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러 테제와 개혁신학의 미래
녹취자: 백지영
이슬람 쪽에서는 벌써 네스토리우스파의 공헌으로 희랍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약 10세기 중반부터(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대학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서방에 케임브리지 대학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12세기 경의 일입니다. 이것이 수도원으로 들어오고 스콜라주의 신학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슬람의 영향으로 근대 서구사회가 깨어나게 되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개신교 정통주의를 정리를 했으니까 개신교정통주의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정통적 신앙이 개신교 속에서 계승된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 단계가 종교개혁 1, 2세대입니다. 이것은 1528년 경부터 1564년도까지인데 개신교신학 전제들이 제시되고 설명이 됩니다. 마르틴 루터를 종교개혁 시대라고 보고 그 사람 이후의 시대를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멜란히톤, 칼빈, 불링거, 무스쿨루스, 베르미글리, 파렐, 비레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이 됩니다. 2 단계로 들어가면 초기 정통주의 시대라고 해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출간인 1565년부터 시작해서 1618년 아르미니우스 논쟁의 중심이었던 도르트 총회까지 개혁파 정통주의의 뼈대를 세우고 형식화를 시작하는 시기이고, 여기에서 주요국가의 신앙고백서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도르트 신앙고백서를 아십니까? 1618년에서 1619년 사이에 열린 네덜란드의 도르트 회의에서 칼뱅주의에 입각해서 작성된 기독교신조입니다. 오늘날 구원론에 있어서 우리는 9개 정도의 서정들(ordo Salutis)을 나눕니다. 실은 이런 것들은 후에 발전한 것입니다. 초창기 칼빈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즉각적인 의미에서의 중생이 아니라 중생 자체를 훨씬 폭넓게 보는 그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도르트 신조 같은 것들을 계기로 해서 구원의 서정들과 같은 것들에 대한 논의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정통신학에서 벗어난 이단들의 출현이 이런 구체적 논의들을 촉발시켰습니다.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저작들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 있는 유연성(flexibility)이 생겨남으로 정통신학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아르미니우스 같은 사람입니다. 칼빈만 하더라도 사실은 그렇게 완벽한 신학자가 아니었는데, 예를 들자면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원성 같은 것에 대해서도 애매모호 했습니다. 이렇듯 유연성을 가진 교리들이 이제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단계가 초기 정통주의 시대인데 도르트총회 이후에 아르미니우스와의 논쟁을 통해서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일관성을 갖춘 교회교의학들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초창기에는 개신교 나름대로의 어떤 통일된 체계의 조직신학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칼빈만 하더라도 삼위일체를 안 씁니다. 왜냐하면 가톨릭에서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에서 크게 또 다른 이론을 제기할 수 그런 것이 개신교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적, 철학적 일관성을 갖춘 개신교만의 교회 신학들이 초기정통주의 시대 때부터 발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스위스 제네바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도르트신경 같은 것들입니다.
주요 신학자들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쓴 인물 중의 하나인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 윌리암 퍼킨스, 테오도르 베자, 바르톨로메우스 케커만, 아만두스 폴라누스, 윌리엄 에임즈, 프라시스쿠스 고마루스, 왈레우스, 마코비우스 같은 사람에 의해서 초기정통주의가 발전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분의 언약에 관한 이론은 후대에 사회계약이나 이런 이론에 영향을 주어서 근대혁명에 까지 멀리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제 3 단계가 전성기 정통주의입니다. 이때에 개신교의 정통교리를 훼손하고자 하는 많은 논적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학이 논쟁적이 됩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과 최종판 사이에는 엄청난 분량의 차이가 있습니다. 거의 세배이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신앙고백의 형태를 띤 신학이 이 시기에 논쟁적, 스콜라적, 적극적, 설교적, 요리문답적 형식 안에서 정교화 시켜가던 시대였고 이러면서 개혁주의의 중요한 유산들이 형성이 됩니다.
주요 신학자자들로는 요하네스 코케이우스(이 사람은 언약신학을 정통주의 신학에 도입 시킨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사무엘 마레시우스, 퓌치우스(우트레흐트 학자로 당대를 비롯해서 그 후대까지 가톨릭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신학자였고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됨) 등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퓌치우스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18세기의 경건주의 운동의 태동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또 경건과 학문의 조화를 매우 강조했던 영국신학자 스테판 차녹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개혁파정통주의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람이고, 이분이 쓴 책 중에서『하나님의 속성』(Attributes of God) 책은 최고의 저작들 중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올라갑니다. 존 오웬은 말할 필요도 없는 아주 걸출한 인물이었고, 프란시스 튜레틴이라는 신학자도 있었는데,『변증신학 강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존 오웬의 모든 책들이 유명하지만 특별히 전집 가운데 제 12권인『복음의 변증』(Vindiciai Evangelicai)이라고 하는 책은 아주 유명합니다. 그 다음 페투루스 판 마스트리히트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분이 쓴『이론실천신학』(Theoretico-practica theologia)이라고 하는 책이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경 다음으로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했던 책입니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의『기독교인의 이성적 예배』(The Christian Reasonable Service)라는 책이 있는데 영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에 나온 아주 중요한 조직신학 책입니다. 픽테트라는 신학자도 있었습니다.
4 번째 단계가 후기 정통주의 시기입니다. 이때는 1725년 이후인데 여러분들이 잘 아는 데카르트가 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성주의 시대의 막을 열게 됩니다. 그러면서 18세기의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정통주의 시대의 죽음이 시작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성주의 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철학과 논리학의 상실, 스콜라주의적인 방법론의 쇠퇴로 개혁주의 사상의 신앙고백들이 사라져가게 됩니다. 사실은 볼피우스라는 신학자를 마지막으로 사라져가게 되고 이미 이성주의에 기울어졌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존 길, 알렉산더 콤리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명맥이 이어집니다. 이미 벌써 기울어져버립니다.
개신교 정통주의에서 사용한 학문적 방법은 스콜라주의 방법론입니다. 이것을 두고 기존 학계에서는 종교개혁과 개신교 스콜라주의를 이렇게 구분하였는데 이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첫째, 종교개혁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개인적인 것으로, 사건으로 이해했으나 후에 변질되면서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명제적인 것으로 이해를 했고, 그래서 종교개혁은 역동적 신학이었지만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중세처럼 정적인 신학이었다고 말입니다. 둘째,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그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신교 스콜라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언어적으로 지시된 말씀이라고 전제했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종교개혁자들은 온유한 인문주의정신을 가졌는데, 그 후예들인 개신교 스콜라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형이상학의 엄격함을 따랐으며, 그래서 개혁신학의 대의를 변질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의 이해는 이러했습니다.
흔히 스콜라주의라고 하면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가 있나?”와 같이 현실과는 상관없는 공리공담의 대명사라고 여겨졌는데 사실은 스콜라주의라고 하는 말 자체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스콜라주의’라는 말은 중세 수도원의 학교의 교사나 학생을 의미하는 ‘스콜라스티쿠스’(Scholasticus)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희랍어에서 왔습니다. ‘스콜레’(skole)라는 단어인데 ‘한가한, 할 일 없는’ 그런 뜻입니다. 거기서 스쿨이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로서는 학교 다니는 것은 할 일 없고 한가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돈 많은 귀부인들이 너무 심심하니까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하나를 불러서 심심풀이로 얘기를 한번 해보라고 하면서 배우는 방식이 스쿨의 유래였습니다. 스콜라주의의 1)본래적인 의미는 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사용되는 훈련의 형태입니다. 2)내용적인 의미로는 방법론의 문제가 아닌 중세시대에서 대학에서 가르친 독트린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3)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하면 전형적이고 권위적인 방법론, 혹은 아주 고루하고 상상력에 결여된 견해를 뜻하기도 했고, 스콜라주의가 변질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목해 볼 것이 4)네 번째 의미인데, 개신교 교리의 제도화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적이며 논리적인 접근방식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스콜라주의라고 할 때에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중세의 독트린이라는 두 번째 의미가 아니라 기독교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고도의 기술적이고 논리적인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루었던 방식적인 의미로 생각해야 합니다.
스콜라주의 방법론은 핵심적으로 네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1)‘쿠바이스티오’(quaestio), 질문 혹은 논제를 제시합니다. (2) ‘스타투스 쿠바이스티오니’(status quaestioni), 제시된 질문 안에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 주제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3) ‘오브엑티오니스’(objectionis), 채택된 주제들과 여기서 제시되는 교리와 상반되는 주장들과 다양한 반론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4) ‘레스폰시오’(responsio), 광범위한 신학의 원천들을 고찰하여, 제시된 반론들에 대해 답변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신학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최고의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경을 원어로 읽을 수 있었으며, 개혁파정통주의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언어학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개혁파정통주의자가 되기 전에 인문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문주의도 세속적인 인문주의와 기독교 인문주의로 나누는데 이들은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그리스 로마의 문헌을 연구해서 그때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자유를 자기시대에 구현하는 것, 그것이 인문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언어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는 물론이고 고전 헬라어(Classic Greek), 나아가서 그 이전에 있는 호메로스 헬라어(Homeric Greek)까지 공부하면서 사본을 비평하고 그것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더 열심 있는 사람들은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대 아랍어라든지 고대 근동어들을 읽어낼 능력이 있었습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랍비의 문헌들, -존 오웬도 랍비의 문헌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히브리어를 했다고 함- 당대의 신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의 작품들, 중세신학자들, 고대 교부들, 논쟁자들의 작품들을 기본적으로 섭렵하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PL(Patrologia Latina), PG(Patrologia Graeca)라고 부르는 그리스교부와 라틴교부의 전집들을 기본적으로 다 읽었고, 자유롭게 그것에 대해서 자기의 주장 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반론에 대해 답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는 무슨 연관이 있느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연속성이론과 불연속성이론입니다. 불연속성이론의 핵심적인 주장이 무엇입니까? 개혁파정통주의가 16세기 후반, 그러니까 마르틴 루터파를 기준으로는 루터 사후에 멜란히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신학들, 칼빈파를 기준으로는 칼빈 사후에 테오도레 베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신학들, 이런 신학들은 종교개혁의 원래의 신학적 순수성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총신 다닐 때 받았던 교육이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그렇게 교육을 받고 보니까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새겨진 것이 마르틴 루터와 칼빈 이후의 신학은 이성주의에 의해서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정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교부들의 신학을 비롯한 중세까지는 개신교가 아니니까 날려버렸고, 루터와 칼빈을 제외한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은 이성주의에 오염되었기에 안 읽습니다. 우리의 눈에 띠는 개혁신학자들이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빈과 루터의 책을 모두 읽고 있느냐? 칼빈의 책을 모두 읽으려면 그가 쓴 문집과 논문, 주석, 설교를 다 같이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한가하게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손 안에 들어오는 한 권의 책, 기독교 강요 뿐입니다. 그 한 권도 초판부터 차례대로 다 읽는 것이 아니라 최종판 딱 한 권만 읽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개혁파신학의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으로 들어가 보면 칼빈은 비교할 만한 인물이 없이 오늘날 이렇게 유명한 사람으로 남았지만 그 당시에 가서 보면 수백 명의 헤아릴 수 없는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짜증낼지 모르겠지만 제가 작품들을 읽은 결과로 따져볼 때에 학문성과 깊이에 있어서 칼빈이 단연 최고의 신학자라는 주장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화란에 있는 노교수님께 이 질문을 드렸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칼빈보다 훌륭한 학자들, 더 엄밀하고 상세하게 신학을 논의하는 학자들이 정말 많았는데 왜 칼빈만 이렇게 유명해지게 되었느냐고 말입니다. 실제로 칼빈과 동시대 사람, 마틴 부처나 피터 마터 베르미글리와 같은 탁월한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잊혀지고 칼빈만 남게 된 중요한 이유는, 칼빈은 탁월한 신학자이면서도 당시대의 모든 신학자들이 범상하게 소유할 수 없는 능력을 소유했는데 대중들과 대중적인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없었느냐고 했더니 없었다고 합니다. 오직 이 사람만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나는 앞으로 2권이 더 나와서 3권으로 완성될 것 같습니다. 2000페이지쯤 되는데 우선 650페이지짜리 책이 1권으로 나왔고, 2권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어떤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신학과 철학, 신학과 과학, 신학과 인문학, 신학과 역사를 중심으로 13세기 쿠자의 니콜라우스와 윌리엄 오캄까지까지 다룰 예정이고, 3권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부터 근현대까지 다룰 예정입니다.
제가 5년 정도 그 책을 썼는데 공부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책들을 구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손에 들어온 책이 있었는데 1905년도에 나온 ‘제네바 아카데미’라고 하는 책입니다. 불어로 되어 있어서 사실은 자유롭게 읽을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어쨌든 띄엄띄엄 읽고 또 필요한 부분은 번역기로도 돌려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거기 통계들도 나와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칼빈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한 구석에 앉아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최고의 신학교육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가깝게는 프랑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 심지어는 북쪽의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가서 개혁주의 신학을 전파하는 지도나들이 된 것입니다. 존 낙스 같은 사람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를 통해 엄청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기독교 문헌에서 확인한 게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에 가서 제네바에 있는 16세기 문헌을 확인한 게 있는데, 칼빈이 이런 말을 남긴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살 길은 공업(工業)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살았던 15-16세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니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좁은 땅에서 농사도 안 되고 이 땅에서 우리의 살 길은 공업이라고 이야기하고 그 정도의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가들 중에서도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은 정말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불연속성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이성과 계시라는 두 원천을 가진 교리를 주장합니다.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은 이성의 우위성, 곧 “계시를 대치한 중요한 원리로서 이성의 우위성을 강조했고 자연신학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슐라이어마허에서 시작이 되고, 그리고 이후에 그것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 없이 그냥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내려 오게 된 것입니다. 과거 신학교를 다닐 때에 베자의 작품 중 무엇을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칼빈 이후의 그 걸출한 신학자들에 대한 이름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습니다. 우리 스승님들도 바로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사실은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무슨 문제가 발생합니까? 신학의 원천이었던 보편교회의 교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개신교가 있기 전에는 그리스도교가 하나였습니다. 교부들이 가톨릭 신학자는 아니잖습니까? 어거스틴이 가톨릭신학자입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속사도 교부들, 이레나이우스, 테르툴리아누스,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교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합니까? 신학의 뿌리가 되는 그런 유산들을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을 이야기하면서 개혁주의적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개혁주의라고 하는 것은 16, 17세기에 나온 것이고 어거스틴은 4, 5세기 때 사람인데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다보니까 우리들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마지막에 남은 외로운 섬 하나, 기독교강요만을 개혁신학이라고 공부하는데, 사실은 개혁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기독교강요마저도 안 읽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있는 어느 개혁신학교 세미나에 가서 신대원 학생들한테 기독교강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하니까 60명 중에 2명이 손들었습니다. 총신학생들도 70퍼센트는 안 읽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서 기독교강요를 들척거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강요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연속성 이론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부정적 연속성, 긍정적 연속성으로 나뉩니다. 부정적 연속성이론은 “스콜라주의는 나쁜 것”이며,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을 절제해서 사용했는데 후대의 개혁자들은 그것들을 마구 사용해서 이성주의에 물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개념의 틀이 정통주의의 해석학을 결정했다고 보고 스콜라주의는 형식적인 도구장치 이상이었으며 성경은 이성주의 양식 안에서 왜곡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반면, 긍정적 연속성이론이 있습니다. 이것이 멀러테제를 따르는 이론인데, 개신교스콜라주의는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점차적으로 발전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수용함에 있어서 내용적인 측면과 형식적인 측면을 구별하여 전용하기도 했고 거부하기도 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필요한 것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과의 연속성은 종교개혁자들의 성경과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신학내용을 후대의 신학자들이 이어받았다는 것이 연속성이고, 불연속성은 후대의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단순히 반복한 것이 아니었으며 자기의 시대에 맞게끔 그것들을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는데, 우선 첫째는 많은 이단들이 새롭게 출현하면서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굵직한 이론들을 상세화 할 필요가 있었고. 두 번째는 개신교만의 독특한 신학을 총체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는 요구였습니다.
긍정적 연속성이론은 중세와의 연속성을 다루는데 중세 스콜라주의의 방법들을 사용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중세 스콜라주의의 독트린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을 가지고 논적들을 파하고 성경의 진리들을 파수하는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개혁과 개혁파정통주의 사이에 긍정적인 연속성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멀러교수가 1975년도에 논문을 내놓고 많은 팔로우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확증을 하게 되는데, 이전에 이미 그와 유사한 역사이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에띠엔느 질송입니다. 이 사람은 프랑스 사람인데 원래 대학에서 데카르트를 전공합니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를 전공하고 폭넓은 신학을 하면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사람이 가진 의문점은 이것이었습니다. 중세의 지성사에 대한 이제까지의 이해였습니다. 인류의 철학사를 이야기하면서 중세시대는 철학사에 있어서 괄호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학의 시대였지 철학의 시대가 아니었다고 보는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교부들이 목회자로서 철학 일선에 서서 철학을 전개해 나가던 2세기 경, 로마의 사상적 박해 아래서 기독교를 변증했던 변증가 시대의 이전에 철학의 맥은 끊어졌고, 그 끊어진 맥이 데카르트에 와서 다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그 당시의 정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질송은 이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데카르트를 전공합니다. 데카르트의 아주 독특한 철학사상들, 관심자체를 존재에서 존재자로 옮기고, 외부적인 실제로부터 인식하는 자기 자신에게로 옮겨지는 인본주의적인 정신의 토대들은 그가 제공한 것이며,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달들이 사실은 과학철학사적으로 데카르트에게 덕 입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데카르트의 탁월하게 독창적인 사고방식의 원천이 무엇일까를 질송은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한 가지 사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데카르트의 철학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하는 스콜라주의의 실재론이 붕괴되고 니콜라스의 쿠자누스나 윌리엄 오캄, 로스켈리누스 같은 유명론자들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사물을 볼 수 있는 철학적 인식론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데카르트는 바로 이 유산을 받아서 자기 사상을 재구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질송은 논문을 하나 발표하는데 중세에 아주 훌륭한 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그동안 정설로 받아들이던 중세의 지성사에 대한 이해는 잘못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그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그는 웃음거리가 됐지만 40년이 지나기 전에 그 정설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한번 읽어보십시오. 에띠엔느 질송의 책들이 영어로 번역된 것도 아주 많으니까 읽어보십시오. 특히 ‘중세철학사’ 1926년도에 쓰인 이 책이 아주 잘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근대가 사상적으로 결코 중세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질송 외에도 또 한 사람의 중요 인물이 나오는데, 야콥 부르크하르트라는 인물입니다. 스위스에 가면 야콥 부르크하르트 거리가 있을 정도로 그렇게 유명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스위스의 미술사와 문화사를 연구한 역사가였고 말하자면 거두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요한 하위징가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연구하면서 중세와 르네상스에 대한 거대한 집적들을 생산해 냅니다. 이 사람의 주장은 르네상스가 중세로부터의 특별한 반발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책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해석이 굉장히 오랫동안 학계를 지배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과연 이 사람의 유럽사에 대한 인식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회의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요한 하위징가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중세의 가을”(The Autumn of the Middle Ages)이라고 하는 책인데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이것에 의하면 “르네상스는 중세의 연장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세의 반발로서 르네상스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세가 스스로의 힘으로 붕괴되면서 그러면서 이미 르네상스의 정신으로 중세는 흘러가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중세에 뿌려놓은 씨앗들이 풍부한 수확물을 거두게 되었는데 그 자연스러운 수확의 시기가 르네상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중세의 가을’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책입니다.
그 다음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연구가인데 아까 이야기한대로 중세와 르네상스와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것입니다. ‘Renaissance Thought'라는 이 책이 유명한 책인데, 부제가 ‘The Classic, Scholastic, and Humanist Strains'라고 나옵니다. 이 책속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많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르네상스는 중세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중세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으며 오히려 르네상스의 놀라운 발전은 중세의 철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인문주의를 역설했기 때문에 그 인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르네상스가 중세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는 교권에 대한 도전이다 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헤이코 오버만은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고 역시 비슷한 내용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중세신학의 수확’(The Harvest of Medieval Theology)이 그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중세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교회가 정통신학에서 이탈한 것들에 대한 반박이었고, 오히려 중세의 보편교회 교부들의 신학적 유산들을 계승하면서 창조적으로 정통신학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게 됩니다.
멀러 연구, 멀러테제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것입니다. 첫째, 방법론에 있어서 개혁파정통주의자들은 스콜라주의를 사용했다. 둘째, 모든 스콜라주의를 택한 것은 아니다. 셋째, 성경을 무시해서 자신들의 독트린을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을 단지 증거본문(proof text)로 사용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스콜라주의를 거부했지만 방법론까지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고용인으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 방법론을 도구화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존 오웬이 윌리암 오캄의 어느 한 구절을 이용했다고 해서 존 오웬이 윌리암 오캄의 사상을 다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이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교파의 신학 하나를 딱 붙들고 교조주의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학 공부에 대해 특수성(particularity)과 보편성(universality)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신학을 시작할 때에는 특수성에서 시작합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먼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장로교이든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어쨌든 그 교회에 입각한 신앙고백을 하고 입교한 신앙인입니다. 거기서부터 신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보편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된 신앙이, 더 뒤로 본다면 구약에서 시작된 야훼종교의 신앙이 어떻게 전승되어 왔고, 성경에는 그것들이 사도들에게 어떻게 표현되었으며, 속사도교부들이 어떻게 이해했고, 초대교부들이 그 신앙을 어떻게 해석했고, 그리고 어떻게 자기시대에 적용했으며, 중세의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심지어는 가톨릭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까지를 수렴하면서, 자기가 시작한 신학의 시작인 특수성, 곧 자기의 교파적인 신학이 어떻게 참 진리이냐 하는 것을 보편성의 신학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대화하면서 자기가 신봉하고 있는 교단의 신학 중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버리고 발전시키고 논쟁하고 다듬고 나아가는 그런 발전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신학을 이해할 때에 좁게는 기독교지성사 전체의 맥락에서, 아주 더 좁게는 개혁신학의 다양한 분파의 역사의 맥락에서, 좀 더 넓게는 개신교 지성사 전체에서, 아주 더 넓게는 기독교지성사에서, 더 넓게는 세계지성사의 큰 맥락에서 어떻게 이 기독교가 흘러오고 발전하였으며, 그 많은 견해들 중에 우리들이 신봉하고 있는 견해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신앙적이고 학문적인 근거와 그리고 도전은 무엇인가 라는 것들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렇게 할 때에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초대교회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경우에는 개종한 신자들에게 처음 가르친 것이 사도신경이 아니고 우주론을 먼저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은 너무 왜소하게 되었지만,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사상으로서의 종교였습니다. 그 사상이 독특했고 그 사상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슬람의 아주 독특한 삶의 방식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 사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공산주의자들을 본다면 놀랄 것입니다. 그러면 똑같이 그들도 우리 기독교를 보면서 새로운 인상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 우리가 말로 전하는 것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독특한 사상과 세계관이 만들어내는 삶의 방식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문헌뿐만 아니라 세속 학문의 자료들을 보면 당시 기독교인에 대한 아주 호기심어린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그 특징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족속들, 그리고 아주 독특한 삶의 양식을 가진 족속들로 등장합니다. 그런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상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태까지 없었던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을 받아들이고 그의 가르침에 매여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혁파정통주의에 대한 이해는 웅장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도록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때에 받은 충격들을 정리하면서 이 논문을 쓴 것입니다. 하루에 다 쓴 것입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열심히 그쪽에 대해 공부하지는 않지만 도전들은 잊어버릴 수가 없고, 그리고 우리가 정말 개혁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개혁자들이 공부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부했다는 것을, 우리들이 어떤 공부를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고,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 새로운 인생을 선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좀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관련된 책을 좀 더 읽으시면서 눈을 뜨신다면 아마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주장점들은 1970년대에는 논쟁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슐라이어마허 테제는 무너지고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의 신학계의 학풍 자체가 조직신학 분야나 역사신학 분야에서 17세기 전공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교수진이 완성이 안 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그렇게 강력한 설득력을 이미 갖고 있으며 많은 개혁자들도 따르고 있습니다.
화란 신학자들과 대화를 해 보니까 이 사람들은 이미 멀러가 이야기했던 방식으로 전통적으로 신학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멀러테제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선교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에서는 그런 지적인 전통들을 무시하였고, 현실 적응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유럽의 교회에서는 그런 것들이 생소하게 느껴졌을 뿐이지,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 유산을 다시 우리들이 자각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들도 읽고 중세철학자들도 읽으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개혁신앙이 얼마나 역사적인 든든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신학인가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져야 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깊이 느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플라톤을 공부하면서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참 감사했고, 어거스틴을 공부하면서는 내가 기독교인인 것이 참 감사했고, 루터와 칼빈을 읽으면서는 개신교도인 것이 감사했고, 그리고 개혁파정통주의자들 17세기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내가 모든 기독교의 교파 중 개혁교파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이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김남준 목사가 개혁신학을 사랑했다는 말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칼빈을 너무 좋아했지만 칼빈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은 나는 사양합니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 할머니하고 어거스틴 이외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어거스틴을 사랑했지만 어거스틴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거절합니다. 오웬을 좋아하고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탐독했지만 오웬주의자로 불리는 것은 싫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작품에 심취했고 아직도 가르치고 있지만 에드워즈주의자라고 불리는 것도 나는 싫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모든 신학자들의 어깨를 딛고 나도 그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보았고, 마지막으로는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분들의 가르침에 도움을 받아서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 말을 신문에도 기고했고 공식석상에서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2백 여 권의 책을 썼고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김남준의 추종자들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내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으면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발로 밟아버려라. 그리고 그 책을 잊어버려라. 그리고 김남준의 삶이 아니라 네 삶을 살아라.’ 그렇게 하면서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자유로운 주체로서 그 사상들을 높여드리면서 자기가 믿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인격과 삶 속에서 구현하면서 일생을 살다가 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참된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것들은 높은 신앙과 사랑의 덕을 향하여 올라가기 위해 우리가 밟고 지나가는 하나의 판자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사상과 가르침도 우리의 마음속에 마치 어마어마한 이상인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 주체로서 내가 그들이 아닌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문처럼 각기 다른 인간성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인간으로서의 나의 개별적인 특징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고 반복되지 않을 그런 독특한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살며,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