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집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4:15)
녹취자: 김경애
한자로 된 고사 성어 가운데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상대(相對)는 서로를 대면하여 본다는 뜻이고 괄목이라는 말은 목(目)은 눈이고 괄(刮)은 비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눈을 부비면서 상대를 쳐다본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닌 너무나 변한 모습 때문에 사실인지 의심이 나서 내 눈이 착각을 하는 것인가 의심스러워서 눈을 비비게 되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괄목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같은 제자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전심전력해서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모든 점에 있어서 진보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제 이 학창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적어도 5가지 이상의 진보를 말하고 싶지만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진보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지성의 진보이고 또 하나는 인격의 진보입니다. 하나는 지성의 진보이고 또 하나는 신앙인격의 진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이 지성의 진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이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만약에 이 질문에 대해서 ‘취직하기 위해서입니다.’ ‘먹고 살려면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합니다.’ 그렇게 대답한다면 이 학교가 여타의 모든 상이 학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그저 불편이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바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지도자의 삶을 살기 위한 수학의 과정입니다.’ 라고 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이 옛날보다 들어가기 쉬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태어날 젊은이들 가운데 그래도 대학에 들어가서 다니는 사람들은 아주 선택된 사람들이고 더욱이 그 많은 대학 중에서 전철을 타면 다닐 수 있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매우 커다란 특권이 아닐 수 없어서 서울에 있으면 모두 ‘서울대’ 라고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대단히 커다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고 또 기독교 이념을 표방하는 많은 대학들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이 총신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또 명예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이 대학은 정말 화염병으로 얼룩지고 심지어는 전경이 쏜 최루탄이 교수실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 정도로 그렇게 황량하고 살벌한 시대에 살았고 수시로 학교의 이사회 차들이 운동장에서 뒤집어져서 파손을 당하고 불타고 하는 그런 정말 고통스러운 그런 시기를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정말 감사하고 저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재작년인가 언제 여러분의 개강수련회를 온 이후로 총신대학에 대한 이미지가 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별로 못마땅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대학원에서 총신대학 출신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렇게 썩 본받고 싶은 학생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입을 열면 다른 학생들은 실력이 없어서 이 학교에 들어왔고 자기는 재수 없어서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교수님들에 대한 험담 등등 참으로 싫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와서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고 왔으니까 실망을 하지 않았는데 다른 학생들은 기대를 많이 하고 와서 참 안 좋았는데 재작년에 와서 보면서 이 학교가 그 학교가 맞나하고 정말 괄목상대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기도가 뜨겁고 어쩜 이렇게 간절하고 무엇보다도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학생들의 표정이 그때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예의 바릅니다. 그래서 제가 총신대원이야 제가 나왔으니까 그렇지만 총신대학에 대해서 그때부터 애틋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뭐하지만 유 교수님이 오시고 나서 많이 변한 이 학생들의 경건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좋은 때에 여러분들이 이 대학을 다닌다고 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복 받은 때가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학교 신대원을 다닐 때만 해도 건물이 저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다 낡은 본관뿐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도서관에 책이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김 총장님이 물질을 쓰시겠다고 그러시니까 제가 강력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도서관이 훌륭하게 갖추어져서 한국의 모든 신학대학이 부러워하는 전자화된 최대의 도서관을 일구었으면 좋겠다고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좋은 때에 다닌다는 것은 여전히 특권입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성도들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다 여러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지도자로 자라서 아직까지도 부족한 것이 많은 이 교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어주고 이 나라와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되어달라고 여러분들에게 이런 여건들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놀라운 기회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지성의 진보를 위해서 전심전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시기마다 집중해야할 가치가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린아이 시절에는 엄마 젖을 물고 놓지 말아야합니다. 계속 빨아먹고 자라야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아이들일 적에는 그냥 뛰놀아야합니다. 개구쟁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이제는 공부를 위해서 전심전력해야 할 때입니다. 정말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에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들을 교수생활을 하면서 9년 정도 가르쳤습니다. 보면서 그때도 항상 생각을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중요한 덕목은 이렇게 좋게 주어진 이 시기에 전심전력해서 자기의 학문의 진보를 위해서 노력을 하여야하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몸담았던 대학이 이 대학은 아니지만 제가 가슴을 치면서 항상 안타까웠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고자하는 욕구가 없습니다. 지식에 대한 욕구가 없단 말입니다. 일 년이 지나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권도 빌려보지 않는 학생이 많고 여학생들 아침에 등교하는 것을 보면 저게 놀러 왔는지 공부를 하러왔는지 얇은 노트 한권 끼고 그 다음에 뾰족구두를 신고 짧은 치마를 입고 얼굴에는 별것을 다 바르고 나옵니다. 공부할 때에는 말입니다. 차림새가 거의 도인을 방불케해야합니다. 그러고 나오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시험 때는 그냥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커닝을 하는데 다 쓰레기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래에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로 자라나는 곳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촌각을 아끼면서 여러분들이 피나게 공부해야합니다. 나는 대학과정 시절에 여러분같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신대원까지 제가 7년을 공부했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많지만 다시 그 7년의 세월을 되돌려놓아도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야하고 지식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간절한 목마름으로 학문을 탐구해야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낙심될 때는 언제냐 하면 교수는 시험문제를 다섯줄로 냈는데 학생은 답을 한 줄로 쓰고 나갑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좋은 점수를 맞을 각오가 없으니까 그냥 낙제나 면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이 학생들 기말고사를 구두시험으로 봤습니다. 얼굴을 대놓고 봤습니다. 네 명씩 들어오라고 그래서 그 시험을 보는 데만 제가 한 달 걸렸습니다. 4명씩 들어오라고 그래서 한사람 앞에 6문제씩 물어보는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공부를 좀 합디다. 왜냐하면 안보일 때는 5줄로 질문을 하면 1줄로 쓰고 갈 수 있지만 얼굴을 대놓고 물어보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야합니다. 제가 가르칠 때에 열심히 그 가르침을 따르던 성실한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학기엔가는 제가 과목을 가르치는데 첫날 수업에 들어가서 과목해설을 하면서 책을 소개했습니다. 그 책이 그 시간에 소개한 책이 60권이 넘었습니다. 학생들이 야유 비슷하게 ‘우우’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분필을 집어던지고 들었다 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된 학생들도 있는데 어떤 학생은 참 성실했습니다. 2년을 저에게 공부를 하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교수님이 우리에게 추천해주신 책을 다 읽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한 학기에 평균 내 키로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세워서 한 키가 아니라 눕혀서 한 학기에 한 키씩 읽으며 4학기를 따라왔답니다. 그렇게 해봐야 그거 몇 권 안 됩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 한창 지적인 욕구가 왕성할 이때에 부지런히 공부해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애를 써야합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시절에 총신대에서 데모를 해서 내 책에다가도 썼습니다. 헬라어, 히브리어를 선택과목으로 해달라고 데모를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미친놈들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것도 신학과 입니다. 그것은 털도 안 뽑고 닭을 먹겠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니 성경을 가르치면서 일생을 살겠다는 사람들이 아니 히브리어, 헬라어를 안 하겠다고 하니 그것은 마치 해군이 바지에 물을 묻히기 싫다는 이야기이고 육군이 팔꿈치에 흙먼지를 안 묻히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오죽 답답하면 내가 책에다가 예화를 썼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C학교라고 그랬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못하면 그 못하는 것을 가지고 깊이 뉘우치면서 분발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데모를 하고 말이지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대전에 내려갔을 때에 목탁을 두드리면서 돈을 받는 중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물었습니다. ‘중님!’ 왜 그러느냐고 그래요. ‘내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나는 너무 몰라서 그러는데 대답 좀 해주시오.’ ‘불경의 원어야 물론 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겠지만 한자로 된 것이라도 편안하게 읽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되어야합니까?’ 그러니까 신문을 읽을 수 있는 한문 실력으로 10년을 공부해야한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 그가 하는 말이 학생들하고 똑같습니다.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그런데요 선생님! 요즘 번역이 잘되어서 그거 할 필요 없습니다.’ 어쩜 그 학생들하고 그렇게 똑같습니까? 그래서 속으로 ‘너도 땡이구나!’ 들어보십시오. 땡중과 고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땡중과 고승의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 두 가지입니다. 땡중은 인격도 모자라는데 지식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땡중입니다. 고승은 뭐냐 하면 인격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한 학승이어야 합니다. 학승이 아니고는 고승일수 없습니다. 그러면 공부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들이 6시간 이상을 자면 범죄하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단 예외가 있습니다. 몸에 심각한 질병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 6시간 이상을 자면 이미 여러분들의 공부하는 자로서의 이 속에서의 이 생명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하는 사람들 치고 퍼질러 자고 먹고 싶은 대로 퍼먹는 돼지는 없습니다. 그것은 지성인하고는 안 어울리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절제를 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전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한 17년 전에 어떤 분이 오셔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의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보면 유교의 참상이라고 그러면서 어린 소년이 밥그릇을 들고 울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주 유명한 사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습니다. 6.25때 부모를 다 잃어버리고 전쟁고아가 되었는데 미국으로 입양이 되어서 갔습니다. 아버지가 대령이었답니다. 아주 엄격한 집안이어서 아침에 밥 먹으러 내려올 때 넥타이를 안 하고 내려오면 그냥 귀방망이가 올라가는 그런 집이었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독하게 얘를 교육을 시켰는지 하버드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오고 거기서 박사논문을 쓰고 그리고 백악관에 들어가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때 그 논문지도교수가 헨리키신저였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와서 강연을 하면서 자신이 이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나처럼 통탄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6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때같이 공부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안 한다고 강연을 하는데 보니까 하품이 나옵니다. 왜 공부를 안 하냐고 하니까 책을 하루에 480페이지밖에 안 읽는다고 통탄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속에는 영어, 독일어, 불어 원서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에게는 영어가 원서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자기네 때는 620페이지씩을 평균적으로 읽지 않으면 에세이를 쓸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거기에 같이 있었던 교수들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때는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데모를 하고 그러던 때였습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때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입니다. 수업이 두시에서 네 시 사이에 끝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그대로 어디로 이동하느냐하면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벌써 일억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학생들이 자료를 찾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속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거기에 학생들이 들어가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Pub 이 있답니다. 그래서 거기를 자기가 크리스천이니까 먹지는 않는데 거기를 갔다가 혼났답니다. 들어오니까 티가 나는데 몇 학년이냐고 그러니까 ‘1학년인데요.’ 어디 여기를 들어오느냐고 4학년이나 되기 전에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혼났답니다. 빨리 가서 공부하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저녁을 먹고 나서 계속 공부를 하다가 이제 8시 9시경부터 학생들이 기숙사로 이동을 한답니다. 이동을 한 다음에 여름에 창문을 다 열어놓으면 소나기 오는 소리가 들린답니다. 타이프 치는 소리입니다. 유능한 학생부터 12시부터 불이 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2시, 2시, 4시 결국은 불을 못 끄고 5시 15분에 나와서 교수들과 조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저 써서 9시면 항상 자기네 학과에서는 Paper를 써서 가져가는데 9시10분에 달려갔더니 교수가 요만한 창을 열면서 늦었다고 ‘No Thank you’ 라고 그러면서 자기가 보는 앞에서 휴지통에 집어넣더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루에 620페이지를 읽어야지 소화할 수 있는 에세이의 분량입니다. 그것을 대학 4년, 대학원 2년, 박사과정 3년 내지 5년 동안에 빡세게 밀어붙이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별로인데 그렇게 3, 4년 정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전공분야뿐만 아니라 바깥세계에 대해서 눈이 확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이 420페이지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랬습니다. ‘우리는 42페이지도 읽지 않는데…….’ 들어보십시오. 읽다가 만 것 빼고, 수업을 하다가 중간에 데모를 해서 그만둔 것 빼고, 중간고사 시험범위 100페이지에서 200페이지까지 그랬기 때문에 읽은 것 빼고, 커버에서 커버까지 읽고 사인한 책이 얼마큼입니까? 그러니까 무엇인가 주워듣긴 듣는데 이 지식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정리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합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저 같은 상황이 되면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광범위한 독서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러분들의 시절에는 광범위하게 독서를 해야 합니다. 도스트옙스키나 아니면 톨스토이의 고전문학 작품 같은 것들은 고등학교 때 읽었어야하지만 그런 광범위하게 책을 읽으면서 습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민족사관 고등학교에서 필독서라고 그러면서 책을 한 100권을 냈는데 들여다보니까 내가 읽은 책이 20%도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철학적인 책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샀습니다. 사서 뒤져보니까 이게 내가 읽는 것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그 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때다 읽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적인 수준이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영국에 유학을 많이 갔습니다. 특별히 옥스퍼드나 캠브리지에 있던 어느 학생이 한 20년 전 이야기지만 자기가 캠브리지대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들을 썼습니다. 써서 보냈는데 자기네는 기숙사가 있는데 기숙사 안에 한 동마다 Teaching Aide TA가 있는데 같이 살면서 전공분야별로 언제든지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서로 토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말고사가 끝나면 하나의 기숙사 동에서 두 명 정도가 병원에 실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병이 몸살이 나서 실려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는 것입니다. 그중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자기 친구 중에 자기도 공부를 꽤 한다고 들어갔는데 너무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면서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름이 사이먼이었는데 야 너는 도대체 머리가 얼마나 좋으냐고 그러니까 나도 내 아이큐가 얼마인지 200이 넘는 것은 분명한데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얼마나 좋으냐고 그러니까 그것은 모르겠는데 태어나서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없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들어와서 최고의 시설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학기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한 기숙사동에서 두 명 정도씩 정신병원에 실려 갈 정도가 되니까 강대국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도로나 아파트 학교건물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들어가서 학문의 세계를 열어보면 좌절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공부를 안 하고 계속해서 농땡이를 치면서 살면 20년 후에 똑같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삐까번쩍하게 지하철이나 많이 놓고 고속도로나 놓고 좋은 차나 타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속에 사람이 지성이 모자라는데 어떻게 이 세상 역사의 변혁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힘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가 신학으로 전향을 해서 이렇게 목사가 되었지만 나는 목회를 하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모하게 이 말씀의 칼을 들고 교회로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무지한 것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밖에 없다.’ 한창 공부를 하고 지내오니까 마지막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그것뿐입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성경을 놓고 이 시대에 사는 백성들에게 이 세계와 우주 이 모든 것들 앞에서 한 시대를 사는 인간들에게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한 지성의 양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았습니다. 제가 도달한 결론은 뭐냐 하면 최소한 7년 정도는 이 건강이 위협을 느낄 정도까지 공부에 몰두했다가 나와야지만 겨우 가능한 것입니다. 7년이 안되면 최소한 5년 정도는 공부에 몰입하고 또 몰입한 나머지 이 육신의 건강이 위협은 느낄 정도까지 공부 속에 깊이 들어갔다 나와야하는 것입니다. 그냥 천재도 아니고 둔재도 아닌 평범한 머리를 가진 사람의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식에 대한 욕구에 불타지 않고 더군다나 그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켜서 인생을 올바르게 사람답게 살고자하는 지적인 욕구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오게 될 때 무엇을 가지고 지도자가 되려는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여태까지 읽은 독서의 양이 키가 넘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십시오. 3학년이 되었는데 6키 정도는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십시오. 만화책 같은 것 빼고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만할 때는 넓게 독서를 하면서도 전공분야에 대해서는 글씨가 안보일정도로 깨알 같은 것들을 붙들고 수많은 원어들이 쓰여 있는 그런 책들을 붙들고 씨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해야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대학시절에 여러분들이 극복해야 할 것은 언어의 벽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는 올바르게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못살지만 여러분들은 좋은 시절에 살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해야 하고 특별히 학문에 관해서 말하자면 말하는 것보다도 여러분들이 시대를 불문하고 영어권에서 나온 책들이나 불어권에서 나온 책들이나 독일어권에서 나온 책들을 섭렵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언어의 실력을 지니지 않고는 학문의 세계는 영원히 여러분들 앞에 문을 열지 않습니다. 제가 저희 교회에서 연구 비서를 뽑기 위해서 광고를 냈더니 열댓 명이 원서를 냈습니다. 다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어시험, 전공시험, 철학과 나온 사람은 라틴어시험, 불문과 나온 사람은 불어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 어쩜 대학원을 다 나왔는데 영어를 그렇게 탁월하게 못할 수가 있습니까? 심지어는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인데 영어 한 문장을 제대로 번역을 못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요즘 한국에서는 원서를 읽지 않는 대학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시대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전심전력해서 피맺히게 공부해야 합니다. 절대로 정승처럼 공부하는 것은 없습니다. 거의 자기 자신을 걸레를 만들면서 마음과 정신과 온 몸을 다 쏟아 부어서 그렇게 여러분들이 자기를 쏟아 부으며 공부해야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고, 또 한 나머지 일어날 때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때가 일 년에 몇 번씩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매년 따라가면서 학점이나 따는 것 같은 이렇게 해서는 여러분들이 결코 지도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이 이야기를 하는데 영국에 있는 목사인데 아이들이 거기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갔는데 아버지가 칭찬을 해요. 우리 아들이 공부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입니다. 그 앞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오리지널 텍스트로 읽으면서 그 자리에서 영어로 번역을 했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말입니다. 그것이 외국의 수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만날 Global화라고 지도를 그려놓고 거기에 팔뚝만 움켜쥐면 그게 Global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공부하다가 기숙사에서 병원으로 실려 가기를 바라요. 그러면 나와 우리 교회가 입원비를 대주겠습니다. 진짜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자신의 지성이 하나님께 헌신되어져야합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게으른 삶에 대한 깊은 회개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오늘이라는 날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내일이 없이 죽었고 우리에게는 그 내일이 오늘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가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도 10미터 이상은 뛰어다니십시오.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운동화 구겨 신고 노닥거리고 교회에 와서 기타나 치고 놀고 말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봉사하고 자신의 공부를 위해서 전심전력 매달려야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헌신해야합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인격적인 준비입니다. 여러분 공부를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근본이 안 되어 있는데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어느 한순간에 주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은 그렇게 주입되지 않는 것입니다.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비추어보고 그 앞에서 자기 깨어짐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공부를 많이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안보이면 그것도 공부를 한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그랬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인밖에는 없습니다. 한사람은 용서받은 죄인이고 한 사람은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참회의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터툴리안이라는 교부는 말하기를 나는 회개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눈물이 있는 상태에서 학문에 정진을 해야 합니다. 기도도 안하고 신앙생활도 안하고 뺀질거리면서 교회봉사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만 한다고 하는데 공부 잘해봐야 학원선생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식을 팔아먹는 것밖에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하면 이곳에 와서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이 회개하고,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심령이 되어서 점점 증진하고 있는 자기의 준비된 역량이 하나님께 그대로 바쳐질 수 있도록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 소중하게 쓰십니다. 한 30년 전에 우리들이 좋아하던 친구가 죽었습니다. 수련회를 갔다가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친구들이 그 동무의 비석을 세워준다고 양수리를 갔더니 돌 공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비석을 하나 하려고 했더니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습니다. 그때 우리가 돈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친구가 죽어서 그러는데 좀 반질반질하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랬더니 돌 공장 사장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당신들 참 기특합니다. 그러면서 사게 해주는데 조건이 있다고 그럽니다. 숫돌을 주면서 하루 종일이 돌을 밀면 당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그런 비싼 돌멩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친구들이 모여앉아서 숫돌로 그 돌을 갈면서 구슬픈 노래를 하면서 친구생각을 하면서 그 벽돌을 갈았습니다. 오후 내내 돌을 갈아서 그 석양이 질 때쯤 되니까 진짜 이 울퉁불퉁하던 돌멩이가 얼굴이 비칠 정도의 빛나는 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인격도 이렇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깎여져나가고 고난과 어려움이 계속되어서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가운데 우리가 깎여져나가서 결국은 이렇게 하나님이 쓰시는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 지겠구나! 학교 다닐 때 고난이 많습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고통 받는 가운데 학교를 다녀봐서 압니다. 제가 왜 신대원에 와서 1년에 한 번씩 밥을 사주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그렇게 배가 고파봐서 그럽니다. 그때 저는 신대원을 다닐 때 공부를 참 열심히 했습니다. 방학 때 보통 하루에 13시간 내지 15시간을 공부했습니다. 어느 날 공부를 하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바닥이 거꾸로 올라오면서 온 방안이 도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붙들고 잠시 주저앉았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심오하게 신령한 체험을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영양실조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그 생각을 항상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 때문에 여러분들이 깎여지고 다듬어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고통 받는 사람과 몸이 약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한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저기 연어라는 물고기는 저 태평양까지 가서 돌아서 큰 고기가 된 다음에 모천에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이 연어가 돌아오는 광경을 보면 정말 감격적입니다. 그렇게 큰 연어가 되어서 하천을 타고 돌아옵니다. 떠날 때와는 다르게 하천이 많이 개발에 의해서 변해있고 거기서 공해물질들이 나옵니다. 그래도 미친 듯이 돌진하는 것입니다. 가고 보니까 높은 폭포수가 가로막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온 몸을 던지면서 튕기면서 그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 모천으로 회귀하고 그곳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한 집념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야합니다. 그 낚시꾼의 밑밥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이 태어난 그 모천을 향해 회귀하는 그 연어들의 몸부림치는 귀한 그곳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목표 하나 이외에는 모두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거기 하나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교회 청년들보고 결혼할 계획이 없으면 연애하지 말라고 그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연애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결혼을 서른 살에 해야겠다고 하면 스물아홉부터 연애를 시작해도 안 늦습니다. 그게 왜 늦겠습니까? 1년만 해서 그냥 가면 되는 것입니다. 결혼할 계획도 없는데 이제 19살, 20살 먹은 애들이 연애를 하면 인생의 반은 털어먹는 것입니다. 언제 공부합니까? 학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문을 열지 않습니다. 학문은 자기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이 맛보았다고 하는 학문의 세계는 전부 다 남이 해놓은 것을 정리해서 밥벌어먹고 사는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학문에 있어서 독창성은 그 학문을 향해 신명을 바친 결과입니다. 그런 엄숙한 사실로 거기에 접근해야하는데 그렇게 정신이 팔리고 인터넷에 매달려서 쓰레기 같은 정보에 매달려서 서너 시간씩 보내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래서 구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학문의 세계에 전진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온힘을 쏟아 부으며 학문에 정진하는 것만큼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헌신하면서 끊임없는 깨어짐과 참회가운데 주님의 모습을 계속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꼭 쓰임을 받아서 하나님 교회의 번영과 하나님의 왕국의 완성, 그리고 이 가난하고 고통 받는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