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 세미나
녹취자:이병두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 두 번째 강의는 복잡하게 이론적인 것도 아니고, 장황하게 긴 논문 같은 강의안이 담긴 것도 아니지만, 제가 열린교회 십 몇 년 동안 개척해서 지내오는 동안에 절실하게 느낀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깊이 이것을 가슴을 새기고 신앙생활을 하셔야지만 될 것이고, 이것이 나머지 모든 제직으로서의 삶의 뿌리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잘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교회는 이제껏 십 몇 년 동안 제가 목회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서 지나갔지만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지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회심해서 사실상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우리교회 와서 처음 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오래도록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하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막 감격을 합니다. 여러분 서점에 가보시면 알지만 주먹만 한 그 서점에서 일 년에 매출이 2억 원어치 넘게 책이 팔립니다. 여러분 일반 서점에서도 2억 원 정도 책이 팔리면 굉장히 큰 서점입니다. 일 년에 2억 4천만 원 팔립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도들이 사지 않으면 누가 그 구석에 있는 곳까지 와서 책을 사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성도들 중에 은혜 받은 사람 집에 가보면, 책, 테이프 이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와서 은혜를 받을 때에는 ‘자기가 이제껏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못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면서 살기는 싫어하는 부패한 본성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굶주리고 아주 곤고하다가 이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주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좋은 성도들을 많이 만나게 되니까 그때는 마음이 많이 업되어서 ‘이야! 진짜 신앙생활의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내가 진짜 믿음 생활을 좀 제대로 해야 되겠구나!’ 하는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예배, 설교, 구역예배, 성경읽기, 봉사하는 것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 옛날에 연애할 때 경험을 보면, 우리가 사랑한 사람이 한 사람이지 않습니다. 연애할 때 동시에 서너 사람 사랑하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한사람을 사랑을 했을 뿐인데, 그 사람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내 인생, 미래, 가족, 돈에 대한 생각, 진로에 대한 생각, 모두가 그 사랑에 전부 다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포기했던 사람도 사랑을 받으면 다시 살 소망을 갖게 되고, 낙심했던 사람도 다시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제가 너무 바빠서 지금 원고를 벌써 넘겨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붙들고 있는 것이 ‘싫증’이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권하고 싶은 것입니다. 2004년 가을 사경회 때 ‘성화와 싫증’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했습니다. 그것을 한번 서점에서 강의안을 구하고, 테이프나 MP3를 구입하십시오. 아마 있을 것입니다. 사서 옆에다 강의안을 놓고, 찬찬히 설교를 들으면서 정리를 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마 여러분들의 마음이 해부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나중에 영혼이 싫증에 빠지게 되면, 육체를 향하게 되면서 하나님께는 게을러지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야! 빨리 좀 나와!” 그러면 “그래” 하고 달려가지만 그 사람이 싫어졌으면, “야! 빨리 좀 나와” 그러면 “아씨, 추운데 왜 나오래? 볼일 있으면 네가 와!”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작별을 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의무가 가볍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고 싫증이 나면 모든 가벼운 의무도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교회는 나름대로 올바르게 하려고 애를 쓰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아마 여러분들 중에 ‘모든 방면에 있어서 교회가 올바르게 갈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없습니다.
(예화) 스펄젼 목사님한테 어는 형제가 찾아와서 그랬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 세상의 교회들은 다 썩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진짜 온전한 교회를 다니고 싶은데, 목사님! 혹시 그런 교회 아는 곳이 있으면 저를 좀 소개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스펄전 목사님이 “그런 교회가 없죠. 그런데 혹시 그런 교회를 만나면 당신은 절대 그 교회에 가지 마세요!” 하니까 이 사람이 “아! 내가 그렇게 찾는데 그런 교회를 찾으면 가야지 왜 나보고 가지 말라고 그럽니까?” 목사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런 교회는 없지만, 혹시 완전한 교회가 있다면 당신이 그 교회에 들어가는 즉시 그 교회는 불완전해지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가지 마세요.”
우리교회만 그렇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서 더 온전해지려고 애를 쓰는 교회입니다. 언젠가 신학대학원에서 어는 교수님이 저를 만나서 직접이야기 했습니다. 입학시험에서 저희가 20명의 학생을 면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11명의 학생이 “당신이 이 다음에 교회를 하면 모델로 삼는 교회가 어디냐?” 했더니, ‘열린교회“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 깊이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교회는 우선 재정적인 면에 있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온전해 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열린교회에 있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껴도 전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선 우리교회는 재정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투명을 기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우리교회가 공인회계사 감사를 받은 것 아십니까? 우리교회는 매년 공인회계사 사무실에 감사를 받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물론 감사 위원회가 있습니다. 감사위원회에서 철저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못미더워서 일 년에 한 번씩 전체를 공인회계사 사무실에서 나와서 감사를 합니다. 이번 공동의회때 저한테 감사 보고서 온 것을 보니까 꽤 여러 가지를 지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영수증이 없는 지출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점에 있어서는 교회를 믿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교회에 부자가 없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한 달에 500만원씩 십일조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500만원은 아니라도 한 100만원, 200만원 하는 분들은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안보이지만, 없습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좀 섭섭합니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교육관을 수리를 해야 되는데 어떻하나?” “아이, 목사님 그런거 있으면 진작 저한테 말씀하시죠? 그거 뭐 3억밖에 안되는데, 제가 해드리죠!” 이런 사람이 한 10명만 있어도 돌아가면서 하면 성도들이 힘이 훨씬 덜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무슨 섭리인지 교회 개척하면서 이때까지 한 번도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옛날에 그런 사람들이 오긴 왔었습니다. 회장이고 큰 사업도 하고 그러는 사람들도 왔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전직입니다. 옛날에 그랬던 사람 요즘은 교회에서 구제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가 전직 말고 현직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린공간에서 커피마시고, 빵 사먹습니다. 에누리 없이 부가세 신고 하고 세무서에 세금을 납부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세무서에 신고해서 월급에서 원천징수 하고, 전부 세금 내는 교회입니다. 교역자는 세법상 근로자가 아닙니다. 성직자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근로자는 아니지만 일을 하고 돈을 받기 때문에 세금을 안내는 것을 법이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신앙적으로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세무서 신고할 때 1월 달부터 에누리 없이 모든 교역자들이 세금을 냅니다. 연봉을 올려줬는데 월급이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까지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교회가 말씀만 고색창연하게 선포하고, 삶은 전혀 그것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그런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라고 이야기는 안하지만 우리교회 장로님들 가운데 에누리 없이 세금을 내는 사람들 여러 명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하면서 철저하게 세금내면 우리나라에서 안 된다는 거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씀의 은혜를 받고 고생을 해도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교회 모두는 아니지만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인데,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는 이 예배당이 36억을 달라고 하던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엄청나게 올랐지만 그 당시에는 36억을 달라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흥정이라는 것이 36억 달라고 하면, 우린 얼마쯤 준다고 그러겠습니까? “그럼, 3억만 깎읍시다.” 그렇게 해서 34억쯤 해서 흥정이 되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습니까? 땅주인은 36억을 달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39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36억 달라는 땅을 39억을 주고 산 전설이 있는 땅입니다. 그러면 그때 돈이 많았느냐? 그 3억 어쩌면 아직도 못 갚았을지 모릅니다. 그때도 교회에 빚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도 성도들이 20억 정도 헌금을 한 상태에서 80억짜리 프로젝트를 하고, 그것이 끝나기 전에 이 교육관 80억짜리 프로젝트를 또 했으니까 그것이 엄청난 고생이었습니다. 그럼 왜 바보같이 36억 달라는 것을 39억 주었느냐 하면, 36억을 주는 대신 30억으로 거래를 하고 6억은 비자금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왜? 세금이 엄청나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세금이 얼마냐고 하니까 3억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차라리 3억을 더 주겠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등록한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이천팔백명 정도 출석한다고 봐야 됩니다. 거기서 한 300명 정도가 일이 있어서 출장가거나 결석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아직도 영수증 없이는 10원을 안 씁니다. 거래되는 모든 물건 대금들은 돈으로 교회에서 지급해주는 법이 없고, 전부다 온라인 뱅킹으로 합니다. 하다못해 의자 하나가 들어와도 그 회사로 직접 입금을 시켜줍니다.
또 세례를 우리교회가 주지 않습니까? 세례도 우리가 100% 분류할 수 없지만, 장로들과 목사들이 심사해서 거듭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례를 안줍니다. 거듭났어도 문답 외우지 않으면 절대 세례를 안줍니다. 여러분 이번에 180명 제직되시는데 여러분 모두 교리문답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양목사님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교회입니다. 물론 완전하지 않고, 아직도 교회를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면 어두운 구석이 많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봐도 모자라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온전해지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고, 무엇에 있어서도 흠잡히지 않을 교회가 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많은 희생을 강조합니다.
지난주에도 몇 천만 원 어치 물건을 샀는데, 우리나라 사회가 참 재미있습니다. “이거 얼마에요?” “500만원인데요.” “예, 알았습니다. 세금 계산서 끊어주세요.” “그러면, 550만원 내세요!” 50만원 더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 소득세까지 들어가야 되니까, “560만원을 내셔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속여 먹었습니까? 500만원 주고 물건 사고, 500만원 통장에 넣어줬는데, 그러면 거기서 영수증 끊어주고 우리가 보관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양심에 꺼릴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탈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체의 세금 계산서를 받습니다. 그럼 세금 계산서 그것을 거기다 철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 세금을 우리들이 대신 내주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500만원이면 들어올 것을 560만원주고 사는데, 그것을 남이 하면 “당연하지! 그렇게 살아야지. 예수 믿는 사람이!”이렇게 말하지만, 자기주머니에서 나갈 때는 그것이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달달달 떨리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는 교회입니다. 공인회계사가 감사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교인도 아니고, 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물론 몇 년 감사했으니까 서로 얼굴은 압니다. 우리 교인도 아니고 불신자입니다. 교회에 와서 두 번짼가 감사할 때 저보고 “목사님! 정말 자기는 교회 안다니지만, 이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주식회사보다 훨씬 잘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지적 사항은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교회입니다.
아이들도 철저하게 가르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있을 때는 그런 모든 것들이 귀해 보이고, 내가 이 교회에 한지체가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작용을 하지만 신앙이 식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지루해지고, 교회의 단점들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 아침도 교회에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아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고 교회를 사랑할 때에는 교회를 존중하지만, 자기 마음에 안들고 수틀리면 그냥 아무렇게나 막하기를 마치 직장 다니다가 집어치울 때 자기에게 상처준 직장에 대해서 하는 그런 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이렇게 막돼먹은 우리의 인간성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지만 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시대의 풍조처럼 광범위하게 번졌습니다. 그러니 우리같이 불안전한 사람이 보기에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바라 보실 때는 얼마나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습니까?
이제 여러분 가운데는 아주 은혜롭게 멀리 이사 오거나 혹은 외국에서 오거나 지방에서 서울로 취업을 하거나 해서 지난 교회에 아주 은혜롭게 관계를 마치고 이교회에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처음 예수를 믿게 되었기 때문에 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여러분들 중에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또 어떤 분들은 전에 있던 교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고통 가운데 기도 하다가 우리교회에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하실 일들은 마음속에서 그 교회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교회를 옮기거나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편이 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사람 다 버려도 나는 나를 안 버리지 않습니까? 나는 내편이라 이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해보면 그런 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쌍방의 모든 일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울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제가 1,100명 쯤 될 때까지는 등록한 사람들 모두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하는데 어는 교인이 교회에서 교인들이 투표를 해줘서 평신도 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교회로 왔습니까?” 그랬더니 “너무 비인격적이고 야비해서 제가 교회를 고통 가운데 옮겼고, 제가 요새 하나님의 말씀을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생애적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럽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제가 잘 안 물어보는데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투표를 해서 당선이 됐는데 담임목사님이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아무개 집사! 이제 당신은 평신도로 올라가는 최고의 직분을 받았는데, 이게 얼마나 기쁜 날이야! 그지.” 그러면서 봉투를 하나 꺼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백지를 주면서 “써봐!”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이게 뭡니까?” “주님의 은혜 감사하니까 당연히 헌금해야지!” 그래서 썼다고 합니다. 얼마를 썼다고는 저한데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탁 보더니 “이러면 안 되지!”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쭈욱 찢어서 쓰레기통에 내버렸습니다. “일주일 기도하고 와서 다시 쓰거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와서 다시 썼더니 또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어떻게 목회자가 교회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저도 분노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헌금이든지 뭐든지 인격적인 것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오면서도 우리 집사람하고 “야! 진짜 교회가 왜 이렇게 비인격적일까?”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교회에서 생애적인 은혜를 받고, 정확하게 5년 뒤에 교회를 떠났는데, 교회 건축헌금 떼먹고 떠났습니다. 정확하게 액수까지 제가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 목사님도 잘못했지만 얼마를 썼다고 끝까지 나한테 안 가르쳐준 것 보니까,’ 가만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교역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혼자서 어렵게 어렵게 고학을 해서 명문대학을 나오고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가 돈 없으면 못산다는 사상이 뼛속깊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심어주신 것은 다 좋은 것이고, 주님이 안 심어주신 것은 자기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아무리 도움이 되도 그것은 반드시 신앙과 언젠가는 충돌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면서 제가 항상 성도들에게 “목사님!” 그러면 제가 “지난 교회이야기는 하지마라! 하지 말고, 우리 모두 과거를 묻지 말고, 지금 이교회에 왔으니 깊이 은혜를 받고 과거의 그대도 보고, 오늘날의 그대도 보고, 그렇게 해서 주님 닮도록 고쳐 가면 되지 않겠냐?”라고 말입니다. 하나하나를 교회나 목회자가 누가 잘했고 잘못했든지 간에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그 영혼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이 마음이 많이 상한 가운데 교회를 옮겼다면, 아직까지는 여러분들이 그냥 등록된 상태니까 제직임명을 받고, 한번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 하지 말고, 가서 싸우지 말고, 내가 잘했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목사님!” 그러면서, 그 교회에 찾아뵙고 “제가 만족스럽게 교회를 섬기지 못하다가 떠나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인도로 하나님께서 저를 새로운 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믿음 생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풀면 최고이고, 그것이 도저히 안 되면, 친절하게 진심해서 우러나오는 편지라도 써서 마음속에 맺혀있는 것들을 풀고 이 교회에 제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모두 하고 싶은데, 요즘 세상에 번거로우니까 투표해서 된 향존직들은 제가 반드시 이명증서를 떼어오게 합니다. 그 교회에서 장로로 세우고 권사, 안수집사 등으로 세운 사람인데 떠나올 때에 사연이야 있었겠지만, 그 교회로서도 많이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누가 잘한 것, 잘못 한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가서 그 증서를 떼면서 교회와 화해하고 목회자와 화해하고 새롭게 출발할 때, 비로소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 내가 이제 A교회를 떠나서, B교회를 떠나서, 열린교회 식구가 되었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직이 되면 그런 모든 일에 있어서 구김이 없이 하나님 앞에 새 출발을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직의 영적생활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아픈 기억이 있어도 모두 용서하십시오. 용서하고 깊이 마음으로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런 모든 자기성숙의 과정을 통해서 ‘아! 교회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 제직이 되기 위해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이라든지,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 ‘성도의 공동 생활’ 이 세 시리즈들을 들었거나 이미 읽었거나 공부했거나 그랬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공부들을 해나가면서 말씀에 입각한 교회관을 가져야만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가정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정의 모든 일들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 집에서 호적을 파서 다른 집으로 쉽게 옮길 수 없는 것 같이 적어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젊었을 때에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은 그래도 좀 보기가 낫습니다. 좋진 않지만 결혼도 하게 되고, 이사도 가게 되고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정해진 교회 없이, 아끼는 목회자 없이 그렇게 이리 저리 유리하고 방황하게 될 때, 그 영적인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때도 오십이 됐는데, 직업을 구하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면, 어떤 의미에서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 그 정도 나이 되면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주님이 자기에게 일생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열매를 맺어야 될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서 ‘에이씨! 신앙생활도 힘들고 내년에 또 가버리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신앙생활하면 6개월 만에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소 잡아먹은 귀신처럼 엎드려 있는 교회 생활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그렇게 해야 되겠다. 오늘 듣고 보니까 목사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진짜 그런 면이 있겠구나!’하고 고개를 끄떡거리며 여러분들이 동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몸은 생각의 동의에 움직여주는 그런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영적생활입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는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육체는 이 땅의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생기 있게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해도 일주일만 금식하면 이런 목소리가 안 나옵니다. 사십일만 하면 아마 여기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육체는 한순간도 쉼 없이 이 세상의 자원을 쓰면서 육체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그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우리의 영혼도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육체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을 위해서는 많이 신경 씁니다. 여러분들이 일주일 동안에도 몸부림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애를 쓰는 많은 이유가 이 몸뚱이 하나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돈 벌어서 구제하려고 직장 다니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시고, ‘벌어서 선교하면 되지! 뭐 날 위해서 쓰느냐!’ 하는 사람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먹고 쓰고 남는 것 가지고 구제하고 선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모자라니까 우리 아들, 우리 딸, 우리새끼, 우리 마누라 이렇게 생각하면서 결국 인간의 욕망은 증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는 동안에 결국, 영혼이 어떠한가에 의해서 육체는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영혼의 통장에 얼마만한 자원이 비축되어 있는지 점검은 하고 있습니까? ‘우리 아들의 영혼, 우리 딸 회심 안했는데, 우리 엄마 지옥가면 어떻하나? 우리 아버지가 요사이 왜 은혜가 떨어지셨을까?’ 이런 것 가지고 고민을 해야 정상이 아닙니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영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교회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다양한 교회는 아닙니다. 뷔페식으로 차려 놓은 교회는 아닙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교회에서 만들고 여러분들을 세상말로 아무리 뺑뺑이를 돌려도 그것 가지고 여러분들의 영혼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교역자들은 우리교회에서 전부 다 있은지 오래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번 오면 안 나갑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전도사님 두 분중 한 분은 12년이 되었고, 한 분은 16년 되셨습니다. 여전도사님이 저하고 함께 개척을 했습니다. 주목사님 이번에 나갔는데 십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여기 이성훈 목사님도 십년 넘었습니다. 여러분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단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한국 교회 어디를 가더라도 저만한 부목사들과 전도사님 밑에서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분명하게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 제 제자들입니다. 맨 처음 여기 와서 목회하려고 온 사람은 이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평신도로 와서 은혜를 받고 집사였다가 신학교가고, 청년이었다가 신학교 가고, 그렇게 해서 교역자가 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교회를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교회생활 하면서 어쩌면 교회가 목사님 설교하는 것이나 여전도사님이 심방하거나, 부목사님이 와서 행사 때 전해주는 이야기나 성경공부때 가르쳐주는 것이나 전체적으로 그 맥이 같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통일성입니다.
이런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장점으로 주어져도 하나가 없으면 뿌리를 잘린 나무와 같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경건생활입니다. 그래서 한때 은혜를 많이 받고 그렇게 펄펄 날았던 사람들이 부패하고 조금 전에 말씀 드린 사람처럼 그렇게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건축헌금 안내고 간 분이 그분 한분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샘플 케이스로 그분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 어마어마하게 감동적인 헌금을 하고 실망스럽게 한 푼도 안내고 가신 분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그런데 ‘한 때는 그렇게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왜 그럴까?’ 깊이 캐어보면 딱 두 가지입니다. 예배시간에 은혜를 못 받고 개인적으로 기도 안하고 성경 안 읽으니까 그것에 의해서 뿌리가 마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한 것입니다.
저 충청도 지방 같은데 가면, 어른이 한 세 명이 매달릴 정도로 큰 느티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런 나무들은 하루에 열두 드럼의 물을 먹는다고 합니다. 봄에 나무에 귀를 이렇게 청진기를 대고 들어보면 ‘쭈쭈욱 쭈주죽’ 물빨아 먹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이 일로도 봉사하고, 저 일로도 봉사하고, 가정에 가서 좀 더 좋은 아내와 남편이 되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섬길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의 싫증이 와서 말씀의 은혜를 못 받고, 말씀의 은혜를 못 받으니까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지만, 필요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육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충분히 있을 때는 하나님 앞에 매달릴 필요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짐승과 같은 신앙생활입니다. 개, 돼지는 두드려 맞아야지만 자기 위치를 찾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실 때 그런 개 돼지와 같은 삶을 살던 우리를 이제는 당신의 사랑 안에서 교제하는 사람으로 불러주셨는데, 인격적인 관계가 성립되려면 통로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 사람하고 나는 인격적으로 관계가 돼! 우리 애들은 인격적으로 다 이야기가 돼!’ 그럼 무엇입니까? 부모가 이야기할 때 듣고, 자기가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심통 부리거나 물건 집어던지거나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자기 사정을 전달을 해서 부모에게 용납을 받는 것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오해나 폭력이 없는 상태가 인격적인 상태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할때 마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여러분의 머릿속을 안개로 가득 채워서 말씀의 선명한 빛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 보면 이 세상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에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가로막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사단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우리교회도 보면 마음이 옛날 같지 않아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태도들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 흐려졌습니다. 늦게 오는 사람 맨날 늦게 오고, 그저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 졸다가 성경 떨어뜨리는 사람, 핸드폰 울리는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다른데서 은혜를 받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메인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무엇보다도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의지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효도와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아서 미리 행동하는 것이 효도이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통해서 말씀을 전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애적으로 은혜를 받고 기뻐하던 사람들이 영혼에 싫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마음이 갈리기 시작하고 염려와 근심과 걱정 불만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예배시간에 은혜를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도 예배시간에 은혜가 사라지면, 그 기도의 열렬함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도가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드물지만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막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는데 기도에 게으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면 마치 젖은 나무 쌓아놓고 불 피워 놓은 것과 비슷합니다. 계속 성냥불을 켜대서 불은 일어나는데 불이 붙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금은 그렇게까지 강조를 못하지만 여기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봄에 심방을 하면서, 이사 오라는 것이 권면이었습니다. 그래서 봄 심방하고 나면 한 이십여 가정 이사 오고, 그 다음 심방하고 나면 오십여 가정이 이사 왔습니다. 그때는 거기가 방배동이니까 거의 선교지에 가는 마음으로 집을 옮겨야지만 이사를 올 수 있었습니다. 변두리에서 방 4개 쓰던 그 돈으로 방배동 오면 두 개밖에 못 얻습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교회 가까이 사는 성도들은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 새벽기도 나올 수 있고, 직장에서 오다가다 교회에 들려서 기도할 수 있고...”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감격합니다. 그리고 이제 기도 많이 하고 이사를 옵니다. 그러다 몇 달 지나고 나면 저한테 혼납니다. “방빼!” 왜 그랬겠습니까? 멀리 있을 때는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고, 남의 교회 새벽기도 가서 졸면서 ‘이 교회가 우리교회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하나님이 모든 환경을 열어주시니까 그 다음에는 대적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올 때 지각하는 사람이 다 교회 근처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산, 평택, 이천, 이런데서 오는 사람들은 지각 안합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대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까이 이사 왔다면 여러분들이 새벽기도에 헌신을 해보십시오. 사실은 새벽 기도를 헌신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도 작정을 해야 되겠네요?” 작정을 해야 합니다. “그럼, 목사님! 얼마나 작정을 할까요? 한 일 년 할까요?” 그러지 말고, 생명이 있는 날 동안 죽을 때까지 일 년에 한번 하려면 몇 십번 작정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냥 어느 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약속하기를 ‘하나님! 제가 똥 싸고 오줌 받아내고 걸어서 교회갈 수 있는 동안에는 제가 새벽기도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들이 자기처럼 기도하든지 말든지 곤고할 때나 충만할 때나 시험에 들었을 때나 상관없이 교회 나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예배시간에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고, 두 번째는 철저하게 기도생활 하되, 이 기도생활은 규칙이 있어야 됩니다. 새벽에 기도할 것인지, 아이들 학교 다 보내놓고 10시 반부터 11반 사이에 기도할 것인지, 그때는 전화코드 빼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 나와서 기도하든지 아니면 밤 시간에 기도할 것인지 정해야 됩니다. 그냥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서 하다 보면 결국 다른 일에 모두 밀려서 기도를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성경 읽고, 설교는 반드시 재독을 해야 됩니다. 주일에 여러분들이 깨달았어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시 설교를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한 5년 전에 열린교회가 앙케이트를 냈을 때 전교인의 66%가 매주 설교 테이프를 하나씩 듣는다고 앙케이트에 응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설교들은 몇 년 안에 반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여러분들을 붙들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14년 동안 들어야 될 그 설교 목록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서 들으십시오. 생활이 어려워서 살 수 없으면 도서관에 가면 무료로 대여해 줍니다. 그것을 갖다가 항상 들으십시오. 우리 집사람 같은 경우에는 다리미질 할 때나, 청소할 때 고추 같은 것 다듬거나 아니면 고구마순 껍데기 까거나 그럴 때 한없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때 설교를 틀어놓고 설거지 하고 일하면서 주욱 섭취하는 것입니다.
(찬송)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에 푹 잠겨야 됩니다. 그냥 설교 들으면서 “어이구, 은혜 받았다.” “어이구! 무슨 은혜 받았습니다?” “많이 받았지!” “뭐 받았는데?” “뭔지 모르지만 하여튼 좋아!” “거 뭔지 알아야지” “에이 이 사람아! 콩나물에 물있는거 봤어! 그러면서 자라는 거지”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정리된 채로 이 머리 안에 탁 남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화) 최근에 우리교회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한다리 건너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가르쳐 줬다고 합니다. 우리교회의 교인이었는데 여긴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아이가 “야! 천국이 그렇게 좋은 거구나! 아! 나 우리 엄마보고 천국 보내 달라 그래야지.”라고 불신자 아이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열린교회 다니는 6살짜리 아이가 “야! 천국은 엄마 아빠가 보내주는게 아니야. 돈 많아도 못가고, 공부 많아도 못가, 네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야지만 천국에 갈수 있는 거야!” 이것이 개혁파 정통주의입니다. 옆에 있는 6살짜리 아이가 “근데 있지? 우리교회에서 그러는데 나는 아직 어려서 구원 못 받는데?” 구원파 교회의 교인입니다. 아이들도 이렇게 신학적인 입장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개혁파 4살 먹은 남자아이하고 여자아이 둘이서 몇 년 전에 복도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야, 뭐 어쩌고저쩌고 둘이서 싸우다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한테 물어보는 것입니다. “야!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는지 알어?” 4, 5살짜리 여자아이가 “야! 네가 잘못했잖아, 네가 나쁜짓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싸우는 거야.” 그러니까 그 남자아이가 “아니야, 우리가 왜 싸우냐하면 우리 안에 시커먼게 많아서 싸우는 거야!” 이것이 전적 타락의 교리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교리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됩니다. 우선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제가 쓴 책이라도 우선 급한 대로 빨리 읽으십시오. 한 50권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쉬운 책부터 시작을 해서 부지런히 줄치면서 읽으면 3년이면 읽지 않겠습니까? 부지런히 읽으면 2년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이 기독교 신앙의 지식을 쌓아올리는데, 이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이 사상과 정리된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게 붙잡혀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천에 있는 신천지 이단이 안양의 모든 교회를 초토화 시켰어도 열린교회는 거의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예배에서 감격하고 일주일 동안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앉아있는 의자 하나, 모두 여러분들을 포함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헌신의 터위에 우리가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화요 여리고 전도’ 꼭 나오십시오. 직장 다니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냥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열린교회 나와서 한 달만 따라 다녀보십시오. 적성에 안 맞으면 병원전도에 가보십시오. 막 죽어가는 말기 암 환자들 병수발 들고, 똥오줌을 한번 받아내 보십시오. 주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거기 계셨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성경의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애쓰며 노력할 때 조금도 이 교회에서 내가 손님이라는 생각이 안들고 ‘이곳이 나의 영혼의 고향이고, 나의 영적인 가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들이 은혜 많이 받고, 신앙생활해서 김남준 목사가 하늘나라 갔다고 할때 장례 예배식장에서 만날 사람들이 많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