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수련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종아 네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마25:23)
녹취자 : 신현숙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한 지침을 오늘 성경 말씀이 줍니다. 주인이 와서 종에게 제일 먼저 자기가 한 일을 보고 했더니 주인이 제일 먼저 한 칭찬이 ‘잘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을 잘하는 사람만 사랑하느냐는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 하고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람은 10의 능력을 어떤 사람은 8의 능력을, 어떤 사람은 2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2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2를 한 것입니다. 1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안하도 5는 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10의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5를 한 사람 보다는 2의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2를 한사람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오늘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달란트를 맡은 종의 하나님의 칭찬은 똑같습니다. 둘과 다섯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한 달란트는 지금의 거의 3천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의 돈입니다. 때문에 둘과 다섯 차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였습니다. 문제는 잘하는 것입니다. 잘하는 것은 완벽하다거나 실수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해지고자 끊임없이 애쓰는 몸부림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간다고 해서 하늘을 뚫고 구름을 지나 북두칠성에다 배를 대겠다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온전하게 하려고 애를써도 그리스도의 온전에 까지는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를 수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출발하면 그 길로 갈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잘 한다는 말은 그냥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애써서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완전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라는 존재가 완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절대로 반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한 것도 꽤 잘 한 것이기 때문에 반성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반성은 목표가 분명하고 거기에서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인식이 분명 할 때 그 격차를 생각하면서 후회와 아쉬움을 동반한 마음이 있을 때 반성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반성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를 아주 낮게 잡은 사람은 항상 성취감을 지나치게 갖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온전해 지려고 애를 쓰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반성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음과 정신의 작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은 신앙의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내 능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80밖에 안 되는데 주님의 일을 할 때 100을 해야 된다고 할 때 그러면 완전히 해야 되겠다는 그 목표는 있고 자기가 실제로 활용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80밖에 없을 때 그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 줄 수밖에 없다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무한신학교 교수님들이 동해안으로 수련회를 왔습니다. 이제는 학교에 가도 우리 선배의 연륜의 교수님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우리 후배들입니다. 나이는 저보다 훨씬 어린 후배들이지만 나를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목사님께 누가 가르쳐 드릴게 무엇이 있냐고 목사님이 더 공부하고 알고 계시는 데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겸손해서하는 거라면 나도 참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아는 게 없다라는 생각입니다. 나를 좀 도와달라고 누구에게든지 배우고 싶고 그를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유는 주님과 나는 더 높은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놓고 말을 할 때는 별로 없지만 수시로 나의 목회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그리고 주신 은혜는 참 크고 많은데 이렇게 밖에 사역을 못하는구나 그것이 너무 아쉽고 애써서 노력한 것은 능력이 모자라서 이를수가 없었고 능히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것들이 보일 때 그때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나는 주님 앞에 한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에 있던 사역에 관한 모든 어지러운 생각과 교만들이 거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한걸음도 때어 놓을 수 없는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 하는것 이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학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한 위대한 종들은 내 나이에 참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의 오묘한 비밀들을 더 많이 터득하고 어마어마한 그 진리를 쏟아 놓아서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주었는데 나는 이제 길어야 한 10년 밖에 남질 않았는데 이제까지 달려온 길보다 더 적은 길이 남았는데 이렇게 나태하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분주하기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습니다. 몇 년전 교육관에서 제가 책꽂이 앞에서 여러 번 울었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샀는데 그래서 읽을 시간은 있어도 책이 없었는데 지금은 책이 있는데도 이렇게 사역이 바빠서 그 책들을 못 읽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참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것 그것은 잘하려고 하는 사람만이 하는 것입니다.
나만큼 하는 아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고 내가 노름을 하나 바람을 피나 돈을 안 벌어줘라고 하는 이런 사람은 절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가 정말 부족한 아버지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자녀들을 더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나를 온전케 해주시옵소서 절대로 그렇게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교회에서 봉사 할 때는 맡은 직분을 제대로 봉사 못해서 마음이 아리고 직장에 와서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희생하지 못하는 빛과 소금이 되지 못 되어서 주님 앞에서 죄송스럽고 집에서는 자녀와 가족들에게 온전한 아들 온전한 딸 온전한 부모 온전한 자식이 되지 못해서 괴로울 때 그때 나는 할 수 없으니 주님 저를 도와 주시옵소서라는 절실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잘 하는 것과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때어 놓아야 때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아무렇게나 잘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섬김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그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부자 되기 위해서 영광을 한 몸에 받기 위해서 돈 많이 벌려고 사역을 시작한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붙잡혀서 그리고 나 같은 인간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에 그렇게 주님을 만난 교회가 사랑스럽고 그래서 예수 안에서 함께 있게 해주신 사랑하는 지체와 성도가 고마워서 그래서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부터 모든 섬김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다투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지난날들의 힘든 것을 해상할 때 조차도 우리가 잘한 일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이 난다든지 우리의 많은 희생이 우리속에 자랑거리고 자리를 잡는 다는지 하는 일들은 우리에게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백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잘 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그렇게 애를 쓸 때 거기에서 자기가 무엇이 부족한가하는 것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 자신의 부족한 것을 발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가 깨뜨려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사람이 일을 하면 그냥 일을 하는 것이지만 한사람이 온전하게 일을 하려고 몸부림치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은혜와 도움이 아니면 온전하게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며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자신의 이익 이런 것들에 눈이 어두워져서 맨 처음 나로 하여금 섬기게 했던 그런 아름답고 참다운 동기가 사라지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그런 일들은 슬프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수십 명의 사람들과 사역을 하고 나는 이 자리에 여전히 있지만 그 사람들은 나타났다고 사라지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주님도 조금밖에 사랑하지 않고 성품도 원만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점점 더 사랑하고 일도 처음에는 엉터리로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온전해 지고 하나님도 더 많이 사랑해서 착해져 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김을 시작했다고 후에 마음이 굳어지고 착한 사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다가 사역에서 물러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러난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또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계속 주님을 사랑하면서 착한 성도가 되어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나눠집니다. 사람이 섬김의 동기가 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자기의 수고를 몰라 줄 때 그 사람이 자기를 섭섭하게 할 때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 질 때 자신의 일도 버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일하는 그것이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런 시험을 통해서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고를 몰라주고 때로는 오해하여 자기를 핍박하고 때로는 자기가 애쓰고 수고한 모든 것에 어떠한 상급이 사람으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친구들은 나를 버려도 주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떠나지 아니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이일을 맡기신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주님을 섬기면서 우리의 섬김의 기반이 하나님인지 사람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인지 끊임없이 들어내 보여주는 가운데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경험을 보면 그가 섬길 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종처럼 생각하면서 심지어 사도바울은 자신의 서신 속에서 너희가 간이라도 때어서 나에게 주었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사도바울을 사랑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박수갈채 때문에 열심히 더 일한적도 없고 그들이 실망시켜서 그들에게 낙심한 마음 때문에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도 없었습니다. 항상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래서 주님 앞에서 그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 주님을 향하여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칭찬을 듣고 목회자에게 인정을 받는 마음이 섬김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많이 섬겼는데도 주님이 오셔서 나는 한 번도 너에게 섬김을 받은 적이 없다 너는 일한적은 있지만 나를 섬김 적은 없다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그리고 그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유능한 교역자들도 만나고 무능한 교역자들도 만났습니다. 착한 직원들도 만났고 못된 직원들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못됐지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다 용서가 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는 돈 많은 사람이나 얼굴 예쁜 사람이나 큰 일하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 자기하고 똑같이 자기가 사랑하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일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원으로 오기 전에는 그렇게 주님 안에서 감격하고 주님을 만나고 하지만 가상에서 섬길 수있 는 자리가 되면 예배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늘 어수선한 마음이 되어서 성경읽기로부터도 멀어지고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것으로부터도 멀어지고 출판실에서 일하던 자매 중 한명이 나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느날 책을 만들다가 일손을 멈추고 내가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흘려보내고 그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고 변화고 회심하지만 정작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 은혜와는 전혀 상관없이 차가운 마음으로 만든 이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내 손에서는 이것이 진흙 따위로 떡을 만드는 것처럼 만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김이 모락 나는 맛있는 떡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는 내가 소외 되었구나라는 것입니다. 일은 그 자체안에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효과도 없고 죽이는 효과도 없습니다. 그냥 일은 죄도 아니고 은혜도 아니고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그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 안에 죄가 번성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주 번성해서 마음을 녹여 예수의 형상을 본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잘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주님이 보기시게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