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수련회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요 19:17)
녹취자 : 윤은정
예수님의 생애에 외롭지만은 안았습니다. 늘 예수님이 말씀전하러 가시고, 병든자를 고치고, 기적의 떡을 먹이시고 하는 동안에는 늘 동역자들도 있었고 따르는 무리들도 있었고, 또, 처음 예수님을 만나러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섬기시는 생애였습니다. 섬기시는 그 모든 과정을 예수님 홀로 계신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홀로 계시던 때가 생애에 딱 두 번 있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하면, 기도시간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신 기록도 더러 나오지만, 예수님이 홀로 기도하신 기록들이 더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소도 산, 강, 그다음에 빈들, 한적한 곳, 아주 다양하게 나옵니다. 그 얘기는 예수님의 생애가 아주 격무에 시달리는 일정한 거처조차 없는 그러한 고단한 노역의 연대기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교제도 이야기하고, 동역도 이야기하고, 팀도 이야기하고, 또 요즘은 그런 네트워크도 많이 이야기하고, 그렇지만, 이럴 수록 우리들이 항상 잊지 말아야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면,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누구하고도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기도받는 그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많은 사람의 기도는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래도 기도해야되죠. 그렇지만, 기도의 응답으로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도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마음에, 그 사람의 지성과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기도 받는 사람이 열열히 기도할 때 중보기도의 역사도 더 커다란 간증을 불로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회자들은 누구도 나누어 질 수 없는 시간, 누구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시간, 그 기도시간에 하나님과 많이 함께 할 수 있을 때, 잠시 후에 말씀드리려고 하는 혼자 지고 가야할 십자가도 잘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역이 옛날처럼 간단하지 않고, 단순하지 않고, 복잡합니다. 전도사생활 제가 처음 시작하던 83년도에만 해도 사역이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전도하러 다니고, 심방하고, 설교하고, 기도하면, 그리고 성경공부나 가리키면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보통 복잡한 사역, 미디어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그리고, 이제 우리들도 보면은 아이폰 가지고 다니고, 인터넷하고 하는데, 그러나 지금 수련회 와서 느낀게 그거 너무 가까이 해서 절대 신앙생활이 안됩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집사직분 받고 이랬으면서도 그 중독이 되어서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고 하는 사람 많잖아요. 그러면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야지 이제는 중독이 됬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는 아이폰 하나만 있으면 컴퓨터에서 모든 걸 할 수 있게 중독이 되잖아요. 이어폰 꼽고... 이러한 시대 속에 우리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또, 목회자는 그것을 모르면 안되잖아요. 들여다 가서 다 봐야 되잖아요.
여러분 이런 얘기하면은 믿으실지 모르지만은 몇 해 전에 구조조정하면서 교역자 한 사람을 인터넷 때문에 내보냈습니다. 밤 12시까지 교구실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는 거에요. 그게 나한테 딱 찍혀서 내보냈어요. 아마 끊지 못할 겁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거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알아야죠. 누군가는... 그러니까 그렇게 사역들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그 다음에는 어떡하냐 면은 홀로 있을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기도가 점점 약화되는 것입니다. 요즘도 반성을 참 많이 했어요. 하반기에 저의 7월달 이후부터 저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중심을 기도로 놔야되겠다고 다시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제가 이렇게 건강이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고 그러지지 않았을때 초창기에 들어온 목회자들은 모두 기억 할 것입니다. 세시간 이상 기도하자고 그리고 서약을 하고 교역자가 됬습니다. 나 자신이 새벽기도 나오면은 6시 15분에 시작해서 9시, 길면 10시, 그렇지 않으면 11시, 그렇지 않으면 12시에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유명해졌고 해야 할 일들도 눈을 뜨면은 수없이 밀려듭니다. 9월말까지 논문을 4개를 더 써야됩니다. 그 중에 하나는 영어논문입니다. 그러니까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막 쏟아질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뭐냐하면은 유능해져서 일들을 잘 소화해 내면서도 기도시간을 놓지치 않고 해나가야 되는데, 이제는 건강도 옛날 같지 않아서 자꾸 방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속에서 어떡하든지 몸부림치면서 살아 남아야 되는데, 이것은 안해도 도움이 안되고, 수석 부목사님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내게 도움이 안되고, 장로들이 아무리 충성스러워도 내게 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변화 많이 받은 평신도들이 있어도, 교인이 5천명, 6천명 늘어나도 내게 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누구하고 나눌 수 있는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봐요. 우리들이 일 하면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 저와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커온 후배된 교역자들은 다르지만은 최근에 들어온 교역자들을 이렇게 보면서 늘 마음에 부담으로 남는 것은 그것입니다. 깊은 기도생활, 너무 바쁘니까, 그런 기도생활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은 누구하고도 같이 나누어 지시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져야하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런 기도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서 이제 논문을 쓰고 있는데, 황당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빨려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면은 참된 기도의 맛을 못본 사람들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전적으로 신앙생활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고, 펑펑 울고, 예배의 감격이 있고, 그 다음에 막 열열하고 뜨거운 신앙이 있고, 하나님 앞에 기도 응답의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은 답답해서 관상기도 할 수 없습니다. 촛불 켜놓고 종치면서 성령님 오신다고 촛불 드려다 보는데, 뭐 그렇게 복잡하게 해요? 주님! 하면은 그냥 기도속 으로 들어가는데! 그러니까 그런 은혜의 맛을 못 본 사람들이 관상기도 강력하게 부르짓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그것을 부인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입니다. 기도 안해서 목회가 안 되는 때가 옵니다. 그것은 누구도 나누어질 수 없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자기 혼자 져야 될 십자가입니다.
예전에는 교역자들이 조곤조곤 저녁때에 와서 그렇게 흐느끼며 기도하는 교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부서들을 가지고 있는 교역자들을 보면은 자기의 예배실이 있잖아요.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항상 얘기하는 거지만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흘린 눈물은 교회에 스며들어서 쓴 뿌리는 그 눈물을 먹고 죽고, 그리고, 시들어가는 것 같애도 생명있는 영혼들은 그것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한번 조용히 생각해서 여러분들이 예배실을 하나씩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그럴 때에 한번 거기서 얼마나 흠쳤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사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일들을 할 필요 없습니다. 자기 남편과 함께 그 강단을 잘 지키면서 그러면서 거기서 눈물을 쏟고, 피를 쏟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일을 하면 일은 합니다. 사람이 일을 할 뿐입니다. 기도하면 달라집니다. 일하는 방법, 아이디어, 지혜, 현대인에게 스며드는 목회의 기술들, 늘 말씀드리지만 안하더라도 다 배워야합니다. ‘쓸데없는 거다’라고 발로 차버릴 때에도 배우고 드려다 봐서 알고 발로 차야됩니다.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혁주의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안합니다. 저것도 안합니다. 저것도 안합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도 많이 하세요.
여러분들이 생경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하고 오래 같이 있을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썩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만큼 있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교회에 가서 목회해 보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목사가 된 다음에, 여기 전도사님도 해당되는데, 목사가 된 다음에 가야될 교회는 열린교회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좋다는 뜻이 아니라, 열린교회와는 다른 교회로 여러분들이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오래도록 익숙해진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만큼은 도움이 되지만,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이상한 교회도 가서 한번 사역을 해봐야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에서 자신도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여기에 있는 동안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과, 기도와, 경건과 이것들을 견고히해서, 그렇게해서 가서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목회를 하면서 목숨과 바꿀 수 있는 확신을 갖는다라고 하는 것은 평소에 피를 흘리면서 자기가 걸어온 길이 아니면은 그런 확신을 가질 수 가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기는 맨날 부교역자들보고 이야기 한데요. ‘나하고 3년만 있어라. 큰 교회에 가서 훈련을 받아라.’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김남준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잘 적응해서 이 교회에서 인정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교인은 그래도 오면은 성경을 가리키려고 그러면은 배울려고 그러잖아요. 안그러는 인간들도 있지만은... 그러나 이제 아예 모이지도 않을려고 하는 교회에 가서도 그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칠 수 있어야 됩니다. 딴 교회 사역나가서 전도사가 되가지고, 맨날 열린교회에서는 이렇게 안한다고 맨날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짤리는 거 아니에요. 그러기 위해서 내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 뭐냐하면은 있는 건 있는 거고, 없는 건 없는 거에요. 그러고 이제 가서 있어 보면은 이제 알게됩니다. 몇 년 밖에 나가서 하는 것을 보면은 잘, 또 적응하면서 흘러가는 것을 보면은 자신만의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도 사람들이 다 따라오지 않고 분쟁만 일으키면은 그것도 자기께 아닙니다.
결국은 내가 말씀드리는 것이 뭐냐하면은 열린교회에서나 쓸모있는 교역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평생 여기에서 부교역자 하다가 나 은퇴할 때 은퇴하려고 그러면은 될지 모르겠지. 내가 인정을 할테니까... 그러나 그럴 거 아니면은 절대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깊이 몸부림치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평신도때만 하나님 만나는 게 아니라, 목회하다가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만납니다. 목회하다가...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 속에서 쏟아 부어야합니다. 젊잖아요. 하룻밤 안자도 문제가 안되잖아요. 여러분들이 통신기기나 만지작 거리고 그러면 절대 목회 못합니다. 내가 아주 단언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인터넷에 매달려서 거기서 즐거움이나 찾고 이렇게 하면은 전혀 쓸모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못해도 괜찮습니다. 목회 잘하면 전문가들 수 없이 따라옵니다. 내가 얘기하잖아요. 아직도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누가좀 보내달라고 그러는데 못해서 못 보내줬습니다. 나 할 줄 몰라요. 그래도 교회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전국 최고의 홈피를 만들고 잘하는데... 문제 안됩니다. 문제는 기본에 깊이 충실해야 됩니다.
영국에 가서 피터 마스터스 목사 만나면서 한 한 시간쯤 넘게 이야기하면서 그분의 이야기에는 내가 다 동의하지는 않죠. 그러나 ‘훌륭하게 목회하신다. 배울 점이 많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이 3분의 2쯤 이야기하고, 내가 3분의 1쯤 이야기 하는데, 그 짧은 시간인데 기도 끝나고 나서 눈물을 닦으시더라구요. 뭐, 인간미가 있어 보이고, 마이클 호튼이나 이런 분처럼 가까이 하고 싶고 그런 마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기도하시는 분이시구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깊이 몸부림쳐야 됩니다. 그리고, 비교할 때 절대로 주위에 있는 목회자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주위에 있는 목회자들이 여러분들의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위에 있는 목회자들 중에 10명중에 8명은 목회를 잘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때는 그렇게 비교하면 안됩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위대한 인물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행여나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하여 위로를 얻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깊이 몸부림치면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정말 노예생활을 살았던 사람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러면 그 험한 중년의 계곡도 지나야지요? 노년이 오면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죽음의 기운들이 스며들기 시작하죠? 명예 좋아하게 되죠? 재물을 탐하게 되죠? 이러면서 지도자로 떠받듦을 당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죠? 많은 암초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가 항해를 할 때,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언제가 위험한지 아세요? 12,000M 상공을 비행기가 날라가고 있는 동안에는 조종사들이 앉아서 놉니다. 그래서 옛날에 비행기 사고났을 때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은 조종사들이 조종실에서 고스톱을 쳤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요새는 자동항법장치 딱 눌러 노면은 죽 가요. 산 나오면 자기가 잘 가요. 제일 위험할 때가 뜰때하고 내릴 때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뜰 때가 제일 위험하대요. 온 출력을 다 쏟아 부어서 비행기가 뜨는 것입니다. 넓은 바다를 항해할 때에는 위험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내릴때 위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이 얘기 하면은 여러분은 우숩다고 그러겠지만은 많이 아는 사람은 다 용서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은 무조건 난 인정을 합니다. 부족해도 그 사람 편입니다. 그 얘긴 뭐하고 똑같으냐 면은 예전이 이런 얘기 한번 했죠. ‘나는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은 무조건 용서한다. 사역을 하다 어떤 실수를 해도 어마어마한 죄를 의도적으로 짓지 않는 한 나는 용서한다.’ 그게 중요한 거에요. 여러분들이 잡귀나 몸에 익히고 절대적으로 아직 젊은 나이에 무릎 꿇으려고 하지 않고 그러면 해보나 마나 외롭습니다. 아주 높은 지위를 얻으신 분인데, 이분이 자기 남편에 대해서 비난을 하면서 그러더래요. “20년을 함께 살았는데 우리 남편은 목사지만 나는 기도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더 놀라운 얘기는 “우리 남편은 목사지만 ...” 사모님들 그렇게 힘들 때마다 십자가다 생각하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더 하고 싶지만 그냥 넘어갈께요.
두 번째가 뭐냐하면,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는 기도의 십자가였고, 이번에는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밟힐 정도가 든 적도 있었잖아요? 그죠? 일주일 전에만 해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온 성이 소란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시기를 했습니다. 시기를 할 정도로 그렇게 열열한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고난 당하실 때에는 다 사라지고 예수님 혼자 브라이드 위원회에서 이렇게 지독하게 매를 맞으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 나오실 때 당신 혼자였습니다. 은혜가 있어도 정말 내 고유한 십자가는 아내도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아주 강하게 다가옵니다. 어떨 때에는 비관적이고 우울한데 기질이 십자가로 다가올 때 있죠?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안돼. 그리고 자꾸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반대도 있을 수 있죠? 좀 진지해보고 싶은데 항상 happy go lucky에요.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에요. 그래서 실수를 하고 고생을 하는 거에요. 자기 십자가죠. 누가 나누어 질 수 있는 십자가가 아니에요.
사역하면서 만나면은 참아야 하는 때가 많이 오는 것입니다. 고난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하다가 오해를 받고 혹은 아주 사악한 사람들을 만나서 괴롭힘을 당한 때도 있습니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진짜 교회의 어려움이 닥쳐오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목회자 곁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자기만이 지고가야 할 십자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홀로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역을 하는데 어렵죠. 그쵸? 그런데 그 어려움 이라는 게 두 가지 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겪는 거고, 교역자가 아니라 하다못해 세탁소집 아저씨를 해도 다, 이 세상에 무슨 어려운 일이 없겠어요. 그런데 내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뭐냐하면 그런 정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엄살을 부리면서 엄청난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진짜 십자가냐? 신앙 없는 사람이면 절대 안질 십자가! 그게 진짜 십자가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 가세요? 같은 목회자라도 신앙이 없으면 절대로 질 리가 없는 십자가! 그거를 지는게 그게 진짜 십자가라 이 얘기입니다. 목회를 했는데 장로들이 유별난 인간이 있어가지고 자꾸 갈궈서 괴롭힘을 당한다. 그거는 십자가긴 십자가인데 일반적인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돈이 밀려서 월급을 제때 못 받는다. 그건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냥 고생이죠. 그게 무슨 고난이겠어요. 그런건 신앙이 있어도 당하고, 없어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십자가는 어떤 거에요? 회심하지 못한 영혼 때문에 아파한다. 그건 신앙이 없는 교역자는 짊어질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그렇죠? 그러면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월급을 못 받고 사람들에게 욕먹고, 인정을 못받고, 그런 것이 아픕니까? 아니면은 회심하지 못한 영혼을 보면서 가슴 아파서 울 때에 그 마음이 더 아픕니까? 그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판단력이 안스면 여러분들은 아직 교역자 된 게 아닙니다. 그게 십자가에요. 그래서 그런 십자가가 여러분들에게 짊어지고 많이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할 때 그 십자가가 주는 기도제목만 이루어 지면은 난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라고 느낌이 드는 자유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없으면 질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은 신앙이 없는 교역자의 사역은 항상 피상적입니다. 애들 데리고 놀러 다니고, 그다음에 교구들 모아놓고 교제하고, 다른 교회에서 하니까 성경공부하고, 다른 교회에서 하니까 심방하고, 굴러가는 것입니다. 그냥 굴러가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사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파고 들어가서, 늘 그렇게 굴러가던 것을 파고 들어가서 근본을 묻고, 본질을 파헤치면서 목숨을 걸고 승부를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야 됩니다. 바둑을 두다가도 원통해서 바둑판에다가 피를 확 쏟고 죽어버렸다는데... 목회가 안되는데, 그러면 깊이 고민하고 몸부림쳐야 되지 않겠어요? 그게 십자가에요. 그런데 그것은 누구도 함께 질 수 있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늘도 걸어 나오시면서 당신 혼자 십자가를 지고 걸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골고다 언덕을 향해, 죄수들을 사형시키던 곳이었죠. 올라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장소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들이 아니라 신앙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제가 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잖아요. 목회를 하다 보면은 추수의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목회사역에 많은 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의 막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대로 심방도 못해줬는데 이상하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영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회심 전야를 맞이하는 지체들이 여기저기서 막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겠다고 그러고, 그렇게 전화통을 붙들고 매달리고 사정하다시피 와서, 새가족 공부 좀 하라고, 성장반 공부 좀 하라고, 미꾸라지처럼 뺀질거리고 얘기 듣지도 않던 지체들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저 아무래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처음부터 다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위험과 함께 그런 일들이 임해요. 하나님이 현저하게 나를 제치고 목회하고 계시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심방가면 툭, 툭, 건드리기만 해도 추수가 됩니다. 교회도 안 나오고 뺀질 거리던 인간이 15분짜리 심방하나에 펑펑 울면서 회개를 합니다. 그런 은혜의 때는 언제 주어져요? 물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실 수 있어요. 그러나 주권적으로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기 전에 조짐을 보여주십니다. 그게 뭐냐하면은 목회자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회사역을 잘 한다고 스스로 아첨하지 말고, 잘 안 되는 부분들을 보면서 아파할 수 있어야 됩니다. 주일이면 설교하고 예배당을 빠져나갈 때, 하나님이 꾀 많이 은혜 주셨는데도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왜? 여기저기서 아무런 말씀의 영향도 받지 않은 지체들의 얼굴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부흥을 주시는 것을 커다란 부흥은 아니더라도 몇 번 사역을 하든지 간에 거기에서 강한 하나님의 팔이 우리의 목회사역에 나타날 수 있도록 그것은 하나님밖에 하실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런 고백을... 태어나서 여지껏까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역지를 주셨을 때에 가장 사랑했던 공동체가 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초에 발령 받아서 간 대학교였고, 또 하나는 내수동 교회입니다. 열린교회 교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열린교회를 하면서는 그런 정도까지 내 마음이 녹도록... 물론, 이제 열린교회는 17년이나 되고, 거기는 이렇게 불과 획일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지만은 그러나, 마음에 늘 아쉬운 것은 뭐냐하면은, 내가 학교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했던 것처럼 그렇게 17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기도했더라면 더 많은... 강의를 하고 나면은 항상 강의 끝나고 나와 밖으로 걸어 나오면은 시내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벼랑 끝에서 그것을 이렇게 보면은 수업시간까지 10분정도 남아요.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탄식 소리 들려온다.’ 어떤 때는 락커 아래 쭈구리고 앉아서 한참을 울다가 다음 강의에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학교밖에는 없었어요. 사실은... 내수동 교회에서 그랬고, 간절히 마음을 쏟아 부을때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신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러는데, 신앙이 없는 사람한테는 십자가 지워주시지도 않으셔요. 그리고 지워주셔도 신앙 없는 인간이 그 십자가를 질 리가 있습니까? 어떤 식으로든지 회피하죠? 회피하는 십자가는 하나님도 억지로도 안 지워 주십니다. 참고 이 교회에 계속 있어야 되는데, 힘들다고 간다는데, 힘들다고 떠난데는데, 그 십자가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워주시겠어요? 고생하는 거하고 고난 받는 거하고 틀립니다. 고생하는 것은 그냥 고생하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것은 신앙이 없으면 피할 수 있는데 신앙 때문에 당하는 것은 예수님 생각하면서 당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배가 굴러가는 커다란 기계 속에 그냥 한 부속품이 되어서 돌아가는 것에 만족하면은 안됩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역사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입니다.
제가 17년을 열린교회에 있으면서 깨달은 경험이 있습니다. 뭐냐하면은 열린교회에서 신학적 회심한 사람들이 설교를 올바르게 하구요. 구역장, 교사 잘 했던 사람들이 전도사 잘하구요. 전도사 하면서 기도 많이 한 사람이 목사 잘합니다. 예외가 없는 공식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혼자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맏겨진 영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확 쏟아져야 합니다. 담임목사 설교단 올라갈 때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돌보는 영혼들을 볼때, 눈물의 사랑으로 목회 하는 것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십자가를 지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 나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여러분들이 눈물과 땀과 녹아있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때에 어디에다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갔다 놓으시든지 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이크 호튼 교수 왔을 때에 마지막 시간에 제 시간이었잖아요. 제가 그런 얘기를 했죠?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정말 나쁜 교회입니다. 예수 중심적이지 않은 설교는 다 허접한 설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들의 교인들이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계속 좋아한다면, 예수 없는 설교 계속 좋아한다면, 그걸 해달라고 하면은 어떡하겠습니까?’ 그리고 무슨 얘기를 했냐하면, 이것이 옳다라는 것을 배워서 그대로 하는 것과, 옳지 않은 사람의 영적인 입맛을 확 뒤집어 놓아서 옳은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능력은 별개입니다. 전자는 교육만 잘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내가 올바르게 개혁주의 잘 하고 똑똑한 총신학생들 와서, 열린교회에 와서, 어디가서 성경공부 가르치라고 하면은 환영받을 것입니다. 똑바로 가르치니까... 공부만 잘해도 엉뚱한 소리 안합니다.
공부를 못한 데다가 영적으로 혼란스러우니까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좋은 교역자 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전도사 때밖에 안됬고, 일주일에 1번밖에 설교 안하는데 벌써 들려오는 이야기가 ‘설교가 내용이 없다.’ 그 다음에 ‘성의가 없다.’ 아니면은 ‘신학적으로 혼란하다.’ 이런 얘기 들으면 안됩니다. 미래에 뻔한 것입니다. 깊이 고민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그것은 단순히 그것을 배우는 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게 결국은 영적인 능력입니다. 그것은 깊은 경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기도 제발 많이 하십시오. 우리 신학교 다닐 때에는 여름때가 되면은 친구들 이렇게 만나면은 성경학교 전에는 항상 금식기도 하러 기도원 들어갑니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매달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만 더 이야기 하고 마칠께요. 내가 로이드 존스를 처음 만나고 경험한 부흥에 대한 진정성을 대조하면서 부흥의 깊이 심취하고 있을 때 백금산 목사는 늦은 나이에 미루다가 군대를 갔습니다. 그리고 일병일 때에 결혼을 했습니다. 자매랑... 그리고는 이제 형님한테 인사하러 온다고, 물론 그 결혼식에 집사람하고 갔습니다. 자매하고 둘이서 서울역 그릴에서 만났어요. 부대에 들어가야 됬어요. 그래서 이제 부흥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신기하다는 듯이 듣고, 그리고 갔어요. 계기가 되가지고 이제 백금산 목사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공부좋아하고 똑똑하니까 제대하고 나서 6개월 만에 60권인가를 읽었대요. 로이드 존스 책을... 다 섭렵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마음에 불 붙은 거에요. 대전 중학교에서 사역을 하고 싶대요. 수련회를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뭐 엄청나게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 사모하고... 그랬는데 아직 설교에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설교를 못하고 강사를 부른 것입니다. 그래봐야 뭐 얼마나 유명한 강사를 불렀겠어요? 기도를 많이 했는데 하나님이 이 수련회에 함께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같아서는 당장 설교를 했지... 그런데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강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강사도 이렇게 다 신학적인 판단도 있고, 강사도 그렇게 샤프하게 성경을 확 펼치고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화해 보면 알잖아요. 하나님이 뭘로 역사하실까 그랬는데 정말 놀라운게 강사가 집회가 시작이 되어서 강단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강단에 올라갔으면 뭘 해야되요? 수련회인데 찬양 다 끝나고 강사가 강단에 올라갔단 말이에요. 그러면 뭘 해야되요?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해야되잖아요. 그런데 뭐라고 그러냐면은 “내가 도저히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제 청년들이 ‘뜨악’ 한 것입니다. 강사를 불러다 놨는데 설교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제 마음이 너무 괴롭고 답답해서 설교를 준비해왔는데 설교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처음에는 ‘뜨악’하다가 상황이 좀 심각한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다 그동안 백 목사한테 죄에 대한 설교도 듣고 그러니까 30분 동안 설교를 안 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설교할 수 없을까요? 정말 여기에 하나님이 이 수련회에 함께 오신 걸까요?” 구석에서 젊은이 한 사람이 “나의 부족함과 죄 때문에 하나님이 이 수련회에 나를 안 돌아 보시는 것 같다.” 그리고 백전도사가 나와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하나씩 둘씩 전도사님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그 뒤로 계속 붙은 것입니다. 설교 없이 성령의 은혜가 확 임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기대를 안 한 것입니다. 놀라운 말씀이 선포되고 지적으로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뭘 얘기하고자 하냐면 설교에 유능해지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도에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놀라운 방법으로도 역사하는 것입니다.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지만은, 매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은... 그래서 날 만났는데, “형님,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막 은혜를 부어주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야, 그대가 설교를 홈런을 쳤나보구나.”그랬더니 “아니에요.”“어떻게?”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잘 들어봐요. 아주 잘 준비된 샤프한 설교는 하나님이 눈길도 안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종종... 아주 잘 준비된 훌륭한 설교인데 하나님이 눈길한번 안 주시는 적이 있는데,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는 하나님이 눈길을 안 주신 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면 말이죠. 그 우리들이 담당해야할 십자가란 말입니다.
여러해 전에 교역자, 누군지 여기 오래된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 친구는 여러 가지 자격으로 볼 때에 우리교회에 교역자가 되기에는 아직 좀 모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신실하고 오랫동안 열린 교회를 사랑하고, 그래서 써줬어요. 전도사가 되고나서는 조금 틀려졌습니다. 일주일동안 한 번도 새벽기도를 안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워낙 신앙이 없고, 게을러 터지니까 안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같이 산 사모는 내가 용서가 안된다.” 혼을 냈어요. 그랬더니 부인이 하는 얘기가 “몇달 동안 우리 남편이 새벽마다 경끼를 했습니다. 자기 일어나서 새벽기도 가야된다고... 새벽 두시에...” 그러니까 마음속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잖아요. ‘로마 군인들에게 피 흘리지 않는 전투였고, 전투는 피흘리는 훈련이었다고...’ 하나님이 특이한 영혼을 변화시키시는, 그 쏟아 부으시는 은혜의 때를 여러분들의 목회사역에서 경험해야 됩니다. 그러면 열린교회에 있는 동안에는 부서가 성장하고, 교구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인정을 받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때 비로소 목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선명한 인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