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말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5-6)
녹취자: 백지영
이번에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설교를 했는데, 사실 성경구절을 늘 읽지만 그러나 사실은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냥 우리들이 통념적으로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런가보다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것을 강력하게 설교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경회를 하면서 찾아보니까 교회 역사 속에서 소금을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저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미국에 있는 D. A. 카슨이라는 학자가 이렇게 해석을 했는데 마이너리티의 해석이라기보다는 영어로 말하면 marginality라고 하는데, majority, minority, 그 다음에 marginality라고 하면 거의 없는 것같이 조금 있는 것을 marginality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marginality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왜 그렇게 됐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염장문화에 의한 해석인 것입니다. 염장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사실 일본은 내가 잘 모르겠는데 중국도 염장문화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장을 담근다든지 하는 것은 중국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염장, 생선 같은 것을 소금에 절여서 한다든지 아니면 김장 담그는 것 그런 것 말고, 그러니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금으로 오래도록 절여두어서 먹는 그런 식의 염장문화, 그런 것에 대한 이끌린 문화적인 해석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항상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것이 대표적인 구절인데, 신약성경이나 구약성경을 보면 소금이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맛을 고르게 하고 그 다음에 불변하고 영원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랍사람들 사이에 “we have a salt between us.”, 우리 사이에 소금이 있다는 것은 ‘남다른 사이다’, ‘우리가 남이냐’ 그런 뜻인데, 그런데서 보면 솔트라고 하는 것은 결국 ‘변하지 않는 불변성’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사랑’ 그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통이 구라파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구라파 음식이 특히 북유럽 쪽으로 가니까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짭니다. 그런데 그 짠 것을 먹으면서 그 사람들은 또 빵에다가 소금을 뿌리면서 먹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왜 그럴까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소금이 그때 너무 귀해서, 작년인가 이태 전에 북한에서 소금이 없어서 난리난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남쪽에서 무지하게 염려했습니다. 왜냐하면 소금을 일 년만 제대로 섭취 못하면 그 후유증이 기형아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랍니다. 설탕은 안 먹어도 되는데 소금은 안 먹으면 큰일 납니다. 몸에 분비물이나 모든 것들을 체질을 조절하는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여기에도 보면 “소금으로 맛을 낸다”는 그것이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5절은 별개고 6절은 또 별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문맥을 보면 이런 것 같습니다.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그 다음에 전도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오는데, 3절에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그 다음에 4절에 “마땅히 할 말로써”,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5절에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즉 괜히 전도한답시고 전도는 못하고 그냥 논변이나 하면서 시간이나 보내고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그 뜻입니다. 전하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계속 변론을 하자고 그러는데 복음을 전하되 그러면서 세월을 허비하지 말아라. 그러다가 6절에서 “너희 말을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들하고 말을 섞다 보면 언성이 높아지고 논쟁이 되고 논쟁이 싸움이 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안 되니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예전 성경에는 “소금으로 고르게 함과 같이 하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맛이 딱 맞지 않는 것을 고르지 않다고 하는데 그래서 맛을 고르게 하라 그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하느냐 그 말 한마디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사람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어떻게 실험을 했느냐 하면, 어떤 사람에게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화자가 장점과 단점을 듣는 사람에게 똑같이 인식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순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굉장히 성실하고 착실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뛰어납니다. 그런데 업무능력은 부족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이 사람에 대한 인상이 앞에 것은 다 지워버리고 업무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새겨진다는 통계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서, “이 사람은 업무능력은 약간 떨어집니다. 그런데 인간성이 참 좋고 남을 배려하고 성실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인간성이 좋고 성실하다는 것만 기억한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차가 한 16%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었을 때의 차이가. 그러면 결국은 거기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이미 화자가 말을 할 때 요령의 문제가 아니라 화자 자신도 청자와 똑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두 가지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 단점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장점을 이야기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장점을 기억나게 해 주는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순서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화자 자신의 의식 속에 이 사람이 긍정적인 것을 가지고 있으면 긍정적인 것을 나중에 말하고 부정적인 것을 가지고 있으면 부정적인 것을 나중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에서 다 조사를 하니까 통계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아주 틀림없는 통계가 나온 것입니다. 정확하게.
가끔 정말 동의할 수 없는 책을 노회 목사님이 쓰고 추천을 해 달라고 하는데 인간적으로 안 해줄 수도 없고 너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한 7, 8년 전인가 한번은 박 목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상의할 게 있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노회 목사님이 설교집을 하나 냈는데 정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노회의 어른이라고 꼭 추천서를 써달라고, 원고를 봐서는 절대 쓰고 싶지가 않은데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그래서 신학적으로 오류가 너무 명백해서 목사님이 써주실 수가 없는 것이냐고 여쭈었더니, 오류라기보다는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지만 이것이 틀렸구나 혹은 맞아구나 할 터인데, 지난번에 추천서 써달라고 한 원고도 그런 것인데 뼈대만 나열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판단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언해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만약에 말도 안 되는 것을 좋은 책이라고 추천을 하시면 나중에 누가 되니까 그러시면 안 될 것 같다고, 그 설교집의 단점이 무엇인지 추천서에 다 쓰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만 보태시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야기인줄 아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에 이런 책을 낸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은 사람의 감정의 표현인데 사람이 감정이 ‘a’인데 ‘b’말을 하려면 말하기가 싫습니다. 이 사람한테 이성적으로는 한 마디만 따뜻하게 해 주면 마음이 풀릴 텐데 해 주라고 그러는데 이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것이 능숙하게 되면 그 사람은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한번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을 만났는데 우리가 모두 경악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역자로 있는데 사모님이 마음에 너무 안 들어서 저 사람을 좀 내보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 나갈 기회가 생겨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헤어질 때 악수례 비슷하게 하면서 송별회를 하였습니다. 다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전부다 ‘그랬구나.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지.’ 그러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아, 슬프지 않은데 우는 척 하느라고 힘들었네.’ 이러는 것입니다.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야기 끝나고 나서 돌아서면서 무심코 나온 말인데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헤어지기 슬프지도 않은데 우는 척 하느라고 혼났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얘기하느냐 하면 말을 그렇게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은혜 가운데서’, 이 은혜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자신에게 있으면 말을 고르게 할 수 있는데 그것이 하나의 힘입니다. 정신의 힘입니다. 사람이 나에게 대해서 비난을 하거나 했을 때 유쾌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해 주는 쓴 말이 진실이 많이 담겨 있다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덮어 주는데 그런데 미워하는 사람들끼리는 그것을 그대로 직격탄을 날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것이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저 사람을 통해서 내가 못 보는 것을 보게 해주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격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계속 다스리고 평정을 유지하는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지도자로서는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너무나 표정이 명료해지면 사람들이 와서 올바른 이야기를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 같이 고르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항상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꾸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 다음에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다리 건너서 들리는 이야기, 그것은 대개 믿으면 안 됩니다. 확인해 보면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전하는 사람의 해석이 담겨져 있습니다. 팩트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팩트는 맞는데 그 팩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내가 안 믿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라 항상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때에 그것을 딱 듣고 단선적으로 우르르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좀 더 확인해 보고 다른 면들을 보고 감정은 나중에 가지라 그 뜻입니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했는데 우리 교회에서 3년 동안 연애 했던 형제자매가 결혼을 했습니다. 내가 주례를 섰는데, 너무 둘이 좋아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매가 울면서 면담을 왔습니다. 결혼한 지 석 달밖에 안 됐는데 형제가 때렸다는 것입니다. 뺨을 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나쁜 놈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면서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치리를 받아야 될 놈이라고 불러와라 그랬습니다. 네가 때렸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그랬더니 사실이라고 그래서 앉자마자 바가지로 혼을 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자신이 때린 것은 정말 잘못했는데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결혼하고 석 달 동안 한 번도 아침을 안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는 육체적으로 힘을 많이 쓰는 일이기 때문에 아침 먹어야 하니 밥 좀 챙겨 달라고 하면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나 졸리니까 네가 차려먹으란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도 사실은 100프로 안 믿습니다만, 그런데 어쨌든 한 번도 아침을 안 차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든 생각이 때린 것은 잘못했지만 자매도 엄청 잘못했구나,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또 자매한테 너 한 번도 밥 안차려주었느냐고 확인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또 나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을 때 일체의 감정이 없이 컨트롤하는 것 그것이 제일 나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한 데, 오늘 성경에 보면 “그리 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하였으니, 사랑의 원리에서 사태를 은혜롭고 누구를 찌그러뜨리지 않고 사람을 세우려고 노력을 하면서 말을 하다보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 말해야 될지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리더의 말 한마디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든지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인정을 받아야지만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어주어야 하고 그리고 선의로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각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지금 몇 시야? 왜 늦었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나를 걱정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화는 납니다. 시간이 되었고 일은 많은데 분명히 꾀병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감싸면서 그리고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속이 터지겠지만 그런데 그것도 역시 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하는 데 있어서 은혜 가운데 말을 고르게 해서 사람들을 누구도 찌그러뜨리지 않고 격려하면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조용히 해고의 계획을 세운 사람이라면 좀 다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루실 때 직접적으로 꾸짖으신 적이 있지만 언제나 사랑이 꾸짖음이나 책망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그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평소에 많이 사랑해 주면 많이 야단을 쳐도 그것이 깊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이 이제 일 년차 이 년차 삼 년차 이렇게 지나가니까 좀 더 원숙하게 여러분들의 팀을 이끌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