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목회자 사모 세미나
녹취자 : 이경순
어느 해 2월이었습니다. 겨울에 거의 비도 안 오고 눈도 별로 오지 않아서 바짝 온 산이 말라있던 때였습니다. 그때 원주에 있는 치악산에 잠깐 글을 쓰려고 하루 간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가물었는지 온산이 성냥불만 그으면 불이 붙을 것 같이 그렇게 바짝 말라있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숲을 계속 걸어갔더니 놀랍게도 거의 두 달 동안 비도오지 않았는데 거기에는 어른 한 두 길쯤 되는 물이 한참 흘러가고 있었어요. 거기서 제가 무엇을 느꼈느냐면 야 참 그런 것이구나. 이게 산자락 아래에 있는 들과 밭에 비가 전혀 오지 않았는데도 큰 산이 버티고 있으니까 그 산이 물을 머금었다가 가뭄에 토해놓는데 그게 한 두 길쯤 되는 큰 시퍼런 물이 흘러요. 그래서 치악산 자락아래 있는 들과 밭은 넉넉히 물대인 동산과 같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비록 두 사람밖에 되지 않지만 계곡이 있고 높은 산같이 되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물을 흘려보내서 그래서 마른땅과 같은 교회를 두루 적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회사역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로 그렇게 살았던 전도사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목회와 선교의 처절한 과정을 통해서 사도바울이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회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와 같이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도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진다고 했는데 얼핏 보면 이것은 ‘아 예수님이 나 때문에 죽었구나. 우리가 잘못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구나. 내가 참 죄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죽인 것에 대한 가책을 짊어진다는 의미같이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희랍어 성경에 보면 그렇지가 않고 예수의 죽으심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은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진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죽은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는 아주 신비하고 오묘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본받음의 이치예요 ‘예수의 죽으심을 우리의 몸에 짊어진다.’이렇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마지막장에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니라’ 이렇게 고백을 했는데 이 두 가지 고백이 아주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 할 때 그 흔적은 옛날에 노예의 몸에 새기는 신분을 알리는 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 흔적을 내가 가졌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것은 내가 예수의 노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그 몸에 예수님이 무슨 흔적을 새긴 이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 죽인 것을 짊어졌다 하는 이것도 실제 예수님이 죽으신 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의미에서 주님의 죽음을 내 몸에 지니고 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은 맨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을 닮은 형상을 우리의 영혼과 정신세계 안에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동물들과 다르게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영혼으로는 하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육체로는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런 존재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죄가 들어와서 이것들이 깨뜨려지게 되었고 그래서 땅에 있는 것들은 여전히 잘 알지만 신앙으로 알 수 있고 영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름답고 거룩한 성품을 본받고 있었는데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이것들이 깨뜨려 지고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믿게 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려주셔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 할 수 있도록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께서 믿는 자 안에 행하셨는데 그것을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고도 말하고 혹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본받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간직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잘 알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님을 잘 믿는 신실한 종들을 함께한 교회에 모으십니다. 그들로 하여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때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온전하게 살면 어떤 삶이 되고 어떤 아름다운 인격을 갖추게 되는가 하는 것을 글로 써진 성경만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통해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교회를 지으셨는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목회자와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는 교회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생활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저 분이 가르치는 진리대로 살면 어떤 사람들이 될까 하는 그것을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실재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는 바로 여름날에 과일장수들이 과일을 팔 때 맛보기를 주잖아요. 수박도 잘라서 한조각주고 참외도 잘라서 먹어보라고 그러고 팔잖아요. 그런 맛보기와 같은 존재가 바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주님이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로 세워 주셨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의로 교육해서 그렇게 주님의 형상을 잘 간직한 사람들로 세우는 것이 목회의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그 목표는 쉬운 목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지만 거기에는 주님을 정말 믿는 사람도 있고 사실은 신앙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신앙이 있는 사람도 은혜가운데 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옛날의 성품과 나쁜 행동들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사람도 사람들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누군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총이 있습니까? 칼이 있습니까. 교회에는 감옥이 없습니다. 누구를 잘못했다고 교회 지하에 가두거나 때려서 사람을 고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기에서는 목회자가 올바로 하는 한 그 능력이 이 세상에 있는 통치자들보다 뛰어나지만 교인들이 하나님이 누구냐고 믿고 말씀이 무엇이관데 내가 순종하랴 하고 대들면 그것은 짐승을 모아놓은 곳 과같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를 목회하는 돌보는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고목나무 하나를 발견했답니다. 구멍이 크게 뚫려있답니다. 이 목사님이 걸어가다가 그 나무 앞에 가서 나무를 만지면서 말했답니다. 얘야, 너는 목회도 안했는데 왜 이렇게 구멍이 뚫려있냐? 그것이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높은 사람들이 되어보려고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건져주신 그 은혜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랑 그래서 그 사랑을 어떻게 감당할 수 없어서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더라도 우리가 발견한 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하나님아버지의 그 넓은 은혜를 불쌍한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이것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헌신한 사람들이 바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오늘날 누구든지 목회를 잘 해보고 싶어 하잖아요 사실 목회자의 영광 사모의 영광은 그 목회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목회가 잘 되어서 그래서 교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서게 되면 어디에 가든지 간에 자신감이 있고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맛이 난다고 그럽니다. 남들이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러나 만약에 교회에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의 길을 가게 되면 더군다나 생활고까지 겹치게 이렇게 되면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 고통스러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목회에서 큰 화두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목회에서 잘 성공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목회의 본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목회의 본질은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리고 날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새사람이 되어 가는 것 그렇게 되어가는 큰 기쁨과 행복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주고 보여주고 그래서 그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한 사람 한 사람 을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만약에 정말 성공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왜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죽고 너희는 산다. 그런 뜻입니다. 왜 그렇게 고백을 하겠습니까?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교회 앞에 있는 사거리에 잠시 정차를 했어요. 그 옆에 은색 봉고가 내차 옆에 섰습니다. 교회 봉고차였습니다. 나는 그 교회 봉고차를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그 교회 봉고 옆에다가 교회이름을 써가지고 다니잖아요. 교회이름 대한 예수장로회 신나는 교회 대체 무슨 교회 이름이 그런 게 있습니까. 오늘날은 즉 현대는 철저히 인간중심적 사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 삼십 년 전에 목회하시던 분들 계시면 삼십년 전하고 비교해 보면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삼십 년 전에는 그래도 회개하라 거듭나라 돌이켜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이런 소재들이 그래도 좀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그런 설교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 가야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제는 정신을 차리시고 사람을 섬기야 되는 그런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을 하고 그리고 우리의 죄가 어떤 결과를 빚어내고 우리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훈련시키시는가. 이런 것을 깨달으면서 두려워하며 훈련받는 계기가 다 살아졌고 죄는 단지 우리가 강했더라면 안 그랬던 것인데 연약해서 지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있는데 하나님이 밀어주시면 도움이 되는 그러한 하나님과 인가의 관계로 교회의 현실이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회개하기보다는 힘을 내야하는 존재이고 그리고 돌이키고 자기를 꺾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마음 것 발산하고 드러내는 그것이 오늘날 인간을 위한 가장 좋은 충고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웬 설교가 나와요 설교가 절정으로 갔는데 목사님이시겠죠. ‘여러분 왜 믿지 못하십니까? 끝까지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성공을 합니다. 그래놓고 갑자기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케에프씨 만든 사람이 군인이었는데 닭을 너무 좋아해서 그 뚱뚱한 할아버지 말입니다. 그렇게 닭을 이렇게도 먹고 저렇게도 먹어보았는데 돈가스처럼 껍데기를 씌워가지고 튀겨 먹으니까 기가 막히게 맛있더랍니다. 그래서 이게 돈이 될 것 같아서 투자자를 모았는데 투자할 사람을 찾는데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고 투자를 안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기를 천아홉 명을 만났답니다. 천아홉 번째에 이 투자자를 만나서 대박을 터뜨려 부자가 되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천 여덟 명에게 거절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닭을 튀겨서 들고 다니면서 이 닭을 상품화하면 돈을 벌수 있습니다. 라고 설명을 했더니 천아홉 번째 대박을 터졌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실망하지 말고 끝가지 도전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게 무슨 이 세상 성공학 특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모든 것이 사람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속주의라고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을 세속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이 있는 것이 바로 세속주의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목회에 있어서 다분히 인간적인 것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그래서 심각한때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소수의 교회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전도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전도하는 교회 중에는 순수하게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교회가 그러한 영혼을 사랑하는 동기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목표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이런 경영주의 방식으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보다는 어떤 목표에 대한 집념으로 그 일을 이루고 제가 아는 몇몇 교회는 아예 교인들이 전도에 나오지 않으니까 사람들을 교인들 중에서 연세 드신 분들을 유급으로 사람을 사서 그래서 한사람 전도하는데 두당 얼마 씩 그렇게 돈을 지급하는 교회를 서울에서 여럿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런 사역이 아닙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딱 한번 전하게 되었는데 그때 무슨 말씀을 전할까 하다가 자식이 회심하지 못하고 죽을 때 그것이 얼마나 부모에게 안타까운 것인지 우리가 부모를 남기가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천첩을 당한다 그럽니다. 자식이 아직 어린데 부모를 두고 먼저 앞서 갈 때 최대의 불효고 그래서 그런 장례식에 부모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천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부모가 자식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열렬히 기도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열심히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은혜를 많이 받는데 전체적으로 썰렁한 분위기예요 끝나고 나는데 목사님이 올라와서 광고를 우리에게 할당된 전도대상자들을 위해서 내일은 이렇게 하고 믿게 하고 합시다. 무엇인가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사역들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그것이 쏟아져 나와 꽃피고 열매를 맺을 때 그것이 진정한 목회사역이고 선교사역이지 자신은 슬퍼하지 않는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어떻게 진지하게 전할 수 있겠으며 자신은 기뻐하지 않는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진심으로 그 구원을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이 불행히 질것이라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이 존재는 동산 안에 있는 샘물과 같습니다. 작은 샘에서 물이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그것들이 이제 작은 실개천을 이루고 도랑을 이루며 휘돌아 흘러갈 때에 메말랐던 땅이 습기를 먹게 되고 거기에서 풀과 나무들이 자라면서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것이 터칠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바꾸어서 교회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개척하고 17년 되었는데 한 12년인가 13년 전부터 여름이면 항상 아웃리치를 나갑니다. 시골에 있는 교회들 자신의 힘으로는 복음을 전하기에는 너무 약한 교회들 또 사람들은 사는데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 지역들로 교인들과 청년들을 대거 보냅니다. 그래서 전교인 절반정도가 거기에 참여를 합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앞에 7만원에서 8만원씩 회비를 냅니다. 그래서 잘 준비해서 시골에 가서 한 교회에 한 30명씩 배치가 됩니다. 그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서 둘씩 셋씩 계획을 세워서 온 동네를 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냥 가서 예수 믿으세요 하면 그 사람들은 밭갈이고 정신없는 사람들이니까 커피도 타가지고 빵도 가지고 새참시간에 가서먹으면서 한 십 분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밭도 같이 갈아주고 그리고 기운이 없어 마루에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어깨도 주물러주고 발마사지도 해주고 제일 좋은 것은 뜸을 뜨게 해주는 것입니다. 들어 누우라고 하고 배를 걷으라고 하고 뜸을 놓는 것입니다. ‘할머니 움직이면 안 돼요’ 그러면서 삼십 분 동안 가만히 있게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더 좋은 방법을 해놓았는데 갈 때 링거를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링거 전도법이예요 영양제 성분이거든요 그것도 비싸요 하나에 만 팔천 원 씩 합니다. 가지고 가서 내려놓으면 이제는 삼십분이 아니고 두 시간 반입니다. 늘리고 줄이고 맘대로 할 수 있어요. 눕혀놓고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할 수 없이 듣는 거예요 할머니 이것을 맞으면 벌떡 일어납니다. 실제로 기운을 돋아주는 것이니까요 그러면서 눕혀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할머니 고향은 어디세요 애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쭉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전도하러 갔더니 욕을 하는 것입니다. 시골사람들도 참 각박하더라고요 빗자루를 집어던지면서 흙을 끼얹고 합니다. 그래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서 할머니 왜 그러세요. 우리할머니도 시골에 계시는데 왜 그러세요. 하면서 그리고 가서 발마사지를 해드립니다. 처음에 막 싫다고 막 그러다가도 기름을 바르고 발마사지를 해드리면 시원하잖아요. 가만히 계셔요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 가만히 계십니다. 그리면 이제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고 쭉 복음을 전합니다. 그중에 어떤 할머니는 ‘얘들아 그런데 너희는 그렇게 좋은 예수라면서 왜 그것을 이제야 와서 나한테 전해 주냐 ’그러면서 눈물을 펑펑 흘려요 그러면 우리가 올 때 어떻게 하냐면 할머니 우리 서로 의를 맺읍시다. 나는 할머니 아들 되고 할머니는 우리 엄마 되고 그러면서 거기서 양부모를 맺고 와요 편지도 보내는 겁니다. 편지도 와요 겨울이 되면 내복도 사서 보내드려요 그럼 여름에 고추를 이만큼 보내주셔요. 갖다 팔면 이익 이예요 그러면 겨울 같은 때 명절, 신정 같은 때 내려갑니다. 어머님 그동안 안녕 하셨습니까. 그러면 시골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이라고 생각하고 깊이 사랑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녹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시에서 오신 분들도 있고 시골에서 오신 목회자분들도 계시잖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소위 예기하는 목회에서 성공하는 비결을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자기 교회를 위해서 애쓰지 말고 남의 교회를 위해서 애써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저희 교회가 한 육칠십 명, 백 명이 안모였을 때 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지 2년이나 3년 정도 되었을 때인데 교인이 백 명 안모였을 때인데 개척교회잖아요 그러니까 그런데 시골에 있는 교회에 아웃리치를 갔습니다. 14명이 저도 갔습니다. 그 교회는 전라도에 있는 교회였는데 교인 15명 정도 노인네들이 모이는 교회였어요. 그런데 우리들이 잘 훈련을 받아서 내려갔습니다. 교인들이 워낙 은혜 받은 교인들이었기 때문에 사명을 주었더니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동네가 그 교회 하나에 여섯 개 동네가 딸려 있었어요. 그리고 여섯 개 동네에 살고 있는 가구 수가 사백삼십오 가정 이었답니다. 일주일동안 이 열네 명이 사백삼십오 가정을 다 방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 식구 이름들을 다 적고 그 식구들이 복음을 전했을 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다 적었어요. 그래서 일주일 전도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목사님을 드렸어요. 이 목사님이 우리와 함께 일주일동안 전도를 다니다가 커다란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아 전도를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그러면서 고백을 하는 말이 자기가 여기에 온 게 육 년 전에 와서 여태까지 사역을 했는데 교인들은 계속 줄고 그나마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노인네 들이여서 설교준비를 하나 안하나 어차피 예배시간에 조는 것은 마찬가지랍니다. 여섯 개 마을을 육년이 지나도 다 심방을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아주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깨뜨려 졌습니다. ‘아 나에게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구나. 처음에 목사가 되었을 때에는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열정이 있었는데 내가 식었구나. 그리고 깊이 회개하고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교인들 중에 그래도 좀 덜 늙은 교인들 데리고 한 집 한 집 전도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가 한번 씨를 뿌려 놓은 곳이니까 이제 추수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 열다섯 명모이던 교회가 100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가 왜 안 되냐 이렇게 하면 되지 그러면 시골에 있는 목회자들은 가슴에 와 닫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야기 하면 가슴에 와 닿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이야기 했어요 젊은이가 없다고 자꾸 그러는데 없는 젊은이를 어떻게 하냐. 지금 있는 사람들도 다 영혼이고 젊어서 펄펄뛰는 청년들도 영혼입니다. 목회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영혼들이 목숨이 붙어 있는 날 동안에 죽은 사람은 목회가 필요 없는 것이고 살아있는 동안에 어떠하던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만들어서 그래서 주님의 형상 닮은 사람들로 세워가서 그들이 자신의 삶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는 것이 우리 목회사역의 목표잖아요 그렇게 하면서 한 노인 한 노인 죽을 때 품에 안고 눈을 감겨주면 그게 목회 아닙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겁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가 꽉 찬 거예요 그렇다고 뭐 헌금이 나오고 그러지 않겠지만 그 얼마나 놀라워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이 그 목사님을 사용하셔서 사람들이 예수 믿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완전히 굳어진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목사님이 가만히 있어보니까 이 동네가 언덕길이 많은데 어느 노인이 안 오신 겁니다. 걱정이 되어서 봉고를 몰고 가서 그담에 봉고를 세워 놓고 걸어갔더니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머리 하얀 노인네 하나가 언덕에 쓰러져 있는 겁니다. 가보니까 그 교인 것입니다. 아이고, 할머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했더니 눈물을 흘리며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가 주님 교회에서 주님 만나러 교회 가려고 하는데 이 언덕이 고무신이 미끄러워서 자꾸 넘어져서 새끼를 고무신에다 묶고 올라오려고 하는데 힘이 없어서 자꾸 넘어지니까 나중에 거기에 엎드려서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네를 부축을 예배당에 데리고 와서 예배를 드렸답니다. 이게 바로 목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역사하는 겁니다.
엊그제도 제가 가르친 제자 한사람이 있는데 개척한지 한 오년 육년 되었습니다. 교인이 얼마나
모이냐. 그랬더니 다섯 명 모인데요 생활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좀 도와주기도 했는데 내가 그랬어요. 그러면 그대하고 그대의 사모는 전도를 나가냐 그랬더니 아니요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일먼저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풀 생각을 해야 된다. 복음 전해야 한다. 열매가 있는지 없든 지간에 먼저 목회자가 되기 전에 전도자가 되어야지 네가 전도안하면 누가 전도하겠냐. 당장 회개하고 전도 나가라 그래서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들이 무시한다 하고 그렇게 전도하다가 무시를 당하면 하늘에 상급이 있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우리주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성공하는 이야기 부자 되는 이야기만 하셨더라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미워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어두움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그리고 정말 로마의 시인이었습니다. 지체 높은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핍박과 고난을 한 몸에 받은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사람들에 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중요한 것은 가슴속에서 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깊이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인들이 남의 교회에 가서 그 교회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열렬히 전해보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복음을 그렇게 눈물로 전해도 안 받아들이는 현실을 보면서 내가 예수 믿어진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 것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 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러면 그 사람이 또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그러면 이번엔 어떤 마음이 생기냐면 ‘야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구나’ 나를 사용하시는구나. 그리고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에 와서 불평이 다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어떤 면으로 봐도 그 시골교회보다 편하거든 의자도 편하지 방송시설도 좋지 교회 점심도 맛있지 정말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니고 노는 거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평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을 위해서 그렇게 해줄 때 오히려 놀랍게 우리자신에게 커다란 유익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면서도 한 동안 자기가 복음을 전하고 온 그 동네 그 시골교회를 위해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편지 쓰고 기도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담에 일 년이 지나서 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한 교회는 삼년내지 오년 가거든요 그러면서 우리가 그렇게 나갔던 교회들 중에는 아까 얘기한데로 열댓 명모였는데 백여 명 모이는 경우도 있고 정말 놀라워요 해마나 삼십 교회 정도씩 나가는데 정말 놀라워요 그러니까 원리가 무엇이냐면 큰 힘이 있어서 남는 것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서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 영혼들이 변합니다. 목회자들 마음속에 정말 자기가 죽고자 하는 마음이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있을 때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아하는 복음성가 가운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런 찬송 있잖아요. 신학교에 갔더니 예배들이기 전에 그 찬송을 학생들이 불러요 그래서 내가 부르지 마라 틀렸다 너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죽기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것은 저 성도들한테나 부르는 것이지 너희들 신학교 졸업하고 교회에 가봐라 누가 그렇게 너희를 끔찍이 사랑하는가. 우리는 가슴깊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죽기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사도바울이 자기가 사망이 자기들 안에 역사해서 자기들이 죽었더니 교인들은 살아나게 되었더라. 그랬습니다.
우리 몸이 아주 신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 전체가 약 60조개 정도의 세포로 이루어졌습니다. 몸이 3개월이면 3개월 전의 몸의 세포는 거의 하나도 안 남고 다 새 몸입니다. 그렇게 죽고 살아나고 죽고 살아나고 하면서 우리의 생명이 영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과학적으로도 안 밝혀진 것은 뭐냐면 세포의 죽음입니다. 세포가 다치거나 완전히 늙어서 죽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포가 왜 그런지 자살을 해요 자살할 때 이 세포는 옆에 있는 세포에게 에너지를 전달해줍니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분열도 하고 세포를 키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세포는 안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세포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양분을 계속 빨아들이기만 하고 자신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세포들이 서로 모여서 서로 살겠다고 하는 세포의 덩어리가 있습니다. 그때의 그 세포는 안 죽고 살기 위해서 엄청난 양분을 자기의 세포 덩어리 속에 서로 끌어들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점점 더 급속하게 커집니다. 그 세포 덩어리를 우리는 암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는 것이 있어야지만 진정으로 사는 것이지 죽는 것이 없으면 그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고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목회자들은 죽기위해서 태어난 사람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가 그렇게 잘 죽을 때 그 때에 교회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어떻게 될 가요 그게 신비예요 설명을 드릴게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목회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많이 당하게 되잖아요. 그때에 그것을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잘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면 그러면 우리는 고통을 당해서 지금 막 죽는 것 같지만 그런 속에서 우리가 잘 죽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활의 놀라운 기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분노하고 괴로운 일 때문에 잘 참고 하나님 앞에 인내하고 연단을 받았더니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을 크게 살려주시는 경험이 있지요. 이런 것들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 내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가 죽을 때 자기 전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고 하나님 거스르고 제멋대로 살려고 사는 육신의 이런 기운들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은 주님의 사람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회 사역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목회자가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칭찬받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충만히 살아계신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깨뜨려진 사람은 그 깨뜨려진 내역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권위가 있고 설득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가 가장 마음을 기울여야 될 것은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가보면 부흥회를 가면 그 교회에서 뭘 설교를 하든지 잘 은혜를 안 받는 사람들이 세 부류가 있습니다. 목회자 그담에 장로 목회자 아내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더니 하얀 옷을 입은 신사한분이 뒤에서 계속 시종일관 주무셔요 그 교회 담임목사님 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린아이처럼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예배시간에는 좋은 예배 자가 되고 기도시간에는 가장 간절한 기도 자가 되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그 목회자를 통해서 자신이 변화 받게 하고 변화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목회자의마음속에서 강하게 넘칠 때 그것이 흘러나와서 많은 영혼들을 두루 적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이 고백을 합니다. 예수 죽음을 나는 짊어진다. 무슨 뜻이냐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나의 죄를 위해 당신 스스로 죽으신 것처럼 이번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이런 놀라운 사랑을 주시고 영혼을 맡겨주셨으니까 이제 나는 내 꿈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꿈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죽으셨을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죽는다. 그것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러나 내가 죽는 그 그곳에서 예수님은 다시 사신 것처럼 나를 또한 당신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신다.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생활입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정말 빠릅니다. 우리 인생의 남은날도 곧 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간절함입니다. 일본에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둑을 두고 나면 고수들이 둔 바둑을 그대로 기보가 전해서 내려와요 이 사람이 여기 두고 여기 두고 여기 두었고 이래서 결국은 이 사람이 졌다 이런 기록이 나와요 거기에서 토열국 이라는 게 있어요. 바둑을 두가가 지니까 너무 원통해서 진 사람이 바둑판 앞에서 피를 토하고 확 절명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오락을 하다가 져도 원통해서 바둑판위에 엎드려 져서 피를 쏟고 죽었다는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목양의 사명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차대한 것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도 있고 남들이 모르는 아픔을 겪을 때도 있고 때로는 교인들에게 치이고 사람들한테 밟혀서 괴로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구나 그러면 우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대접을 받고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어도 마지막에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이 목회사역을 단지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그 큰 은혜 나 같은 죄인을 건져주신 아버지 하나님 의 그 놀라운 사랑에 사로 잡혀서 하는 것이 이 목회라고 하는 것은 너무 분명 하잖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교회 바라보고 걸어온 것도 아니고 믿음생활하면서 사람이 알아줄 거라고 걸어온 길도 아니잖아요.
돌아가신 이중표 목사님을 몇 번 뵀는데 그분이 책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골교회애서 목회를 하는데 장로님 한분이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더랍니다. 너무 너무 괴로워서 매일 울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저 장로님 좀 바꿔 주십시오. 변화시켜 주십시오. 그랬더니 어느 날 하나님이 응답 해주셨대요. ‘중표야. 그 사람은 나도 못 바꾸었다. 차라리 네가 바꿔라.’
(찬양)
우리를 사랑하신 자비의 주 아버지 주께로 나갈 때에 기도 들으사
우리 죄악과 강퍅함 주님께 기도 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정신없이 목회를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육 년 전쯤 되었을 겁니다. 정말 쉴 새 없이 17년 동안 달려 왔습니다. 저 월요일 날 쉰 적 없습니다. 17년을 했는데 한 번도 안 쉰 것은 아닙니다. 더 놀라운 일이지만 주일 두 번 연거푸 비운 적이 없습니다. 17년 설교했는데 새벽기도 말고 사천 번을 설교를 했답니다.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달려왔습니다. 제가 주일이면 도합 8시간씩 설교를 했습니다. 사회 보는 시간 말고 설교시간만 7시간에서 8시간 한번 올라가며 90분에서 100분을 설교했습니다. 그것을 일부이부삼부사부 오부예배 저녁세미나 까지 그래도 월요일 날 새벽기도 칼 같이 나오고 월요일엔 더 일이 많아서 더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용히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묵상을 하는데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네가 정말 열심히 목회를 하는구나. 그런데 너 네 몸에 나 예수의 흔적이 얼마나 있냐? 처음엔 그냥 휙 지나가는 생각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가느다랗게 들리던 세미한 질문은 점점 더 큰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폭포수 소리와 같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네 몸에 나 예수의 흔적이 얼마나 있느냐? 네 몸에 나 예수를 얼마나 닮았느냐? 그래서 깊이 깨우쳤습니다. 새벽기도에 나가서 깊은 밤에 교회에 가서 길거리를 걸으면서 아침밥을 먹다가 그 질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그리고는 마음속에 아주 선명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언젠가는 이 목회사역이 끝날 때가 올 텐데 그때에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이 되자 그래서 우리는 성공에 대한 집념이나 좋은 대접이나 성도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위로 같은 것들로 목회사역에 자원을 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렇게 이 벌레 같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하나님의 사랑 그 수많은 사람가운데 왜 더러운 인간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구원의 은혜를 주셨을까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지 그렇게 고백을 하면서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면서 살면 무거운 짐 우리에게 무거운 고난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우리를 창조하시고 어떤 사람은 큰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작은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작아도 금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커도 질그릇으로 다양하게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도록 이 세상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소명은 우리가 무슨 그릇이든지 우리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언제든지 주님이 쓰시고자 할 때 우리자신을 바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고달픈 목회 생활 속에서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격지만 언젠가는 빠른 시간 안에 우리의 이 목회 사역이 끝날 것입니다. 수고와 근심의 큰 짐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고 사람의 꿈을 동기 삼지 말고 주님이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신 이 큰 사랑만이 목회의 동기가 되어서 살아있는 날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 모두 잘 죽어서 주님의 교회를 살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