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상반기 교역자 수련회 2
“에베소교회에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사이를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 2:1).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일곱별은 그 앞에 나온 것처럼 교회의 사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자가 교회를 지켜주는 천사가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자는 교회의 감독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소개함에 있어서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이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은 2장부터 일곱 교회의 일곱교회가 등장을 하는 데 그 앞부분에는 모두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나오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어서 뒤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묘사가 일곱교회가 다 달라요 그래서 버가모 교회 같은 경우는 좌우의 날선검을 가지신 이가 가라새대 그랬던것이거든요 이렇게 다 틀린데 이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예수를 교회의 소개하는 이 예수님의 자기 묘사는 그 교회의 영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예수그리스도의 자기 계시가 아주 밀접한 연관을 이룬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겨루마. 교회를 향해서는 예수님이 좌우의 날선 검을 가진 분이심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 관해서는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는 일곱별을 붙들고 계신분이시고 또 금촛대사이를 다니시는 이시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이 에베소교회의 영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에베소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이 교회는 여기서 제일 먼저 주님께 제일먼저 책망을 받고 있지만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다른 교회는 말만하는데 행위가 있는 교회였고요 다른 사람은 이야기만 해도 이 교회는 수고하는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란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인내했던 교회였습니다. 나아가서 윤리적으로도 순결하여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였고 뿐만 아니라 자칭 사도라 하는 거짓 사도가 돌아다니는데 분별해서 거절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말씀의 깊은 지식과 영적인 분별력과 악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결단력까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참고 이름을 위해서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그런 교회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제껏 까지 본 교회들 중에 이런 정도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성경에서 그러나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앞에 나오는 모든 좋은 점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리는 예수님의 획기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다 만약에 우리가 평신도라면 처음 사랑이 이교회의 모든 장점보다 중요하구나. 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한걸음 더나가서 예수님의 이 자기계시 일곱별을 붙잡고 계신이가 그리스도라는 계시는 이 에베소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죠 무슨 뜻이냐면 에베소교회가 처음에는 그런 훌륭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훌륭한 점들 중에 대부분은 그 이후에도 계속 되었던 것이에요 이것이 교회 전통이라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그런 모든 형식적인 것들이 윤리적인 것들이 남아있지만 그러나 너희는 처음 사랑을 벼렸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에베소 교회가 그렇게 사도행전 19장에서 기적적으로 세워진 교회가 훌륭한 교회가 처음 사랑을 식었을까 나는 이 대답을 여기서 대답을 찾고 싶은 것이에요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어렵습니다. 아까 목사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전도사 부목사 때 설교하면 반듯이 교인이 큰 은혜를 받고 그리고 교인들에 인상에 담임목사 설교보다 더 대단한 설교로 각인이 됩니다. 여러분은 1년에 2번하지만 나는 매일 하잖아 그런데 그것이 목회를 위해서 충분히 내가 준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것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회심을 불러일으켜 첫사랑을 가지게 하는 것도 목회에서는 매우 어려운 것이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첫 사랑을 유지하며 살게 하는가. 그것은 사역에 있어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어려운 것이에요 여러분 자신들도 경험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 존 오웬 목사님은 목회의 대의가 회심과 회심의 보전이라고 그러셨는데 그러면 우리가 회심을 위해서 열렬히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회심의 은혜를 주시도록 간구하며 선명한 복음을 전한다고 칩시다. 그래서 회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회심을 보전하는 것은 보전하게 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사역이고 심오한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회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 간단하고 아주 명료한 메시지만 사용하시면 회심이 일어나지만 회심의 보존은 심오한 복음 교리 속으로 들어가야지만 회심의 보존이 가능하고 설교만 그렇게 한다고 회심이 보존되는 것이 아닌 것은 앞에서는 은혜를 받고 뒤에서는 호박씨를 까는 교인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아주 종합적인 그림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언젠가 제가 외국에 선교지에 가서 설교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선교 지를 몇 번을 갔는데 영어가 능하지는 않지만 설교는 들을 수 있잖아요 아무 내용이 없고 지저스 세이브 할렐루야 아멘 계속 반복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뼈 아픈 이야기이지만 그 설교가지고 과거의 회심한 저 사람들이 다루어지겠습니까. 절대 다루어지지 않는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목회자의 피나는 분투가 노력이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많은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하는 요점은 그런 점에서 회심을 보존하는 것이 회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일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러기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고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영혼들을 먹여야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목회자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일이에요 이엔 바운즈 목사님이 자신의 책속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설교도 우리의 심령을 울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지워진다. 그러니까 아무리 현란한 지식으로 설교를 해도 그 사람 자신이 별이기 때문에 그 별이 예수의 손에 꽉 붙잡혀 있어야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교회는 무엇이냐면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회계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린다는 예수님의 경고까지 받았는데 이교회가 명심해야할 바는 목회자 자신이 주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 잘 쓰는 말이잖아요 주님의 손에 붙들려야한다 그런데 사실은 무슨 말인지를 알고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까 몇 사람이 강권적이란 말고 획기적이다 라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주님이 자기에 의지작용을 초월하는 것처럼 자기를 어느 한순간에 어떤 결정이나 결단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주님의 손에 붙들렷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인도이죠. 주님께 붙들렸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에 작용이나 이런 것들을 초월을 해서 주님이 강압적으로 그를 끌고 당신 하고 싶은 것에로 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그렇게 간증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오버하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의 작용은 인간의 의지와 함께 있고 인간의 의지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의지를 거슬려서 역사하는 작용이라면 자신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 없는 것이죠 제가 조목서 손을 붙들고 양 목사 손을 때렸다면 조목 사에게 비난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런 것이거든요 그러면 주님의 손에 붙들렷다. 그런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그리스 도안에서의 자기상실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면 이 예화를 들을 면 이해가 쉬운 것이에요 성경을 우리가 읽을 때에는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에요 처음 성경을 대할 때는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고 우리가 주체이고 성경이 객체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어요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보게 되고 성경을 보면서 성경의 어
떤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성경을 분해를 하고 해석을 해요 성경은 가만히 잇고 우리가 움직이고 우리의 정신작용이 움직이면서 성경의 뜻을 알아내고 성경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좀 더 들어가게 되면 은 그러면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은 그러면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저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잇습니다. 큐티한다고 그러는 데 아무것도 제 체질에 맞지를 않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성경을 순서대로 쭉 읽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다가 양에 대해서 압박을 받지를 말고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와 닫는다고 생각을 하면은 다시 팩해서 다시 읽은 것이죠 그러니까 시간을 내야 되요 시간을 안 애교 15분에 읽을 여고 하면은 안 되는 것이죠 읽고 계속 읽어요 그런데 처음에 마음에 떠올랐던 인산이 살아나지 않으면 지나가는 것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 말씀이 걸려요 그러면 반복해서 읽는 것이죠 1990년도에 제가 누가 복음 11장 1절 한절을 3시간동안 읽었습니다. 예수께서 한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심에 제자들이 나온지라 그것이 한절이었어요. 그것을 3시간을 읽었고 생애적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처음에 내가 성경을 읽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면 내가 성경에 의해서 읽혀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령이 주체가 되시고 나는 객체가 되어서 그 진리에 의해서 내가 읽혀지는 것이에요 너는 이런 인간이고 이런 잘못을 했고 이런 점에서는 칭찬을 받을 만하고 내가 너를 위로 하노라 이렇게 하면서 성경 말씀이 나를 읽어가는 것이죠 거기에서 우리들이 겪게 되는 경험은 무엇이냐면 자기 상실이에요 자기 상실이 무엇이냐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님에 의해 읽혀지는 객체일 뿐이나 나는 이곳으로 들어가고 성경은 나와서 성경의 말씀이 나를 해부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를 수술을 하고 고쳐가는 것이죠 수술대위해서 누워 본 적이 있으세요. 나는 대수술을 안했지만은 마취가되어서 수술실로 들어가면 은 수술 받는 환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를 오직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죠 병원에 수술 신청서 쓰러갈 때 까지는 내가 주체이고 의사가 객체 이였는데 의사를 선태일 하잖아요. 그러나 수술실로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의사가 주체가 되고 나는 객체가 되어요. 그가 내배를 가르고 떼어 넬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을 하는가. 읽히는 것이죠 그때에 자기 상실에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 아냐면 나는 없다 그리고 말씀이신 그분이 말씀에 객체가 되어 나를 해부해 뒤지시면서 그 진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도려내고 수술을 하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죠. 자기 상실의 경험을 하는가. 그렇게 이렇게 난도질하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그 기대밖에 없는 것이죠 그것이 자기 상실의 경험이죠. 우리가 맨 처음에는 주님을 붙잡을 여고 해요 그것이 깊이 들어가게 되면 은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 구나 그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의 손에 붙들린다고 하는가는 진리 없이는 의미가 없는 말이에요 의미가 없는 말이에요 진리가 없이는 의미가 없는 것이죠 얼마 전에 총신에 80일에 홈컴인데이를 가지는데 어느 목사님이 은혜롭게 설교를 했어요. 깨어진다는 설교를 했어요. 30분 동안 깨어진다는 설교를 했어요. 설교가 계속되면서 처음에는 은혜로운데 나중에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은 마지막에 성경을 닫을 때까지 깨어짐이 무엇인지 어떻게 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안 깨어진 자들은 어떻게 해야 깨어질 수 있는지 답이 없는 것이죠 바로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렸다고 하는가. 곧 진리 없이는 그 말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아주 공허한 주관적인 신비의 경험에 불가한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께 붙들린다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 붙들린다고 하는 것이죠 칼뱅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더 써번트 오브다 월드 갓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라고 그랬어요. 존 오웬 목사님은 더 써번트 오브더 갓스 플로브 크라이스트라고 그랬어요. 그리스도의 복음의 종이라고 그랬습니다. 모두다 월드 갓스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깊이 사로잡는 그것이 곧 하나님께 사라 잡혔다고 하는가.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른 것들은 다 못 배워도 괜찮아요. 좀 아프기는 하겠지만 피 흘리면서 목회를 하다보면은 다 터득을 해요 그런데 단하나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게 붙들리는 것 그것은 여러분들이 열린 교회에 있는 동안에 그 진수가 무엇인지를 경험을 해야 해요 왜 치지를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피를 토할 것 같은 메시지는 주석을 모아다놓고 설 교문을 쓴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고 생겨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의 하여 읽혀질 때 어떤 필연으로 자기의 정신 안에 그 진리를 왜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뼛속 깊이 베이는 것이죠 그것이 설교자 영성의 진수에요 그런 식으로 설교자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의해서 자신이 읽혀지고 나면은 자신은 항상 나는 그렇게 읽혀질 때까지는 설교 같은 것 관심을 가지면 안 돼요 자신이 읽혀지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해요 충분히 읽혀졌을 때 그때 회계를 하고 결단을 하고 그다음에 이제 오리지널 텍스트를 보고 이것이 진짜 은혜말씀이 텍스트에 있는 내용일가 보고 검토를 해보고 그다음에 이렇게 나를 깨운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적어놓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하루면 하나님만 깊이 만나면 8주정도 설교를 할수잇는 것이죠 11장 1정 예수께서 한자리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나오시매 제자들이 나온지라 그것을 전도사 때에 3시간을 읽고 은혜를 받고나서 한 달 동안에 설교를 했습니다. 4주에 거쳐서 그렇게 하면 설교를 하라고 그러면 설교준비를 안했어요. 설교하라고 그러면 펼쳐놓고 몇 시간 전에 쭉 읽으면서 옛날에 은혜 받았던 것을 보고나면 그 말씀이 나를 다시 읽어요 정리해서 가지고 올라가서 설교를 하면 이미 그것은 머리로 지성으로 자기를 뒤집고 자니 가서 왜 쳐야 할 필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축나옵니다. 그다음에 또 해달라고 하면 그 다음 것 또 하는 것이에요 또 설교를 하는가. 그것이 주님의 손에 붙들렸다고 하는 말씀이에요 박 희천 목사님은 생각이나 사상이나 다르시기는 했지만은 박 희천 목사님은 성경을 사랑했던 목회자에요 하루에 4시간씩 성경을 읽으셨어요.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는 노인이 자기 사택에 공부방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이고 방안을 막 뛰어다녔어요. 정말로 놀랍다 이런 말씀이 여기있었구나 내가 여러분에게 묻는 것이 그것이에요 월급 중요하지요 여러분들 중에는 나의 설교사상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 되든지 간에 성경을 읽을
때 다른 것 말고 성경을 읽을 때 이 성경이 내가 성경을 읽다가 그것이 깊어져서 성경에 읽혀서 그래서 이속에 필연처럼 가슴에 깊이 남아서 왜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속에 그런 성경 읽기의 삶을 사는 지 물어보는 것이에요 그것이 설교자 속에 알집처럼 이곳에 쭉 매쳐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것이 기회 있을 때 설교가 되어요. 그것이 바로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진리를 찾아가며 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설교에 주제가 다양할 수밖에 없죠. 성경에서 다루니까 그때에 그렇게 말씀이 부딪쳐서 자신이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되면 확신이 있고 생동감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것은 읽히는데 윗사람이 공부를 안 해 신학적인 얼게 가없어요. 그러면 무엇처럼 왜냐면 벽돌을 싸는데 지게를 싸다가 부리는 것처럼 이렇게 쌓은 것이에요 이것을 쌓을 수 있는 설계도가 없기 때문에 가슴에 부딪히는 것이 산발적으로 나오는데 무질서한 벼루처럼 나오는 것이죠 어느 정도 싸이는데 무너지는 것이죠 높이가 안 올라가요 그러나 신학적인 얼게 와 사상의 얼게 가 있는 그런 설교자의 경우에는 깨달은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박스스타일로 올라가는 것이에요 길이 6미터 높이가 6.3미터인 컨테이너가 있어요. 엄청난 것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12메타짜리가 있어요. 그 어마어마한 컨테이너가 오차율이 있어요. 그 오차율을 넘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톱으로 켜서 파기처분해요 그 현대 컨테이너 만드는 회사이름이 현대 정밀 주식회사에요 그 12미터 2,4미터 의 오차의 한계가 얼마인지 알아요. 2미리 미터에요 2밀리미터에 초과해서 넘어가면 절단해서 버린 데요 큰 오십만 톤 되는 벌크 선은 컨테이너를 1만개를 실어요. 그런데 2개를 실고 갈대는 5센티가 차이가나도 문제가 안 돼 는데 2미리만 차이가나도 이것을 5층 6층 높이로 싫으면 바다 한가운데 기울여서 쏟아지거나 전복시키는 것이요 그래서 철저한 정밀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을 제가 주워들은 것이 아니라 그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20년 전에 증언해 준 것이에요 절단기로 잘라서 버리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 시식이 벽돌처럼 쌓아올려지는 것이에요 성경을 읽으면 깨달을 것들이 쌓아올려지는 것이죠 쭉 올라가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말씀이고 부딪히는 뜨거운 경건과 내 철한 이성이 설교자가 만나는 것이에요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가슴에 부딪히는 경건은 종교의 핵심이고 그것들을 쌓아올리기 위한 학문적인토대는 학문의 핵심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경건과 학문이 만나요 그래서 칼뱅이 삐에따스 스타스켄 띠아를 평생 외치는 것이에요 경건과 학문 두 가지를 말이죠. 그래서 주님의 손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야 되요 매일 불만 때가고는 주님의 사람이 되지를 않아요. 그리고 매일 도서관에 엎드려서 공부 나하고 세미나 다닌다. 고해서 사로잡힌다는 것 안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어요. 여러분 주위에 최근 몇 주 사이에 성경을 읽다가 가슴이 터질 것처럼 그 성경말씀에 의해서 읽혀 본적이 있어요. 그래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매일 그럴 수없 다고 그러지만 이 일이 삼개월 육 개월일 지나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이 아니에요 주님 앞에 선하게 살고 싶습니다. 진실한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께 다루어지는 실질적인 경건이 아닌 립 서비스라는 것이죠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거기에서 그 본문을 들고 있을 때 주님을 만나는 신앙의 인격이 설 교속에서 함께 전해져요 그렇게 주님의 손에 붙들렸던 대표적인 사람이 구약에서 예레미야 아니었어요.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그렇지만 중심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죠. 그것이 무엇이에요 사람을 의지하마. 말라 순순히 포로로 끌려가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이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사람은 신약성경에 사도바울이 아니었어요. 언제 예수님이 복음 전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가 화가 있을 것이다 빼소. 깊이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자신이 붙들린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은 것에 지나쳐서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읽히는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척기로 수도관을 세척하고 지나가듯이 세척하는 것이죠 그때 통증과 아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사도요한이 이런 말을 하잖아요. 천사가 말을 한때 그것이 달았는데 나중에는 쑥처럼 쓴 것이에요 그것이 주의 종이 주님의 손에 붙들렸다는 의미에요 단순히 성령 충만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렇게 살수밖에 없도록 은혜에 의한 주장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