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목회자부부 세미나 개강예배
녹취자 : 김세나
오늘 이 고린도후서는 사도바울이 고난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던 기록들이 풍부하게 나타나있는 서신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고린도 교회를 야단을 쳤는데 그 편지를 받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근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도바울이 이 편지 속에서는 잘 교회를 섬기고 일하도록 격려하면서 또 위로하는 이야기들도 여기에 실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자신들이 당한 고난과 그 큰 어려움을 1장에서 토로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복음사역의 본질을 이해시키려고 하는데 그 때에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게 누구를 위한 일이냐 하는 것이죠.
자,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렇죠. 누가 사람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습니다. 도대체 그 소명이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어느날 신비한 음성을 통해 그 소명이 오는 것만으로는 그 소명을 신뢰할 수 없죠. 수명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식속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 우리가 선명히 인격적으로 알 수 있도록 옵니다. 이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알 수 있도록 오는 이 소명이라는 게 뭡니까. 우리가 언제 예수 믿을 때, 목회하려고 꿈꾼 적 있고 하나님이 불러 주셔서 목회하게 하셨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소원을 품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 적 있습니까. 그것 아니거든요. 우리가 그저 주님이 좋아서 신앙생활하고 믿음생활 했을 뿐인데 믿음생활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아주 크게 주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에 깊이 감복하게 되니까 이제 나 혼자 예수님을 믿고 이 사랑 안에 사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조금 우리에게 임할 때는 행복하지만, 주님의 사랑이 크게 임할 때 우리는 기쁨과 함께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에요. 나는 이런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깨달았는데 아직도 이것을 알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저 불쌍한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라는 마음이 조금 있으면 교회 가서 열심히 배우고 전도하고 목회자 말 잘 들어서 교회 봉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커서 도저히 다른 직업을 하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고, 밥을 먹든지, 직장에 가든지, 잠을 자기 위해 잠자리에 들어도 이 영혼의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무엇이든지 그 영혼에게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지 않으면 내가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그러한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게 소명이에요. 여러분들이 어떤 분은 도시에, 어떤 분은 시골에 목회하고 계시지만 그 목회지는 달라도 소명은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각기 자기의 목회지에 불러 주신 거죠. 왜 그러셨는지 난 모릅니다. 저는 맨 처음에 소명 받았을 때, 모두 다 접고 시골에 가서 그저 농촌이나 어촌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다 죽을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강남에다가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각자 여기저기에 세워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소명입니다.
자, 우리가 그러면 이것을 분명히 합시다. 주님이 세워주셔서 우리에게 사명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사명하고 떨어질 수 없습니다. 자, 김 목사가 한 20년 살다가 제가 죽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죽고 나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평가를 받을 때, 노래 잘 한다. 그게 하나님이 나를 평가해 주시는 것과 뭔 상관이 있습니까. 아, 재주가 뛰어나서 공부를 잘 하더라. 그게 뭔 상관이 있습니까. 중요한 건, 그 노래, 그 공부, 그 건강 그리고 그 상식, 그 모든 재능을 그것은 수단이고 내가 너에게 맡긴 것은 열린 교회다. 너가 어떻게 목회를 했냐. 그게 니 인생이다. 그게 주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만약에 우리의 목회가 찌그러지고 교회가 병들었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식으로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교회가 우리가 그 목회지는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는 우리의 인생의 성적표에요. 그렇지만, 이것은 교회의 크기나 아니면 교회의 크기나 성도의 숫자나, 아니면 목회자가 받은 학위나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죠.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신 동기 자체가 마태복음 9장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하는 이 슬픈 마음, 그게 말하자면 희랍어에 의하면 창자가 끊어지는 것같이 아파하셨으니. 그런 뜻이에요. 그 마음 때문에 10장에서,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을 이제 사도로 파송하시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이 그렇게 예수님이 파송하셨잖아요.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모일 때는 사람이 밟힐 것 같이 인파가 붐볐고, 시골에 내려가셔서 복음을 전하실 때는 사람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가롭게도 한 사람, 우물가 여인 앉혀놓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기도 하셨잖아요. 문제는 그것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이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서 작더라도 건강한 교회, 교인은 말귀를 못 알아듣더라도 목회자인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교회가 되느냐. 그것이 우리의 목회의 꿈이요, 그리고 우리의 목회의 목표다 라고 하는 것이죠.
오늘 성경에 보니까 사도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전하러 다닐 때, 환란을 많이 당했다 그랬습니다. 이 환란도 사실은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도 몇 통씩 사진을 동봉한 편지들이 날라 와요. 열린교회 목사님, 우리 가족이 굶을 지경이 되었으니까 돈을 좀 보내 주십시오. 사모가 입원을 해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비가 필요하니 전국에 있는 목회자들 조금씩이라도 보태 주십시오. 우리 교회 건물을 지어야 되는데 빚만 있고 돈이 없으니 단원 100만원이라도 좀 보태 주십시오. 수없는 편지가 날라 와요. 심지어는 우리 아이가 대학에 붙었는데 등록금이 없으니 도와주십시오. 이것도 환란이죠. 그 물질로 인한 그 고통이 얼마나 큰 환란이겠고, 자기 자식을 목회자는 소명이 있어서 이 길을 간다 할지라도 자식들을 옳게 교육 시키지 못하는 그 부모의 마음에 그 상심함과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 것 따지면 도시에 있는 교회는 농촌에 있는 교회보다 조금 나을지는 모르죠. 그러나 어디 목회에서 환란이 그것만 있겠습니까.
(예화) 최근에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천명 좀 넘는 교회의 청빙을 받아가서 한 10년 목회하면서 교인이 3천 명 쯤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사실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 보면 그 목회자가 가서 교회는 할 만큼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힘든 일이 있으니까 그러면 내가 그만 두겠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와요. 그래서 뭐냐 하면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그러면 그만 두겠습니다 라고 할 때에는 그 10년이 얼마나 괴로운 세월이면 그것을 떠나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이전에 목회하시던 분들 보면 그렇게 충성스럽게 교회에서 봉사했는데 인생의 말년에 암이 걸리고 심지어는 침해에 걸리고 우울증이 걸리고 해서 아주 불우하게 인생을 마치는 목사님들 많이 뵙고, 한경직 목사님도 오래 사셨지만 말년은 그렇게 행복하시지 않으셨거든요. 그런 것들이 결국은 목회를 하면서 당하는 모든 정신적인 고통과 시련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화) 시골 길을 가던 어느 목사님이 고목나무 하나를 발견했대요. 구멍이 뻥 뚫어진 고목나무 앞에서 나무를 어루만지더니 야, 이놈아 너는 목회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가슴에 구멍이 났냐. 그랬대요.
저도 15년을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살아온 날들 중에서 보람 있고 기쁜 날들이 왜 없겠습니까 만은 15년을 그대로 반복하겠느냐 하면 나는 싫어요. 너무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제가 한참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제가 6개월을 매일 하나님 오늘 저녁에 저를 데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때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그 위안을 얻던 찬송이 있어요.
(찬송)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많은 어려움과 환란이 있어요.
(예화) 어느날 교회마당에 있는데 후배가 찾아와서 그래요. 선배님. 왜. 참 선배님은 부럽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 모두 선배님을 부러워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행복하실 것 같아서요. 왜. 선배님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야, 이 사람아. 자네는 유학을 가서 청교도까지 공부하고 왔다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생각을 갖냐.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그냥 두실 것 같으냐. 끊임없는 시련과 환란을 당하게 하셔서 그렇게 그 사람을 달구지 아니하시면 말씀의 샘이 말라요. 기도의 샘이 말라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는 뭐라 그랬냐 하면 우리가 환란을 당해도 너희를 위한 환란이다. 무슨 뜻이에요. 만약에 이 소명이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할 수 있을 때 하고 힘들면 집어 치우면 되죠. 그런데 이 소명이 주님께로부터 온 소명이고 유익은 자기의 양 떼들이 유익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께 소명이 사로잡힌 목회자가 생겨나면 예수님이 덕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성도들이 덕을 보는 거예요. 부인이 예수 잘 믿고 착실한 신자가 되면 덕은 주님이 보는 게 아니라 남편이 보잖아요. 남편이 봐요.
(예화) 목회할 때 전도사 때 일이었어요. 집사람하고 신혼 때 같이 사는데, 아 이게 우리 집사람이 기도모임에만 갔다오면 사람이 며칠 동안 사글사글 해져. 그래서 맨날 기도모임 가라고 내가. 아 오늘은 좀 쉬었으면 좋겠네. 아니 가야지 무슨 소리야. 사모님들하고 모여서 기도하는데 얼른 가. 밥도 하고, 그것은 내가 할테니까 얼른 갔다 와. 은혜는 주님이 주셔도 덕은 성도들이 봅니다. 자, 보십시오. 자식하고 똑같지 않습니까. 자, 아직까지도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궁리 저런 궁리 하지만, 시집가서 애 낳으면 이제는 거기에 묶인 거죠.
그게 바로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환란을 많이 당하고 시련을 당해도 결국은 그렇게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이 성도들을 목회하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할 때에 그 때에 떠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그 시련을 그대로 당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 같아서는 나도 한번 성깔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인간이니까 한번 확 쏟아놔 버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주님의 몸이 아파요. 그러니까 어리석은 성도는 그 이치를 몰라서 나에게 고통을 주고 교회에 상처를 주어도 나는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면서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이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다보면 유익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예수 당하신 고난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요. 그래서 같이 신학을 공부해도 목회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과 그냥 책만 가지고 공부한 사람들 사이에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학문의 질적인 차이가 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환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의 고난을 너희가 한번 알아 보거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목회의 모든 비옥함과 풍부하고 기름진 것들은 어디에서 나오냐 하면 나와 예수님이 맺은 관계에서 나오는 거예요.
(예화) 오늘도 목회전문대학원, 총신 목회전문대학원 학생들이 여기 와서 수련회를 가졌어요. 한 시간 반, 두 시간 정도 강의를 했더니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 거예요. 목사님, 설교를 잘 하는 비결이 뭡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설교란, 요리하고 비슷하다. 재료가 워낙 싱싱하고 좋으면 요리 솜씨가 별로 필요 없다. 고기가, 고기가, 소고기가 1킬로그램에 18만원서부터 1500원까지 있어요. 1500원짜리는 온갖 양념을 들이 붇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어요. 저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18만원짜리가 있답니다. 1킬로에. 그 고기는 떠다가 아무 필요도 없이, 그냥 떠다가 숯불에다가 구워서 소금만 뿌리면 누구든지 최고로 치는 한우 고기의 맛이 되는 거죠. 재능이 좀 없고 기술이 좀 없어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의미를 깨닫고 거기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서 자기가 아주 통전하게 깨뜨려지고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충만하게 무장될 때 비록 능란한 말재주는 없어도 펼쳐놓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의미는 이런 의미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가 이것을 깨달았는데 이러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고 눈물이 났습니다. 간증만 하고 내려와도 온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놀라운 일들을 환란을 당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냥 본성으로 참으면 이게 한이 돼. 그래서 사모님들 중에 그렇게 암에 걸린 사람이 많은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돼. 그러나, 그러나, 그렇지만 이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에 예수님이 날 위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멸시와 욕을 참고 인내하고 오래 견디면서 이길 때 그 때 하나님의 큰 위로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내가 교회를 섬기고 목회를 할 때 이렇게 아프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셨을까 생각하니까 이게 우리의 목회의 생명을 주는 거예요. 생명을 주는 거예요.
(예화) 저도 사실 거기까지 가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디에서 기록에서 읽었는데, 저기 영국 북쪽 지방에서 아래까지 생선을 실은 배가 달린답니다. 여러분들 청어는 보셨죠. 청어. 청어가 그 겨울철에 나는데 맛이 잔가시가 많아서 그런지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게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5-6시간씩 달려오니까 이게 청어가 아주 신경질적인 고기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못 견디고 자꾸 죽는 거예요. 그런데 살아있는 싱싱한 것을 가져와야 값을 많이 받는데 이게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머리를 썼어요. 그 청어를 잡아먹는 물고기 가운데 바다 메기라는 것이 있답니다. 이놈을 한 두 마리를 큰 통에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내려오면서 바다 메기가 풍덩하고 들어왔더니 도시락 천지야. 그러니까 이게 밤새도록 돌아다니면서 이것을 잡아먹는 거예요. 그까짓 게 요만한 바다 메기가 잡아먹어봐야 몇 마리나 먹겠어요. 그러니까 이 청어들이 이게 이제 살려고 막 막 미쳐서 몸부림을 치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시간이 없어요. 결국은 런던까지 왔는데 생생하게 펄펄 뛰는 청어가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회자에게 있어서 환란은 괴롭지만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우리 인간은 그 환란과 시련이 없으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는 감사하면서 아, 주님께 더 많이 매달리라는 것이구나. 주님을 더 의지하라는 거구나. 그런 거죠. 그런데 그렇게 주님 생각을 하고 나면 그래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힘을 얻게 되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항상 이렇게 시련만 당하게 하시느냐. 그렇지 않거든요. 항상 하나님이 시련만 당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를 주시는 거죠.
(예화) 저는 지금도 그런 위로가 늘 있어요. 이제 설교를 하고 났는데 아무 효과가 없는 것같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게 몇 주 계속 되면 마음이 너무 괴롭고 또 사람이 목회자가 설교준비만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뭐 누가 어쨌대더라 저쨌대더라. 교회에 돈이 없대더라. 무슨 사고가 났대더라. 막 괴로운 소식들이 들려요. 어떤 때는 그래요. 그래 나는 정말 부족하고 능력이 없구나. 이만큼 한 것도 주님께 감사하지. 이제 내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아, 나는 정말 이 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리고 낙심이 되어 있을 때는 하나님이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대표적인 위로가 뭐냐 하면 목회도 못하고, 내가 무슨 능력이 있겠나 그리고 자신감을 다 잃어버리는데 그때 우연히 심방을 갔더니 자기가 이 교회 와서 목사님 설교를 듣고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은혜를 받고 제가 새사람이 되어서 지금은 주님만을 정말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 소식을 들을 때 갈때에는 천근만근 무겁게 가방을 땅에 끌 듯이 심방을 갔는데 나올 때는 아 그렇구나.
(찬양)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예화) 언제도 이것도 참 설교라고 하고 예배를 끝냈나 그리고 걸어서 나오는데 열린공간을 갔는데, 어떤 사람이 목사님, 이분들이 목사님께 꼭 인사드리고 싶어합니다. 누구요. 저희는 영국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해요. 그런데 뭐요.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만나면, 부인이 하는 얘기에요. 제가 목사님을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뭐요. 휴지 값 내놓으시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 남편이 절대로 회심을 안 하던 날탱이였는데 인터넷에서 울려퍼지던 설교를 듣고 회심을 해서 1년 반째 눈물로 인터넷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남편이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낙심했었던 마음이 싹 사라지면서 마음의 위로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셔요. 그래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못 견디는지를 탁 아셔요.
(예화) 한번은 너무 낙심이 되고 허리도 아파가지고 다리를 질질 끌고 그렇게 다니는데 아 정말 괴로워요. 그런데 어느날 주일인데 재정부 장로님이 왔어요. 목사님, 이것 받으십시오 하면서 봉투를 하나 줘요. 이게 뭐냐 그러니까 목사님 앞으로 온 지정 헌금입니다. 우리 교회 지정헌금은 대게 가난한 사람들 주려고 하는 헌금이거든요. 아니 내가 구제 대상주도 아닌데 무슨 날. 그래도 나는 모릅니다. 목사님 앞으로 지정헌금이 왔으니까 목사님 받으십시오. 알았다 두고 가라. 그러고 나서 간 다음에 뭐가 들었나 펴봤더니 깨끗한 돈 100만원짜리를 엑스자로 묶었어요. 그리고 거기 속에 100만원은 큰 관심도 아니고, 속에 편지가 하나 들었어요. 편지도 없고 시를 하나 썼어요. 그런데 시의 제목이 뭐냐 하면 내가 돈이 많다면, 그게 제목이에요. 누가 썼는지 아직도 몰라요. 내가 돈이 많다면. 내가 돈이 많다면 내가 돈이 많다면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시야. 내가 돈이 많다면 목사님 책도 사드리고 싶고 내가 돈이 많다면 목사님 병원에 가서 허리도 고쳐 드리고 싶고 내가 돈이 많다면 그리고 한 장 내내 내가 돈이 많다면 이라고 썼어요. 아마 그 사람은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나 봐요. 뭐, 100만원이 없겠으며 없다고 한들 100만원이 나에게 무슨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마음, 내가 이렇게 힘들 때 모든 교인들은 아니지만 그 중의 어떤 교인이 내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강대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한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돕고 싶어 하는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진 성도가 비록 돈이 없어서, 내가 돈이 많다면 이라는 시를 쓸 형편 밖에는 안 되지만, 그러나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거지. 마음 속에 큰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가 넘어져도 하나님이 우리가 까불고 뛸 때는 가끔 발을 걸어서 우리가 넘어지게 하실 적은 있어도 우리가 막상 넘어지면 하나님이 군화발로 밟아버리신 적은 없어요. 거기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거죠.
(찬양)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이 길을 들어선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대접받으려고 이 길을 들어선 것도 아니죠. 주님만이 나의 위로이시고 나의 힘이십니다. 아멘 하고 나면 또 몇 달 목회 할만 해요. 아니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죽는 거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 보시기에는 고난의 길을 걸어서 시련의 길을 지나서 사람 앞에 다 털어놓지 못한 눈물젖은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안고 주님 한분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맡겨주신 그 곳에서 한 영혼이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온 마음을 다해서 그렇게 살아갈 때 그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상급이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