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목회자 부부 세미나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본문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우리 열린 교회에서 이 사역을 하게 된 배경과 이 사역을 전개하고 있는 지금, 앞으로 바라보는 비전 그리고 농어촌에서 실제로 목회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이 농어촌에 있는 교회를 일으켜 세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10장은 복음서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분수령이 됩니다. 예수님이 오랫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학생처럼 가르치던 제자들을 사도로 삼으시는 장면이 10장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10장에서 사도들을 세우시면서 예수님의 생애의 말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죠. 이 10장의 사건은 매우 중요한데 그 전까지는 제자로 불리다가 10장에서는 사도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던 제자들이 이제는 거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잃은 양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게 되는데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사도로 열둘을 세우시고 이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내어쫒는 능력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는 권능을 주셔서 말씀으로 이 사역을 하도록 예수님이 파송을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렇게 예수님이 사도들을 파송하신 동기입니다. 동기를 보니까 예수님이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많은 백성을 만나시는데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민망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그것이 동기가 되어서 사도를 파송하신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불편한 게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밤잠을 안 재우시고 기도하게 하셨어요. 그 때 내 마음에 들어온 게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많은 영혼들이 있는데 이들을 내가 너에게 보낼테니 이들을 돌보아라 하는 말씀이셨어요. 잠을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와요. 침대 머리맡에서 기도를 했는데 뜬금없이 개척하도록 도와달라는 기도가 나와요. 그래서 밤새도록 기도를 했어요. 설마 하고 그 다음날 기도를 했는데 똑같아요. 삼일동안 기도를 했는데 똑같아요. 이건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내가 이제 교회를 개척해야겠다. 그게 열린 교회의 시작입니다. 우리 열린 교회만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목회자로 삼으셔서 혹은 도시에 혹은 촌에 하나님이 주님의 포도원을 돌보게 하신 것은 바로 이렇게 목자 잃은 양과 같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영혼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파하시는 그 예수님의 심정이 거기에 세웠다 누가 우리를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목회지로 갔나요? 아무도 우리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갔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주님이 부르셔서 갔습니다. 돈 주고 집 준다고 해서 간 것이 아니라 너는 나를 대신해서 거기 가라 그래서 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은 이제 살아도 교회와 함께 죽어도 교회와 함께. 그래서 우리의 목회가 주님의 복을 많이 받아서 정말 교회가 크지는 않아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 그러면 행복하지 않습니까? 제가 7명과 개척을 했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주일날은 사람들이 많이 왔잖아요. 개척한다니까 인사하려고. 그렇게 가득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날 새벽이 되었어요.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하니까 집에 12시에 들어오니까 너무 코피가 날 정도로 피곤해요. ‘에이그, 새벽기도를 가야하나. 교인도 7명 삼시사방에 사는데 새벽에 누가 오기나 할까. 그래도 내가 그러면 안되지. 코피가 나도 가야지.’ 하고 간신히 일어나서 갔어요. 교회 문을 딱 열었더니 문이 열려 있어요. 불이 켜져 있어요. 새벽기도 드리려고 8명이 앉아 있어요. 만약에 안 갔으면 그게 무슨 망신예요. 목회자가 교회는 개척해 놓고 새벽예배 오지도 않는다 할거 아니예요. 그렇게 8명이 모여서 새벽기도를 하니까 내 눈에는 팔천 명이 모인 것 같아요. 열심히 설교를 하고 그 때 만 명 모이는 교회의 목회자가 부럽습니까? 좋은 차 타고 다니고 큰 사택 쓰고 월급 많이 받는 목회자가 부럽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문제는 하나님이 내 목회와 함께 하셔서 나를 인정해주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그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이 도시에서 목회하지만 시골에서 자랐고 시골교회도 많이 다녔습니다. 여러분이 목회하는 지역 중에 어느 지역은 여러분이 아무리 성령 충만 받아도 자립할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은혜 많이 받아도 사람 자체가 없어서 백 명, 이백 명, 삼백 명, 사백 명, 오백 명 모이는 도시교회 영원히 흉내 내지 못하고 그렇게 있어요. 제가 아는 어느 교회는 목사님이 교인 80명 모이는 교회에 갔는데 사람이 살살 줄어서 30명이 되었어요. 왜 그러냐면 계속 죽었어요. 죽으면 애를 낳아야 하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벌써 애 낳는 기간이 끝난 사람들이예요.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죽는 거예요. 그래서 낙심을 해.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당신 왜 낙심을 하냐. 하나님 내가 이런데 갔으면 좋겠습니다. 했는데 나는 원하지도 않게 도시에 있고 당신을 거기에 있는데 누가 그걸 하겠느냐는 거예요. 그 불쌍한 시골 노인네들 예수 믿어야 하는데 당연하거 아니예요? 교회가 소용가치로 보면 젊은 사람들이 믿어서 헌금도 많이 하고 얘도 낳아서 주일학교도 보내고 교회 봉사도 하면 좋겠지만 없는 것을 가지고 자꾸 얘기하면 뭐하냐 이거예요. 그러면 기도 많이 하고 강남에 가서 개척 해보든지. 그 없는 것을 가지고 계속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 보고 온 동네가 60명밖에 안되는데 100명을 못 모은다고 당신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겠느냐. 당신 여기 원래 올 때 사명이 한 사람 한 사람 관 뚜껑에 덮어주라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 할아버지 마지막에 말귀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신앙 고백이 있잖아요. 자식들도 돌아봐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목회자가 다 수발 들어주고 마지막까지 자기 양떼로 끌어안고 하늘나라의 소망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이야기 하고. 그러다가 간절한 기도 속에서 숨을 거두고 관 뚜껑 덮어서 묻어주고 그런단 말이야. 그게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그 일 하시지 않았겠느냐.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 내팽겨 치고 ‘아이고, 돈도 안되는 여기서 뭐하냐. 나는 강남으로 가야겠다.’ 그러시겠어요? 도시목회 좋을 것 하나도 없어요. 사람들 이기적이고. 시골이야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까 싫어도 그냥. 여기는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 수틀리면 그거 가서 그러지 말라고 말이지. 뭐가 그렇게 좋아요. 생활이야 좀 나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밥만 먹으면 삽니까? 선교지 가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한국에서 돈 가져와서 학교 짓고 밥도 주고. 아주 왕이야. 선교사님, 선교사님. 다 신세지는 사람들이잖아. 집이 무너져도 걱정 마. 내가 한국에서 돈 가져다가 지어줄게. 이리 와. 선교사들이 좀 그런게 있어요. 자기가 왕이야. 그래서 서로 잘 이해가 안돼. 도시에 사는 사람은 많이 죽어지내야 돼. 여러분 얼마나 좋아요. 여기요. 열병합 발전소입니다. 지금은 괜찮지요. 밤이 되면 다이옥신이, 하얗게 올라오면서 발암물질이 낙진처럼 쏟아져요. 아침에 자동차 만져보면 하얀 먼지가 나와요. 그거 먹으면서 그렇게 살아요.
하나님이 나를 어디에 보내셨으면 그냥 거기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에 위로를 얻으며 살아야 되요. 먼저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제주도에 갔어요. 거기 목회자가 한 사람 있는데, 회사 다닐 때 방황을 했는데 제가 예수 잘 믿으라고 해가지고 이 양반이 목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제주도까지 가서 목회를 해요. 그런데 잘 해요. 제주도가 목회가 그렇게 잘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토박이들은 지금도 시집갈 때 보자기에 뱀 싸서 보내요. 토템이예요. 우상을 그렇게 섬겨요. 100여 명 되는 교회에 가서 한 17, 18년 열심히 해서 교인도 200여명 되고 1,700평에다 교회를 연목까지 넣어서 아주 잘 짓고 잘 했어요. 그런데 조금 낙심이 되는 모양이예요. 아이고, 도시에 있으면 몇 백 명, 몇 천 명 모이고. 여기는 비전도 없고. 아이 무슨 비전은 비전이냐. 아니 그럼 김목사님은 비전이 있으니까 교회도 옮기고 이사도 하고. 비전은 무슨 비전이냐. 애 낳으면 방 한 칸 더 얻어야 하는 거고, 애 낳으면 기저기 더 끊어 와야 하는 거지 비전은 무슨 비전이냐. 하나님이 나는 여기에 두셨고 당신은 거기에 두셨는데 거기서 열심히 교회 돌보고 심방하고 그러다 죽으면 그만이지. 죽고 나서 무슨 큰 교회 섬기던 목사는 백 평짜리 묘지에 들어가고 너는 이십 평짜리 묘지에 들어 가냐? 다 쓸데없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나 혼자 져야하는 십자가다 생각하고 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일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목회에 있어서 가치관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도시에 가서 까치발 뜨고 아이 씨 내가 좀 더 큰 목회 할 수 있는데 어디 그런데 없나? 그러다가 일생 마치는 사람이 주님이 보실 때 무거운 사람이겠어요 아니면 그냥 보냈는데 진짜 노인네들 밖에 없는 거야. 하나씩 하나씩 죽는 거야. 그 양반 하는 말이 지금 삼십 명 남았는데 십 년 동안에 80명이 30명으로 줄어든데. 이제 10년 지나면 다 죽고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러면 당신은 세기에 빛나는 목회자가 된다. 교인을 예수 믿게 해서 천국까지 완전하게 풀 서비스를 했다. 하나하나 다 해서. 내가 전도한 사람 마지막까지 내 품에 품고 숨을 거두고. 부부가 갑자기 노인네가 쓰러졌다고 해서 달려가서 똥 받아내고 하는 것은 일도 아니야. 누가 그런 섬김을 하려고 하겠느냐. 그리고 만약에 당신이 없다고 쳐봐라. 주님이 보실 때에 서울에서 유리방황하는 사람들보면서 아이고 저 게으름뱅이 길 건너도 교회 있고 뒤편에도 교회 있는데. 그런데 거기는 없잖아요. 사방을 다녀도 교회가 없어. 그런데 당신이 거기 있다. 아무에게나 안맡기는 이 일을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셨다 생각을 하세요. 사람 앞에 무거운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벼울 수 있고, 사람 앞에 가벼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저희가 이 세미나를 하는 이유는 교회를 백 명, 이백 명, 삼백 명 키우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대상 선택을 먼저 잘못했어요. 도시에 있는 목회자를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 다니려는 교인을 뺏는 방법.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했는데 다른 교회 교인들이 무지하게 몰려 왔어요. 설교도 잘하고 하니까. 목사님 놓고 비판이 많습니다. 왜. 자기네 양떼들 뺏어 갔다고 비판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님이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 양떼들이 온 적이 없지. 아니 그렇게 많은 교인들이 왔는데 왜 온 적이 없습니까? 다 염소였어. 그 교회에서 염소를 골라 내줬으니까 오히려 그 교회 도와줬지. 그런데 우리는 그런 목회 아닙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열린 교회가 이제 커지니까 이런 것을 하나보다. 아니요. 교인 60명 모였던 시절부터 했습니다. 지금이 12년, 13년째입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예배 드린지 14년 지났어요. 그러니까 교인 60명도 모이기 전에 이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교회를 백 명, 이백 명, 삼백 명, 사백 명 이렇게 되는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교회도 여러분들 중에는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골 교회라고 하기에는 우리 교회는 조금 그렇다. 중소도시 혹은 중소도시에서 약간 벗어났기 때문에 목회를 잘만 하면 버스라도 한 대 사면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교회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아요. 우리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뭐냐하면 교회가 건강한 것.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시골교회를 목회도 안 해보고 어떻게 잘 아냐 하시는데 저는 시골교회를 다녔고 15년 가까이 이 사역을 하다보니까 시골교회 사정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 도시는 말이죠 이 길을 건너면 내가 열린 교회 목사라고 아는 사람이 몇 사람 안됩니다. 빵집에 가도 어서오세요 아저씨. 음식점에 가면 사장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럽니다. 몰라요. 우리 교회 교인이 얘들까지 합쳐서 사천 명 가까이 되는데도 대부분 여기 흩어져서 살잖아요. 그런데도 모릅니다. 그리고 6개월만 지나면 주민이 확 바뀝니다. 3년 쯤 지나면 대부분이 바뀝니다. 계속 물 흐르듯이 흘러요. 내가 담임 목사인데도 신문에도 나오고 방송에도 나오는데도 모르니 우리 부목사나 교인들은 더 모르죠. 그래서 가서 당신 그렇게 살면 되겠습니까? 곤고하시죠? 표정을 보니까 벌써 맛이 가셨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길이 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골 목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서 실패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가서 그림같이 앉아서 책만 보다가 주일날 예배인도를 하는거야. 그러니까 교인이 모이나. 그래 가서 저 예수 좀 믿으시죠. 시골 사람들이 그런게 통합니까? 가서 모도 같이 내주고 사람들이 비가 와서 물길 틀려고 하면 장화 신고 우비 입고 가서 같이 거들어 주고 그러면서. 여러분 다 그렇게 해오셨잖아요. 그러다 보면 주민들과 관계가 좋아지잖아요. 그런데 이게 뭐냐면 1년, 2년, 3년, 4년, 10년, 20년 씩 거기서 목회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정적인 관계가 되요. 아주 친해. 그러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당신 죽으면 천국 갑니까, 지옥 갑니까? 그러면 아이 목사님 왜 이래. 사모님이 전도하면 아이 왜 그래. 우물가에 기왕 나왔으니까 쌀이나 씻고 가. 그렇게 묻혀버리는 거죠. 무슨 얘기냐면 그렇게 인간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아주 절친하고 인심을 얻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상황이 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한 분이 젊었을 때 시골 교회를 가셨어요. 목회를 하는데 가끔씩 전도지를 가지고 전도를 하는데 씨도 안 먹히는 거예요. 그러다 누구한테 들으니까 동네 사람들하고 친교를 잘 맺어야지 예수를 믿든지 말든지 하지 그렇게 쌩둥맞게 하면 않된다. 그래서 아 그렇구나. 그래 동네 어른들이 노는 데 가서 보니까 장기하고 바둑을 두더래. 그런데 이 양반이 장기, 바둑을 아주 잘 두어요. 그래서 장기, 바둑을 두니까 동네 사람들하고 금방 친해졌어요. 이기고 훈수도 두고 그러면서 친해졌는데, 장기판에서 한 수 물러 달라 안된다 그러면서 같이 장기를 두던 사람이 친해지고 나니까, 전에는 친하지 않아서 예수를 못 전했는데 이번에는 친해지고 나니까 친해서 못 전하겠는 거예요. 너무 친해서. 그 증거가 뭐냐면 교인들이 제일 힘들어하는게 남의 식구 전도하는게 아니라 우리 식구 전도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가족 전도하라고 다그치면 용기를 내서 엄마 예수 믿으세요 하면 야 너나 잘 믿어라. 그러니까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꿈꾸고 바라는 것은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자꾸 일꾼이 없다고 하지 말고.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없다고 하지 말고 두 분이 은혜를 많이 받고 새롭게 되면 교회는 새로워집니다. 제가 이 사역이 장난 같은 게 아니구나 생각한 것이, 제가 이 사역을 시작할 때 어디서 많이 보고 배워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때 청년들을 데리고 저 강원도나 정선 같은 시골에 전도를 갔어요. 그때는 주로 주일학교를 대상으로 했죠. 청년들을 열 댓 명 데리고 주일날 밤에 가서 일주일동안 열심히 전도를 하고 그랬어요. 놀라운 게 어느 정도냐면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면 두 시간 만에 데리고 오는 거예요. 어디서 놀다 왔냐 그랬더니 얘네들 사는 집에 교회에서 한 시간이기 때문에 바로 데리고 와도 두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대단하더라구요. 그런데 아이들이 50명, 60명 모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아이들이 펑펑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구원과 회심의 역사를 봤어요. 그걸 보면서 그렇구나. 거기 있는 목회자가 나보다 못하지 않을텐데 왜 이럴까. 궁금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열린 교회에서 처음 파송할 때 그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런 식의 사역을 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비슷한 것은 있는데 내용이 많이 달라요. 우리는 실제로 성도들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가고 이번에는 아예 교인들 최소한 800명에서 1000명을 여러분 교회에 내보내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좀처럼 허락을 않하는 것인데 주일을 우리 교회에서 안지켜도 좋다 하고 보냅니다. 그래서 6, 7, 8 이렇게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초창기에 저희가 전라도에 있는 어느 교회를 갔어요. 저도 갔어요.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여러 사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말씀 드리는 거예요. 교인이 15명 정도 있는데 예배당 크기로 봤을 때는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데 15명 정도 모여요. 그러니 목회자의 생활이 어떻겠어요. 생활비를 어떻게 하느냐 그건 뭐 여기저기서 돕고 미자립 교회니까 그렇게 하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6년 째 15명이 모이는데 그 목사님 처음 왔을 땐 30명 정도였는데 줄고, 줄고 해서 15명 정도 남았는데 노인네 15명 모이는데 사실 무슨 은혜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래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거기를 우리가 아웃리치를 갔어요. 지금도 우리 지체들이 은혜를 많이 받지만 거기 갈 정도의 지체들이거든요. 여기서 철저하게 전도 훈련을 시키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갑니다. 이 사람들이 가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저 빼고 14명이 갔습니다. 비가 펑펑 쏟아지는 때였어요. 엄청 멀어요. 가서 사전 답사를 먼저 했죠. 4개 마을로 되어있고 가구 수가 476가구 예요. 그걸 14명이 한 집도 안 빼고 다 심방을 했어요. 마지막에는 그 가구에 누구고 누구를 만났고 이 사람은 예수 믿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 하는 것까지 다 적어서 책으로 만들어서 목사님을 주고 왔습니다. 목사님이 이때는 안 따라 다니셨는데 종종 가서 보면서 충격을 받으셨어요. 고백을 하는데 자기가 여기 온 지 6년이 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476 가정을 다 심방을 못했다는 거예요. 사실 그것도 이상한 것이죠. 일 년에 52주라면 한 주에 9가정씩만 전도 심방을 나갔어도 심방을 다 했을텐데 못하셨던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도는 것이 강력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셨다면 했겠죠. 목사님 자신도 힘이 빠지신 거예요. 그런데 가서 눈물로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을 데리고 오고 그 영혼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면서 이 분이 은혜를 받으신 거예요. 그 때부터 책, 테이프 등을 읽고 듣기 시작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으셨어요. 그 교회를 우리가 몇 년 갔어요. 목요일에 제가 내려갔는데 목요일 날 그 예배당에 70명이 모였어요. 물론 노인들이죠. 그렇지만 70명이 모여서 거기서 예배를 드린 거예요. 이 분이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거구나. 그러고 가서 예수 믿으세요 전하니까 흙을 뿌리는 거예요. 나쁜 놈들 우리 마당에 들어오지 말라고. 그러면 저희 교회 교인들이 진드기라고 소문이 났어요. 흙 뿌리면 살살 웃으면서 할머니 끌어안으면서 아이 왜 그러시냐고. 앉아 보시라고. 하면서 뜸을 떠 드리는 거예요. 발 주물러 드리고 지압해 주면서. 뜸뜨면 30분 동안 기다려야 하잖아요. 절대 움직이시면 안돼요. 하면서 그게 절호의 기회잖아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우리 인간이 죄를 지어서 이렇게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어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돌 같던 할머니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그런데 왜 그 좋은 예수를 너희들은 왜 이제야 와서 나에게 전해 주느냐. 나 그 하나님 믿고 싶다. 하시면서 마루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옛날에 조상 섬기고 그랬던 분들은 신 앞에 한 번 맹세하면 그걸 절대 안 지키면 큰 일 난다는 그런게 있잖아요. 꼭 신앙이 아니더라도. 이 양반들이 그러고 나서 교회를 꾸준히 나가요. 그러고 놀라지 마세요. 그 교회가 120명 까지 모였어요. 지금도 한 80명 정도가 모인데요. 이 목사님이 은혜를 받아서 불덩어리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예전에는 너무 친절해서 못 전했는데 사실 그게 체면 아님니까? 영역이 모자라니까 그렇지. 그 감동적인 예화도 있어요. 예배 시간이 됐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아이고, 이거 할머니 어디서 오는데 어떻게 하나. 그러고 이 목사님이 봉고를 몰고 가는데 봉고도 못 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할머니가 눈 언덕에 엎드려서 울고 있는 거예요. 할머니,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주일을 지키려고 가는데 힘이 없어서 여자 신발에 새꼬락지를 묶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미끄러지고 올라가려는데 미끄러지고 그러니까 울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기도해주고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거예요. 그런 은혜로운 간증이 막 쏟아져요. 제가 그 때 정말 절실하게 깨달은 게 뭐냐면, 시골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무 희망이 없는 자식들에게도 버림을 받고 아무 희망이 없는 그 노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은 서울에 있는 교회도 아니고 시골에 있는 교회 교인들도 아니고 주님이 사랑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캄캄하고 돌처럼 굳어진 그 마음을 여셔서 복음의 빛이 확 비치게 하십니다. 성경 잘 못 찾고 한글 잘 못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에 들어와서 뜨거운 감동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쭉 얘기를 하면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10명이면 7명 정도는 가슴에 자기 자식에게 버림받은 것, 자기의 질병 이런 등등의 것들 때문에 마음에 맺힌 것이 있어요. 그러면서 펑펑 우는 거예요. 그것을 하나씩 못을 빼주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쨌든지 간에,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젊은이들이 없는 것을 자꾸 얘기하면 뭐하냐는 거예요. 그게 하도 답답하면 기도 많이 하고 젊은이들이 있는 목회지로 옮기는 거죠. 하지만 거기 있는 동안은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 시골에 노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부녀자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서 같이 섬기는 거예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아이고, 그런 일 있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목회자 자신으로서는 거의 기적과 같은 일 아니예요? 6년 넘게 15명이 예배를 드리다가 120명이 교회를 꽉 채우면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 때에 저는 아, 하나님이 이 사역을 너무나 기뻐하시는구나. 한 번은 우리 교회가 섬에 있는 교회에 아웃리치를 나갔어요. 기도를 많이 하고 지체들은 오랫동안 기도를 많이 하고 무장을 단단히 하고 갔어요. 우리가 간 것이 누구를 위해 간 것입니까? 솔직히 그 교회가 지금 말씀 드린 것처럼 그렇게 깨어나라고 간 것 아닙니까? 근데 결국은 그렇게 가서 열심히 전도하고 오려는데 당연히 오면 기쁘게 맞이해주고 앞장서서 이 동네는 이렇고 저 동네는 저렇고 그래서 내가 모시고 갈 테니까 여기를 전도합시다. 전도대원 몇 명 주고 헛간에 가서 낚시도구 챙겨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 어디 가세요. 하니까 저는 낚시 가야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도해야 하는데. 낚시하기로 친구와 오래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보고 오지 말라고 하던지. 오래 전부터 한 약속이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런 교회를 보면 그 교회만 불쌍한 게 아니라 동네가 불쌍한 거예요. 동네가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아무 희망이 없어요. 그러면서 어느 청년이 올라와서 가슴 아프지만 이런 얘기를 해요. 농촌 전도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뭔지 아십니까? 난 잘 모르겠다. 거기에 있는 목사님입니다. 그런 목회자를 보고 왔을 때는 교인들은 낙심하는 거예요. 여기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시골 교회에서 열열이 영혼을 끌어안고 씨름하는데 잘 안되는. 그렇게 생각하고 갑니다. 사실은 10년, 20년 해봐서 변화가 없을 때에는 어느 순간 탁 끈을 놓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근데 그건 혼자 힘으로는 잘 안되요. 그런데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 목사님이 깨어난거죠. 열심히 기도하시고. 이번에도 여름 수련회 때 여러분들 초청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여름 수련회 때마다 올라오셔서 수련회 때 은혜 받고 또 그렇게 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시겠어요. 그 목사님이 깨어나시지 않았더라면 죽어 갔을 그 수많은 노인네들의 영혼이 그 목사님 손에 의해서 거두어지고 고백하고, 도시에 젊은 사람들은 믿었다 그랬다가 안 믿었다고 믿었다 그랬다가 안 믿었다가 그러지만 노인네들은 한 번 믿었다 하면 새벽예배까지 나와야 되는 줄 안다는 거야. 다치시니까 오시지 말라고 해도. 뭔 소리냐 하면서 내려오는 거예요. 헌금 많이 안 해도, 그 노인들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마음에 한을 품고 살았을 사람들이 예수의 사랑. 그리고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전도를 가서 한 가정 한 가정 양부모를 맺고 왔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전화를 해서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 소리만 들어도 친자식이라는 놈들은 전화도 안하는데 피도 안 섞인 남이 전화해서 어머니 안녕하세요. 겨울에 춥지는 않으세요. 가서 심지어 보일러 고쳐주고, 내복도 보내주고. 그러면 또 그쪽에서 답신이 와요. 감자도 보내고 고구마도 보내고. 그러니까 그게 그 분들에게는 말 할 수 없는 기쁨이예요. 추석쯤 되면 추석되기 전 주쯤 해서 1부 예배드리고 보따리 하나씩 들고 찾아가는 성도들이 있었어요. 뭐하냐 하면 거기 찾아간다는 거예요. 거기 가서 예수 믿으세요. 믿으면 구원 받지만 안 믿으시면 불덩어리에 들어가요. 이게 사랑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들까지 데리고 가니까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자기 자식은 꼴도 안보이는데 예수 사랑 가지고 가서 그렇게 마음을 위로하는 거예요. 이번에 내가 대대적으로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전화도 하고 그게 뭐냐면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큰 감동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이 교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교회들이 열 교회를 했을 때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예요. 모두 그러는 건 아니예요. 우리 교인들에게 설교해도 모두 은혜 받는 것은 아니듯이. 근데 그렇게 되는 교회가 있더라는 거죠. 근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교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도와주니까 마음이 확 일어났어요. 그 교회 목사님이 우리 목회자의 인생이 얼마나 다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맨날 교인 10명, 15명 모이는 거 보면서, 아이고 누구는 서울에서 좋겠네. 아이고, 누구는 성지 순례도 갔다지. 아이고, 누구는 좋겠네. 이러다가 죽는 인생과. 아 하나님이 그래도 나를 사용하시는구나. 그래, 비록 여기에는 노인들 밖에 없지만, 이 죽어가는 영혼들 버림받지 않고 내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품고 마지막 가는 길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망 가운데 보내 주라고 나를 보내셨구나. 아멘. 가끔 말이죠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는 시골에서 해보려고 하는데 전도할 사람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그러니까 열린 교회에서 교역자들 젊은 사람들 내려와서 한 달에 한 번 내려와서 일 년에 한 번만 말고, 그것도 삼 년 하면 안해 준다며, 그러지 말고 매달 내려와서 으샤으샤 해서 해달라고 말이죠.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저의 목회의 경험으로 봤을 때, 불이 목회자의 가슴을 통해서 떨어지는 불이 그게 진짜 불이지 목회자는 여기 이러고 있고 불이 확 떨어져요.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 80년 대, 90년 대 때 신학교 다니면서 여름 성경 학교 많이 해줬잖아요. 시골 애들은 보지도 못하는 볼펜, 연필, 학용품 박스로 사가지고 먹을 것까지 잔뜩 사가지고 애들 신나게 나눠주면서 이상한 환등기 같은 것도 가져와서 영화도 보여 주면서 한 삼일 난리를 치고 사일 째 가버리는 거에요. 그럼 애들이 그 다음 날 주일 날 와서. 서울 선생님들 언제 와요. 갈 때 되면 울면서 가지 말라고.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그런 교회는 아니죠.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은혜를 많이 받고 뜨거워져서 교인 다 잠자도 목사님과 사모님 두 분만 눈물이 있고 탄식이 있는 이 마음을 가지고 관절염이 있고 힘이 들어서 많이 못다니면 지팡이 짚고 하루에 한 집을 다녀도 예수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구원을 얻는 역사가 나타난다면 누가 감히 그 사람의 사역이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은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윌리엄 포 사이스라고 하는 설교학자가 말했어요. 목회자는 설교한 결과를 가지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가지고 인정을 받는다.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냐. 자기가 맺은 열매입니까? 얼마나 탄식하면서 일을 했느냐. 그게 자기 것 아니예요? 저는 큰 교회에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럴 때에는 교회가 더 크지 못한 것이 안타깝게 느껴져요. 왜냐면 저희가 꿈꾸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솔직히 이야기해서 시골 교회들 도시에서 많이 도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사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도시에 있는 교회들이 많이 도와야죠.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이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목회를 하면서 교회에서 임직식을 합니다. 장로, 안수집사 임직식을 하잖아요. 그 때마다 시골 교회 목회자 자녀들을 입양을 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학금까지만 내줍니다. 물론 무한정은 못해요. 한 번 할 때 다섯 명, 네 명 이렇게 해서 해줘요. 요번에 누가 저한테 보고를 하는데 목사님 이번에 긴장 좀 되시겠습니다. 왜? 이번에 우리가 장학증서 준 사람 중에 대학 시험 본 애가 8명 이래. 목사님 그 사람들 다 붙으면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그래도 기뻐요. 감사해요. 작년에도 460만원인가 얼마 영수증이 날라와서 그것도 이틀 안에 돈을 빨리 보내달라는데 그것도 그렇게 기쁠수가 없어요. 너무너무 돕고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것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더 하고 싶은 것은 시골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아이들의 교육이잖아요. 서울로 보내놨는데 걱정이 태산이라. 빗나가는 애들도 있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애들 모아서 학사를 만들고 싶어요. 실제로 교회에 잘 나오는 애들도 있어요. 착실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학사를 만들어서 돌보고 도와주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회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더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불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떨어져야 해요. 우리를 통해서 떨어져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건 오래 안갑니다. 그러면 이 가슴에서 불이 붙어요. 가슴에 붙은 불은 목회의 모든 창의성의 근원이예요. 열심히 해요. 그리고 열심히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꿈이 선교사를 해외에만 파송하지 말고 전라도에 한 사람 파송하고,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경기도 파송하고 싶어요. 그래서 여기 하는 이 일을 그런 선교사들과 함께 선교사는 목회 없이 다 다니면서 어느 교회에 뭐가 필요한지 물심 간에 그렇게 도와주는 체제를 만들고 싶다는 거죠. 그런데 그거는 틀림없이 그런데 마지막에 결국 도달하는 것은 뭐냐면 목회자 자기 자신입니다. 목회자 부부 자기 자신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아무리 많은 후원이 오고 지원이 주어진다고 해도 목회지에서 영원히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밥먹고 사는거지 무슨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거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우리가 그럴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몸부림치는 교회를 찾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아웃리치를 나가서 지체들이 그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우리는 한 두 번 하고 그 교회와 손잡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도 그 교회에서 오셨다던데 저한테 간곡하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어디서 들으셨는지 열린교회에서 그렇게 하신다던데 도와주십시오. 대개 그런 편지를 못 받아요. 대개 오는게 뭐냐면 건축하다가 말았는데 아래 통장으로 백만원 만 보내 주십시오. 이런 편지가 오거든요. 그래서 그런 편지려니 하고 뜯었는데 이 편지는 달라. 원하는 게 뭐냐하면 돈이나 이런 물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열린 교회 전도대들이 와서 뜨거운 사랑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던데 그 불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십시오. 편지를 읽는데 그 목회자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건 분리해서 위원장에게 주면서 이 교회는 꼭 연락해 봐라. 가보든 전화를 해보든지 연락을 해봐라. 그래서 할 수 만 있다면 어떻게든지 이 교회는 꼭 파송을 해보자. 그렇게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래서 많이 간 교회는 세 번씩, 네 번씩 간 교회가 있어요. 매 년 가서.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면 아까 낚시대 메고 간 사람은 온다고 하면 방해는 않해. 솔직히 얘기해서 전화걸어서 온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하겠어요? 손해날 게 뭐가 있어요. 어짜피 자기는 낚시나 하러 가는데. 그렇지만 돌아오고 난 다음에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와서 재주 부려봐라. 덕 좀 보자. 이거죠.
아까 그 목사님 같은 경우 가고 나서 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목회를 옳게 했는가?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가? 아, 그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내가 전도하리라. 그러고 보니까 그 마음이 새로 생긴 마음이 아니라 맨 처음에 내려올 때 마음이잖아요. 그 마음이예요. 가서 전하는 거예요. 그런데 역사가 일어나요. 안된다, 안된다 할 때는 일어나지 않았는데 안된다, 안된다 할 때는 동네 할아버지, 이장 어른 아무개 집 영감님 이렇게 보이더니 은혜가 임하니까 영혼으로 보이는 거예요. 여기서 권위가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 해보셨으니까 알겠지만, 자기가 가서 전도를 해서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심지어는 금식까지 해서 봉고까지 몰고 할머니, 할아버지 태우고 교회까지 왔을 때 이 영혼이 귀하게 여겨집니까, 남이 데려다 논 영혼이 귀하게 여겨집니까? 틀리죠. 그러니까 못 놓아주는 거예요. 아프면 찾아가서 돌봐주고 치료해주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주고. 이 속에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요. 내가 이 시골교회에서 이러고 있다는 것에 대한 모든 어두운 마음이 사라지고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겨납니다. 이게 누구의 마음입니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 마음이죠. 그거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쓰시고 또 어떤 사람은 저렇게 쓰시는데 우리는 왜 그런지 몰라도 우리 교회에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그 포도원에서 일하게 하셨어요. 그러면 우리의 할 일은 힘에 넘치도록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게 우리의 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목회자의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교회를 맡겨 주셨어요. 목사님 자신이 그렇죠. 목사님이 가서 열심히 전도 집회 해주고 나오는데 목사님은 아무렇지 않은데 집사 한 사람이 불을 받아서 열심히 해도 교회가 이 질서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안하죠.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데 누가 바뀌는 거예요. 예전에는 기도하려면 힘이 안나는데. 목사님들 표현하자면 설교준비 하나 안하나 차이가 나야지 준비를 하지. 노인들 와서 이렇게 병든 닭같이 이렇게 있다 가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니까 나와 함께 전도할 사람을 보내주시라고. 그러니까 보내주십니다. 서울에서 사업하다가 예수 잘 믿는 사람인데 덜컥 망해서 귀향을 하는 거예요. 다닐 교회를 찾는데 덜컹 걸린 거예요. 야, 우리 전도 다니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구요. 보십시오. 저도 열린 교회를 맨 처음에 할 때는 서른아홉이었습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 세월이 저한테만 빠르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멈칫 멈칫 하며 몇 번만 지나가면 우리가 이 목회 하고 싶어도 역사 속에서 퇴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큰 교회 아니었고, 괄목할만한 말씀의 은혜가 없어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목회자는 못 되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 했다.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우리 양떼들을 사랑하셔서 이제껏 인도하셨다. 할렐루야. 아멘. 그게 승리한 목회자의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아웃리치를 우리가 가는데 아웃리치 자체에 너무 기대를 걸지 마시고 그걸 준비하면서 목사님과 사모님이 특별히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의 심령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 정말 깨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목사님이 생전 안하시다가 은혜를 받고 전도를 나가시니까 할머니들도 따라 나서시더래요. 그게 목회 아닙니까. 목자가 가는 길을 양들이 따라 가잖아요. 일꾼이 없다. 없다. 하는데 알고 보니까 하나님이 마른 막대기를 가지고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거예요. 정말 놀랍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깊이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이 영혼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이번 여름 아웃리치에서 보고 내년에도 갔던 그 지역에 같은 교구에서 똑같이 가서 뜨겁게 전하면서 우리가 우리 지역 사회의 많은 영혼들 그 영혼을 교회 와서 무슨 봉사를 할지 이용가치로 보지 마시고, 교회에 데려다가 똥오줌을 받아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돌보셨을 영혼을 우리가 가슴에 품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여러분이 힘이 부족하면 우리가 힘을 보태서 한 마음이 되어서 우리가 정말 이 길을 가야합니다. 그런데 10교회를 보면 그 중에서 3, 4교회 목사님 들은 그 마음에 불이 안 당겨져서 그렇지 폭탄이 있어요. 누가 와서 당겨주면 폭발할 그게 있어요. 솔직히 없는 교회도 있어요. 1년만 있어보면 알아요. 그러면 그 교회 뜨겁게. 이번에도 오셨다는데 연천에 천산교회. 교회도 크지 않았어요. 60여명 모이는데. 아웃리치 갔는데 이게 무슨 시골교회냐 그랬어요. 도시 변두리에 있는 교회인데. 그래도 시골교회 티가 나죠. 몇 년 전인가 제가 가서 깊이 감동을 받았어요. 저도 전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사모님하고 집사님하고 얘기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뭐하냐 하니까 빵을 굽고 있데요. 공장에서 쓰는 커다란 빵 기계가 있어요. 우리 열린 교회도 빵 기계가 없는데. 이게 뭐냐니까 사람들이 봄, 여름에 전도를 하러 가도 다 밭일 나가 있는 거예요. 그 때 빵을 구워서 커피를 시원하게 타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새참시간에 가서 맛있게 구운 빵 하나 이거 우리가 구운 빵입니다. 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하면서 커피도 따라 줍니다. 사람들이 한 번 먹을 때는 몇 번이나 오나 보자 하는데 매주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아무 말도 안해도 지역주민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나는 그런거 듣지도 못했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죠. 사랑은 모든 창의성의 원천이예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니까 하나님이 그런 지혜를 주십니다.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그걸 먹고 마시는 동안에는 전도를 할 수 있어요. 김매는 사람한테 가서 죽으시면 어떻게 되시는지 아세요 그러면 짜증나죠. 그런데 배가 고픈 시간에, 세 시쯤 갑니다. 따끈따끈하게 구워온 빵 하나하고 시원한 커피. 얼마나 좋아요. 마시면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디 사십니까. 저희는 청산교회에서 왔습니다. 거기는 성탄절 날, 오늘은 성탄절이니까 모두 다 오셔야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지 않아도 봉투 들고 다 와요. 무슨 장례식한다고 하면 평소에 신세졌으니까 다 와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소원을 가진 사람을 도우세요. 나는 우리나라 조국 교회에 시골 교회를 절대 비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가슴에 불을 가진. 아까 그 목사님도 여러분들 생각하기에 팔팔하게 젊은 목사님. 아니예요. 지금 60세 넘으셨죠? 60대 중반은 되실꺼예요.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불을 받으니까 그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난 그 동네만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요. 그 목사님이 그러시면 그 동네가 복 받은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 마음으로 그렇게 찾아가서 섬겨주는데 뭐가 아깝겠어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길에 들어섰을 때 영광을 얻고 하려고 들어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간증을 하자면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말도 못해요. 3년 전에 진도에 갔는데 청년들이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무당이 회개하고 예수 믿었어요.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열린 교회에서 별로 은혜도 못 받고 시들시들하던 지체들이 거기 가서 자기가 이렇게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았다는 거야. 그 다음 주일 설교에는 조금만 설교해도 은혜를 막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냥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키는 것을 하니까 복을 주십니다. 교회가 오천 명, 만 명 되어도 시골교회 전도가자고 하면 백 명도 안 따라갑니다. 그런데 이 조그만 교회에서 600명, 800명 씩 그냥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 10만원 가까지 자기 돈 내고 자비량으로 갑니다. 자기 휴가 내고 가는 게 쉽겠어요? 그런데 받은 은혜, 받은 십자가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합니다.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 더 귀하다 아멘
내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열린 교회가 선교 센타를 세워서 각 도에 8명쯤 선교사를 파송하고 일 천 교회에 백 명의 영혼을 담는, 십 만 명의 시골 교인들이 영혼을 얻는, 생명을 얻는 꿈을 꿉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여러분도 산전수전 다 겪으셨겠지만 목회자가 목숨을 걸면 없는 길은 생기고 도저히 길을 낼 수 없으니까 벼랑 끝에 몰렸는데 기도를 세게 하니까 하나님이 날개를 달아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가 많습니다. 꿈을 꾸세요. 어느 목사님이 그래요. 은혜를 많이 받고서 하루에 한 번씩 동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올라간데요. 그리고 아빠처럼 이렇게 끌어안고, 축도가 아니라, 아래에 있는 동네를 끌어안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의 양떼들입니다. 예수 믿는 인간이나 안 믿는 인간이나 나의 양떼들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번 여름에 큰 성령의 은혜를 여러분에게 부어 주셔서 그 불이 여러분에게, 여러분에게 있는 불이 영혼들에게 그래서 목회에 이제껏 보지 않은 큰 영광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