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를 마음에 둠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잠27:23-27)
녹취자: 장현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을 하고 비로소 농경사회가 생깁니다. 원래 이 문화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해서 형성이 되는 거죠. 오래 살 집이여야 지만 뭐 액자라도 하나 걸고 그리고 뭐 책상이라도 하나 반듯한 거 사 놓지 늘 텐트치고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거 다 거추장스럽지 않아요? 농경사회가 형성이 되면 부가 축적이 되고, 그래서 빈부의 차이가 나고 부한 사람이 더 좋은 물건을 요구하고 교육을 요구하고 이렇게 하면서 문명, 문화라는 것이 형성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짐승을 치는 사람들 이었기 때문에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이제 농업과 그리고 목축업이 겸업처럼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게 신약 때까지 쭉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오늘 이 지혜자는 이 양떼와 소떼에 마음을 두어라 하는 이거는 농경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목축을 하는 사람들을 염두 해 두고 목축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염두 해 두고 아마 충고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이제 생업을 전부다 인데 어째든 목축을 잘 하는 것이 자기들 생업이거든 그걸 잘 해야 되잖아 그럴려면은 마음이 거기에 가 있어야 되요. 모든 기술은 애정에서 나오고, 그리고 모든 방법은 최선의 것을 얻으려고 하는 열망에서 나오는 것이 것이에요. 문명을 보고 도구의 역사를 보면 모두 필요에 의해서 도구가 나오지 호기심에서만 도구가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옷을 수없이 꿰메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바늘이 만들어 지고, 밭을 경작하려는 사람의 수고를 통해서 각종 농기구들이 발달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직업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은 인생 쓰레기에요. 그러니까 빨리 자기가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직업을 택해야 되는 거죠. 나는 이 세상에 신앙을 떠나서 제일 불상한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서 밥 벌어 먹기 위해서 그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 정말 처량한 거예요. 연봉을 아무리 받아도 그 사람의 디그니티를 올려주지는 못해요. 하다못해 회사에서 쓰레질을 해도 그 일에서 자기의 가치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 이런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여기 양떼와 소떼는 사실은 자기의 생업을 이야기 하는 거 거든요. 거기에 마음을 기울여야 된다. 그 거기에 마음을 기울일 때 거기에 모든 기회가 나오는 거예요. 양떼를 잘 돌볼 수 있는 기술, 소떼를 편안하게 목축할 수 있는 기술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 일을 하면서 6개월, 혹은 1년 혹은 3개월 이렇게 일을 했는데 예전에 행하던 것과 다른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다고 하는 것은 몸은 거기에 있지만 마음은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가리켜서 그 사람의 지능과 연계를 시키는데 지능하고 별로 상관이 없어요. 전혀 없다고 말 할 수 없지만은 사랑은 끊임없는 지혜의 근원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뭐 내가 입증하려면 하루 종일 증명하라고 하면 내가 증명해 보일 수 있는데 여러분 이 질문 하나에 답을 해 보세요. 어떤 사람을 향해서 깊은 사랑을 가질 때 그 사람에 대한 계획이 여러분의 마음에 없을 수 있어요. 예를 들 자면 은 나는 우리 목사님 너무 존경해 너무 사랑해 그렇지만 어떤 목사가 되는지 난 상관없어 그럴 수 있겠어요 사랑이 있다면 불가능 한거죠. 자기 새끼에 대해서 사랑이 있다면, 난 너무 사랑해 우리 애를 위해서 내가 목숨도 줄 수 있어, 얘가 없다 면 은 내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까 그렇지만 얘가 뭐가 되 든 자 나는 상관없어 그럴 수 있겠느냐 이 말이죠. 사랑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계획을 형성해요.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소망이요 바람이기도 한거요. 부모들이 종종 자식보고 지 인생은 지 인생이지 그런 부모치고 나는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를 본적이 없어, 그거는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라기 보다는 자기 인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식 새끼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계획도 없는 거요. 그거죠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목축을 하는 사람들의 기업은 자기 양떼요 소떼 였어요. 왜 거기에 마음을 써야 되는지 지혜자가 설득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 “너 거기서 돈 벌어서 옷 입는다 그 양떼가 젖을 짜서 니 식품을 사고 그거 가지고 니가 먹고 산다” 아주 쉽게 얘기 하면 그거에요. “니가 지금 양떼 치고 소떼 치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래서 니가 좋아하는 어떤 일을 해서 널 기쁘게 한다고 치자 그러면 결국은 이것은 휘돌아서 마지막엔 너에게 돌아와서 그래서 이 소떼와 양떼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넌 먹을게 없고 입을게 없고 살 집이 없다. 그리고 진정으로 너를 위하는 게 뭔지 한번 생각을 해 봐라 그러면 니가 하고 실은 일이 있고, 니가 이루고 싶은 일이 있고, 너 나름대로 가고 싶은 길이 있어도 양떼 때문에 소떼 때문에 못 해야 되지 않느냐 이거에요. 그래야지만 너 가는 길을 가는게 아니야 ” 그걸 얘기 하는 거에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을 맡겨 주셨는데 이 세상에서 우리의 직업은 일순간에 다 지나가는 것들이고 사라지는 것들이에요. 뭐만 보면 알 수 있냐면은 그 현직에 있을때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차이기 나는 거에요. 한 사람이 중앙부처에 차관이나 장관을 지내면 이렇게 그 다음에 초라하게 서울 변두리에서 조그만 개척교회나 하고 있으면 가서 친구라도 얼굴 볼 틈도 없어요. 만나주지도 않아요. 근데 퇴직하면 애들 유모차 끌고 골목에서 만나잖아, 아니면은 등산가서 만나잖아, 남한산성에 가끔 올라가 보면은 그 평일인데도 그냥 몸들은 튼튼해 보여 하도 산을 다녀서 그런데 어깨가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 가 없어요.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그 이른 시간에 거기에 얼굴 이렇게 보면은 저 사람은 그저 뭐 굳이 퇴직을 했다고 말 할 수 없는 사람이겠구나 원래 별로 직업이 없었을 것 같으니까 어떤 사람은 얼굴이 히멀게요 저 사람은 그래도 꽤 뭐 지위도 있고 이러던 사람인데 이제별 볼이 없어져서 이아침에 등산을 오는 구나 다 차이가 있는 거요 세상에선 그렇게 차이가 나도 퇴직하면 다 마찬가지잖아요. 다 마찬가지에요. 현직에 있을 때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전화통화도 하기 어려운 사람인데 퇴직하고 나면은 누가 와서 나랑 말벗이라도 좀 안 해주나 그러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다 지나간 것들이에요. 마지막 남는 건 뭐냐 하면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얼 하며 살다가 왔느냐 그게 남는 거에요. 양과 소떼를 치던 목동은 거기에서 우유와 치즈와 버터 그걸 팔아서 살 수 있는 옷을 위해서 짐승을 쳤지만 우리는 양떼를 우리의 영혼의 참된 기업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양떼를 치는 거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갔을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지위를 누리고 연봉 몇 천 만원을 받으면서 담임목사라고 부목사라고 그거 하나님께 의미가 없어요. 그날에는 그것이 우리에게 버터도 될 수 없고 치즈도 될 수 없고 우리의 벌거벗은 행실을 가리우는 세마포도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떻게 무엇을 섬기고 어떻게 살다 왔느냐 거기에 달린 거에요. 이게 그러면 여러분 그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들을 맡겨 주셨는데도 영혼을 지밀하게 돌보고 거기에 깊이 참여하면서 양떼를 돌보지 않고 자꾸 마음이 딴데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게 바로 사랑이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정확하게 자기 영혼을 향한 사랑과 일치하고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만큼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사람만이 영혼의 상태가 나쁜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가 있는 것이에요.그래서 두 가지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울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때 가 영혼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두 때가 아니라 한때에요. 집안에 보 면은 각양 많은 등들이 있어요. 마당에는 커다란 투광 등이 있고 화장실에는 화장실 등이 있고 거실에는 샹드리에가 있고 그리고 책상위에는 작은 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각양의 불빛을 내는 조명등들이 있지만은 여러 개의 에너지로 불이 켜지는 게 아니라 전기 하나로 불이 켜지는 것 처럼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서 떠나가면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도 무감각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아프지 않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마땅히 자기가 마음을 기울여야 할 그 의무로부터 벗어나서 쓸데없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는 동안에 목장은 피폐해져 가고 양떼는 병들고 그렇게 되어 가지요. 그런데 정확하게 그렇게 되어가는 것만큼 자기 자신의 영혼도 병들어 가는 것이에요.. 그러면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자신의 영혼도 비옥하고 양떼들의 영혼도 아름답게 되어 가는 비결이 무엇이겠어요. 자기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라. 그래서 그 양떼와 소떼의 마음을 통해서 그들의 변화 속에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읽으며 분투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아주 놀랍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겠지만 주님이 내게 주신 사랑이 특별하다 생각되는 사람들은 결국은 영혼을 섬기게 되요. 영혼을 섬기지 않고도 충분히 만족 할 수 있는 사람이면은 아직 주님을 덜 만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영혼을 섬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 영혼들을 섬기면서 자기 자신이 온전해 져 가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