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반 서론
녹취자: 윤수현
오늘 27과입니다. 여러분들은 탈락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끝까지 완주하는 여러분들을 대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수부터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교리반 하겠다고 와서 도대체 교리반을 뭘로 보고 온건지 조금 힘들다고 벌러덩 자빠지고 그만둡니다. 그것은 참 아닙니다. 하다못해 바리스타를 배우려 해도 석달 동안 매주 화요일 금요일 가서 열심히 배우고 시험도 보고 그래야 하는데 명세기 하나님의 신학을 배우는데 그정도 각오도 없이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교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거의 생존 수준의 교리입니다. 그러니까 군인으로 말하자면 논산 훈련소 6주동안 총 쏘고 수류탄 던지고 재식 훈련하는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시급한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진짜로 갑갑합니다.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처럼 그것이 7권이 빨리 나와야합니다. 그것은 이제 생활 수준입니다. 이것은 생존 수준. 이제 생활 수준을 넘어서서 진리의 말씀을 사상적으로 가르치고 확장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만날 하는 이야기가 ‘신학생도 아닌데..’. 신학생이 더 모릅니다. 그러니 신학생을 너무 존경스럽게 쳐다보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래도 조금 예외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이 머리를 주신 이유입니다. 사람이 중심을 잡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라고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심 잡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힘을 써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종강하는 날 앞으로 계속해서 어떻게 교리를 공부해 나아갈지 가르쳐드리겠지만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한 4,5년 전에는 동창회의 밤이 있었습니다. 교리반 동창들이 6개월 만에 다시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6개월 동안 이렇게 공부했다’에 대해 간증도 하고 배운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간증도 하고 같이 점심 먹고 자기 가르쳐준 선생님 불러서 여기서 같이 인사도 하고 그런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어떤 기수는 끝나고 나서 자기들끼리 뭉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람이 우아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만날 불이나 떼고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상식 밖인 그런 종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러면서 사상의 체계가 갖추어진 삶을 살면서 보면 인문학이나 이 세상 돌아가는 신문 같은 것을 보면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이해들이 하나씩 하나씩 생겨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은’이란 책도 읽었지만 무언가 속에 지식이 쌓였을 때 그것을 읽은 것 하고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을 때 읽은 것 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차원이나 생각들이 많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리반을 마치고 나서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돌아가 읽으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뭐 이러나저러나 변화가 별로 없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낙심합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쭉쭉 이 신학적인 지식이 자라고 판단력 자체가 올바르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말하자면 기독교라는 열차에 그냥 슬쩍 올라타서 아무렇게나 살고 생각 없이 뒹굴어도 기독교인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싸구려 종교 의식 같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빛으로 산다는 것은’ 다 읽으셨죠? 못 읽으신 분들 손들어 보세요. 공과 공부 했으니까 다 읽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공부하기 전에 시간이 넉넉합니다. 그래서 두 과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날 겁니다. 평소보다. 그리고 다음 주에 종강인데 중간에 한 주 휴강 하고도 두 주 먼저 끝난 겁니다. 얼마나 선생님이 요령것 잘 가르쳤고 그랬으면 일찍 끝났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29일까지 해야하는 건데 이렇게 해서 마쳤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작 초기에 한 번 ‘빛으로 산다는 것은‘을 여러분이 읽으셨는데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세 사람만 좀 들어보고 그리고 우리에게 왜 이렇게 공부하고 독서하고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가 하는 것을 잠깐 나누고 그리고 오늘 공부의 양을 채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얘기해 보겠다는 분 손들어 보세요. 우리 나라는 참 이래요. 마이클 셀던 강의 할 때 보니까 하버드에서 대학생들이, 생글 생글한 학생들이 막 웃으면서 ‘저요! 저요!’ 하는 것입니다. 자, 한 번 해보세요. 출석부 가져와 보세요. 시켜야겠어요. 우리는 항상 이래야 됩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드디어. 하버드에서 한 분이 오셨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 상관없이 하세요.
간증 1 : 안녕하세요. 저는 중3 아이를 둔 엄마인데요, 우리 아이가 사춘기가 오면서 신앙의 사춘기까지 같이 와서 많이 힘들어하는 상황이었구요 ‘빛으로 산다는 것은’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이 ‘내가 일단 알아야 겠구나’ 그리고 이제 많이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면 서도 사상적으로 문화, 예술, 음악 이런 것들이 ‘하나님 없음’이라는 사상이 있잖아요. 그리고 진화론적인 사상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그런 것들에 내가 너무 무지했었구나.’ 그리고 우리 아이가 이런 것들에 반항 신앙적으로 우리 아이의 고백은 그랬어요. 아이의 고백이 무엇이냐 하면 과학을 좋아하는데 자기는 중립이래요. “엄마, 믿어지지가 않아. ” 창조론을 자기가 그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화론도 그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진화론을 믿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중립적이래요. 그런데 내가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제가 사상적으로 세상이 말하자면 어둠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것들을 내가 너무 몰라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또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안타까웠고 제가 너무 무지한 것에 대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내가 이것을 알았더라면 이런 것들을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일단은 제가 많이 알아야겠다는 부분에 있어서 그것을 보면서 나의 무지함을 그것을 보면서, 읽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간증 2 : 청년 3교구 4팀 5순 김효진입니다. 책을 거의 3,4개월 동안 읽었는데 좋았던 부분이 세상 속에 살면서도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하나님 앞에서 여러 상황이 닥쳐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더 이상은 말씀드릴게 없어 말을 길게 못하겠습니다.
간증 3 : 안녕하세요. 저는 여성 5교구에 신영순입니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많이 잊어버렸는데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셨던 그 빛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등경 위에 대한 부연 설명이 너무나 좋았고 그 책을 읽을 때 단어가 저는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 ‘용기’, ‘겸손’ 그런 단어들이 하나님이 없으면, 하나님 앞이 아니면 그런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 그런 것이 많이 느껴졌고 그 다음에 그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 와 닿았던 부분이 많이 알아야겠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데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고 전에 읽었던 플라톤의 ’국가’ 이런 책들이 많이 생각이 났고 주일 설교 말씀과 많이 연결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간증 4 : 5교구에 송명섭입니다. 저는 먼저 책이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목사님 앞에 외람되고 건방져 보이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오래전부터 묵상해오고 글을 적고자 연습해오던 그 묵상의 내용과 상당히 많이 일치하는 부분들을 봤습니다. 예컨대 빛을 광학적으로 풀면서 영적인 의미를 비유로 풀어나가는 그런 모습이나 그런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건방지지만 제 생각에는 그런 부분이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같은 사람이 무식하고 배운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목사님이 이렇게 쓰신 책과 비유해서 스스로 혼자서 비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와 영광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가장 생각나는 부분은 이러한 것들이었는데 연관 지어서 생각하면 빛은 목사님께서 그런 표현을 쓰신 내용이 생각나는데 ‘물질이 나니지만 존재한다.’ 과학적인 얘기인데 그것을 영적 얘기처럼 이렇게 영적 이야기와 연관시켜서 풀어주신 부분에서 저는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두움은 존재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다 어두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움은 빛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두움이지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어두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우리 마음속에 빛이 없기 때문에 어두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마치 어두움을 빛을 이라고 생각하고 빛을 대신할 것들 진짜 빛은 사라지고 빛이라고 그냥 감각하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은 아닐까 합니다. 또한가지 연관 지어서 목사님께서 레위기 말씀을 풀어주신 말씀 중에서 성소 안에 있는 등잔 불빛과 연관 지을 때 계시의 빛이 이렇게 비추는 빛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빛이 아니고 내가 어쩌면 세상의 빛 내가 감각하고 인지하고 생각했었던 빛으로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생각하고 잘못 생각하고 종교적인 행위만 해오고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이런 묵상을 책을 읽으면서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납니다.
간증 5 : 안녕하세요. 4교구에 양건율 이라고 합니다. 저는 목사님 책이 나오기 전에 빛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저에게 처음 왔을 때 저의 어둠을 비춰주고 저의 죄를 드러나게 했고 그 빛이 하나 하나 들어올 때 마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죄를 드러나게 했던 빛의 그 속성을 알고 있었고 그러면서 우연히 제가 일하는 것과 관련해서 광 가속기라는 과학 장치가 있는데 이게 전자를 빛의 속도로 발사시키다가 그것을 방향을 바꾸면 굉장히 밝은 빛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197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광 가속기가 발전을 하게 되는데 지금 현재 상태에서 4세대 광 가속기가 나왔는데 빛의 밝기가 1023배 정도의 빛의 밝기랍니다. 그러니까 일반 자연광을 10이라고 봤을 때 1023배의 밝기가 그동안 우리 인간들이 찾은 것인데 그러면 실제 빛이신 하나님의 진짜 빛은 얼마나 밝을까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1023배 얼마나 밝을까요. 우리가 사실 자연 속에서 알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빛의 밝기가 얼마나 밝은지 그런 측면 하나하고 그리고 이 빛이 밝아지면 시간을 컨트롤 한답니다. 그래서 1/1015초까지 시간을 쪼개서 보는데 그러면 우리가 식물이 광합성 하는 순간순간들을 다 쪼개서 본답니다. 지금 현재까지 발견된 빛의 그 능력이 실제 본질적인 하나님의 그 자체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마음이라든지 모든 상태들을 과연 다 찾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빛의 능력을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목사님의 ‘빛으로 산다는 것은’ 책을 접하고 저는 그동안은 하나님의 능력인 빛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그러면 우리가 빛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했을 때 이 어두음을 세상의 빛을 밝혀주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이렇게 밝아져서 하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나가야 된다는 그런 목사님의 저서와 연결이 됐을 때 사람들한테 빛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간증 6 : 안녕하세요. 4교구에 김경은입니다. 저는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원인은 처음에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계몽주의와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길들여져서 모든 사상과 가치관을 제 삶 속에서 반영하고 있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목사님의 책을 통해서 내가 어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사조에 정말 신앙을 배우면서, 신학을 배우면서도 그것을 전혀 나의 사상과 가치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인본주의에 의한 나의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그리고 학문을 그렇게 평가하거나 반영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어서 그 후 부터는 어떤 학문이나 어떤 책을 보든지 영화를 보든지 과학은 물론이고 예술 분야에 있어서까지 내가 무엇을 기준으로 이것들을 나의 가치관으로서 평가하고 반영해야 되는지를 다시 한 번 정말 처음부터 점검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목사님 책을 계기로 왜 목사님께서 산상 세미나 때 말씀하셨거든요. 어떤 기자와 인터뷰를 하셨는데 그 기자가 우리 목사님은 왠지 고승 같다고 그 기자 분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것이 정말 저에게는 너무나 와닿는 말로 기자와 똑같은 마음이었던게 저는 여태까지 어떤 사상가를 찾으면서 어떤 진리를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굉장히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접해왔는데 제가 목사님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왜 여태까지 기독교 가치관으로서 그것을 진리로 삼지 않고 그것을 나의 사상으로 세워서 엉뚱한 사상가들을 찾아다녔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저의 양태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 제대로 된 사상가를 만났구나, 그래서 그날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목사님의 저서를 기점으로 그리고 이제 네시피어스(?)하고 프란시스 쉐퍼 까지 해서 내가 무엇을 찾아가면서 내 삶을 반영하는 그런 가치관을 찾아가야 하는지 그것을 깨달아야 했던 그리고나서 그것을 어떻게 내 삶 속에서 빛으로 반영해야 되는지, 문화를 볼 때 이것을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를테면 얼마 전에 봤던 영화 “피에타”를 보면서 굉장히 무서운 영화잖아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까지도 이제 깨닫게 된겁니다. 모든 영화 평론을 보면 그것이 자본주의에 의한 그 사람들의 무너짐, 질서의 깨짐이라고 평가를 했지만 우리는 그 책을 봄으로써 이것이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타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이제 모든 걸 바라 볼 때 그렇게 바라 볼 수 있는 나의 기준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서 목사님께 굉장히 감사드렸습니다.
간증 7 : 청년 3교구 이나래입니다. 사실 순모임 때 읽으면서 순모임을 끝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도덕적 통치를 같이 읽고 있어서 그게 좀 더 강하게 인상에 남아서 많은 것이 남진 않았는데 가장 저에게 기억이 남았던 것은 산상 세미나 때 들었던 어떤 세계관에 대한 설교나 도덕적 통치나 다른 책들에서 오히려 세계관이나 어떤 그런 것들이 좀 더 기억에 남았고 이 책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빛이 내가 내 안에서 뭔가를 스스로 만들거나 이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빛이 그대로 비추는 그런 부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전까지는 내가 뭔가를 섬김이나 이런 데 있어서 더 열심히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그 빛이 드러난다는 것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많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간증 8 : 안녕하세요. 저는 청년 1교구 홍천행입니다. 저는 순모임 때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제일 처음에 서론에 나오는데 목사님이 책을 2주 동안 쓰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2주 동안 읽기도 버거웠는데 2주 동안 쓰셨다고 해서 엄청 당황스러웠고 그래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고 했을 때 빛을 비춘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은 인간에게는 빛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내가 부여하는 빛을 너가 비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어판을 보면 ‘Let your shiny’라고 해서 너의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자유함 없는 죄인에게 너의 빛을 비추라고 하시는 것이 참 은혜라고 느껴졌고 거기서 칭의 교리와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제 의인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의인리라고 불러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고 거기서 이제 얘기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학문의 통합을 말하는데 그런 것이 정말 하나님 중심적으로 모아진다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게 제가 청소년 학과를 전공하고 있는데 사회과학대학이라서 사회학을 약간 배우는데 사회 유기체성을 배우면서 교회가 어떻게 유기체적으로 연합되는지 떠올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그리고 인터넷에서 상대성이론을 쉽게 설명해 준 내용을 읽어봤었는데 거기서 느낀 점은 저희가 교리반에서 배우는데 하나님께서 편재하신다는 교리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편재하신다는 상대성이론에 근거하면 시간적으로 알파와 오메가라는 하나님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을 느껴서 하나님을 아는 교리가 과학적으로도 연결이 되는 것에 대해서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이런 것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책을 읽었을 때 100% 다 이해하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책을 읽으면 별로 기쁘지가 않습니다. 5% 정도는 잘 몰라야지 고민도 하고 다른데서 찾기도 하고 이래야 나에게 지적인 도전이 됩니다. 그렇게 공부를 꾸준히 해나갑니다. 사실 거기 보면 나는 사실 철학을 그렇게 많이 공부한 사람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신학을 공부하다 보면 해야 하니까 틈틈이 공부하는데 미학, 문학, 철학, 건축학의 예를 들면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 Mies van der Rohe의 작품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현대인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면 자신들은 왜 Mies van der Rohe의 작품에 마음이 끌리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공한 사람들도 그냥 끌릴 뿐이지 그리고 끌리는 것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지 왜 그것에 끌리고 그 전체의 얼개가 다른 것들과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시찰회에서 교회가 한 20개 되는데 부부가 진짜 오래간만에 1박 2일 수련회를 갔습니다. 그래서 다들 바쁘니까 저녁에 만나서 저녁도 각자 먹고 와서 숙소에서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그리고 이제 쉬기만 하면 좀 그러니까 김목사님이 세미나 하나 한 시간 반 짜리 하나 하세요, 그래서 이제 뭘해볼까 그러다 ‘빛으로 산다는 것은’을 예전에 다 나눠줬거든요. 노회에서 선물로 하나씩 드렸으니까, 다 읽으면 좋은데 다 읽을 리가 없잖아요. 그 두꺼운 책을 ‘3장만 읽고 오십시오.’ 그러니까 절반만 읽고 오고 절반은 안 읽고 왔겠죠. 그리고 거기서 책에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서 어떻게 철학의 커다란 인식의 변환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데카르트를 거쳐서 이렇게 근대주의가 형성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오게 됐는지를 설명한 겁니다. 그런데 굉장히 목사님들이 열심히 듣더라구요.
그런데 그 중에 우리 젊은 후배가 하나 있어요. 우리 후배인데 교회를 개척했는데 한 6, 7년 됐나 그런데 잘해요 목회를. 교인이 300명 정도 모일 정도로 개척교회를 알차게 실속있게 잘하는 친구인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목사님, 정말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제 눈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뭐 그랬다면 우리 주님께 감사하시오.”그랬더니 “목사님, 제가 철학과를 나왔습니다.”그러는 겁니다. “어, 그러냐”고..그런데 철학과에서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오늘 같은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철학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관심은 지금 우리와 같은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다양한 사조 속에서 그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그런 사조들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니까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지 그 속에서 묻혀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그런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면 어떻게 되냐하면 아까 우리 자매님이 이야기 한 것처럼 신앙은 확고하게 절대적 신앙을 고백하는데 이 세상에서 껍질만 남고 알맹이는 전부다 이 세상의 사조가 파먹은 겁니다. 그래서 껍데기로서 신앙은 남고 속에 내용은 전부다 이 세상의 사조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껍데기대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속 알맹이대로 사람이 살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맹이에 의해서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은 그 사람의 사람됨의 발자취입니다. 그런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갖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것과 이 세상 속에서 세속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것, 신본주의적인 신앙과 인본주의적인 현실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와서 종교용 탈 쓰고 예배를 드리고 끝난 다음에 벗어놓고 세상살이용 탈 쓰고 가면, 그것을 빨리 빨리 할수록 이 세상에서 갈등을 느낄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는 빛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그래서 박쥐는 쥐도 아니고 새도 아닙니다. 새들은 새라고 생각을 안하고 들짐승은 들짐승이라고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그런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식으로 살아갈 때 과연 진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면 이번에도 숙제가 있었죠? ‘세계와 진리의 전달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 그 숙제 있었죠? 없었어요? 그럼 숙제 내줘야 되겠네요. 아니에요. 그것은 여러분이 꼭 듣고 가야합니다.
문제가 뭐냐하면 그때에 우리들이 처음 산상에 가서 사실은 그 사상사 이야기를 내가 처음 했는데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왜 충격을 받았냐하면 자기 자신의 절대적인 신앙은 고백하는데 생각과 모든 사조가 거기에 푹 젖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속화라고 하는 것은 어느 한 순간에 죄짓기로 결심하는 것이 세속화가 아니라 가치와 모든 것을 중심을 하나님에게서 인간으로 옮긴 것입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하게 그렇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들이 그 구조에 항거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들의 빛된 삶인데 그런 항거를 할 동기를 못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세속화 되고나면..
그래서 사실은 똑같은 두께로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그리스도인이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입니다. 아니 근데 소금이 빛보다 먼저 나옵니다. 예수님 말씀에. 그러니까 그 빛만 우리 눈에 들어오는데 소금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소금을 똑같이 그렇게 자매편으로 똑같은 두께로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딱 그렇게 쓰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그러면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진리의 힘, 하나는 윤리의 힘, 이렇게 됩니다.
그런 소금으로 살 수 있는 삶은 빛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만 소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지 빛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소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금으로 사는 사람은 빛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어떠하던지 그 빛 없이 소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빛 없이도 소금으로 사는 것 같은 삶은 진짜 소금으로 사는 삶과 어떻게 다른가, 이런 것들이 그 책의 중요한 논란의 제목들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18C에 도덕주의나 이런 것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면 18C를 기점으로 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1725년경을 기점으로 해서 유럽에서 말하자면 개혁과 전통주의 역사가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성주의의 시대가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 오면서 계몽주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시대가 밀려오는데 계몽주의 자체가 두 개의 조류가 있어서 하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래도 계몽주의를 하려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보편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계몽주의를 하려는 사람이 있었고 아예 그 자체가 없는 계몽주의가 있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없는 계몽주의를 radical enlightenment라고 합니다. 급진 계몽주의입니다. 급진 계몽주의가 쭉 뻗어나가면서 그때부터 계속 왔는데 이제 르네상스와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쭉 나오는데 더듬어 올라가면 르네상스도 기존에 있었던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르네상스를 조화를 시도하려는 부류가 있었고 아예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는 부류가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급진 계몽주의를 만들어내고 위에는 말하자면 온건 계몽주의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확실히 인정하는 계몽주의가 있고 아니면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계몽주의가 있었던 겁니다. 기독교의 신을 인정하는 계몽주의가 이신론 같은 것으로 나가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관념들을 인정하는 계몽주의로 나갑니다. 그러니까 세 갈래로 나갑니다. 크게는 두 갈래 작게는 세 갈래로 나갑니다. 나가는데 문제는 뭐냐면 이 밑에 것이 훨씬 더 힘을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국어사전이 바뀐 것 알죠? 사랑의 뜻이 바뀌었습니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 이성에 대해서 가깝고 친근하고 정겹게 느끼는 이런 식으로 정의를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사람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성애에 대해서 문을 열어둔 것입니다. 그것이 왜 안 되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무너지면서 이쪽의 급진적인 것들이 훨씬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뭐냐 하면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발악을 하는 것이 결국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 그리고 ‘공통적인 것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말하자면 신의 존재나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우연의 산물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상들이 그렇게 말하자면 다변화 되어 가고 결국은 급진적인 전통주의들이 훨씬 힘을 얻게 되는데 여기에서 결국은 뭐가 나오냐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기가 있는데 뭐냐하면 인간의 이성을 위에 놓고 이성은 보편 가치를 찾아가잖아요. 그렇게 살아봤는데 결국은 마지막에 나온 것은 두 개의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격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이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 ‘진리가 없다’하면 그 말도 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모순입니다. ‘진리는 없다’하면 그 말도 사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소한 그것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없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자기모순입니다. 이성은 신뢰할 수 없다. 그런데 그 판단은 누가 한 것입니까? 이성이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전체적인 사상의 격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유교적 관성에 의해서라도 보편적인 것들이 유지되는데 그런 것들이 다 땅에 떨어지고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황당한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초등학교 6학년 학생하고 담임선생님하고 사랑을 했습니다. 처벌 하겠다 하니까 13살 먹은 아이가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했고 나는 성폭행 당한적이 없다. 나는 기쁨으로 우리 담임선생님을 사랑했다. 이 29살 먹은 선생은 나도 이 여자를 사랑한다. 그래서 경찰에서 난감해 졌습니다. 여자아이가 매일 위협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을 처벌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실제로 이 남자는 죽으려고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더 그럴 확률이 높잖아요.
그러면 뭐냐 하면 그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공통의 가치에 대한 근거를 다 날려버렸기 때문에 스스로 ‘왜?’라는 것을 설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 하면 선, 악에 대한 관념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치하기 위해서 공리주의나 이런 개념들을 도입을 하는데 그러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부각되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자기의 실현’그리고 자기가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내가 바빠서 영화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몇 편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피에타’를 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되서 못 봤는데 최근에 본 영화 가운데 ‘블랙 스완’이라는 영화를 아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재미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코드가 너무나 선명한 것입니다. 보신 분들은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금방 알 것입니다. 못 보셨다고 자존심 상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분명하게 판단이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점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는 깨어져야 한다’는 현대 정신과 정 반대입니다. 나를 세우라는데, 의지할 것은 너 밖에 없다는데, ‘너는 혼자가 아니야, 왜? 너가 있으니까’ 이것입니다. 여러분, 젊은 세대 가운데 유행하는 자기에게 선물하기 압니까? 자기에게 상주기.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정성껏 자기 쓰고 싶은 것을 비싼 것을 사서 깨끗이 포장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한 30세 먹은 대학 나온 여성이 아사했습니다. 한 1년 전 쯤 죽은 것 같습니다. 얼굴이 그대로 미라가 됐다고 합니다. 맥주 깡통 2개와 노트북 컴퓨터와 마지막으로 노트북으로 접속한 것이 작년 11월이랍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발견된 것입니다. 시체로. 방에서 그대로. 그런 것을 심리학에서 의학에서 고독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사한 것입니다. 굶어 죽은 것입니다.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마지막에 우리를 데려가는 결과입니다. 인간이 처음부터 그렇게 살도록 생겨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런 사조들을 잘 읽어야 합니다. 내가 사실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교리반, 초등학교 6학년 수준에서 배울 내용들을 이렇게 기본적으로 배우고 그리고 모여 앉아서 낸시 피어스나 쉐퍼 아니면 로저 콜슨(?)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현대 정신들을 분석해내면서 우리가 왜 이 기독교 신앙이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며 나갈 수 있는 위대한 대안이 되는가, 그런 사조들을 보면 볼수록, 철학자들의 허무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이 기독교인이 됐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것입니다. 위대함을 스스로 느끼려면 자기도 뭔가를 배워야 위대함을 느끼지 “위대해”, “왜?”, “담임목사님이 그러시잖아.” 그러면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시작해서 한 시간 동안 오늘 진도 세 과를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한 과만 다음 주에 나가고 다음 주에 올 때 ‘진리의 전달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인터넷에 들어가면 있고 정확히 2시간 20분입니다. 그것을 듣고 책을 읽고 오시면 100점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어려우면 듣고만 오시고 보면 PPT까지 다 되있어서 자료까지 보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자막까지 다 나옵니다. 그것도 시간이 없다면 책만 읽고 오세요.
그렇게 해서 마지막 종강 피날레를 마지막 것에 대한 토론으로 마치면 교리반이 탄탄한 종강을 하는 것이 되겠고 그러려면 오늘 세 과를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같이 쭉쭉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