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다해 수고함은 1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28-29)
녹취자: 김인철
I. 본문해설
오늘 우리 교회는 이제 교구가 세개의 교구가 새로 생겼습니다. 그래서 여성 남성 7교구가 생기고 그리고 청년교구도 하나 생겼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구가 생기고 변화들이 일어 나면서 정말 우리들이 교회에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주님의 교회에서 수고를 하는데 우리들이 힘을 다해서 주님의 일에 수고하는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림처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들이 흔히 교회를 세운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은 교회가 아니고 그냥 예배하는 처소일 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는 장소가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장소이지만 장소의 절대적인 특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팔고 이사를 가면 그곳에 아파트도 들어서고 공장도 들어서고 혹은 가게도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교회를 세운다고 할때 이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목회자와 목사와 그리고 장로들과 교회의 많은 제도들이 있고 이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이러한 연합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교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II. 교회를 세우는 사역: 목양
A. 복음의 전파
그러면 교회를 세운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무슨뜻인가 하면 모인사람들이 모두 서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두 다리로 세운다는 뜻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많이 모였어도 교회가 잘 안 세워진 교회가 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았어도 세워진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운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교회에 주신 하나님이 교회에 허락하신 연합 하나님이 성경을 토대로 세우신 목회자와 장로 이 모든 교회의 질서들 그 안에서 그 질서들이 든든히 서고 질서들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신자가 되어서 몸 전체가 교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을때 그 교회가 세워진 교회다 라고 말합니다.
(예화) 사람의 몸을 생각하면 이 비유가 아주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우리들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면 우선 정신이 올바르고 판단이 건강하고 정확하여야합니다. 그리고 눈은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고 코는 냄새를 귀는 소리를 입은 맛을 살갗은 감촉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들어 오는 많은 정보들을 해석해 내고 그래서 자기가 몸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될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몸더러 움직이라, 일하라, 피하라, 마시라, 먹으라, 입으라 이렇게 명령을 하면 신속하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이 올바라서 도덕적으로 이렇게 살아야지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올바른 행실을 할 수 있을때 우리는 그것을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워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사람이 몸을 가지고 있어도 정신의 판단은 온전한데 손에게 물건을 들어라 했는데 손이 무슨 문제가 있고 질병이 있어서 물건을 제대로 집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든지 어디를 가야 하는데 잘 걸을 수 없다든지 이렇게 소리가 들리지 않은다든지 이렇게 되면 우리가 건강하고 온전한 상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올바르지 않고 흐트러져서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정신이 명령하기를 컴퓨터 게임이나 밤새 하자고 말한다든지 이렇게 하면 이것도 망가진 상태입니다. 이것을 교회에 그대로 가지고 와서 그림을 비추어 보십시요.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가 잘 세워졌다는 것은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그 뜻이 아닙니다. 세워졌는데 그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몸이 정신은 온전한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든지 정신과 몸이 다 흐트러져서 말을 안 듣는다든지 아니면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올바르지 않다든지 이런 모든 상태가 되면 그 교회는 제대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도 모였고 반듯한 건물도 있고 그리고 돈도 있습니다. 예배당도 예쁘게 지었고 방송시설도 좋고 모든것이 나쁠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건전한 이성이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서 교회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면서 가야 하는데 그것이 없습니다. 세워진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런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피를 토하며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데 듣는 사람이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정신이 말똥말똥한데 온 몸이 마비가 되어 있는 상태의 교회 모습입니다. 이것도 세워진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졌다 라고 하는 것은 아주 종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와의 충만함 그래서 저는 교회의 온전한 모습이라는 것을 크게 세가지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유기체적인 생명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모두 중생하고 회심해서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여져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그 사람들에게 생명과 사랑을 공급해 줍니다. 그래서 오전에 설교한것처럼 이길 수 없는 일을 이기고 견딜 수 없는 고난을 이기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생명입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데 하나님 의지 하면서 그 교회의 한 지체로 살아갈 때 기쁨과 은혜가 샘 솟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기체적인 생명입니다.
두번째는 유기체적인 통치 입니다. 그 유기체적인 통치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교회를 이끄실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통해서 교회를 이끄시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의 정치의 질서 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고 교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어떤 사람을 쫒아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혼을 내고 징벌을 해야 하는지 이런것들을 그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주의 사상이 지배하는 단체입니다. 하나님이 명백하게 위탁하신 그 질서 안에서 성도들은 교회에 이러한 통치의 고난에 참여 하거나 고난을 행사 할 권리를 가집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교회의 질서를 교인들 스스로 세우고 세워진 그 질서에 대해서 혹시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있어도 복종하는 자세를 가지게끔 하나님이 그렇게 교회를 경륜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교회의 질서를 하찮게 알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이것은 교회의 세워진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 세워진 일꾼들이 일단 하나님의 명백한 질서에 의해 세워지면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있어도 잘 섬기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칙에 복종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도리이고 상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치의 질서 입니다.
(예화) 우리교회에서도 몇해전에 있었던 일인데 교회밖의 선교단체에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교인들을 한사람씩 한사람씩 데리고 가서 참석을 시켜서 거기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50-6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 수만 있으면 품고 너그럽게 대하려고 했는데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교회의 질서에 현저히 배치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장로님들과 의논해서 이것을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선교단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우리의 목양의 질서에 그 선교단체에 참여 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리고 바람직한것과 그렇지 않은것이 어떤 것인지를 일년동안 조사를 했습니다. 위원들이 세우졌고 교인들끼리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것이기 때문에 목회자도 들어 갔고 특별히 외부에 있는 신학교 교수들까지 참여를 시켜서 일년인가 육개월인가를 우리들이 조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단에서 이단시비가 나오고 저 방법은 잘못된 방법이다 라고 판결이 나오고 굉장히 복잡한 문제를 우리교회뿐만 아니라 교계 전체에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당회가 깊이 고민을 하면서 결국 결정을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 전체적인 유익으로 볼때 그래서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제가 교인들에게 모두 볼 수 있도록 목회서신을 썼습니다. 여러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교회의 덕으로 볼때 집회시간이 교회 집회시간과 겹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금요기도 시간에 그곳에 가서 기도하고 가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교인들을 데리고 가고 이렇게 하면서 교회에서 하는 선교는 선교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이것은 하기 싫은 선교 억지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는 저렇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선교단체이니까 선교단체 입장에서 볼때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희생도 적고 교회는 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많은 일들을 하니까 그 단체의 눈에서 보면 우리가 선교단체를 보면서 눈에 안 차듯이 그 선교단체가 교회를 보면 교회의 선교가 눈에 안 찾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단의 부정적인 기류들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것들을 이렇게 지켜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오죽했으면 그러지 말고 그 선교단체가 차라리 교회를 세워서 교인들을 데리고 가면 좋겠다 가서 잘 돌보고 목양하면서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열렬한 선교를 하면 좋겠다 그리고 보내줄 용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무엇때문에 교회에서 붙잡아 두겠습니까? 오겠다는 사람 많은데... 이제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3,4년이 지났기 때문에... 오죽했으면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차라리 교회를 만들고 이렇게 하지 말고 교회에서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불러 내서 그곳에 따로 교회를 만들고 그 교회 출석해서 십일조 하고 그 선교단체에서 잘 돌보아 주님의 사람으로 키우고 그렇게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열렬히 선교를 해 보아라 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당회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 마라. 참여한 사람들 징벌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당회의 결정에 잘 복종하고 순종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반발심을 가지고 교회를 힘들게 했습니다. 징벌을 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들은 아주 잘못된 태도들입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는 내용이 그리스도인의 성경적인 자유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에 심했습니다. 어느교회에 갔더니 오랫동안 그 교회에 다닌 집사가 있었는데 15년 가까이 그 교회를 다니다 나왔다고 합니다. 왜 나왔냐고 했더니 안수집사 투표를 앞두고 나왔다고 합니다. 안수집사 투표를 앞두고 왜 나왔냐고 했더니 교인들이 자꾸 왜 그 집사님을 미워해서 안수집사를 안 시켜 준다고 하는 교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켜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술, 담배를 계속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에게 시켜주려고 하는데 계속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다녀서 안수집사 못 시켜 준다고 하면 그 사람이 교회에서 얼굴을 들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인들은 목사님이 속이 좁아서 안 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술, 담배 하지 마라 그것만 아니면 안수집사 되도 괜찮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순종을 하여야 하는데 또 교회의 법에도 그것을 주초를 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 드리지만 그것이 초창기처럼 그렇게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해서 술, 담배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닌데 술, 담배를 하는 것 보다 사실은 저작권을 침해 하는 것이 더 나쁜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신학교인 웨스트민스터에서는 교수님들이 파이프를 물고 교정을 왔다 갔다 합니다. 학생들도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그러다 한국에 와서 못 끊어서 화장실에서 피우다가 걸리고 아주 복잡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허락했으면 해도 괜찮은데 이곳 교회에서 허락을 안 했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질서 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가정교육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남의 집에 가서 하룻밤 자거나 어디서 사회생활을 하면 티를 내고 그렇게 교양없이 굴듯이 제대로 된 교회에서 신앙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렇게 제멋대로 하고 다녔기 때문에 아무리 그렇게 타일러도 못 알아 듣습니다. 마치 집에서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디에 가서 결국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듯이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틀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불교 믿는 사람들에게 밤중에 가서 땅 밟기 하면서 통성기도하다가 신문에 나고 왜 그렇게 합니까? 마음속에서 그런 결단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러나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때에는 한번 복음을 전한 다음에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같은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교도들이 난리를 피워야 도망을 치고 할때 기독교도들이 애타게 영접해서 그렇게해서 대접을 하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성숙함이 필요 합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아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목숨을 걸 일이라고 교회에서 그 선교단체에 나가지 못하게 했으면 "네" 하고 순종을 하고 하는 것이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교양이고 하나님 자녀의 본분이지 그것을 반발을 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뛰쳐 나가고 그것이 뭡니까? 그래서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백날 피를 토하며 가르치면 뭐하냐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도 배웠고 하나님의 교회와 통치와 질서도 배웠고... 그런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것들은 교회가 세워진 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무엇인가 하면 유기체적 봉사, 유기체적 섬김 입니다. 사실 이 유기체적 봉사는 종교개혁자들은손을 안 대었던 부분입니다. 그때의 교회은 아주 단순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가든지 인생 전체를 품고 무엇인가를 아버지처럼 가르쳐 줄 수 있는 지성과 신앙을 지닌 목회자들이 있는 시대였습니다. 무식하고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종교의 의미가 무엇이고 무엇이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 가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아주 명백히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목회자들이 있고 어디에 가든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들이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데 병원에 가면 우리가 서울에 있는 병원이든지 평촌에 있는 병원이든지 우리들이 신뢰하고 가듯이 기본적으로 그런 진리가 교회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예전에는 교회가 아버지 같았는데 그래서 교회에서 엄격하게 우리들이 믿어야 할 바, 살아야 할 바를 가르치고 그렇지 못했을때에는 징계도 하고 했습니다. 그러다 산업혁명을 거치고 산업사회가 되면서 교회가 아주 여성화가 됩니다. 역사적인 전개의 과정이 있습니다. 지금 교회가 아주 여성화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양육, 돌봄 이런것이 많습니다. 홀로 두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도 우리말인지 일본말인지 모르겠지만 아사아사하고 그렇게 친구처럼 어울려주고 놀아 주는 그런 목회자들 좋아하지 근엄하게 저처럼 버티고 있어서 주일날이면 혼이나 내고 축도하고 내려가는 이런 아버지 같은 목회자는 좋아 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 전개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산업화사회를 거치면서 교회의 선교적 상황이 변하고 나서 이제 교회는 그런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서는 이 세상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하든지간에 교회가 섬기는 것들을 다양화해서 오늘날과 같이 현대적인 사고 속에서 인간중심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을 너의 사상은 사람중심이기때문에 상종할 수 없다 라고 줄을 긋지 않고 찿아가서 그들과 접촉하고 그들을 이끌어 내고 지금은 비록 성경진리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사상에 물들어 있지만 그 사람을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사랑을 알게 해서 진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인내의 과정들이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유기체적인 선교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 교통수단이 없던 시대에는 강원도에서 일어난 일도 우리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에서 일어 난 일만 알 수 있었습니다. 섬긴다고 하더라도 동네에 국한된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면서 교회가 섬기고 봉사하여야 할 영역들이 아주 넓어지고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좋은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지 나라들도 멀리 떨어진 교회들이 네트웍을 이루면서 자원을 동원해서 그들을 선교하고 돕는 일들을 위해서 힘쓰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것들은 아주 굉장히 바람직히고 오늘 미얀마가 민주화 되기 위해서 용트림을 하고 있고 서서히 나라가 개방이 되는데 이런때에 선교단체들도 미얀마를 선교하기 위해서 꾸준하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것들은 하나의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든 그 일을 위해서는 각자 알아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유기체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교회가 섬겨 나가는 이러한 일들이 필요했기때문에 유기체적 봉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B. 완전한 자로 세우심
1. 권함/ 지혜로 가르침
이렇게 유기체적인 생명, 유기체적인 통치, 유기체적인 봉사 이것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예수님의 마음을 반영해서 교회가 이 세상에서 올바른 역할들을 할때 이것을 우리들이 세워진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가리켜서 우리는 목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제일 먼저 복음의 전파를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들이 개나 양이나 소, 말 이런것을 많이 키우는 직업을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목축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많이 기른다고 해서 목축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맹수는 가축이 아니기 때문에 맹수를 기르는 것은 목축업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목양이 되려면 불신자는 목양을 받지 않습니다. 목양이 되려면 그 사람이 복음을 전파받고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한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도 목양의 대상이지만 본질적으로 말한다면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야지 목양이 됩니다. 왜냐하면 목양은 결국은 인간의 많은 방법과 도구들이 동원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다스려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양입니다. 예배에서도 진리와 성령, 목회에서도 진리와 은혜 이것들 통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않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 수 없고 성령과 관계과 없는 사람이기때문에 성령의 뜻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목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받으면서 그들이 어느 순간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회심하는 이러한 영적인 갱신의 역사가 일어냐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곳에 나가서 선교하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발짝 선교 나가지 못했지만 이제 방금 예수를 믿어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을 젖을 물리고 씻기고 똥 닦이고 그리고 밥을 해 먹이고 사람답게 살라고 가르치면서 한사람 한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 가는 그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너무나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자라지 않은 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사람답게 교육을 받고 자란 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땅을 파는 것은 전자의 사람들이 머리수가 많으니까 유용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은 개념없는 백명의 불신자 보다는 개념있는 한 사람의 신자가 더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으로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일을 권하고 지혜로 가르친다고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게 권면학고 지혜로 잘 가르쳐서 그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인데 여기서 완전한 자는 풀 그로운(full grown), 다 자란 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하고 결함이 없는 그런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다 자란, 우리들이 20세쯤 되면 다 자라서 성장판이 닫히고 어른의 몸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런 다 자란 성인이 된 사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2. 다 자란 자로 세움
a. 단단한 음식을 먹음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크게 네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무엇인가 하면 다 자란 사람은 단단한 말씀을 먹습니다. 여러분 정신 집중하고 들어서 은혜 받는 설교 보다는 정신 놓고 들어도 은혜되는 설교가 듣기가 더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렸을때에는 그렇게 설교속에 우스개 소리도 많고 진리는 조금인데 이야기를 풀고 여러가지 사슬을 풀어서 그렇게 먹기 좋게 만든 음식이 맛갈스럽고 기분이 좋습니다. 교회에 오면 언제나 즐겁게 우스면서 집중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설교가 연속극처럼 들려 와서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그래서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다닐때 집도 가난했지만 어쨎든 몇 달 밥을 좀 덜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영양실조가 왔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면 그 정도 음식으로 충분한데 어른이기 때문에 에너지의 소비를 그 영양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서 공부하고 일어 나면 어지럼증이 일어 나고 주저 앉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다 자란 사람은 단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교리적인 설교, 신학적 깊이가 있는 내용 이런것들을 먹으면서 그것들이 정신속에 자양분이 되면서 그를 지성과 의지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고 사상을 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음식을 먹는 사람을 히브리서에서 성인이다 믿음에 있어서 장성한 자 라고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처럼 맨날 쉬운 설교만 해 달라고 하고 공과공부는 맨날 개념없음 같은 책만 하게 해 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쉬운것 하고 다음에 좀 어려운것 하고... 또 어려운것 하고 그 다음에 쉬운것 하고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예화) 그래서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제일 싫어 하는 것이 죽입니다. 죽은 왜 싫어 하는가 하면 형상이 불분명 합니다.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그런것을 싫어 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먹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죽을 먹습니다. 한사발을 먹습니다. 간장을 풀어서... 돌아서면 배 고픕니다. 그런데 한끼 앉아서 갈비를 구워서 꽉꽉 씹어서 상추쌈을 싸서 든든하게 먹으면 한 9시쯤 식사가 끝나면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조금 일찍 먹어도 견딜만 하게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합니다. 그것이 단단한 음식이 주는 유익입니다. 당장 먹기 편한것은 죽일지 모르지만 음식을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지만 건강과 강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b. 지혜로운 판단력
두 번째는 성경에서 다 자란사람의 특징은 지혜로운 판단력입니다. 어린 사람은 판단력이 미약해서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고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장성한 신자의 지혜로운 판단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c. 견고한 지식을 가짐
세 번째는 무엇인가 하면 견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은 잠시 기쁨이 있습니다. 분명이 기쁨도 있고, 깨달음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견고한 사상을 가지고 누가 와서 우리가 믿는 것이 무슨 근거가 있느냐고 한두번 흔들어도 흔들릴 수 없는 견고함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 개념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학교를 같이 다닌 어느 목사님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요즘이 아니라 제가 지하실에서 교회를 하고 있을때 였습니다. 이분은 학교를 일찍 졸업하고 외국에 나가서 외국에서 공부도 하고 선교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외국에서 선교도 하고 외국으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교회를 찿아 왔습니다. 반갑다고 포옹까지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고나서 아무리 개척교회 목사지만 외국에서 들어 온 사람보다 형편이 나으니까 제가 점심을 사겠다 하고 같이 가서 즐겁게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영국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별로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청교도 따라 한답시고 깝죽 되는데”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청교도에 깊이 꽂혀서... 이 사람은 책도 안 읽고 저에 대해서 별로 정보도 없이 그냥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국에서 청교도 공부한다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가 얼마나 그들을 우습게 생각하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청교도는 사실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고 오해를 벗겼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커다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상대도 안 해 주었을텐데 그때는 아직 젊고 혈기가 있으니까 밥을 먹이면서 그 사람의 의견이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막 쪼았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논쟁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그 쪽에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방어를 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청교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러는 것인데 청교도가 그렇지 않다 이야기를 했더니 여러번 공격을 했습니다. 번쩍이는 생각을 가지고 깊이 공부한 것은 아니고 번쩍 거리는 생각을 가지고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다 방어를 했습니다. 마지막에 교회에 돌아 와서 그때도 이미 제가 번역한 책이 상당히 있었는데 한보따리를 싸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손에 들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마지막 하는 말이 무엇인가 하면 공격을 하다가 이제는 끝내고 “그러면 목사님은 그쪽으로 열심히 하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저의 소관사항이지...
우리가 무엇을 비판한다고 할 때에도 자기것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판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있는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 것이 확고히 없는 사람의 비판은 항상 단선적이고 한쪽면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견고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 하듯이 쓰레기 부리듯이 신앙생활 하지 말고 벽돌 쌓듯이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화) 최근에 어느 잡지를 읽어 보니까 지금 현재의 건축기술로 1km 높이 이상의 건축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금 기술로... 부르스칼리파가 850m까지 올라 갔습니다. 1km이상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술이 발전 되면서 그 높이가 계속 올라 갈 것입니다. 모두 철저하게 구조를 만들고 구조역학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그 건축물들이 세워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신앙의 지식도 견고하고 지식이 체계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들이 풍조에 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두 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예화) 저는 두 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이렇게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보신적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본 적이 있습니다. 나가보면 배가 달리고 있을때는 문제가 덜 됩니다. 배가 멈춰서면 10분을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구토가 나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 그러다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니까 갑자기 큰 배를 탄 것 같습니다. 큰 배는 파도가 쳐도 배가 움직이기는 하는데 천천히 움직입니다. 작은배는 파도가 치면 빠르게 요동 칩니다. 뒤집어질듯이 움직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니까 갑자기 내가 쪽배를 타다가 큰 배를 탄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인가 하면 상당한 기간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나름대로 기독교 사상의 커다란 체계를 나의 마음속에 받아 들이게 되니까 큰 항고모함을 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 의심을 제기하고 요동을 치고 해도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같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완전한 자라고 하면 그 사람은 견고한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d. 굳건한 믿음과 삶
마지막으로 굳건한 믿음과 삶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이 완전한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실수 안 한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으로 순결하다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하나님만 위해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약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고 또 다 자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는 건강한데 건강관리 잘못해서 감기에도 걸릴 수 있고 두통도 날 수 있고 콧물도 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자란 사람이라고 하는, 완전한 자라고 하는 신약성경의 그림이 대게 그런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설교, 교리적인 설교를 단단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소화해서 든든해 지고 지혜로운 판단력을 갖추고 견고한 사상의 지식을 세우고 실제적인 삶과 믿음에 있어서 쉽게 요동치고 흔들리지 않는 그래서 완전한 자, 다 자란 사람들은 쉽게 시험에 들거나 쉽게 넘어지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든든히 서서 어려운 일이 오나 조금 신앙이 식을때나 흔들림 없이 그렇게 굳건히 서서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우리들이 완전한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세워질때 교회는 항고모함처럼 되어서 사상의 파도가 밀려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가 워낙 견고하니까... 그리고 유혹이 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세상 한 복판을 항해 해 갈 수 있는 커다란 배와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C. 사역의 본질: 외적 영광 아님
그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되고 주님의 사람이 되는 일이 있을때 이것들이 모두 총계를 이루면서 주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 외형적으로만 교회가 크고 외부에 이름을 내고 이렇게 하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