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세미나 1
연초에 아무래도 1장씩 하는 것이 좋겠다고 봅니다. 사실은 제가 조금 여유가 있었으면 분야별로 하려고 했어요. 비서실업무와 관련된 분야, 그다음에 관리 분야, 그다음에 열린 공간을 비롯해서 그다음에 문서선교부의 경영과 관련된 분야, 이렇게 나누어서 해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도저히 안나요.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그렇게 마련해 보도록 하고 총론적인 이야기들을 오늘 하고 그리고 또 이제 각론적인 각 파트별로 된 이야기들은 수시로 한번 씩 만나서 경영회의 하는 동안에 같이 이야기 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우선 오늘 저는 이 시간에 세 개정도로 크게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그래서 우선 첫째는 교회의 직원들이 왜 존재하는가? 뭐 질문이 좀 우습지만 교회의 행정파트가 왜 존재하는가? 이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직원으로서 어떤 자세로 근무했으면 좋겠는가? 하고 세 번째로는 전문가로서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들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째는 왜 직원들이 행정체제가 있고 직원들이 이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우선 이 부르심에 총체부터 우리들이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목회직이나 또 아니면 목회직이 아니라도 교회에서 교사로 섬긴다든지 뭔가 이렇게 영적이어보이는 일들은 하나님이 직접 부르시지만 그다음에 나머지 일들은 그저 자기가 맡아서 한다거나 사람이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당하지 않은 처사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언젠가 한번 요한 바운즈의 일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하늘에서 천사가 버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은 세 천사에게 하나는 왕, 하나는 사업가, 하나는 똥퍼를 하라고 보내셨다고 했죠? 그래서 황금 홀과 주판과 그다음에 똥지게, 똥바가지를 들고 보냄을 받았을 때 그 각 천사들의 마음이 달랐겠는가? 그게 요한 바운즈 목사님의 반문이었습니다. 결론은 그럴 리가 없는 것이죠. 그렇죠?
지금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주 귀하게 쓰심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게 하신다고 하는 영광스런 소명감 없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적으로 볼 때 참 하나님 앞에 별로 크게 쓰임 받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런데 그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감당해 나가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이 부르심에 근원은 비록 목회직으로 부르시는 것과는 그 방법과 그 다음에 일의 목표나 이런 것들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우리들의 소명은 사람들이 단순히 자기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연히 들어간 직장에서 느끼는 그 소명감보다는 보다 더 분명해야 될 것이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소명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힘든 일이 생길 때 무한한 위로를 줍니다. 왜냐하면 세우신 자리가 거기라고 생각이 되면 우선 흔들리지 않고 거기에 잘 참고 있는 것만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크게 상 주실 만한 그런 일입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모두 경험이 있겠지만 교사하기 싫을 때 교사로서 가만히 그 자리 지키는 일이 얼마나 지겹도록 힘든 일이었습니까? 구역장도 마찬가지고요. 하물며 우리들이 이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이 직분이 목회직하고는 종류와 차원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우리를, 여기에 나를 세워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는 이 자신의 소명의 근원에 대해서 늘 분명한 인식을 갖는 것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직원들이 무엇을 위해서 섬겨야 되느냐? 이는 교회 전체의 목적과 관련되어서 생각을 해보야야 되지요. 제가 한번 어느 출판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책을 찍었습니다. 그때도 책이 아주 잘 나가던 때인데 책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책을 써야 될 상황들이 많이 발생을 했고 그리고 이렇게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만 책을 이렇게 띠어서 내어 보내야 하는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날짜를 다투거든요. 그래서 막 밤새워서 나도 글을 쓰고 교정보는 사람도 밤새고, 편집부에서 밤새고, 난리를 쳐서 그래서 그것을 제작부에서 하청업자에게 막 독촉을 하고, 사정을 하고 막 해서 그 사람들이 토요일 날도 못 쉬고, 일요일 날도 못 쉬고, 작업을 해가지고 금요일이 무슨 공휴일이었는데 그 공휴일도 못 쉬고, 작업을 해가지고 토요일 날 한 트럭을 싣고 출판사로 온 것입니다. 납품을 하러……. 그랬더니 그 납품받는 직원이 뭐라 하냐면 누가 토요일 날 가져오라 했습니까? 우리는 토요일 쉬는데! 그래 이 사람이 트럭을 돌려가지고 가면서 욕을 욕을 하는거에요. 아니 월요일 날 가지고 오면 될 것을 토요일도 쉰다, 일요일도 쉰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빨리 만들어 달랬느냐? 그 팀들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 책 올 때를 말이죠.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전체적으로 회사가 커서라도 그랬겠지만 마치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이 기관이 전부다 연합을 안 해 가지고 자기 혼자 노니까 한쪽에서는 콩이 타듯, 팥이 타듯, 마음을 졸이면서 기다리고 한쪽에서는 그렇게 해가지고 온 것을 돌려보내서 하루를 펑크를 낸단 말이죠. 이런 것들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모두 전체적으로 자신들이 굴러가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흐리기 때문이에요.
성경에 의하면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고 많은 일군들을 세우고 뭐 이런 것들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세우셨다 이것이죠! 성도들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성도가 안 된 사람들을 성도로 온전하게 세우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성도들을 온전케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의 모든 구조들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만들어 놓으신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제 우리들의 생각에 내가 성도로 온전케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 문서선교부에서는 자신 있게 이 테이프들을 듣고 성도가 은혜를 받고 온전케 되니까 나야 진짜 온전케 하는 일에 종사를 하는구나! 그렇지만 열린 공간에서 감자빵 만드는 우리 은혜자매는 이것을 먹는다고 성도가 온전케 되나? 미국사람들의 자기들끼리 하는 웃기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서 죽지만 안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제일 신나는 스포츠가 전쟁이라는 말이 있어요. 미국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지요. 한명이 총을 쏘러 나가는데 일곱 명이 후방에서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후배 하나가 ROTC출신이거든요. 그런데 미 합동 훈련을 하면서 완전히 질려버린 게 있대요. 뭐냐 그랬더니 그 훈련을 하니까 한국 사람들은 60명 정도를 그 트럭에다가 50명씩 60명씩 무릎위에 태워가지고 가는데 걔네들은 트럭 하나에 한 열 명씩 타고 덜덜거리고 가는데 더 재미있는 것은 훈련이 끝나고 땅강아지가 다 졌는데 차를 타고 자기네들은 부대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래도 그러더래요. 그 땅강아지가 다 졌는데 저기 산 아래에서 트럭이 막 줄지어 올라오더라는 거예요. 그래 저게 무엇이냐 했더니 물 트럭이래요. 그게 뭐냐 하면 그 물 트럭이 올라와서 목욕시켜 주는 거예요. 목욕물 대주려고 올라 오는 거예요. 식수는 비행기에 USA찍힌 것(우리나라 물 안 먹거든요) 날라다 먹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죽지만 않으면 전쟁이 최고라고 그렇게 말할 만하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무엇이냐 하면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그것에 직접적으로 누군가 기여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에요. 1:7될 정도로……. 그런 것 가지고도 이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 가지고도 안 될 정도로 굉장히 많은 후원이 필요하다 이것이지요.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얽히고 설기고 다 해가지고 하는 거예요. 요즘도 있나 모르겠네요. 군대 가면 옛날에 그 건빵 주잖아요. 건빵 속에 별사탕이 들어 있잖아요. 건빵만 몇 개 먹다가 그 별사탕 하나 집어먹으면 꿀맛이란 말이죠. 그런데 사실 전쟁에 나가서 폭탄이 막 떨어지는데 그 사람은 설탕을 녹여가지고 빨간 별을 집어넣고 파란별을 집어넣어가지고 별을 만드는 중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전쟁 수행중이냐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러면 전부 다 총 들고 나가서 싸워야 될 사람들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런데 그게 아니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기능들이 조합을 이루어서 그래서 수백 개, 수천 개의 부속들이 어우러져서 그래서 교회는 성도들의 온전케 세우는 목적에 기여하는 운행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운행을! 그래서 항상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교회전체가 굴러가는 목적을 위해서 내가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또 하나는 가장 직접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러한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해 가는데 있어서 기여하는 한 부속일 뿐이다. 라고 하는 겸손함을 동시에 아울러 같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걸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교역자들이나 제직들이나 누구들에게든지 항상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교역자들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 우리들끼리 있어서 얘기하지만 약간 떨어져도 그 교역자라고하는 그 자체 속에 자존감이 깃들여 있어요. 그렇지요? 자기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니까……. 그렇지만 이선에서 일하는 여러분들은 자칫하면 내가 이게……. 회의를 느끼는 (도서관에 책도 몇 권 안되는데……. 내가 지금 대학원 나와서 여기서 일하고 있어야하나…….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거죠. 그리고 또 뭐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여러 사람이 다 적용은 아니지만 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기 때문에 자존감속에서 여러분들이 생활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나를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들이 고차원적이고 하이클라스적이고 그렇지 않아요! 뭐 그냥 되는대로 살지만 내가 항상 여러분들한테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그것을 잃어버리면 정말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온거같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사람 모두가 다 주님이 부르셔서 내가 여기 있고 비록 내가 하는 일은 직접적으로 성도들을 영적으로 (누가 여러분들을 앞에서 커피한잔 마시고 펑펑 울고 회개하면서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누가 그러겠냐고요. 마당 깨끗이 치어놓으면 누가 거기서 포복졸도하면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하면서 그러냐고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이 더 자존감을 가지고 봉사를 해야 된다고……. 그리고 나는 그 점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에게 생활을 넉넉하게 해주지는 못해도 자존감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내 나름대로 많이 노력을 하고 양보하지 않고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그런 정신들을 모든 교회의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해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마지막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아까 얘기했듯이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직접적인 사역은 교역이에요. 교역을 통해서 성도들이 직접적으로 온전해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더더욱 그만두었으니까 옛날에 보면 직원들이 성도들을 가르치려다가 가끔 성도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나 말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하시면 되겠어요? 이렇게 가르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은 사실은 우리들이 직원으로서 그렇게 하려고 그러면 항상 오해를 자아내게 되요. 그래서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성도들이 온전케 되는 것은 교역을 통해서 교역을 도구로 그가 성령의 은혜에 의해서 영적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감으로써 무지와 교만, 허탄함, 세상에 대한 사랑, 무절제, 예의 없음, 이런 것들로부터 다 벗어나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이렇게 자라져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주님이 은혜를 많이 주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은혜 없는 성도들의 그 무례하고, 비 신앙적이고, 어리석은 그런 것들을 인내하고 잘 참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주신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들이 교역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대로 애쓰고 고생하진만 교역자들은 교역자대로 불철주야 아주 몸부림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영혼들을 돌볼 수 있을까? 바르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몰두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양쪽에 똑같이 얘기해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어요. 양쪽 다 교역자랑 행정라인 직원들이나……. 누가 그런 얘기를 해요. 교역자들이 너무 이런 것들 협조를 안 해주어서 또 다른 얘기는 직원들이 협조를 안 해주어서…….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일에 얼마나 헌신적이고 열심히 하면 그렇게 정신이 없겠느냐?’ 그렇게 얘기를 한번 해봐라! 교역자들도 그렇게 정신없이 성도들의 온전케 하는 일들을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고, 수고한다. 이것이죠. 교육을 위해서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여기서 우리들이 두 번째로 중요한 원칙 하나를 발견하는데 뭐냐 하면 교역을 통해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니까 그러니까 이 직원들의 사역이 교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훌륭한 말하자면 지원이 되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교역자들에 의해서 모든 것들이 움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인데 교육에 의해서 그게 이루어지니까 그 교역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들이 모두 그 교역을 지원해야 된다. 라고 하는 전체적인 합의가 우리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물론 원칙과 질서 속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커다란 원칙은 그렇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교회가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결국은 교역을 온전케 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섬김을 온전케 한다. 라고 하는 얘기거든요.
그래서 제일 처음에 내가 머릿속에서 구상해낸 대부분의 것들은 말이죠. 일 자체를 위해서 고안해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청교도 스터디를 하는 가운데 무엇을 이야기했냐하면 아주 엄청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는 그 고린도전서에 보면 그 하나님의 은사에 대해서 나오잖아요? 그 특별한 은사가 12장에 죽 거론이 되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거론되는 은사가 지혜의 말씀의 은사란 말이죠. 그래서 이제 지혜의 말씀이라는 것이 말씀자체가 로고스인데 히브리말로 다바르인데 그게 히브리말로 들어가면 그게 ‘일’ 그런 뜻이 있단 말이죠. 일, 사물자체, 사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핍박이 많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는데 있어서 지혜가 필요하죠.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술술 토해내는 이런 것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일차적으로 얘기하는 것인데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만은 아니라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이 교회 속에서 소용되는 모든 지혜들이 은사 중에서 가장 뛰어난 하나님 앞에 소중한 은사라는 것이죠. 그럼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들은 그러잖아요(우리는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잘 믿기 때문에 우린 이런 것도 안한다, 저런 것도 안한다, 우리는 이것도 없다, 저것도 없다, 우리는 이런 건 안한다. 이렇게 계속하지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안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뭘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 말이야 그러면 안한다고 하는 자꾸 네거티브한쪽만 얘기하지 말고 그러면 그게 아니면 그러면 이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하는 대안을 얘기해 봐라). 그거거든요. 그것들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지혜라는 말이죠. 그 지혜의 목표 자체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길을 위해서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죠.
그러면 여러 길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교회가 설립되고 나서 여태까지 고민해왔던 것 중에 한 두 개만 예를 들지요.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초창기에 교회만 오면 사람들이 자꾸 열린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그러고, 교회에 와가지고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너무 열중해 가지고 자신들은 돌아도 보지 않는다고 하고, 자기네들끼리만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다고, 소외감을 느낀다고 그러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생각을 새가족반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교역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새가족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교회에다가 정착을 해보려고 하니까 우리교회에는 너무 안 맞아요. 그래서 우리교회가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가리킬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 고민, 고민, 고민하다가 지금 같은 체제가 형성된 것입니다. 지금 저는 자부합니다. 체제에 대해서는 전국 내로라하는 교회보다 우리교회처럼 거의 완벽할 정도로 새가족체제가 되어 있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체제를 그렇게 온 사람들을 12주로 만들어가지고 하나님과 말씀으로 그렇게 하나, 둘, 셋, 네 가지 테마를 가지고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니까 6개월 이상 걸려서 책이 나왔어요. 그것을 순서가 다시 안 맞는다고 해서 다시 다 바꾸고 테이프를 들을 때 그냥 안 되겠다고 해서 교역자들에게 다 나누어서 테이프를 들으면서 이 XXX에 초점을 맞추면서 테이프를 들으면 되겠느냐 고해서 테이프청취 가이드를 만들었어요. 그 다음에 경건도 만들고 그 다음에 어떻게 리포트를 쓰고, 어떻게 하고 해서 디자이너가 그것을 막 고민을 해서 만들어서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새가족부의 일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몰라요. 그래서 보니까 새가족의 표시명찰을 만들어야겠어요. 명찰을 만드는데……. 명찰을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꼭 재판 받으러 나가는 사람의 명찰처럼 김 아무개……. 이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또 디자인을 가지고 또 고민하는 거야. 그래서 만들어서 코팅을 한다, 그것을 사러 다닌다, 등등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누가 그것이 영혼을 섬기는 일이라 생각을 하겠느냐는 것이에요. 이 무슨 핀 사러 갔는데, 명찰을 만드는 디자인을 했는데 딱지 맞아서 다시 프린트하고 인쇄기하고 씨름을 하고, 디자인 한다고 밤을 새고……. 이런 것들이 영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영혼과 관계가 없냐는 말이에요. 이게 다 연결이 되면서 전체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 아니에요.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그다음에 전체적으로 가운을 맞춥니다. 그런데 여러분 봤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로는 (저도 눈이 꽤 까다로운 사람인데…….) 엑셀런트하다고 했어요. 그게 백화점가서 옷 가격을 붙일 때 곱하기 4를 해서 내놓는답니다. 그러면 얼마냐 하면 그게 백화점에서 시가로 얘기하면 1,320,000원짜리에요. 그게...... 330,000원이니까 그래서 이것이 과하지 않습니까? 아니다. 옷 입는 것이 흐르는 것처럼 입었을 때에 사람들이 품위가 있게 느껴지게 그렇게 해야지 말하자면 식당의 종업원 같은 유니폼이 안 되게 하자! 왜! 자존감이 다 실리게 되어야 하니까! 여러분들이 그것을 지금들은 청바지도 째고 뭐 떡복이집에 가겠지만 그렇게 여러분들이 그렇게 옷차림을 하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이렇게 생활하고 근무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 자신의 외형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여러분들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긍정적인 삶, 그리고 그리스도안의 사람을 섬기는 기쁨 속에 충만한 그 영적인 삶, 그 다음의 다른 요소는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서 자기는 힘들지만 존중히 여김을 받는 자존감 있는 사역, 이 모든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여러분 자신들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존중심을 갖도록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그렇게 형성이 안 되어 있습니다만 그 내가 아는 목사님이 나한테 전화가 와요. 직원 하나만 소개시켜달라고……. 그래서 당신교회 직원은 당신이 쓰지 왜 나보고 소개시켜달라고 그러냐니까 안하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교회에서 직원들이 너무 자긍심이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섬긴다고 하는 것으로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런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을 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국은 그런 모든 것들이 합력을 해서 성도들의 섬기는 교역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는 섬김이 온전해져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뭘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면 저 밑에까지 일이 퍼져나가는 거예요. 이번에 남편사랑 섬김의 밤을 했잖아요? 그런데 그냥 내가 고민하는 거예요. 계속……. 말씀 준비하러 갔다 오면서 그 괴로워하는 자매들, 또 금년 한해 넘기는 거예요. 자기 남편을 인도하고 싶은데……. 그래서 교회에 와서 제안을 했어요. 이런 것을 한번 해보자! 일단 발동이 걸리니까 얼마나 일이 많아요? 열린 공간에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저 밑에 식당에서 시다바리 하는 사람까지 해가지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그것들을 사용해가지고……. 우리 밥 먹으려고 한 것은 아니거든요. 밥 먹으려면 나가서 사먹지! 교회 영아부실에서 그것을 해놓고 그렇게 하느냐는 것이에요. 어제 한사람 새가족 환영회에 나왔잖아요. 부인이 아무소리 안하더니 토요일 날 ‘우리 교회 좀 갑시다! 하더래요.’교회는 왜‘ ’그냥 묻지 말고 밥만 먹고 오면 되요‘ 그래서 밥만 먹으면 되니까 ’가자‘그래서 왔어요. 십년동안 신앙생활하다 집어치운 사람이에요. 왔는데 그 사람 표현이 재미있어요. 열린 교회라고 해서 예쁘더래요. 그래서 쑥 들어왔는데, 밥을 먹는데 직감적으로 들어올 때는 내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못나갈걸…….그런 생각이 딱 들더라는 것이에요. 들어올 때는 열린 교회지만 나갈 때는 닫혔을걸!……. 아니나 다를까 열린 공간에 갔더니 그 분위기가 그게 아니에요. 아내들이 영상편지를 보냈잖아요. 그래 자기남편 구원받지 못한 것을 보고, 영상편지 촬영한 것 보고 남편한테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고, 같이 그리스도를 믿자고 하고, 당신을 위해서 매일 기도한다고 하고 그러니까 이게 감동이 된 거라. 그러고 나서 그다음 주일이 사경회 아니었어요? 사경회에 딱 왔는데 오늘 첫날부터 그대로 은혜를 받은 거예요. 죄와 은혜의 지배의 교리를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거야. 자기가 10년 동안 왜 그렇게 하나님을 떠났는지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새벽기도도 나오고, 금요철야기도도 나오고, 그러니까 그 부인이 얼마나 행복한지? 부인은 아직 새가족반에 있어요. 근데 그 남편이 말이지 옛 신앙이 다시 살아나요. 그러니까 이러한 목적을 위한 것이 교역자 혼자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역자들은 직접 동기만 제공할 뿐이고 그 많은 뒤치다꺼리들이 그 많은 성도들과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들의 직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직접 영혼들은 한사람도 만나보지 않았지만 미디어 팀도 고생 많이 해서 그것 다 만들었잖아요.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성도들을 섬긴다는 것은 그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고, 온전하게 하는 게 교역을 통해서 하니까 교역에 지원을 해주는데 그 교역은 결국은 많은 섬김 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런 맥락에서 우리 행정파트가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고……. 여러분들이 만약에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 깜짝 놀랄 거예요. 뭐냐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갔을 때 ’나 그것도 하고 저것도 했는데 왜 상 안줘요? ‘ 그러지만 진짜 착하고 충성되게 살았던 사람들은 ’나는 열린 공간에서 쥬스탄 것 밖에 없는데……. (네가 한 사람을 인도했다.) 테이프를 뒤집어서 구운 것밖에 없는데……. (너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을 네가 구원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급들을 결코 교역자들만이 아니라 함께 협력해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칭찬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라는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정말 당신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부어 주시고 그 영혼에 축복을 주실 것이다. 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럼 이제 자세인데 우선 첫째는 말이죠.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이 감당해 나가는 자세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주께 하듯이- 그래서 뭐냐 하면 일 말고 일 뒤에 계시는 주님, 사람 말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우리 주님의 형상, 그래서 우리가 신앙이 있을 때에는 일 뒤에 하나님이 보이고 믿음이 있을 때에는 가장 형편없는 성도라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이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형상이 보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는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염려를 많이 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변화가 안 되는데 이게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하고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고민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나 자기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면서 일 뒤에 하나님도 안보이고 그다음에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도 안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일은 일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놈의 일‘ 그러는데 이놈이 누구예요? 누구의 일이냐고요? 설명하지 않겠어요. 이놈의 일 그러는데 그것이 누구의 일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발언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말로만 해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자세가 그러하면 주님을 대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항상 그런 시야를 유지하고 가져야 된다는 것이죠. -주께 하듯이, 범사에 주께 하듯이- 나는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런 간증을 참 많이 가지고 있어요. 8년 직장생활을 했거든요. 그런데 한 3년은 정말 개떡같이 했고 늘 사표를 써가지고 다니면서 참 더럽다! 더럽다! 하면서 다른 사람은 실력이 없어서 왔고 나는 재수가 없어서 왔다. 이러면서 사는데 그 이후에는 정말 지금도 그때가 그리워질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요셉을 보면서 아주 이해가 확 풀려요. 내 자신이 마치 그 사람인 것 같은 그런 아이덴티파이를 많이 느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간증을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에요. 직장 생활 속에서. 그런데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몰라요. 그때의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게 무엇이냐 하면 ’주께 하듯’이에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성경공부 모임을 점심때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인도했거든요. 한번은 점심에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평일 날 점심때는 한사람씩 불러다가 성경 공부시켜서 양육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나는 점심시간에 더 바빴어요. 그렇게 사니까 사람들이 내가 그렇게 사역하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나를 미스터킴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전도사님! 전도사님! 부르니까 할 수 없이 그 속에서 이제 그런 것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면서 주께 하듯 하는 그것이 결국은 너무 직장생활 하면서 상사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고 그런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인정받는 것이 아니에요. 누구일 경우에? 신자일 경우에요. 하나님한테보다도 더 아부하고 그런 것을 하나님이 좋게 보시겠어요? 배신당하게 만들고 미역국 먹게 만들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주께 하듯이 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가져야 될 자세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얘기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직장이나 백화점이나 아니면 일반기업체에서는 친절, 친절, 친절을 강조하는데 그 목표가 무엇이에요? 손님을 끄는 것이에요. 내가 처음 알았는데 대단하더라고요. 여기 그 초 일급 백화점 있잖아요. 롯데나 그런데요. 그런데는 어느 정도냐 하면 직영점들이잖아요. 어느 정도냐 하면 손님하고 싸우는 소리가 나면 누가 잘못했는지는 백화점 측에서 안 묻고 방 빼라고 그런데요. 그래서 심지어 어떤 얘기까지 하냐면 어떤 사람이 그런 약점을 알고 하이브랜드에 가서 물건을 훔쳐가는 거예요. 그런데 주인이 본거에요. ’아줌마 그 물건 그거 왜 가져가세요? 그러면은 이 아줌마가 뒤로 나자빠지는 거예요. 이거 원래 내가 갖고 있던 것인데 누구를 도둑으로 모느냐고……. 하면서 막 휘저어놓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렇게 휘저어 놓으며 소리소리 지르면 거기에 있는 한 개 층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심리적으로 누구 편을 들겠느냐고요. 물건을 훔쳤다고 끌려가면 백화점편을 들겠지만 이 사람들이 사람을 잡는다고 하면서 펄펄뛰니까 직원들이 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보아도 못 잡고 내버려둔대요. 백화점은 대개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그 코너하나가 일류백화점은 그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탑브랜드가 하나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난리가 난 것이에요. 그러면 그 가게를 빼라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네는 그냥 몸만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그런 것 잘 모르지만 내 동생이 이제 그런 유통의 일을 잘 아니까 뭐라고 하냐면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는 것이에요. 자기는 소비자로서 자기가 주장할 것은 다 주장한다 이거에요. 이유는 무엇이냐니까 돈 있으니까 양복을 좋은 것을 했겠지요. 백만 원짜리를 했다나 뭐라나 했는데 여기도 줄이고 저기도 줄여서 자기 몸에 맞춰서 한해를 입은 것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해에 입으려니까 막 정전기가 오르는데 무슨 약을 해도 이게 안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가서 그랬대요. 정전기 때문에 옷을 못 입겠다. 이 정전기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그냥 참고 입으라는 이야기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바꿔 주냐? 면서 그러는 것을 무슨 소리냐! 고 한마디 딱하니까 위에서 득달같이 내려오더니 바꿔드려라 그러더래요. 일 년 입은 옷을 정전기 안 나는 다른 옷으로 바꿔주더래요. 요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에요. 사회가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이 껌벅 죽고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이유는 단순해요. 이미지와 매출이에요. 단순히……. 우리는 매출을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우리는 매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리고 그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이다 그것이죠. 오늘도 열린 공간에 손님이 안 올까봐 벌벌 떠나? 그런 것은 없어요. 어차피 남는 것도 없으니까. 하나도 안 팔려도 우리는 열어 놓는다 이거에요. 진짜야. 왜? 거기 들어와서 새벽에 성경 공부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차 한 잔도 안사 먹어도 원래 그 사람을 위해서 연 것인데요. 뭘. 언제 그것 팔아가지고 우리들이 돈 벌으려고 해서 한 것인가요? 하다가 보니까 하도 많이 사먹어서……. (돈이 좀 남긴 남지…….)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목적이냐 이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우리들이 보면서 우리의 목표는 주께 하듯이 그렇게 성도들을 섬기는 그런 것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면서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서…….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어느 날 했어요. 어느 날 직장생활을 하는데 불만이 많고 힘이 들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내 인생 중에서 자는 시간을 빼어놓으니까 85%가 직장에 가든지, 직장과 관련됐든지, 직장에 있든지, 직장을 끝나고 오든지 그러더라고요. 그때 어린마음에 그렇게 하면 85%영역에서 내가 무참하게 실패하고 15%의 영역에서는 성공한다고 그래도 내 인생을 정말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서부터 고민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되는가? 그런데 왜 그렇게 직장생활이 우울하고 힘들어지는지 가만히 보니까 일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사람들 때문에 자꾸 삐끼는 거야. 사람들 때문에……. 다 나 같아서 질서를 지키며 살면 되는데 가끔 여기에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실 나를 깎는 하나님의 도구거든요. 이 사람은 돈 생기는 일은 다 자기 것이라고 하고 일밖에 없는 것은 다 내 것이라고 주는 거예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있는데 말이죠. 만날 싸우는데 네 일을 왜 나보고 하라고 그래? 만날 싸우는 게 그거거든요. 그다음에 뭐냐 하면 뭐 좀 생기고 그다음에 돈이 직접 안 생겨도 사람들에게 뭔가 권한을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래서 기관끼리 싸우면 법정까지 간단 말이에요. 관공서인데도……. 그러니까 그렇게 되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나한테 와서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은혜도 받고 공부를 잘해요. 그런데 가가지고 대판거리 싸우는 것이야. 지난주까지 전도했는데……. 그러면 이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런데 가만히 보면 또 그 사람이 억울해. 사실은 그 사람이 너무한 거야. 그 다음에 내가 원칙을 세웠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나는 절대 업무를 가지고 분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라고 그러면 현저하게 내가 하면 안 될 일을 제외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자기일 갖고 와서 다 네 것이다 하고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도망가게 그렇게 사회체제가 되어있지는 않잖아요. 그 어느 날 또 그래요. 갑자기 와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몇 년 전의 문서를 보니까 이것은 당신이 맡았던 옛날사람이 했는데……. 다 네가 맡아라. 아 그래요. 싸우다가 받으면 뭐해요. 아 그래요 내가 해주지 가져와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후 한 몇 개월쯤 했나 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모두와의 관계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렇죠? 그때 그 일이 엄청나게 많으냐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섬긴다는 마음으로 그거 내가 해줄게. 그러다가 이 사람이 창피당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6월 달에 감사가 내려왔어요. 감사를 쭉 하는데……. 내 일을 쭉 감사를 하다가 그 사람의 일을 감사를 했어요. 그런데 ‘당신 이것 어디 있느냐?’ 하니까 ‘그거 제가 안했는데요.’ ‘그것을 왜 당신이 안했느냐?’ ‘그것은 저 사람이 해요.’ 그러니까 내가 ‘그것은 제가 하고 있는데요. ‘ 거기서 감사위원이 막 소리 소리를 지르는 거야.’도대체 당신은 당신일도 모르냐?’ ‘이일, 이일이 이렇게 연관이 되는데 이것만 딱 잘라서 저 사람보고 하라고 하냐? ‘ 그래서 내가 또 XX했죠.’원래는 이 사람이 했었는데 나중에 상황이 돼서 이렇게 왔다‘ 그랬더니 ’계속해서 했어야지! 그것을 왜 그렇게 하냐? ‘고 막 야단을 치는 거야. 그날 그냥 와서 ’그일 그냥 도로 줘‘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이 사람 속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 경험이 있는 거야. 그 다음에 또 가져오는 거야.’ 내가 해주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잘 생각해 또 내년에 혼나지 말고……. ‘ 그렇게 하면서 관계가 좋아지는 거예요. 어렵게 말이죠. 그렇게 하면서 살아요. 그것이 얼마의 차이냐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30분 늦게 퇴근하고 30분 일찍 출근하고 그런 정도의 차이지 별거 아니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그때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 무엇이냐면 저 사람을 주님이라고 생각하자. 주님이라고……. 주님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이 일이 많으시다는 데…….’가져와라.’ 내가 한 30분 늦게 가지 뭐. 그렇게 일을 다 해요. 직장을 그만두고 5년이 지났어요. 누가 와 가지고 하는 얘기가 무엇이냐면 벌써 몇 번을 이제 그 사람이 바뀌었지요. 문서 창구를 다 보더니 하는 얘기가 무엇이냐면 ‘5년 전에 있었던 이 사람이 누구냐?’ 누군지 한번 만나고 싶대요. 이 사람을 이 상황에 왜 자기가 일을 찾아서 했는지 모르겠대요. 그래서 얘기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주께 하듯이 하면서도 이 세상에 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도 참 중요하다. 그런 생각이에요.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옛날에 한번 우리교회에 있던 직원의 이야기인데 참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분이 꽤 많은 돈인데 중간에 무엇이 잘못되었어요. 그러니까 돈을 받았는데 그 돈이 잘못되었으니까 사람이 인지상정으로 그 다음에 거기까지 갔었는데 거기서 실종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몇 달이 지난 거예요. 나중에 ‘그것이 어떻게 되었느냐? ‘ 했더니 보니까 이게 어디로 없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없어졌으니까 사람들이 생각할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그래서 딱 잘라서 말했어요.’ 난 근거는 없지만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입증은 못하지만 그럴 사람이라면 내가 직원으로 쓰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보면 뭔가 해결이 날 것이다. ‘ 나중에 알고 보니까 누구를 주고 영수증을 안 받았는데 돈 받은 사람이 돈 받은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것이에요. 그러더니 나중에 가서 다 얘기하고 상기시키고 그러니까 그다음에는 그 사람이 자기가 받았다는 사실을 실토를 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왜냐하면 한칼에 치면 사람을 잃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인류의 모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야. 여기서 주의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면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이 좌절되는 것들은 잘못된 것이라 이거죠. 그런데 대개 사람들이 이것, 이것 두 개를 잘 이렇게 조화시켜서 갖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수이고, 이것 아니면 이것이야. 그래서 사람이 널널하고 사람들이 다 좋다고 그러는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을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으면 고달파요. 왜냐하면 너무 인심이 좋아가지고 오지랖이 넓어서 자기일은 내버려두고 남의 일을 열심히 해줘. 그러니 일이 안 돼. 그런데 또 일에 철저한 사람은 항상 적이 많아.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하면 회사에서야 상사, 동료 이렇게 만나지만 여기서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 형제자매로 만났고 목표자체가 나눠지고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 아니에요. 그러면 그것을 생각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고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일 자체는 아주 삭막하거든요. 그러니까 아까 경화자매가 얘기했듯이 사람 속에서 쉼의 여유를 갖게 만들어주고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서 가끔 내가 어디 교수로 있을 때 그랬나? 언제 한번 어느 동료교수한테 엽서를 하나 받았어요. 여자는 아니고 남자지. 딱 나오는 게 뭐라 하냐면 ’교수님하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된 것이 무한한 영광입니다. 매우 기쁩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거야!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래서 나도 편지를 썼지. ’나도 동감이다.‘ 그리고 그 사람 얘기만 나오면 계속 그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무한한 힘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참 재미있는 것이 '야 너 참 예쁘다’ 이렇게 칭찬받는 것보다 ‘야 누가 그러는데 너 예쁘대’ 어느 쪽이 더 기분이 좋아요? 후자가 훨씬 기분이 좋아요. 의심할 여지가 없잖아요. 이게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웃기냐 하면 조금 있다가 우리가 XXX 갈 것인데 이러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이음식이 얼마나 힘든지 통계가 나왔답니다. 음식이 아주 맛있으면 6명까지 전파되는데 음식의 맛이 개떡 같으면 순식간에 16명에게 전파된대요. 16명까지……. 먹으러 가봐. 그럴 때는 권위가 소극적이잖아요. 가봐! 그 집 괜찮아 후회 안할 거야. 그 정도지만 ‘가봐 없으면 내가 돈이라도 대줄게’ 그렇게 다르다는 것이죠. 그런데 자기가 거기서 질렸다고 그러면 거기를 왜가니? 병신, 바보, 거기 갈 바에야 나는 라면을 끊여먹겠다. 절대 가지마라. 차라리 내가 사줄게……. 이러면서 사람들이 못 가게 하는 것이 굉장히 적극적이란 말이에요. 교회도 마찬가지잖아요. ‘그 교회 꼭 가봐’ 이런 것이 호소력이 강해요? ‘야! 말도 하지 마 절대 가지마! 절대 못써. 어느 것이 호소력이 강해요? 후자가 훨씬 강하거든. 그러니까 롱펠로우의 시에 보면 세레나데에 나오잖아요. 하늘을 향해 화살을 쐈더니 없어졌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무에 꽉 꽂혀있는 거예요. 나무는 나를 상징한 것이죠. 노래를 날려 보냈더니 허공중에 흩어졌는데 알고 보니까 내 친구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거예요. 그 편지를 받기 전에는 그 교수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지나가나보다 그랬는데……. 묻기라도 했는데 그냥 대답도 안하고 지나가면 뭐가 생겨요?’아! 교만하구나! 지가 박사면 박사지‘ 이렇게 생각할거 아니에요? 그런데 편지를 딱 보냈어요. ’교수님 같은 분하고 이렇게 한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어서 참 무한한 영광입니다. 기쁩니다. ‘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그랬나! 무슨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그걸 해서 보냈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마음이 감동되었으면 그렇게 써요. 그래서 나도 크리스마스 날 아니어도 하나 써서 책하고 해서 하나 보냈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상이 있는 게 뭐냐 하면 아 아무개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박사를 받은 사람인데 참 겸손한 사람이다. 그 인상이 아직까지 (그 편지 주었다고 해서 막 얼싸안고 물고 빨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는 거예요. 그 교수 그러면 ’아 참 신실하고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어도 겸손한 그분이구나! 이렇게 가슴에 울려 퍼지는 거예요. 그게 롱펠로우가 이야기한 내 친구속의 마음에 울려 퍼지는 그 노래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어느 책에서 보았나?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거예요.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터놓고 말이죠. 야, 너 참 좋다! 그것도 웃기는 얘기에요. 그런데 좋은 인생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그 자매 참 좋다. 이렇게 하니까 물론 신문에 이렇게 저렇게 내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이렇게 해서 울려 퍼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서로 이렇게 깊이 사랑하는 그러는 것이죠.
일이 이렇게 세분화되다보면 여러분 이렇게 세미나 하는 것도 한 2년 뒤에는 힘들어. 그렇죠? 교역자회의도 지금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고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 아니에요. 다 한사람씩 해야 하니까. 그다음에 자꾸 쪼개지면서 어떻게 되냐면 자꾸 벽들이 생겨나요. 그런 것들을 넘나들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자체에 대한 관심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딱 오면 두 종류의 사람이잖아요. 어휴! 저 또 무엇을 빌리러 오나? 또 무엇을 부탁하려고 오나? 그런데 와서 막 미소를 지으면서 ‘언니 잘 있었어?’ 그러니까 ‘왜 안하던 짓을 하나?’ ‘나 부탁이 있는데…….’ 속으로 그럼 그렇지! 이렇게 되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 칸트가 얘기했듯이 친구를 사귀되 친구를 사귀는 것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 친구자체가 목적이 되게끔 할 때에 존중심을 받고 그중에서도 자존감을 얻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가지고 말하자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렇게 (전도사로 있을 때 큰 충격이었어요. 교회의 자매 하나가 말이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질문 해봤어요. ‘전도사님! 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무엇을 부탁하려고 하는데요. ‘저 다름이 아니라 지난주간에 혹시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시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특별히 발견하시고 은혜 받으신 것이 있으면 제가 요즘 곤고한데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아 얼마나 사랑스럽겠어요? 얼굴을 못생겼지만……. 얼마나 사랑스럽겠어요? 전도사인데……. 와가지고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데 와가지고 ‘제가 곤고한데 전도사님 지난주 한 주간 하나님과 동행하셨죠? 하나님이 당신자신에 대해서 뭔가를 가르쳐 주셨겠네요. 저에게도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 주시면 제게 힘이 될 것 같아요.’ 한 시간 동안 가르쳐 주었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그리고 좋은 책이 있으면 그 다음부터 ‘읽어봐라’이렇게 책 소개도 써서 교회를 떠났는데도 편지를 써서 편지봉투에 넣어가지고 우편으로 보내주고 말이에요. 지금은 하도 오래되어서 안 해요. 그렇게 말이죠.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사랑이에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관심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으키고 일으키고 그러면서 서로 사랑해요. 그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만드시려고 했던 공동체란 말이에요. 그런 속에서 일이 되어 나가는 거라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 속에서 겸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신앙을 지키면서 해야 돼요. 그래서 내가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방송실에 있는 사람들 특히 무슨 얘기냐 하면 청와대에서 한 10년 전에 화재진압훈련을 했어요. 비상시에 불이 났다고 치고 그래가지고 화재진압 훈련을 했는데 결국은 진짜 소방대가 떴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 불을 놨는데 그 불을 끄려고 했는데 이게 뭔가 작동이 안 된 거예요. 그랬듯이 대장간에서 쓸 칼이 없다고……. 만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이러다가 보면 진짜 거기로부터 멀어지고 만날 성가대하다 보면 진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럴 위험이 인간에게 얼마든지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문서선교부에도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기술이 지금 엄청나죠. 옛날에는 효시가 무엇이었냐 하면 교회에서 어디 나가서 외부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것을 누구를 빌려주었더니 어느 학생이 그것을 너무 은혜가 된다고 해서 나 그것 좀 복사해주면 안되겠느냐 해서 그때 내가 기독신학대학에 있을 때 복사기 요만한 것 450,000원짜리 사다가 그것을 구운 사람이 김순애집사야! 그것을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해서 굽는데 구을 새가 없이 팔리는 거야. 한 주일에 2600개가 팔렸어. 그러니까 그냥 다리가 아파서 어쩔 줄 모르도록……. 그래서 조금 더 큰 것을 사놓고……. 그러다가 교회가 생겨서 옮긴 것이지……. 그런데 지금은 기술들이 너무 좋아서 기계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부르조아틱하게 개선이 된 것이죠 지금은……. 그런데 아쉬운 것은 솔직하게 옛날에 있었던 그 감사들은 뭐가 있었느냐하면 지금보다 테이프는 정교하게 못 만들어도 디자인도 후지고 체계도 없었지만 이것 한 개라고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겠다. 라고 하는 게 너무 애절하고 간절했어요. 그래서 사람이 무엇을 사러 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왜 테이프를 사시려고 그래요?’ ‘기도가 안 되고 그래요.’ 그러면 ‘이것을 들으시면 되요.’ 그러면서 이것을 주잖아요. 그래서 그리고 이것을 들으시고 그 다음에 더 은혜를 받으시면 이것을 들으시고 하여튼 한번 들어오면 서너 세트를 안겨서 내보냈단 말이에요. 어떻게 해서든 지간에……. 그런데 그런 것이 말하자면 하나의 애착이거든요. 그런데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에요. 뭐냐 하면 우리는 조목사님과 의논을 해서 테이프를 좀 받든지 해서 개인적으로 자기가 작업을 해야 해요. 그것이요 집중하기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훈련을 많이 하면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쉽지는 않다는 것이에요. 예배자의 마음이 되기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상적으로 하려면 예배위원장 잘하잖아요. 일부에 나오잖아요. 일부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에요. 2부에 봉사하고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게 그런 것들이 어떨 때 위험하냐하면 내 자신의 영적인 요구가 감퇴될 때에 그런 식의 구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제 그 구조를 이겨내 가지고 뒤로 물러가려고 하는 나를 나 자신의 신앙의 퇴보를 정당화 해버리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줄줄 미끄러지는 것이죠. 그래가지고 그 얼마나 웃겨요. 자기는 열심히 만들어 놓으면 회개는 딴 사람이 하는 것이에요. 자기는 그것과는 상관이 없고……. 죄죽임의 교리를 열심히 만들어 놓고 자기는 열심히 죄를 짓고 그 다음에 은혜의 지배아래 살라고 열심히 테이프를 만들어 놓고 자기는 죄의 지배아래 살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역사가 뭔가 자기를 수단으로 해서 자기를 스쳐만 갈 뿐이지 자신 속에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그게 위험신호라고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의 신앙은 망치는 것이에요.
오늘도 오웬을 공부하다 보니까 오웬이 뭐라 하냐면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는 가장 훌륭한 길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 증거가 디모데 서에 나오잖아요.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 축복이 주어지는데 믿음의 담대함과 신앙의 아름다운 지위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그 믿음을 북돋아 주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신앙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나빠지는 사람이 있죠. 그게 뭐냐 하면 이 일을 대하는 원리 자체가 올바르냐? 그릇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