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고난과 위로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우리들은 늘 교회가 사랑이 많고, 또 교제가 있고, 연약한자를 붙들어 줄 수 있고,이런 어떤 돌봄의 기능,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염려스러운 것은 뭐냐면 교회가 이런 것 들을 중시하다보면 자칫하면 자기만족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지금 매우 결핍되어 있는 것은 의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언약관계이고 우리는 그 언약 관계 안에서 언약밖에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기업과 축복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 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언약 관계를 지탱하게 하는 훌륭한 하나님의 방법이 뭐냐면 언약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언약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의무를 부여하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의무를 이행하며 사는 것을 통해서 긍지를 느끼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만약에 이런 언약사상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혀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거룩한 긍지가 없으면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오늘날 약한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고난을 견디면서 이겨온 수많은 핍박받은 성도들이 가슴에 가지고 있었던 신앙이 이런 언약사상 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청교도 들은 자기 자신들을 언약도, 혹은 언약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그런 언약관계에 대한 개념조차도 별로 없지만 혹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로 받는 일반적인 특권에만 관심이 있지 거룩한 의무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이 장엄한 언약백성으로서의 긍지나 사상 같은 것들이 별로 없다 이 이야기지요.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올곧음을 잃어버리고 교회전체가 시대가 원하는 대로 변모하고 아주 편의롭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거지요. 교회를 그렇게 강한 교회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요. 이런 교회를 강한 교회로 만들어서 자기만족에 빠지지 아니하고 거룩한 언약 백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이어두운 세상을 흘러가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해야 한다 하는 것 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이본문은 우리에게 참 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세 번의 편지를 보냈고 그중 한 편지는 유실되었습니다. 그래 두 편지만 남아 있는데 앞에 보낸 고린도전서에서 보면 이 교회는 문제가 많은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책망이 남다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후에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려온 소식이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이제 일장에 그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에요. 교회가 강한 교회가 되고 올곧은 교회가 되기를 사모하는 사도의 바램 이 여기에 묻어나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교회가 강하고 올곧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역사 속을 흘러갈 수 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강물의 그 위대한 힘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강은 비록 산에 부딪히면 그 산을 돌아가고 언덕이 나오면 거기서 멈추고 길을 바꾸지만 그러나 무엇으로 강물의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강을 막아서 둑을 쌓는 사람은 없죠. 왜냐하면 강물은 흘러가기 때문이죠. 혹시 댐을 막는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강물이 흘러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둑을 쌓죠. 큰 힘입니다. 세월이 지나가고 나면 처음에는 돌아갔던 그 산을 깍아서 물길을 만들어버리고 산을 고립시켜서 강 가운데에는 섬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 물의 힘이에요. 그 강력한 힘을 가진 강이 흘러가면서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아름다운 생태계를 지닌 땅으로 변모시켜요. 이러한 힘과 강한 능력으로 강물이 흘러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교회도 강한 힘으로 세상 한복판을 흘러가야 하는 것이에요. 교회가 커져가는 것에 대해서 비난을 많이들 하지만 저는 챨스 스퍼전과 똑같은 생각이에요. 그는 교회가 커지는 것, 작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순수하고 힘이 있는 교회가 되느냐하는 것이었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역사의 한복판을 흘러가며 흐르는 강물처럼 살기 위해서는 교회가 순결하고 강한 힘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하고, 교회의 순결과 강한 힘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성도들의 깨끗한 마음과 성결한 삶, 그리고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힘을 토대로 하는 것이에요. 로이드 목사님이 전임으로서 웨스트 민스트 채플 담임이었던 킹덤 모건 목사님이 자신의 책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세상을 향한 거룩한 교회의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교회 안에 있는 한 신자 한 신자가 자기의 삶 속에서 미치는 영향력의 총계이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만약에 성도가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교회 와서 열심 있고 뜨거운 종교적인 열의를 보이지만 실제의 일의 관계가 맞부딪히고 고난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삶 속에서 호박씨를 까는 그 교인이라면, 그 교인이 하는 일에서도 그 교인은 이 세상을 향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집단이 되는 것이죠. 그 반대로 한사람 한사람의 교인이 교회에 와서 뜨거운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은혜의 감격을 새롭게 하고, 죄를 회개하고, 그 속에서 거룩한 용기와 부패한 자세를 격려 받고, 충만한 은혜의 성령으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 가서 자신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똑같은 질의 삶을 올곧게 살려고 분투할 때 그때에 교회가 크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정말 크고 위대하고 힘이 될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 교회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뭐냐면 강한 일꾼들이 강한 교인들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순결한 지도자들이 깨끗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꾼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환난이나 시련, 고난이나 심지어는 하나님의 책망 같은 것들, 심지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와 사랑, 돌봄, 이 모든 것들까지도 결국에는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맡겨주신 성도들을 세우고 강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복되기 위한 도구로 쓰여 져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오늘 사도가 자신을 포함한 일연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흔히 구약의 예레미야서라고 불리 웁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당한 사도와 사도의 일행의 고난과 시련을 많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시련과 고난에 의하여 억눌리지 않는 그런 신앙을 이속에서 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사도와 사도의 일행이 먼저 환난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많은 환난을 경험한거지요. 그리고 그 뒤에 보면 육로의 위험과, 해로의 위험과, 죽을 고비를 넘김 것과, 돌에 맞은 것과 ,핍박과 고난과 환난.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바와 같이 진짜 유리하는 그러한 양과 같이 그렇게 고난과 시련을 많이 당했고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올곧은 삶과 사역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서 오는 고난과 시련이었어요. 그 시련을 많이 경험하면서 환난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도가 당한 이 고난과 큰 시련이 어떻게 성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두 가지 방면에서 위로가 될 수 있었겠죠. 그죠? 하나는 자신들이 믿음생활을 해나가면서 당하는 평안한 가운데 맞이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생각할 때에 힘이 들었지만 사도와 사도의 일행이 전도여행을 통해서 당한 사선을 넘나드는 그 시련을 보면서 우리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위로를 경험하지 않았겠습니까? 신뢰할 수 있는 통계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 중 매일 열두 명이 정신이상이 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죠. 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지금 중국은 매일 이백만 내지 250만 명의 사람들이 회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크고 위대한 역사가 있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고생을 한 것이죠. 80년대에 마마깡 이라고 하는 중국의 그 고난의 시대를 통과한 사람의 간증이 여러 사람들에게 들려졌죠. 그런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 심지어는 그 옥에 갇혀서 고난을 받다가 석방이 되었는데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아직 자기에게 채워지지 않았다고 하며 감옥소 옆에다가 허름한 집을 짓고 거기에서 스스로 자원하여 교도소 생활을 했던 성도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고난의 기록을 보면 오늘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지금 우리가 당하는 이 고난과 어려움 같은 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 방면에서는 그러한 환난과 큰 고난을 사도와 사도의 일행이 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당한 그 큰 고난과 환란을 통해서 이 사도들이 아마 후일의 고린도교인들을 만나면 능히 위로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평탄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우리를 위로 할 수 없습니다. 진짜 우리들이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보다 더 큰 고난으로 사선을 넘으면서 인생을 살아온 성도들과 그리고 교역자들의 위로는 큰 힘이 됩니다. 가본 인생의 뒤 한 길에서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방식으로 사도와 사도의 일행의 큰 고난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또 그런 위로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이죠. 그러나 만약에 사도와 사도일행이라고 할지라도 환란과 고난만 계속 되었더라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흔히 쓰는 도구 가운데 호두를 깨는 도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빨이 도구지만은 호두를 좋아하는 서양사람 들은 호두를 놓고 호두 까는 기계로 좌우로 돌리면 이게 압력이 가해지면서 호두가 쪼개지는 거죠. 호두의 크기에 따라서 혹은 종류에 따라서, 껍질이 두껍고 얇음에 따라서, 이것이 쉽게 깨지기도 하고 더 많이 돌려야지만 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모든 호두는 그 두께 속에서 깨뜨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강함과 약함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철인 일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는 그렇게 철인과 같이 강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많은 성도들에게 그래서 그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라는 성도들에게는 고난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세상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신적인 은혜죠. 사도들이, 사도와 사도의 일행들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런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이 위로의 경험도 또한 고린도 교회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고 수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가 고백하고 바라보았던 신앙이요, 또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받은 큰 위로가 또는 고난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결국 사도의 고난과 위로는 성도들을 향한 위로가 되었고 그 위로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은 강력의 교회가 되는데 기여하는 것이 이 위로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는 한해를 이렇게 돌아볼 때 환란을 많이 당했습니다. 저는 지난 한해가 제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였고 하늘나라를 많이 생각나게 하는 그런 한해였습니다. 사도를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이 사선을 넘나들면서 당한 그 고난에 비하면 시련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지만은 그러나 우리에 비하여서는 힘든 한해를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은 고난만 남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로를 많이 주셨습니다. 특별히 고난이 넘쳤다 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넘치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고난이 꽉 찰라치면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새 힘을 얻게 만드시고 고난과 어려움이 꽉 차서 은혜가 떨어져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라치면 그러면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일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우리들이 살아온 삶, 그리고 섬겨온 지난날이 올곧음이 없이 휘청거리면서 살아온 삶이였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도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했다고 생각이 드는 대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고 환난에 의해서 많은 고생은 했지만 꺽 이지 아니하고 오늘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서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런 환난 속에서 환난만 당하지 않고, 고난만 격지 아니하고 위로를 넘치게 받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꼭 믿음 안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성도들만 위로 하지 아니하고 연약함으로 인해서 넘어지고 쓰러진 지체들도 눈물로 돌볼 수 있는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지요. 그 모든 위로와 은혜의 경험에 대해서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세워주셔서 주님의 교회에 한 모퉁이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게 하시고 그리고 주를 위해서 살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불행과 고통이란 것은 이 땅의 자원이 모자라는 것이 이 세상의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쏟아 붓고 일생을 살아야 될 것 인가에 대한 전망이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의 고통이고 시련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큰 축복이요 말할 수 없는 은혜지요. 그런 면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가치 없는 죄인들을 위로 하시고 그리고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위로하신 그것에 대해서 우리들이 깊이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넘치는 위로를 우리의 교만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되고 항상 주님께로부터 오는 큰 위로가 있을 때 마다 이런 위로를 받을 만큼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쏟아 붓지 못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진실하게 참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받은바 위로를 빈약한 성도들을 돌보고 힘이 없는 신자들을 붙들어 주는 일을 위해서 헌신 하는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연약하고, 시련에 처하고, 환난과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많은 지체들을 거기서 받은 위로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들을 싸매고, 먹이고, 돌보는, 그런 위로의 도구가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교회가 더 온전한 교회가 되고 연약한 교회가 환난과 시련을 통해 오히려 위로를 받음으로서 강한 교회가 되는 것 입니다. 우리들이 향후 10년 동안 가야 할 길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교인들이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을 깊이 싸안고 그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러면서 또한 마냥 그들을 기다릴 수 없고 우리는 이 세상 속으로, 역사 속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의 사역에 주님의 위로가 넘치도록 필요하고 그리고 우리가 또한 위로의 도구가 되어야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이지요. 그래서 우리 지난 한 해 동안, 지난 10년 동안 우리를 지키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그런 성도들이 되십시다. 우리 같이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