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세미나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해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13:19)
녹취자: 김은정
저는 자기의 개인적 신앙을 따로 생각하고 그리고 영혼들을 섬기는 것을 따로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섬기면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나도 나를 지탱하지 못하는데 내가 잠깐 교사도 쉬고 그리고 봉사하는 것을 좀 쉬어야지만 그래서 나 자신을 좀 재충전할 수 있겠다.” 그런 이야기들을 여러분들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교회학교를 맡으면서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의 영혼의 어려움을 호소해 오면서 그러면서 교사직을 떠나는 많은 지체들을 뒤에서 눈여겨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면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회복을 위해서 무엇인가 쉼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면 자기의 개인적인 신앙의 생활과 그 다음 주님을 섬기는 생활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고 놓이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곧 사역이 되고, 사역이 곧 신앙생활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놓여 질 경우에는 사역이 신앙을 방해하는 것 같고, 개인적인 신앙에 대한 배려가 사역을 방해하는 것 같은 이런 혼돈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기고 안 섬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영적으로 미숙하거나 아니면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체계가 안잡혔기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생각이 잘못되었거나 해서 오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국은 나는 솔직히 이야기 해서 섬기기 때문에 영혼이 고갈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고갈되는 이유는 섬기기 때문에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태도의 자체, 방식자체가 잘못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섬기는 그 자체가 자기의 소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섬김 그 자체가 소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보면은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교사의 자리를 떠났던 사람들이 교사의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확 살아나는 영혼으로 교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유 때문에 다시 확 살아나는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서 세움을 받는 사람들을 나는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신앙적인 한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면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 자신의 성화에 있어서 영혼을 섬기는 일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 순간에 여러분들의 어떤 요령으로 영혼들을 가리킬 것인가? 하는 것만큼 그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오늘 여기에 보면 그것이 나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구경하면서 따라 왔습니다. 그 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여자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십자가를 지고 자꾸 쓰러지시니까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올라가시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속에서 사실은 그 예수님이 채찍에 맞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돌려서 뒤에 오는 여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무엇인가 말씀하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중대한 의미를 갖는 메시지 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우는 여자들을 향해서 “울지 마라. 날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어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이냐면 영혼을 위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섬김의 지평으로 뻗어가지 않는 주님을 향한 사랑은 감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이 주님을 향해서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실한 것이라면 예수님은 “너희를 위해서 울고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우는 그것은 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나를 진정으로 아파한다면 내가 이 고난 받는 것을 진정으로 아파한다면 나의 고난은 너희의 잠자는 영혼, 그리고 심판이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향해 돌이키지 않는 너희의 자녀들 속에서 내가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내 아픔이다, 내 고난이다, 그것을 위해서 울고, 그것을 위해서 통곡하는 것은 바로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고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면 그는 반드시 영혼을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주 심하게 이야기 하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조금 받은 은혜는 영혼을 섬기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너무 많이 받은 은혜는 주님을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주님을 향해 조금한 사랑은 영혼을 사랑하지도 않고 살 수 있는데 주님을 향해서 너무도 큰 사랑을 가진 사람들은 영혼을 위해서 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과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사와 전도자로 뛰어들었습니다. 어떤 동기가 그들로 하여금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그리고 전도사역에 뛰어들게 만들었습니까? 또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영혼들을 위해서 섬기는 그 일에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치게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먹고살 직업을 선택하는 것 같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들로 그렇게 하게끔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가리키면서 진심으로 그 영혼들을 위해서 울면 그 눈물은 자기 깨어짐의 눈물보다도 더 강력하게 우리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을 위한 눈물은 항상 예외 없이 자기 깨어짐의 눈물을 동반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린 영혼들을 가리키는데 그 영혼을 위해서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가슴이 아프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그렇게 가슴깊이 아픈 마음으로 기도할적마다 자기가 기도하는 대상인 자기가 중보 기도하는 그 영혼들의 비참한 형편이 떠오르고 함께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를 위해서 게으른 나, 그리고 그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 심지어는 그를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지 못하는 나, 능력이 없어서 그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지 영혼 하나만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지요. 그러니까 항상 영혼을 위해서 계속 아파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 하는데 항상 자기 깨어짐이 뒤따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은 사람을 내버려 두신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게끔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셨다고 믿으면서도 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영혼들을 섬기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아직은 정말 많은 은혜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은혜가 주어지면 영혼들을 위해서 살지 않을 수 없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제 내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내가 교사로써 어떤 부분에 있어서 눈물로 여러분들을 섬길까? 자기 깨어짐이 동반된 눈물로 이 영혼들을 위해서 섬길 영역이 어떤 것인가? 저는 제일 먼저 교사가 눈물로 섬겨야 될 영역이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도사 생활을 거의 13년 가까이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유치부 빼놓고 유년부서부터 모든 부서를 해보면서 아주 공통적인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선생님들이 영혼들을 너무 쉽게 놓아준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몇 주 출석 안했을 때 쉽게 지워버리고 그리고 “선생님 이제 저 못 나와요, 엄마가 교회 다니지 말래요.” 쉽게 지워버립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다른 교회 나가기로 했어요.” 쉽게 지워버립니다. “우리 이사 갈 꺼에요.” 지워버리는데 언제 이사 갔는지 이사 간 후에는 어느 교회 다니는지 엄마가 못 다니게 하는데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교회나간다고 그랬는데 언제부터 어느 교회로 온 가족이 함께 나가는지, 그리고 그 아이가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거의 확인하지 않고 아주 쉽게, 쉽게 그어버려서 출석부를 정리한 교사들은 공통점이 무엇이냐면 전도하지 않는 교사들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고 또 거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교사인 자기와 관계를 맺고 교회에 와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교회에 정착하게 된 그것이 기적에 가깝다는 사실을 누가 경험하냐 하면은 전도지를 들고 골목을 누벼본 선생님들은 그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같이 공동체에서 보십시오. 전도에 대해서 탁월한 열심히 있는 선생님들은 대개 영혼들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로 집착합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제일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면 ‘나는 전도자다’라는 자기 확인입니다. 여러분들은 목회자가 아닙니다. 전도자입니다. 제일 먼저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은 전도자라고 하는 자기 확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하고 영혼들을 섬겼음에도 불과하고 전혀 교사로써 섬긴 날들이 전도자로써 남은 생활을 살아가는데 별로 보탬이 안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교사하면서 전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굉장히 여건이 노력만하면 굉장히 좋습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우리더러 무조건 전도지 들려주어서 골목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숙기 없는 선생님들은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전도학교를 열어놓고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줍니다. 필요하면 선배들이 데리고 나가서 실습도 하고 그리고 충분한 훈련을 거쳐서 그래서 전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도자로써 자기 확인 없이 교사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이 그런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르켜서 ‘사역적 완고성’이라고 부릅니다. 사역에 있어서 완고함,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난 재능이 없기 때문에, 난 창피하기 때문에, 난 싫어, 나는 다른 일을 할 때 더 기쁨을 느껴.’ 이런 이유로 하나님이 명백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시는데도 마다하는 것입니다. ‘사역적 완고함’입니다. 아주 심하게 말하면 사역적 패역입니다. 그런 것들이 계속 남아있는 것이 개인의 성화에 도움이 되느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유년 주일학교 부장을 할 땐데, 총각 집사였을 때 25살인가 26살 때인데 난 주일학교 가면 죽어도 하기 싫은 것이 그 율동입니다. 이것은 무슨 손만 올리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교회 안다니고 그랬어도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술도 먹고 담배도 피고 그랬지만 안한 게 딱 하나 있는데 춤추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보고 너 맞을래? 춤출래? 그러면 난 맞을래 그랬습니다. 그럴 정도로 그것을 싫어했는데 성경학교를 갔는데 자매가 와가지고 율동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가 안하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따라 하겠습니까? 안하는 겁니다. 그땐 전도사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 자매가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 이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말씀에 은혜를 받고 어느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깨우치시더랍니다. 너 어떻게 내가 필요하다는데 네가 왜 안하냐? 그렇게 깊이 깨뜨려지고 나서 그다음에 율동을 하는데 율동을 할 때는 이 자매가 이상에 빠지는 것 같은 그러니까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온 몸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율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동작할 땐 좀 창피할 텐데 ..그래서 자매 얼굴에서는 그런 것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 자매를 사용하셔서 전국에 돌아다니면서 율동강사가 되게끔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잘 섬기면 성화가 촉진이 됩니다. 아주 분명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지 않는 교사다.’ 이것은 치명적인 사역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와서 여러분들이 영혼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현장을 누비면서 골목 골목에서 영혼들을 만나고 그 영혼들을 손에 붙여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리고 이름을 적어가지고 그 돌아온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고 복음을 거절할 때는 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전도의 눈물을 흘리는 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를 위해서 섬기는 것도 하나의 성화의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일을 위해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허락되지 않는 그런 상황 속에 있다가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셔서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시는 은혜에 녹아서 여러분들이 깨뜨려져서 그래서 그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앞에 나는 도저히 전도할 마음이 안 생기는데 전도를 위해서 헌신하고 창피하는데 문을 두드리면서 지나가는 어린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서 전도지를 주면서 그리고 그림책을 보여 주면서 예수님의 사랑, 그 은혜를 전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들은 한 가지 방면에서 자기가 완고하게 하던 것들이 순종으로 꺾여지게 되면 다른 방면에서 아주 쉽게 꺾여집니다. 제 말 이해할 수 있습니까? 왜 이럽니까? 이 깊은 밤에 모여서 대답이 있어야지.. 제 말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것 경험하지 않습니까? 어떤 방면에서 내가 완고한데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것이 꺾어지면 순종하는 이 자세가 그 순간 다른 모든 완고함을 함께 꺾어버리면서 우리를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무슨 이야기인줄 압니까? 난 진짜, 사역하다가 성화된 사람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정말입니다. 제가 목회 안했으면 여러분 같은 강적 만나지 않았으면 난 완전히 아직도 돌맹이일 겁니다. 강적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별로 안좋지요? 그런데 깨뜨려집니다. 그래서 정말 그럽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 얼마나 훌륭한 줄 모릅니다. 엊그제 어떤 형제가 녹취실에 있는 한 자매한테 자기 친척 중에 한사람이 급히 죽 어가는데 급히 복음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나한테 도움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갈 시간이 있나요? 그래서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돌아가시기 전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현장을 다 봅니다. 문제는 그런 정도의 열정,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의 받아들이게 하는 어떤 복음 전도자로써의 능력 이런 것들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되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전도지를 들고 가정에 대문을 두드리는 교회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내가 볼 때는 물론 다른 교회에도 있겠지만 흔치는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왜 이런 힘든 일들을 시키냐? 그것이 미래에 다른 모든 방면에서 이런 것들을 쉽게 이야기 하면 그분들이 그런 식으로 실천적인 삶을 살았을 때에 그때에 자신들이 나가서 교회를 할 때에도 다른 사역자들을 손에 쥐고 어떻게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 자신의 완고함을 꺾고 전도를 위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교회학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전도를 해야한다는 논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오늘 내 이 강의를 들으면서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자신 속에 있는 교사로써의 그 완고함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전도안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안합니까? 옳지 않기 때문에 안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옳다 라는 것에 동의를 못하기 때문에 안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설득을 안해줘서 감동이 안와서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냐면 힘들다, 싫다, 그리고 나는 재능이 아니다, 챙피하다, 쉽게 이야기 하면 커다란 사명을 외면하는데 그 외면하는 이유들을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떻게 사소한 것을 가지고 그 큰 것을 외면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뭐가 받쳐 주냐면 사역적인 완고함이 그것을 받쳐 줍니다. 가능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영혼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거리를 나서는 발걸음들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도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해야 될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토요일 날 많이 나와서 전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 수를 합쳐보면 결국은 무엇이냐면 전교사의 1/4밖에는 안됩니다. 1/3-1/4밖에는 안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안됩니다. 물론, 서 너 주 전도 나오다가 한 두주 빠질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 급한 일이 생기고 가정에 피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그러나 그것은 환경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되어야지 전도를 위해서 눈물 흘리지 않는 교사들이 자기들에게 보내준 영혼을 소중한 영혼으로 생각할 수 있겠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은 부모는 그 산고를 통해서 그 자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깊히 사랑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로써 눈물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어떤 방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인가? 영혼들에게 성경을 가리키는 일에 있어서 눈물을 간직한 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진리를 영혼들에게 가리키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가 철저하게 자기에게 허락된 설교시간, 자기에게 허락된 성경공과 시간을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그 영혼들에게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주는 비결들을 터득해야 합니다. 시간도 얼마 안되고, 그것은 핑계가 안됩니다. 시간이 적으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TV에서 광고를 보는데 15초 동안에 보는 사람의 가슴에 상품에 대한 선명한 인식을 집어넣고 지나갑니다. 그러지 못하는 광고는 결국은 광고의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우리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사실이 무엇이냐면 우리에게 허락된 공과공부시간, 혹은 우리에게 허락된 성경을 가리켜야할 그 시간에 아주 효과적으로 정확하게 성경을 가리키기 위해서 우리들이 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일정한 내용을 30분 정도에 가르쳐야 될 내용을 45분을 가리키기 위한 준비가 더 많이 필요하겠습니까? 30분을 주어야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을 15분으로 압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겠습니까?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후자입니다. 그래서 최상의 준비를 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중학생들 가리킬 때 교사들이 개기는 교사들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교사들이 조사를 해보면 공과를 준비하는데 2시간 30분 걸린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이 진리를 가르키기 위해서 잘 자기가 배우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소화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신앙적인 결단이 먼저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가르쳐야 될 대상으로 성경을 먼저 대하는 태도 말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먼저 성경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공과 하나 하나 하나가 그것이 무엇이냐면 자신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금주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이것은 영혼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깨닫고 그것들을 자기가 경험할 때 그러니까 이것이 주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주씩 앞당겨 가면 더 좋지만 주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 속에 충분히 경험되고 소화될 때, 그때에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제 설교할 때도 그렇습니다. 무엇이냐면 내가 평소에 그것을 가지고 깊이 고민하던 주제들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는 원고도 필요 없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왜냐하면 방금 최근에 터득한 이 번뜩이는 통찰들이 설교 속에서 계속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있어서 아주 정확하고 그리고 그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들에게 가리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차가운 진리가 아니라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함께 담겨있는 그런 진리의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거야!여기에 비추어 보면 넌 틀렸어! 믿든지 집어치우든지 둘 중에 하나해!” 이런 식으로 성경자체를 하나의 그 사람의 신앙을 잴 수 있는 단순한 척도로만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재보고 그 사람의 마음에 신앙이 자랐으면 함께 그 영혼과 함께 기뻐하고 그 영혼이 신앙에서 많이 미끌어 졌으면 진리를 가리키면서 마음 아파하고 그래서 그들의 영혼이 곤고할 때 우리도 곤고하고 그들의 영혼이 풍성할 때 우리의 영혼도 풍성하고 이러한 풍부한 삶의 경험을 나누면서 영혼들에게 진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르칠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놓고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언제 한번 교사들을 위한 라이브러리를 패키지로 한번 교회에서 문서 선교부를 통해서 보급을 하게 하려 합니다. 성경 사전 같은 것은 기본입니다. 요새 나온 NBD 새성경사전 같은 아주 좋은 사전입니다. 굉장히 좋은 사전이 번역되었습니다. 몇권의 책들은 아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성경자체를 연구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최소한 2시간 정도는 책상에 앉아서 꼼꼼하게 그날 가르칠 공과들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필요하면 복사물 같은 부교재를 만들어서 짧은 15분에서 20분의 시간에 확고하게 그 영혼들의 가슴속에 가르쳐야할 공과의 내용들을 액기스를 만들어 가지고 영혼들의 가슴에 넣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것을 가리킬 때 변화가 되고 안되고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교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진 지체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말씀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지체들을 더 기뻐하고 이러면서 영혼들을 섬길 때 여러분들의 사역이 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니까 그 말씀이 매주일 자신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를 움직이고 나와서 영혼들을 가리킨다고 할 때에 그때에 어떻게 사역 따로 신앙 따로가 되겠습니까? 사역이 피상적이니까 그런 것들이 가능하지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습니까?
세 번째 문제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때에 은혜를 받고 거기서 깨달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여는 지체들은 그래도 거듭난 영혼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 안에는 거듭나지 못한 회심하여야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그들의 구원을 위한 눈물입니다. 때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선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서 그래서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엄위, 그리고 주님을 끝까지 거절하는 악한 죄인들의 마지막 결과, 그리고 주님의 그 사랑에 응답하는 믿음이 있는 주의 자녀들에 대한 축복, 영생의 약속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면 이 교사의 사역이라는 것은 부흥사가 아닙니다. 부흥사이면 믿으면 천국가지만 안 믿으면 모두 지옥의 땔감이야 그리고 결단을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과 거기에 남아있는 목회자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냐면 한번 만나고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서 받아들여도 내 양이고 안 받아 들여도 내 양입니다. 주님을 섬겨도 내 지체이고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거절하면서 교회에 나와도 내가 돌봐야할 양떼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면 그의 영혼의 위험한 상태를 인식하면서 그의 회심을 위해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그러면서 그 영혼의 위험한 상태에 대해서 그 영혼이 인식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깊이 인식하면서 그 영혼을 마치 자기 자신이 회개하여야 할 영혼의 문제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회심치 않는 자들을 위한 눈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사에게 있어서 영혼이 회심하는 것은 마치 아이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한 자매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서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애처롭습니다. 그런 놀라운 일들보다도 더 놀라운 일들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그 영혼을 회심시키는 사건입니다. 눈물없이 되겠습니까? 어쩌면 교회에 나오고 우리가 가리키기는 하지만 끝까지 이 영혼이 구원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안믿다가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책임은 그에게 있지만 그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탄원하고 그리고 회심치 못한 영혼을 사랑하고 사랑의 온기로 그 마음을 녹이지 않은 책임은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회심치 않는 영혼일수록 좀더 많이 사랑하고 우러나오는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울고, 그 영혼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주어서 주님의 은혜로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시고 그를 변화시켜 주시고자하는 그런 간절한 하나님의 역사 은혜가 하나님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회심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네 번째는 무엇이냐면 기도의 눈물을 흘리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경험적으로 볼 때 제일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여튼 하루에 한 번씩 그 영혼들을 기억할 때에 기도의 눈물들을 가직한 교사에게 맡겨둔 영혼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가 좀 부족해도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회심하지 못한 영혼을 위해서 내가 많이 깨뜨려지면서 눈물 흘릴 때 내 마음 속에 즉시 무엇이 다가 옵니까? 이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강팍한 영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면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구원을 받았을까? 나는 저 인간들보다 훨씬 가슴이 돌같이 딱딱한 인간이었는데 나를 녹이시다니 이것은 정말 나의 나된 것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 우리 주님이 구원하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구나 ! 회심을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감격이 증진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은 은혜가 정말 놀랍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 기쁨이 있기만 하면 세상에 붙은 많은 욕심을 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라고 할 때 그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에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관계가 있냐면 성화의 삶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은 구원의 감격에서 오고 헌신적인 성화의 삶을 위한 노력은 구원의 감격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말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 흘릴 때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을 위해서 깊이 눈물을 흘리면서 깨뜨려진 마음으로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릴 때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쓸모없는 인간인가 하는 것을 느낍니다. 교사를 하면서 자기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 고귀한 존귀한 존재라는 것도 느끼고, 정말 쓸데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느낍니다. 절망과 희망이 한주에도 몇 번씩 교차합니다. 얼마나 제가 공격을 많이 받겠습니까?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떤 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낙심이 됩니다. 아 정말 내가 이게 뭐 하는 건가?? 어떤 때는 옛날에 너무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은 지금은 떠나갔지만 장목사님 보고 나하고 잠깐 산책 좀 하자.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30분 이렇게 걷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아!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옆에서 그 양반은 자기는 더 괴로워하지. 목사님은 교회라도 하나 있는데 너무 너무 괴롭습니다. 그래서 나는 진짜 아무 쓸모없구나!’ 내가 얼마나 무능한지 보아라. 그러면서 이제 낙심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이 상합니다. 가난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다음 주에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뭘 보여 주시냐면 ‘그래도 난 너 쓴다. 그리고 너는 아직 내게 있어서 그래도 사용가치가 있다.’ 이것을 보여주십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또 그게 계속 반복되면 교만해 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 못쓰겠다.’ 그리고 한번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사라집니다. 이게 일평생 반복됩니다.
(찬양) 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이게 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완전히 정말 기가막힌 것입니다. 아니 어디서 그렇게 깨뜨려 지겠습니까? 수많은 영혼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를 죽썼을 때 만큼 그래서 영혼에게 자신은 아무 쓸데없다 쓸모가 없다는 절망감을 앉고 마음에 가득히 눈물이 차서 강단을 내려올 때 만큼 성화가 잘될 때가 언제가 있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런데 성화도 너무 깨뜨려지기만 하면 성화가 안됩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보면 집에서 회초리를 아낀 자녀들은 기고만장합니다. 아이들이 도대체 날쳐도 어느 정도 날쳐야지 말리지 별 난리를 다 칩니다. 내가 아는 목사님이 심방을 갔는데 어! 이 아이가 목사님 어깨에 타가지고 머리 끄뎅이를 잡아당기는 겁니다. 말 탔다고 ..이게 어느 정도여야지 그런데 또 너무 두들겨만 맞은 집안의 아이들은 조용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적당히 조절하십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조절하십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는 우리가 조절이 안됩니다. 내가 영혼들을 너무 사랑하고 이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이 이 영혼들을 가지고 조절하십니다. ‘너 지난 주에 개판치면서 살았지 봐라!’ 갔는데 아이들이 매주 10명 기본적으로 7명은 나왔는데 1명 나와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입니다. “공과 안해요? 선생님” 그때 마음이 상합니다. 경험해 봤을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이게 정확하게 눈물이 있는 것을 보십니다. 간절히 울고 자기를 위해서 드려지는 과정 자체가 영혼이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내가 항상 교역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피를 흘리면 내가 가리키는 영혼들은 겨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내가 눈물을 쏟으면 내가 가리키는 영혼들이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내가 죽으면 겨우 내가 가리키는 영혼들이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입니다. 이런 공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 속에서 영혼들을 위해서 열렬하고 헌신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교사가 된 사람들은 더 많이는 요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최소한 더 줄일 수 없을 정도로 최소한 1시간은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한번만 더 양보하면 40분, 그 이하는 안됩니다. 왜? 10명을 위해서 1분씩만 기도해도 10분입니다. 또 전도해서 만난 영혼들, 그리고 이름은 있지만 나오지 못하는 영혼들, 거론하면 20분은 잠깐입니다. 자기 자신의 영혼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 아닙니까? 또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이고.. 한번 계산을 해보십시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의 마음에 그 영혼을 위해서 피 눈물을 흘리는 기도가 있으면 그 영혼들의 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눈물이 흐릅니다. 자기 깨어짐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없이 우리들이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내가 대신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거짓과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의지하고 그런 사람이 돼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잘 자라는 영혼들은 잘 자라기 때문에 그 은혜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기도해주고 그리고 미끌어 지려고 하는 영혼들은 미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그래야 합니다.
옛날에 교사했을 때 빨강, 파랑, 노랑 카드 만들어서 거기에 학생들 이름 적어서 빨강은 위급, 미끌어지려는 사람들, 파랑은 아주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 노랑은 위험한 아이들.. 그리고 그 영혼들을 위한 기도 자체를 교회에서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물론 해야될 일이겠지만 그것보다도 무시로 전철을 타고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언제나 영혼들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그래서 언제든지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마음이 가득찬 사람, 그런 사람으로써 기도의 눈물이 있는 사역을 감당을 해야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사역은 눈물이 결판짓습니다. 우리가 아직은 피는 흘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위해서 죽으신 그 영혼의 형상을 기억하며 그러면서 나같이 나 자신도 세우지 못하는 하잘 것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으면 나에게 영혼을 맡기셨을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 영혼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 깊은 밤 잠들기 전에도 영혼들의 생각으로 베게닛을 적시며 하루의 문을 닫는 사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영혼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교사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의 세계에 놀라운 상승을 가져옵니다. 여러분 내가 말하고 싶은데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로는 한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박차 날아올라가는 그런 거룩하고 놀라운 비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그 기도는 강팍했던 우리의 마음을 찢고 주님의 사랑에 대해 무감각하던 우리의 마음의 각질을 벗겨내고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예민하게 만들고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그 절절한 마음에 터치되게끔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게 만들고 영혼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금년에는 이런 눈물을 가지고 정말 영혼들을 위해서 사역할 수 선생님들이 모이면 영혼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 영혼 때문에 기뻐하고, 미끌어진 영혼 때문에 아파하고, 언제든 우리가 능력을 많이 받고 원숙해 지면 잘할 것이다. 그런 날은 없습니다. 목회에서 사역에 있어서 전문가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전 존재와 마음, 그리고 신앙을 걸고 하는 사역에 자신의 영혼에 순결하게 바쳐지는 그것이 훈련을 통해서 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까지 순결했던 사람이 내일 더러워 질 수 있습니다. 매순간 분초마다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매 순간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자기의 일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충족한 은혜의 부어주심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자기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나는 영혼들을 돌보는데 있어서 잡았다. 목회사역에 있어서 나는 도가 텄다.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붙들고 계실 때에만 주님의 사람입니다. 주님이 놓으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어리석게도 목회 초기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 일로 이사를 가면 몇 년 숨을 돌릴텐데..’ 이사 온 다음에는 소원은 이제 이것 사고 수리 싹 하면 안식이 찾아올 텐데.. 안식이 있었어요? 여러분 내게 안식이 있었을까요? 무슨 안식? 없었습니다. 지금은 또 그렇지요 물론 교회를 지어서 이사를 가면 안식이 있을텐데.. 그런데 몇 번 속아서 그런 생각 안갖습니다. 힘드시겠습니다. 교회짓고 이사가면 좀 나아지겠지요.. 난 속지 않습니다.
(찬양) 눈물 흘림을 몇 일 더 담고 행할 길을 다가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하실 때 영광 중에 나아가리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고생 되신 큰광 쓰고 다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주 함께 다스리시겠네..
그래서 그렇게 영혼을 위해서 많은 눈물이 녹다보면 세상도 덜 사랑하고 안 사랑한다면 거짓말이고 세상도 덜 사랑하고 왜냐하면 잠시 머무는 이 세상 헛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마지막에 고백한 것이 “내가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내 면류관이 너희라고 했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설 때에 나의 섬김을 통해 구원받은 너희가, 나의 섬김을 통해 성도가 된 너희, 너희들이 바로 나의 면류관이다.” 고 그런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깊이 사랑하고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종말론적인 의식 속에서 살아가기가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죄 죽임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이 세상에 이 죄 죽임을 이기는, 죄 죽임에 있어서 승리하는 비결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세상을 경멸하고 세상의 허무함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세상입니다. 나그네 길이니 우리에게는 완전하고 영원한 본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잠깐 가치 있는 것은 조금 가치 있는 것이고 본향의 집에서 가치 있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을 갖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사고입니다. 그래서 정말 훌륭하게 이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고, 주님 앞에 금년 한해에 여러분들이 수시로 여러분들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주일 동안 마음을 잘 지키고 살면 하나님이 예배에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혼을 위해 섬기면서도 아주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우리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허비하는 삶을 살다가 오면 그 섬김이 몇 시간의 섬김이 그렇게 힘들고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어디에서 이런 마음의 자물쇠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그 영혼들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들이 간절히 매달리며 나아갈 때 그런 간절한 기도의 생활이 여러분들을 성화시키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 속에서 자기의 깨어짐을 깊이 경험합니다. 아무것도 섬기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도 없고, 진공상태에서 여러분들이 깨어지길 원한다면 그것은 공상입니다. 처음 은혜 받을 때는 그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은혜 받은 뒤에는 철저한 성화의 삶, 섬김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깨뜨려질 수 있는 마음으로 변해갑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눈물이 잇는 기도사역을 통해서 금년 한해에 정말 놀랍도록 마음을 지켜 정말 은혜 많이 받아서 정말 이 교사의 섬김을 통해서 내가 영혼들이 나를 통해 변화된 것 보다도 내가 이 사역을 통해서 더 많이 변화되었다는 이런 놀라운 간증을 남길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