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교역자세미나2
녹취자: 백지영
교회가 벌써 이제 8살, 9살이잖아. 장로 뽑아야 될 것 아니야. 임시목사인데?? 후년에 또 투표해야 한다고. 영원히 교회가 미조직교회야. 그러니까 해야 되잖아? 말은 안하지만 초미의 관심사겠지. 그럼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지금서부터 물밑 작업을 해서 누가 마음에 들게 좀 하나. 가서 암시도 주고. 똑바로 해, 내가 시켜줄께. 그럴 수도 있을 것 아니야. 다들 이렇게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말 못하지? 딱 제안했어. 힘들지만 장로 뽑자. 그런데 당장은 뽑지 말자. 왜냐하면 무조건 뽑아가지고 장로끼리 머리가 터지게 싸우고, 담임목사 딴지걸고, 그래가지고 교회가 피터지게 싸우고. 그 꼴 똑같이 본다면 오히려 차라리 5년에 한 번씩 투표하고 이렇게 하다가 내가 죽는 게 낫다. 뭐 장로 없어서 일 안 되는 것 있냐. 그런데 그래도 세워져야 하지 않겠나. 장로교회니까 장로교회법을 따르자. 그 대신 내가 그랬어. 아직은 아무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장로가 아무도 안 되었을 때 위원회를 만들어서 교회법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열린교회의 이제껏 살아온 배경을 모두 감안해서, 운영의 묘를 기해서, 교회법의 테두리 안에서, 열린교회에 적합한 그런 장로 제도를 운영하는 방안들을 연구하게 하자. 나는 거기서 빠지겠다. 빠질테니까 니들끼리 다 연구해서 만들어라. 거기서 몇 명 뽑을까, 어떤 방식으로 선거할까, 임기제로 할까, 종신제로 할까, 등등 다 연구를 해라. 실지로 나는 그런 점에 있어서, 그래 저사람 해주면 잘할 텐데. 그런데 영원히 내 사람이냐구 아니거든. 그렇게 해놓고 하나님한테 맡기면서 하는 거야. 그래서 지도자 자신이 모든 일에 있어서 공평하고 무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해. 완전히 그럴 수는 없지만. 지난 번에 안수집사 투표할 때에 내가 그랬잖아. 미리 사진을 보면서 누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안 할려고 노력을 했어. 안 봤다구. 그럼 이게 하면 아쉬운 마음이 생길 거고, 저사람 내가 찍지도 않았는데 저 사람 왜 됐을까, 어떻게 처리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거 아니야. 자기 교회에서 세워진 안수집사님들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면 안되잖아. 그런데 인간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그런 점에 있어서 마음을 비워. 그렇게 하면서 말하자면 휘기는 하는데 꺽어지지는 않는 거야. 그만 두어야 되겠습니다 왜? 장로들 등살에 못해먹겠습니다. 교회학교 교역자 그만 두어야 하겠습니다. 왜? 선생들이 너무 속을 썩여서. 그게 꺾이는 거야. 휘는 것이 아니라 꺽여버리는 것이라구. 그건 믿음 없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토요일이면 전화가 온데. 목사님, 아무개 집사가 목사님 씹고 다닙니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그 집사가 또 씹고 다니데. 나중에 목사님이 막 돌겠더라는 거야. 많은 교인이 자기를 좋아해도 아까 얘기했듯이 그것 때문에 격려가 안 되고 씹고 다니는...그래서 기도를 했데요. “몇 사람이 나를 저렇게 씹고 다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특히 그 중에서 아무개가 나를 그렇게 씹고 다닌다는데 전 정말 괴로워죽겠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해결 좀 해 주십시오.” 하니까 하나님이 응답을 하시더래요. “야! 걔는 나도 신경 끈 앤데 네가 왜 신경 쓰느냐고.” 그러니까 관점이야. 그리고 꺽이지 말아야 해. 버텨야 해. 버텨서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들이 맡은 사역에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쓰시는 주체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해. 흔들리면 안 돼. 교인들은 너무 안 흔들리는 것 좋아해요, 싫어해요? 싫어하지. 얘기해봐야 씨도 안 먹힐 것이다 그러지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안심을 해요. 나한테도 안 흔들리니까 딴 사람도 못 흔들 것이다.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는 거야. 닥치니까 괴로워하는 거야. 자기가 흔들어 놓고 나중에 가서 뭐라고 하냐면 “지도자라는 게 저렇게 휘청거리니 누굴 믿고 뭘하겠어?” 그렇게 되는 거야. 강한 사람 없어. 강하긴 뭐가 강해? 나도 누가 가슴 아픈 얘기하면 돌아서서 흐느껴 울고, 하나님 앞에 가서 정말 하나님도 나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그래. 가슴 아프고. 그렇지만 내색하면 안 되잖아. 내색하면 꺽이는 거야. 더군다나 그 설교단에서 복수하듯이 말이지. 꺽이는 거야.
그 다음에 세 번째가 무엇인가 하면 동역자들과 사역하려면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세시에 일을 하자, 그래놓고는 지도자가 네 시쯤 터덜터덜 걸어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자기의 맡겨진 사역에 치명적으로 관계가 됩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원칙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지혜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계속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탑 리더입니다. 위에서 전부다 내려다보기 때문에 탑 리더가 되면 다 밑에 사람들이 머리가 나빠 보이는 법이지요. 그런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적인 비젼을 가지고 항상 대책을 세우면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자꾸 개발을 할 때, 모르면 선배들과 의논하기도 하면서 개발해 나아갈 때, 능력이 생겨나고 지도력도 자꾸 개발이 되는 것입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똑같은 IMF때인데, 내가 그때 필리핀에 있었는데 원화가 어느 정도로 떨어졌는가 하면 달러당 일대 2000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때가 최악이었습니다. 왜 떨어졌는가 하면 김대중씨 때문이었습니다.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외신기자들하고 회견을 했는데, “살림이라고 맡아서 돈 궤짝을 열어보니까 돈은 한 푼도 없고 빈문서만 가득 있더라” 그랬습니다. 그게 곧바로 외신을 타고 돌아가면서, 한국주식이 그나마 다 바닥을 구르면서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2000대1까지 간 것입니다. 그래도 1600대1정도 하다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것입니다. 외국의 금융전문가가 나중에서야 조언을 하는데 큰 실수였다는 것이지요.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그 말이 농담이든지 그런 건 상관없이 엄청난 파장을 미칩니다. 외국의 모든 사람들한테 전할 때 웃고 얘기하는 그러는 것까지 전해지지 않거든요. 대통령이 말하기를 “금고를 열어보니까 돈은 땡전 한 푼도 없고 빈문서만 잔뜩 있다”고 하더라 하면, 투자가들이 볼 때 “한국 큰일 났구나, 빈문서만 잔뜩 있단다, 빚 달라고 달려들면 난리겠구나.” 그러면서 이게 파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러면 안 되는데, 목회자 자신이 사역을 하면서 동역자들에게 섭섭해 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언제였는가 하면, 동역자는 아니고 모든 교인이지만, 건축헌금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적게 나왔습니다. 그때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배신감이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주일, 월요일, 화요일까지를 거의 지옥처럼 보냈어요. ‘내 꿈은 순회설교자였지 내가 무슨 목회...’ 그러면서 가슴 아파 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요일부터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시면서 그 지체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돈을 너무 사랑해서 헌금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연약한지 그것을 보여 주시는데,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이 물같이 녹아서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주일에 올라가서 20분 연설을 했는데, 교회가 뭔가 암초에 걸린 것처럼 이러다가 확 돌아서면서 약속대로 더 건축헌금을 안했는데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축헌금을 했고 여기 올 때 ??헌금할 때 커다란 힘이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서 만약 내가 계속 품고 명단대고 돈 낸 것을 보면서, 세상에 그렇게 인색하면서 저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구나 등등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가지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량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인격적이어야 하잖아??? 그래서 합리적이고 분명한 리더십을 가지고 지도력을 발휘하되, 포용력이 있고, 사람들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엊그제도 사랑의 수양관에 갔다 와서 나한테 싫은 소리 들었는데, 전체적으로 ??해야 될 교역자들이 식권가지고 나눠주고, 그런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지도자의 일을 해야지, 사단장이 소총매고 무기창고에서 병기 나눠주고 있으면 사단은 누가 지휘하겠습니까? 물론 모본을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은 자기가 지키고 그렇게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혼들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부어 주셔야 하는데 그건 두 가지로 집약이 됩니다. 하나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구원받은 영혼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은 하나님이 많은 영혼을 보내주시고, 보내어주신 영혼들에게 은혜를 받게 하셔서 변화시켜 주셔야 됩니다. 우선은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영혼들이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열린교회 9년 하면서 터득한 지혜는, 열심히 전도하면 그 전도한 사람들은 안 오더라도 하나님께서 딴 곳에서 사람들을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난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전도는 우리가 가서 영혼을 구원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보여드리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이 주일 날 얼마나 새로 오는가, 이것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애닯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오늘은 영혼들을 안 보내 주셨을까?, 내게 무슨 허물이 있는가?” 이것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인데 자기 자신이 전도의 모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만큼 가장 강력한 힘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껍지 않은 마음으로 간신히 하는 그것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자기의 마음을 쏟아 부어서, 아주 기쁘게 불평하지 않고 그렇게 전도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 앞에 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오픈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역자 자신들이, 내가 다 봅니다, 화요일이고 토요일이건 간에 이 사람들의 마음에 잘 전도해야겠다는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무엇에 의해서 검증이 되느냐 하면, 전도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입니다. 그때 타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이걸 극복하고 전도를 하고자 하는 쪽으로 생각을 합니다. 상황을 해석하고, 피해 가고, 길이 왜 없겠습니까? 고난을 만나도 길이 있는데. 그런데 그런 마음의 불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순응합니다. 사역의 모든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한번 꺽어진 사람은 두 번째는 더 잘 꺽어지고 세 번, 네 번째는 아주 쉽게 꺽어지면서, 난관이 있으면 자신을 거기에 순복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사역자 자신들이 구령의 열정에 불타야 합니다. 1년에 한번 정도씩은 오스왈드 스미스의 ‘구령의 열정’ 같은 책을 같이 읽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고. 그러면 또 도전이 오잖습니까? 그런데 자기 자신이 그런 불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그런 일도 하고 싶은 것이지, 자기가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거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밑에 사람이 도전받는 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뭉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게 아니야, 그보다 급한 게 있어.”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 문제인 것처럼 해 가지고 문질러 버린단 말이지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그렇게 불을 자꾸 끕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불을 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을 가지고 외부에 의해서 푸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정말 열매가 있었습니다, 다른 기관에도 이런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밀려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으로 앞서서 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이런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지원해 주십시오, 해봤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영혼들을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특별한 기관만 계속 영혼들을 보내주십니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무엇인가 하면, 영혼들을 잘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등록을 했는데 거의 짐승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주일 예배도 가끔 나오고, 새가족반도, 새신자반도, 심방도 싫다, 개인성경공부도 싫다, one to one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목회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지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교회 전체가 날아오를 때 거기 뭔가를 매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변화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실제로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변화의 능력만 기대하지 말고, 주님이 잘 사용하실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 드린다 라는 면으로 하는 겁니다. 옛날에 고등부에 있을 때인데, 선생들이 애들을 잘 돌보지를 않았습니다. 교회 안 나왔는데도 나는 전화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대로 둬도 하기는 하겠지만, 교회가 또 그렇게 되면 안 되잖습니까? 그래서 ‘우리 목장의 양무리’ 라고 해서 며칠 동안을 연구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양떼들의 영혼에 대한 상황을 일주일에 한 번씩 적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그것을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4주용 시트 하나를 나누어주면 전혀 돌보지 않은 교사들은 백지를 내게 되고, “선생님은 지난 한 달 동안에 영혼들을 위해 뭘 했습니까?” 이런 상황이 오니까, 처음에는 의무감에서, 진짜로 궁금한 것보다는 여기다 써야 되니까, “너 요즘 신앙상태가 어떠니?”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 영혼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교사들은 새까맣게 적습니다. 그렇게 적고 나면 공통된 고백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꾸 지혜를 짜내서 실제적으로 돌보게끔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새가족반이나, 새신자반이나 강점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목양적인 구조 전체가 사람들이 보기에는 김목사가 머리 굴려서 만들어 놓았는가보다 하지만 아닙니다, 청교도들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세 가지 즉, 성경적 관점과 청교도들이나 개혁자들의 생각, 그리고 지금은 그 시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라는 것, 이 삼각형에서 최대 조화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하나가 다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와가지고 맘대로 허물고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걸 내가 매번 브리핑을 하겠습니까? 그런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영혼들을 잘 돌볼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그걸 자꾸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사경회 때도 사람을 사서 아이들을 돌보아 주자, 수련회 때도 15명씩 그렇게 몇 백 만원씩 들여서 사람들을 데리고 가자, 풀장을 만들자,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목적 자체가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들 은혜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계속 창의력을 가지고 고안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해서 마음을 다해서 영혼들을 열심히 섬기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까도 김전도사가 그런 간증을 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깍으실 것들을 보여 주실 때 깍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서 피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계속 안 바뀌겠지요. 우리 자신이 깍이어야지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데, 깍일 때는 누구나 아프잖아요, 하나님이 아픈 것보다도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셔야지만 극복하면서 나갈 텐데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은혜가 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고, 의지하고, 매달리고, 그러면서 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기쁘게 감당해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런 것이잖습니까? 간혹 씨를 많이 뿌렸는데도, 희생은 많이 했는데도 열매가 하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 솔직히 하나님 앞에 섭섭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다시 녹아지면서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한테 야단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이 각각 단독목회하고 나면 기회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야단을 쳐서 바로 잡고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전도사 한 사람이 새벽기도도 안 나오고 해서 내가 혼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새벽이 되면 내 얼굴이 떠올라서 벌떡 일어난다니 얼마나 좋은 훈련입니까? 그러다 결국은 나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사람 없습니다. 누구라고는 말은 안하지만 다 많이 깨졌던 사람들입니다. 이번에 수련회가서도 나 없을 때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한 사람씩 다 목사님은 나만 미워한다는 생각을 다 했었답니다. 아닙니다. 누구든지 간에 잘 된 것들은 칭찬을 하고 잘못된 것은 지적을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하는데,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해도 기도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몇 번 야단 듣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가지고 그래서는 훌륭한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이 마음에 안 들게 한다고 해서 마음에 찍으면서, “저 친구 어떻게 내보낼까, 어떻게 일을 꾸며서 쫓아낼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내 사역에 축복을 해 주시겠습니까? 항상 근심은 하지요. “저래서 어떻게 하나?, 밥을 먹이면서 달래볼까?, 양복을 한 벌 사주면서 꼬셔볼까? 아니면 불러다 놓고 성경적으로 네가 왜 야단을 맞았는지 신학적으로 가르쳐 볼까?, 아니면 강도를 높여 볼까?” 관심은 무엇인가 하면, 저사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것입니다. 그렇게 과정을 거치면서??? 싫다고 팽개치고 나갔으면 백 명도 안 되는 교회 가서도 허덕대고 아무 관점도 없고.... 발레리나가 예쁘게 춤추는 거 들여다 보고 한 번 황홀경에 빠졌다고 해서 그 체구에 자기가 발레화신고 올라간다고 해서 발레 할 수 있겠습니까? 발목 부러집니다. 관절염 생깁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그 유명한 발레니나 강수진씨 발을 보여 주는데 사람 발이 아닙니다. 그 발을 보면서 숙연해지기 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춤사위를 보여 주기 위해서도 얼마나 혹사를 했는지 발가락이 다 뭉그러져 버렸습니다. 그게 훈련 안 받고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격도 중요합니다. 한번 야단 들었다고 기가 죽어서 구석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목회를 하겠습니까? 실컷 야단 듣고도 그 다음 날, “목사님, 배고픈데 밥이나 사주십시오”, 그럴 수 있는 담력을 가져야지요. 통을 크게 가지십시오. 그래야 지도자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잘 되어 가고 있는 교구들 보면 기도들을 많이 합니다. 기도 안하면 부부관계도 깨뜨려지고, 사역도 병들기 시작합니다. 기도 많이 하면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쁘게 해야 합니다. 항상 어떤 생각을 갖느냐 하면, 나는 자존감을 가지고 사역을??? ..여러분들은 안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제일??? 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신앙과 교역자로서의 자존감! 그러면 사례금이 좀 적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사례금 4, 50만원 더 받는다고 해서 자긍심 생기는 것 아닙니다. 어디가서 ‘나는 교육전도사 100만원 받는 사람이다’ 그러면 생각 있는 사람은 ‘아이고, 한심한 사람’ 그럽니다. ‘넌 참 좋은 교회 다니는구나.’ 그렇게 말 안합니다. 자존감을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다, 내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오늘도 신학교 때 같이 교수로 있던 분 만났는데, 여러 교수들이 나를 부러워합니다. 어디 지방에 내려가니까 그 목사님이 프린스턴에서 학위를 하신 분인데, 프린스턴이 장난이 아니잖습니까?. 8년만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 교수님이 같이 만나서 얘기하는데, 목사도 아직 아니고 교수하면서 전도사이면서 교육학 박사입니다, 목사님은 제가 이 세상에서 꼭 목사님처럼 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정말 영광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하니까, 저보고 우리나라 굴지의 학교의 총장을 하겠느냐, 교수들의 꿈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처럼 되겠느냐 그러면 자기는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목사님처럼 되겠다고 그럽니다.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역이냐고, 자기는 교수생활하면서도 마음에 차지를 않는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예고하건데 자꾸 그런 생각하면 나처럼 학교 사표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날만 있겠습니까? 괴로운 날도 있고, 깊이 마음 아픈 것도 있지만 해피하게, 그래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그것 때문에 교만지자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마음에 어두운 것들을 지워버리고 밝고, 기쁘게, 어디가서든지 열린교회 사역자입니다 그럴 때 스스로 착각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와 하는 함성소리를 느끼면서 사역을 하는게 낫지, 갈 데 없어서 오늘도 여기 이렇게 붙어 있어야 하나 하면 그게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활비가 좀 적고 또 어려움이 있고 아까 고백 드렸듯이 남모르는 눈물이 있어도, 하나님 사람답게 살려면 어디간들 그 눈물 안 흘리겠습니까? 안 흘리면 그게 벌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지요. 그렇게 하면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는 삶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