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 개강예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 126:5-6)
녹취자 : 김세나
제가 26살 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어떻게 회피할 수 없는 부르심에 의해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을 때 그 때 사실은 무슨 다른 아무 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런 저런 꿈이 많았지만 다 그만 두고 어차피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으니까 가장 가기 싫었던 길, 교인들 코 묻은 돈이나 먹고 사는 그런 길로 안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으니까 이제 나는 이 안에서 무슨 희망이나 좋은 것 다 필요 없고 그냥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가 죽어야 겠다. 그래서 그 때 꿈 꾼 게 그저 하나님이 나를 어느 농촌이나 어촌에 보내 주시면 그냥 열심히 동네 사람들과 같이 살다가 그렇게 복음 전하다가 죽으면 되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게 사실은 농촌교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그 처음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제 이런 저런 모양으로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시고 신학교를 거쳐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어느 길이든지 간에 주님이 가라고 하는 그 길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가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아무리 선하신 인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난까지 없애주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죠. 그래서 교회를 하고 14년이 지났는데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그 때 내가 만약에 저 멀리 섬이나 아니면 여러분들처럼 농어촌의 목회하는 곳에 갔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아마 생활도 불편하고 제가 더 공부도 못했을 거고 그리고 여러분이 겪는 것 같은 어려움을 저도 겪었겠죠. 그렇지만 또 생각해 보면 만약에 내가 그 위치에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그런 어려움과 아픔은 또 상대적으로 많이 없었을 거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의 제일 바보 같은 일은 자기 십자가의 크기를 재는 일이에요.
(찬양)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그 어디 목회자들이 모인 곳에 갔는데요 저보다는 후배죠. 교회에 개척을 해서 그래도 100여명 모이니까 과히 못하는 것은 아니죠. 절 보고 그래요. 김 목사님. 김 목사님이 참 부럽습니다. 뭐가 그렇게 부럽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재능을 한 사람에게 몰아 주시는지 부럽습니다. 뭐가요. 남들은 교회를 개척해서 하니 못하느니 하는데 목사님 교회는 커졌죠. 그래서요. 글도 쓰시지요. 그래서요. 집회도 다니시죠. 그래서요. 교수도 하셨죠. 그러면서 그런데 목사님은 어때요. 개척을 해서 7-8년 되었는데도 100명 밖에 안 모이죠. 등등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뭐냐 하면 목사님은 또 모든 교인들이 목사님을 좋아하고 그러는 가운데 목회 다운 목회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목회도 아닌 시간에 허비하고 괴로움 속에서 보냅니다. 그래서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그랬어요. 목사님, 내가 그렇게 부러워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그랬어요. 내가 목회를 하면서 6개월 동안 하나님 나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면 당신 믿으시겠습니까. 6개월 동안을 매일, 하나님 나는 충분히 살았습니다. 나를 데려가십시오. 그러면서 내가 그랬어요. 여러분들은 내 자리에 와서 앉아 있으면 한달이 되기 전에 도로 바꿔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너무 사는게 힘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는 하나님 앞에 불평을 했대요. 하나님, 누구 좀 보세요. 누구 좀 보세요. 누구 좀 보세요. 왜 나만 이렇게 십자가가 되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가야 됩니까. 하나님 이것은 정말 불공평 합니다. 내 마음에는 근심과 괴로움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의 일을 하다가 낙심한 그 사람 꿈에 하늘나라를 갔답니다. 하늘나라를 갔더니 천국 근처까지 갔는데 하여튼 무지하게 큰 운동장 같은 방으로 이 천사가 자기를 데려가더래요. 그래서 하나님이 네가 평소에 네 십자가가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바꿔 주라고 그러셨다. 여기에다가 내려놔라. 십자가를 벗어서 내려놓는데 보니까 실내 체육관 같은 큰 방인데 수 억개의 십자가가 쭉 있더래요. 나무로 만든 십자가. 그래서 천사가 하는 말이 이 중에 너가 제일 질 만한 십자가를 찾아봐라. 그래서 이 사람이 신이 나서 아무것을 짊어 지면 그것 같을까 하면서 야, 이제 내가 이제까지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 힘이 폈구나. 그러면서 십자가를 하나씩 지어 봤어요. 아이 십자가는 말이지 여태까지 진 십자가는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 어떤 십자가를 딱 하나 짊어졌더니 기가 막히게 좋은 거예요. 너무 가볍고 좋아요. 들고 걸어도 보고 뛰어 보는데 이 정도면 평생 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번 걸어보라 그래서 한참 걸었는데 가볍고 좋긴 한데 이게 또 크기가 워낙 커서 땅에 질질 끌려요. 야, 대게 힘들다. 아 이것 아닌 것 같다 벗어 놨어요. 아, 이게 좀 짤막하고 말이지 한번 짊어 지고 나면 몸에 딱 맞는 이런 십자가 없어? 저기 보니까 그것보다 반토막 밖에 안되는 십자가가 매달려 있더래요. 얼른 가서 탁 짊어졌는데 아까 것은 땅에 질질 끌려서 허리도 필 수 없었는데 이것은 뭐 군인 배낭 맨 것처럼 말이야 딱 맞는 거야. 이거 이거 하겠다. 좀 한번 더 매 봐라.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고 하는데 괜찮아요.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크기는 조그만데 어깨가 빠지게끔 무거워. 알고 보니까 순 박달나무에요. 이것은 또 아닌 것 같아요. 집어 치우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 이렇구나. 크기도 작고 가볍고 그것을 찾자. 탁 뒤지니까 찾았어요. 크기도 작고 그 다음에 가볍기도 가벼워요. 딱 매보니까 이것은 진짜 옛날 십자가를 지고는 겨우 걸을수 있었는데 이 십자가를 지고는 뛸 것 같아요. 아, 됐다. 그리고는 한참 이것을 지겠다고 하니까 천사가 더 져봐라. 그래서 한참 졌더니 작고 그리고 간편하고 가벼워. 됐어. 그런데 거기에 하필이면 척추, 여기에 등뼈 있는데 옹이가 하나 툭 튀어 나와서 계속 누르는 거예요. 아 이게 아파서 못 견디겠는 거예요. 이것도 아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십자가를 하나 딱 졌는데 아 이게 기가 막힌 거예요. 알고 보니까 자기가 평생 지고온 그 십자가 더래요. 그것을 지고 다시 내려왔다고 해요.
여러분, 경마할 때 말이죠. 경주할 때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만 말에게 안경을 씌우는 것 아세요? 어떻게 씌우냐 하면 말에게 이렇게, 그래서 말이 이쪽 옆을 못 보게 이렇게 딱 합니다. 그렇게 해 놓고 땅 하고 달리는 거예요. 이유가 뭐 때문인지 아세요? 비교하면 사고가 생겨요. 또 꿩 기를 때 이 꿩이 굉장히 호전적인 동물이에요. 꿩 기를 때도 여기에다가 안경을 씌워서 길러요. 이렇게. 왜냐하면 옆의 꿩 안 보이게, 이게 만약에 없으면 저 녀석이 모이를 더 먹네. 저것은 왜 저렇게 인상을 쓰고 있는 거야. 지들끼리 쌈질을 해요. 그래서 거기에다가 까만 것을 딱 끼어요. 안경 같은 것을. 밖을 못 보게, 앞으로만 보게.
제가 살아 보니까요. 이렇게 눈 돌리고 다른 사람하고 자기를 비교하는 것은 어쨌든 좋은 결과를 안 가져와요. 자기가 저 사람보다 낫고 더 좋으면 교만해지는데 이게 나쁘면 낙심을 하거나 시기심이 생겨요. 그러니까 그것을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각자각자가 다 필요해서 각자각자에게 꼭 필요한 자리에 맞는 자리에 하나님이 세워 주신 거죠. 세워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각자각자 그 자리에 세워주셔서 거기 있으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자기를 거기에 보내신 하나님 바라보고 자기의 사명만을 바라보고 그대로 가면 그것이 절대 소명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셨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그랬더니 베드로가 네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게 가만히 듣고 보니까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네가 젊어서는 너 원하는 대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사람들이 너를 띠 띠어 너를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세 살 먹은 애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넌 나를 위해서 죽게 되어 있다 이거거든요. 그때 딱 떠오르는게 그 때 할렐루야 아멘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요. 대게 궁금한 게 예수님 품에 있는 저 인간이 궁금한 거예요. 저 요한, 쟤는 어떻게 되죠? 예수님이 뭐라 그러셨냐 하면 상관하지 마라. 넌 네 길을 가라. 넌 네 길을 가라. 그게 너의 십자가이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들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 주셨는가. 그리고 주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 주셨다면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아니죠.
제가 지방에 내려가서 친구 목사를 만났어요. 친구 목사가 하는 이야기가 하여튼 부교역자 구하기가 너무 힘들대요. 왜 그러냐. 올려고 하질 않는대요. 제주도였는데 오려고 안 한 대요. 사례금 받으면 비행기 값도 안 되는데 어떻게 가겠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당회원들과 이야기 해서 교회가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으니까 비행기 값을 끊어준다고 하고 사례금을 따로 줘라. 그러니까 그렇게 해줄 리가 있냐고 해요. 그러면 안 오지. 비행기 값이 80만원인데 그 학생을 50만원을 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서 이제 좀 투덜대기 시작하셨어요. 이게 말이지 시골은 그렇다고. 내가 그랬어요. 하나님이 당신은 거기 뜻이 계셔서 거기 두셨는데 거기에서 안 되는 일 하려고 하지 말고 되는 일을 하시오. 서울은 도시에는 비전도 있고 꿈도 있고 그리고 그래서 그랬어요. 비전은 무슨 얼어 죽을 무슨 비전이냐. 그랬더니 정색을 하고 아니 그러면 김 목사는 교회를 새로 짓고 어쩌고 하면서 이사를 하는데, 비전이 있어서 다 그런거 아니야. 내가 그랬어요. 비전은 무슨 얼어 죽을 비전이냐. 사람많이 모이니까 건물이 필요하고 예배당이 필요한 거지. 그 까짓게 무슨 비전이냐. 사람 많이 모이는 게 비전이냐.
저는요 진짜 행복했던 목회의 시절은 150에서 250명이 모였을 때에요. 그 때 저의 목회자로서의 행복은 그 때 끝났어요. 지금도 너무 간절해요. 그런 교회에서 목회하고 싶은 게. 그런데 이 세상의 일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되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무슨 놈의 비전은 비전이냐. 하나님이 나는 농촌으로 가고 싶었는데 뜻이 있으셔서 여기 세우시고 당신은 도시 오고 싶었는데 뜻이 계셔서 거기 세우셨으니까 거기에서 그냥 열심히 목회하고 하나님이 그 시골에서 왜 5천명 만명 못 모였냐고 야단치시겠냐. 능력이 없어서 안 되는 것을 도시에 사람 세웠다고 하나님이 50명 모이는 교회를 500명 교회보다 10분의 1정도로 하찮게 여기며 생각하시겠느냐. 내가 아는 하나님은 절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에 있어서 가치는 그냥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 곳에서 열심히 하나님이 내 생각에는 딴 데 가면 더 잘할 것 같은데 하나님이 왜 여기에 세워주셨는지 모르는데 어쨌든 여기에 있어요. 그것을 감사하면서 거기에서 열심히 복음 전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그러다가 죽으면 누가 큰 사람인지 하늘 나라 가봐야 알지. 누가 큰 사람인지는.
윌리엄 포사이스라고 하는 설교학자는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설교자는 설교한 결과 때문에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설교를 준비한 과정을 통해서 상을 받습니다. 즉 수많은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설교를 듣고 변화를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거지 그 사람이 한게 아니죠. 온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준비하고 자기도 그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영혼들이 구원되지 않았으면 결국은 자신은 최선은 다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거죠.
아돈 윌리엄 처드슨은 보스턴 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였습니다. 버마에 가서 한 사람을 전도해서 세례주는데 6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결국은 그 사람이 죽을 때 그 땅에 6만 5천명의 기독교인이 생겨났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느니라.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올바르게 하고 있느냐. 그리고 내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내게 맡겨진 십자가를 잘 감당하고 있는가 그것입니다.
(찬양)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이제는 그만 해라 고생 많이 했다. 이제는 쉬어라 하는 때가 오지 않겠어요. 그거죠. 그래서 비록 작은 열매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나가는 희생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원리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주어진 환경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부끄러움이 없이 주님이 내게 주신 소명을 따라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마음을 실어서 하루 하루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은 영혼들을 돌보고 돌본 영혼들을 세우고, 이렇게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마시고 우리 교회처럼 비록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조국의 농촌의 어촌의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자기의 피붙이처럼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감당해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서기를 바라는 그런 교회들이 도시에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을 하시고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그래서 이 이 땅의 복음화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