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상반기 교역자 수련회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레 24:1-3)
녹취자: 이현정
성막에는 등잔불이 있었습니다. 그 등잔 기름은 백성들이 가지고와서 그 기름을 사용해서 그래서 성막의 불을 밝혔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성막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재료로 되있습니다. 그래서 물돼지 가죽으로 덮어서 밤이나 낮이나 캄캄하고 외부로부터 빛이 차단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위해서는 자연의 채광이 아닌 등잔불을 켜야 됐고 그것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걸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임재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자연적인 지식이 아니라 등잔불로 묘사되는 신적인 계시의 빛이 필요하다.라는 그런 의미로 저는 해석을 합니다. 근데 오늘 주목해보고자 하는것은 여기에 등잔불과 그 기름에 관한 규례입니다. 언젠가 성경을 읽으면서 깊이 은혜를 받은적이 있는데 오늘 성경이 뭐라고 그러냐면 하나님앞에 밝히 등잔불이 있다. 이 등잔에 불은 최소한 두가지의 의미를 상징한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지성의 빛입니다. 지성의 빛. 그래서 이 빛은 사물을 보는 주체도 아니고 사람이 바라보는 객체도 아닌 제 3의 것인데. 그 빛이 없으면 아무리 사물을 볼수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물을 볼수 없다는 점에서 이 빛은 물리적인 것인것과 동시에 관념적인것입니다. 객관적인것과인 동시에 주관적인것이고 그리고 물질적인것과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빛은 아주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성막이 그 등불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인데 그 등불이 있었기 때문에 그거 하나로 충분히 제사장이 혹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것은 목회의 기술이나 그리고 성공한 교회의 노하우나 그리고 또 자기 비전을 이루기위한 야망의 시련으로서의 수단이나 아니면 현재의 시대정신에 잘아는 그런 기술이나 그런게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목회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오늘말씀에 보면 깜깜한 성소를 밝혔던 것은 등불이었던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한것은 되지만 그것은 우리가 모두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고 진짜 빛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 빛은 계시의 말씀의 빛입니다. 그러니까 그 계시의 말씀의 빛이 우리 목회 사역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게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혹은 제사장이 성소에서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때 만약에 거기에 빛이 없다고 한다면 깜깜한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아마 그 진설병을 엎어트리고 그다음에 등잔을 쓰러트리고 시은소를 발로 밟고 법궤에 넘어지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앞에 중대한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의도는 없어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때 부주위한 모든 것들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악의가 있어서 짓는죄도 있지만 악의가 별루 없지만 찬란한 계시의 빛이 모자라기 때문에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은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교회의 영광은 그 교회의 크기나 아니면 세상에서의 인정이 아니라 마음속에 찬란한 계시의 등불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 그의 복음 사역은 잘들으세여 그의 복음 사역은 끊임없이 매일 매일 그 등잔불을 어두운 교회에 환하게 밝히는 사역이 그게 목회사역입니다.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 자신의 목회사역에 찬란한 빛이 있어서 그 계시의 빛이 자기의 교회를 그 진리의 빛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의 사역이 진리를 전하고 진리를 올바로 선포하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회사역을 통해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바로 그 등불을 밝히는 일입니다. 만약에 그 등불이 없다면 사람이 아무일도 하지않고 가만히 있다면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지만 그 찬란한 빛이 없다면 열심히 그 성소와 지성소에서 움직일수록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제일먼저 목회사역 그 자체가 끊임없이 이 계시의 등불을 밝히는 사역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이얘기입니다. 목회사역에서 계시의 등불을 끊임없이 밝히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마음 안에서 그 등불이 언제나 밝게 타오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등불이 자기의 가슴안에서 언제나 활활 타오르고 있을 때에 그것에서 자기가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주님의 교회에 유익을 끼치고 그 성소에 들어온 모든 주의 종들에게 진리의 밝은 빛을 비춰주어 자기의 어두운 마음을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빛을 발견하는 모든 사람마다 항상 자신의 삶이 그 진리에 합체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게 진실한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제일 먼저 그 계시의 입각해서 그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성경적인 구도자의 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충심을 하나님앞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독서와 학문은 그런 진리의 빛을 얻기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도구들이 우리에게 아무리 많이 있어도 우리의 마음 중심이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모두 쓸모없는 자기자랑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진리의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지나것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는 진리의 말씀이 이 안에 항상 현재적으로 타오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할 기회를 주면 댐에 수문이 열리는것 처럼 확 쏟아져나오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등불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도전입니다.
두 번째 이 등불은 기도의 등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타오르는 불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안에 있는 죄를 태우고 소멸할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중심을 드리는 간절한 기도속에서 그 속에서 그의 지성은 가장 명료해집니다. 그리고 선명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원리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늘 책을 들고 다니고 공부를 하지만 그것은 마치 뜬물에 생수를 붓는것과 같이 그렇게 흐릿하게 되는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의 기능은 하나님의 열열하게 사랑할 때 가장 명증한 효과를 나타냅니다.그 마음이 가장 지성적으로 하나님앞에 아름다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세척하여 다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타오르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힘입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이 없이는 우리의 말씀계시의 생활도 풍족해질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것들이 통합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공부를 안하려고 합니다. 거침없이 공부 무용론을 대담하게 부르짖고 자기 성향은 성향은 공부하는 성향이 아니라는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그것은 감추어야할 수치이지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밝혀야할 영광이 아닙니다.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으면 진리를 알기를 원하는게 진짜 사람 아닙니까? 땅 투기 꾼이 진짜 땅 투기 꾼이라면 어디 땅값이 올랐다 하면 그 전모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그게 진짜 투기 꾼입니다.
모든 것들을 이렇게 생각해보고 나면 기도와 그리고 계시의 빛이 우리 속에서 하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이 하나님앞에 바치는 이 등잔불 이것을 잘 간수하는 것이 말하자면 아론의 사명이었습니다.우리 교역자 목회자의 사명은 교회안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않게 하고 자신안에서도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그렇게 잘 간수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도리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목회자는 무엇을 설교하든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안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의 불꽃이 목회자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 타오르도록 그런 생활이 되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 등잔불을 밝히는것 계시의 불을 밝히는것도 기름이고 기도의 등불을 밝히는것도 기름입니다. 근데 오늘 성경에 보면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그랬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아주 큽니다. 여기에 보면 감람을 찧어냈다. 감람은 알다시피 올리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올리브 기름을 만드는 방법은 압착방식으로 기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그것을 올리브를 깨트려서 그 통에 넣고 기계를 돌리면 프레스처럼 짜지면서 거기에서 참기름 짜듯이 깻묵처럼 짖눌리면서 거기서 기름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소 생활속에서 사용하는 올리브 기름입니다. 근데 오늘 성경은 그렇게 짠거 말고 찧어낸 순수한 순결한 기름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여기서 찧어냈다라고 하는 말이 까띠뜨라는 히브리 단어인데 까띠뜨는 때리다라는 뜻을 가진 카타트 동사에서 온 피동형태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압착기 넣어서 확 돌려짜서 기름을 뽑아내는것이 일반적인 기름 제조 방식인데 성소에서 등불을 켜기위해 사용하는 기름은 그렇게 만든 기름가지고는 안된다는겁니다. 절구에 놓고 빻면 열매가 깨트려지면서 기름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쎄맨까띠뜨입니다. 그래서 깨트리면 빻아지면서 감람이 쪼개지면서 사이사이에서 기름이 나옵니다. 그 기름만을 모아서 그걸 여기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럼 일반적으로 짠 그 기름이나 그 기름이나 똑같은 기름일텐데 왜 이렇게 하나님이 까다롭게 명령하셧을까.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착기에서 넣어서 짜서 사용하는 기름은 먹고 그들이 바르고 여러용도에 사용했지만 성소에 등불을 켜기에는 부적합 했습니다. 왜냐하면 눌러서 짰기 때문에 어거지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름이 나올 때에 그 올리브에 찌꺼기들이 같이 쏟아져 나오는겁니다. 거기에 불을 붙이면 그을름이 나게 됩니다. 그 기름은 순결하지 않은 불순물이 섞여있는 기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소를 불밝히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생각하신 겁니다. 그러나 절구를 찧어서 깨뜨려져서 처음 흘러나오는 기름은 그야말로 열매가 깨뜨려지면서 그대로 흘러나온 기름이기 때문에 불순물이 없이 순결한 기름이어서 불을 밝힐때 그으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이건 우리에게 도전이 더 큽니다. 우리들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목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자기의 인생과 철학 자기사상 자기가치관.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그러한 세속적인 인생관들 이런 것들 뒤섞어서 그것을 등불이라고 교회에 켜놓으면 첫째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아니하시고 두 번째는 그 빛을 보면서 그 빛이 밝기가 순결한 기름이 밝은 빛이 나지 그런 기름이면 밝은 빛이 나지 않고 어둡고 흐려진 기름이 되는 겁니다.
우리 옛날에 호야를 사용할 때 보면 좋은 기름을 쓰면 방안이 환합니다. 나쁜 기름을 쓰면 시뻘건 불이 올라오고 검은 그을름이 나면서 불꽃이 춤을 추고 어둡습니다. 그러니까 성경가지고 목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할수있으면 그 진리를 순전하게 전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게 하지 않도록 애쓴다고 표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와 비진리가 무엇인지를 잘 가려내기 위해서 수고해야하는 그 일이 목회자의 임무라 이겁니다.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해야지 그게 진정한 기도지. 목회의 성공을 위하고 목회란 이름으로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동기로 교인들을 기도로 몰아가고 자기를 기도로 채칙질을 한다면 그게 어떻게 순수한 기도라 할수있겠습니까. 나는 기도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기 생각하는 바가 틀리겠지만 망원경을 조절하는것에 비유합니다. 쏟아붓고 열열히 기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초점을 딱 맞추어서 사물이 정확하게 보이듯이 마음에 흐트러진 초점을 하나님께 고정하여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기도에 있어서 처음 해야할 일이고 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할때는 열렬해 지려고 먼저 애를 쓰지 말고 흐트러진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 한분에게 딱 고정시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상태가 아주 좋고 그리고 충만할 때에는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기만 하면 한번의 이 초점이 딱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나는 이것을 기도에 있어서 영적순발력이라고 부릅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마음의 틀이 엉크러져서 그래서 이 초점이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시간 엎드려있으나 거의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한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지 못하는 초점이 맞지 않는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것이 뭐냐하면 순수한 마음, 순전한 성령의 역사, 이런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마음이 하나로 딱 모아져서 그래서 하나님앞에 순수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하기 시작할 때 그 기도는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어도 하나님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이 있고 그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또다른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기도는 우리도 모르게 잘못 걸어다던 우리의 길을 바꾸어 놓고 순수한 기도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들을 교정하게 만들어 줍니다. 무엇보다도 순수한 마음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읽혀지기를 자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때 교회에는 그 은혜의 등불이 밝게 켜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항상 잘할수 있겠습니다. 근데 이런 등불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런 등불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이겨낼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좀 인간의 자극에 의해서 휘둘려지지않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공동체를 휘몰아 가려는 인위적인 드라이브가 아닌 성령에 의한 순수한 기름과 같은 순수한 성령의 역사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순수한 성도의 마음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순수한 설교자의 말씀사역. 이런것들이 함께 어우려지면서 교회에 참된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교회의 영광인 것입니다. 어차피 모두 설교자 좋다는 사람도 없고 모두 싫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강물처럼 왔다가 가고 갔다가 오고 어제는 나의 친구였는데 내일은 나를 배반하는 사람이 되고 오늘은 나를 존경하는 사람이 얼마후에는 나를 욕하고 다니는 일은 이 세상에서 피할수 없는 일이고 언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속에서 순수한 마음의 순수한 기도의 등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님 만으로 위로를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해도 교인들 때문에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지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 때문에 행복해지는 그런 삶을 충만히 살수있을 때 고난을 이기고 슬픔도 이기고 목회하는데 고생을 많이 해도 그것이 한이 맺히지 않고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것은 여러분과 나 자신에게 부탁이기도 하지만 꼭 우리이 목표가 있고 그래서 세게 밀어부쳐서 이루고 이런것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성도의 삶이 그 모든 원천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건에 두기위해서는 마음이 이렇게 끊임없이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너무나 오랫동안 맞추지 않으면 망원경이 녹이 슬어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며 진리 안에서 맞추며 그렇게 하나님앞에 살아가는 성도가 될 때 여러분 목회 사역에 기쁨이 생깁니다. 어딜 가든지 그런 등불을 켜는 목회를 할 수 있을 때 거기가 어디든지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