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이 떨어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녹취자 : 정유선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자주 당신의 권한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예수님이 인자로서 들려 올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예고하시는 가운데 실려 있는 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는 이렇게 특별한 표현이 붙어있는 이 말씀을 가지고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구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얼마나 이 구절이 예수님에게 중요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데 그렇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주 명백하게 당신이 죽음으로써 한 알의 밀이 되고 당신은 죽지만 이로써 우리 모든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한을 통한 대속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속의 사상이 정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일까 의혹을 품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의심할 이유 없이 예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들이 얻게 될 유익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구약에 면면히 이어져오다가 이사야서 53장에서는 아주 현저하게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 제물로 죽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것을 명백하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대속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서신서에서 대속의 교리를 펼치는 아주 중요한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의하면 한 알의 볍씨를 심어서 품종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1300~2000여개의 낱알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수학적으로만 보면 어마어마한 수확이고 농사를 짓는 것만큼 확실한 결과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밀이 주식이었고 그 밀이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식물학적으로 보면 어폐가 있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아무것도 맺을 수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알 전체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자에는 씨눈이 있습니다. 그 씨눈 한 알을 살리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알곡의 다른 부분들이 죽는 것이니까 사실은 한 알 전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한 알이 죽고 그 씨앗 안에 있는 배아 혹은 그 씨눈을 살리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감자를 어떻게 심는지 아십니까? 씨감자를 가져다 칼로 뚝뚝 베어서 그것을 고운 나무를 태운 재에다가 버무립니다. 그때 감자를 토막 냈을 때 반드시 그 감자에는 씨눈이 있어야 합니다. 씨눈이 없는 감자는 아무리 심어도 그것은 땅에서 썩을 뿐이지 거기서 감자의 순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땅에다 심습니다. 그러면 이제 일 주일 혹은 열흘 지나면서 이 속에서 감자가 썩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감자의 하얀 부분이 다 썩어 문드러지면서 거기에서 유기물들이 나와서 씨눈 하나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양분을 취할 능력이 없는 씨눈은 자기 몸에서 썩어 들어간 감자에서 나오는 그 유기물들을 먹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그 자양분이 다 떨어질 때쯤 되면 자생력이 생겨서 뿌리가 뻗으며 땅으로부터 직접 필요한 물질들을 흡수해서 우리가 아는 감자농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열매들을 감사합니다. 논밭에 나가보면 이미 추수가 다 끝나서 가을걷이를 하고 필요한 좋은 곡식들은 곳간에 거두어들였고 좋은 열매들은 다 채집이 되어서 그래서 이렇게 잘 포장이 되어 판매를 하거나 창고에 저장중입니다. 그러나 한번 세상의 이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시라도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에 억지로 마음에는 감사도 없는데 감사를 짜내라고 추수감사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추수감사절에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거둬들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택으로 주신 것이지만 그런 열매를 주시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씨를 뿌리게 하시고 그 씨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 씨를 열매 맺도록 돌보시는 하나님의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결실이 맺어졌습니다. 그리고 금년에 우리들이 거둬들인 결실은 어쩌면 우리들이 뿌린 것에 비하면 수천 배의 많은 결실을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만약에 그때 그 봄에 좀 더 많이 뿌렸더라면, 그리고 착한 농부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땀 흘려 그것을 가꾸었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더 많은 열매가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영국의 탁월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한 설교자가 단상에 올라 희미하게나마 나에게 진리의 빛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하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분의 이 발언은 설명을 좀 필요로 하는데 무슨 의미냐 하면 한 설교자가 단상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설교하면서 어떤 진리의 빛을 청중들에게 비춰주고 자신이 그 빛을 증거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답게 전하기 위한 장고한 세월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찰스 하든 스펄전 목사가 어느 날 설교를 하고 내려오는데 은혜를 너무 많이 받은 어느 청중이 젊은 스펄전 목사를 따라가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그 설교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사실 스펄전 목사는 그런 류의 질문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내 설교가 준비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고요? 평생이요.” 평생입니다. 한순간의 재주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평생 살아온 자신의 삶에 모든 학문과 경험과 하나님을 향한 추구가 그 한편의 설교 속에 녹았기 때문에 그 설교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를 한 시간과는 상관없이 일평생이 걸린 설교였다 라는 뜻입니다.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볍씨를 뿌립니다. 감자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감자의 씨앗을 뿌리겠지요? 배 농사를 짓는 사람은 배의 묘목을 심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 시기 시기마다 무엇인가 전심해서 씨를 뿌려야 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목회를 하면서 참 우리나라 목회자들에게는 좀 이상한 성품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하라고 그렇게 교수님들이 얘기를 해도 공부를 안 하다가, 그리고는 공부할 시간은 맨 기도원 다닌다 그러고 교회 봉사한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막상 목회를 하고 이제 교인이 한 200명쯤 모여서 열심히 목회를 해야 될 때인데 이번엔 또 공부를 하겠답니다. 왜 그것을 뒤집어서 하냐는 말입니다. 공부할 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목회를 한 뒤에는 목회가 중심이 되어서 그 다음에 그것을 중심으로 공부도 하고 선교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뻗어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시절은 지금 학생의 시절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문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유식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만 이 학교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이 속에서 여러분들이 학문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제가 여기 와서 설교한 것처럼 존재의 울림이 있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학생으로 부름을 받았으면 오늘 이제 여러분들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연구하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학문을 공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일반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일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밥 먹고 살려고 일반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궁극적으로는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자신의 책 <경외와 지혜>라고 하는 책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학문에 깊이 헌신하여 이 학문의 세계에서 주류를 이루지 못할 때 어떻게 이 학문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이 위협을 받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굉장히 커다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단지 공부를 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공부를 해서 나의 이 학문이 어떤 철학 속에서 생겨났고 이 학문이 어느 방향으로 진보하여야지만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공부해야 됩니다. 이 모든 논의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격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 잘 해야된다 이것입니다. 신학을 하는 사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일반 학문은 ‘안칠라 테오로기아’라고 해서 신학의 시녀입니다. 그러면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학문들을 이해하는 지평 속에서 최고의 지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에 관한 학문에 자신을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신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안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고 할 때 생각하는 공부의 목표와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그러니까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목표를 제대로 설정해야지만 자신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분투를 할 텐데 기본적으로 잡은 기준자체가 너무 낮으니까 한없이 게으르고 학문에 진보가 없어도 자신은 그래도 꽤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학문을 공부하고 무엇인가 이 세상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진리에 대한 헌신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모두 진실하게 목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못 하고도 진실해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적인 능력이 안 된 사람이 진실해진다는 것은 늘 모른다고 고백을 해야 되는데 아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목회자지 늘 아는 것이 없다고 고백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그렇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해야 됩니다. 그것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면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몸부림치고 노력을 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 됨됨이가 하나님 앞에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의 교수님들이 학문적으로 계속 발전하지 못하는 커다란 책임이 사실은 학교와 학생에게 있습니다. 학교는 너무 많은 일을 교수님들에게 맡기기 때문이고 학생은 무슨 책임이 있냐 하면 아무리 정치한 학문을 공부하고 가도 그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없으면 선생님들은 공부를 못 한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의 이 시기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3년, 2년 혹은 4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간입니다. 저도 이런 시절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은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얻어지는 것들 중에서는 그렇게 값어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한 알의 밀로 보고 우리를 그 밀 안에 있는 씨눈으로 보시면서 당신은 죽고 씨눈인 많은 사람들을 생명을 얻게 해야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대로 하셔서 그분은 죽고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일제시대에 커다란 박해와 수없는 고난이 있을 때 조국 교회가 그 신앙을 견지하고 살아올 수 있었던 두 개의 신앙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종말신학. 아무리 그래도 반드시 종말은 온다, 그때에는 우리 주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또 하나는 십자가 신앙.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으니 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죽어야 할 때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고난의 죽음을 예고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그 은혜를 입어 그분이 죽으심으로 씨눈인 우리들을 살리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한 알의 밀이 되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한 알의 씨눈이 되어서 우리가 죽음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삶이 죽고 끊임없이 희생함으로써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우리 개인적인 성화의 삶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동체 속에서도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썩는 한 알의 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말하자면 자살지향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그렇게 끊임없이 죽는 사람들을 통해서 고양되고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 그 안에서 교회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사라지고 세상은 교회가 되고 교회는 세상이 됩니다. 오늘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들 내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이 젊은 시절에 여러분들이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제 나이쯤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많은 열매를 거두며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훨씬 더 잘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