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11 직원수련회
직원수련회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2:1)
녹취자: 박유진
우리가 흔히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산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마 주님께 붙잡혀서 산다고 하는 것보다도 이 세상에서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조금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존 오웬 목사님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최고의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엔가 붙들렸다라고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을 합니다. 물건 같은 것들이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있을 때 붙잡은 그 주체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을 우리들은 붙잡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자유와 의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붙잡힌 것을 가리켜서 붙잡혔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산다는 것은 좀 다른 의미입니다. 물건을 붙드는 것은 붙드는 사람 혼자의 작용이지만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 이것은 마음과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붙드는 하나님 혼자만의 작용이 아니라 그 자유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 자신이 붙들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께 붙들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열정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것도 주님께 붙들렸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자기 꿈에 사로잡힌 것도 주님께 붙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진정으로 주님께 붙들렸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께 붙들렸다는 것은 주님 마음대로 움직이신다는 건데,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주님, 육신의 눈으로 보면 어디에도 안 계신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주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 붙들리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어떤 책을 읽거나 어찌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대할 때에는 자기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맨 처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맨 처음 것으로 만족을 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사람은 변화되지 못하고, 주님의 손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맨 처음 읽을 때에는 내가 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씀에 은혜를 받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예배에 나와서 설교를 들을 때 ‘아 내가 오늘 설교를 들어야 되겠구나.’ 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될 때 내가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나도 알지 못하는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소리를 오히려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성경을 읽는데 오래전부터 읽어 내려오던 습관이 있습니다. 성경을 천천히 읽으면서 죽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오면 멈춥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계속 읽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별 특별히 깨달아지는 것이 없으면 그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계속 읽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언뜻 깨달음이 오면 다시 멈춥니다. 그리고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반복해서 읽습니다. 심지어 저는 1989년도에 누가복음 11장 1절 한 절을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동안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읽어 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깨달아지는 깊이는 그가 기존에 교리적인 지식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또 성경의 다른 부분을 얼마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지에 따라서 깨달음의 정도와 깨달음의 가치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교리를 배워야 하는 것이겠습니다. 깨달아지면 그것을 더 천천히 마음에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더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성경의 그 진리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기록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깨달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그것을 계속 받아들입니다. 그 단계가 지나게 되면 처음에는 내가 성경을 읽었는데, 두 번째는 내가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감추어진 것, 더러운 것, 마음에 굽어지고 아픈 것,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이 후벼 파고 드러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크게 밀려오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님의 의로움과 사랑입니다. 바르지 못한 것을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시고, 올바르지만 고통스러웠던 것들을 주님께서 위로해주시는 사랑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볍게 아무렇게나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에 항상 정보처럼 들으려고 하는 객관적인 태도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 깊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말씀을 객관적인 정보로만 알려고 하는 사람은 (예화) 마치 수박을 혓바닥으로 핥고 있는 사람과 똑같아서 늘 축축하고 차가운 것이 입술에 닿은 기억은 있지만 그 빨간 과육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과즙의 맛을 한 번도 느껴 본적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빛에 의해서 깨어진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늘 교만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실은 거의 대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처지에 있게 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깨트려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대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5분을 목표로 하고 성경을 읽는다든지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천천히 대화하는 것입니다. 결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성경을 읽는다고 생각을 하고, 그때 더 깊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쳐주고 잘못된 것은 심하게 책망하여 회개하게 하고 내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이 우리를 바르게 하는데, 이것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지식의 힘으로만이 아니라 성령이 은혜의 힘으로 역사해서 우리를 바르게 하고 그 성령의 역사 위에 새로운 본성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제가 89년도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20년이 되도록 살아오는 동안에 나를 살아있게 한 그 힘은 그러한 말씀의 은혜였습니다. 때로는 큰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고 때로는 영적인 침체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하나님 말씀의 그 풍성함이 예전과 같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늘 기본적인 힘이 되어서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깊이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그 시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하는 기도의 시간이 됩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가 허공을 치는 이유는 열심히 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잘못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의 기도가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다급한 것과 기도할 때에 열렬해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처음에는 냉랭하게 시작하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아주 열렬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말씀을 준비하러 멀리 제주도까지 갔는데 월요일 늦게 도착해서 얼마나 피곤한지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기도하고 조그만 숙소에 쓰러져서 아침까지 자다가 아침에 햇빛이 눈부셔서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주는 사경회였는데 평소 읽던 성경을 안 읽고 사경회를 준비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몇 장이라도 읽고 설교를 준비하려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것이 민수기 28장 3-5절이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어느 한순간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이 구절이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침에 크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 뒤 기도를 하고 회개를 하고 깨달은 내용들을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다는 못 전했지만, 그 해에 사경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깨어짐’이라는 책도 이 구절에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말씀에 담아서 보여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 없이는 주님의 마음의 깊은 부분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는 아주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깨달으면서 생활을 하게 될 때에 그 말씀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입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말씀에 사로잡혀서 그 말씀에 붙들려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가끔 나보다 공부도 많이 못하고 교회를 나온 지도 얼마 안됐지만 나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것이지만 많은 성경지식이 없어도, 교리를 많이 알지 못해도 오늘 새벽기도가서 은혜 받고 집에 가서 성경 읽으며 은혜 받고 그 다음날에 가서 또 은혜 받는 생활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니 비록 지식의 깊이는 깊지 않아도 말씀이 그를 꽉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훨씬 양질의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주님의 말씀에 의해 꽉 붙들려진 이것이 부패하고 금방 느슨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부패성이 마음에서 쉼 없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과거에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한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긴 하지만 그 타령만을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지금 붙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대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말씀에 붙들리며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맨 처음에 큐티책도 써보고 별거 다해봤는데 나한테는 안 맞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제 방법이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직접 대하면서 깨닫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에 열린공간 마당에서 그렇게 은혜를 받고 붙들렸는데 오후가 되면 마음이 식고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붙들리는 깊이도 문제가 되겠지만 횟수도 문제가 됩니다. 매일 매일 그렇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하고 주님 하고 싶어 하시는 대로 하고 살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