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지도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하나님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실 수 있는 아주 큰 복중에 하나가 지도자의 복입니다.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은 수십만 수백만 아니 인류 전체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미래에 다가오는 역사를 준비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에서 통용되는 화폐같은데 보면은 이미 몇 백년 전에 사람인데도 그 화폐에 인물을 그려넣어 놓고 그리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서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이것은 두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지도자의 복이 얼마나 큰가하는것을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이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것이 얼마나 드문것인가 하는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에 있어서도 정확하게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실 수 있는 매우 큰 선물은 바로 지도자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은사이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희봉 목사님이 안드로 뭐레이에 '겸손'이란 책을 번역하시면서 안드레 뭐레이는 하나님이 19세기 세계 교회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이 주셨기때문에 그 사람을 통해서 참된 기독교의 신앙이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고 또 가고 오는 시대에도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 참된 기독교 신앙과 삶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월터 바로라고 하는 전기 작가는 자기가 앤드류 뭐레이를 만난 그 경험을 기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화란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사역은 남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서 일생을 보냈습니다. 영국에 청교도에 경건에 물을 먹고, 화란으로 건너가서 화란에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뼈대로한 학적체계를 가진 다음, 삶은 남아프리카에 가서 수많은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성화론에 있어서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완전성화론의 입장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저에 신학적 입장하고는 좀 다르지만, 다른 모든 방면에 있어서 그분은 참 훌륭하고, 19세기 자유주의가 팽배해가는 시대에 그분만큼 복음에 천착하는분이 없습니다. 제가 그 분에 책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데, 그 분이 영국사람이라서 그렇겠지만은 어째튼 키가 1m65밖에 안됐으니까 서구 사람으로서는 매우 작은 키였죠. 그런데 월터 바로 일행이 이제 이분을 만나러 갔을때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기술을 했어요.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다 기억은 안나지만 그저 그런 이야깁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머레이 목사님 계신 방에 들어섰을 때 그분은 두 손을 무릎에 포개고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고요함 가운데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그가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가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합시다. 그 기도가 끝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 앞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지도자의 복은 그렇게 크고 놀라운 것이라는 겁니다.
이 에스라도 역시 아주 혼란스럽고 어지럽던 시대에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70년이 지났고, 하나님이 고레스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제 예수살렘으로 귀환하는 때에 그 수룹 바벨에 이은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수살렘으로 올라가기까지, 그 길은 많은 위험이 있는 것이었고 더욱이 어린 아이들까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시기하는 많은 족속들이 있어서, 예루살렘에 귀환을 방해하였습니다. 이때에 부름 받은 사람이 바로 에스라라는 사람입니다.
근데 이 에스라라고 하는 이 사람은 사실 선지자가 아니라 학사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공부하는 말하자면은 율법사쯤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학문과 인격은 왕에게도 깊이 인정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 바사 왕 시절이죠. 이때 인물인데, 이 사람은 하늘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고 그리고 왕에게 총애를 받아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는 자였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그 엄청난 사명을 완수하여 예루살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 학문이 뛰어나죠, 정치적인 입지도 확실하여 아닥사스다 천하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총애를 받는사람이죠, 거기에다가 이스라엘 민족을 그 예루살렘까지 인도하는 어마어마한 대업을 커다란 실수 없이 완수를 해냈죠. 그러니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사실 그는 대단한 일을 모두 해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였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도달했을 때 자기 일생 살아온 전기를 쓰거나, 간증집을 내거나, 그리고 자기가 왕에게 총애받는 인물이라고 으스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마자 그가 한 일은 세 가지 였습니다.
제일 먼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6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모세에 율법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람어본문입니다. 제 기억으론 '하닉'이란 아람어가 쓰인 걸로 기억이 되는데 '하닉'은 무사같은 사람들이 칼 쓰는 연습을 아주 많이 해서 숙달된 그런 상태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충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것을 자유롭게 꺼내어서 사용하고 이론을 전개할 수 있는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는 것이예요.
그러면은 이제 그 큰일을 끝내고 예루살렘까지 오는 동안에 천신만고 끝에 왔으니까 이젠 좀 쉴만하잖아요? 좀 쉴만 하잖아요?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오는 동안에 하지 못했던 공부를 하기로 결심은 했던 겁니다. 그리고 율법에 책을 펴서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거를 보면서 참 얼마나 부끄러운 줄 몰라요. 여러분, 이 사람은 율법에 익숙한 이스라엘에서 몇 안되는 학자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 먼 길을 여행하여 죽음에 고비를 넘기며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좀 외국여행도 하고, 관광도 하고, 성지순례도 하고, 온천도 좀 다니고 좀 쉬어야되잖아요?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한일이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열심히 탐구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학창에 있으니까 공부는 아무 때나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다닐 때 그래도 공부 좀 하던 사람들도 졸업을 하면은 공부로 부터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부목사가 되면은 더 많이 멀어지고 담임목사가 되면은 거의 불가능해 지는 거죠. 외국에서 유학도 하고 젊었을때 꽤 공부하신 분인데 교회도 꽤 큰거를 하세요. 최근에 만나서 뭐 저보다는 연세가 좀 드시긴 했죠. 목사님 그렇게 젊었을때 유학도 하고, 요즘도 가끔 청교도 이야기도 하시고, 개혁신학 이야기도 하시는데 지금도 계속 신학공부하십니까? “김목사님 공부는 무슨 공붑니까? 지금 정신이 없는데.” 그게 실제입니다. 이름만 대면 다 잘 아는, 지금 교회에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젊은 목회자예요. 뭐 꽤 큰 교회를 하고 있고 저보다는 약간 좀 연하지만 만나서 목사님 그래 공부좀합니까? 그러니까 “목사님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읽어도 목사님이 보는 것 같은 머리 복잡한 책은 도저히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게 실제입니다. 그래서 뜻을 세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예요.
교만하지 말고 꾸준히 공부하되 자기 자랑을 위해 공부하지 말고 하나님에 말씀을 사람들에게 풀어줄 요량을 가지고, 관련된 학문을 열심히 공부하기를 마치 매일 매일 탄광에 내려가서 석탄을 캐다가 교인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불 때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 매일 내가 배우지 않으면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꾸준히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여러분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는 그 정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온전히 탐구해야 합니다. 한때 저하고 같이 신학교에서 강의도 했던 박아무개 목사님인데, 저는 보기에 그분이 그렇게 대단한 학문을 가지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뵙고 저보다 조금 윈가 그래요. “목사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학자들에게 얘기하는 그 대단함하고는 다른 의미에서 목사님 참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공부도 뭐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되있지만 그러나 뭐 그렇게 옳게 하신 것 같지 않아요. 근데 특징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성경을 꾸준히 설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물어 봤어요. 어떻게 하십니까? 그러니까 .
요나서를 설교해야 되겠다 그러면은 6개월 전쯤 요나서에 대해서 쓴 모든 책을 다 읽는 다는 거예요. 그 많지 않지 않겠어요? 주석도 읽고 다. 그 다음에 인제 요나서를 자기가 성경을 매일 계속 읽는다는 거예요. 그러고 그것을 내용 분해를 해서 요나서 1장서부터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뭐 6개월 걸릴 수 도 있잖아요? 계속 설교를 할 때, 원고를 쓰면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설교가 딱 끝나면 정확하게 요나서 강해집이 딱 떨어지는 거예요.
내용은 심오하고 그러진 않지만은 그래도 지방 신학교 나온 목사가 그런 자세로, 헛소리하지 않고 하는 자세가 정말 존경스러운거예요. 그러고는 또 신학생들이 좋아하는 거는 그 교회 부목사로 가면은 그런데 떠나기 한 달 전에 말해준대. "자 이제 박아무개 목사가 우리 교회를 떠나는데 한 달동안 박아무개 목사가 돌아다니면서 여러분보고 같이 개척 좀 하자 그럴 때 거절하지 많고 웬만하면 따라가시오" 그런데 한 달 동안은 교인들 중에 누구를 데리고 가도 내버려둔데 그대신 한 달 전에도 안되고 한 달 후에도 안 된데. 딱 30일 기간 동안.
그래서 마음 아프지않냐 그러니까 아니 뭐 가끔 마음 아플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따라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는 보내준다고 그래서 오십 명도 빼가고 백 명도 빼가고 그런다 그래요. 그러니가 지방 신학교 나와가지고 이름도 없는 지방 신학교 나와서 그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우리 합동측 교단에 목사님도 아니예요. 그래서 내 학생들에게 항상 “저 목사님을 좀 본받아라. 공부 그렇게 탁월하면 텍스트도 줄줄 읽고 그러면 좋겠지, 못해도 저런 자세를 가지고 목회를 해야 된다.”
여러분들은 다 좋은 대학교 나오고 총신에서 공부를 했잖아요.그치? 총신이 모두 다 훌륭한 학생들이 모인건 아니지만 여러분들은 뭐 뽑히고 뽑혔잖아. 그러니까 인턴쉽을 통해서 갈 길도 알았어요.그러면 부지런히 공부해요. 손에서 책을 놓지 말고 여기가 팔꿈치가 닳도록 매달려서 공부해야 되요. 그냥 바람 들어서 돌아치고 기타 통이나 매고 교회 왔다갔다하면, 나중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예요.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그 율법을 연구한 목적이 뭐냐하면 준행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준행한다는 말은 그대로 이루어드린다 이 뜻이에요.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요. 뭐 하나 웬만하면 신학교 다닐때 사역하지 말라고 내가 노래를 하는 이유가 평신도땐 뭐 하나 읽어도 자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야 이 말씀을 듣고 보니까 내가 참 이렇구나 이렇게 해야되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전도사라도 사역을 하고 나면은 뭐 하나 좋은걸 읽으면 요걸 가서 요렇게 바꿔서 가르켜야지,그렇게 나오는 거지. 진리에 말씀을 들으면 이게 이렇게 해가지고 가슴을 찢고 흘러가서 창자를 움직이고 해가지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 다음에 다시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이렇게 올라와서 사람들에게 전해야 되는데 일루 들어왔다가 일루 나가 버리는거지. 좋은 얘기 듣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기 하곤 아무 상관이 없는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에 말씀을 준행하면서 사는 삶이 이루어지질 않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에게서 커다란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에 신앙은 우리에 지성이나 정서 속에서 가장 잘 파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의지에서 파악 되는 것도 아닙니다. 첫 번째가 지성주의고 두 번째가 감정주의고 세번째가 도덕주의 아닙니까?
그게 결국은 신앙의 중심자리를 지성으로 보는 사람, 정서로 보는 사람, 의지로 보는 사람 그것 아니예요? 얼마든지 인간에게 강력하게 촉구하면 의지가 그렇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주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마음에 감동을 주면 할 수 있다는 주정주의자 주지주의자 이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각각 서로 불침을 겨루면서 이제 신앙을 역사를 흘러온 거예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에 전인격에 신앙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우리가 알고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실제로 행하면서 살아갈 그때에,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것이 가장 절실하게 파악이 되고 이해되는 것이다 이것이죠. 그럼 우리 교직원들에게는 한 두 번 그런 얘길 했습니다만은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 한분이 그런 얘길 해요. 젊었을 때 군대 갔는데 동해안에 배치가 됐어요. 배치된날 선배들이 불러모으더니 야 너희들이 가서 오늘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우리가 먹을 김치하고 고추장 된장을 해결하는 거다. 마련해와야 된다. 어디서요? 그랬더니 이자식아 널려있는게 된장독 고추장독 김치독인데 어디서 구해오긴, 니가 알아서 해와야지. 가서 훔쳐와 임마. 밤중에 가서 훔쳐와 임마. 그 얘기를 듣고 그 신병이 고민이 되는거예요. 아 난 예수믿는 사람인데, 그럴 수 없는데. 그래서 인제 고참한테 그랬데요.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저는 훔칠 수 없습니다. 맞을래? 아닙니다. 제가 훔치진 않지만 어떤 방법이던지 조달을 하겠습니다. 이 자식! 니가 훔쳐오지 않고 어디서 김치하고 고추장을 가지고와 임마! 알아서 해봐.
기도를 하는데 막막하더래요. 군대간 놈이 갑자기 집에 전화해서 삼일안에 김치하고 고추장을 붙이라는 것도 말도안되고 전화도 안되고.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애들은 밤중에 그걸 훔치러 가는데 낮에 갔대요. 그래서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자기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군대를 왔는데 고참들이 가서 김치하고 고추장을 얻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줌마가 웃으면서 애고 얼마나 고생이 많느냐 우리 아들도 군대를 갔는데 지금 걔는 서해안에 가서 근무를 하는데, 잘 있는지 하면서 훔친것 퍼주는데 그렇게해서 걷어들인게 훔쳐온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왔더래요. 그래서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우리가 살아보지도 않고 현실이 어쩌느니 무슨 그러지 실제로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라고 중심자리를 말씀을 준행하는 것에다가 못을 박고 나면 하나님이 놀랍게 길을 열어주십니다. 사실입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길이 없는 것같은 상황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되겠다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나머지는 어떤 고난이 와도 내가 당하겠다하면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고 멸망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신기하게도 놀랍게 갈 길을 열어주시고 그리고 해야할 일들을 보여주시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말씀을 탐구하되 스스로 먼저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야합니다.
중국 의학사에 신농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전설적인 인물인데 이 사람이 중국 의학에 아버지예요. 그러니 사람들은 이 사람은 어떻하냐면 실제로 무슨 약초가 몸에 좋은지를 자기 몸 전체를 임상보고로 사용하는. 얼마나 위험합니까? 예를 들자면 이제 돌멩이로 무릎팍을 쳐서 피가 흐르게 하고 이 약초 저 약초 띁어서 부쳐보는 거예요. 어느 약초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고, 어느 약초가 피를 멎게하고, 어느 약초가 새살이 돋게하는지를 해서 하나 하나 적어내려가서, 그래서 사람들에게 의학에 아버지라고 추앙을 받는것이예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행하며 살아가는 그 속에서 사람들을 가르칠때 머리로만 배운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그런 놀라운 감화를 사람들에게 끼칠 수 가 있는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준행하고 살아서 진실한 종들이 되어야합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그랬습니다. 난 이 대목에 있어서 오늘날 한국에 목회자들이 가슴을 찢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결국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갔을 때, 우리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우리가 한눈에 다 볼 수 있게 될텐데, 물론 뭐 잘한다 하는 사람도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살아 왔을것이고, 자기가 생각할 때 제법 옳은 길을 걸어왔었던 사람도 하나님이 보기엔 갈지자로 걸어온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누가 자기는 하나님 앞에 올곧게 살았노라고 자부할 수 있겠어요.그쵸? 허물에 다과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나 결국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제 여기에서 우리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뭐냐하면 우리에 가르침이예요.
만약에 주님이 우리가 살아온 목회자로의 일생을 다 보여줄 때, 다른 흔들리는 삶은 우리에 연약함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우리에게 분명하게 진리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도록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자기 사상을 떠벌리고 개소리하면서 일생을 살아왔다면, 그 부끄러워서 어떻게 보여주시는 우리에 일생의 지난날들을 천국에서 내려다볼 수 있겠어요? 그렇게 사람의 사상을 외치는 동안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는 사라졌고 그리고 그렇게 자기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동안에 회심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많은 죄인들이 헛되이 멸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몇 년 전에 어느 한 교인이 무슨 때 였는진 잘 기억이 안나는데 새가족 환영회 때였는지 교리반 때였는지, 어느 교인이 그래요. 이 교회에 와서 우리 교회에 와서 뭘 배웠습니까? 그랬더니 신앙의 도리를 잘 배웠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래요. 예전에 어떻게 배웠습니까? 자기가 하도 궁금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물어봤답니다. 목사님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그러는데, 나는 실제로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살 때가 많아서 죄를 짓는데, 그러면 도대체 우린 어떻게 해야 되는겁니까? 갈등이 너무 많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하니시는 말씀이 정확하게 외웠어요. 이렇게 가르쳐 주더래요. 성경이 우리에게 바르게 살라고 가르쳐주지만 성경도 우리에게 다 그렇게 안 살줄알고 그렇게 가르쳐 주는거다. 그러면 죄는 어떻게 합니까 인간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냐? 그렇게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돼. 해수욕장 당신이 가지? 예. 그러면 해수욕장에 바닷물을 죄라고 치고 그 해수욕장에서 해수욕하는데 바닷물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해수욕을 할 수 있겠어? 세상이 죄야. 그럼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냥 거기에서 그렇게 헤엄쳐도 돼. 근데 '넘어가지 말라 여기부터 위험합니다'하는 말뚝. 거기까지만 가면된다. 그러니 그 사람이 그러한 목회자에 설명을 듣고 얼마나 담대함을 얻었겠습니까?
도대체 그 말뚝을 누가 여기부턴 말뚝이고 저기부턴 말뚝이 아니라고 지정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 이렇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에 사상을 가르치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 말씀이 자신의 삶에 좌표가 되질 않기 때문에 가르쳐줄 내용이 없는 것이죠. 오늘날 사람들은 고전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 너무 고풍스럽고 시대에 뒤졌다고 외면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새로운 사상, 그리고 누구의 새로운 인간의 기발한 착상과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수많은 인파가 모입니다. 그런 유혹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이 일은 에스라시대보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 훨씬 어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말씀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해야 되겠다는 사모함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살아가야 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전하면서 살아갈 때 그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 시대를 움직이는 준비된 목회자가 얼마나 한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터쉽이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정표를 만들어 주는, 이런 길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라고 이후에는 여러분들이 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고 또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쳐서 주께 더 많이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이 말씀을 좇아서 우리 사랑하는 전도사님들이 신앙생활 잘 해나가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