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5. 외부강의
태인시찰 목회자부부세미나 1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녹취자: 박은희
이 세상에 누구든지 목회자로 기왕에 부름을 받았으면 목회를 잘하고 싶어 하지 아무렇게나 하다가 그냥 끝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게 무슨 세상의 직업을 갖겠다고 들어선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을 갖고 들어선 길이기 때문에, 사실 목회는 우리의 생명과 같습니다. 사실 목사의 위로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일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아마 그런 위로들은 궁극적으로 최고의 위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위로라면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나의 목회의 복을 주셔서 그래서 정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나의 이 미약한 힘이나마 하나님이 보태어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쓰시는구나 할 때에 그게 우리 목회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목회가 잘 되면 그러면 우리의 영혼도 함께 기뻐하고 나아가서 교인들도 기뻐하지만, 목회가 잘 안 될 때 에 이때에 목회자 본인도 너무 불행하고, 교회도 불행하고, 그리고 목회자가 목회가 잘 안되면 가족들도 방황하더라고요.
(예화) 그래서 제가 아는 교회에도 목사님이 목회를 그렇게 썩 잘하시지를 못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교회를 안다녀요. 현직이 목사님이신데 교회를 안다녀요. 좋은데 직장도 다니고 또 학교도 다니고 그러는데 교회는 안다녀요.
이런 것들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의 목회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한 가지 생각을 해 보십시다. 목회를 잘 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제가 한번 아주 지방에를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목회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부교역자를 좀 데려다가 써서 그래서 주일학교도 좀 잘하고 싶고 하는데, 너무 머니까 이게 부교역자를 구하는 것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그럽니다. 그래서 “아니, 뭐 부교역자를 오라고 그러는데 너무 머니까 안 오니까 그럼 교통비를 따로 주든지, 비행기 표를 끊어주든지, 그렇게 하고 와서 하라고 그래야지 여기를 어떻게 그 월급 한 달에 50만원 받고 오겠느냐?” 그랬더니 나라면 그렇게라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허락을 안 해 준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여기는 비전도 없고요, 아무 희망이 없어요.”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무슨 희망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희망이냐? 그럼 목회하다가 죽으면 되지.” “아이, 뭐 젊은이도 없고.” 그래 내가 그랬습니다. “젊은이가 시골에 없는 게 당연하지.” 젊은이가 그렇게 좋으면 신촌에다 개척을 해야지 시골에 있으면 안 됩니다. 없는 젊은이를 어떻게 합니까? 그래 내가 그랬습니다. “무슨 놈의 비전은 얼어 죽을 놈의 비전이냐고?” 그랬더니 “아니, 그러면 김 목사도 비전이 있으니까 교회당을 옮기고 뭐” 그때 교회 막 옮겼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지하실에다 하다가 그 다음에 방배동으로 이사를 가서 교회당을 마침 세가 나온 것이 있어서 교회당을 얻어서 목회를 하다가 사람이 꽉 차니까 이제 평촌으로, 평촌 난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찾다가 찾다 그리로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공장을 사서 교회를 리모델링을 하고 막 그랬을 때였습니다. “그래, 당신도 비전이 있으니까 그러는 것 아냐?” 그래 내가 그랬습니다. “비전은 무슨 목사가 얼어 죽을 비전이냐?” 교인들이 모이니까 할 수 없이 땅을 사고 교회를 짓고 그러는 것이지, 나도 지금 모이는 교인 절반밖에 안 모이면 나는 교회 절반 팔아서 선교에 쓰던지 빚을 갚던지 그러겠습니다. 뭐하러 그 넓은 것 가지고 있느냐? 비전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비전이냐? 없는 젊은이 타령하지 말고 여기서 노인네들이라도 열심히 전도하고 예수 잘 믿게 해서 마지막에 눈감아서 염해서 그래서 묻어주면 그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 목사님은 별로 은혜를 못 받으셨는데 사모님이 은혜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비전은 무슨 얼어 죽을 비전이냐?
우리가 도대체 목회를 잘 한다는 것이 뭐겠습니까? 교인이 많이 모이면 설교를 하는데 들을 사람이 없는 것 보다야 교인이 많이 모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이 많이 몰려 보십시오. 그러면 남 보기에는 교회당도 널찍하고 목사가 대접도 받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것은 겉모습 일뿐이고 올바로 목회를 하려면 오히려 그런 속에서 말할 수 없이 마음고생하고,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당하고, 이런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은 웃긴다. 그럴 줄 모르지만 저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휴! 내가 이런데서 목회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공기도 좋고 교인도. 이렇게 이곳 교인들은 교인들도 무공해죠? 무공해 교인들이죠? 별로 동의 안하세요? 시골인데. 콩도 팥도 다 무공해인데 교인도 무공해이겠지요. “교회를 바꾸죠?” 아하하하 그래 볼까요? 한달도 못 계실걸 아마. 도로 물려달라고 그럴걸.
목회가 잘 한다는 게 도대체 뭔가? 숫자나, 교회의 크기나 그런 것 아닙니다. 대형교회 목회의 대표자가 모세였잖습니까? 남전도회원만 60만 명 이었습니다. 그래서 호강을 좀 했습니까? 오죽했으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날 죽여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돌아가신 옥한음 목사님이 개인적인 석상에서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현대의 쓰레기 업종이 셋이 있는데, 그게 대학총장, 그다음에 종합병원장, 대형교회 목사”라고 그러셨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하셨으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도대체 무엇을 목회에 있어서 성공 혹은 목회에 있어서 복이라고 부를 것이냐? 라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물론 하나님의 교회에 은혜가 넘칠 때 사람 아이들이 건강하면 몸이 자라듯이 교회도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 그것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 있어서는 사실은 우리들이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더 엄밀하게 놓고 보면 교회의 진정한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방에 있는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있는 부목사님이 우린 다 후배입니다. 자기네 교회자랑을 많이 합니다. “우리교회 목사님이 요새 지금 이 도시에서 뜨고 있는 목사님이라고, 교회가 날로 성장해간다.” 그럽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하도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이 이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그랬더니 부목사로서 교구를 돌보고 있답니다. 그러냐고. 교구인원이 얼마나 되냐고 그랬더니 한 500명 돌본답니다. 당신은 총신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냐? 맞대요. 그러면 중생과 회심에 대해서 알지요? 뭐 모를 리가 없잖아요. 특히 어른들의 경우에는 회심이 없으면 중생이 확인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돌보는 500명 중에서 정말 예수 믿고 회개해서 진짜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보느냐?” 그랬더니 “글쎄요, 한 20프로.”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신네 교회가 잘 나가는 교회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그러면 당신 견해에 의하면 당신이 500명의 영혼을 돌보는데 100명 정도는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수 있지만 나머지 400명은 교회 나오지만 사실은 불신자라는 것인데 나한테 무얼 자랑하려고 하느냐?” 내가 한침 놓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들은 모두 목회 그 자체를 마치 사업처럼 이 세상에서 사업의 성공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제일 먼저 정말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한 목회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서 이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기준에 흔들리지 말고, 정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목회의 성공을, 무엇을 목회의 성공이라고 하느냐? 우리가 맨 처음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이 길을 들어섰을 때에 우리의 꿈에 그리던 그 가치의 기준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저는 21살 때에 회심을 했고, 교회 다니기 시작을 했고, 25살 때에 소명을 받아서 아니 26살 때에 소명을 받아서 그래서 27살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때에 그 이전까지 저는 여러 가지 많은 인생의 꿈을 꾸면서 살았습니다. 공직에 나가서 한번 높은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또 영문학을 워낙 좋아했으니까 공부를 해서 영문학자가 되고 싶은 소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살려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 소명을 받고 몇 년 동안을 정말 눈물로 살았습니다. 그때에 제 마음속에 이렇게 눈에, 마음에, 확 들어오는 것은 뭐냐 하면, 비전이나 목회를 해서 성공할 생각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죽어가는 영혼들, 나는 이 작은 교회에 속해서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눈물로 기도하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 새사람 만들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죽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전에 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그 은혜를 외면한 채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엇인가 저들을 위해 돕고 싶은데, 그 일이 너무 소중해서 이제껏 내가 가지고 있었던 꿈을 따라서 살고 그런 것은 너무 사치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리고 이제 신학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이렇게 지금처럼 큰 교회를 하고, 책을 써서 수백만부를 팔아서 사람들에게 유명한 사람이 되고, 그리고 공부를 잘해서 학교에 가서 존경받는 교수가 되고,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 길이 열리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재능이 내게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마음에 담은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나중에는 결혼을 했습니다만, 그때는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 하나님의 말씀전하기 급한데, 그래서 홀몸으로 살면서 도시에는 워낙 십자가가 많으니까 이런 시골에 내려와서 밭 갈고 논매는 시골사람들의 지금은 안 그런데 그때는 시골에 목회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인이 한 30명씩 되도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니까 우리 부목사 한사람이 단독목회를 하고 싶어 해서 알아보았더니, 시골에서 교인 10명이 오면 이력서가 20통이 들어온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결국은 좋은 교회 보내주었는데 교인 35명 모이는 교회인데 64대 1이었습니다. 담임목사 모집하는데. 그런데 64명중에 8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였습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래도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간지 한 일년 반 되었는데 그래도 지금 육칠십명 모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때는 막 그랬습니다. 없었습니다. 근데 그런데 가서 그냥 모든 꿈을 버리고,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그렇게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섬기시면서 살다가 죽으셨으니까 그렇게 살다가 또 오래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살고 싶지도 않고, 그저 열심히 섬기다가 적당한때에 하늘 나라가면 그게 나의 부르심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이제 신앙의 길을 걸어갔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길을 여시고 저렇게 길을 열어서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크게, 많이, 높이, 이렇게 올라가는 것을 세상에서 성공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목회에 있어서 성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종종 드는 비유인데 우리가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곳이 사업장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돈 버는 사업이라면 당연히 많이 벌고, 손님이 많이 오고, 큰 회사가 되고, 영향력을 끼치는 게 그게 사업 아닙니까? 우리 이것은 사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십시오. 해가 지고 바다에 캄캄한 어두움이 드리우고 그리고 풍랑이 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밤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급히 항구로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칠흙같이 어두운 밤입니다. 그 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등대입니다. 등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생각해 보십시오. 크고 아주 비싼 대리석으로 짓고 수십 미터 높아도 불이 안 들어오면 의미가 없습니다. 작아도 비록 거기에 티끌만한 불씨라도 있어서 먼 바다에 풍랑을 만나서 갈 길을 모르던 배들이 그 등대의 불빛을 보고 항구로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등대입니다. 목회가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섬겨야지만 정말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겠는가? 그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진짜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야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뭘까요? 단지 교회 나와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화) 제가 아는 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장로님이 한분 계셨는데 사업을 하셨대나 봐요. 근데 통도 좀 있으셔요. 그러니까 목사님을 정말 옆에서 잘 보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철이 목사님 사모님에게 옷을 해드리고, 목사님이 어디 간다고 그러면 열심히 경비를 대시고, 그리고는 일 년에 두 차례씩 꼭 두 부부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고, 좋은 호텔에, 좋은 음식에, 한 육 개월 동안 목회에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까 목사님 여기에서 좀 푹 쉬셔야 됩니다. 그리고 부부가 모시고 가서 그렇게 극진히 대접을 하고 그리고 한 2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또 시켜드립니다.
그런 장로님 한 분쯤은 다 교회에 있지요? 없어요? 그런데 보십시오. 어느 날 “목사님, 제가 좀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그럽니다. “그게 뭐냐?” 그랬더니 “제 사업이 심각한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휴! 그러냐고 기도하자고” 그러더니 “만회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는 얘기가 되었는데, 그다음에 “저희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무슨 소리냐? 여태까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섬겼는데.” 그러더니 이 분 하는 얘기가 충격적입니다. “목사님, 제가 사업이 망했는데, 돈이 없는데, 제가 이교회서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떠납니다. 그럼 뭡니까?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생업이 어려움을 만나면 바로 신앙은 그런 어려운 때를 위한 것이쟎습니까? 그럼 더 열렬히 기도하고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보람을, 예수 믿는 보람을, 목사 한사람을 옆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그래서 그 목사님 개인에게 칭찬을 받고 하는 것을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들이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의 목회를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교회에 와서 우리의 목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못 만났더라면 살수 없었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의 복입니다.
제 동생이 저희 교회 장로님입니다. 오후에 이제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우리교회가 아주 특이한 사역을 우리들이 거의 교회 개척한 다음부터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국내 아웃리치 사역입니다. 이번에도 저의 교회에서 천 백 오십 명이 국내 아웃리치를 한꺼번에 나갔습니다. 스물여덟 교회에 한 교회에 30명 내지 40명씩 가서 열렬하게 전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삼일 동안. 그래서 예수 믿게 하는데, 우리 동생 장로가 이제 책임자가 되어서 어느 교회에 가서 교인들을 데리고 열렬하게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의 일인데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교회 교인은 많지 않지만, 우리 교인들이 한 30여명 40명 갔으니까 뭐 부르려면, 찬양 부르려면, 이런 것도 필요 하쟎습나까? 그래서 빔 프로젝트를 요만한 것을, 회사에 있는 것을 빌려가지고 왔습니다. 요새는 정말 잘 나오더라고요. 옛날에는 비쌌는데. 적어져야죠. 틀고 이제 영상도 보여주고 이런 것입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는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아휴, 장로님” “예” “아휴, 우리 교회도 이런 것 있어야 되는데”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그전에도 목사님이 이제 뭐가 부족하다 그래서 컴퓨터도 사주고, 뭐도 사주고, 교회 돈으로 한 것도 아니고 거기에 봉사 나가는 지체들이 십시일반으로 걷어서 그렇게 냉장고라나 뭐라나 하여튼 여러 가지를 그렇게 해주어서 그 속에 컴퓨터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동생장로가 ‘야. 좀 해도 너무한다. 사람이 그래도 좀 체면이 있지. 그렇게 해주었는데’ “장로님, 아유! 이거 참 좋네요. 우리교회도 이런 것 하나있으면 참 좋겠네요.” 우리 동생 장로가 “목사님!” “네” “목사님 교회는 이거 보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다.”그러니까 목사님이 깜짝 놀라서 더 좋은 것 주는 줄 알고 “그게 뭔데요?” “교인이 필요합니다.” 별로 안 웃으시네. 서울에서 막 온 건데. “목사님, 목사님 교회는 교인 네 명이 있는데 이걸 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들리는데. 목사님 교회에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교인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전도 하십시오.”
(예화) 한 4년전 인가요? 저희 교회에 늘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제 가장 인상 깊었기 때문에 제가 기억을 하고 있는데, 교인이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가 살아가는 게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 생각이 나서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고 전도를 했는데 뭐 받아들일 리가 없지요.? 그러니까 외로우니까 주일날 일요일 날 점심이나 먹자 그러고 교회근처로 불러서 예배드리고 가라 그러고 손을 끌고 예배당에 왔습니다. 이 사람은 이 아줌마는 생전처음 교회 발을 디딘 겁니다. 상황은 어땠냐하면, 남편하고 너무 심하게 갈등이 쌓여서 그래서 결국은 이제 못 살게 되어서 법원에서 이혼서류를 가져다가 그것을 쓰고 도장만 찍으면 되게끔 장롱에 넣어놓고 오늘 내일 오늘 내일 헤어질 때를 기다리던 그런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들어오는데 그날 설교제목이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였습니다. 생전처음 교회 왔는데 예배라고 하는 걸 드렸는데 예배가 시작되는 것은 언제냐 하면 목사가 올라오더니 텔레비전에 자막이 딱 뜨는데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그리고 한 한시간정도 설교를 했습니다. 이 자매가 거기서 예수 믿고 영접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남편을 찾았습니다. 이 남편이 뭐 이혼하기 직전인데 고운소리가 나오겠습니까? ‘에이, 마누라가 또 바가지 긁으려고 나를 부르는구나.’ 그러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이 부인이 서있는 남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그러면서 운 것입니다. 그 남편이 “야, 그 잘못한 것을 이제야 알았냐?” 그랬겠습니까? 그것도 인간인데. 남편이 무릎을 꿇고 “아니야,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런 게 성공입니다. 그런 것이. 그런 것이 성공이라 이겁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부인이 그렇게 해서 이제 아이들 까지도 버리고 이 남편하고 헤어져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 부인이 그날 밤에 로또를 맞아가지고 100억을 벌었습니다. 그러면 100억을 딱 받자마자 남편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자기가 이제껏 하나님 없이 살아온 죄에 대해서 회개 하게 되겠습니까? 이런 세상에 있는 것들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없습니다. 가던 길을, 가던 길을 다시 타고 가냐 ,걸어 가냐, KTX를 타고 가냐, 비행기를 타고 가냐 하는 것을 돈이 결정할 수 있지만, 내가 가려던 곳을 내 기뻐하는 곳에서 하나님 기뻐하는 곳으로 돌이키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돈이나 환경이 그 방향을 바꿔주지는 못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바꿔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꿔놓으라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보내서 여기에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운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새벽기도를 가는데 우리교회 교인이 아닌 교인들도 몇 명 나옵니다. 그런데 아주 꾸준히 나오는 부인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 저 사람이 우리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없었다고 그러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교인 한 오 육십 명 모이는 개척교회에 그렇게 새벽기도라도 와서 앉아주니까 고맙잖습니까? 그런데 그래서 이제 기도를 해 달라고 그래서 기도를 손을 얹고 새벽시간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영적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아주 말할 수 없이 힘들어 하는 영혼이다. 그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또 기도를 해 달라고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기도를 해주랴?” 그랬더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혼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새벽마다 나와서 하나님 앞에 은혜롭게 이혼할 수 있도록 주께서 능력을 달라고. 그러니 기도가 될 리가 있습니까? 새벽에도 나와도 그런데 또 끈질기게 새벽에 나옵니다. 한 번도 이렇게 열렬하게 기도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야단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의미가 있겠으며, 언감생심 목사 보러 그 기도를 해 달라고 그러느냐? 그러더니 그 자매가 그 후에 이제 깨달음을 얻고 그리고 수요예배 나오더니 그 다음에 아예 그냥 교회를 옮겨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자매가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남편은 저도 만났고 잘 아는데 좀 별납니다. 막 소리 꽥꽥거리고 왜 부인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그러는 사람들 있잖습니까? 그것들이 다 상처가 된 것입니다. 이 자매가 은혜를 받고 나니까 자기 남편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무슨 섭리인지 이 자매가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으니까 받기 직전에 이 남편이 암인가로 판정을 받아가지고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가지고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가서 심방을, 그때는 교회가 그래도 그렇게 크지 않았으니까 심방을 몇 번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자매에게 그렇게 많은 상처가 있는데도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은혜를 주시니까 그 은혜가 남편을 사랑하게 합니다.
목사가 심방을 가서 점잖게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너무 남편이 사랑스러우면 젊은 부부들도 목사가 가서 심방 할때 손잡고 예배드리고 그러지 않습니다. 유별 떤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나이는 50줄 다 바라보는데 손을 꼭 붙들고, 예배가 끝나고 나니까 또 중풍까지 걸려서 침을 질질 흘리는데 볼을 비비고 빨고 하여튼 가관입니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이렇게 예쁜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답니다. 이젠 암 걸리고, 중풍 걸리고 해가지고, 폐인이 되어 가지고, 평생 술만 마시다가 그러고 집에 걷지도 못하고 이러는 그 노인네를 그냥 볼을 부비고, 뽀뽀를 하고 목사가 심방을 갔는데 난리가 납니다. 그게 성공입니다. 그게. 그런 게 성공이라 이것입니다. 그런 게 성공입니다.
그러면 그런 성공이 어떻게 일어 날것인가? 여러분! 사자를 아무리 어렸을 때 쓰다듬으면서 예쁘게 길러도 그 사자가 머리 쓰다듬어주고 우유주고 과자 준다고 사자가 변하여 개 되는 것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느니라.” 자신이 얼마나 죄인 인줄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고, 그리고 ‘천하에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우리 예수님 밖에 없구나.’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서 그 분을 깊이 의지하려고 해야 됩니다. 그런 의지하는 마음이 그의 기도를 간절하게 만들고, 그런 의지하는 마음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들고, 그렇게 의지하는 마음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주님께 바치고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들 목회가 답답하시죠?
어떤 후배목사가 저보고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목사님 여기가 아니고 전주 쪽이었는데 한 십년 전에 제가 집회를 내려와서, 목회자를 위한 집회를 해 달라고 그러면서 1월 2일 인가를 저를 불렀습니다. 참 그 신기하다 한창 바쁠 때인데 일월 일일인가, 아니 이일인가, 일일은 아니고, 일월 이일인가, 일월 첫째 주 인가 저를 불렀습니다. 그때 저는 심방 때문에 아주 바쁠 때인데 이런! 예배당 가뜩 목사님들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아니, 목회자 세미나를 왜 이 바쁜 때 해? 연 초에 한창 신년심방 바쁠 때에 이때에 합니까? 이때에 바쁠 때에 합니까?” 회장 목사님이 “아니요, 목사님 얘기지, 우리는 바쁘지 않습니다.” “아니, 이 새해에 얼마나 바쁘게 연초에 심방도 하고 그래요.?” “심방 할 때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렇게 그러자 목회자 세미나를 은혜롭게 잘 마쳤습니다. 그래서 이쯤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가 목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목회가 바쁠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화) 우리 후배 중에 한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서울에서 큰 교회 부목으로 있으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건강이 나빠져 가지고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까지 상황이 되었는데 시골에서 청빙이 왔더래요. 기도를 해보니까 자기가 거기를 가야되겠더래요. 그래서 갔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자기 내려올 땐 이런 마음이 들었대요. 5년만 있자. 5년 동안 서울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테니까 가서 열심히 전도하고 교인들에게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에 못 읽었던 책을 많이 읽으면서 5년 동안 실력을 탄탄히 배양해가지고 다시 한 번 서울에 와서 목회를 해야지 그런 마음을 먹었대요. 그리고 서울에서 하던 대로 열심히 설교준비를 하고 주일마다 설교를 하는데 그 목사님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설교준비를 하나 안하나 차이가 별로 안 난대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노인네들 한 이십 명이 모였는데 그냥 그렇게 예배시간에 잔대요. 그래서 설교준비를 많이 한날은 더 잘 잔대요. 그러고 나더니 그다음에 세월이 오년이 흘렀는데 그때 이제 가서 제가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 자기가 충격을 받고 오년을 돌아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확실하게 좋아진 것은 건강입니다. 시골에 와서. 그런데 보니까 옛날에 자기가 다짐했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월요일이면 친구 목사님들하고 족대 들고 고기 잡으러가고, 그리고 오후에는 가서 볼링치고, 그러고 평소에는 교인이 얼마 안 되니까 심방할 것도 없고, 또 매일 만나서 아이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이러면서 지내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만나서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게 매일 얼굴을 마주 대고 살아가는 마을사람들한테 그게 그렇게 안 되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그냥 바둑도 같이 두고, 그다음에 어느 집 원두막에 나가서 장기도 두고 하면서 친교는 되는데 이게 선교가 안돼요. 시간 남으니까 이제 뜰 앞에다가 닭장 지어놓고 닭도 기르고, 뒤에다가 개도 키우고, 심심하면 하나씩 꺼내서 잡아먹고, 그러면서 5년이 흘렀는데 그다음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불러주는데도 없지만 오라고 해도 서울에서 목회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목회하시면서 그런 답답함을 느낄 때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굴복하면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잘 아는 스펄젼 목사님이 어떻게 스펄젼이 되었는 줄 아십니까? 열여섯 살 때에, 시골에 있는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답니다.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거기서 이 젊은이가 설교가 하도 답답하니까 계속 졸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하도 답답하니까 “이보게 젊은이, 고개를 들어 주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 그 순간에 성령이 강하게 임하면서 스펄젼이 거기서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승처럼 생각하는 청교도 존 오웬도 똑 같은 경험을 합니다. 그 사람이 젊은 시절에 그 도시에 아주 유명한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 설교를 들으러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출타중입니다. “에이, 김 샜다.” 그러고 올라고 그러는데 다른 시골교회에서 온 목사님이 올라가서 설교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냥 앉아서 들었죠. 그런데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그날 이 존 오웬 목사님이 청년입니다. 청년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회개하는 놀라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위대한 청교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기준을 그렇게 놓고 보면 안 되고 우리의 교회에 다만 열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도 그것을 노인네라고 생각하지 말고 영혼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정말 영혼이라고 보면서, 그러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도록 기도하고,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예배입니다. 예배. 예배. 예배에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운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큰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묻고 싶으시겠지요? 노인네들도 그런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까? 너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노인네들이 그런 변화를 받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력도 많이 약해지고 살아온 인생이 길기 때문에 고집도 더 많고 편견도 있고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불가능 한 것이 아닙니다. 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그들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도 영혼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반응을 하고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정말 우리의 예배에 목회의 명운을 걸고 있습니까? 한번 가장 최근에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 벌레 같은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 때문에 교인들이 눈물 흘리며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목사와 장로의 잘못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운동을 한다고 조용기 목사님 같이 큰 교회를 만들겠습니까? 우리가 밴드 불러다가 찬양을 하면 우리교회가 ‘온누리교회’ 같은 교회가 다 되겠습니까? 우리가 제자훈련을 배워서 교회 와서 가르치면 그 교회가 다 ‘사랑의교회’ 처럼 된답디까? 아닙니다. 될 수도 없거니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찬양)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우리에게 매인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우리 비록 커다란 성가대 없고, 그리고 좋은 악기 없고,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아도, 주님이 내게 붙여주신 양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임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거기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거기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우리가 행여나 교인들이 노인만 모였다고 깔보거나 그리고 예배를 드려봐야 이 노인네들 하고는 별로 그렇게 은혜로운 예배가 안 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노인네들의 마음속에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도록, 우리가 우리의 학식이나 우리의 이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노인네들의 눈높이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잘 준비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비록 열댓 명밖에 노인네들이 나오지 않아도, 오늘 예배시간에 단 한사람이라도 정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회개하고, 영혼의 부흥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빌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영혼을 위해 간절히 그 영혼을 복 주시도록 빌면, 그가 믿음이 없어서 영혼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자신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십니다. 변화시키십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농촌 목회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냐 하면 ‘해보니까 안 되더라. 그리고 여기는 도시와 다르다.’ 도대체 내가 뭐가 다르다고 묻는 것입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오후에 내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혼은 꼭 같은 영혼이기 때문에 예수님 만나면 변화 됩니다. 변화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목회에 있어서 이 예배에 목회의 명운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예배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그런 종류의 의미로서 예배가 성공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목적은 우리가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배의 만족을 느끼실 수 있도록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교인들이 졸면 졸지 말라고 잘 가르쳐야합니다.
(예화) 저희 교회에 연세 많이 드셔서 은혜를 깊이 받으신 노인이 계십니다. 그 분이 어느 날 예배시간에 청년들 몇이 졸고 있었습니다. 예배 끝나고 나서 타일렀습니다. “청년들, 예배시간에 졸지 말거라. 나 같은 노인도 이 예배시간에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는데 아직도 기력이 있고 젊은이들이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타일러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한 것이라고 따끔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태도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얼마나 슬퍼하시는지를 따끔하게 나무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정성껏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서 그들의 마음속에 한 말씀이라도 넣어주도록 마음을 다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배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도록 간절히 매달려야 됩니다. 나도 확신 합니다. 목회자가 만약에 예배를 위해서 토요일 날 강단에 엎드려 눈물로 매달린다면 주일에는 더 놀라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먼저 예배를 우습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해야 됩니다.
여기 시골은 좀 덜하지 않습니까? 도시는 너무 심합니다. 예배시간이 11시이면 11시 15분전에 오는 사람이 몇 안 됩니다. 극장구경은 15분전에 가서 미리 기다리는 사람들이, 예배당에는 10분전에부터 오기 시작하고 5분전이 러시아워고 그리고 11시가 예배가 시작이 돼도 전에는 예배시간에 늦게 오면 미안해하고 고개를 숙이고 그러는데 이제는 떠벅 떠벅 걸어 들어옵니다. 교만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시간에 그리고 예배를 드리다가 설교시간이 되면 가관입니다. 예배시간에 옆에 사람하고 소곤거리는 사람, 핸드폰에 문자를 찍는 사람, 요새는 아주 성경찬송도 안가지고 옵니다. 아이폰 하나들고 교회 옵니다. 마태복음 그러면 마태복음 툭툭 쳐서 설교하다가 옛날에 처칠이, 처칠 수상이 그러면 ‘에이, 그거 아니구먼.’ 다 확인이 됩니다. 핸드폰이. 그 짓들을 합니다. 그리고 핸드폰 가지고 만지작 만지작 장난을 하고, 종이에다 필담을 나누고, 그리고 졸다가 성경 떨어뜨리고, 하나님보다 높은 어디에서 연락이 왔는지 예배시간에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겠다고 의자 밑에 고개를 숙이고 통화를 하는 사람, 들고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사람,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나는 확신 합니다. 거기 하나님 안 계십니다. 괜히 주일날 모여서 삽질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말로 하나님 안 계십니다. 거기 하나님 왜 계시겠습니까? 아니, 영화관만도 못하고, 동네 반상회의 만도 못한 그 예배시간에 하나님 왜 오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 거기 오신다면, 내가 제일 먼저 말리겠습니다. 오시지 말라고. 거기 오셔서 뭐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생각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개념이도 없는 사람들이 거기 모여 앉아 가지고 예배라고 드리고 있고,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더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목사님 바깥에 나가서 나가는 교인들 마다 손을 붙들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슨 음식점입니까? 뭐가 감사합니까? 나는 개척하고 나서 한 번도 고맙다고 교인들한테 얘기한적 없습니다. 예배 끝나고 나서. 뭐가 감사합니까? 아, 그래도 뭐 와주신 것이 감사해서. 여기가 뭐 음식점입니까? 아니 신장개업을 한 무슨 슈퍼마켓입니까? 자기들 좋으라고 교회 나온 것이지, 뭐 목사 좋으라고 교회 나왔습니까? 그리고 예배당을 나가는데 예배당을 올 때는 그렇게 천천히 오던 사람들이 나갈 때는 뭐가 그렇게 급합니까? 불난 것 모양 그냥 먼저 나가겠다고. 아니,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났으면 그게 감격스러워서 좀 엎드려서 기도하다 가고, 못 만났으면 내가 왜 주님을 못 만났을까? 좀 반성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되는데, 그냥 개념도 없이 빨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고 나서 나가는데 예배를 드리고 정말 여기 하나님이 계시구나. 그리고 정말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하고 주먹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씻으면서 나가도 가정과 사회가 바뀔까 말까인데, 그러고는 예배시간에 뭐를 했는지 생각도 안 나고, 그리고 덜렁거리고 돌아가는 교인들에게서 우리가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설교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큰 교회 목사님처럼 텔레비전에 나오는 목사님들처럼 능수능란하게 그렇게 설교 못한다는 것 때문에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잖습니까? “정요한! 졸지 말고 일어나서 예수를 보거라” 그러면 성령이 임해줍니다. 그러면 우리가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제대로 안 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주일을 준비하고 기도하고, 그래서 일주일 내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 말씀을 통해 영혼들이 정말 변화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다가 주일날 온힘을 다해서 이 한번 설교하고 나는 쓰려져 죽는다는 각오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그러면 여기저기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혼신을 다해 장로님들과 기도하고, 교인들과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이 짧은 시간에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임재를 아는 예배,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아! 여기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 이구나. 느낄 수 있도록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사역하고 있는 태도에 대해서 제일 먼저 목회자인 우리들이 태만함과 나태함을 회개하고 그리고 정말 하나님 앞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들이 반드시 변화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의지하며 살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 사랑하고 의지하는 목회자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