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보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6-29)
녹취자: 김순미
우리는 흔희 다른 사람이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부러워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나는 가지고 있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보다는 지혜 없는 자들을 쓰시고 문벌이 높은 자들 보다는 문벌이 낮은 자들을 사용하시고 세상에 있는 자들 보다는 없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것은 오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로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말게 하려하심이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하나님을 정말 믿는 사람들만 사용하셔서 자기의 일을 이루실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거스틴 같이 탁월한 지성을 주셔서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방식으로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월요일에 오셨던 스티븐 톰 박사님을 오늘날 아시아의 ‘빌리 그레이엄’이라고 미국 전도협회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 같이 탁월한 복음전도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는 상상 할 수 없는 몇 십만 명이 회심하는 일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의 재능 없이 사용하실 수 있을까요? 믿음이 없어도,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어떨 때는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물론 하나님은 이런저런 모자란 사람을 쓰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오늘 그 암시가 우리가 읽은 첫 절에서 나와 있습니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재능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본인이 알고 또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연약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뛰어나게 생각 하지만 그에게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약함이 있습니다. 그걸 한번 우리가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탁월한 재능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깊은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시나니 이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의 정말 어리석은 사람 두 명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뛰어난 점을 보면서 교만해 지는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자신의 못난 부분을 깊이 집중하면서 좌절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어도 그 하나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딸린 모든 연약한 것들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생이고, 또 매우 연약한 것이 있어도 그거 하나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나은 부분들도 있으니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분이 경쾌하면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고, 마음이 우울하면 그 소리가 우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지는 저녁노을도 기분이 좋을 때는 아주 아름다운 빛깔로 보이지만 우울하고 비관적일 때는 핏빛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사물을 보는 것을 좌우합니다. 두 경우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훌륭한 나의 재능이나 혹은 자기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룰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주목하고 우리를 칭송합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우리는 거기에 들뜨지 아니하고 그 반대편을 봅니다. ‘너와 나는 매우 연약함’ 그리고 ‘강함 속에 감춰있는 연약함’ ‘지혜로움 속에 감추어 있는 미련함’ 육체의 강함 속에 깃들여 있는 마음에 연약한 부분들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깊이 겸손해지고 사람들이 나를 향해 쏟아내는 많은 찬사들이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약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면 그런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이 없는 자들을 통해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나의 없는 부분과 나의 약한 부분은 오히려 하나님의 강함을 들어내는 것이고, 내 약한 부분은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강한 부분을 들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점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나에게 찬사를 보낼 때는 그 반대편을 보며 겸손해 지고 그 반대편을 보면서는 바로 나의 이런 약한 부분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리고 나는 약해도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의 나된 것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좋은 점들 때문에는 사람들이 찬송하나 내 마음은 상하게 하시고 나의 약한 부분들 때문에 사람들은 멸시하고 나도 겸손해 지지만 하나님이 그 약한 부분을 통해서 당신의 큰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정하게 받아들이며 있을 때나 없을 때 유명할 때나 오명 할 때 혹은 나의 재능이 빛날 때나 혹은 나의 재주 없음이 들어날 때조차 어느 때든지 찬송 받으실 분은 우리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단순히 일을 위해서 도움이 되느냐? 이런 차원에서만 그를 바로 보지 말고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아직 자기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자신에게 도전해 가도록 그렇게 돕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서 자신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지금 있는 나와 그리고 앞으로 되고 싶은 나 사이에 다리입니다. 그 다리를 끈임 없이 걸어서 건너면서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약한 자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니 약한 부분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너무 깊이 좌절하고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연약한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강함을 들어내시고 나의 없는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살아있을 때나 죽을 때나 주님의 손에 붙들려 산다면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