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인하여 고난 받는 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1-13).
예로부터 이 한 신자가 박해를 받는 것은 참된 신앙을 가진 아주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시대가 배도와 핍박이 교차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그래서 마르틴루터는 참된 설교자의 자격요건을 들 때 그는 반드시 박해받는 사람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대는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박해가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박해가 없는 이유는 오직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상이 주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서 살아가는 세상으로 변화되었든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동질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타협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박해가 없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고난을 받는 이유는 모두 진리 때문에 받는 박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인격의 허물 그리고 우리의 부족 심지어는 우리의 죄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음 우리의 부도덕 이런 것들을 통해서 받는 고통과 고난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유 때문에 고난을 받고 우리들이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박해가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 보니까 나를 인하여 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맨 앞에 첨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거슬러 너희를 말하게 될 때 그때에 기뻐하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인하여 라고 하는 것이죠 분명히 예수님을 인하여 고난을 받게 되면 그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상급이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고난을 이야기하고 핍박을 이야기 할 때 배도의 시대에 삶과 죽음사이를 오가는 순교의 현장만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순교의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순교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해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아주 특별한 특권인데 이러한 순교는 하나님께서 아무렇게 살던 신자를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강력한 믿음이 쏟아나게 하셔서 순교를 당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거죠 평소에 평화로운 환경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하고 양보하지 않고 고난을 받으면서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순교하는 것이지 얼마든지 타협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어는 결정적인 순간에 죽음 앞에서 순교하게 되는 대담한 용기를 바라는 점은 없다. 그런 적은 없다.
그러면 결국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떤 가르침이 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의 빛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며 인생을 살아갈 때 매일매일 살아갈 때 항상 우리가 양보하지 않은 신앙 그리고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분이주신 자리에서 그 분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존재의 목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며 분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그런 사람들이 순교하고 고난을 받는다.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각자 우리가 행한 바를 따라서 상을 발을 터인데 그때에 우리들이 고난 받은 것이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 것이 아주 중요한 우리의 상급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남들이 이행하지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많은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많은 고통을 수반하고 절제를 수반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포기해야하는 희생을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서 많이 손해 본 사람 그 사람들에게 상급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디에 서 있던지 하나님을 훌륭하게 잘 섬기며 변함없이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가 동료나 후배목사들 만나면 늘 대화할 때에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헬퍼가 되어서 담임목사와 동료교역자들과 성도들을 섬길 텐데 꼭 그런 사람을 후에 동녘자로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어느 교회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부목사 한사람이 하도 요령을 피우면서 교회 일을 안 하고 신실하지 않으니까 이 목사님이 그러더래요 지가 몇 년 후에 나가서 목회할 텐데 너도 말고 그만두지도 말고 모두 자기 같은 부교역자들만 모여 봤으면 좋겠데 그럼 아마 뒤집어 질 거라고 하나님은 정말 자기가 하나님 섬기는 대로 하늘에서는 물론이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섬기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이 필요해요 그 교회 와서 아무것도 안 섬기고 주일날 달랑 와서 예배드리고 축도하기 전에 도망가면 교회 안에서 마음 상할 일이 없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면 섬기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나 아는 목사 한 사람이 어느 교회 가서 간지 얼마 안 되었는데 목사님이 힘들고 아주 중요한 일을 내렸어요 다른 사람들이 6개월가량 걸려야 된다고 생각한 일인데 한 달 만에 밤새워서 그 일을 해냈어요 그랬더니 모든 동기들이 미워하더래요 자기를 왜냐하면 니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럼 결국 우리는 할 수 있는데 안했다는 게 되지 않느냐 얼마나 미워하는지 1년 동안에 교회를 떠나가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데요 그런데 자 오늘 새벽에도 말씀이 나왔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붙잡혀가서 신문을 받을 때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라 내 말을 듣는 게 옳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옳겠느냐? 누구의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여줘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섬기려고 하면 항상 고통이 뒤따라요 그런 고통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멈추면 더 이상 고통이 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사역에 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거예요 두개가 마치 상관이 없고 대립상태에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면 안되요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사람이 일은 열심히 하는데 인간이 도대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되먹지도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내 인제 육군사관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늘 외부인들 데리고 가면 잘 보여주는 데가 화랑연변장이에요 축구장 하나 될려나 축구장 하나 될 만한 연병장인데 거기서 국기 강하식을 매일 합니다, 5시 딱 되면 모두 모여서 아무것도 안 해 국기 강하만 해요 애국가 울려 퍼지고 그때 잔디가 쭉 심었어요 나 같으면 그런 잔디 안 심었을 거예요 요즘은 모르겠어요. 그 질 좋은 양잔디 심으면 안 그래도 되는데 잔디 심었는데 풀반 잡초반이야 맨 날 잡초가 나요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은 아니고 아마 삼일에 한 번씩은 축구장넓이 되는 곳을 이쪽에서 쭉 쪼그려 앉는 거야 그리고 저 족에도 쪽 쪼그려 앉고 그리고 잡초를 요만한 구간에서 잡초를 뽑으면서 앞으로 쭉 전진하는 그래서 하프라인쯤에 모두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뽑아서 옆에다 놓으면 이제 뒤에서 전부다 갈고리 같은 것을 챙겨가지고 오면 삼일에 한번 뽑는데도 뽑으면 리아카씩 나와요 그래도 뽑아 뒤에서 이렇게 보잖아요 그러면 비록 방위들이지만 인간성이 다보여 그래도 애가 성실한 애는 다 뽑으면서 가 잡초는 계속 쌓이고 그 친구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 그런데 방위 올 자격도 없는 그런 게기는 친구들 있잖아요 맨 날 막대기들로 탁탁 치면서 에이시 이거나 뽑고 앉았고 말이지 이러면서 심지어는 말이지 뽑기 싫으니까 털석 앉아가지고 다른 사람이 뽑아놓은 잡초 가져다 자기 뒤에다 막 흘리면서 가 그러면서 잡초야 모두 나오너라 내가 뽑지 않아도 모두 집합해라 쭉 지나가는 뒤에서 보면 한쪽은 깨끗하게 그 잡초가 뽑혀서 파란 잔디가 뒤에는 비쭉비쭉 다 튀어나와요 나는 그것을 보면서 어린나이지만 너는 인생 살아도 회사 들어가서 그렇게 고생안하고 살 궁리나 할 거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잔디뽑는 방식대로 그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해요 정말이에요 그렇게 살아가
그러니까 오늘 여기에 보면 핍박받고 고난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는 말씀이 나오는 거죠 뭘 의미하는 것 같아요 소금이니 빛이니 하는 이야기가 두개가 딱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고 한데 붙은 이야기에요 무슨 뜻인가 하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빛이 아니고 소금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 분명하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 팔복의 사람들만 빛이요 소금이야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너희는 빛이라 현재직설법이에요 본질 자체가 정말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썩는 세상에서 거기에 항거하며 소금으로 살 사람들은 이미 본질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이고 여기나오는 팔복의 사람의 특성은 변화된 인격의 특성이에요 그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그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삶이에요 주님을 위해서 깊이 변화되고 예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려움이 올 때 참아요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이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한다는 절대가치보다는 사소한 거예요 언제든지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거예요 절대가치를 위해서 상대가치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은 그렇다고 할 거 같으며 이렇게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편안한 길을 택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가운데 큰 고통과 어려움이 올 때 그 길을 회피하고 더러운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깨끗해 하기위해서 죄를 죽이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려고 분투하지 않고 그리고 죄와 비참한 일들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자기 안에 불의를 보는 데도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눈물 흘릴 줄 모르고 애통해할 줄 모르고 그리고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의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지 않고 거기에서 적당히 욕하면서 묻어서 살아가는 이러한 삶은 결국은 뭘 보여주는 거죠 본질적으로 아직 하나님을 위해서 충분히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언약백성으로서의 그 독특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기에는 그가 받은 변화가 충분하지 않다. 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 결국은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와 그리고 우리의 인격의 특징이 분리되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섬기며 살아가는 실제적인 삶이 나눠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더 완전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고난도 참고 시련도 견디고 희생을 감수하고 거기에서 오는 깊은 외로움도 참고 인내하면서 걸어가던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도 역시 자기의 독특성을 유지하면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독특한 맛을 가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들이 요즘 흔히 매니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죠 오디오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디오매니아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카매니아 또 경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레이싱매니아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매니아의 세계에 들어가 보면 그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에 대한 즐거움도 크지만 그것을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많이 투자하고 분투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기회가 올리는 없지만 제가 해 보고 싶은 것은 카레이싱인데 할 가능성이 별로 없죠 스타 티브같은데서 나오는 카레이싱 여러분 그림 볼 때는 우습워 보여도 350킬로짜리입니다. 상상이 안가죠 부산까지 1시간 20분이면 내려가는 속도에요 살인적인 속도에요 포뮬러카가 1억5천만원정도 가는데 그랑프리를 한번하면 그 차이 값이 10억으로 올라간답니다. 그러니까 죽기 살기하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운전하기 위해서 입고 있는 그 옷 가정 싼 게 3백만 원이고 비싼 것 천만 원이 넘어요 뭐냐 하면 방염복이에요 레이싱 하는 거 보면 알지만 서너 바퀴 돌고 갑자기 바퀴를 가는 것 보셨을 거예요 그죠 바퀴뿐만 아니라 브레이크패드까지 한번 경주하고 갈아버려요 경주 몇 바퀴 도는 가운데 갈아버려요 그건 버리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만약에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세움을 받았다 할 것 같으면 그 일을 완성도 있게 잘 해내려고 하면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때로는 박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통을 참아야 하는 깊은 괴로움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잘 견뎌야 된다는 것이죠 오늘날 같은 때는 오히려 적극적인 의미에서 뛰어나가서 당하게 되는 그런 고난보다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주님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안고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시련을 견디면서 훌륭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우리시대에 신앙의 완벽한 자유를 누리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말하자면 고난의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같은 시대에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기 때문에 신앙에서 파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패 때문에 파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잘 지켜나가는 것 저는 오웬을 공부하면서 특별히 제 마음을 깊이 흔들어 놓았던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오웬박사가 여러 곳에서 은혜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비난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 딱 와서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죄를 죽이고 생각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잘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 뭐냐 하면 일을 잘 하는 것이다. 거기서 반전하는 거예요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의무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고 그분이 맡기신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파하고 그분이 맡기신 일들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고 시련을 견디고 아파하면서 그것들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대들의 영혼이 보호된다.라고 하는 생각이 죄에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은 예수님의 시대보다도 더 많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부패하기 쉬운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진정으로 이 세상에 빛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순종하면서 고난을 받으며 고통을 참으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목표를 바라보면서 마치 자기를 가꾸어 완성하듯이 고난과 시련을 이기면서 주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는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좋은 인격의 열매는 모두 견디기 힘든 고통과 연단의 과정 속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빚어지는 것이죠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참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만 견디는 것은 결국 진정한 인내가 아니고 그것은 우리를 참으로 변화시키지 못해요 그래서 한번 우리 과학자가 잔디밭과 같은 인생의 길에서 우리들이 쪼그려 앉자 잔디를 뽑으며 걸어온 우리의 인생길을 한번 돌아봐요 우리의 섬기는 삶도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갖는 것처럼 올곧은 섬김의 길이였는지 돌아보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변화되어야 합니다, 약함과 강함은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동시에 약함과 악함도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 주님의 은혜에 붙들리면 그 약한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강한 능력이 나타나지만 약한 사람이 은혜에서 멀어지면 악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잘 견디면서 그러면서 올곧게 주님이 나를 여기에 세우셨던 그 뜻을 다 같이 인내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해요 그 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우리들이 해 나갈 수 있고 우리자신도 훌륭하게 성숙될 것이라 전 그렇게 믿습니다.
전 얼마 안 되는 목회생활이지만 내린 결론이 그거에요 목회를 올바르게 하려고 애를 쓰면 그 사람은 거룩해 지지 않을 수 없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릴께요 하나님을 온전하게 잘 섬기려고 애를 쓰면 반드시 그 사람은 거룩하게 변화되요 그 무슨 애기냐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면 우리가 주님의 인격을 닮아 변해가는 것은 일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 아니잖아요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변화 시키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일을 잘 완수하면서 고난보다도 더 큰 가치 시련을 참는 아픔보다도 더 큰 가치 주님의 일을 위해서 내 시간과 재능 심지어는 나의 재물을 허비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우리들이 믿음생활 해 나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정말 깊이 변화되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새롭게 빚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발견되어져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의 사람인가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을 꾸준히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고 시련을 참으면서 그렇게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청교도는 말하기를 참 인내는 참음은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덕목 속에 들어가야 할 양념이라고 말했어요 어디에든지 다 들어가야 해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삶이 온전해지고 우리의 인생이결국은 하나님을 섬기는 날들이 될 거에요 언제든지 기분 좋고 행복한 섬기는 날 그런 건 없어요 늘 기쁨과 고통 외로움과 환희 좌절과 희망 그리고 만족과 고통이 공존해요 그 모든 것들을 견디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