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여성 교구 교역자 세미나 1
녹취자 : 김세나
우선 그 우리들이 오늘 하는 내용들은 실질적인 목회의 기술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우리들이 영혼들을 돌보고 특별히 영혼들 중에서도 장년 여성이라고 하는 특성을 고려하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그 영혼들을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원리가 무엇인가. 계속 붙들어야할 중심축이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들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째는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사역을 생각하는 그러한 자세가 우리들에게 되어있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고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사람이냐가 그 사역의 축복의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하나님께서 사역하는 사람이 안 기쁘셔도 그 사역에 축복해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역자도 소중하지만, 그 사역자에게 딸린 영혼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역자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도 한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렇게 사역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축복들이 사역자 자신과 직접적으로 영혼의 축복과, 사역자 자신의 영혼의 축복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개인에게는 비극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단지 일하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일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자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혼의 복을 누리면서 사역을 감당해 나가길 원하는 것이지 우리의 영혼을 팔아서 주님을 섬기려 그러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일하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우리의 사역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목회자 자신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그 기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우선 첫째는 신자로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신자로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해서 먼저 자기 자신이 한 사람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그러한 기쁨과 그러한 은혜 이러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저께 집에 들어갔더니 우리 집사람이 자네 정말 그 길을 가겠나를 다시 읽고 있는데 사모구역에서 이번주에 그게 리딩 어사인먼트라 그래서 읽고 공부하는데 감탄을 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아 너무 좋다. 그리고 우리들이 모든 책이 그렇듯이 우리의 영혼들에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죠. 그래서 스펄전이 천로역정을 백번이나 읽었다고 그러죠. 그러면 일 년에 거의 2번 이상 읽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바쁜 와중에서 그렇게 읽어 나간 거죠.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정말 이대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가. 당신도 당신이 쓴 책이지만, 당신이 읽어보고 그 때 쓸 때 초심으로 돌아가서 좀 잘 살도록 노력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뭐, 기분 나빠 할 이유가 없죠. 그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참된 신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사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정말 진실한 고민이어야 된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신자인 나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뭔가, 그래서 그러한 고민이 살아있지 아니하면 우리 자신이 아주 직업적으로 변해 가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렇게 변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사역자의 고민은 항상 신자로서 개인의 고민을 동반하지 않으면 그 고민은 결국 사역에 있어서의 성취와 성공에 관계된 고민으로만 그 한쪽으로만 쏠리기가 아주 쉬운 거예요. 그런 점에서 우리 자신이 깊이 각성하고 변화되어서 한 사람의 신자로서 좋은 삶을 살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목회자인 우리의 직문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뜻이냐 하면 목회자인 우리를 향한 우리의 직무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너무 낮게 잡을 때, 그 때에 우리는 형편없이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목회자로서의 의무를 태만히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제법 내 자신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위험이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주 면밀하게 목회자인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전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종종 하신 일이 뭐냐 하면 자기 부인에게 리차드 백스터의 참 목자상을 읽어 주도록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속에는 참 목자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쭉 보면서 이 목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쭉 보면서 자기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를 다시 한번 바로 사기고 하였다는 기록들이 나옵니다. 우리들이 매일 목회사역을 한다는 것과 자기의 직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연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일은 일일 뿐이기 때문에 일 속에서 오래토록 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신 소명에 대한 감동이 세로워지지 않으면 우리가 왜 시작했고 무엇을 위해서 목회사역으로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는가를 잃어버린 채 그냥 매일 매일의 삶에 익숙해지기 쉽고 그렇게 되면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그 직무대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으며 오늘 하루의 삶이 그 직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매일 매일 점검하고 아로 새기는 일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제 여러분들이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이런 책들을 정기적으로 6개월이고, 1년이고 쭉 읽으면서 그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쭉 읽으면서 다시, 그래서 좋은 책들은 브래이너드의 일기를 네 번인가를 읽었는데 그 첫 번 읽을 때, 두 번 읽을 때 세 번 읽을 때 각각 달라요, 느낌이. 그래서 계속 해서 그렇게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나를 향한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익숙해진 뭐 이런 게 다 뭐 목회자의 생활이지, 이런 것 말고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런 직무가 바로 목회자의 직무다 하는 것들을 이렇게 선명하게 인식시켜 주는 일들이 똑같은 것이다라고 하기보다도 가끔씩 새롭게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와야지만 그 객관적인 표준에 우리들이 미치면서 사는지 미치지 못하면서 사는지를 확연하게 분별하도록 우리들이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 목회자의 직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다. 목회자가 실제로 하는 일들은 많이 있지만, 그 목회자의 직무는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서 네 가지로. 아,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요약을 하자면 이렇게 되는 거죠. 첫째는 전도자의 일이죠.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이 상기시켰던 것처럼 우리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중 하나는 복음을 전해서 안 믿는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박형룡 목사님이 만들어 놓은 총신의 교훈을 보면 목회자가 되기 전에 먼저 그 전도자가 되어야 된다는 구절이 나와요. 그래서 다 외울 수 없지만, 신자가 되라. 그 다음에 성자가 되라. 그 다음에 전도자가 되라. 그리고 목회자가 되라. 이렇게 나와요. 교훈인데 어쨌든 간에 목회자이기 전에 목회자는 모두 전도자여야 된다는 것이죠. 오늘날 목회가 이렇게 깊이 침체되어 있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목회자 자신들 속에 구령의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령의 열정에 불타서 전도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 영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줄을 아는 감각이 있고 그렇게 영혼들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만의 독특한 감각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전도자의 삶을 우리가 먼저 살아야 한다. 전도자로서의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무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이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이미 교회 들어와 있는 영혼들에 관한 것인데, 두 번째 직무는 그 영혼을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이죠. 교회에는 이미 들어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자가 아니에요. 그 신자가 아닌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회심을 통해서 그 사람이 그리스도께 획득되기 전에는 그 영혼이 교회에 있다라고 해서 세상 밖에 있는 영혼보다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 밖에 있는 영혼들을 전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우리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막중한 책임이 있다면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의 슬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 영혼의 회심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노력하지 아니함으로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획득되지 못했을 때, 우리가 주님 앞에 받아야 할 꾸지람은 전자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이미 있는 영혼들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그게 목양이죠.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잘 가르치는 것이 우선 근간을 이루고 형편에 따라서 그 영혼들을 적절한 말로 위로하고 그들의 삶을 바로잡아 주고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을 의로 교육하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러한 기능들을 목회자가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대행하면서 돌보는 모든 과정을 우리들이 흔히 목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목양의 직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직무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직무가 뭐냐 하면 리더로서 목회자로서 즉 자기가 맡고 있는 교회, 혹은 교구의 지도자로서 해야하는 일들이죠. 지도자가 아니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는 일들이지만, 지도자이기 때문에 깊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있죠. 그런 일들을 행정을 하고 자기가 맡고 있는 이 교회 혹은 이 교구의 조직을 효율화 하고 창조적인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성도들의 헌신을 결집시켜서 교회가 고유하게 추구해야 할 교회의 본래적인 사명을 위해서 효과적으로 기여하게 하는 그 일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리더십이 요구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맡고 있는 교회 혹은 교구가 보다 더 내실 있고 탄탄한 모습으로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거기에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바깥으로는 복음전도를 위해서 뻗어나가게 되고 안으로는 변화되지 않은 신자를 집어넣었을 때 신자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적인 생명력을 그 부서, 교구 혹은 교회가 갖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이제 목회자가 해야할 아주 중요한 직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무들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항상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엄격하게 점검받고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반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고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들의 목회 사역은 목회자 자신이 퇴화되고 퇴화되고 퇴화되어서 날개도 퇴화되고 다리도 퇴화되고 다 이렇게 퇴화되어서 그래서 보잘 것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그 난쟁이 같은 목회자의 모습을 봅니다. 전도할 수도 없고 회심케하는 어떠한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해 주는 도구도 되지 못하고 그리고 민첩하게 그 영혼들을 필요에 따라서 그 영혼들을 지혜롭게 잘 살피는 명민함도 없고 그리고 자신에 맡겨진 교회를 슬기롭게 조직하고 조직된 것들을 효율화 하여서 역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도 부족하고 이렇게 될 때 그 지도자로 말미암아서 그 교회 혹은 교구는 급속하게 생명력이 감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까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하나님은 그 지도자를 사용하셔서 당신 자신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고 사람은 방법을 사용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 일들을 이루어나가시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바로 새기고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에 내가 지금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깊이 고민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세워가는 이러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사역을 본다 하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한편으로는 아까 말씀드린 그런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점검해 보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사역을 본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됨으로서 자신의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이 깃들 수 있다라고 하는 확신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현실적으로는, 현실적으로는 이런 원리거든요. 하나님은 사람을 들고 사용하셔요. 하나님께서는 방법에다가 기름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하게 하시지 방법이나 제도에 신령한 힘을 부어서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야. 하나님이 사람위에 기름을 부으셔서 충만하게 역사하시지만 그러나 그렇게 충만하게 기름부은 사람은 방법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애국심에 그 마음이 펄펄 불붙는다 할지라도 매운 주먹 붉은 피로는 장엄하게 순국할 수는 있지만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고 사람은 방법을 사용해서 그렇게 해 나가시는 거죠. 그러니까 궁리를 많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매한 지도자는 그 백성에게 재앙이에요. 그것을 생각을 많이 하고 지도자는 항상 슬기로운 면에 있어서 자기에게 지도를 받는 모든 사람들 보다 뛰어난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렇게 창의적인 생각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또 새로운 도전, 새로운 경지들을 개척해 나가면서 사역의 새로운 말하자면 이 경지들을 넓혀가야, 지경들을 넓혀가야 된다는 것이죠. 그 방법만을 가지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사역을 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역에 지경들을 넓혀가야 하는 것이죠. 쉽게 이야기 하면 이 세상에 돈 버는 사람들도 안 해 본 짓이 거의 없잖아요. 하다못해 떡을 만들 때에도 나는 옛날에 궁리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새로 떡이 나오면 그것을 변형 시켜 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끊임없이 궁리를 하는데 하물며 영혼을 섬기는 이 사역을 구태의연하게 하면서 그것도 열매가 많이 부어지면 만족하겠지만, 열매도 거의 없는데 그 옛날에 하던 그 이상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답습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의미로든지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거죠. 그래서 충성스러운 사람은 잘 하는 사람입니다. 잘 하는 사람. 그런데 그렇게 방법들을 해 나가지만, 그러나 항상 치우치지 말하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우리들이 많은 교회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자기의 교구의 어려운 점들을 지적할 때 방법을 많이 연구하고 그 방법 창의적인 계획들을 세우다가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보다는 방법을 많이 의지하게 되고 방법 속에 자동적인 어떠한 자기의 목회 상황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기가 아주 쉬운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뭐냐. 그러면 뭐냐. 이런 것들을 안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주님이 나를 많이 사랑하셔서 어여삐 보실 수 있도록 살지 않으면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이 사역에는 축복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방법들이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막을 내릴 것이다라고 하는 그러한 의식을 갖은 상태에서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가장 나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목회지에 거의 축복을 주시지 않는대도 마음이 부유해서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회지에 축복해주시지 않는 때에 무거운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두 번째 나쁜 사람들이에요. 부담만 느낄 뿐 하나님 앞에 그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자기가 변화되려고 하는 대신 이 사역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주저주저하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두 번째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가장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감당해 나갈 때 주님의 축복이 없을 때에 끊임없이 그 상황을 개혁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간구하고 그 지혜도 하나님 앞에 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은 단지 인간이 생각해 놓은 방법일 뿐이고 하나님의 축복이 자신의 이 방법론이 아니라 이 방법을 택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위에 부어져야 된다라고 하는 믿는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찰스 피니는 우리하고는 신학적인 견해가 사뭇 다른 사람이었지만, 본받을 만한 탁월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뭐냐 하면 자신의 사역의 성공을 철저히 하나님과의 자신의 관계 속에서 읽어보려는 집요한 노력이었습니다. 한 교회에 가서 집회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그 모든 책임이 강사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본인들이 거의 기도를 안 하고 본인들 속에 죄악이 거의 있으면 평양 대부흥 그 첫 번째 6일 동안에 하나님께서 솥두껑처럼 하늘을 덮고 아무 은혜도 안 주셨던 것처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찰스 피니는 무엇인가 자신의 집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마른다고 생각될 때에는 집회에 쉬는 어간에 빈들에 다아가서 세 시간씩 네 시간씩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답니다. 자신의 이 집회의 동기가 순수한지, 자신에게 무슨 죄악은 없는지 하나님이 왜 오늘 자신의 설교를 통해서 회심의 은혜를 주시지 않는지 깊이 돌아보면서 몸부림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새롭게 부어주시는 은혜를 힘입어서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면 새로운 그 영적인 은혜들을 그 집회속에 물붓듯 부어주시는 그러한 은혜들을 경험하면서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조금 무능해도 반드시 덜 유능해도 반드시 하나님이 그 사람의 사역에 복을 주십니다. 크기에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이제껏 열린교회를 해 오면서 어떻게 우리들이 사역을 했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영혼들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우리의 죄가 있는지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뉘우칩니다. 교구가 갈라진 다음에는 자신들의 교구에 영혼들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금식하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밤 내려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특별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사역이 잘 성공하나보다 할 때에 미끄러지는 영혼들이 많이 나올 때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동안에 우리의 마음이 겸비해졌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는 죄인들의 완악함이 하늘을 찌른다고 생각했지만, 기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사역에 축복을 볼 때에는 자신의 죄와 악함이 하나님의 사역의 축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그렇게 매순간 어린아이처럼 연약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니면 자신의 사역에 복이 끊어질 것처럼 매달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만큼이나마 복을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만들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철저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는 자신의 교회가 어디에 있으면 어떻게 걸어왔고 앞으로는 어디를 향해 가게 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볼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교회 혹은 교구를 돌아보면서 주님의 축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안타깝게 매달리는 사역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시는데 그러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사역자가 순결해지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말 정결해지고 그리고 자신의 이 그 사역의 축복을 그 펼치시는 분이 정말 하나님 한분 뿐이시라는 사실을 정말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사역을 감당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사역을 보면서 그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그러한 노력들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약이 없습니다. 정말 다른 약이 없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사역을 보면서 너무 희망적이게 돼서는 안 된다 이거죠. 희망적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희망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아, 잘 봐라. 잘 이것을 봐라. 이렇게 영혼들이 그 거의 보냄을 받지 못하고 있는대도 무엇인가 자기 자신은 부요한 마음으로 가득차서 뭔가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자꾸 희망적으로 되어 간다는 거죠. 그 희망적이 되어가는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매달리기 싫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돌려서 자꾸 희망적으로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우리 사역에 있어서 거룩한 긴장을 앗아가고 사역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할 그러한 시점들을 놓치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그렇게 해 나가면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봐야 합니다.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고 그 영혼들을 회심시키시고 그 다음에 그 영혼들을 잘 목양하고 자신의 교구를 능력있게 지도자로서 훌륭하게 잘 통솔해 나아가는 이러한 면에 있어서 진짜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고 있는지를 보면서 그러면서 거기에서의 관계를 깊이 성찰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날마다 가슴 아파하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어지는 목회자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그러한 변화의 축복들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잘 감당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철저한 철저한 기도생활입니다. 철저한 기도생활입니다. 오늘 새벽 시간에도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만, 조나단 에드워즈는 가치가 있는 신앙의 경험이라는 논문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영적인 감동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 감동이 없으면 형식적인 신자들이 절대로 생명력있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지 않고 자기가 이제껏 살아온 삶의 방향도 절대로 바꾸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던 냉담한 사람들이 감동을 받지 않고는 결코 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결코 그렇게 안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 그 목회자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어루만져서 그래서 죄에 대해서 분노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아프게 하시고 자기의 죄를 뉘우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자신의 사역에 대한 그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목마름들을 주시고 해서 수시로 목회자의 마음이 이렇게 눌리고 찢겨지고 터질 듯이 감동으로 가득차고 하는 이러한 변화들이 목회자 자신에게 일어날 때에 그 때에 목회자 자신에게 전해지는 이 그 말씀사역이나 그 영혼을 돌보는 실제적인 지혜들이나 이런 것들이 강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목회자 자신이 거의 눈물도 없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에 복주시고 개인적으로 자신을 인정해주시는 환희도 없고 꾸역꾸역 자기의 자리에서 성실일병도로 자기의 일을 구태의연하게 감당해나가는 이런 것은 이미 그 사람의 심령 자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말하기를 하루에 한번이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이끼가 자기의 입에 낀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역자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루에 한번씩 깊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릴 줄을 모르면 우리 사역에 우리의 영혼에 금방 이끼가 끼게 되는 것이에요. 더군다나 여러분들은 수십년 사역하고 이제 이 여성 목회의 길로 들어가서 사역을 해 나가고 있는데 정말 지금은 어떻게 보면 두 전도사님은 한참 전성기이고 여러분들은 이제 시작하는 입장입니다. 지금 정말 기도의 은혜가 마르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깊은 기도 속에서 그래서 그 자신의 사역과 그 영혼을 기도의 눈물로 부르도록 푹 적실 때, 그 때에 영혼들이 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늘 이야기 하는데 EM바운즈나 혹은 EM바운즈의 기도 시리즈나 아니면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나 그 다음에 또 데이비드 브래이너드의 책들은 거의 자기 책가방 속에 늘 있어서 그래서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새롭게 느끼기 위해서 그래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읽으면서 그러면서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도의 은혜에 깊이 젖어서 자기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은 여러분들이 다른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꼭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내가 건강하라고 자꾸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내 경험에 비춰 보면 건강하지 않을 때 다른 사역은 영향을 덜 받는데, 제일 많이 영향을 받는 사역이 뭐냐 하면 기도사역이에요. 기도는 엄청난 힘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도사역은 건강하지 않으면 기도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건강하지 않으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뭐죠? 수면이에요. 수면. 건강하지 않으면 많은 수면을 요구한다고요.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수면의 시간이 언제에요? 새벽시간이라고. 새벽시간에. 그 새벽시간에 잠을 안 자주면 손이 막 부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주먹을 쥐기가 어렵게 된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건강해야 돼요. 건강하고 그 새벽의 시간에 막 몰두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제는 우리들이 교구 사역에 들어서게 되면 이제는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의 사역은 이제 남성 사역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 여성 사역자로는 그리고 나아가서 단독으로 개척하지 않는 한 이게 마지막 자리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거의 담임 목사와 동일한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능가하는 부담을 가지고 사역을 하되 먼저 기도의 눈물로 자신의 사역에 쭉 비를 뿌려야 됩니다. 그러면 오후부터 나아가서 사역을 할 때, 밭에 비가 와서 촉촉이 갈아놓은 밭에 보슬비가 와가지고 젖어있을 때에는 얼마나 씨를 뿌리기 좋고 씨가 열매를 잘, 그 뿌리가 잘 내딛겠습니까. 정말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의무나 그런 것이 아니라 깊이 기도해야 해요. 특별히 사역을 처음 시작하는 여러분들 중 두 사람에 대해서는 늘 내가 강조하는 것이 그거예요. 이것은 가장 사역에 있어서 기본이에요. 그리고 사역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그거예요. 이번에 수련회 가서도 동역자들 이야기를 가끔 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별로 안 했지만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사역의 축복도 주시지만 사역자 자신의 복을 주십니다. 사역자는 사역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역자 속에 은혜가 남아 있으면 벌판에서도 교회가 서요. 그러나 사역자 자신이 마르기 시작하면 이미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모아주셨어도 그 영혼들을 유지해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여러분들도 사역을 잘 하면서 기도로서 끝까지 지켜오시고 그랬으나 나는 우리 교회 사역을 하면서 그래도 귀하게 보는 사례가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인데, 한번은 그 김용수 전도사가 전도사 때 사실 내가 김용수 전도사를 전도사로 쓸 때, 개인적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 때에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좋을텐데 그러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두어 사람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하여튼 그를 썼죠. 그런데 그리고 제가 중등부를 맡겨 주었습니다. 영적으로 아직 어리고 천방지축이었던 때인데 그래도 중등부를 맡겨 주었습니다. 중등부를 맡겨주고 나니까 이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데 그게 그렇게 만만합니까. 중등부 그 10명 되는 것, 우리가 거의 중등부 10명되는 것 거의 3-4년이 걸렸습니다. 한 3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중등부가 안 되었어요. 그러다가 그것 한 20명 정도 되는 것, 25명 쯤 되는 것 이제 전도사가 맡아서 하는데 그래서 뭐 유년 주일학교에서 하다가 맡았는데 만만하기는 했겠습니까. 회심하지 않은 애들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로 목회자에게 무거운 짐이죠. 그래도 그것을 감당하려고 할 때 많이 기도했죠. 교역자들이 실제로 바빠서 그렇겠지만 저녁때 내려와서 기도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구 사역하는 사람들은 교구 사역하는 대로 바쁘게 밤늦게까지 심방하고 주일학교 하는 사람들은 집이 머니까 또 가고, 교회 안에 사는 그런 분들은 유리점도 있었지만, 이 친구가 내려와서 저녁때마다 기도하면서 영혼들에게 변화를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려니까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제가 그 두 개의 청년교구를 둘로 나눌 때 일인가 셋으로 나눌 때 일인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제가 제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등부 올라간지 1년이 안 되었을 때 중고등부 올라갔는데 청년회 와서 사역하면 어떻겠는가. 누가 그것을 싫다고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 체제 하에서, 그런데 아주 분명하게 자기 의사 표시를 하더라고요. 아직까지는 하나님께서 이 영혼들을 맡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등부 애들은 손에 잘 안 들어왔지만 그래도 중등부의 기틀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고 거기 변화된 것 보다도 자기 자신이 많이 변화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이제 이번에 청년교구 올라온 우리 이성호 전도사인데,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청년 3교구를 만들면서 어떻게 되었냐 하면 4교구를 아니, 지금 교구가 다섯 개인가. 네 개 잖아요. 4교구를 만들면서 임신택 전도사를 보냈습니다. 임신택 전도사는 나이도 어리고 교회에 온 연도로 보나 모든 면으로 볼 때 그렇게 인사가 될 수가 없는 거였죠. 그런데 제가 정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일년 꼭 1년 전이죠. 이성호 전도사를 불러서 그랬습니다. 야, 너는 청년부를 염두해 두지 마라. 너한테는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너는 안 된다. 왜 그러냐. 내가 이 인사에 대해서 너한테 설명할 것은 없겠지만, 벌써 이 인사 있기 전에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넌 안 된다. 왜, 너는 자존심이 상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깊이 만지고 지나가신 흔적이 없다. 너한테 가슴 아픈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목회자인 내가 볼 때에는 사실이다. 그래서 너는 똑똑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어느 부서에 올려다 놔도 평균은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균이 아니라 평균 이하로 시작을 하더라도 무엇인가 영혼의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깊은 십자가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역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너는 역량이 안 된다. 그리고 임신택 전도사를 나중에 올려 보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2년 정도, 길면 3년. 3년 정도 빠르면 2년 정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거기 콱 박혀서 그래서 그 고등부의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과 함께 너는 깊이 씨름하고 괴로워해라. 그러는 가운데 너는 하나님 앞에 변화될 수 있을 거다. 그러면서 돌려 보냈습니다. 사실 그 때 그렇게 돌려 보낼 때 마음이 참 아팠죠. 이성호 전도사를 그렇게 해서 안 볼 사람 같았으면 내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지만 그래도 내가 많이 사랑하고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유용하게 쓸 그릇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하고가서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했죠. 그리고나서 나는 한번 주사위를 던져 본 것입니다. 어떻게 이 형제가 이것을 감당해 나갈까. 고등부를 맡고 나서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참 고맙게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보셨다고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사역을 해 나가는데 우선 이 친구의 사역의 특징은 뭐냐 하면 절대 비교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게 자기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거예요. 그 영혼들이 몇 명 모이지도 않는데 매주 심방을 하는데 열두 명에서 많으면 열다섯 명 까지 심방을 했는데 그 심방의 보고와 수준이 거의 장년 교구의 수준까지 올라온 거예요. 장년 여성교구의 수준까지. 그러면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두 주 많으면 세 주 안에 그 영혼들을 계속 한번씩 만나면서 돌았다는 거예요. 밤이면 항상 심방하는 거예요. 심방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영혼들을 붙들고 못하는 문자 메시지까지 배워가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그 영혼들을 돌본 거예요. 성과를 이야기 하기 전에 사역자는 성과에 의해서 자기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서 내가 아주 깊이 생각을 했어요. 이게 정말 정말 이 청년이 정말 신실하구나. 그러면서 변해가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아할만한 이유가 있어요. 나는 깊이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나서 언제부턴가 나는 항상 그 형제에게 부족한 것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깊이 뼈아프게 몸부림치고 매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되지도 않는 고등부 기도모임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이 그 모임에 은혜를 주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는 우리 애가 거기에 나가니까 그 기도모임을 통해서 변화되는 아들을 보니까 알게 되는 거죠. 거기에서 눈물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그러면서 변화되어 나가는 거예요. 고등부 모든 교사들이 마음을 합해서 전도사님을 서포트 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일단 지도자가 그렇게 영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라고 하는 것. 그리고 나서 우리 아들이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방학 때, 1시에도 자고 2시에도 자는데 6시면 칼같이 일어나서 새벽기도 나가고 개학하고 나니까 학교 안에 기도모임을 만들어서 7시 반이면 걔는 학교에 도착합니다. 8시 반에 수업시작인데 한시간동안 친구들과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일과를 시작해 나갑니다. 그러한 과정을 보면서 이 기도가 얼마나 우리를 바꾸는가. 그래서 일년이 꼭 지났을 때 불러서 그랬습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어떻게 보면 너만 이렇게 힘든 과정을 밟게 해서 올라간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올라가라. 분명히 자네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다. 올라가라. 그리고 청년부로 올려 보낸 것입니다. 잘 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영혼들을 위해서 하루에 몇 명 정도씩 중보하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목회 사역을 하면서 여러분에게 영혼들을 이렇게 위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다 감당을 못하니까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위탁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그 영혼이 여러분 손이 이제 마지막이에요. 여러분들이 몇 명의 영혼을 위해서 중보 하는지 내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600명, 700명 정도의 교인들을 맡겨 주었다면 사실 장례 치루고 돌집, 잔칫집, 사고난 집, 병원, 초상난 집 쫓아다니기도 바쁠 것입니다. 한 800명 정도 되면, 일주일 내내 거의 찰 것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고비용을 들여서 이렇게 소수의 교인들을 맡겨 주었을 때 이 그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커다란 직무중의 하나가 기도의 눈물로 그 영혼들을 위해서 적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그 영혼들을 위해서 중보하는지 묻고 싶어요. 우리 집사람은 정확하게 400명 교인 될 때까지 매일 중보했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렇게 못했습니다. 400명 될 때까지, 그 이후에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400명 될 때까지는 매일 한분씩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며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구를 맡던 사역자이면 담임 목사 사모보다도 나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정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같이 최소한 여러분들이 최소한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루에 50명 이상은 중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보할 수 없는 최저한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며 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찾아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래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여러분들의 교구 안에서의 일어나는 일 중에서 여러분들의 기도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는 거의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벌써 이미 기도 속에서 사역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사역은 그 교구 속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축복스러운 일이 생겨났을 때,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서 벌써 판가름이 납니다. 판가름이 납니다. 어떻게, 기도하고 있을 때 이 의외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많은 것은 그 기도의 사정권 안에 교구의 식구들이 안 들어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누가 뜻밖에도 교회에 나와서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소식이 들릴 때, 아멘.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하던 저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 정상적인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새벽의 시간의 헌신이 여러분들의 사역을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것이에요. 이 교회학교 이 저기 사역자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교회학교 사역자들을 특별 관리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르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미성숙해서는 안 되고, 그리고 단지 그저 교회학교의 한 부서를 맡아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사람 나름이죠.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그것 밖에 없는 줄로 알고 감당해 나가죠. 절대로 그렇게 마치 파트타임으로 와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같은 그러한 태도를 가진 사역자들을 염두해두면서 교구사역을 했다가는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의 축복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아주 현실적으로 돌아가서 절대로 심야에 교회에 있지 말라는 거죠. 아주 매우 특별한 일 이외에는 11시면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11시가 maximum이에요. 그래서 최소한 12시 전에 취침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야지만 새벽시간에 나와야지만 새벽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3시간 정도씩 이렇게 깊이 그 영혼들을 부여안고 씨름하면서 사역을 해야 되는 것이죠. 그러한 상황에서 이제는 무슨 교구 사역을 하면서 새벽기도를 왜 안 나오는 것이냐 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염려들이 거의 해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안 됩니다. 충성스럽게, 그래서 내가 건강해야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심야에 절대 별 가치가 적은 일들을 가지고 심야에 매달려 있으면 안 됩니다. 12시 전에는 반드시 취침하고 6시 정도에는 세락한 마음을 가지고 나와서 매일 사역을 준비하는 기도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이게 기도 사역 시간이라고 생각을 하고 와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편만 되면 모든 편의를 다 제공을 하고 싶어요. 특히 교구 사역자들에게는요.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하고 싶어요.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 하면 충분히 신경쓰지 않고 매달려서 기도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얼마 안 되는 사역의 기간이지만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기도 이상이 없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적이 참 많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무슨 일이 없겠습니까. 자기의 목회 사역이 시험에 드는 때도 있고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는 때도 있고 마음 자체가 까무라져서 어떻게 일어나서 사역을 감당할 용기를 잃어버릴 때도 왜 없겠습니다. 그런 모든 때에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떤 때에는 열심을 내고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고 하는 대도 발이 닳도록 불으트도록 다니는대도 이상하게 영혼들이 자꾸 빠져나가고 그리고 영혼들이 들어오지 않고 그리고 심지어는 이제는 참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던 동역자처럼 생각했던 영혼들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게 결국은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하는 싸인이에요. 그럴 경우에 차라리 저녁 때 일찌감치 사역을 끝내고 단 한주만이라도 이번 주에는 9시 이후에는 사역을 안 잡는다고 그리고 9시 전까지는 9시 반, 늦어도 9시 반까지는 내 모든 사역을 마무리 한다. 그래서 다 끝내고 그리고 밤 시간에 오히려 한시간씩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 청년사역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한번 경험했습니다. 영혼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잘하려고 애를 쓰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렇게 힘들게 하고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은 애들인데도 마음에 토라져서 이상하게 아주 괴상하게 굳어져 가는 거죠. 점심도 저녁도 사주고 불러다가 야단도 치고 기도도 해주고 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 때 비로소 깨달았던 비결이 뭐냐 하면 기도가 그 영혼들을 바꿔 놓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름을 적어 놓고 한 사람을 위해 30분씩 매일 이침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평상시 드리는 그 새벽기도와는 별개로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영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에 오히려 연락을 다 끊고 매달려 기도만 했는데 마음 깊이 변화되어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바로 기도가 갖고 있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래서 사역이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것 같고, 어려움에 처한 것 같은 때는 오히려 일을 자꾸 벌리지 말고 어느 시점까지 조정을 해서 딱 끊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바꿔 주시도록 목회의 상황에 하나님이 변화를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하나님 앞에 승부를 거는 거죠. 그러한 기도 생활이 없이는 우리들의 사역을 감당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것이 필요합니다.
대전에 장로교의 교단은 아니지만, 제가 십 한 삼사년 전에 아마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십 한 사년전 이야기입니다. 아니다. 85년도 이니까 17년전 일입니다. 거기에서 어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여자 목사님인데, 그 때 71세 잡수신 분이셨습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거기 목회자분들이 모이는 곳에 와서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우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3천 명 교회를 목회하는 분이셨습니다. 여성이 그래서 그 목회의 비결이 뭡니까, 그리고 물어보았더니 그 옆에 있던 교회에서 같이 목사님을 모시고 남자 전도사가 대답하기를 우리 목사님은 하루에 네 시간 기도하고 네 시간 성경 본 후에 남는 시간으로 사역하십니다. 여성이 3천명 목회한다. 아마 그분 말고는 못 본 것 같아요. 교회로서는 단일 교회로서는, 그러니까 네 시간을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는 것이 네 시간을 성경 읽고 그러면 4시부터 시작해서 12시에 끝나죠. 그리고 점심 먹고 사역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역이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 모든 사역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도의 응답이 아닌 것처럼 이 기도의 이 외형을 넓혀가야 해요. 그런데 이것은 어떠한 원리가 있냐 하면 좁히면 좁힐수록 계속 좁아져서 마지막에는 기도할 게 거의 없고 이것을 넓히면 넓힐수록 얼마나 기도할 제목이 많은지 해도해도 기도의 제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맡겨진 영혼과 결석한 영혼들까지 하면 여러분들이 160명, 180명 정도 된다고 보는데 그것은 얼마 아니지만, 우리들이 실제로 중보해야 할 사람은 그 숫자보다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습니다. 거기에 딸린 가족들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또 많은 사람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맡고 있는 부서와 관련된 사람들, 비롯해서 동역자들까지 합치면 굉장히 많고 그들의 기도제목이라고 하는 것은 외형을 넓혀 갈수록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그 기도속에서 그 영혼들의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깊이 경험하고 뭔가 그들이 고민하고 아파하는 문제에 있어서 앞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정말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다가 하다가 사역이 힘들 때, 그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달려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자 자신을 재물로 받으셔야지만 사역의 화해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구역장들에게 기도를 시키는 것이 유효할 때도 있고 또 양 떼들에게 기도를 시키고 기도의 표를 만들고 그리고 기도회를 조성하고 기도플랜을 짜서 그렇게 매달리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역을 힘을 받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뭘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원하신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깊이 엎어져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기도할 때 주님이 다시금 자신의 사역속에 축복을 열어주시는 것들을 우리들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정신으로 목회 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