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반 12주차
녹취자 : 조원정
28과로 들어가겠습니다. 육체적 죽음과 사후의 상태, 육체적 죽음은 영혼의 죽음과 구별해 말하고 있으며 육체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육체적 죽음은 결코 멸절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의 분리에 의한 육체적 생명의 종결인 것이다. 펠라기우스파와 소기노파는 인간이 죽어야 할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지만 이 견해는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입니다. 육체가 잠시 영혼과 헤어지지만 결국 다시 만납니다. 믿는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불신자들도 육체와 영혼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성경은 죽음이 죄의 결과요 죄의 형벌이라고 가르쳐 준다. 죽음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자연적 과정이라고 보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공포와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신적 진노의 표현이며 하나의 심판이며 정죄이며 저주이다.
그러나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이며 신자가 죄책에서 구속받았다고 한다면 왜 신자들이 아직도 죽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지만 죽음이 신자들에게는 형벌이 아니라 성화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성도의 죄에 대한 죽음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다.
중간상태, 인간의 죽음과 그 후 일반적 부활 사이의 중간 상태에 관한 견해는 상당히 다양하다. 그러므로 그중 중요한 이론들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스올-하데스의 현대적 개념
스올은 음부라는 말에 대한 구약 히브리어 원어이고 하데스는 음부라는 말에 대한 희랍어, 그리스어 원어입니다. 이 개념은 현대에 상당히 성행하는 개념으로서 경건한 자나 악한 자나 누구든지 죽은 후에는 구약에서 스올이라고 부르며 신약에서는 하데스라고 부르는 중간지대에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 곳은 보상이나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모든 자의 동일한 운명의 장소이며 지상생활의 약화된 반영에 불과한 음침한 장소이며 생활의 흥미를 잃고 삶의 희열이 슬픔으로 변해가는 약화된 인식과 침체된 무능력의 장소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거의 성경적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스올과 하데스란 말이 항상 경건한 자와 악인이 함께 내려가는 장소를 의미한다면 그 곳에 내려가는 것을 악한 자들을 향한 경고로서 어떻게 지지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님의 진노가 스올에서 불붙고 있는 것으로 성경은 어떻게 경고할 수 있었겠는가.
부자는 하데스에서 그의 눈을 들어 쳐다보면서 자기가 있는 곳을 고통 하는 곳이라고 했다. 스올과 하데스란 말은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가끔 무덤으로 어떤 때는 죽음의 상태나 조건으로 또 어떤 때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의미되었다.
연옥, 선조림보, 유아림보
연옥, 로마교회에 의하면, 죽을 때 완전한 자들의 영혼은 즉시 천당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것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거의 순교자, 감히 우러러 볼 수 없을 정도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이외에는, 우리가 그렇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카톨릭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은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자의 영혼은 연옥이라 불리우는 정화의 장소에 들어간다고 한다. 거기서 얼마나 많이 머물러 있느냐는 사람마다 다른데 경건한 친구들과 친척의 기도, 그를 위해서 선행을 베풀면 기간이 단축되어서 빨리 갈 수 있고, 천주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개신교에서 해주는 것보다 더 열렬하게 기도를 해 줍니다. 그때 기도를 열심히 해 주어야지만 지옥으로 떨어질 영혼들을 연옥으로도 가고 연옥으로 떨어질 영혼들은 천국으로도 간다고 생각해서 열렬하게 기도를 해 줍니다. 사실 웃깁니다. 연옥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천주교에서 하는 것 보면 마리아여 도와주소서. 하면서 시성된 성인들의 이름을 막 부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훌륭해서 천국으로 쑥 들어간 사람은 자기를 구원하고도 공로가 남습니다. 잉여공로라고 합니다. 천국을 공로로 들어간다고 봅니다. 그러면 마리아 같은 사람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는 것입니다. 워낙 신에 가까울 정도니까 너무 많은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 같은 사람도 자기를 구원하고도 충분히 남을만한 그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는 것을 자기한테 좀 달라는 것입니다. 이해됩니까? 이해는 되는데 말은 안 됩니다. 자꾸 성인들의 이름을 열렬히 부르고 그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마리아여 우리를 도우소서. 심지어 마르틴 루터는 벼락을 맞아서 옆에 친구가 타 죽으니까 안나여 나를 도와주소서. 하는데 안나는 누구인가 하면 마리아의 엄마입니다. 그 여자도 대단한 여자이기 때문에 공로가 남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 교리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 교리 자체가 어마어마한 헌금의 요인이 됩니다.
여러분 면죄부 판매 압니다. 돈을 집어넣으면 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서 고통 받는 너의 아버지 네 엄마의 영혼이 천국 간다. 어떻게 그 황당한 얘기를 들을까?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그것이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입니다. 면죄부 판매 사건에서 너무 직설적으로 노골적으로 돈과 연결시켰을 뿐이지 원래 있었던 사상입니다. 두 번째는 유럽에서 당시 제일 순박하던 사람들, 좋게 얘기하면 순박한 사람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아주 촌스러운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독일 사람입니다. 다른데 가서 그런 얘기하면 듣지도 않았을 텐데 농사나 짓고 사는 시골 순박한 사람들한테 가서 하니까 그 사람들에게 그것이 먹히는 것입니다. 영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돈은 명목 가치와 실제 가치가 일치하는 양화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만원이다 하면 오 만원 금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돈 통에 넣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로마로 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국고가 계속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이 사상은 성경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사상입니다. 그런 것들을 부인하는 것이 연옥의 교리입니다.
선조림보라고 하는데 림보는 무슨 뜻인가 하면 라틴어로 보들 그런 뜻입니다. 보들, 경계라는 말입니다. 선조림보, 선조림보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부터 부활하실 사이에 오셔서 해방시켜 줄 때까지 구약의 성도들이 억류되었던 곳이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야 구원해 주실 텐데 그 사람들은 어디 갔느냐? 선조림보에 있다. 유아 림보는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이 거하는 처소라 한다. 그들은 적극적 형벌을 당하지 않지만 천당의 축복에서 제외되고 아무런 구원의 소망이 없어 거기에 거한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너무 중요시 합니다. 죽기 전에 꼭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아닌 사람도 급하면 세례를 줍니다. 조산원이나 이런 여자들도,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례는 하나의 표이지 세례 자체가 구원을 좌우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어쨌든 잘못 된 교리입니다.
영혼의 수면, 영혼이 죽으면, 영혼이 죽는다는 것이 어쨌든 말이 안 됩니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데 무의식적인 휴식이나 수면상태에 들어간다는 견해는 여러 종파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오늘날의 영국의 어빙파와 미국의 럿셀파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 이 견해는 지성을 떠나서는 인식의 지속성을 믿을 수 없다는 자들에게 하나의 특별한 매혹이 된다.
그들은 죽음이 영혼의 잠이라는 사실과 죽은 자는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적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전자는 단순히 죽은 육체와 잠자는 육체의 유사성 때문에 죽음을 단순히 잠자는 것으로 말한 것이고 후자는 단순히 죽은 자는 현세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없고 현세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뿐이다. 성경은 믿는 자가 사후에 즉시 의식적 생활을 향유하는 것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멸절설과 조건적 영생설, 이 교리에 의하면 악인은 죽은 뒤 의식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멸절설은 인간이 불멸하게 창조되었다 하더라도 죄악 속에 계속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적극적 행동에 의해 불멸성을 박탈당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조건적 영생설에 의하면 인간은 사멸하도록 창조되었지만 믿는 자들만은 그리스도 안에서 불멸의 선물을 받는다고 한다. 악인은 궁극적으로 완전히 멸망하거나 모든 의식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두 경우 모두 마찬가지다.
이러한 교리들은 성경이 영생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죄인들은 죽음과 멸망으로 위협 당한다고 표현한 사실을 근거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죄인들이 계속 존재할 것이며 악인의 형벌의 등급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영혼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천국 가고 아니면 지옥 간다고 배웠는데 이것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들이 최종적으로 들어가는 상태인데 거기서는 육체와 영혼이 만나서 완전히 변화된 다음에 들어가는 곳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만나서 될 우리의 몸은 지금 우리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쉬고 물 한모금만 안 먹으면 며칠 만에 죽고 하는 이런 존재가 어떻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을 우리들이 영화라고 배웁니다.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육체가 없으니까, 그 영혼이 육체의 부활시 까지 기다리는 상태를 중간상태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간상태를 음부와 낙원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은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지옥에 갈 멸망 받을 사람들은 음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음부와 지옥, 낙원과 천국은 어떤 관계에 있느냐? 그것은 우리들이 성경적으로 잘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낙원은 천국의 현관쯤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음부는 지옥의 현관쯤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호텔로 따지자면 로비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육체 없이 영혼만 있는 상태에서도 낙원에 있는 영혼은 천국의 기쁨을 어느 정도 누리고 음부에 있는 영혼은 지옥의 고통을 어느 정도 받는다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모두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해서 다시 낙원에 있던 영혼이 땅에 있는 육체와 만나고 음부에 있던 영혼이 땅에 있는 육체와 만나서 최종적인 심판을 통해서 전자는 천국으로 후자는 지옥으로 던져지는데 이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상태입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그 몸하고 아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고 공간에 매이지 않고 공간을 통과할 수도 있고 지옥에 있는 영혼은 끊임없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기에 적합한 상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에 적합한 상태로 사람들이 변화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천국에 찬란한 빛이 비취면 그 빛을 인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면 그 영광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볼 수 있어야지만 행복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변하된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영혼만 홀로 있는 상태에 구원받을 사람은 낙원에 멸망 받을 사람은 음부에 거기에서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없다. 죽은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여기에서 말하는 확고한 교리입니다.
제 2의 시련, 어떤 학자들은 죄로 죽은 자들이 사호에 그리스도를 영접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누구든지 예수를 알고 영접할 좋은 기회를 제공받지 않고서는 멸망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 깨어라 파수대, 이런 책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단에 속한 문서들입니다. 우리들이 신뢰하면 안 됩니다. 옛날에 이런 것 보셨습니다. 666, 짐승의 표, 유럽공동체, 바코드 등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건전한 개혁신학에서 나온 해석들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 두 번째 기회는 없다. 심지어는 상당히 널리 알려진 목사님들도 요즘은 조금 뜸한데 종말론에 관해서 한창 내가 본 천국, 휴거, 이런 책들 나오면서 한참 회오리바람 불 때 심지어 이런 설교하는 분도 계십니다. 지금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이천년도가 지나고 나면 주님이 오신다. 그때는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순교해야지 구원을 얻는다는 이런 가르침을 공공연히 이야기 합니다. 이런 것들은 온전한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29과 그리스도의 재림
신약은 그리스도의 초림이 있은 후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의 다시 오심을 여러 번 말씀하셨으며 천사도 예수님의 승천시에 그의 재림에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바울 서신에서도 재림에 대하여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재림 전의 대 사건들, 성경에 보면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난다고 했다.
이방인의 부르심, 천국 복음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온 세계에 전해져야만 한다고 성경은 말해준다. 이 구절들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전 국민이 완전히 복음화 되어 복음이야말로 국민생활에 능력이 되며 결산을 촉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심, 여기에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있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와 로마서는 이스라엘의 회심을 말해주는데 특히 로마서는 이 회심을 시간적 종말과 관련시키는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들을 들어서 이스라엘 전체 또는 국가적 이스라엘이 결국은 주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로마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 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고대 언약 백성으로부터 선택하여 낸 충족한 무리를 의미할 것이다. 이 모든 구절은 이스라엘의 많은 무리가 세상 끝날에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언약백성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실제로 지금 있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큰 배도와 큰 재난, 성경은 끝 날이 가까울수록, 그래서 여러분 백 투더 예루살렘해가지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나와서 유럽으로 돌고 미국으로 가고 아시아로 건너오고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고 이슬람을 가로질러서 예루살렘에 다시 복음이 전파되면 종말이 온다. 이런 얘기 굉장히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개혁주의적 견해가 아닙니다. 세대주의적 견해입니다. 물론 복음이 그렇게 전파될 거라고 보지만 그것이 세계종말의 사인인 것처럼 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어떻게 설명합니까? 모두 믿어야 된다. 우리나라도 모두 안 믿고 미국도 모두 안 믿습니다. 그런 것들은 세대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세대주의가 뭔지 인터넷에 들어가서 쳐 보십시오.
성경은 끝 날이 가까울수록 크게 배도 혹은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가르쳐 주고 있다. 세상 끝 날에 죄악이 증가할 것이며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하늘에 사무친 악으로 인하여 천지가 시작된 후로 전무후무한 무서운 재난이 초래될 것이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했더라면 구원을 얻을 영혼이 없었을 것이지만 택한 자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할 것이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요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재난 영화입니다. 2012, 혹은 투모로우, 하드레인, 해운대도 재난 영화입니다. 대개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실감나는 것은 2012였습니다. 굉장히 감동이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기후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닐 때는 굴비를 구워 주면 애들이 에이 또 굴비야 그럴 정도로 가난한 자의 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라 팔만하고 누런 황금 줄이 드리워지고 알이 꽉 들어있는, 잡자마자 소금 뿌려서 살짝 말린 다음에, 냉동시설도 없었고 그냥 딱딱하게 북어정도는 안 되더라도 반 건조 오징어 이상으로 되어 있어서 부엌에다 그냥 걸어놓고 이놈이라도 하나 먹자해서 꺼내서 먹었습니다. 지금 가만히 물어 보니까 그때 우리가 먹던 그런 것을 열 마리 사백오십 만 원 정도 줘야 산답니다. 수십 짝에 그런 것 한 마리가 나온답니다. 수십 짝에서 나오는 그 한 마리를 따로 모아서 골드 마크를 붙여서 파는데 그것도 그 맛이 아닙니다. 밟히는 것이 그런 거였는데 없습니다. 뭐 때문입니까? 기후 온난화 때문입니다.
여러분 목욕탕에 갑니다. 온탕하고 열탕이 있습니다. 온탕은 들어갈 만한데 열탕은 너무 뜨겁습니다. 온도 차이가 3도도 안 됩니다. 인간의 몸에서 공기의 2도 3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물의 2도 3도는 엄청난 것입니다. 물고기는 그것을 더 잘 느낍니다. 다큐 같은데서 보면 고등어 같은 것이 바다를 지나가면서 이상하게 바다가 대개 넓은데 수십억 마리의 고등어가 요만한 통로로 골목 지나가듯이 막 지나가는데 저쪽에서 고래가 기다리고 있다가 막 잡아먹습니다. 잡아 먹혀도 다른 데로 퍼지지 않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펄펄 끓는 물입니다. 못 가는 것입니다. 잡혀 먹어도 그길로 가는 겁니다. 옆줄을 가지고 수온계산하고 합니다. 생선 구우면 옆줄이 참 맛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점점 심각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터져서 저렇게 난리인데 다 쉬쉬하고 숨기고 있습니다. 누구하나 진실해지지 않습니다. IAEA에서는 바닷물을 그리로 흘려보내라고 하고 그렇게 해서 다 오염을 시켰는데, 일본은 재난 준비가 아주 잘 된 나라입니다. 영국, 일본 이런 나라는 특히 일본은 재난 속에서 늘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엑설런트 하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데서 사건이 터지면 심각할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원전반대입니다. 그럼 어떡합니까? 전기세를 많이 올리고 무서워서 조금씩 쓰게 하자. 불 켜놓고 이런 말 하니까 말발이 안서지만 이렇게 겁 없이 전기를 쓰는, 전 세계를 다녀 봐도 이렇게 미친 듯이 전기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케프코가 빚이 몇 십조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독일에 내가 아는 지체가 이사를 갔는데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한 사십 평 되려나 그 정도 되는 집에서 사는데 한국에서 쓰는 식으로 불을 켜면 한 달에 한 백 이십 만원 나온답니다. 그것이 재미있는 것이 본인한테 매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한테 나온답니다. 그래서 집을 얻어서 갈 때 오백만원 정도 해서 하면 일 년 정도 되면 자기가 전기세가 얼마 나오는지 모릅니다. 주인이 돈을 다 내고 연말에 가서 정산하자고 해서 오는데 오백만원 맡겼는데 천만 원 더 달라고 합니다. 뒤로 나자빠질 일입니다. 요만하게 켜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옆방에서 남편이 헬스하면 자전거 해서 막 하면 전기가 비춰서 아들이 그것으로 책보고 그렇게 삽니다. 이렇게 겁 없이 전기를 쓰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범죄예방을 위해서는 안 쓸 수는 없습니다. 밤에 전기를 줄이면 통계적으로 범죄가 늘어난답니다. 교회 같은데 왜 이렇게 전기를 많이 쓰냐고 하지만 범죄 예방의 80%는 합니다. 교회에는 어쨌든 불을 좀 켜놓으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전기세가 한 달에 얼마 좀 나올 것 같습니까? 퀴즙니다. 1번 백만 원, 2번 삼백만원, 3번 천만 원, 4번 천 오백만원, 전기세만 천만 원입니다. 나는 더 올려야 된다고 봅니다. 전기가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주 아껴 써야 합니다. 불하나 켜고 두 세 사람 모여서 책 읽고 그래야 합니다. 지구를 보호합니다. 교리를 철저히 공부하면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미 사도시대에도 분명히 있었으며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끝 날에 개인이 악의 화신으로서 일어날 것이라 한다. 즉 죄악의 사람이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누구일지는 모릅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나올지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EU가 통합이 되어서 통합 대통령이 나오면 그놈이 안티크라이스트일 것이다. 종교 개혁 때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적그리스도는 교황이라고 봤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적그리스도를 일본 제국주의라고 봤습니다. 시대마다 해석이 달라지는데 궁극적으로 그런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표적과 기사, 성경은 이상한 표적을 세상 끝 날이 시작되는 징조로서 말해주고 있다. 전쟁, 기근, 지진이 각 처에 있을 것이니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며, 이 재난은 우주의 재생 전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무서운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 그 때에 하늘의 권세가 흔들릴 것이다.
약 20억년 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를 밀키웨이라고 하는 것 아십니까? 그 다음에 안드로메다라는 은하가 있습니다. 가장 가깝습니다. 이것들이 20억년 후에 합쳐집니다. 합쳐지면서 아주 아름다운 별의 잔치가 이루어집니다. 천문학자들에게 물어 보니까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은하에 천억 개 내지 이천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별과 별이 부딪힐 확률은 아주 약하다고 합니다. 거대한 중력의 변동이 일어납니다. 더 심각한 것은 태양이 수명을 다하고 나면 대개 사십 억년에서 백억 년 사이에 수명이 다하는데, 수명이 다하고 나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수명이 끝납니다. 그때 태양이 폭발을 하면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여기까지인데 거의 지구를 지나서 화성 넘어서까지 폭발하는 태양 속으로 모두 들어갑니다. 천문학에서, 그렇게 될 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많은 신학자들이 천국을 머릿속에서 상상 속에서 영혼이 이동하는 그런 장소로만 보지 않고 물리적인 장소로 봅니다. 우주 어디엔가 그런 천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지구와 똑같은 생명체를 가진 곳이 어디인가 하며 막 찾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유효기간을 서기 3000년이라고 봅니다. 천년 정도 남았다고 봅니다. 그 후에 가장 유력한 이주지가 화성이라고 합니다. 3년 정도 걸려서 화성에 간다고 합니다. 10%정도의 공기가 있고 인간은 살 수 없는 곳인데 살 수 있도록 미리 이주계획을 세우는 일들을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지구 온난화를 계속 부추겨야 됩니다. 화성에 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 얼음이 표면에서 백 칼로미터입니다. 온난화가 되어서 녹아서 흘러내리면 충분히 생명체가 살 수 있고 공기가 생겨나는 그런 곳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성에 가서 예수를 믿어서,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 세대에는 그런 일이 없을 테니까, 화성 열린교회 아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재림자체, 재림의 시기, 어떤 학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는다. 즉 어느 때든지 방금 그 일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앞서 말한 사건들과 징조들이 재림 전에 암서 일어난다고 가르쳐 준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재림은 언제나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확실한 때를 결정적으로 말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천사들이나 인자라도 알 수 없다.
재림의 양식, 그리스도의 인격은 다시 오실 것이다(인격적 재림). 그는 이미 오순절 날에 영으로 오셨으나 육체로 다시 오실 것이므로(형태적, 육체적 재림) 각인의 눈이 볼 수 있을 것이다(가견적 재림). 많은 징조가 재림 전에 일어날 것이지만 그의 재림은 사람들이 생각지 않은 때 불시에 일어날 것이다(돌발적 재림). 하늘의 구름이 그의 마차가 될 것이며 천사들은 그의 호위병이며 천사장들은 그의 전령관이 되며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의 영광스런 수행원이 될 것이다(영광의 재림).
재림의 목적, 그리스도께서는 미래의 시대, 곧 사물의 영원한 상태를 도입하실 목적으로 재림하실 것인데 그는 두 가지 사건, 즉 부활과, 이 부활은 예수님 자신의 부활이 아니라 죽은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켜서 어떤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어떤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가게 하시는 그 부활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을 통해 이러한 목적을 실행하실 것이다.
천년왕국, 천년왕국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왕이 되어서 이 세상을 직접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세 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째는 전천년설, 다음에 후천년설, 무천년설, 천년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왕이 되어서 직접 이 지상나라를 임금처럼 통치하는 기간 천년을 이야기합니다. 전천년설은 영원무궁한 상태로 들어가기 전 천년 동안 예수님이 오셔서 이 세상의 임금으로서 세계 전체를 직접 다스리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천년설은 이런 것이 없다고 봅니다. 후천년설은 견해가 다양합니다. 전천년설의 경우에는 다시 둘로 나뉘어지는데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고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별로 말이 안 되고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고 이단적인 것이고 요것과 요것이 개혁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 이분은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입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얘기하면 긴데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세대가 일곱 개로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각각 다른 조건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부터 시작해서 신약까지 이어오는 각 시대마다 언약이 있어서 시대의 다양성이 있지만 이것들을 모두 통일하고 있는 하나의 구원 경륜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구속사의 연속성을 깨트립니다. 이것은 개혁주의적 견해가 아닙니다. 역사적인 전천년설과 무천년설 이 두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후천년설,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될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니까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심판주로 오셔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천년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 이 천년의 형태는 어떤 형태의 천년입니까? 천년왕국은 예수님께서 직접 통치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복음시대라고 생각되는데 이 시기 끝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이라 한다. 복음은 세상 끝 날에 현재보다 훨씬 효과적이 될 것이며 의와 평화의 시대와 풍요한 영적 축복의 시대로 인도하여 들일 것을 예기한다. 현재에도 어떤 학자는 천년 왕국이 진화의 완전한 자연적 과정의 거대한 결과가 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개념은 세상 끝 날에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치 않는 것 같다. 이 견해는 굉장히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종말에 있어서 후천년설을 택했습니다. 이것을 택한 사람은 아주 소수입니다.
전천년설, 전천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지상 위에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시고 천년 동안 예루살렘을 통치하실 것이라 한다. 이 이론은 선지서들과 계시록 20장 1-6절의 여자적 해석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천년설은 하나님 나라를 지상적 왕국과 국가적 왕국으로 만드는 반면에 신약은 하나님 나라를 현재에도 존재하는 영적, 우주적 왕국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약은 그리스도의 그와 같은 지상적이고 일시적인 왕국에 대해 말한 일이 없지만 그의 하늘의 영원한 왕국에 대하여만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은 계시록 20장 1-6절에 근거한 것인데 이 구절은 하늘의 한 장면을 나타내 주며 유대와 지상적 국가적 왕국이나 장차 예수께서 다스릴 곳인 팔레스틴에 대해 언급한 일이 없다.
아까 말을 잘못했습니다. 이 양반은 무천년설의 입장입니다. 전천년설은 예수님이 먼저 재림하셔서 왕이 되어서 다윗 왕국을 재건하셔서 통치하시는 것이고 무천년설은 이렇게 보지 않고 복음이 굉장히 강하게 일어나가지고 복음이 굉장히 활발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다가 마지막 때에는 커다란 배도의 때가 오고 핍박과 환란의 때가 오고 예수님은 재림하시고 재림하시면서 이 나라가 투입된다. 이게 무천년설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개혁주의 속해 있는 다수의 학자들은 무천년설을 택합니다. 루이스 벌코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을 때에는 셋 중에서 어느 것이 제일 위로가 되겠습니까? 전천년설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결국 열강에 시달리고 일제치하로 들어갑니다. 공산치하를 맞이하게 됩니다. 뭘 선택했겠습니까?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전천년설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도들이 화장실에 이렇게 앉았다가 구름만 이상하게 떠도 주님이 오시나 보면서 뛰어 나왔다는 얘기가 유명합니다. 옛날에 불렀던 찬송가들이 이런 흔적들이 저 먼 서쪽 하늘에 구름만 떠도 우리 주님 구름 타고 오시려는가, 하면서 찬송 부르는 그런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세상 나라와 천국의 차이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데 과연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에 딱 좌정하시고 세계를 무력으로 뭐든지 모두 통일하신 다음에 각 나라의 대통령과 장관을 임명하고 결재를 하고 세금을 걷고 그걸로 다리를 만들고 비행기를 띄우고 예수님과는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천년설이 성경에 가까운 입장이 아닐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날 따라서 하든지 아니면 이쪽을 택하든지 다른 거는 가능성이 좀 적습니다.
30과 부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자가 부활할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구약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신약은 이에 대해 충분한 증명을 제공해 준다.
부활의 성질,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육체적 부활을 기대하라고 말씀해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은 당연히 인간에 대한 구속이기 때문에 육체 없이는 인간도 존재할 수 없기에 육체와 영혼, 모두의 통전적인 구속이 된다. 그러한 부활은 고린도전서 15장과 로마서 8장 11절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다. 부활은 의로운 자나 악한 자들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의로운 자만을 위한 구원과 영화의 행위가 될 것이다.
부활의 시기, 성경에 의하면 일반적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세상 끝 날과 일치할 것이며 최후 심판 바로 직전에 있을 것이다. 전천년설 주장자들은 이중적 부활을 주장하는데 그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의 의로운 자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천년 후 세상 끝 날의 불의한 자의 부활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과 악인 모두의 부활이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가르쳐 준다. 성경은 악한 자의 심판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시켜 말해주며 의로운 자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준다.
최후심판, 부활의 교리는 최후심판 교리와 바로 연결된다. 성경은 궁극적 심판이 집행될 것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심판주와 그 보조자들(심판의 주체),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주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명예는 그의 구속사업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다. 천사들은 그를 보조할 것이며 성도들도 그의 심판사역에 다소나마 참여할 것이다.
심판받을 우리들(심판의 대상), 인류 개개인이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의로운 자는 심판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마귀도 분명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심판의 시기, 최후 심판은 자연히 세상 끝 날에 되어질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 후에 즉시 이루어질 것이다. 심판의 기간은 결정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심판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24시간의 하루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것은 천년이 하루와 같다는 하루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전천년설자들의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이다.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해서 이 심판을 천년동안 계속된다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면 기간이 어느 정도 될 것인가? 몇 주일이나 되는가? 성경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자꾸 잘 모르는 것을 말을 하면 말이 잘못되어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런데 너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할 때마다 제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어딜 가고 난 다음에 여기까지라고 그래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성경이 얘기하는 것 까지는 알고 그 다음에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지 가보지도 않고 여기까지입니다.
심판하는 표준, 성도들과 죄인들이 심판받게 될 표준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일 것이다. 이방인들은 자연법을 따라 심판받을 것이니, 즉 유대인들은 구약계시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요 복음의 충만한 계시를 안 자들은 복음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켰다고 그러는데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그러는데 하나님이 율법을 돌 판에도 새기셨지만 인간의 마음 판에도 새기셨습니다. 인간의 마음 판에 새긴 율법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양심이라고 얘기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조그만 아이들도 자기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이들 길러 보신 사람들은 더 잘 압니다. 아이가 사고를 치고는 아이가 엄마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일인데 거짓말을 못합니다. 중학교 때쯤 되니까 거짓말을 하려고 합니다. 너 이거 어떻게 되었어, 하면 이야기를 하려고 막 이러는데 그러면 엄마가 너 지금 거짓말 하려고 그러지, 너는 하지 마. 너는 다 탄로가 나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너 거짓말 하려고 그러지 지금, 얼굴 표정을 딱 보면 압니다. 말을 막 더듬고 얼굴이 목덜미에서부터 빨개집니다. 하지마라. 너는 체질이 아니다. 그럽니다.
양심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번에도 보면 어떤 사람 하나가 암으로 죽어가면서 죽기 불과 몇 시간 전에 경찰 불러서 자기가 친구와 함께 누구를 살인했다는 것을 자백하고 죽었습니다. 그 친구 잡혀 들어갔습니다. 뭐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전에 일어난 일, 그것을 고백하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게 만든 그 힘이 뭡니까?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진 율법입니다. 화인을 맞으면 그런 것들을 막 무시하며 살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누구하고 같이 점심을 먹을 일이 있어가지고 그 사람을 주려고 이십 만원 상품권을 들고 나갔습니다. 뇌물은 아니고 내가 뇌물 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선의로 주려고, 선물 가져갔는데 식탁에다 올려놓고 밥을 먹으려면 속 보이잖아요, 그래서 밑에다 넣어 놨습니다. 물을 한잔 마시고 나더니 종업원이 오더니 이 방보다 좋은 방이 있는데 원하시면 옮겨드리겠습니다. 좋은 방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우리끼리 얘기할 수 있다니까 그리로 갔습니다. 밥을 맛있게 다 먹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선물을 두고 온 것입니다. 당연히 그 방에 가면 있겠지 하고 갔습니다. 없습니다. 이것 어디 갔냐고 했더니 손님들이 여기서 밥을 먹고 나갔답니다. 자기 것이 아닌데 왜 가지고 갑니까? 어떻게 그것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합니까? 오히려 종업원한테 야 이게 있는데 주인 줘라, 그래야지 맞지 않습니까? 신세계 상품권이었는데 사서 먹었던지 어디에다 썼을 것입니다. 잘도 살겠다. 그랬습니다. 나야 그것 없어도 살지만, 아깝지도 않습니다. 아깝긴 좀 아깝습니다. 내가 아까운 것보다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렇게 너저분하게 인생을 살까? 남의 것 가지고 가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모든 죄의 원흉이 공짜를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교리반을 통해서 가슴에 탁 새기십시오. 공짜는 그리스도의 구원,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은혜 외에는 다 나쁘다. 공짜를 좋아하는 데서 모든 부정과 비리, 부패, 이런 것들이 나옵니다. 왜 좋아합니까? 대머리 벗어집니다. 그것을 몸에 딱 배어서 몇 년만 그렇게 살면 몸에 쫙 배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도 타락했습니다. 주유소 가면 휴지도 받고 그러는데 옛날에는 일체 안 받았습니다. 이런 것 왜 주냐고 막 화를 냈습니다. 왜 그러시냐? 생수를 들고 막 뛰어 옵니다. 필요 없다. 틀림없이 이런 것을 하느라고 기름을 조금 주던지 후진 기름을 썼을 것 아니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느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로또 복권 이런 것입니다. 국민을 다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방에 대박이 나서 새로운 꿈을 꿉니다. 꿈꾸는 한사람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꿈을 버려야 합니다. 그 돈 가지고 갖고 가서 빵이라도 사 먹으면 영양보충도 되는데 그게 뭡니까? 그런 것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혹시 로또 당첨되고 그랬다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 내야 하느냐고 하는데 소득 자체가 인정할 수 없는 소득이기 때문에 십일조 필요 없습니다. 십일조 받아서 뭐합니까? 몰라 그래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모두내면 그건 생각을 좀 해봐야지 할 것 같습니다. 회개한다니까, 모두 내 놓는다니까, 그것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짜는 아니라는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밥 먹으러 가면 구두끈 오래 매는 사람 있습니다. 너희들은 그런 사람 되면 안 됩니다.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데는 가지 마십시오. 참가하는 데는 항상 사줄 수 있는 사람으로 가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떡합니까?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베풀면서 살아야지 그래서 되겠습니까?
악인의 최후 상태, 악인은 지옥이라 불리우는 형벌의 장소로 보내진다. 어떤 상태로 보내집니까? 영혼과 육체가 만났는데 그 육체는 아주 특수한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몸으로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면 지옥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어마어마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이 인간 형벌을 받아야 돼, 너 한번 들어가 봐라. 뜨거운 불길에다 휙 던졌습니다. 십분도 안돼서 죽어버렸습니다. 그것 아닙니다. 천국에 가봐라, 확 집어넣었는데 공기가 없어서 30분 만에 죽었습니다. 그건 천국 아닙니다. 황금 길에 모든 것 다 있는데 공기는 없어서 죽었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에 적합하도록 변화되어야 하고 악인은 지옥에 들어가도록 접합하도록 변화되어야 됩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더 깊고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신적 은총을 빼앗길 것이며 형벌은 등급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당하는 형벌은 영원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학자는 영속과 영원이란 말이 단순히 오랜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는 그 용어의 통상적 의미가 아니므로 그 용어들이 장래 형벌에 적용될 때 이 같은 제한된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표현이 이 형벌에 대하여 사용되었는데 이는 끝없는 형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의인의 최후 상태, 신자의 최후 상태는 현세가 지나가고 새 창조가 이룩되기 전에 이루어 질 것이다. 이 미래의 창조는 전적으로 새 창조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현 우주의 갱신인 것이다. 이것도 견해가 나누어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 후에는 이런 문명이나 이런 것이 사라지면서 아주 초자연적인 세계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다니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다니려면 주유소도 있어야 됩니다. 석유 캐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석유는 처음에 시커먼 원유가 나오고 정제하는 시설도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그런 데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명이 완전히 종식되고 아주 놀라운 신비의 초월적 상태로 들어간다고 이렇게 봅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룬 창조는 선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선한 것을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영향 가운데 죄의 영향을 받아 파괴되고 망가진 것들은 사라지고 아주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죄 없이 인간이 이 문명을 누리고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드워즈는 전자라고 봤고 후자라고 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천국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가 될 것이다. 어떤 학자는 천국을 단순히 하나의 상태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성경은 분명히 천국을 하나의 장소로 언급하고 있다. 의로운 자는 천국을 기업으로 얻을 뿐 아니라 완전한 새 창조를 상속할 것이다.
의인의 보상은 영생이니 즉 끝없는 생명일 뿐 아니라 현재의 불완전이나 불안이 없으며 모든 면에서 완전한 생인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충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영생의 본질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완전한 복락을 누릴 것이지만 이 천국의 복락에도 등급이 있는 것이다.
등급이 있지만 아 여기 와서도 또 등수냐! 진짜 어디가도 등수구나! 지상에 있을 때에도 꼬리 칸만 타고 다녔는데 천국에 왔는데도 또 꼬리 칸이구나! 그래서 결국 단백질 바나 먹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차이가 있어도 그것 때문에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그런 완전한 천국이 될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하늘나라에서 모두 만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