씩 깨지더랍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안돼서 ‘이 날짜를 줄여야 된다.’ 그래서 두 달을 찍어야하는데 ‘한 달을 찍을 수 있냐?’고 그랬더니 감독이 ‘두 달에 찍을 것, 한 달에 못 찍는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조감독이 있었답니다. ‘너 한 달에 찍을 수 있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찍을 수 있다’고 그러더랍니다. 넌 해고, 니가 이제부터 감독이다. 그래서 찍었대요.
우리들이 항상 충성심이 모자라면은 되는 일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이고, 할 수 있는 일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보십시오. 목회자가 ‘할 수 있다’라고 외쳐도, 바로 밑에 있는 사람은 ‘힘든데’, 그 밑에 있는 사람은 ‘안 되는데’, 저 밑에서는 ‘못할껄?’ 그렇게 내려갑니다. 그런데 목회자 자신이 ‘에이, 그게 될까?’ 이렇게 하면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도전 한 번 못해보고,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왜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으면, 물질이 모자란다고 그러면 주님이 보내주실 것이고, 사람이 모자라면 주님이 붙여주실 것이고, 그리고 은혜가 모자라면은 주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겠어요? 여러분, 항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도 숨 쉬게 해달라고 기도해보신적 있습니까? 그건 기도 안합니다. 왜냐하면 내버려둬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들이 내일 아침에 전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기도 안할 수 있겠습니까? 왜? 가는 곳마다 들어오지 말라고 그러고, ‘예수 믿으십시오.’ 그러면 시끄럽다고 그러면서 문을 쾅 닫고, 있는데서 아파트 경비실에 전화해가지고 ‘월급 받으면서 니들은 뭐해 자빠졌냐’ 고 하면서 욕에 욕을 퍼붓습니다. 어떻게 기도 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것을 보면은 충성스런 목회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해에 우리 좋은 구경 많이 받았습니다만은 올해는 그냥 은혜만 받고 돌아가지 맙시다. 올해는 목표를 한번 세우십시다. 뜻을 세워서, 그래서 구체적으로 뜻을 세우고, ‘내 평생 목회하면서 이것은 못해봤는데, 내가 반듯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루어 드리리라.’ 하는 목표를 세우십시오. 그것이 전도든, 기도든, 교회의 부흥이든, 절실하게 목표를 놓고, 그리고는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충성스러운 일꾼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여러분도 담임목회를 하시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많은 일꾼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사랑스러우시던가요? 공부 많이 한 교인이 사랑스러우시던가요? 얼굴 예쁜 교인이 사랑스러우시던가요? 교회가 무슨 다방입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사랑스러우시던가요? 아닙니다. 말 많은 사람들이 사랑스러우시던가요? 아닙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충성하는 사람, 그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주님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계시는데, 최근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70세면은 은퇴를 하잖아요? 이제 은퇴할 날을 잡아 놓고, 몇 달 안 남았는데, 어느 날 주무시다가 꿈을 꾸셨답니다. 사택에서 주무시다가 이제 35년 이상 같은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뭐 교회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한 3-40명 모이도록 그렇게 됐는데, 어쨌든 그래도 은퇴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답니다. 온몸에 채찍에 맞으신 핏자국이 가득하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신 채 십자가에 매달려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답니다. ‘주님, 어찌하여 그렇게 고난을 많이 받으셨습니까?’ 그리고 꿈속에서 안타까워하다가 퍼뜩 눈을 떴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옷을 입고, 새벽에 몇 신 줄도 모르고 교회에 나오셨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답니다.
(찬양) 머리에 가시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시는 누구의 죄 값인가
간절히 정말 오래간만에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기도하셨답니다. 그런데 이제 끝났잖아요. 은퇴잖아요. 더 이상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아직 물러나지 않고 현직에 있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 기회입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충성하십시다. 그래서 금년에는 은혜받고 마음이 충만해서만 돌아가지만 말고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뜻을 간절히 세우고 주님을 위해서 아주 충성할 수 있는, 그래서 내년도에 와서 정말 하나님이 함께해주신 증거들을 우리서로 간증할 수 있는 목회사역에 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