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pp.9-30)
녹취자 : 오희열
교리반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교리반은 열린교회의 교인이 되는 진정한 정규코스입니다. 열린교회는 교리반을 마치지 않으면 구역장도 될 수 없고 교사도 될 수 없습니다. 일단 이 교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교리반을 교회 개척하면서부터 계속해 왔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제가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여러분이 11주 안에 이 책을 모두 끝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결심을 하시고 이 공부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숙제를 굉장히 많이 줄였습니다. 예전에는 14주 교육에 2000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여서 다 깎아내고 남은 것이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하던 것처럼 생활하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지나고 나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해서 다 떨어집니다. 11주간은 불필요한 친구들과의 만남도 폐하고 다른 약속이나 바깥 활동들을 자제하시고 이 공부하는 일에 일단 마음을 모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따라오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11주 동안 배우는 분량이 사실은 신학 대학원에서 6학기를 배우는 것을 축약해서 그 엑기스를 여러분에게 넣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짧은 시간 내에 이 강의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저도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엑기스를 여러분에게 전달해드릴 테니 여러분은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이 책을 이번에 공부하셔야 하는데 여러분이 모두 읽어야 합니다. 수능 모의고사를 앞두고 사회를 선택한 사람들이 교과서에 빨간줄 파란줄을 그으면서 외우듯이 그렇게 이 책 한 권을 머릿속에 모두 집어 넣어드리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저는 신학대에서 긴 세월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 책을 통째로 넣어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우선 이 교리를 공부할 텐데 한번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5천 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야말로 덤프트럭에 실어다가 방에 확 쏟아놨습니다. 한 사람은 천 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주제별로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 과학, 그리고 저자별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전자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서재가 더 유용하겠습니까?, 천 권을 가지고 있는 후자의 서재가 더 유용하겠습니까?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20년, 30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온갖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다 들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설교를 다 들었습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건전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주 불량한 것까지, 심지어는 신천지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여러가지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떤 것은 들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은혜를 받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떠오르기는 하지만 뭔가 못 들은 이야기는 없는데 남아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수많은 설교나 단편적인 지식들이 쓰레기처럼 확 쏟아져 있는데 그 다음에 계속 그 위에 쏟아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기독교 신앙에서 어떤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지 우리에게 구분이 안 가는 것입니다. 체계적으로 신학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감히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신학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신학공부는 여러분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신학공부는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의 신학공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훨씬 더 전문적인 공부입니다. 이 공부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어주는 요약된 기독교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경에 근거해서 세워진 사상이고 멀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후의 사도들, 사도들의 제자, 초대교회 교부들, 중세의 신학자들, 그 이후의 종교개혁자들,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18세기, 19세기의 개혁신학자들, 그리고 오늘날 현대의 개혁신학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신학의 라인들이 계속 가지를 치며 나가지만 그 가운데 정통적인 줄기를 붙든 신학을 공부해야만 그 신학을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었을 때 얻은 지식이 이 신학에서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 지를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너무 중요하고 이것이 없이는 체계적인 신앙이 서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뜨겁고 기도는 하고 예수님도 만났고 신앙의 체험도 있는데 사상의 뼈대가 서 있지 않아서 낙지같은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컵에 담으면 컵 모양이 되고 접시에 담으면 접시 모양이 되어 퍼져버립니다. 뼈대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배워서 뼈대를 세우고 은혜를 받고 많은 체험을 받고 살아가면서 살을 붙임으로써 진정 살아있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독교 교리에서는 무엇을 다루는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책을 펴 보시겠습니다. 이 책을 안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매주 가져오셔야 합니다. 이 책을 닳도록 읽으셔야 합니다. 이 책을 사랑하도록 만들어드리고 글자 하나까지 모두 외울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따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책을 펴시면 차례가 나옵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의 골격에 대해서 배우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가? 첫째를 보시면 서론이 나옵니다. 오늘 이 서론을 공부하게 됩니다. 서론에서는 종교가 무엇이고 계시가 무엇이고 성경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을 서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음 2부에서 7부까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기초가 되는 주제들을 서론에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이 세상을 누가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창조하셨습니까?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인간을 위해서 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구원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이룹니까? 교회. 그 교회에서 무엇을 기다립니까? 종말. 자 보십시오. 신론. 우리 말로 하면 하나님에 관한 교리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없는 때에도 하나님은 계셨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부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그 하나님이 누구를 창조하셨습니까?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누가 오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2부 신론은 하나님에 관한 교리, 3부 인간론은 인간에 관한 교리, 4부 기독론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됩니다. 그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하십니다. 구원에 관한 교리. 그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룹니다. 교회에 관한 교리. 마지막에 그 교회에서 성도들이 종말을 바라보며 삽니다. 종말론, 종말에 관한 교리입니다. 책을 보지 마시고 여기를 보십시오. 제일 먼저,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구원, 교회, 종말. 이제 여기에 유식하게 “론”을 붙입니다. 하나님은 한자로 “신”이라고 하니까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그리고 맨 앞에 서론이 있습니다. 종교, 계시, 성경. 서론부터 시작합니다.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책을 보지 마십시오. 1분단만 시작.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2분단 해 보시겠습니다. 목청껏 맑고 청명하게, 제일 먼저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3분단 시작.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이제 우리 모두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천재에 가깝습니다. 한 번에 이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외우셨습니다. 조용히 생각하면서 하면 그것이 틀이 되는 것입니다. 모두 해보겠습니다. 시작.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이 일곱 개의 주제가 신학의 거의 모든 주제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으면 즉각적으로 “이것은 구원론에 관한 교리이구나.” 하며 구원론에 꽂아두는 것입니다. “이 설교는 종말론과 구원론이 합쳐져 있구나.” 하면서 반은 구원론에 반은 종말론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우고 나면 저 설교가 정확하게 성경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락가락 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고, 책을 읽으면 이 책은 굉장히 건전하고 신학적으로 올바른지, 혹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들이 이 속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분별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교리공부를 많이 하고 나면 상담을 받을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사람들을 상담해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정식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례 문답을 공부하셨을 것입니다. 그때 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까? 2종 보통 면허를 딸 때 더 열심히 했습니까? 그것 보십시오. 2종 보통면허보다 세례받을 때 공부를 덜 했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치욕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동차 면허시험은 에누리 없이 컴퓨터로 채점을 하는데 교회의 세례문답은 많이 봐줍니다. 그래서 신앙의 교통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정돈하고 일생에 한 번 이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한 명도 중간에 낙오하지 마시고 끝까지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는 것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서론은 종교, 계시, 성경을 다루고 신론을 들여다보면 신론, 기독론, 교회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집니다. 신론, 즉 하나님에 관한 교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4, 5, 6, 7장에서 일부 다룹니다. 2부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8, 9, 10장에 일부 나타납니다. 기독론으로 넘어가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14, 15장에 일부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16, 17장에 나옵니다. 교회론에 가면 교회가 무엇인지가 23, 24장 일부이고 25, 26, 27장에는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옵니다. 얼마나 외우기 좋습니까? 신론은 1부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함, 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삼위일체에서 다루고,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작성, 창조, 섭리입니다. 기독론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명칭, 성함과 본질, 신분. 무슨 일을 하셨는가? 직무, 속죄. 교회론은 교회가 무엇인가? 23, 24장에 걸쳐 나오고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25, 26, 27장에 걸쳐서 나옵니다. 인간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는 일이 온갖 것으로 많고 죄도 짓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이 안 되고 인간은 시간에 따라 구분을 합니다. 창조되었으나 죄를 짓기 전의 상태, 죄를 지은 후의 상태, 구원받은 이후의 상태.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서 시기별로 인간을 생각하고 더 생각할 때는 죽은 뒤의 인간까지 넷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13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구원론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공로가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어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지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일반적인 작용, 부르심과 중생, 회심과 믿음, 칭의, 성도의 성화와 견인을 다룹니다. 종말론에 가서는 인간이 모두 육체로 죽습니다. 육체로 죽고 사후에 중간상태라고 하는데 죽은 후에 낙원에 들어가고 거기에는 영혼만 있다가 후에 부활 때에 육체와 만나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낙원에 있는 상태, 지옥을 들어가기 전에 음부에 있는 상태까지를 중간상태라고 하는데 이것을 28장에서 다루고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과 마지막 심판, 무궁 세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책을 보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책은 집에 가서 보십시오. 다음 주에는 추석이라서 다행히 휴강입니다. 요즘은 송편도 빚지 않기 때문에 뭘 하시겠습니까? 조용히 교리책을 들고 앉아서 1장, 2장, 3장을 쭉 읽으시면 됩니다. 최소한 두 번을 읽으시고 세 번을 읽으시면 바람직합니다. 고3때 공부하던 것처럼 읽으시면 됩니다. 다음 주일에 매주 오시면 다섯 문제가 OX 문제로 쪽지 시험이 나갑니다. 문제지를 받으면 O, X로 답하면 됩니다. 이름을 써서 그것을 제출하시면 출석부가 됩니다. 누가 몇 점을 맞았다고 공개하지는 않지만 마지막에 정답을 맞힐 때 자신이 하나도 못 맞췄는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집에 가셔서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공부 잘하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교리반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우등상을 받으면 자녀들 앞에서 우등상장을 가지고 가서 걸어 놓고 자자손손 물려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 남았습니다. 바람처럼 1장, 2장, 3장을 공부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서론이 나옵니다. 서론에서는 종교, 계시, 성경입니다. 함께 따라 하십시오. 종교, 계시, 성경, 이 세 가지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뜬금없이 종교가 나온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종교를 주십니다. 원래 이 종교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종교를 주셨는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영어로는 religion 입니다. 이것은 라틴어 ‘렐레게래’라는 단어에서 옵니다. ‘렐레게’는 ‘레’가 ‘다시’라는 뜻입니다. ‘레게’는 ‘모으다.’는 뜻도 되고 ‘읽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생각하다.’, ‘묶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에 ‘반복’이라는 뜻이 꼭 들어갑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은 반복해서 읽고, 반복해서 생각하고, 반복해서 어떤 사람을 어떤 진리에 묶는 행위를 종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이 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리로 여겨졌습니다. 이에 비해서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 세사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 복음에 대해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신 하나님에 대해 깊이 신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앙, 혹은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의 또 다른 국면들을 보여주는 것인데 구약에서는 이런 식으로 강조가 되었다면 신약에서는 이런 식으로 강조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변화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종교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되는데 하나님을 향한 경외였다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복음에 대한 신뢰, 신앙, 이것이 종교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종교는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이 누구이고 이 세계와 인간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가 깨어집니다. 그것을 보여드리기 전에, 우선 종교의 참된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렇게 인간이 자기 자신을 말씀을 거울삼아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율법인데 이 율법은 십계명을 아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도 죄를 지은 사람은 항상 마음이 불행하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암에 걸려서 죽어가던 한 사람이 사망하기 직전에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자신이 지은 살인죄를 고백하고 그 공범들이 누구인지를 다 가르쳐주고 마지막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죄 지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힘은 무엇입니까? 양심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율법을 양심 속에 새기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이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지 않고 비교적 이렇게 정돈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전적인 비천, 절망을 깨닫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엄과 무한한 권능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이 말씀과 양심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엄과 전능을 의식하고, 이에 비추어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 그래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입니다.
종교의 자리가 무엇인가? 종교가 하나님을 믿는 것,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종교의 자리, 혹은 위치, 신학에는 좌소라고 하는데, 이런 좌소가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할 때, 이것을 지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식과 철학을 통해서 인간이 보다더 완전해 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정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기보다 더 우월한 존재에 대한 의존감을 통해서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의지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양심, 하나님의 명령, 그리고 자신이 도덕을 실천함으로써 보다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성을 강조하는 지성우위론자, 혹은 감정우위론자, 혹은 의지우위론자가 있다고 할 때, 우리가 볼 때는 이 모든 것이 우위론이라기보다는 종교의 자리가 지성에 있느냐, 감정에 있느냐, 의지에 있느냐고 물을 때, 사실은 그것이 그렇게 셋 중에 하나의 자리만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과 은혜로운 감정, 거기서 오는 도덕적인 의지, 이런 것들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이 함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자리를 신학에는 종교의 자리를 마음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은 영어의 ‘mind’ 가 아니라 ‘heart’ 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 안에서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작용하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인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 마음 안에 진정한 종교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음’ 그래서 종교의 자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서 시작해서 인간의 마음에 적용되고 인간의 마음에서 지식과 정의와 의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인적인 생활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입니다. 종교의 자리는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러면 무엇이 참 종교인지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종교는 원래 하나였던 곳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인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이 누구인지, 세상 만물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을 인간이 죄가 없던 때에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과 인간이 받아들인 것이 일치했습니다. 참된 종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민족을 이루고 사회를 이룹니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도덕윤리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자기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이 ‘자기 세계관’을 참된 지식이 통과하면서 굴절됩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사람의 세계관에 굴절되어서 이렇게 떨어지고 저 사람에게는 저 사람의 세계관에 굴절되어서 이렇게 떨어집니다. 아주 쉽게 그림을 그리자면 하나님이 여기 계시고 인간에게 계시를 해 주셨는데 여기 이 인간은 자기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려와야 할 하나님의 계시를 이렇게 굽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참 종교는 A인데 자신이 믿는 것은 B라는 형식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 유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이런 수많은 미신과 같은 종교부터 시작해서 약간 고등한 철학이 있는 불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식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봉사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 이런 참된 종교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서 참된 종교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시에 대한 의논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 종교를 요약합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지식을, 하나님이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타락하기 전에는 그것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참된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데 타락하면서 그 종교는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종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다양한 세계관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잘못 해석되고 수많은 이방의 종교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2장에서는 ‘계시’를 다루게 됩니다. ‘revelation’ 이라고 하는데 ‘reveal’, ‘드러내다’에서 온 것이고 희랍어 ‘아포칼립스’도 ‘가리워진 보자기 같은 것을 들춰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서 공부하는 것을 일러서 ‘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Theology’라고 합니다. ‘신’, ‘Theos’에서 온 것이고, ‘logy’는 ‘학’인데 희랍어로 ‘로고스(logos)’, ‘이론’, ‘말’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은 학문의 대상이 되고 인간은 그 하나님에 관해서 공부하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리학은 물리현상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정치 현상이 있고 인간이 공부함으로 정치학이 됩니다. 수학은 ‘수’라는 객관적인사실이 있고 그것을 공부함으로써 수학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인간이 탐구되는 그 모든 것보다 더 큽니다. 인간이 모든 물리 현상을 알 수 없지만 인간은 모든 물리적인 세계보다 위대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신학은 그렇게 따지면 배우고자 하는 인간이 신보다 커야 하고 그래야 학문이라는 것이 성립하는데 인간은 신과 비교될 수 없이 아주 무한하게 작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라는 주체가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바로 무한하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하는 것을 기뻐하셔서 당신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알려주시는 계시가 없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참된 종교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누구이고 자신이 누구이고 세계가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잘못된 대답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계시라고 할 때 여러분이 약간 사이비 종교에서 교주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하고 참되게 하나님이 직접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주신 그 계시, 곧 지식의 전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계시를 하실 때 하나님이 그 지식을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가에 따라서 자연계시와 초자연 계시로 나눕니다. 자연 계시를 일반계시라고도 하고 초자연 계시를 특별계시라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자연 계시는 하나님이 당신에 관해서 지식을 전달해 주실 때 자연적인 것을 사용하십니다. 자연의 현상, 자연세계, 인간의 양심, 마음의 구조, 역사, 경험, 혹은 여론, 이런 것들을 사용하셔서 인간에게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십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접근이 가능합니다. 모든 인간을 통치하실 일반적인 목적으로 전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계시입니다. 혹은 일반계시라고도 합니다. 그에 비해서 초자연적 계시는 매개체가 없이 초자연적인 사건, 행위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지식을 전달해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신 것, 사람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신 것, 부활, 이런 것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 이것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모든 인간을 질서 있게 다스리기만을 위함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여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연계시와 초자연 계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누게 됩니다. 모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사실은 초자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무한하신 하나님이 자기에 관한 지식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때문에 그 계시하고자 하는 지식이 초자연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계시는 초자연적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자연 계시는 자연의 현상을 통해서, 초자연 계시는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인데, 아까 설명 드린 것과 똑같이 반복되는 내용입니다.
범위와 목적에 있어서 일반계시는 창조, 하나님과 인간의 일반적인 관계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비록 성경을 몰라도 살인하면 안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윤리입니다. 그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도덕 원칙들이 저 미개한 원시인으로 시작해서 문명한 현대인에게까지 동일한 법의 원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일반적인 자연의 현상, 인간의 본성,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효과입니다. 두 번째로 특별계시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구속, 즉 하나님과 인간이 특별한 관계를 위한 것이고 제한된 사람에게만 특별히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인간 구속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영적인 사람들이 이 계시에 접근할 수 있으면 이 특별계시는 바로 오늘날의 성경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일반계시가 있고 특별계시가 있습니다. 이 특별계시 안에 좁게, 성경이 있습니다. 이 도표를 꼭 기억하십시오. 일반계시는 그 내용이 결국 특별계시를 향하고 있고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집약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게 되면 이 특별계시를 통해서 일반계시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 일반계시를 잘 이해하면 특별계시가 빛나게 보이고 특별계시를 정확하게 이해할 때 일반계시를 이방 종교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하지 않고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어 참 종교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쓰여 있는 엄명, 이것은 여러분이 교리반이 끝날 때 까지 외워야 하는 주제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성경은 특별계시의 특별한 형태이다.” 왜 그런지 설명해드릴 테니 이제부터는 특별계시라고 부를 때는 성경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머릿속에 넣어두시면 됩니다. 이 두 가지는 정말 중요해서 머리에 넣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성경은 특별계시의 특별한 형태이다.” 특별계시는 원래 성경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 사라져버렸고 마지막에 남은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특별계시가 주어지지 않기에, 성경은 특별계시 중에서도 특별한 형태, 이것을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특별계시는 성경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성경은 특별계시의 특별한 형태이다.”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일반계시의 한계를 보시겠습니다. 일반계시는 친절하게 그림을 그려드렸습니다. 이것은 자연현상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뇌 속에서 기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 인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역사, 이런 것들을 잘 살펴보면 그 속에서 무엇인가 역사를 주관하고 인간의 마음을 만드시고 작용하게 하시고 자연의 세계를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봅니다. 가을이 되면 놀랍도록 아름답게 단풍이 듭니다. 아름다운 색깔로 물이 듭니다. 온갖 과실들이 먹음직스럽게 익습니다. 결실의 계절이 와서 우리를 풍요롭게 합니다. 그런가하면 겨울이 오면 모두 죽은 것처럼 동면에 들어갑니다. 한겨울이 되면 모두 죽었다고 생각되는데 봄이 오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다시 운행되는데 이것이 아주 질서 있게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옛날의 조상들은 일기를 보면서 경험상으로 다 기록을 했습니다. 때가 되면 입추라고 하고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공해가 세계를 뒤덮기 전에는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달력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옛날에 할머니들은 상강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서리가 내리는 때입니다. 정확하게 그것을 달력에 적으면서 농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놀라운 일치, 아주 질서를 이루는 조화, 이런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구가 있고 태양부터 시작해서 수,금,지,화,목,토, 쭉 있습니다. 맨 처음에 수성, 금성, 지구, 그리고 화성, 목성이 나옵니다. 과학자들이 이 목성을 없애버리면 태양계가 어떻게 변할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고 합니다. 모든 행성과 위성들의 무게까지 다 알고 있어서 정확하게 좌표에 입력하고 궤도에 넣었더니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것을 빼버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지구가 멸망했습니다. 우주 공간에서는 운성들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그런데 지구는 직경 10km 정도의 위성하나만 떨어지면 지구는 공룡이 멸종했던 것처럼 완전히 핵겨울이 오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에서도 위성의 파편이 쏟아지면서 그 운석이 떨어져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임팩트”라는 영화처럼 말입니다. 지구의 1천 배쯤 되는 그 목성이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목성을 찾아보시면 무수한 곰보자국이 있습니다. 무수한 파편을 맞으며 지구를 감싸고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빼고 나니까 태양을 도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점점 일그러지면서 우주 바깥으로 튀어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정돈된 질서 속에서 이 우주 전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연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시다는 것을 보게 해 줍니다. 심지어는 불신자들도 때로는 이런 것을 보게 되어서 알지도 못하는 조물주를 찬양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이 유효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진짜 그 하나님인지, 수많은 신들 중에 하나인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반계시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죄인임을 알지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고 살아야 할 지 다 가르쳐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반계시를 다 받아들이고 느끼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특별계시는, 특별계시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참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는 성경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특별계시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여기까지는 구약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old testament, 여기는 new testament, 신약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특별계시, 곧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셨습니까? 첫째는 ‘이적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심으로 ‘아!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가 의지할만한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며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열 개의 재앙을 내리시면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진정한 여호와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종종 현현, 직접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환상가운데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모세의 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 그리고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계시,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은 기록들,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현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꿈과 환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당신의 진리에 대해서 가르쳐주심으로 그들을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복음이 전해졌다고 말합니다. 다 같이 힘차게 읽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어는 “아들을 통하여”입니다. 이런 모든 계시가 달려와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정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는 것이 특별계시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적과 현현, 꿈, 환상,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했던 계시가 완전한 성취를 이루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살고 죽으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기록들로 남아있는 것이 신약성경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시고 세계가 무엇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배움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 특별계시들이 기록된 형태로 남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계시를 수납하는 손입니다.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계시가 여기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은 것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성으로 추론해가면서 견고한 신앙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특별계시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구원에 관해서 가르쳐주신 모든 지식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하신 일, 이루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계시의 완성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특별계시의 내용입니다. 첫째는 구속의 계시입니다. 신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 들으십시오. 이것은 시험에 꼭 나옵니다. 이래야만 주목을 합니다. 인류의 구속에 관한 특수한 지식을 전달합니다. 두 번째는 말씀과 사실의 계시. 이 특별계시는 말씀과 교리가 주로 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예수의 생애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신다.” 이렇게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구약의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어떤 사건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전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번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역사적인 계시입니다. 특별계시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처음에는 구속에 관해서 희미하게 보여주다가 더 분명히, 더 분명히, 마지막에는 명료하게 보여주는 상승을 이루게 되는데 이 절정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구속의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실 수 있었고 부활하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은 하나의 연결된 사건입니다. 그래서 특별계시의 내용은 구속의 계시이며 말씀과 사실의 계시이며 역사적인 계시입니다.
이것을 결국 특별계시가 있고 더 좁게는 성경이 있다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특별계시는 곧 성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특별계시가 있고 보다 넓게 일반계시가 있고 그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우리가 압니다. 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합니다. 그 사랑을 여기에 가지고 교회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세계를 선의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일을 해 나가는 것, 이것이 계시의 목적입니다.
마지막 3장에 도달했습니다. 신학교에서 한 학기, 열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서 배우는 내용이 1, 2, 3장입니다. 끝이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에서는 제일 중요한 단어가 하나 등장하는데 이 단어를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영감’은 할멈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더욱이 땡감의 반대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한자로 쓰자면, ‘靈感’, 이것은 ‘영’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감화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있는데 성경은 누가 기록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지만 누가 기록합니까? 사람이 기록합니다. 사람이 성경을 기록하는데 어쨌든 이 계시가 이렇게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나와서 성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계시는 완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습니까?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이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 써진 성경이 완전합니까? 불완전합니까?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완전한 계시를 주셨는데 하나님이 직접 레이저를 쏘듯이 기록했다면 모를까, 불완전한 인간이 기록했는데 어떻게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답이 바로 ‘영감’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동을 주어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죄들이 영향을 끼쳐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기록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지 않도록 특별히 성경의 기록자들을 붙들어주신 것, 이것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영감의 교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에 보면 “모든 성경은…”, 이것은 성경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이 이 감동, 이것이 영감입니다. 이것을 희랍어로 ‘테오프뉴티에’라고 하는데 ‘테오’는 ‘신’이고 ‘프뉴마’는 ‘영’입니다. 이것이 동사로 사용되면 ‘후~’하고 숨을 불어넣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갑니까?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장면으로 데려갑니다. 하나님이,
(찬양)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 하나님
‘후~’ 하고 불어넣으심으로 인간의 영혼이 창조되고 육체와 영혼이 만나서 살아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가 성령의 감동으로 숨이 불어넣어져서 그 상태에서 인간이 정확하게 계시를 옮겨 적음으로써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계시를 완전하게 전달해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감으로, 그 사람이 성경을 기록할 때 특별히 그때에만 그를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목회는 바로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가르침으로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게 해서 참 사람다운 사람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목양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성령의 감화를 주십니다. 그 감화의 방식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그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 혹은 오류, 이런 것들로부터 보호되어서 성경의 완전한 말씀이 불완전한 인간의 손에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A와 B 사이에 일치가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이 중에 인간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찾아낼 필요가 없이 정확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전달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적인 신앙과 그렇지 않은 신앙은 성경론에서 갈라집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영감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첫째는 기계적인 영감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아쓰기 식으로 성경의 모든 내용을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그대로 기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부분의 성경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계적인 영감설입니다. 이 주장의 맹점은,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불러주셨다면 왜 공부 많이 한 사도바울에게는 어렵게 불러주셨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불러주셨습니까? 농사짓던 사람은 왜 농사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불러주시고 고기 잡던 사람에게는 고기 잡는 이야기를, 의사였던 사람에게는 의학용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불러주셨을까? 의문이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계적인 영감설이 옳은 영감설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동력적 영감설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천재성을 주시는 것입니다. 옛날로 말하자면 헤로도투스(Herodotos)나 타키투데스(Publius Cornelius Tacitus)같은 천재적인 사람들이 그리스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것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감탄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필치로 일관된 견해를 가지고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 그래서 헤로도투스같은 경우는 교훈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특히 타키투데스 같은 경우는 사실을 토대로 역사를 기록해나가고, 이런 것들은 엄청난 천재성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우리가 아는 걸출하고 위대한 문학가들은 모두 천재성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문학적인 천재성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들의 작품이 매우 탁월하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성경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령이 성경을 기록하는 데에 개입하셔서 죄로부터, 모든 오류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재성에 의해서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오류가 없다, 무오하다, 틀린 것이 없다고 하는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도전이 됩니다. 이것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유기적인 영감설입니다. 다른 색깔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영감설이고 우리의 영감이라고 생각하며 기억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명하셨다, 빛을 비추어 주셔서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게 해 주시고 성경을 기록할 마음을 주시고 실제로 그것이 여기까지는 완벽하게 왔는데 손에서 딴생각을 하다가, 예를 들어서 72라는 숫자를 써야하는데 27로 바꿔버렸으면 결과적으로 성경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원본 만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성경을 기록한 딱 한 장, 거기에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그것이 계속 사본으로 베껴 써서 내려오는데, 그 많은 사본들을 비교하면서 원래의 원본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해가는 학문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95% 정도가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문가에게 맡겨놓는 것이고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보면서 성경 원본에만 이 교리가 해당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죄의 경향을 억제하고 언어를 선택하고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성경저자의 생각, 기질, 직업, 경험, 이런 것들을 사용해서 쓰게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 중에 농사를 짓던 사람은 농사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아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와 같은 의사였던 사람은 그냥 병에 걸렸다, 열이 났다고 하면 될 것을 정확하게 그 병명을 어려운 희랍어로 기록합니다. 의사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필치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로마의 사상을 통달하고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논리적이고 구속사적인 경륜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로마서 같은 것은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골로새서 같은 것은 아주 우주적이고 철학적인 사상들이 그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사용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외워보시겠습니다. 기계적 영감설, 동력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 세 번을 반복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따르는 것은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이제 영감의 방식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이번에는 영감의 범위입니다. 영감의 범위가 성경의 어느 부분에만 국한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영감은 산상수훈에만 해당되고 나머지는 영감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복음서까지만 영감이 되었고 사도행전부터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까지는 되었지만 이후는 영감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주장들을 합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 부분영감설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반대의 의미로 완전영감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영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성경의 기록자들을 죄와 오류로부터 보호하신 것은 성경의 언어 하나하나가지 미쳤고 용어와 표현을 선택할 때 오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고 문체와 표현이 개인의 개성을 따라 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가가 쓴 복음서는 누가답고, 바울이 쓴 서신은 바울답고, 계시록은 계시록다운 책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의 모든 부분에 언어 하나하나까지 영감되었다고 보는 것을 축자영감이라고 부릅니다. ‘축자’는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정확하게 성령의 역사로 선택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언어와 사상은 나뉠 수 없습니다. 언어가 그 사상을 지배합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은 언어가 미비합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세밀한 심리, 논리, 이런 것들을 묘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언어의 환경에서는 철학이나 사상이 발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철학이 그리스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주 정확한 언어 때문입니다. 언어가 아주 세분화되어서 정확하게 시제와 태, 수동태, 능동태, 중간태, 과거, 과거완료, 현재, 현재완료, 미래, 미래완료, 이런 것들이 정확하게 구분되면서 단어 하나하나 속에 아주 심오한 개념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단어를 인간이 허투루 채택하게 하셨다면 하나님은 A라는 생각을 전달해주셨는데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쓰는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타난 글자는 C라고 한다면 그 C를 통해서 B라는 사람이 A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C’는 ‘C’로 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끔 이야기하듯이,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어.’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언어를 통해서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설명을 하고 나면, ‘아, 그랬었구나!’ 하고 이해를 할 때도 있지만 변명처럼 들릴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사람과 교제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언어를 정확하게 선택하고 자기의 마음이 그 언어에 담기도록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알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언어 하나하나까지 영감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사실입니다. 영감 교리의 핵심적인 질문은 불완전한 인간이 기록한 성경이 어떻게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을 기록하는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죄의 영향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보호하셔서 하나님의 생각 A가 인간을 통해서 기록으로 나타날 때도 A가 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죄로부터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A가 A 그대로 전달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작용이 있었는데 이것을 ‘영감’이라고 하고 성경을 영감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 하나님이 저자들을 감화시키신 것’ 이것이 성령의 영감입니다. 그것이 결론적으로 성경의 영감이 된 것입니다.
자, 성경은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1분단이 큰소리로 힘차게 1번을 읽어보겠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인해 고유의 신적 권위를 가진다.” 2분단은 숫자가 많으니까 더 또렷하고 큰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2번, “은혜의 신적 반경으로서 성경은 꼭 필요하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꼭 필요하다. 3번, “구원의 필수적인 지식은 성경 전체에 단순 명료하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많은 설명이 없어도 조용히 성경을 읽으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 거룩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 우리의 죄를 회개하여 구원 얻는 것, 구원 얻은 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런 중요한 것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성경을 혼자서 조용히 정신을 집중하여 읽으면 알게 됩니다. 문제는 이것보다 더 깊은 지식에 이르도록 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목양이 필요하고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4번은 모두 읽겠습니다. “성경은 개인과 교회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위해 충족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학원에서 배운 것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가십니까? 집에 가시면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학원 강의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 생각이 잊히기 전에 오늘 저녁에 돌아가셔서, 그래봐야 집에 도착하시면 9시 30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용히 교리책을 보시고 1과부터 3과까지를 쭉 읽고 주무셔야 합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또 읽으십시오. 그렇게 한 세 번쯤, 열심이 있는 분들은 다섯 번쯤 읽고 와서 쪽지 시험에 만점을 받으시면 제가 칭찬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 강의,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