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안에서 나를 찾다
녹취자: 최원정
(질문) ‘신·나’에서 언급하셨지만 목사님께서 15세에 교회에 가는 길에 논둑에서 엎드려 통곡하신 부분들을 보면 그 이전에도 신앙생활을 하셨고 목회자가 되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많은 분들에게 목양을 받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목사님은 어떤 분에게서 어떻게 목양을 받으신 일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목양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해주신다면 저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답변) 우선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1살 때 회심을 했는데 나를 목양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연세되신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지만 상담을 받아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심방을 오신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예수를 믿고 처음 성장이 더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목양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육체적으로 아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면 짐승과 거의 비슷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935년에 프랑스에서 산속에 갔다가 애들을 발견했는데 맹수 비슷하게 변한 아이를 발견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그 사람이 잘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돕고 잘 양육해서 그 사람이 견고하게 자신의 힘으로 서서 교회의 일원이 되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돌봐서 그가 온전한 신앙을 갖고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한 신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양입니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결국 영적인 성장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영적인 성장을 위한 도구들입니다. 영적인 성장이 지식과 사랑의 성장입니다. 그 안에서 온전한 인격을 이루어가는 것으로 봅니다.
(질문) 군대에 다녀 온지 얼마 안되었는데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여쭈어봅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행되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청년교구에 있는 성도들이 예전에 비해 나약해 져서 많은 사역이 이루어가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목사님께서 바라보시기에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해주셔도 좋고 전체적인 성도들을 더러 보셨을 때에 예전보다 신앙생활 하기 어려운 사회가 이루어져서 저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저희가 너무 연약해서 사회에 너무 많은 사역을 하고 있어서 저희가 좀 더 분투를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질문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사회적으로 어디든지 간에 7, 80년대처럼 군대문화가 지배를 해서 질서 잡혀져 있는 자율적인 모임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졸업식과 같은 행사이든지 이런 모든 것들이 옛날 같지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교회에는 법이 지배하는 강제기관이 아닌 자유로운 기관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양산이 되면서 기본적으로 질서를 지킬 줄 모르게 됩니다. 아까도 오다가 보니까 차를 댔는데 종으로 주차칸이 세 개가 그려져 있는데 횡으로 주차 칸을 잡고 차를 대는 것을 보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며 사는 개념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니까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양식이 있었던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얘기하는 개념 없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함부로 하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깊이 회심을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목회자를 존중하고 교회의 질서를 배우며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터득해가며 순종하면 나을 텐데 그렇게 진실하게 회심하는 비율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회개하고 거듭나야 한다는 외침도 희미해져가니까 사회적으로 질서가 없는 세대가 되고 신앙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말씀이 심겨져서 체계적으로 들어가고 자기반성이 있고 하면서 교회는 세상과 다른 곳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오는 것입니다. 군기를 잡는 비결이란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안되니까 리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리더는 어떤 모임을 자기에게 주어진 목적대로 끌고 가는 것이라면 순 공부 시간에 순 공부를 훼방 놓고 되지도 않는 자기 이야기로 시간 전체를 다 떼워서 모인 사람들이 지겨워서 모임에 나오기 싫어한다면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이 모임을 인도하다보면 지혜가 생겨납니다. 질문이 많은 사람들은 적절히 넘기고 자기 얘기를 하려는 사람은 주제와 빗나가니까 끝나고 이야기할 시간을 줄테니까 말을 돌리고 이렇게 인도하는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 자기가 어떤 질서가 되어야 할지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교역자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해서 지도를 받고 나이 든 선배들에게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해서 지도를 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질문) 사실 순장으로서 목양을 하고 있지만 저의 한 주간의 삶도 못 살았는데 순원들에게 권면해야 할 때가 가끔씩 찾아오고는 하는데 그럼에도 순원들에게 기도제목을 나누게 하고 힘든 일을 이야기하도록 해야 하는데 정작 제 속에서도 할 말과 못할 말이 있으니까 어디까지 저의 부족함을 나누기엔 순원들이 혹시 시험에 들까 고민이 되었고 또 순원들 중에 책을 읽어오는 순원이 있고 읽고 오지 않는 순원이 있는데 권면을 해도 안 읽어오는 순원이 있는데 계속 말하기가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우선 나눌 때 어느 범위까지 나눠야 하는가에 대한 것은 생각을 좀 많이 해야 합니다. 나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것을 나눈다고 하면서 순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뒷수습을 못한다면 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선적인 삶을 살고 진실성이 없이 행동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선을 지켜야 할지 순원도 마찬가지로 순장과 둘이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와 사람들과 함께 공식석상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혜롭게 분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한 것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든지 열정에 들떠서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 등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말은 한번 하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지혜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설교 시리즈 가운데 말과 영적 생활이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교회가 되게 말이 많은 곳인데 교회와 개인의 영적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시리즈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15년전만 해도 베스트 3안에 드는 요긴한 설교였습니다. 순장들이 이치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책을 안 읽는 것은 되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실제로 시간이 바빠서 책을 못 읽을 정도로 바쁘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바쁘고 고단하게 살다보면 시간이 나면 쉬고 싶지 또 다시 책에 몰두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관심사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야겠다고 집중되어 있는 사람은 다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긴 책을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으면 나오지 말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거의 다 읽고 아주 빼곡하게 예습을 해서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원들 중에서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격려해서 그 사람들이 더 잘하게 하고 계속 해서 (책을 안 읽어 오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예습을 안 해오고 책을 안 읽어 오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사기가 죽지 말고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일주일동안 거의 연락도 없다가 “책 읽었어?”, “안 읽고 뭐해?” 라고 한다면 안 됩니다. 또 구역원들 중에서도 들려오는 이야기는 순장이 너무 편애한다는 것입니다. 순장이 숙제도 잘 해오고 순장을 잘 따르는 사람은 예뻐하고 전화해도 받지 않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하도 책을 안 읽으면 카톡으로라도 꼭 읽어야 될 부분을 줄을 쳐서 보내줘서 의견을 묻는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니까 사람들을 격려해서 끌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은 이야기를 하도록 합니다. 호흡이 너무 길면 순서대로 문제를 풀어갈 때 하도 안 읽으면 2번이라도 읽고 간단한 말로 30초 동안 내용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다음 주에 그렇게 말해보자. 이렇게 격려해서 조금이라도 책을 읽도록 해서 자기가 나름대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면 어느 정도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순장이 순모임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요즘 시대가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강퍅해진 것 같습니다. 시간을 투자하거나 교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 공과 공부, 예배와 같은 것이 시간이 아깝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시간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그리스도인에게 시간이라기 보다도 순모임과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점점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만나는 시간을 내고, 회비를 내고, 의무를 짊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모두 spectator가 되고 싶어 합니다. 예술 공연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사경회라고 해도 집에서 조용히 혼자 듣고 싶어 하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나중에 녹화된 것을 듣고 싶어 하고 등 이런 식으로 실제로 오프라인으로 활동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신앙이 있고 뜨거우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고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도 생겨서 진짜 공연 실황에 매료된 사람들은 절대 화면에 만족을 못합니다. 이런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순모임에 관련해 말하자면 순장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순모임에 참여하고 나서 모일 가치가 있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 사회적인 것, 정서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 채워져야 합니다.
육체적인 것이란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하던지 순장이 매주 그럴 수는 없지만 갔는데 정성껏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면서 무엇을 하든지 행사를 하더라도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계기로 이 샌드위치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유기농 식품을 찾아서 아니면 뭘 어떻게 해서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든 것이다. 먹어보고 평가를 해달라.’ 와 같이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입이 열리면 마음이 열린다고 합니다. 맛있는 것도 사다주고 만들어도 주고 어떻게 하든지 육체적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필요란 모였을 때 (사람은) 혼자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만 있기 계속 힘들어서 어울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서 만났는데 어울림에 있어서 보람을 느끼려면 서로 인격적인 교류가 있고 내가 저 사람에게 이해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참 즐겁다. 자기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갔는데 앉혀놓고 따발총 쏘듯이 순장이 80% 이상 강의를 하면 질문하라고 하면 ‘내 말 맞지?’ 이렇게 해버리면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해야 할 의욕을 못 느끼게 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모이는 사람이 모두 맡은 역할이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너는 우리 모임에서 교재를 준비하는 사람, 기도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 간식을 준비하는 사람, 연락을 돌리는 사람, 카톡방을 관리하는 사람 등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자기가 여기에 와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역할이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사회적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요구란 모였을 때 다 끝나고 가면 시간도 많이 쓰고 밤이 늦어서 피곤했지만 참 은혜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런 것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정서적인 요구는 마음에서 기쁨, 우리 모임이 너무 소중하다고 하는 무엇이 계속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평소에 순장이 한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인지 중요합니다. 일주일 내내 연락도 없다가 토요일에 연락해서 ‘내일 모임에 올 거지?’ 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순장에게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는 인간으로서 저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모임을 채우는 한 숫자로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빨리 신앙 안에서 그 사람의 신앙이 약하더라도 그 사람이 느끼기에 순장을 신뢰할만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나를 이해하려고 애써주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순장이 관계에 헌신을 해야 합니다. 편지를 써보고 이메일도 할 수 있고, 선물을 하고 정말 그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가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나타나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퍼부으려고 하지 말고 생각해주고 기도해주고 시간이 흐르면서 신뢰관계가 쌓이면서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해주려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나를 숫자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를 대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순장들이 모였을 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장 모임을 하는데 목사님이 90% 이상 강의를 하고 똑바로 하라고 야단을 치고 문 닫고 가버리게 되면 1년 내내 그렇게 되면 순장 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여기 와서 자기도 이야기하고 보람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지도자는 대중들을 아주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임에 나오게 할 이유가 있게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순장쯤 되면 핸드폰에 순원들 전체를 배꼽을 잡고 웃기게 할 수 있는 유머를 40개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외국 여행을 갈 때 유머책을 항상 사는데 한권을 다 뒤져보면 1~2개 정도 밖에 없습니다. 책을 사서 핸드폰에 담아서 침체 된 분위기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안 웃기면 라면 사줄게 하는 것입니다. 웃으면 너희들이 사.’ 순원들에게 조사를 해보십시오. ‘내가 순장으로 모임을 인도하는데 재미있니?’ (ABCDEF 매겨보십시오). ‘내년에도 순장을 한다면 내 순 올래?’ 1. 아니. 2. 생각해볼게. 3. 절대 안가. 집에 가서 이 결과를 보고 반성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연기자들이 한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면서 다시 연기하면서 한 장면을 완성해 나갑니다.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 마지막 단락을 쓰면서 39번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처럼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화) 나는 성형수술을 하는 여자들은 대단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는 돈을 대준다고 해도 턱을 째고 얼굴을 망치로 깨고 얼굴을 다시 조합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신앙이 있어서 저는 자연산으로 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외모를 고치기 위해 살을 깎는 아픔을 감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돌보는 사람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유머를 10개를 마련하라고 해도 노력하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샌드위치정도는 한 달에 한번 정도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돈 없으면 딸기잼만 발라서 줘도 되지 않습니까? 무엇인가 모임을 내가 먼저 리더로 기뻐하고 설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순장은 다릅니다. 미리 가서 테이블도 닦아 놓고 테이블보라도 펴놓고 차도 끓이며 기다립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생기발랄해지고 무슨 일이 있을까 기다리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리더로 즐겨야 합니다.
(질문) 작년에 순장을 섬겼었는데 순모임이랑 예배에 항상 늦는 순원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제가 갖고 있었던 태도는 순원들에게 끝까지 권면하는 것이 순장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끝나는 날까지 연락하고 했습니다. 조언으로 기다림도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구원하실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권면을 했습니다. 기다림이 필요하다면 정말 기도하는 순장이라는 전제 하에 그 기다림이 어디까지가 사랑의 기다림이고 유기일지 궁금합니다.
(답변) 아주 굉장히 실제적이고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내 순모임을 이끌어간다.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이렇지 않습니다. 각 사람 마음 안에 교회 안에 주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셔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영혼들을 돌보고 이끌고 해야 하는 사명이 내게 있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오히려 그 사람을 주님께 맡기고 내가 하나님 앞에 아주 특별히 그를 위해 기도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여러분도 다 성인이 되어서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저는 순원에게 ‘너 그러면 안된다.’고 이야기 하게 될 때 결국 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원에게 양보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서 변화 받을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신앙으로 잘 격려하고 그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순장으로서 안타까울 수 있을 것입니다. 맨날 늦게 나오고 안 나오고 해오라고 하면 안 해오면 이런 반성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나쁘다고 하지 말고 저 사람에게 매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모임을 인도해야 할까? 여러분을 보면 어디서 배우냐 하면 순장이 있는데 순원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서 그 모임이 아주 사랑스러운 모임이 되어서 열정이 있는 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순을 한번 보는 것입니다. 내가 순원을 이끄는 것과 다른 사람의 이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모임에 나오는 것이 사람에게 기대감이 있고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늘 전화하고 연락해야 하겠지만 무엇을 하라고 독촉하는 방식보다 기본적으로 순장과 인격적인 관계가 잘 안 맺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왜 나를 향해 마음을 열지 않을까 그 사람이 순장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때 만족하는 것인가.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교제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순원들이 사회성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임무가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자기가 섬기는 과정 자체가 자기를 바꿔가는 과정이 되도록 자기 자신이 분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번 이야기 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왜 우리 모임에 관심이 없을까? 매일 늦는 것이 신앙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나름대로 행동하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이해할 수 있게끔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잘 안 나오는 사람들을 신경 쓰기 때문에 모인 사람에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모인 사람이 리더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느낌을 받고 돌보고 기도하고 항상 집단적으로 다루지 말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한번 접근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인내심을 가져보십시오. 그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기다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항상 접촉하고 하는 것을 좋아하고 반기는 것이 아니지만 진심으로 다가가면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편지도 쓰고 선물도 보내고 대화도 하고 밥도 먹고 놀러도 가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구역장들이 우리교회에서 잘 하고 있는 사람은 그런 노력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예화) 실제로 우리 교회에 있었던 일인데 구역장 한 사람이 자기 동네에 한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그사람을 끝까지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그사람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고 돌아가셨지만 매일 일주일에 한번씩 그 집에 가서 김치 담궈 주고 청소해주면서 그사람의 인생의 여정을 듣게 되고 울고 웃고 기도하며 영혼을 도왔습니다. 더욱 헌신하십시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말보다 진심으로 다가오는지 안다가오는지 알기 때문에 사람을 위하는 진실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의 요령 같은 것을 선배들을 통해 경험이 많은 사람을 통해 배워가야 합니다.
(질문) 첫 번째는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몇 명의 순장을 세워야 하는 과정 속에서 성장반이나 얼마 되지 않은 친구를 믿음이 좋다는 이유로 세웠을 경우 순장을 할 때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봤습니다. 자기는 경험이 없고 순원으로서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을 때 순장의 섬김이 짐이 되고 무거울 때 과연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두 번째로 열린교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큰 교회의 리더는 교회에 얼마 오지 않은 친구들이 열정 있는 친구들이 세워지는 것을 보는데 오래 다녔고 2-3년 하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우선 두 번째 질문부터 답을 하자면 신앙입니다. 개인의 신앙의 문제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서 영혼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생명의 유익을 끼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인데, 이런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안에 바로 서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동행하는 것을 느끼고 열심히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 나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끊임없는 개인적인 경건생활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영혼을 섬기는 일을 하다가 내려놓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모임이 가지고 있는 약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역자가 모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와서 화를 내고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것이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이 교회에서 계속 사역 하고 싶겠습니까? 순장도 마찬가지로 이름이 순장이지만 믿음이 어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여기 모이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목사님도 한번 통계를 해보세요. ‘내가 인도하는 순장모임이 재미있니?’ ‘ABCDEF’ 이렇게 통계를 내보십시오. ‘순장이라는 것에 만족하니?’ 등 솔직하게 조사해보십시오. 지도자가 이러한 통계를 보며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스스로 목사님 한 사람에게 다 맡기지 말고 어떻게 하면 우리 모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모임에 오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전도사 생활을 할 때 청년부 순장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주일날 아파서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오후에 청년부 리더 모임에 다 달려오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재미있으니까. 거기서 소속감을 느끼니까. 순장이 되어서 교역자에게 혹은 팀장에게 잘 돌봄을 받으면서 순장을 하면서 오히려 더 많이 모이면서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고 힘을 주고 함께 모여서 사역할 때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그 자체가 힘이 되어서 계속 잘 하고 싶어집니다. 순장을 안 하면 신앙생활을 잘 못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순장이 쇠로 만든 사람입니까? 그 사람도 연약한 사람인데 나가 떨어져서 안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도 하도 힘드니까 하나님께 ‘내가 이 자식들을 다 나았습니까?’ 하며 대들지 않았습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앞에 나온 질문에 대해서 믿음이 어린 사람이 순장으로 세워졌는데 하다 보니 너무 힘들다 그러다는 경험 문제입니다. 좋은 교역자는 좋은 양떼이었던 사람이 좋은 교역을 합니다. 좋은 순장은 좋은 순원이었던 사람이 순장을 합니다. 좋은 순원이란 진짜 자기가 되고 싶은 저런 순장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끔 돌봄을 받고 목양을 받으면서 영혼을 돌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체득해가는 사람입니다. 그 체득은 단순히 지식으로 전달되는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under job training’ 스스로 훈련시켜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계속 안 나오는데 어떡하죠?’ 근데 자기가 계속 안 나왔을 때 자기를 사랑으로 돌본 순장을 경험한 사람은 그런 질문을 안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배웠습니다. 부지런히 찾아가고 편지 쓰고 전화하고 만나고. 만나자고 하면 순순히 만나줍니까? 당장 가서 얼굴 보여주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몇 명이 되겠습니까? 직장에서 상사가 오라 해도 안 오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그러면 만나자고 하면 핑계를 대면 찾아가야 합니다. 직장 앞에서 기다린다든지 불편을 무릅쓰고 그가 있는 곳에 찾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린 사람을 순장으로 세우면 그렇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순장이란 큰 직분을 맡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인도해줘야 하는데 자기도 잘 모릅니다. 신앙적으로 어린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순원이랑 싸우고 인간관계가 깨지면 안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들이 해결이 되려면 첫 번째로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철저하게 지식적으로 가르치고 삶에 있어서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청년부서는 교육시키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일주일 내내 하는 일이 사람들을 만나서 심방하고 교육하고 집단적으로 가르치고 한두사람을 가르치고 스터디하고 상담해서 한사람 한사람을 순장으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극복되는 문제입니다. 회심도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순장을 하면 자기도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확고한 신념도 없는 사람이 순장이 되면 그렇게 세울 수밖에 없다면 교구에서 조치를 내놔서 어떻게 이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순장으로 해내는데 어려움이 무엇인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빨리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시스템을 만들어 실시해야 합니다.
(질문) 찬양팀 순장입니다. 열린교회에서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예배자의 찬양의 역할과 예배에서 찬양의 비중이 어느 정도 차지해야 하는지와 최근에 찬양의 흐름이 EDM과 CCM과의 혼합이라든지 힙합과 찬양의 혼합이라든지 콜라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과거의 논쟁과 비슷하게 생각해야 할지 어느 쪽으로 생각해야 하나요?
(답변) 나는 찬양에 대해 두 가지 목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고백적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자기의 시대의 문화와 언어의 옷을 입혀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우리 나름대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시편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CCM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음악적인 편식일지 모르지만 나는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거의 안 듣습니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잘 듣지 않습니다. 나의 귀와 감성을 만족을 못 시킵니다. CCM과 같은 찬양은 정서적으로 흥이 나지 않고 가사도 만족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데스반 선교사님을 만나서도 왕이신 나의 하나님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찬양은 고백적인 것이 묻어나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로 의도자체가 우리 자신의 즐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그 가사의 내용들을 확산시킬 때에 건설적인 결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힙합과 같은 장르들을 찬양에 연결시킨다는 것은 옛날에도 헤비메탈을 찬양과 연결하여 현대문화를 연결해서 기독교 CCM장르를 개혁한다고 했는데 문제는 가락이나 노래 자체에 사람들이 감흥에 취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어거스틴이 경계했던 바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늘날 사람들이 사이키 조명을 해놓고 젊은이들이 수증기 같은 무대효과를 줘서 조명에 현란한 색을 줘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며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게 만들고 우리가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만들고 주님이 주신 기쁨을 표현하게 만드는 고백적 내용으로서 노래를 다 듣고 나면 기도하고 싶고 말씀으로 나아가고 싶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에게 주신 조건들을 감사하게 하는 찬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예배시간에 찬송을 부르지만 그런 점에서 많이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게 생각하고 더 잘 하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예배에서 percentage를 말하라고 하면 어려운 일입니다. 찬양은 영적인 행위니까 인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변화되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이 찬양을 인도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혀와 입술로 찬양하는 사람은 앉아 있는 사람이 말을 안 해도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질문) 배우자에 관한 질문입니다. 지금 제 나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 했는데 목사님 설교에서 결혼은 이 사람과 인생을 같이 할 수 있을까 할 때 앞이 깜깜해질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신앙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데 주위에서 신앙 좋은 형제를 만나라고 얘기 하시는데 교회에서 섬김도 잘 하고 활동도 많이 하는데 삶에서 다른 모습이 보여 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섬김만 봐서 신앙을 판단할 수 없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우리가 겉모습만 보면 잘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을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런 궁리도 하고 저런 궁리도 다 하지만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하고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항상 결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3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 기도를 많이 하라.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진짜 하나님 안에서 좋은 형제, 자매를 만나서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두 번째는 예쁘게 다니십시오. 남자도 해당됩니다. 자기가 이미 외모나 능력이나 이런 것들이 아주 특출해서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그림 같이 예쁘다던지 자기가 대충하고 다녀도 능력이 자신을 빛나게 하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래도 되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매력이 있는 사람으로 비취는 것이 좋고 기회가 많이 옵니다. 그렇게 많이 해도 못 가더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기회가 되지만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기회가 되어도 기회인줄 모릅니다. 자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세 번째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맘에 드는 사람에게만 친절하면 소문이 나쁘게 납니다. 그러면 반드시 결혼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한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순장을 잘하는 사람은 결혼 생활을 잘 합니다. 왜냐하면 별별 인간을 다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을 다 극복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을 데리고 예수 믿고 변화되게 만들었으니까 이상한 형제, 자매를 만나도 데리고 살면서 고치면서 모든 면에서 탁월한 사람이 왜 자기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습니까? 결혼하고 나면 시댁 식구, 처갓집하고도 관계가 있는데 이상한 사람 몇 사람만 있어도 죽을 맛인데 순장하면서 모두 다 극복해본 것입니다. 옛날에 순원과 똑같은 시어머니가 있으면 어떻게 다루는지 알게 됩니다.
(질문) 매년 5월에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하시는데 들을 때마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교회에 안다니시고 반감을 가지고 계시는 상황인데 목사님께서 오늘도 설교하셨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아버지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은혜를 받고 난 뒤에 실제적으로 어떻게 아버지에게 다가갔던 부분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우선 제일 좋은 것은 부모님들은 자식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대가 정말 행복한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드리십시오. 그럼 아빠는 다 말하지 않아도 그대의 신앙에 대해 승복을 하게 됩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도. 아들이 방황하다가 예수를 믿으면서 마음을 잡고 너무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훌륭한 존재의 울림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거기서 나옵니다. 두 번째로 식구들과의 관계는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계는 1, 2년 만나고 헤어질 관계일지 모르지만 가족은 평생 사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안하던 다른 것을 하면 쥐약 먹은 마음인지 진심에서 나온 마음인지 아빠는 금방 압니다. 오늘 설교에서 말했듯이 아빠에게 관계의 기쁨을 주십시오. 자신도 아빠와 함께 시간을 가져주고 아빠와 함께 공통된 관심사를 나누고 아빠와 교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세 번째로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그것을 아빠에게 전달을 해주고 마음을 여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돌아오십니다. 연세가 들수록 자식에게 점점 집니다. 우리 아버지도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도 엄청 사명감을 가지고 좋아하시고 우리가 계속 복음을 전하고 아버지 앞에 잘 해드리고 행복하게 사니까 어느 날 당신 스스로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제사를 모두 없애 버렸어요.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질문) 순모임을 하면서 순원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이고 교회학교를 섬기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청년 1교구는 2시 예배를 드리고 전체모임을 하고 순모임을 하게 되는데 순원들이 어려서 깊이가 없을지라도 열심을 가지고 교회 학교를 섬기는데 순모임 시간하고 겹치니까 늦게 오거나 못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순모임을 힘들어 하는 순원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요?
(답변) 기본적으로 그 순원이 교회학교에서 돌봄을 받고 청년부 모임을 나오지 않아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굳이 모임에 나오지 않아도 거기서 그렇게 전념하면서 신앙적으로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이것은 교역자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처지가 아니고 여전히 이 아이가 순모임을 좋아하고 특별히 부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돌보는 사람이 없다면 밀착해서 돌봐야 합니다. 일단 자기가 책임을 맡았으니까 부서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도 순모임을 너무 좋아하면 오게 됩니다. 여러분도 자기가 하고싶은 것은 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인을 구조적인 점에서 찾는데 구조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계속 핑계를 대면서 우리 모임에 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반성해야 합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기 겉으로 보이는 문제가 진짜 문제가 아니기에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모임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고 나오기 싫구나. 단순히 그의 신앙이 떨어져서인가 모임에 나와야 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인가. 못 느낀다면 어떤 요인들이 그것을 만드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성령 충만하면서 자기의 사명으로 알고 집중해야 한다고 순모임에 못나오겠다고 이야기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도대체 무슨 요인들이, 핑계가 많아졌다는 것은 모임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임이 매력이 있다면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다 갑니다.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매력이 없고 끌리지 않으면 안 가지 않습니까?
언제 비행기를 타는데 옆에 자매가 앉았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사교집단에 수련회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데 가냐고 물어보니까 명상하는 데서 나름대로 도움을 얻고 가보려고 캐나다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자기 돈 다 들여서 캐나다까지 갑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조수미 만나러 팬들이 10명이 뭉쳐서 돈을 걷어서 파리까지 간 것을 봤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합니다. 이처럼 뭔가 내가 인도하는 모임에 매력이 있는가? 어떤 것이 재미가 없는가? 무엇인가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이끌어가는 모임에 반영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영적인 것이 부족하면 말씀을 더 많이 공부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사회적인 것이 부족하면 재능 있는 친구와 모임을 재미있게 이끌어 가며 변화시켜 나아가고 그 사람의 진심을 들어보십시오. 모임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질문) 제가 포토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진을 보게 되면 반드시 그 맥락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을 같이 하며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데 어느 강의에서 시대는 글에서 영상으로 넘어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직업이 생겨나게 될텐데 이러한 상황을 비극으로 보지 않았는데 작가의 입장에서 활자를 안보는 상황, 풍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미디어가 영상이 글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대체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의 트렌드를 아무리 발달해도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잘 못 읽습니다. 비디오가 나왔을 때 영화관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디오가 나와서 집집마다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계적인 폭발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3D, 4D가 아니라 5, 6, 7D까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virtual reality가 결합이 되면서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장르로 데려갈 것이라고 봅니다. 토탈 리콜에서 나오는 자기 프로그램에서 체험이 우리에게 가까운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마약처럼 번져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영상에 미치는 것도 현실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오프라인에서 진짜 재미있는 것을 맛 보면 절대로 대체가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애 소설에 미쳐서 그런 장르로 최근에 비행기 타고 가면서 본 영화 중에 endless love같은 것은 감동을 줘서 굉장히 좋은 영화입니다. 그런 것에 엄청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모태솔로였다면 영상에 관심을 갖고 깊이 빠지게 된다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면 실제의 연애애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활자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테스(Tess, 1979)를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습니다.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를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었습니다. 소설로 읽고 깊이 감동을 받은 사람은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은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도 최근에 나왔는데 보면서 진짜 남자 배우도 그림 같은 사람으로 뽑고 여자 배우도 뽑고 영화도 발전했으니까 그래픽이나 영상촬영도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설 읽었을 때만 못합니다. 소설은 자신 속에서 끊임없이 그려냅니다. 국한되지가 않습니다. 소설을 깊이 읽으면 소설에서 냄새도 나고 소리도 들리고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내면의 세계를 자극하며 상상력을 길러내게 됩니다. 이런 것에 맛을 들인 사람은 절대 영화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어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서 매일 업체에 전화해서 꽃다발을 보냈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꽃을 준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영상이 감각화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활자를 대체할 수 없다고 보고 우리들이 미디어가 번져 가는 것을 보면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잡지가 망할 것 같지만 여전히 건재합니다. 활자는 간단히 끝나는 문화가 아닙니다. 내 책은 e-book을 만들어도 저는 안삽니다. 저는 종이 냄새가 좋습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빠져들고 나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체된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읽는 것이 영상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영상이 읽게끔 만드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영화가 먼저 나오고 소설이 나중에 뜨는 것처럼.- 영화를 봤는데 소설은 안 볼 것 같지만 사람들은 봅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는 글이 미치는 효과와 양상이 다릅니다. 깊이가 다릅니다. 그래서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체계적인 사상을 세우는 역할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활자와 친숙하지 못한 사람은 매우 불행합니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해석된 제 2의 작품만을 계속해서 읽고 입맛에 길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활자에 익숙해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순원들에게 너무 묵직하고 두꺼운 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짤막하게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주십시오. 유머와 함께 최근에 자신의 순 안에 일어났던, 자기 주변에서 일어났던 은혜롭고 재미있는 일화를 채집해서 목록화해서 적절한 때에 꺼내서 쓸 수 있는 재능도 필요하고 그렇게 말하면 좋은 효과를 냅니다. 죽어도 순원과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1박2일을 떠나십시오. 강릉에 가서 강릉시장에서 씨앗호떡도 사먹고 콘도나 펜션에서 하룻밤 자고와도 좋으니까 TV만 보지 말고 둘이 앉아서 하루만 지내고 오면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모양으로 헬라인에게 헬라인의 모양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화) 2년 전에 박재헌 목사할 때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는데 순장이 점심값을 모아서 순원들을 사준다고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허락해줘서 한 달에 50만원씩 600만원을 순모임을 하는데 쓰라고 교회 예산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어렵습니다. 형편에 맞게끔 돈을 많이 벌고 2부에 연봉 1억 2억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한번 갈 때 비싼 곳 가도 여러분들은 죠스 떡볶이를 놓고 둘이 먹어도 적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순원들이 다 알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허세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내가 얘기해주고 싶은 것은 두려워 말고 뛰어들어라. 지체들의 삶과 고민에 뛰어 들어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려면 자기가 수영을 할 줄 알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순원이 고민이 있어서 순장이 찾아갔는데 순장과 이야기하고 나서 한숨 쉬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순장이 찾아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경우에 따라서 아빠가 들려주는 대답 같은 이야기만 순장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두려워 말고 뛰어 들어라. 그리고 자신이 먼저 강하게 엄마가 강한 것처럼 마음을 가지고 자식이 있는 몸이다. 여자가 그것을 자각할 때 무한대의 힘이 나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에게 돌봐야 할 순원이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리다. 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